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소비세 0%의 달콤한 유혹, 일본은 정말 괜찮을까?[딥다이브]

  • 동아일보

요즘 글로벌 금융시장이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못지않게 주목하는 정치인이 있습니다. 바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이죠. 높은 지지율(78%)을 믿고 중의원 해산(1월 23일)과 조기 총선(2월 8일)이란 정치적 도박에 나선 다카이치 총리. 그가 선거 승리를 위한 필살기로 ‘소비세 감면’ 카드를 꺼내 들었기 때문입니다.

갑작스러운 정책 변화에 채권시장은 거의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40년 만기 일본 국채 금리가 한때 4%대로 폭등했을 정도였죠. 왜 금융시장은 이렇게까지 화들짝 놀랐을까요. 오늘은 일본 소비세 감면과 나비효과를 들여다봅니다.

일본이 다음 달 조기 총선을 앞둔 가운데, 여야 모두 현재 8%인 식품 소비세를 면제하겠다는 걸 공약으로 내걸었다. 게티이미지
일본이 다음 달 조기 총선을 앞둔 가운데, 여야 모두 현재 8%인 식품 소비세를 면제하겠다는 걸 공약으로 내걸었다. 게티이미지


*이 기사는 1월 23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https://www.donga.com/news/Newsletter

여야 한목소리로 식품 소비세 0%
“식품 소비세율 제로는 ‘나 자신의 비원(悲願, 간절한 염원)’이기도 합니다.”
1월 19일 기자회견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이렇게 말했죠. 현재 8%인 식품 소비세율을 2년간 전액 감면하는 방안을 자민당의 총선 공약으로 삼겠다며 한 발언입니다.

그동안 소비세 감면은 일본 야당의 전매특허 공약이었죠. 이와 달리, 자민당은 ‘소비세는 사회보장 지출의 중요한 재원’이라며 감세만은 안 된다는 입장이었는데요. 이번 조기 총선 선언과 함께 다카이치 총리가 입장을 뒤바꾼 겁니다. 이제 여야 할 것 없이 일본 정치권 모두가 ‘소비세 감면’을 약속하죠.

1월 19일 기자회견에서 조기 총선 실시를 발표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AP 뉴시스
1월 19일 기자회견에서 조기 총선 실시를 발표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AP 뉴시스


이런 입장 변화, 당연히 표 때문입니다. 요즘 일본인의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은 단연 물가인데요. 1990년대 거품 붕괴 이후 30년 동안 잠잠했던 물가가 2022년을 기점으로 무섭게 뛰고 있기 때문이죠. 특히 식료품 가격이 물가 상승을 견인합니다. 통계에 따르면 2025년 한 해 동안 195개 제조사가 2만개 넘는 식음료 품목 가격을 인상했고요. 평균 가격 인상률은 15%에 달했죠. 장 보러 가기 무섭다는 말이 나올 만합니다.

그래서 식음료 제품(채소, 육류, 가공식품, 포장음식)에 8%가 붙는 소비세를 제로로 만들겠다는 다카이치 총리의 공약은 소비자들에게 상당히 위안이 됩니다. 최근 아사히신문과 인터뷰한 노인은 소비세가 감면된다면 그 돈으로 “평소 사지 않는 귤을 살 수 있을 것”이라며 환영했죠. 소소하지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올 거라 기대하는 건데요. 4인 가구는 식료품 소비세가 0이 되면 연간 평균 6만727엔(약 56만원)을 절약할 수 있다는 추산도 나옵니다.

문제는 그만큼 재정엔 구멍이 생긴다는 점이죠. 식료품 소비세를 제로화하면 연간 5조엔(46조원) 세수가 사라집니다. 물론 공약대로 ‘2년간 한시적’ 감세라면 그리 큰일이 아닐 수도 있는데요.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일본의 식품 물가의 상승 추이. 2022년을 기점으로 상승세가 가팔라졌다. 자료: 일본 농수산성
일본의 식품 물가의 상승 추이. 2022년을 기점으로 상승세가 가팔라졌다. 자료: 일본 농수산성


일본에서 소비세 인상은 정치적 ‘오니몬(鬼門, 악령이 들어오는 입구)’으로 불립니다. 1970년대부터 소비세 도입 또는 인상을 시도한 정권은 줄줄이 선거에서 패했어요. 심지어 아베 신조 전 총리마저 두 차례나 연기한 끝에 간신히 2019년 일반소비세를 8%에서 10%로 올릴 수 있었죠. 그런데 이걸 감면했다가 2년 뒤 원상복귀한다? 어떤 간 큰 정치인이 감히 그걸 하겠습니까. 그래서 “일단 시행되면 원래 세율로 되돌리긴 거의 불가능하다”(다이이치생명연구소 구마노 히데오 이코노미스트)라고 모든 전문가가 얘기하는 거죠.

그런데 이 5조엔의 구멍을 메울 다른 세수 확보 방안은 아무것도 내놓지 않은 상황. 오히려 다카이치 총리는 “과도한 긴축재정의 종식”과 “책임 있는 적극 재정”을 약속했습니다. 이건 무슨 뜻일까요. 혹시 빚을 더 내겠다(국채 발행)는 얘기를 돌려 말한 걸까요? 일본 정부부채가 이미 1324조 엔, GDP의 240%인데, 여기서 더?

채권시장엔 빨간불이 켜졌고요. 20일 일본 국채 수익률은 역대급 급등세를 보였습니다. 10년, 2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1999년 이후 27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고요. 40년 만기 국채(2007년 처음 발행)는 사상 처음 4%를 넘어섰습니다. 시장이 일본 국채 가격 폭락에 베팅한 셈이었죠. 채권 시장이 일본의 부채 증가에 대한 경고음을 울린 겁니다.

최근 한 달간 일본 10년 만기 국채 금리 추이. 20일 한때 2.35%로 치솟으며 금융시장을 긴장케 했다. 트레이딩이코노믹스
최근 한 달간 일본 10년 만기 국채 금리 추이. 20일 한때 2.35%로 치솟으며 금융시장을 긴장케 했다. 트레이딩이코노믹스


일본이 그리스 꼴 나지 않는 이유
한국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2025년 1분기 기준 47.2%. 사상 최고로 치솟아서 걱정스럽다는 기사가 많았는데요. 그런데 일본은 이 수치가 무려 240%(2024년 기준)입니다. 이탈리아(134.6%), 미국(119%), 프랑스(109.7%) 같은 빚 많기로 소문난 선진국과 비교해도 차원이 다르죠. 거품 붕괴 이후 펼친 경기 부양책+초고령화로 인한 사회복지 지출 증가가 나은 결과입니다. 현재 일본 정부는 예산의 4분의 1을 빚 갚는 데 쓰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지난해 5월 다카이치 총리의 전임자인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는 이렇게 말했죠. “일본의 재정 상황은 매우 열악하며, 그리스보다도 더 나쁩니다.” 2009년 재정 파탄에 빠졌을 당시 그리스 정부부채 비율이 130%이었으니, 틀린 얘기가 아니죠.
2010년 이후 주요 선진국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 추이를 나타낸 그래프. 자료: 일본 재무성
2010년 이후 주요 선진국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 추이를 나타낸 그래프. 자료: 일본 재무성


그런데 이시바 총리의 이 얘기에 코웃음 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굳이 그리스를 거론한 건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진다거나 하는 심각한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긴 건데요. 적어도 일본은 그럴 위험은 현실적으로 없기 때문입니다. 즉, 빚이 아무리 많아도 일본 정부가 그걸 못 갚는 일은 아마 생기지 않을 거예요.

왜냐고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일본은 국채 대부분을 엔화로 발행합니다. 달러나 유로화가 아니라요. 만약 엔화로 발행한 국채 만기가 돌아와서 상환해야 하는데, 정부가 갚을 돈이 없다? 정부가 일본은행을 동원해 엔화를 찍어내면 됩니다. 생각해 보면 1997년 대한민국이 국가 부도 위기에 빠졌던 건 단기로 달러 빚을 잔뜩 냈는데 외환보유고가 텅 비었기 때문이었잖아요. 그런 일은 일본엔 일어나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 이는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기도 합니다. 2002년 일본 재무성은 국제 신용평가사에 보낸 서한에서 이렇게 밝힌 바 있죠. “일본과 미국 같은 선진국이 자국 통화로 발행한 국채의 디폴트(채무불이행)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본은 디폴트에 빠질 위험도 없는데, 왜 굳이 힘들게 허리띠를 졸라매며 긴축 재정을 해야 하는 거죠?

지난해 12월 도쿄 시장의 쇼핑객 모습. 식료품 가격은 일본 소비자 물가 상승세를 견인하고 있다. 신화통신 뉴시스
지난해 12월 도쿄 시장의 쇼핑객 모습. 식료품 가격은 일본 소비자 물가 상승세를 견인하고 있다. 신화통신 뉴시스


이게 바로 전형적인 소비세 감세론자들의 논리인데요. ‘부담스럽고 싫은 소비세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소비세가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30년’을 심화시켰다. 소비세를 없애면 가처분소득이 늘고, 그만큼 소비가 증가해서 경기가 활성화될 거다’라는 식의 주장입니다.

‘소비세 감세 일본 부활론’이란 책을 쓴 후지이 사토시 교토대 공대 교수 같은 이가 대표적인데요. 의외로 이 논리에 열광하는 일본인이 많습니다. 이들은 ‘재정 파탄을 막기 위해 소비세가 필요하다는 재무성 주장은 거짓말’이라며 소비세 폐지를 주장하죠.

그래도 걱정스러운 시나리오
이론적으로 보면, 일본 정부는 국채 디폴트 위험이 없고요. 아마도 엔화 표시 채권을 영원히 발행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도 일본 국채는 대부분(88%) 국내 투자자가 보유 중이고, 특히 46%는 일본은행이 사들였거든요. 만약 국채를 정 사줄 곳이 없다면, 일본은행이 돈을 찍어내서 국채를 사들이는 방법이 있습니다.

아니 그럼, 부채비율 따윈 아예 잊고 계속 이렇게 세금 감면과 확장 재정에 나서도 되는 걸까요?

그건 당연히 아닙니다. 그런 일(단순히 돈을 찍어내서 국채를 사들이는 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금융시장이 눈치채는 순간, 엔화 가치가 추락할 테니까요. 디폴트는 없겠지만, 대신 통화위기가 발생할 겁니다. 환율이 치솟고, 에너지·식료품 같은 필수품을 포함한 수입 물가가 급등하겠죠. 해외에 투자해 둔 소수의 부자를 제외한 평범한 일본인들이 먹고살기는 한층 팍팍해질 겁니다. 일본이 가난해지는 거죠. 무엇보다 정부와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는 바닥에 떨어질 거고요.

일본 국채는 디폴트 위험이 없다. 하지만 통화가치 하락과 하이퍼 인플레이션 위험까지 없는 건 아니다. 게티이미지
일본 국채는 디폴트 위험이 없다. 하지만 통화가치 하락과 하이퍼 인플레이션 위험까지 없는 건 아니다. 게티이미지


너무 극단적인가요? 다른 시나리오도 있습니다. 만약 빚이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이라면 부채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거죠. 이자를 깎거나, 만기를 연장하거나, 원금을 탕감해 버리는 식으로요.

문제는 일본의 경우 이 부담을 지게 될 채권자 대부분이 일본 국민이란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이 쉬울 수도 있지만(국민이 희생을 감수해 줄 테니까), 동시에 그래서 더 고통스럽습니다. 외국인 투자자가 아니라 일본 국민이 국가를 믿고 모아둔 자산이 잘려 나가게 되니까요.

물론 일본 정부는 이런 최악의 상황에 부닥치기 전에 펼칠 든든한 구명정이 있습니다. 정부가 보유한 막대한 금융자산이 그것이죠. 외화보유액만 1조3698억 달러가 있는 데다, 공적연금 적립금과 공기업 주식도 쌓여있습니다. 그래서 로빈 브룩스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이런 자산을 매각해서 얻은 수익으로 과도한 부채를 상환하는 것”만이 일본이 재정건전성을 회복할 방법이라고 주장하는데요.

하지만 배가 침몰하고 있지 않은 데, 왜 굳이 미리 구명정을 펼치겠어요?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을 겁니다. 발등의 불이 떨어지면 그때야 뒤늦게 움직이겠죠.

다카이치의 감세 공약을 두고 일본경제신문은 사설을 통해 ‘소비세 감세 포퓰리즘에 미래를 맡길 수 없다’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치권은 이미 그 길로 접어들었죠. 전 세계 금융시장은 앞으로 일본을 더 예의주시하게 될 겁니다. By.딥다이브

1977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10% 부가가치세를 도입했던 한국과 달리, 일본은 1989년에야 소비세를 도입했죠. 그것도 처음엔 3%로 시작해 무려 3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인상했는데요. 일본의 소비세 인상 과정은 참 험난했지만, 인하되는 건 한순간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

-다카이치 일본 총리가 조기 총선을 선언하면서 ‘식품 소비세 제로’를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2년간 한시적 감세라고 말하지만, 다시 되돌릴 수 있을 거라고 보는 사람은 없죠. 연간 5조엔의 세수 구멍이 생깁니다.

-이 소식에 일본 국채 가격이 급등하면서 채권시장이 요동쳤습니다. 이미 정부부채 비율이 GDP의 240%나 되는 일본의 재정 규율이 깨지기 시작했다는 걱정 때문이죠.

-일본은 자국 통화로 채권을 발행하기 때문에 적어도 디폴트 위험은 없는 나라입니다. 투자자 대부분이 일본인(또는 기관)이란 점도 안전한 이유로 꼽히죠. 하지만 재정위기 대신 통화위기가 발생해 엔화 가치가 급락하고 인플레이션이 닥칠 위험은 있습니다. 세계 금융시장이 일본을 유심히 지켜보는 이유이죠.

*이 기사는 1월 23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https://www.donga.com/news/Newsletter
#딥다이브#식품 소비세#일본#다카이치 사나에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트렌드뉴스

트렌드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