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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대명절 추석을 맞아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과 함께 문화의 향연을 만끽하면 어떨까. 추석을 맞아 볼만한 주요 공연과 문화 행사, 박물관 전시 등을 소개한다.● 거리극, 전통예술, 뮤지컬 등 다채로운 공연거리 공연의 낭만을 즐기고 싶다면 ‘서울거리예술축제 2024’를 눈여겨볼 만하다. 16∼18일 오전 11시∼오후 9시 서울 중구 서울광장과 청계천, 무교로 일대에서 열리는 이 축제는 국내외 예술가 300여 명이 거리극, 무용, 전통연희 등 24개 작품을 선보이는 행사다. 하이라이트는 추석 당일 열리는 ‘쾌지나 창창 나네’. 현대무용가 안은미와 서울문화재단이 공동 제작한 공연으로 경기민요명창 이춘희와 씽씽 밴드 출신의 신승태, 추다혜 등이 출연한다. 공연료는 무료.전통예술의 깊은 맛에 빠지고 싶다면 17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연희마당의 ‘휘영청 둥근 달’ 공연에 가보자. 국립국악원 정악단, 민속악단, 무용단 등이 무대에 올라 궁중음악과 민속음악이 어우러지는 한 마당을 선보인다. ‘풍년을 기뻐한다’는 뜻을 담은 궁중음악 ‘경풍년’과 강강술래 등이 펼쳐진다. 무료로 예약 취소분에 한해 현장에서 선착순 입장이 가능하다.서울 남산의 청량함을 덤으로 즐길 수 있는 국립극장 나들이도 고려할 만하다. 14, 15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선 장선희발레단의 ‘러브스토리 인 발레’가 열린 다. ‘백조의 호수’ ‘로미오와 줄리엣’ 등 사랑에 관한 발레 명작을 7개 에피소드로 구성했다. 강민우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조연재 국립발레단 솔리스트 등 스타 무용수들이 출동한다. 4만∼12만 원.다양한 연령층의 가족들에게 감동을 선사할 수 있는 뮤지컬도 있다. 2014년 국내 초연 후 누적 관객 50만 명을 달성한 스테디셀러 뮤지컬 ‘킹키부츠’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공연된다. 폐업 위기에 놓인 아버지의 수제화 공장을 다시 일으키고자 주인공 찰리가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유쾌하고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8만∼17만 원.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는 창작뮤지컬 ‘비밀의 화원’이 펼쳐진다. 195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보육원 퇴소를 앞둔 네 명의 아이가 “이 세상 모든 것엔 마법이 있다”고 믿으며 꿈과 희망을 품고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전 석 7만 원.● 조선시대 ‘궁궐 잔치’ 체험 행사도 조선 왕실 문화의 꽃인 궁궐과 왕릉을 산책해보는 것은 어떨까. 국가유산청은 14∼18일 닷새간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등 4대궁과 종묘, 조선 왕릉을 무료로 개방한다. 평소 예약제로 운영되는 종묘도 이 기간엔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그 대신 4대궁 등은 무료 개방 기간 다음 날인 19일 문을 닫는다. 경복궁에선 오전 10시와 오후 2시 하루 두 번 궁궐 문을 지키는 수문장의 근무 교대 의식을 볼 수 있다.조선시대 궁궐 잔치를 체험해볼 수 있는 행사도 마련됐다. 12∼18일 창경궁 문정전에선 관객 참여형 행사 ‘창경궁 야연’이 열린다. 조선 순조 때 효명세자가 부왕에 대한 공경과 효심을 담아 주관한 야연에서 착안해 2021년부터 선보이고 있다. 가족 중 한 명(부모님)이 국왕으로부터 초대받은 손님이 돼 고위 관료나 정경부인의 복식을 착용한다. 이때 다른 가족들도 함께 궁중병과를 즐기며 전통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5만 원. 12일부터 11월 10일까지 창덕궁에선 은은한 달빛 아래 경내를 거닐며 해금, 거문고 연주 등을 즐길 수 있는 ‘창덕궁 달빛기행’이 진행된다. 3만 원.국립민속박물관은 추석 당일을 제외한 15, 16, 18일 사흘간 추석맞이 ‘한가위를 힙하게’ 행사를 연다. 이 중 16, 18일 박물관 본관 앞마당에서 ‘한가위배 씨름대회’가 열린다. 씨름 기술을 배우고, 겨루기 체험을 할 수 있다. 이 밖에 사물놀이와 비보이가 만나 펼치는 퓨전 공연과 강강술래 공연도 감상할 수 있다. 박물관 기획전 ‘요즘 커피’에서는 대한제국 황실이 사용한 이화무늬 커피잔 등을 선보인다. 무료.사지원 기자 4g1@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만약 지금 실력으로 알파고와 대결한다면 5번기에서 과감하게 3승에 도전하겠습니다.” 지난달 열린 제2회 취저우 란커배 세계바둑오픈전 결승에서 우승을 거둔 신진서 9단은 10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열린 우승 기념 기자회견에서 ‘8년 전으로 돌아가 알파고와 맞붙는다면?’이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수읽기, 형세 판단 등이 인공지능(AI)과 유사해 ‘신공지능’으로 불리는 신 9단은 AI와의 대결에 대해 “아주 재밌을 것 같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2016년 구글이 개발한 알파고는 당시 이세돌 9단을 4승 1패로 이긴 후 중국 1인자 커제 9단 등 세계 최강자들을 상대로 60전 전승을 거뒀다. 이세돌에게 당한 1패가 유일한 패배였다. 신 9단은 “AI 덕분에 프로 기사들의 역량이 많이 성장했고 (나 역시) 세계대회에서 초일류 기사들을 꺾을 수 있는 기량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우승으로 인해 신 9단은 메이저 세계대회에서 7번째 우승을 거뒀다. 국내에선 이창호 9단(17회), 이세돌 9단(14회), 조훈현 9단(9회)을 잇는 기록이다. 올 3월 열린 제15회 춘란배 16강전에서 탈락했던 부진을 털어냈다. 자타 공인 세계 최강자인 그도 좌절감, 부담감에 바둑을 관두고 싶을 때가 많았단다. “2016년부터 2, 3년간은 어떻게 넘겼을지 모를 만큼 힘들었다”고 했다. 큰 대회를 앞두고는 여전히 잠을 설친다. 신 9단은 “슬럼프를 극복한 특별한 비결은 없다. 중요한 건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이었다”고 했다. 큰 대회를 앞둔 신 9단만의 컨디션 조절 비법은 무엇일까. 그는 “루틴은 없고 잠을 많이 잔다”며 “세계대회 때는 아침이나 점심을 많이 먹지 못해 매우 허기진 상태에서 대국하는 편”이라고 했다. 신 9단 앞에는 ‘최고 상금’ ‘정상’ 같은 화려한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올 1∼8월 그의 누적 상금은 13억4069만 원으로, 연말까지 약 1억6000만 원을 추가로 획득하면 한국기원 사상 연간 최대 상금인 15억 원을 넘어선다. 그는 “바둑 기사가 다른 스포츠에 비해 상금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많이 받을 수 있으면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바둑 아닌 다른 일을 하는 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는 그의 목표는 ‘끝없이 성장하는 기사’로 기억되는 것이다. 신 9단은 “AI조차 수를 다 못 찾을 만큼 쉬우면서도 어려운 게 바둑의 매력”이라며 “15년 이상 바둑을 뒀지만 보면 볼수록 수가 더 나오는 게 재밌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부담이나 좌절감 때문에 바둑을 그만두고 싶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중요한 건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지난달 열린 제2회 취저우 란커배 세계바둑오픈전 결승에서 중국 구쯔하오 9단을 꺾고 우승을 거둔 신진서 9단이 10일 서울 성동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 9단은 구쯔하오 9단과 맞서 1국과 2국 모두 완승하며 전기 대회의 설욕을 갚았다. 이번 우승으로 신 9단은 2012년 입단 이후 메이저 세계대회에서 7번째 우승하게 됐다. 국내에선 이창호 9단(17회), 이세돌 9단(14회), 조훈현 9단(9회)을 잇는 기록이다. 올 3월 열린 제15회 춘란배 16강전에서 중국 양카이원에게 패배한 이후 부진이 이어졌기에 더 값진 성과다. 그는 “최근 연이어 아쉬운 성적을 받았으나 다시 정신을 차리고 지난해 아픔이었던 란커배에서 우승함으로써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한 해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연말까지 남은 세계 대회를 통해 신9단이 슬럼프를 완전히 떨쳐낼 수 있을지 바둑팬들의 관심이 크다. 11월 개최되는 삼성화재배의 경우 지난해 중국 셰얼하오 9단에게 대마를 잡히며 8강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는 “많은 역경을 통해 성장했기에 최근의 슬럼프는 비교적 쉽게 넘길 수 있을 것”이라며 “특별한 비결은 없다. 그저 열심히 한다”고 했다.인공지능(AI)처럼 정확한 수를 보여 ‘신공지능’이란 별칭을 가진 신9단 앞에는 ‘최고상금’ ‘정상’ 같은 화려한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삼성화재배에서 우승 상금 3억 원을 받으면 신 9단은 한국기원 사상 연간 최고상금을 거두게 된다. 역대 최고액은 지난해 신 9단이 기록한 14억7961만 원. 올 1~8월 그의 누적 상금은 13억4069억 원으로, 연말까지 약 1억6000만 원을 추가로 획득하면 최초로 15억 원을 넘어선다. 그는 “20년 가까이 시합 하나만 보고 바둑을 뒀다. 상금은 따라오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상금 뿐 아니라 ‘57개월 연속 정상’ 같은 타이틀에도 그는 특별히 의미를 두지 않는다. 대신 “AI조차도 보지 못한 수를 봤을 때” 가장 기쁘단다. 신9단은 “AI조차도 수를 다 찾지 못했을 만큼 바둑은 어렵고도 재미난 게임”이라며 “20년 가까이 바둑을 뒀으나 보면 볼수록 더 많은 수가 나오는 매력이 크다”고 말했다. 그의 목표는 ‘끝없이 성장하는 기사’로 기억되는 것이다. 지난달 발간한 첫 에세이 ‘대국: 기본에서 최선으로’에서 신 9단은 “바둑의 신과 하이파이브 하는 그날까지 부지런히 달려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큰 대회를 앞두고는 여전히 잠을 설치기도 하지만 그런 부담감 자체에서 뿌듯함을 느낀다”며 “연말까지 중요한 시험대가 남아있기에 더욱 정진하겠다”고 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영광의 수상자들재단법인 인촌기념회와 동아일보사는 9일 인촌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38회를 맞은 올해 인촌상은 교육, 언론·문화, 인문·사회, 과학·기술 등 4개 부문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인물을 수상자로 선정했다. 심사는 부문별로 권위 있는 외부 전문가가 4명씩 참여해 6∼8월 3개월간 진행했다. 수상자들의 소감과 공적을 소개한다.》“오늘날 밀알학교가 있기까지 무수히 많은 사람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대표해 이 상을 받는 것 같습니다.” 홍정길 밀알복지재단 이사장(82·남서울은혜교회 원로목사)은 3일 오전 서울 강남구 밀알학교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이 같은 소감을 밝히고 한동안 교정을 바라봤다. 밀알학교는 밀알복지재단이 1996년 설립한 발달 장애 아동 특수학교다. 1975년 남서울교회를 세워 담임목사로 활동 중이던 그가 밀알학교 설립을 결심한 것에는 지체 장애를 가진 스무 살 터울 막내 여동생의 영향이 컸다. 국내에서 대학까지 졸업한 동생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번번이 취업에 실패했다. 결국 홍 이사장 권유로 미국 유학을 떠났고 현지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할 수 있게 됐다. 홍 이사장은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들은 견고한 사회적 편견과 장벽에 맞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한다”며 “장애인 아이들을 어떻게 도울지 고민하다 이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하게 됐다”고 말했다. 밀알학교 설립 당시만 해도 지역 주민 반대로 개교가 무산될 뻔했다. 결국 소송을 통해 학교를 설립했지만 홍 이사장은 이후 지역 주민과 학교의 ‘공존’을 위해 노력했다. 1998년 한국건축가협회상을 받은 학교 건물 내 카페, 음악홀, 미술관 등의 시설을 주민들에게 개방했다. 또 남서울은혜교회는 별도 건물을 짓지 않고 밀알학교 강당에서 예배를 진행했다. 밀알학교를 달가워하지 않던 주민들의 반응도 조금씩 달라졌다. 2009년에는 밀알학교 학생들이 졸업 후 교육 훈련을 받을 수 있는 드림대학도 설립했다. 2011년부터는 세계적 비영리 단체인 ‘굿윌’과 손잡고 굿윌스토어를 운영하며 발달 장애 학생들의 취업도 지원하고 있다. 그의 노력으로 많은 장애 학생들이 삶의 보람과 희망을 찾고 있다. 재단에서 운영하는 발달장애인 예술단 소속 한 첼리스트는 다른 기업에서 채용 제의를 받고도 “살면서 여기서 처음 사람대접을 받았는데 다른 곳으로 왜 가겠냐”며 거절하기도 했다. 홍 이사장은 “그 말을 듣고 모든 걸 보상받은 기분이었다.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모습이 감사하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사회의 됨됨이는 가장 연약한 사람을 어떻게 돕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우리 사회 곳곳에선 서로 미워하고 싸우기만 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작은 선(善)이 더 큰 선을 키우는 선순환의 고리를 종교와 교육이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공적국내 복음주의 운동의 선구자인 홍정길 이사장은 ‘건물 없는 교회’로 유명한 남서울은혜교회의 원로목사로 1996년 발달장애 아동을 위한 밀알학교를 설립했다. 1997년 3월 유치원과 초등학교 총 13학급으로 출발한 밀알학교는 현재 유치원과 초중고교, 직업 훈련 과정인 드림대학까지 총 31학급을 운영하고 있다. 재학생은 총 196명이다. 밀알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굿윌스토어(기증품 판매점)는 33호점까지 확장됐다. 굿윌스토어에서 일하는 장애인 직원만 400여 명에 이른다. 해외 빈곤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교육 사업도 진행해 지난해만 10개국 1777명의 아이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했다.62년간 연기 한우물… “연극배우 첫 수상, 후배들에 길 열어줘 기뻐”언론·문화 박정자 배우“이렇게 큰 상을 받다니, 내 생애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네요. 인촌상이 연극배우에게 주어지는 건 처음이기에 더욱 감사합니다. 앞으로 후배들이 상 받을 기회가 열린 것 같아서요.”5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인촌상 언론·문화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연극배우 박정자 씨(82)를 만났다. 1962년 데뷔 후 올해까지 62년간 한 해도 빠짐없이 무대를 지키고 있는 박 씨는 “과거 잘나가던 한때의 배우가 아니라 현역 배우로서 받은 상이라 뜻깊다. 이름값을 하기 위해 여생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박 씨는 연극 ‘페드라’로 데뷔한 뒤 지금까지 총 16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올해도 연극 ‘햄릿’, 뮤지컬 ‘영웅’ 등 세 편에서 조연 및 단역을 맡았다. 박 씨가 보여준 수첩은 연습과 공연 일정 메모로 빼곡했다. 그는 “배역의 크고 작음은 중요치 않다. 객석을 등진 채 앉아 있기만 해도 아우라를 뿜어낼 수 있는 실력이 중요하다”며 “어제 한 연습 오늘 또 하는 건 소용없다. 오늘은 어제와 다르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연극과의 첫 만남은 그가 여덟 살이던 19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6·25전쟁이 나기 직전이다. 박 씨는 “극단 ‘신협’ 연구생이던 오라버니(박상호 영화감독)에게 도시락을 가져다주러 간 부민관에서 연극 ‘원술랑’을 봤다. TV조차 없던 시절, 어린아이가 마주한 판타지는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다. 내게 연극은 운명과도 같았다.”박 씨는 1963년 동아방송(DBS) 성우극회 1기로 활동했고, 1966년 극단 자유의 창단 멤버가 되며 연극 ‘따라지의 향연’ 등에 출연했다. ‘신의 아그네스’를 비롯해 숱한 대표작을 남겼고, 동아연극상을 3번 받기도 했다. 하지만 무대에 서는 것은 지금도 혼신을 다해야 하는 일이다. “요즘도 무대에 설 때마다 떨립니다. 객석 앞에서 대사를 잊어버리는 악몽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어떤 호흡과 발성으로 관객에게 다가가야 할지 지금도 끝없이 고민하곤 합니다.”박 씨는 2005년부터 12년간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을 지내며 연극인 처우 개선에 힘쓰기도 했다. 그는 배우로서 연극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주위에 전달하고자 했으며, 그 노력을 앞으로도 지속하겠다고 했다.“일평생 가장 잘한 선택은 배우가 된 것입니다. 무대 위에서 쓰러지는 것이 꿈이에요. 염치없을 만큼 큰 욕심이지만요. 내 가슴속 불덩이가 꺼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불을 지피겠습니다.”공적1962년 연극 ‘페드라’ 이후 올해까지 62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무대에 오르면서 일생을 연극에 헌신했다. ‘작은 배우는 있어도 작은 배역은 없다’는 금언을 자신의 연극 정신으로 삼아 160여 편의 연극 작품에 주연, 조연, 앙상블(주·조연 제외한 배역)을 마다하지 않고 출연했으며 작품 완성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나의 종교는 연극이다’라는 말로 삶의 지표와 가치를 표현하기도 했다. 1986년 연극 ‘위기의 여자’로 여성 관객들을 대거 문화 현장으로 불러내는 트렌드도 만들었다. 당시 만들어진 후원조직 ‘꽃봉지회’와 함께 연극 대중화 운동과 연극인의 복지 향상에도 힘썼다.한문 고전 쉽게 풀어 대중화… “삶의 지평 넓히는 고전, 널리 알릴것”인문·사회 안대회 교수“무게감 있는 상을 받았으니 앞으로도 더 차분하게 연구를 지속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겠습니다.”인촌상 인문·사회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63)는 5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퇴계인문관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수상 소감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안 교수는 “큰 영광이면서도 ‘내가 이런 상을 받을 만한 성과를 냈나’ 하는 생각도 든다”며 겸손해하기도 했다.1994년 연세대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2007년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로 임용돼 후학을 양성 중인 안 교수는 한문 고전을 쉽게 풀어 번역해 인문학의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전 중에는 지금 읽어도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훌륭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고전을 딱딱하다고 여기는 대중들에게 읽는 재미를 알려주고 싶었습니다.”안 교수는 18, 19세기 조선 민중들의 삶을 생생히 보여주는 문헌을 수집해 연구해 왔다. 개성 한량 한재락이 1820년대 평양 기생 66명과 기방 주변 명사 5명을 만나 엮은 책인 ‘녹파잡기(綠波雜記)’ 원본을 2006년 발굴한 것이 대표적. 2011년에는 조선 정조 때 활약한 노비 시인의 한시집 ‘초부유고(樵夫遺稿)’를 소개하기도 했다. “사대부뿐 아니라 민중과 예술인 등 다양한 계층의 삶을 복원해야 우리 문화사가 풍부해집니다. 한문학 하면 점잖은 양반들의 이야기만 다룰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2018년에는 조선 후기 학자 이중환(1691∼1756)이 쓴 인문 지리서 ‘택리지(擇里志)’ 정본을 번역해 발간했다. 제자들과 함께 6년 가까이 200여 종의 이본을 비교해 믿을 만한 텍스트를 선별한 결과다. 안 교수는 “후학들의 연구를 돕기 위해선 선배 연구자들이 많은 이본과 교감해 신뢰할 수 있는 연구서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면서 “좋은 연구서가 있어야 이를 토대로 후학들이나 외국 학자들이 우리 고전을 효과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고 했다.흥미로운 대중 교양서도 다수 펴냈다. 조선시대 광대, 점쟁이 등 재주꾼들의 삶을 다룬 ‘조선을 사로잡은 꾼들’(2010년), 여행가와 바둑기사 등 조선 전문가들의 열정을 그린 ‘벽광나치오’(2011년) 등이다.안 교수는 “정년 이후로도 관심사에 천착한 긴 호흡의 연구에 매진하고 싶다”고 했다. “고전은 그냥 ‘구닥다리’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분명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삶을 바라보는 지평을 넓혀주는 고전의 훌륭함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공적한문학 연구 권위자로 다양한 인문교양서를 통해 한문 고전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18, 19세기 문집을 집중 연구해 조선시대 지식인과 민초들의 생생한 삶을 보여주는 미시사 연구에 한 획을 그었다. ‘학술 연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일’이라는 소신에 따라 대중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한문 자료들을 번역해 소개해 왔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인문지리서인 ‘택리지’ 이본을 수집해 정본을 확정하고, 주석을 붙여 번역 출간했다. 이 밖에 꾸준한 자료 발굴과 해석을 통해 조선 후기 풍속사와 문화예술사 연구의 기반을 구축했다.국내 AI 컴퓨터비전 연구 기틀… “실패는 재도전 기회, 꾸준히 노력을”과학·기술 권인소 교수“조용하게 연구만 해 온 저에게 이런 상을 주신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처럼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온다는 말을 후배 과학자들에게 해주고 싶습니다.”인촌상 과학·기술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권인소 한국과학기술원 전기및전자공학부 KAIST 교수(66)는 이같이 말했다. 권 교수는 “실패를 ‘다시 도전’이라 생각하고 끊임없이 배우는 자세가 중요하다”며 본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건넸다.국내 대표 인공지능(AI) 컴퓨터비전 석학으로 꼽히는 권 교수의 전공은 뜻밖에도 기계공학이다. 서울대 기계설계공학 학사와 석사를 졸업한 권 교수는 1984년 미국 카네기멜런대로 박사학위를 따러 떠났다. 그는 당시 로봇 공학자로 이름을 떨치던 가나데 다케오 교수를 찾았다. 로봇 과제에 필요한 알고리즘을 3개월 만에 개발하라는 과제를 받았고, ‘맨땅에 헤딩’하는 마음으로 도전한 끝에 눈이 내리던 12월 마지막 날, 권 교수는 가나데 교수의 ‘오케이’ 사인을 받았다.하지만 권 교수가 개발한 알고리즘 에러로 인해 고가의 ‘보드’에 불이 붙는 사고가 생겼다. 당시 미국 내 5개밖에 없던 보드였다. 쫓겨날 위기였다. 권 교수는 “그때 가나데 교수가 차라리 다른 전공인 ‘컴퓨터비전’으로 바꾸면 연구실에 머물 수 있다며 기회를 주셨다”고 회상했다. 실수가 평생의 연구 분야로 이끌어준 것이다.AI 컴퓨터비전은 AI를 활용해 이미지와 동영상 속 물체를 인식, 분류하고 분석하는 기술이다. 권 교수는 2015년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 재난 구조 로봇 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던 국내 최초 휴머노이드 로봇 ‘휴보’의 숨겨진 조력자다. 휴보의 눈과 머리를 맡았던 권 교수는 라이다 센서와 컬러 카메라 정보를 융합해 빛의 양과 관계없이 물체를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게 했다.이후 권 교수는 인간의 주의 집중을 모사한 ‘어텐션’ 모델을 컴퓨터비전 분야에 적용한 ‘CBAM(Convolutional Block Attention Module)’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어텐션 모델은 챗GPT와 같은 대규모언어모델(LLM)에도 적용된 모델이다. CBAM은 수많은 딥러닝 모델에 적용돼 성능은 유지되면서 모델의 복잡도는 평균 37% 정도 줄였다. 이 연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럽컴퓨터비전학회(ECCV)에 게재돼 현재까지 2만 회 이상 인용됐다.권 교수는 “앞으로도 꾸준하게 연구를 이어갈 것이다. 후학들도 항상 성실하게 겸손한 마음으로 AI 연구를 이어가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공적권인소 교수는 1980년대 국내에서 불모지였던 로보틱스·컴퓨터비전 분야 연구에 도전해 세계적인 연구 결과를 내놓은 연구자다. 1세대 컴퓨터비전 연구자로 200여 명의 제자를 양성해 국내 AI 컴퓨터비전 분야의 기틀을 닦았다. 최근 인간의 주의 집중을 모사한 ‘어텐션’ 모델을 컴퓨터비전 분야에 확장해 영상 인식 성능을 획기적으로 높인 ‘CBAM’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유럽컴퓨터비전학회(ECCV), 미국전기전자공학회(IEEE) 등 세계적인 학술대회에서 여러 상을 받기도 했다. 2016년에는 한국로봇학회 회장을, 2017년에는 한국컴퓨터비전학회 초대 회장을 맡은 바 있다.제38회 인촌상 심사위원 (가나다순)▽교육 △위원장 김경성 전 서울교대 총장 △위원 신종호 서울대 교수, 이용균 중앙고 교장, 장덕호 건국대 교수▽언론·문화 △위원장 김영석 연세대 명예교수 △위원 곽효환 시인·전 한국문학번역원장, 이은주 서울대 교수, 최맹호 전 동아일보 대표이사 부사장▽인문·사회 △위원장 김혜숙 전 이화여대 총장 △위원 구범진 서울대 교수, 김두얼 명지대 교수, 임준철 고려대 교수▽과학·기술 △위원장 노정혜 서울대 명예교수 △위원 김창영 서울대 교수, 예종철 KAIST 교수, 천진우 연세대 교수여근호 기자 yeoroot@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사지원 기자 4g1@donga.com최지원 기자 jwchoi@donga.com}
한때 촉망받는 소설가였지만 17년째 신작을 내지 못하고 외로움에 빠져든 교수 ‘벨라’. 그녀를 존경하는 학생 ‘크리스토퍼’는 매일 같은 시간에 벨라를 찾아와 자신이 위태로이 쓴 소설을 들려준다.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지지만, 마음속 “벌거벗은 나무가 있는 겨울 공원” 같은 고독까지 서로 치유해 줄 수 있을까. 다음 달 27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연극 ‘사운드 인사이드’의 줄거리다. 위암에 걸린 예일대 영문학부 교수 벨라, 명석하지만 무람없는 학생 크리스토퍼가 유대를 쌓아가는 과정을 그린 2인극이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일 테노레’의 극작가 겸 작사가 박천휴가 대본 윤색에 연출까지 처음 맡았다. 등장인물들은 커트 보니것, 오노레 드 발자크 등 유명 소설가들을 끊임없이 거론하며 대화에 입체감을 더한다. 문학에 대한 열정과 애증은 두 주인공이 고독함을 자처하는 동시에 타인과 연결되고 싶어 하는 상반된 심리를 은유적으로 전달했다. 다만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을 작품 메시지와 연결하려 했던 점은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극중 상황과 심리는 벨라의 시점에서 섬세하고 문학적인 대사들로 풀어져 나온다. 벨라는 자신에 대해 “난 녹슨 병따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고고학적 유물”이라고 냉소하며 “세월은 어딘가로 흘러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갑자기 덮쳐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심경을 “한겨울 따뜻한 비에 녹아버린 눈”에 빗댄 대목은 마치 소설을 읽는 듯했다. 벨라 역은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등에 출연한 서재희가 맡아 담담한 서술자로서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소화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봄과 여름이 등을 맞댄 5월이 되면 전남 강진에는 선홍빛 모란이 황홀경을 이룬다. 대표작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남긴 시인 김영랑은 이처럼 모란이 가지런히 심긴 강진의 마당, 은빛 바다를 바라보며 살았다. 책은 “시에 토질이란 것이 있다면 남도의 정서, 그 청자빛, 순연한 슬픔과 정조가 영랑의 토질일 것”이라고 한다. 경북 안동의 이육사, 충남 부여의 신동엽, 강원 봉평의 이효석 등 한국 문학사에 족적을 남긴 작가들의 작품 배경이 된 23곳을 답사한 기록을 모은 책이다. 성신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이자 문학평론가인 저자는 여행기와 비평문을 매끄럽게 넘나들며 작품 세계를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 섬세한 답사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오래전 작고한 문인들의 삶을 지근거리에서 들여다보는 듯한 재미를 느끼게 된다. 만해 한용운이 만년을 보낸 서울 성북구의 심우장에 간 저자는 생가를 둘러보며 독립운동가로도 활동한 시인의 올곧음을 톺아본다. 책에 따르면 생가는 애초에 남향으로 지어질 예정이었으나 만해가 ‘조선총독부 건물과 마주하지 않겠다’며 북향으로 지어졌다. 윤동주의 자취를 쫓고자 옛 간도 땅인 중국 연길로 향하기도 한다. 시 ‘별헤는 밤’ 등에 담긴 고향과 자연을 향한 애틋함은 윤동주 가문이 초창기에 이민한 북간도에서 비롯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연길에 있는 윤동주 생가를 둘러보면서 여리고도 강인한 시인의 성품을 헤아려본다. 여행지 곳곳의 아름다운 풍광을 묘사한 수려한 문장들은 당장 떠나고 싶은 충동을 일게 만든다. 시 ‘깃발’ ‘바위’ 등을 쓴 유치환의 흔적을 찾아 경남 통영으로 떠난 저자는 남도의 바다에 대해 이렇게 적는다. “남도의 해안 끄트머리에 이르러 부챗살처럼 퍼진 어항에 늘 넘실대는 푸른빛 바다는 (중략) 내륙에서는 감히 상상하기 힘든 세계”.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온전한 사랑을 지치지 않고 퍼붓는 남자야말로 동화 같은 이야기죠. 현실에선 어렵잖아요. 그런 왕자님인 ‘주원’이 잘 표현되게끔 상대 배우로서 호흡을 궁리했어요.”(배우 신현빈) “주원은 ‘윤서’를 사랑하기에 마음속 상처를 내색하지 않고 한없이 헌신해요. 저라면 그렇게 못할 것 같아서일까요. 처음 대본을 읽는 순간 엄청난 매력을 느꼈죠.”(배우 문상민) 채널A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새벽 2시의 신데렐라’에서 재벌 3세 연하남 주원 역을 맡은 배우 문상민(24)과 현실판 신데렐라 윤서 역으로 출연하는 신현빈(38)을 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드라마는 주원을 사랑하지만 자기 자신을 지키려 이별을 결심한 현실주의자 윤서, 그녀와 헤어지지 않으려 끊임없이 매달리는 주원이 그리는 좌충우돌 로맨틱 코미디다. 동명 웹툰 및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2010년 데뷔해 ‘얼굴을 갈아 끼우는 배우’라는 평을 받는 신현빈이 정석적인 로맨틱 코미디물에 도전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백마 탄 왕자님은 내 쪽에서 거절”이라고 말하는 당찬 면모와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여린 눈매가 교차하는 캐릭터를 연기한다. 그는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신데렐라가 되기를 거부하는 신데렐라’라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익숙한 클리셰를 조금씩 비틂으로써 시청자에게 새로운 재미를 줄 수 있겠다고 봤다”고 했다. 앞서 드라마 ‘웨딩 임파서블’에서도 재벌 연하남으로 출연한 문상민은 더욱 깊어진 눈빛과 노련해진 플러팅을 선보인다. 로맨스물 주인공으로서 역량을 높이려 소속사 선배이자 ‘로코 장인’인 박서준의 영상을 뜯어보며 공부한 것. 그는 “귀여움과 박력을 모두 갖춘 연하남을 소화하고자 평소 좋아하지 않던 헬스로 몸을 다지고 눈빛 연기에 공을 들였다”면서 “감독님이 ‘사연 있어 보이는 눈망울을 가졌다’고 해주시더라”며 웃었다. 신현빈은 세밀한 시선 처리까지 고민해 가며 배역을 연구했다. 그는 “좋아하는데 어쩔 수 없이 밀어내는 윤서의 속마음을 시청자에게 납득시키는 것이 목표였다”며 “주원의 매달림에 흔들리는 마음을 막아서는 상황이 반복되지만 시청자가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시선 처리 하나하나 고심하며 바꿨다”고 설명했다. 주원이 데려간 순두부찌개 가게에서 윤서가 잽싸게 소주 한 병을 주문하는 등 절로 웃음이 나는 ‘쿵 짝’은 드라마의 묘미. “촬영장 분위기 자체가 화기애애한 덕”이라지만 두 사람이 첫 만남부터 완벽한 궁합을 보였던 건 아니다. 고속 승진한 팀장 윤서, 신입사원으로 위장한 주원을 맡은 두 사람은 실제 열네 살 차 연상연하다. 신현빈이 “초면엔 상민 씨가 눈을 전혀 못 맞추며 어려워했다”고 하자 문상민은 “누나가 출연한 드라마 ‘아르곤’을 좋아했던 터라 처음엔 부끄러웠다. 밥 사달라고 하면서 거리를 좁혔다”고 했다. 나이 차가 느껴질 법도 하지만 신현빈의 배려심과 문상민의 ‘아재스러움’이 만나 간극을 메웠다. 신현빈은 “캐스팅 소식을 듣고선 다소 의아하긴 했다. 그러나 상민 씨가 푸근한 성격인 데다 ‘산울림’ 같은 옛날 노래를 즐겨서인지 빠르게 친해졌다”며 미소 지었다. 이에 문상민은 “어릴 때부터 가족 모임에 빠지지 않는 귀여운 막내”라며 “누나가 선배로서 해준 연기 조언이 캐릭터 구축에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총 10부작인 작품은 이제 5∼10화가 남았다. 두 사람은 ‘성민’ 역 배우 이현우의 등장이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라고 입을 모았다. 문상민은 “삼각구도로 인한 주원의 질투가 아주 귀엽고, 성민의 미스터리한 과거가 밝혀지면서 드라마가 더 힘을 받는다”고 말했다. ‘새벽 2시의 신데렐라’는 매주 토, 일요일 오후 9시 20분에 방송된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선선한 가을 저녁 즐기기 좋은 클래식 및 뮤지컬 음악회가 이달 다채롭게 열린다. 6∼8일 오후 6시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서 ‘크레디아 파크콘서트’가 5년 만에 개최된다. 첫날에는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와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가 호흡을 맞추고, 이튿날에는 온 가족이 즐기기 좋은 ‘디즈니 인 콘서트’가 이어진다. 뮤지컬 배우 정선아와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가수들이 출연해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노래를 80인조 대형 오케스트라의 선율에 맞춰 부른다. 마지막 날에는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조지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 등 클래식 명곡을 연주한다. 5만∼10만 원. 20일과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는 크로스오버 합창 등을 감상할 수 있는 ‘서울시예술단 가을 음악회’가 펼쳐진다. 서울시합창단은 20일 오후 7시 반 출연진 80여 명을 구성해 ‘사운드 오브 뮤직’ 등 영화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OST)부터 민요 ‘경복궁타령’, 크로스오버 ‘넬라 판타지아’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합창을 들려준다. 22일 오후 6시에는 서울시뮤지컬단이 무대에 올라 ‘오페라의 유령’ ‘맘마미아’를 비롯한 유명 뮤지컬은 물론 ‘서편제’ 등 국내 창작 뮤지컬을 아우르는 넘버들을 노래한다. 전석 무료, 4일부터 사전 관람 신청을 받는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올 8월 27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 ‘하데스타운’ 무대에 한국계 배우가 올랐다. 동양인 남자 배우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재해석한 ‘하데스타운’의 브로드웨이 본공연에 합류한 건 이번이 처음. 배우 티머시 이(27·한국명 이해찬)는 올해 미국 투어 공연에서 아시안 최초로 주인공 오르페우스 역을 맡은 데 이어 본공연에서 앙상블 ‘워커’ 역과 오르페우스 역의 언더스터디(예비 배우)를 겸하게 됐다. 하나의 배역을 서너 명의 배우가 돌아가면서 맡는 것이 흔한 우리나라와 달리 통상 단일 캐스트로 이뤄진 브로드웨이에서 언더스터디는 정기적으로 무대에 선다. 이 씨는 “본공연에 들어가게 돼 큰 영광이다. 앞으로 더 많은 한국 배우와 함께하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여전히 동양인에게 문턱 높은 ‘뮤지컬 본고장’ 브로드웨이에 한국계 배우, 창작진이 점차 입지를 넓히고 있다. 배우의 경우 ‘미스 사이공’ 등 주인공 설정이 동양인인 소수 작품을 제외하면 설 자리가 좁다. 한 공연제작사 관계자는 “투어 공연은 출연진이 길게는 몇 년간 묶여 있어야 하기에 인기 배우들은 선호하지 않는다”면서 “서구에서 발전한 뮤지컬 특성상 동양인 캐릭터 자체가 드물고 (본공연에서) 동양인 배우에게 비동양인 배역을 잘 주지 않는다”고 했다.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가 리드 프로듀서로 제작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는 4월 15일 이후 19주 연속 매주 매출액 100만 달러 이상을 내며 ‘원 밀리언 클럽’을 이어가고 있다. OST 앨범은 최근 빌보드 차트 ‘캐스트 앨범’ 부문 1위를 석권하기도 했다. 올 6월 미국 토니상에선 한국계 디자이너 2명이 의상상과 조명상을 받기도 했다. 브로드웨이에서 한국계 입지가 넓어지는 것. 신춘수 대표는 “브로드웨이 공연을 본 해외 창작자들의 라이선스 공연 문의가 많아 독일, 스페인, 호주 등 진출을 모색 중”이라며 “향후 후배 뮤지컬 제작자들이 브로드웨이에 진출하고 K뮤지컬이 영역을 넓히는 데 보탬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아득한 우주를 외로이 떠돌던 두 사람이 운명처럼 조우했다. 어릴 적 사고로 가족을 잃고 항공우주 과학자가 된 태섭과 평생 원망하던 아버지가 죽은 뒤 방황하는 지희. 이들은 오랜 시간 홀로 견뎌야 했던 서로의 아픔을 들여다보며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같고도 다른 상처는 두 사람을 끌어당기는 한편 밀어내기를 반복하게끔 한다.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U+ 스테이지에서 공연되고 있는 연극 ‘랑데부’의 이야기다. ‘만남’을 뜻하는 프랑스어인 랑데부는 두 개의 우주선이 같은 궤도로 만나 나란히 비행하는 것을 지칭하기도 한다. 연극은 강박적으로 감정과 주변 환경을 통제하는 태섭과 울컥 치솟는 감정을 참지 못하는 지희가 만드는 평행선을 통해 중년의 사랑과 성장을 그려낸다. 태섭 역은 영화 ‘신세계’ 등에 출연한 배우 박성웅과 최원영, 지희 역은 문정희와 박효주가 맡았다. 2인극인 이 작품 속에서 두 주인공은 마치 펜싱 경기를 벌이듯 날카로운 대사를 주고받으며 가까워지고 멀어진다. 이는 가로로 길고 폭이 좁은 런웨이 형태의 무대를 통해 긴장감 있게 연출됐다. 무대 바닥에는 대형 트레드밀 2개를 나란히 붙여 두 사람의 관계를 물리적으로 표현했다. 단출한 무대는 소품 하나 없이 색색깔 조명만으로 채색됨으로써 등장인물의 눈빛과 말투에 대한 집중도를 높였다. 서사는 다소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박성웅은 약 24년 만에 돌아온 이번 연극 무대에서 천진함과 중후함을 매끄럽게 오가는 입체적인 연기로 작품에 깊이감을 더했다. 문정희는 그와 상반되는 캐릭터의 발랄함을 잘 살려내며 “알고 있는 것과 느껴지는 것이 다른” 사랑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풀었다. 다음 달 21일까지.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스테디셀러 뮤지컬 ‘영웅’의 공연 실황을 담은 영화 ‘영웅: 라이브 인 시네마’가 이달 21일 극장에서 개봉했다. 국내 창작 뮤지컬 사상 두 번째로 ‘밀리언 셀러’에 등극한 인기 공연을 극장에서도 볼 수 있게 된 것. 2009년 초연부터 15년간 안중근 역으로 꾸준히 무대에 선 배우 정성화가 출연한다. 한 관객평에 따르면 “공연 티켓의 반의 반보다 저렴한 값에, 오페라글라스 없이도 배우를 코앞에서 볼 수 있어 매력적”이라고 했다. 국내 창작 뮤지컬의 공연 실황을 찍은 영화가 활발히 제작되고 있다. 원작 뮤지컬을 영화화한 ‘뮤지컬 영화’와 달리 무대 위 연기를 고스란히 담아낸 장르다. 올해 1월 초연된 창작 뮤지컬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는 6월 공연 실황 영화로 관객을 만났다. 공연은 서울 중구 CKL스테이지에서만 이뤄졌으나 영화는 대구, 부산 등 전국 11개 극장에서 상영되며 접점을 늘렸다. 창작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이달 23일 공연에서 일부 객석에 카메라를 설치해 뮤지컬 영상화를 위한 촬영을 진행했다. 공연 실황 영화는 뮤지컬에 대한 대중의 접근성을 높이고, 관객층을 두껍게 하는 역할을 한다.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를 제작한 공연제작소 작작의 홍지원 프로듀서는 “초연 당시 총 4주의 짧은 공연 기간 중 절반이 매진되면서 더 많은 관객을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이 컸다”며 “아직 작품이 공연되지 않은 지역의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온라인으로도 생중계함으로써 기존 마니아 관객은 물론 그간 공연장을 찾기 힘들었던 새 관객이 많이 유입됐다”고 말했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직접 만든 뮤지컬을 바탕으로 다양한 콘텐츠 사업을 시도해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영웅’의 윤홍선 에이콤 프로듀서는 “(제작비를 감안하면) 당장 수익을 실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창작 뮤지컬을 원천 IP(지식재산권)로 삼아 영역을 최대한 확장해 보려는 시도”라며 “뮤지컬 실황 영화가 하나의 새 장르가 될 수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해외 진출에도 유용하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으로 전 세계의 콘텐츠를 손쉽게 볼 수 있는 흐름 속에서 영상물은 공연에 비해 해외 관객과 만나기 수월하다”고 했다. 뮤지컬 팬들도 반기고 있다. 최근 티켓값이 고공 행진하는 가운데 저렴한 가격으로 공연을 즐길 수 있기 때문. ‘영웅: 라이브 인 시네마’는 인당 티켓 가격이 2만 원으로 현재 전국 순회 공연 중인 뮤지컬 ‘영웅’의 티켓가(6만∼17만 원)에 비하면 훨씬 저렴한 편이다. 비록 현장감은 덜하지만 큰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다 섬세하게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지난해 상영된 뮤지컬 실황 영화 ‘사랑의 불시착’은 무대 주변으로 설치된 총 19대의 카메라로 클로즈업과 롱숏을 오가며 출연진의 연기를 다각도로 전달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 바 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스테디셀러 뮤지컬 ‘영웅’의 공연 실황을 담은 영화 ‘영웅: 라이브 인 시네마’가 이달 21일 극장에서 개봉했다. 국내 창작 뮤지컬 사상 두 번째로 ‘밀리언 셀러’에 등극한 인기 공연을 극장에서도 볼 수 있게 된 것. 2009년 초연부터 15년간 안중근 역으로 꾸준히 무대에 선 배우 정성화가 출연한다. 한 관객평에 따르면 “공연 티켓의 반의반보다 저렴한 값에, 오페라글라스 없이도 배우를 코앞에서 볼 수 있어 매력적”이라고 했다.국내 창작 뮤지컬의 공연 실황을 찍은 영화가 활발히 제작되고 있다. 원작 뮤지컬을 영화화시킨 ‘뮤지컬 영화’와 달리 무대 위 연기를 고스란히 담아낸 장르다. 올해 1월 초연된 창작 뮤지컬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는 6월 공연 실황 영화로 관객을 만났다. 공연은 서울 중구 CKL스테이지에서만 이뤄졌으나 영화는 대구, 부산 등 전국 11개 극장에서 상영되며 접점을 늘렸다. 창작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이달 23일 공연에서 일부 객석에 카메라를 설치해 뮤지컬 영상화를 위한 촬영을 진행했다.공연 실황 영화는 뮤지컬에 대한 대중의 접근성을 높임으로써 잠재 관객을 발굴 하기에 좋다.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를 제작한 공연제작소 작작의 홍지원 프로듀서는 “초연 당시 총 4주의 짧은 공연 기간 중 절반이 매진되면서 더 많은 관객을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이 컸다”며 “아직 작품이 공연되지 않은 지역의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온라인으로도 생중계함으로써 기존 마니아 관객은 물론 그간 공연장을 찾기 힘들던 새 관객이 많이 유입됐다”고 말했다.제작사 입장에서는 직접 만든 뮤지컬을 바탕으로 다양한 콘텐츠 사업을 시도해볼 수도 있다. ‘영웅’의윤홍선 에이콤 프로듀서는 “당장 수익을 실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창작 뮤지컬을 원천 IP(지식재산권)로 삼아 영역을 최대한 확장해보려는 시도”라며 “뮤지컬 실황 영화가 하나의 새 장르가 될 수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해외 진출에도 유용하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등으로 전 세계의 콘텐츠를 손쉽게 볼 수 있는 흐름 속에서 영상물은 공연에 비해 해외 관객과 만나기 수월하다”고 했다.뮤지컬팬들도 반기는 추세다. 티켓값이 고공 행진하는 가운데 저렴한 가격으로 공연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영웅: 라이브 인 시네마’는 인당 티켓 가격이 2만 원으로 뮤지컬 ‘영웅’의 티켓가 6만~17만 원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무대 위 배우들의 연기를 보다 섬세하게 감상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지난해 상영된 뮤지컬 실황 영화 ‘사랑의 불시착’의 경우 무대 주변으로 설치된 총 19대의 카메라로 클로즈업과 롱숏을 오가며 출연진의 연기를 다각도로 비췄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빅뱅으로부터 우주가 태동했다는 것은 그동안 상식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그 굳건한 믿음을 머잖아 폐기해야 한다면 어떨까. 빅뱅이 ‘화이트홀’의 반등으로 형성됐다는 가설이 제기되고 있다. 우주, 다시 말해 ‘우리’는 빅뱅으로 태어나 블랙홀의 종말로 죽음을 맞는 것이 아니라 “다시 화이트홀로 환생하며 끊임없이 순환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것. 세계적인 이론 물리학자인 저자는 양자 이론과 중력 이론을 결합한 ‘루프 양자 중력’이라는 개념으로 블랙홀을 새롭게 규명한 우주론의 대가다. 과학과 철학, 예술을 넘나들며 완급을 조절한 베스트셀러들을 냈던 작가답게 책 전반에 걸쳐 13세기 단테의 ‘신곡’을 물리 이론에 빗댐으로써 우주의 경이를 직관적으로 와닿게 한다.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의 ‘시간의 끝’을 루프 양자 중력 방정식을 통해 넘어서는 부분은 ‘신곡’의 천국편 제1곡과 연결했다. 단테가 연옥의 산 너머 우주의 끝자락을 넘어서는 순간 “여기서 허용되지 않는 것들이 저기서는 허용된다”고 말하는 대목은 블랙홀에서 화이트홀로 전환될 때의 변화를 문학적으로 제시한다. 블랙홀의 지평선에 관한 이론에 철학적 사유를 더해 인생을 바라보는 새 관점도 제공해 준다. 책은 구 모양의 지구에 ‘진짜 위, 진짜 아래’가 없듯 ‘절대적 시간’이란 없다고 강조한다. 우주의 모든 존재에 각자의 고유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일흔을 목전에 둔 과학자로서 터득한 깨달음까지 진하게 담아냈다. 과학은 겸손함과 오만함을 모두 필요로 하는 달콤쌉싸름한 것이며 “진짜 어려움은 새로운 아이디어 자체가 아니라 당연해 보이는 오래된 믿음에서 벗어나는 것”. 친절한 설명으로 물리학에 문외한인 독자는 물론이고 최근 가장 논쟁적인 가설까지 다룸으로써 전문성 있는 독자까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밤 12시가 지난 새벽 2시. 무도회는 끝났고 빛나는 드레스와 설렘 가득한 순간은 오간 데 없다. 현실이 초라하게 느껴질 법하다. 하지만 이 신데렐라는 슬퍼하지 않는다. 두 주먹을 꽉 쥐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기로 한다. 원작과 다른 흐름에 당황한 건 왕자. 체면을 다 버리고 매달린다. “우리, 제발 다시 만나요.” “백마 탄 왕자님은 내 쪽에서 거절”이라며 동화 속 클리셰를 깨부순 채널A 토일 드라마 ‘새벽 2시의 신데렐라’가 24일 오후 9시 20분 첫 방영 된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완벽한 재벌 3세 연하남 ‘주원’과 헤어지기로 결심한 현실주의자 ‘윤서’, 그녀와 헤어지지 않으려 끊임없이 매달리는 주원의 이야기를 그려낸 로맨틱 코미디다. 동명 웹툰 및 웹소설이 원작이다. 윤서 역은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슬기로운 의사 생활’에 출연하며 대세 배우 반열에 오른 신현빈이, 주원 역은 드라마 ‘슈룹’ ‘방과 후 전쟁활동’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문상민이 연기한다. 드라마는 이별한 연인이 처음부터 다시 사랑을 쌓아 올리는 좌충우돌을 통해 뻔하지 않은 연애 서사를 풀어낸다. 22일 서울 영등포구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신현빈은 “시대가 바뀌며 신데렐라에 대한 인식 역시 변화했다. 자신의 힘으로 이뤄낸 것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윤서는 남자로 인해 겪게 될 상황을 거부하는 ‘이 시대의 신데렐라’로 표현되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살 것”이라고 말했다. 문상민이 그간 출연작들을 통해 보여준 연하남으로서의 매력은 ‘새벽 2시의 신데렐라’에서 더욱 강렬하게 드러날 예정이다. 큰 키와 벌어진 어깨로 윤서에게 매달리는 모습은 ‘애교 많은 대형견’을 연상케 한다는 것. 문상민은 “정장 핏을 살리기 위해 촬영하는 동안 허리와 어깨를 더욱 꼿꼿이 폈다”며 “사비까지 들여 정장 15벌을 맞춤 제작했을 만큼 작품에 대한 애정이 어마어마하다”고 웃었다. 신현빈과 문상민은 실제 열네 살 차이가 나는 연상연하 남녀다. 이에 대해 신현빈은 “상민 씨가 나이를 속인 것은 아닐까 싶을 만큼 편하게 지냈다. 아주 솔직하고 밝은 데다, 취향도 어른스러운 편이라 호흡이 잘 맞았다”고 했다. 문상민은 “현빈 누나와의 케미(호흡)는 드라마에서도, 촬영장에서도 100점 만점에 100점”이라고 말했다. 드라마를 연출한 서민정 감독은 “2019년 여름에 처음 문상민 씨를 만났는데 뒤에서 후광이 났다. 해맑고 예의 바른 모습은 촬영장에서도 여심을 저격하는 ‘유죄 인간’이자 그 자체로 주원”이라며 캐스팅 배경을 밝혔다. 이어 “신현빈 씨는 ‘얼굴을 갈아끼우는’ 배우이자 눈물 연기의 대가다. 눈물의 방향과 흐르는 양까지 조절해 연기하는 것을 보며 감탄했다”고 치켜세웠다. 현실적인 이유로 정략 결혼을 한 ‘시원’과 ‘미진’의 이야기도 함께 펼쳐진다. 주원의 형이자 차기 회장인 시원 역은 배우 윤박이, 그와 ‘쇼윈도 부부’로 결혼했으나 어느덧 사랑에 빠져드는 재벌 인플루언서 미진 역은 박소진이 맡았다. 윤박과 박소진이 작품에서 호흡을 맞추는 건 드라마 ‘이로운 사기’ 등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박소진은 “비록 정략결혼이지만 부부가 가장 가깝긴 하더라”라며 “둘이 알아가는 재미가 연애보다 훨씬 짜릿하고, 싸우는 장면에서마저 ‘쿵 하면 짝’이다”라고 했다. ‘새벽 2시의 신데렐라’는 매주 토, 일요일 오후 9시 20분에 방송된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극작가의 스마트폰 메모장에 글감이 금세 100개 넘게 모였다. 이제 이야기의 골격을 세울 때다. 통상 스타트업에서 쓰는 생산성 툴을 켜고, 포스트잇을 뗐다 붙이듯 메모들을 이리저리 배열해 보며 스토리보드를 만든다. 이야기가 관객에게 명료히 이해될지 문득 의구심이 든다. 챗GPT에다 이 희곡의 원형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본다. 유수한 희곡을 숱하게 학습한 인공지능(AI)이 이해 못 할 구조라면 관객도 혼란스러워할 터다. 지난해 제60회 동아연극상에서 데뷔작 ‘그게 다예요’로 희곡상을 품에 안은 극작가 강동훈(28)의 이야기다. 스타 소리꾼 이자람 등이 거쳐 간 DAC(두산아트센터) 아티스트로도 선정되며 큰 주목을 받은 신인 작가다. 그는 연출가와 나눌 법한 대화를 AI와 나누며 작품을 쓴다. 16일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에서 만난 강 작가는 “기술을 지독하게 느껴봐야 내가 쓰는 글이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다. 과학기술은 시대를 구분 짓고 사고를 전복하는 이정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의 시대 연극계에선 젊은 극작가가 귀하다.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그 역시 학부 땐 영화를 전공했다. 그러다 갑자기 무대에 발을 디딘 건 역설적으로 연극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었다.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서사를 예로 들었다. “영화라면 바다에서 촬영하면 돼요. 하지만 연극은 극작가가 창의력을 총동원해야 하죠. 배우, 연출가가 무대 언어로 바다를 재현할 수 있게끔 고민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꼈어요.” ‘아름답고 유용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그의 문체는 포말처럼 반짝이면서 수평선 너머 감춰진 존재를 조명한다. 오랜 세월 드레스 제작사로 일한 할머니의 기억을 좇으며 3대에 걸친 시간을 교차시킨 ‘그게 다예요’는 연극상에서 “진정한 상생과 연대를 담아낸, 묻히기 아까운 작품”이라는 심사평을 받았다. 좋은 이야기란 ‘동일한 대상을 달리 볼 시선을 진부하지 않은 미학으로 전하는 것’이라는 그는 “이야기에는 뉴스나 칼럼과는 다른 정확성이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기자 출신 작가인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쓴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는 기사체만큼 건조하게 쓰였음에도 전쟁 후의 패배감, 공허감이 온몸으로 느껴지잖아요. 이야기는 사건과 인물, 구조를 동원해 감정을 비롯한 모호한 영역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힘이 있어요.” 강 작가는 자신을 ‘양자역학과 스마트폰의 세계관을 타고난 세대’로 규정했다. 불확정적이면서 탈중심·초연결적 문화가 지배하는 시대란 뜻이다. 그는 “오늘날엔 오디세우스처럼 거창한 시련도, 절대적 구원자도 없다. 삶은 불확실하고 불안하기만 하다”며 “사람들의 감각에 맥락을 만들어줌으로써 삶을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끔 돕고 싶다”고 했다. 청감 문화 스타트업 ‘사운드 울프’에선 아트디렉터로 활동하며 소리에 서사를 더한다. 농구공이 네트를 스치며 골인할 때의 소리로부터 짜릿함의 서사를 발굴하는 식이다. 그는 무언가에 익숙해지고 있다고 느끼면 얼른 새 물을 끌어다 자신의 세계를 희석한다. “우리 세대는 한 우물만 파서는 고여 버리기 쉽다”며 차기작으로 장편 영화 시나리오를 집필 중이다. “좋은 극작가라면 가상현실(VR) 게임 시나리오도, 증강현실(AR) 광고 카피도 잘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작업을 해보고 싶고, 해야 하죠. 노랫말 쓰는 것이 취미라, 언젠간 아이돌 그룹 음악도 작사해 보고 싶어요(웃음).”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램프의 요정 ‘지니’를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목표였어요. 알라딘과의 ‘브로맨스’를 강조하고 싶었거든요. 최첨단 기술을 사용해 변신시키는 대신 춤추고 우스꽝스로운 스탠드업 코미디언처럼 설정한 이유입니다.”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 ‘알라딘’을 연출한 케이시 니콜로 연출가 겸 안무가가 20일 서울 중구에서 화상으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공연 제작 배경에 대해 밝혔다. 브로드웨이 뉴암스테르담 시어터에 모인 제작진과 원격으로 이뤄진 이번 간담회에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 ‘미녀와 야수’ 등의 OST를 만든 스타 작곡가 앨런 멩컨, 디즈니 시어트리컬 그룹의 앤 쿼트 총괄 프로듀서가 함께했다. 11월 22일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초연되는 ‘알라딘’은 1992년 개봉한 동명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기반한 대형 뮤지컬이다. 2011년 미국 시애틀에서 초연된 이후 영국, 호주, 일본 등 전 세계 11개 제작사에서 공연하며 관객 2000만 명을 모았다. 한국 공연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라이온 킹’ 등을 공연한 에스앤코가 제작한다. 공연에서는 뮤지컬에 맞춰 새롭게 작곡하거나 편곡한 음악을 들어볼 수 있다. 멩컨은 “자스민의 사랑과 관계에 초점을 맞춘 새 음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디즈 팰리스 월스(These Palace Walls)’를 추가했다. 당시 45분 만에 기본 선율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2∼3분 길이인 ‘프렌드 라이크 미(Friend Like Me)’는 약 8분 길이의 화려한 스윙 재즈풍 음악으로 바뀌었다. 니콜로는 “대표곡 ‘어 홀 뉴 월드(A Whole New World)’의 경우 원작보다 로맨틱하고 반짝이도록 편곡했다”고 덧붙였다. 창작진은 ‘알라딘’에 얽힌 뒷이야기도 풀어냈다. 멩컨은 “알라딘이 부르는 ‘어 홀 뉴 월드’는 원래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세상이 내 발밑에 있다’는 설렘을 표현하는 노래였는데 작사가 팀 라이스를 만나 사랑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가사로 변화했다”고 말했다. 애니메이션 제작 원안에는 있었지만 불가피하게 빠졌던 캐릭터들도 무대에 등장한다. 알라딘의 세 친구인 카심, 오마르, 밥칵이 조력자로 활약한다. 초연에 참여하는 총 37명의 출연진은 10차례 오디션을 통해 선발됐다. 알라딘 역은 김준수, 서경수, 박강현이 연기한다. 지니 역은 정성화, 정원영, 강홍석이, 자스민 역은 이성경, 민경아, 최지혜가 맡는다. 이성경은 ‘알라딘’을 통해 처음 무대 연기에 도전한다. 쿼트는 “20년 전 뮤지컬 ‘미녀와 야수’를 한국에서 공연했을 때와 비교해 한국 배우들의 역량이 매우 강력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램프의 요정 ‘지니’를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목표였어요. 알라딘과의 ‘브로맨스’를 강조하고 싶었거든요. 최첨단 기술을 사용해 변신시키는 대신 춤추고 우스꽝스러운 스탠드업 코미디언처럼 설정한 이유입니다.”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 ‘알라딘’을 연출한 케이시 니콜로 연출가 겸 안무가가 20일 서울 중구에서 화상으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공연 제작 배경에 대해 밝혔다. 브로드웨이 뉴암스테르담 시어터에 모인 제작자들과 원격으로 이뤄진 이번 간담회에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 ‘미녀와 야수’ 등의 OST를 만든 스타 작곡가 알란 멘켄, 디즈니 시어트리컬 그룹의 앤 쿼트 총괄 프로듀서가 함께했다. 11월 22일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초연되는 ‘알라딘’은 1992년 개봉한 동명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기반한 대형 뮤지컬이다. 2011년 미국 시애틀에서 초연된 이후 영국, 호주, 일본 등 전 세계 11개 제작사에서 공연하며 관객 2000만 명을 모았다. 한국 공연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라이온 킹’ 등을 공연한 에스앤코가 제작한다.공연에서는 뮤지컬에 맞춰 새롭게 작곡하거나 편곡한 음악을 들어볼 수 있다. 멘켄은 “자스민의 사랑과 관계에 초점을 맞춘 새 음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디즈 펠레스 월스(These Palace Walls)’를 추가했다. 당시 45분 만에 기본 선율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2~3분 길이인 ‘프렌드 라이크 미(Friend Like Me)’는 약 8분 길이의 화려한 스윙 재즈풍 음악으로 바뀌었다. 니콜로는 “대표곡 ‘어 홀 뉴 월드(A Whole New World)’의 경우 원작보다 로맨틱하고 반짝이도록 편곡했다”고 덧붙였다. 창작진은 ‘알라딘’에 얽힌 뒷이야기도 풀어냈다. 멘켄은 “알라딘이 부르는 ‘어 홀 뉴 월드(A Whole New World)’는 원래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세상이 내 발밑에 있다’는 설렘을 표현하는 노래였는데 작사가 팀 라이스를 만나 사랑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가사로 변화했다”고 말했다. 애니메이션 제작 원안에는 있었지만 불가피하게 빠졌던 캐릭터들도 무대에 등장한다. 알라딘의 세 친구인 카심, 오마르, 밥칵이 조력자로 활약한다. 초연에 참여하는 총 37명의 출연진은 10차례 오디션을 통해 선발됐다. 알라딘 역은 김준수, 서경수, 박강현이 연기한다. 지니 역은 정성화, 정원영, 강홍석이, 자스민 역은 이성경, 민경아, 최지혜가 맡는다. 이성경은 ‘알라딘’을 통해 처음 무대 연기에 도전한다. 쿼트는 “20년 전 뮤지컬 ‘미녀와 야수’를 한국에서 공연했을 때와 비교해 한국 배우들의 역량이 매우 강력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K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사진)가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흥행을 거두며 빌보드 차트 ‘캐스트 앨범’ 부문 정상에 올랐다. 공연기획사 오디컴퍼니는 이달 2일 발매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OST) 앨범이 빌보드 차트 ‘캐스트 앨범’ 부문 1위에 올랐다고 19일 밝혔다. ‘위대한 개츠비’는 뮤지컬 ‘데스노트’ ‘지킬앤하이드’ 등을 만든 오디컴퍼니 신춘수 대표가 아시아인 최초로 단독 리드 프로듀서를 맡은 작품.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 원작 소설을 재창작했다.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두 번째로 큰 극장인 브로드웨이 시어터에서 공연되고 있다. 공연의 주요 넘버인 ‘뉴 머니(New Money)’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댄스 챌린지 영상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흥겨운 노래에 맞춰 추는 절도 있는 안무가 특징이다. 브로드웨이의 경쟁 뮤지컬인 ‘백 투더 퓨처’ 배우들까지 챌린지에 동참했는데 유튜브에서 100만 회 이상 조회됐다. ‘위대한 개츠비’는 프리뷰 공연이 시작된 4월 15일 이후 17주째 매주 매출액 100만 달러 이상을 내며 ‘원 밀리언 클럽’을 유지하고 있다. 브로드웨이는 주간 매출액이 100만 달러를 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면 작품성과 별개로 작품을 무대에서 내린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비극적 죽음을 맞은 뒤 이승에 남지도, 저승에 가지도 못하는 ‘도’와 ‘신’. 자신이 누구였는지조차 잊은 이들은 생전 신던 신발을 하염없이 찾는다. 신발에서는 한 사람의 삶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다음 달 1일까지 서울 성북구 놀터예술공방에서 공연되는 극단 ‘놀터’의 연극 ‘나를 찾아 나를 떠나고 나를 지우고 나를 기다린다’의 줄거리다. 배우 겸 연출가 이미숙(47)이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주인공들이 고도를 기다리는 동안 신발을 갖고 노는 데서 영감을 얻어 대본을 쓰고 연출했다. 2021년 초연 이후 3년 만에 재연된다. 16일 첫 공연이 끝난 뒤 극장에서 만난 이미숙은 얼마 전 선물 받은 새 신발을 신고 있었다. 매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와 성북구 동소문동에서 노원구 상계동 집까지 걸어 다니며 작품을 고민하는 그의 신발 밑창에 어김없이 큰 구멍이 나서다. 쉬지 않고 걸어도 왕복 7시간에 달하는 거리. “물집이 나고 터지며 굳은살이 박이기를 반복하는 과정이 인생 아닐까요. 나 자신과 싸우고 패배하면서도 살아내야 하는 삶을 작품에 담아내고자 했어요.” 연극계에서 ‘몸 잘 쓰는 유쾌한 배우’로 정평이 난 이미숙답게 작품에는 배우들의 다채로운 움직임과 입소리, 언어유희로 가득하다. 그는 “뼈대에 살이 붙어야 비로소 살아 숨 쉬는 인간이 되듯, 배우의 움직임은 대사에 생명을 불어넣는 필수 요소”라며 “대사 이외 입소리와 말놀이로 웃음과 운율감을 더했다”고 말했다. 굿판을 접목해 한(恨) 서린 영혼들을 위로하는 과정도 특색 있게 담았다. “작품 속 인물들에게 부끄럽지 않겠다”는 신념을 가진 그는 스무 살이 되던 1997년 극단 ‘미추’에 입단하며 연극 인생을 시작했다. 26년이 흐른 지난해 제60회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품에 안았다. 그는 “연극쟁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상이기에 수상 소식을 듣고 한참 넋을 잃었다”며 “형편이 어려워 연기를 전문적으로 배우지 못했는데 고집스럽게 무대를 지킨 끝에 보상을 받는 듯해 감격스러웠다”고 했다. 어느덧 중견 배우가 됐지만 연극을 향한 고집과 애정은 변함없다. 그에게 연기상을 안겨준 ‘싸움의 기술, 졸’에서 장기 두는 것이 낙인 ‘뒷방 늙은이’ 기봉 역을 연구할 땐 동네 공원을 찾았다. 장기 두는 어르신들의 표정과 몸짓, 말투를 온종일 꼼꼼히 관찰했다. ‘무슨 관심이 그렇게 많냐’며 걱정 섞인 핀잔을 들어도 소주를 나눠 마시며 거리를 좁혔다. “연극은 모방이라지만 가짜를 연기하면 안 돼요. 연출가로서 배우들도 ‘진짜’ 그 인물이 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하죠. 관객과 단원들에게 극장이 가장 소중한 공간이 되게끔 앞으로도 묵묵히 무대를 지키겠습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나이가 들면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을 자꾸만 늘어놓기 쉽다. 자식은 “했던 얘기 또 한다”며 성가신 기색을 내비치고, 부모는 그런 자신의 변화에 스스로도 당혹감을 느낀다. 그러나 책에 따르면 이는 나이가 들어서도 평온과 활기를 지킬 비결이다. 기억 속 보물들을 끊임없이 끄집어냄으로써 걱정과 불행에 압도당하지 않는 것. 심리치료사 겸 베스트셀러 작가인 저자가 72세에 학문적 연구와 경험을 토대로 썼다. 분석심리학의 토대를 만든 스위스 정신의학자 카를 융(1875∼1961)의 이론에 기초했다. 노화에 따른 변화와 다가올 죽음에 익숙해질 것을 7개 장에 걸쳐 꾸준히 강조한다. 자율성과 통제력이 약해지는 것에 대해서는 “받아들여야 한다”고 단호히 다그치며 수용을 넘어선 긍정의 길까지 제시한다. 저자는 “노년기에는 완벽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다른 사람들의 비판적인 시선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다면 자신을 새롭게 알아 갈 기회가 생긴다”고 말한다. 불친절한 이론서에 그치지 않고 현명하게 나이 들기 위한 각종 실천법도 담아냈다. 책은 노년층이 작은 모임을 만들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감정적으로 접촉할 것을 권한다. 우리가 과거에 느꼈던 기쁨을 다시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지고 다른 사람에게 더 다정해지며, 후회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고 그 자체로 남겨둘 수 있기 때문이다. 주름이 늘고 깜박 잊는 것이 많아진 이들만을 위한 책은 아니다. 보다 안정되고 평온한 일상을 꿈꾸는 청년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다. 크고 작은 난관에 쉴 새 없이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은 나이가 많든 적든 매한가지다. “나이가 들면 여러 측면에서 바닥이 흔들린다. 바닥이 흔들릴 때는 유연해져야 한다” “우리는 도움이 필요하고 도움받을 수 있으며, 누군가 곁에 있는 것에 감사하면 된다”는 말들은 적지 않은 울림을 남긴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