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건강 관리를 새해 목표로 삼는다. 혈압이나 혈당, 체중처럼 수치로 확인할 수 있는 지표는 자연스럽게 점검 대상이 되지만 기억력과 인지 기능은 여전히 뒷순위로 밀리기 쉽다. 기억력 저하는 단순 ‘노화’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억력 저하로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들의 증상은 단순한 건망증에 그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 들어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자주 잊거나, 같은 말을 반복하고, 약속이나 중요한 일을 놓치는 일이 잦아졌다면 단순히 나이 탓으로만 넘겨서는 안 된다. 치매의 전 단계로 알려진 ‘경도인지장애(Mild Cognitive Impairment, MCI)’의 신호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발생한 사건과 관련해 기억력 저하가 눈에 띄게 진행되었거나, 가족들이 변화를 느낀다면 단순한 노화로만 넘기지 말아야 한다.
경도인지장애, 일반 노인에 비해 치매 전환율 10배 높아
경도인지장애는 인지 기능은 다소 저하되어 있지만 일상생활은 유지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약 28%가 겪는 비교적 흔한 질환이다. 기억력 저하를 동반하기 때문에 자칫 단순한 건망증이나 일반적인 노화로 혼동할 수 있으나, 치매로 진행할 가능성이 높아 주의가 필요하다.
경도인지장애 환자의 연간 치매 전환율은 약 10~15%로, 일반 노인의 연간 치매 전환율 1~2%에 비해 약 10배 가까이 높다. 기억상실형과 비기억상실형으로 구분되며, 이 중 기억상실형은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치매로 진행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인지기능이 감퇴하고 치매로 진행 중이더라도 관련 요인을 개선하고 적절한 치료를 실시하면 인지기능 저하 속도를 늦추거나 일부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경도인지장애로 진단받은 경우에는 치매 진행을 촉진하는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운동 부족, 흡연 및 음주 등의 위험인자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기 발견과 약물 치료를 통한 개입이 치매 예방의 핵심
경도인지장애와 초기 알츠하이머병은 인지기능검사와 함께 뇌 영상 검사, 바이오마커 평가 등을 통해 보다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경도인지장애 단계부터 초기 알츠하이머병을 대상으로 알츠하이머병의 원인 물질을 제거하는 새로운 치료제가등장하면서 치료 환경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해당 약물은 임상 연구에서 질병 진행 속도를 27% 늦추는 효과를 보였으며, 최근 발표된 장기 연구에서는 질병 진행을 최대 8.3년까지 지연시킬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알츠하이머병으로 진행되었더라도 도네페질 등의 아세틸콜린분해효소 억제제를 통해 일상생활과 인지기능을 개선할 수 있다.
약물치료는 일반적으로 빠르게 시작할수록 효과적이며, 경증의 치매를 가능한 오래 유지하고, 일상생활에서 보호자의 지속적인 도움이 필요한 말기치매로의 진행 시점을 늦출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치매는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는 질환이 아니다. 그 출발선에 서 있는 경도인지장애를 조기에 발견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면, 고령화사회에서 치매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새해를 맞아 기억력 건강에 대한 인식을 한 단계 끌어올려야 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새해에는 부모님의 기억력에서 나타나는 작은 변화를 그저 나이 탓으로 넘기지 말고, 사소한 증상이라도 놓치지 말고 전문의와 상담할 것을 권한다. 이것이 부모님의 건강한 노후를 지키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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