불꺼진 명동… “사실상 절반이 빈 점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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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기 상가 공실률 28.5%
감정원 “통계, 실제 공실보다 낮아 30%면 점포 절반 비어있다고 봐야”
이태원 공실률, 2분기의 2배
상인들 “이런적 처음… 억장 무너져”

28일 서울 중구 ‘명동6길’은 한낮인데도 인적이 뜸했다. 3, 4층짜리 건물 27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150m 남짓한 거리에 영업 중인 점포는 7곳에 불과했다. 안철민 기자 acm@donga.com
28일 서울 중구 ‘명동6길’은 한낮인데도 인적이 뜸했다. 3, 4층짜리 건물 27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150m 남짓한 거리에 영업 중인 점포는 7곳에 불과했다. 안철민 기자 acm@donga.com
“거리를 둘러보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정말….”

27일 오후 7시 서울 중구 명동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A 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근처에 불 켜진 점포는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옷가게와 유명 드러그스토어가 문을 열었지만 손님이 없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 나머지는 폐업했거나 임시 휴업 안내문이 나붙어 있었다. 바로 옆 ‘사보이호텔’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이후인 9월부터 휴업에 들어갔다. 1957년부터 자리를 지켜온 ‘명동 터줏대감’조차 코로나19 충격을 피하지 못했다.

이날 명동은 더 이상 ‘관광특구 1번지’가 아니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는 점포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코로나19 충격도 그만큼 컸다. 유명 의류 매장과 편집숍이 몰려 있던 ‘명동6길’ 건물 27개 중 20개가 통째로 비어 있었다. 명동에서 가장 번화했던 ‘명동8길’에도 빈 점포가 수두룩했다. 전국 땅값 1위인 ‘네이처리퍼블릭 명동월드점’(m²당 1억9900만 원)이 있는 거리라는 게 무색했다. 통행이 어려울 정도로 빼곡했던 노점상들도 자취를 감췄다. 이날 영업 중인 노점상은 단 4곳. 붕어빵을 팔던 B 씨는 “올해 2, 3월부터 거리가 텅 비어 있다”며 “생계를 꾸려나갈 수 없다 보니 다들 장사를 접고 다른 일을 찾아 나섰다”고 전했다.

한국감정원이 28일 발표한 ‘올해 3분기(7∼9월) 상업용 부동산 임대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명동 소규모 상가(2층 이하면서 연면적 330m² 이하) 공실률은 28.5%였다. 올해 2분기 명동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0%였다. 명동은 서울 상권 49곳 중 공실률(소규모 상가 기준)이 전 분기 대비 가장 큰 폭(소규모 상가 기준)으로 올랐다.


2분기 명동 공실률이 0%였던 건 일부 건물(연면적 50% 이상 임대 중)만 표본으로 추려 조사하기 때문이다. 연면적 절반 넘게 빈 건물은 표본에서 아예 제외된다. 한국감정원 관계자는 “통계상 공실률은 실제보다 낮게 나올 수밖에 없다”며 “공실률이 30% 수준이면 사실상 점포 절반 이상이 비어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공실률은 코로나19 재확산 여파가 처음 반영된 통계로 서울 도심 상권의 공실률이 역대급으로 치솟은 현실을 보여준다. 명동에서 복권 가게를 하는 조모 씨(66)는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안 받겠다고 해도 들어와 장사하려는 사람이 없다”고 전했다.

이태원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3분기 이태원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30.3%로 전 분기(15.2%)의 2배로 뛰었다. 한국감정원이 2017년 소규모 상가의 공실률을 조사한 이래 서울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외국인 관광객 의존도가 높았던 데다 대표적인 ‘클럽 상권’으로 올해 5월 클럽 코로나19 집단감염 이후 매출 피해가 특히 컸던 탓이다.

28일 이태원에서 가장 번화한 ‘세계음식거리’를 둘러보니 1층 점포 17곳 중 5곳이 비어 있거나 휴업 상태였다. 방송인 홍석천 씨가 코로나19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올해 8월 폐업한 식당도 굳게 잠겨 있었다. 20년간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기념품을 팔던 C 씨는 “오늘도 손님이 0명”이라며 “지난해 이맘땐 ‘핼러윈’을 즐기는 인파로 북적였는데, 올해는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면서 씁쓸해했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월세를 코로나19 이전보다 20∼30% 낮춰도 들어오려는 상인이 없다”고 전했다.

부동산 업계는 명동과 이태원의 공실 해소가 당분간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상가건물 전문 공인중개업체 관계자는 “명동, 이태원은 전통적으로 매물이 거의 나오지 않는 상권인데, 최근 임차인을 못 구해 아예 팔아달라는 문의가 늘고 있다”며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다 보니 임차인도 매수자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중대형 상가(3층 이상이거나 연면적 330m² 초과) 중에선 강남대로와 강서구 화곡동 상권의 피해가 컸다. 강남대로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2분기 8.5%에서 3분기 16.4%로, 화곡은 7.1%에서 12.9%로 늘었다. 한국감정원은 “학원과 여행사 등 코로나19 피해가 큰 업체들이 사무실을 비운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공실 증가는 전국적 현상이었다. 전국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6.5%로 전 분기보다 0.5%포인트 늘었다. 같은 기간 중대형 상가는 12%에서 12.4%로 증가했다. 임대가격지수도 모든 유형의 상가에서 일제히 전 분기보다 1∼2%포인트가량 떨어졌다.

김호경 kimhk@donga.com·조윤경 기자
#코로나19#명동#이태원#공실률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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