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10시간 업무보고서 10만자 쏟아내… 野 “권력 과시 정치쇼”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2월 15일 03시 00분


위작 논란 ‘환단고기’ 연구 추궁에
野 “반지의 제왕도 역사냐” 반발… 대통령실 “연구 검토 지시 아니다”
“아는게 없다” 질책 인천공항公 사장… “책 등 모든 물품 열어 검색, 공항마비”

이재명 대통령이 12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개인정보보호위원회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5.12.12
이재명 대통령이 12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개인정보보호위원회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5.12.12
이재명 대통령이 처음으로 생중계로 진행된 부처 업무보고에서 주요 부처는 물론 산하 공공기관장들에게 질문 세례를 쏟아낸 것을 두고 정치권 공방이 거세지고 있다. ‘사실상 1인 국정감사’라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야당은 “권력 과시 정치 쇼”, “전(前) 정권 인사에 대한 공개적 망신 주기”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특히 업무보고 과정에서 위서(僞書)로 평가되는 환단고기(桓檀古記)를 ‘문헌’으로 언급한 것을 두고 역사 인식 논란이 확산된 것은 물론 국민의힘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이학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은 외화 밀반출 검색에 대한 이 대통령의 질책에 공개 반박에 나서는 등 곳곳에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 李 이틀 업무보고 동안 10만 자 쏟아내

11, 12일 이틀간 진행된 업무보고를 14일 분석한 결과, 이 대통령은 10시간가량 이어진 업무보고에서 40%가량을 직접 발언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관장의 업무보고와 답변 시간을 제외하면 배석한 김민석 국무총리나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들의 발언 시간은 거의 없이 이 대통령이 홀로 질문을 던지거나 의견을 개진한 셈이다. 이틀간의 업무보고에서 이 대통령이 한 발언을 글자 수로 환산하면 총 10만2152자에 달한다.

주로 이 대통령이 보고 내용에 대해 질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업무보고 과정에선 논란성 발언들도 생중계로 여과 없이 전달됐다. 이 대통령은 12일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게 ‘환빠(환단고기 신봉자) 논쟁’을 거론하면서 “고대 역사 논쟁인데 그런 건 (연구) 안 하냐”고 물었다. 이 대통령은 또 환단고기를 ‘문헌’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환단고기는 고조선 이전 상고(上古) 시대의 한민족 역사를 다룬 책으로 고대엔 한민족이 시베리아나 중앙아시아 등까지 지배했다는 주장이 담겼다. 하지만 주류 학계에선 기록상 내용이 모순되고, 제대로 된 원본이 없는 점 등을 근거로 ‘근대 이후 날조된 위서(僞書)’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국고대사학회는 2017년 책 ‘우리 시대의 한국고대사1’에서 환단고기에 대해 “민족주의가 과도하게 반영된 유사 역사학”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14일 “이 대통령 말대로라면 ‘(지구가 구체가 아니라는) 지구평평설’ ‘(인류가 달에 가지 않았다는) 달착륙 음모론’ 같은 것들도 논란이 있으니 국가 기관이 의미 있게 다뤄줘야 하는 것이 된다”고 비판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환단고기가 역사라면 반지의 제왕도 역사”라고 했다.

논란이 커지자 대통령실은 입장문을 통해 “대통령이 환단고기 주장에 동의하거나 이에 대한 연구나 검토를 지시한 것이 아니다”라고 진화에 나섰다. 대통령실 김남준 대변인은 “역사에 대한 다양한 문제 인식이 있을 수 있는데, 책임 있는 사람들은 분명한 역사관 아래에서 역할을 해 달라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 野 인사 겨냥 표적 질의 논란도

일부 기관장을 강하게 질책하는 장면이 실시간 공개된 것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야당은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에게 질책이 집중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12일 국민의힘 3선 의원 출신으로 내년 인천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이학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에게 “수만 달러를 100달러짜리로 책갈피처럼 (책에) 끼워서 (해외로) 나가면 안 걸린다는데 실제 그러냐”고 물었지만 이 사장이 즉답을 하지 못하자 “다른 데 가서 노시냐”, “저보다도 아는 게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이 사장은 업무보고가 끝난 뒤엔 발언권을 신청해 책에 끼워 현금을 밀반출하는 사례에 대해 “현재의 기술로는 발견이 좀 어렵다”고 답했다. 이어 14일에는 페이스북에 “대통령님께서 해법으로 제시하신 100% 수화물 개장 검색을 하면 공항이 마비될 것”이라는 글을 올려 반박했다.

다만 관세청에 따르면 책갈피에 외화를 넣더라도 지나치게 책이 부푸는 등 이상 징후가 나타나면 공항공사 보안검색대나 세관의 엑스레이 검색에서 적발이 가능하다. 100달러 지폐 100장 이상의 외환을 반출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게 관세청의 설명이다.

11일에는 국민의힘 4선 출신인 홍문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에게 “공사가 나서서 해외에 새로운 수출 품목을 확대한 게 있냐”고 질문했다. 홍 사장이 ‘라면’을 사례로 거론하자 “라면이 대표적인 예다? 라면은 기업들이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를 두고 개혁신당 이동훈 수석대변인은 “내용을 떠나 귀에 남은 것은 대통령의 말투와 태도였다. 조롱, 면박, 비아냥”이라고 했다. 이에 김남준 대변인은 “야당이 그렇게 바라보니까 그런 문제 제기가 나오는 것”이라며 “정상적인 질의응답 과정이었다”고 반박했다.

다만 대통령실 일각에서도 업무보고 과정에서 야권 출신 기관장들에 대한 질책이 부각된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아무래도 (전체 업무보고 중) 혼나는 (야권) 기관장들이 강조되는 측면이 있어 아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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