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완

이채완 기자

동아일보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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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사건팀 이채완 기자입니다.

chaewani@donga.com

취재분야

2024-06-27~2024-07-27
사회일반64%
사고13%
지방뉴스10%
경제일반7%
검찰-법원판결3%
기업3%
  • [단독]“친구 데려오면 2만8000원”… 교실에 도박 퍼뜨린 슈퍼전파자

    그것은 겨울방학이 끝난 교문으로 들어왔다. 그러곤 학생들 사이에 조용히 퍼졌다. 교실에서 옆 교실로, 또 그 옆 교실로. 그것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학생이 점점 늘었지만, 교사들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팬데믹(대유행) 같았다. 올해 3월부터 서울의 A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 사이에선 은밀한 유행이 돌았다. 쉬는 시간이면 교실 뒤에 삼삼오오 모여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던 것. 이들이 함께 접속한 건 한 온라인 도박 ‘바카라’ 사이트였다. 시작은 단 한 명이었다. 최승현(가명·18) 군은 방학 동안 바카라를 시작했다. “터치 몇 번, 클릭 몇 번이면 돈을 벌 수 있다”는 한 유튜브 영상 때문이었다. 호기심에 시작한 도박은 점점 판돈이 커졌다. 종국에는 2400만 원을 쏟아부었다. 궁지에 몰린 최 군은 만회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마침 이 도박 사이트는 친절하게 팁을 안내하고 있었다. ‘신규 회원을 추천해 가입시키면 온라인 머니 2만8000원을 드립니다!’ 이거다. 개학 날짜만 손꼽아 기다리던 최 군은 새 학기 바빠졌다. 교실마다 돌아다니며 친구들에게 도박 사이트를 추천하기 시작했다. 최 군의 솔깃한 유혹을 친구들은 별다른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최초의 ‘슈퍼 전파자’였다.● 학교 집어삼킨 ‘도박 다단계 유혹’ 이용자가 ‘다단계’처럼 지인들을 꼬드겨 가입시키게 만드는 도박 사이트의 계략은 적중했다. 최 군은 먼저 같은 반 친구 3명을 사이트에 가입시켰다. 그 뒤에는 다른 반 친구 4명도 추가로 가입시켰다. 인당 2만8000원, 7명이니 총 19만6000원의 사이버 머니가 입금됐다. 최 군은 이 돈으로 다시 베팅했다. 최 군이 끌어온 7명의 학생은 다시 다른 학생들을 끌어와 가입시킨 뒤 사이버 머니를 입금받았다. 최 군이 끌어온 신규 회원이 늘어날수록 학교는 점점 ‘도박 왕국’으로 변해 갔고, 학생들의 눈빛도 달라졌다. 이 학교 권준우(가명·18) 군도 그중 한 명이었다. 권 군은 바카라에 손을 댔다가 불과 몇 달 새 560만 원을 잃었다. 그래도 손을 털지 못하고 도박 자금을 마련하려고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학생들은 한 판에 적게는 수십만 원부터 많게는 수백만 원을 썼다. 총 3600만 원을 판돈으로 탕진한 학생도 있었다. “10초면 수십만 원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넘어가 70만 원을 베팅했다가 잃은 저소득층 학생도 있었다. 4월이 지나자 3학년 총 9개 반 중 5개 반 이상의 학생들이 도박에 빠져 있었다.● 수사로 드러난 ‘도박 왕국’ 학교 실태 “쟤들이 왜 맨날 모여 있지?” 의아하게 여기던 3학년 상담교사가 어느 날 현장을 덮쳤다. 학생들이 손에 쥔 스마트폰 화면에는 도박 게임이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건 학교가 감당할 수준을 넘었다. 교사는 경찰에 신고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이 교실에서 단체로 도박을 하고 있어요.” 경찰은 학교전담경찰관(SPO) 6명을 학교에 보냈다.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가 시작됐다. 그 결과 3학년 전체 학생 233명 중 23명이 바카라, 스포츠토토 등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입시가 코앞인 고3 교실마다 도박 중독자가 2, 3명씩 있다는 사실에 학교는 경악했다. 경찰이 적발한 23명에게 도박 중독 평가를 실시한 결과 8명은 중독 ‘고위험군’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는 1000만 원대의 판돈을 쓴 학생도 있었다. 경찰은 부모들에게 자녀의 도박 중독 상담 치료를 권했으나 “그냥 재미 삼아 한 것뿐일 거예요” “내 아이한테 도박 중독이라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시냐” 등의 반응이 돌아왔다. 경찰이 소개해 준 도박 치료 상담센터가 “너무 멀다”며 치료를 거절하는 부모도 있었다. 그 센터는 학교에서 지하철로 불과 54분 거리에 있었다. ● “전 부처 차원의 대책 마련 시급”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도박으로 붙잡힌 10대 청소년은 올해 1∼5월 사이 217명이다. 이미 지난해 전체(184명) 규모를 훌쩍 넘었다. 현 추세대로라면 연말에는 400∼500명 수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가 자료를 분석한 결과 검거된 217명 중 138명(64%)은 비수도권 학생들이었다. 10대는 오프라인 도박장이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도박을 하다 보니 수도권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도박이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검거 인원이 가장 많은 지역은 부산 30명, 서울 22명, 대구 21명 순이었다. 전남 무안군은 소도시인데도 불구하고 19명이 검거됐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검거된 10대 도박 사범 471명 중 92명(19.5%)은 재범 이상이었다. 올해 1∼5월 적발된 194명 중에서는 41명(21.1%)이 재범 이상이었다. 하지만 도박 중독 청소년을 감당할 수 있는 치료, 상담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하다. 총 45개 시군에서 청소년 도박 사범이 검거됐는데, 이 중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산하 상담센터가 있는 곳은 11곳(24%)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일남 명지대 청소년지도학과 교수는 “청소년들은 도박 문제를 스스로 통제하거나 조절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며 “도박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전 부처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과거 일부 학생이 일탈 성격으로 사이버 도박을 했다면, 지금은 상당히 많은 청소년들이 도박을 하는 시대가 됐다는 증거”라며 “체계적인 도박 예방 교육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팀장 이상환 사회부 기자 payback@donga.com▽팀원 이수연 손준영 이채완 서지원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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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사이버머니 1만원권 도박자금 빌린게 시작… 한달뒤 500만원 빚으로

    온라인 도박에 빠져 빚까지 지게 된 10대 중학생, 고등학생 등 청소년들은 빚 독촉과 폭력, 협박을 피해 학교를 옮기고 아르바이트로 내몰리는 등 일상이 무너졌다. 경남의 한 고등학교 2학년 최승민(가명·17) 군은 지난해 6월 친구를 따라 카드 게임형 온라인 도박 ‘바카라’에 우연히 손댔다. 최 군은 실력이 좋지 못해 승률이 절반에도 못 미쳤고 돈을 잃었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 김모 군(17)에게 “벌써 50만 원이나 잃었다”고 토로했다. 김 군은 다른 도박 사이트를 알려주며 “‘내가 돈을 빌려줄 테니 여기서 해봐라. 쉽게 딸 수 있다”고 제안했다. 솔깃한 제안에 최 군은 김 군에게 도박 자금을 빌렸다. 처음 빌린 것은 실제 돈이 아니라 도박 사이트에서 통용되는 사이버 머니 ‘1만 원’권이었다. 일종의 가상화폐 같은 것. 이후 최 군은 계속 돈을 잃었고 그때마다 김 군은 계속 돈을 빌려줬다. 빌리는 돈이 3만 원, 5만 원, 10만 원씩 점차 불어나 한 번에 200만 원까지 빌리기도 했다. 한 달 뒤 도박 빚은 총 500만 원 이상으로 불어 있었다. 갚아야 할 금액이 커지자 최 군은 두려운 마음에 김 군에게 “이젠 돈을 빌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 군은 “그러면 지금까지 빌려간 돈을 내놔라”라며 화를 내고 협박하기 시작했다. 올해 4월에는 김 군이 최 군의 교실로 찾아와 주먹을 휘둘렀다. 현금이 4만 원밖에 없던 최 군은 이를 김 군에게 준 뒤 고깃집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김 군은 심지어 최 군의 부모도 협박했다. 5월에는 김 군이 최 군의 부모에게 “제 돈 받아내기 위해 뭔 짓이든 하겠다. 웃으면서 기다려주는 것도 이번까지다”라는 협박 문자를 보냈다. 최 군의 아버지는 김 군에게 20만 원을 줬다. 계속되는 협박과 독촉에 견디다 못한 최 군은 5월에 경남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전학을 갔지만 ‘도박에 빠졌던 애라더라’는 소문이 나버려 결국 자퇴했다. 최 군은 지난달 6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무섭고 후회된다”며 “최근까지도 김 군의 협박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김 군과 관련해 현재 내사 중이다. 특별취재팀▽팀장 이상환 사회부 기자 payback@donga.com▽팀원 이수연 손준영 이채완 서지원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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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16세 도박 총판’이었다”… 검은 돈의 악마가 된 청소년들

    “나는 ‘16세 도박 총판’이었다”… 검은 돈의 악마가 된 청소년들《10대 청소년들이 온라인 도박에 빠지고 있다. 즐기는 정도를 넘어 도박 조직 ‘총판’으로 일하고 불법 사채까지 손댄다. 동아일보 사건팀은 3개월간 도박 청소년 37명을 취재했다. ‘온라인 도박, 교문을 넘다’ 3부작의 첫 번째는 10대에 ‘도박왕’이 된 김동현(가명·22)과 박성호(가명·19)의 이야기다.》“당신 아들 도박 빚, 학교에 알려줄까?” 동현(2019년 당시 17세)은 수화기 너머 40대 여성에게 쏘아붙였다. 오늘은 꼭 받아내야겠다. “아드님이 도박한다면서 나한테 돈을 빌렸다고요. 우리 학생부장이 알면 안 좋아할 텐데. 어머니가 갚으셔야죠.” 동현은 안다. 아주머니는 떨고 있다. 당신의 고등학생 자녀가 도박 빚이 있고 갚아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부모들은 사색이 됐다. 판검사들도 똑같았다. 동현도 같은 10대였고 부모의 자식 사랑을 잘 알았다. 달랐던 것은 동현은 이미 ‘도박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다는 사실이다. 전화를 받은 여성의 아들은 동현의 같은 반 친구였다. 친구는 동현이 권한 온라인 도박 ‘바카라’에 빠져 500만 원을 빌렸고 이자가 붙어 3000만 원으로 불어 있었다. 도박 자금이 필요한 아이들은 동현을 찾아왔다. “이자는 하루 10%, 이틀 20%, 사흘 30%.” 살인적인 이자율에도 세상 물정 모르는 고등학생들은 망설임 없이 돈을 빌렸다. 도박 빚을 안 갚으면 동현은 그들의 부모에게 전화했다. 이날 통화가 끝난 뒤 동현의 휴대전화에는 ‘3000만 원이 입금됐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사이 카카오톡 메시지 수십 개가 쌓여 있었다. “나 10만 원만 빌려줘.” “다음 주에 갚을게.” 중3이 될 때까지만 해도 동현은 평범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불과 2년 뒤 그는 대구 일대 중학교, 고등학교를 도박으로 주름잡고 있었다. “당신 아들 도박빚, 학교에 알릴까” 친구 엄마에게도 전화했다‘16세 도박 총판’ 김동현 씨1만원 무료 사이버머니가 늪의 시작학교 친구들 온라인 도박 가입 유혹‘하루 10%’ 고리로 도박자금 빌려줘동현이 도박에 발을 들인 건 2017년 중3(당시 15세) 때였다. 하루 종일 접속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에는 “돈 벌 수 있다”는 도박 광고 콘텐츠가 넘쳤다. 몇몇 친구는 “바카라로 10만 원 땄다”고 자랑했다. “나도 만 원만 넣어볼까.”그게 시작이었다. 친구가 알려준 온라인 도박 ‘바카라’ 사이트에 가입했다. 신규 회원이라며 무료로 ‘1만 원’ 사이버 머니가 지급됐다. 동현의 실력이 제법 좋았는지 며칠 새 사이버 머니 지갑에는 200만 원이 쌓였다. 돈의 맛은 황홀했다. 그날부터 쉬는 시간 종이 울리면 동현은 구석에서 친구들과 휴대전화를 쥐고 도박을 했다. 판돈은 수백만 원으로 커졌지만 그래도 이때까지는 ‘베터(bettor·도박 고객)’에 불과했다.● 도박 고객에서 홍보 총판으로2018년(당시 16세). 동현이 고1에 올라가자 ‘잘나가는 형들’이 다가왔다. “꼬맹아.” 이미 온라인 도박에 깊게 손댔던 형들은 동현에게 사이트 홍보를 담당하는 ‘총판’ 자리를 제안했다. “수입이 꽤 쏠쏠할 거야.” 그들은 젊은 나이에 BMW를 몰았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는 건가. 망설임 없이 ‘총판’ 직함을 달았다.동현이 처음 잠재적 고객으로 겨눈 건 같은 학교 친구들이었다. “한 판이 10초면 돼.”, “너도 돈 벌 수 있어.” 동현의 유혹에 친구들이 사이트에 가입해 돈을 쓰면 동현은 판돈의 1%를 수수료로 챙겼다. 친구들은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까지 탕진했다. 그사이 동현의 돈벌이는 점점 늘었다. 다른 학교 총판을 관리하는 ‘총판들의 총책’이 됐다. 아래 총판들이 신규 회원을 물어오면 동현은 한 사람당 100만 원을 인센티브로 챙겨줬다.● 불법 사채를 시작하다동현은 고1 가을쯤 새 사업에 눈을 떴다. 친구들에게 도박 자금을 빌려주고 고리(高利)의 이자를 받았다. 불법 사채. 그전까지 벌어온 돈이 ‘종잣돈’이 됐다. ‘하루 이자 10%’라는 말도 안 되는 이자율에도 고등학생들은 해맑게 돈을 빌려갔다. 영악한 동현은 그때마다 친구들 얼굴 사진, 학생증 사본, 부모들 연락처를 받아뒀다. 돈을 갚지 않으면 ‘도박 빚 안 갚은 놈’이라고 낙인찍어 얼굴 사진을 온라인 여기저기 뿌렸다. 부모에게 전화해 빚 독촉도 했다. 그래도 못 갚을 땐 수족으로 부렸다. 추심팀. 즉, 다른 학생들의 빚을 받아오라고 시켰다. 일을 잘해오면 받은 돈에서 얼마를 떼어줬고 그럴수록 추심팀원들은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빚을 받아왔다.“돌이켜보면 그때쯤부터 죄의식이란 게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내 손으로 험한 일 안 해도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으니.” 동현이 뿌린 도박의 씨앗은 착실히 학교에 뿌리내렸다.● 갑자기 온 몰락… 남은 건 빚 1억몰락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찾아왔다. 2019년 고2에 올라갈 무렵 동현은 대구의 한 상가에 홀덤펍으로 위장한 불법 도박장을 차렸다. 동현보다 나이가 많은 20대 대학생 누나들을 면접 봐 딜러로 고용했다. ‘어른의 세계’에 진출한 듯했다. 하지만 어느 날 동네 건달 무리가 찾아왔다. “너 누구 허락 받고 장사하냐.” 그들은 다 때려 부쉈다. 6개월 만에 도박장 사업은 실패로 돌아갔고 번 돈은 모두 잃었다. 만회하려고 손을 댄 도박으로 1억 원이 넘는 빚까지 졌다.동현과 함께 도박을 하던 무리 중 한 명은 작년에 경찰에 붙잡혀 구속됐다. 현재 스물두 살 동현은 도박 중독 치료를 받으며 지낸다. 요즘도 여전히 그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좋은 건이 있는데, 같이 해볼래?”도박 사이트 만들어 파는 박성호 씨중 3때 도박 총판 月 2000만원 벌어아버지에 들킨 뒤 도박사이트 제작과거로 돌아가도 또 도박할 것 같아눈을 뜨니 숙취 탓에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요즘 성호(가명·19)의 일상은 매일 잠, 일, 친구, 술, 잠의 반복이다. 주섬주섬 차키를 챙겨 집을 나섰다. 잠시 학교 앞을 지날 때 운동장에 친구들 모습이 보였다. 체육 시간인가 보네. ● “너도 해볼래?” 3년 전인 2021년. 평범한 중3 학생이었던 성호(당시 16세)에게 “너도 해볼래?” 물으며 다가온 것은 동네 고등학생 형들이었다. “뭔데요?” “그냥 게임. 돈 버는 게임.” 성호가 온라인 도박에 흥미를 보이자 형들은 얼마 뒤 다른 제안을 했다. “적당히 기프티콘 뿌리면서 회원들 관리만 해. 돈이 쏟아질 거야.” 온라인 도박 사이트에서 ‘회원 관리’를 해보겠냐는 권유였다. 해보지 뭐. 딱히 다른 일도 없는데. 성호는 도박 사이트 ‘총판’이 됐다. 신규 회원을 끌어와 가입시키고 유지, 관리하는 게 일이었다. 끌어온 친구들이 도박을 하는 걸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돈을 잃어 도박을 그만두려는 친구들에게는 “한 번만 더 해봐” 기프티콘을 뿌리며 판을 못 떠나게 붙잡았다. 성호가 친구들을 회원으로 끌어올 때마다 형들은 인센티브를 줬다. 말 그대로 다단계였다. ● 늪에 빠져든 친구들 성호가 학교를 돌며 “너도 해봐”, “내가 챙겨줄게” 하며 친구들을 끌어모을 때마다 학생들은 조금씩 변해갔다. 온라인 도박에 빠지는 이들이 늘어갔다. 학교를 마치면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에게도 찾아갔다. 그러는 동안 성호의 은행 계좌에 어느 날에는 600만 원, 어느 날에는 4800만 원씩 거금이 입금됐다. 성호는 회상한다. “그때 매달 평균치로 치면 한 2000만 원씩 벌었던 것 같아요. 총 2억에서 3억 원 정도 되려나. 중학생이 만진 돈이라는 게 상상이 되세요?” 당시 성호의 주변에는 총판 일을 하는 친구들이 열댓 명 있었다. 이들은 도박 사이트로 번 돈을 ‘저금할 수 없는 돈’이라고 불렀다. 은행 계좌에 넣어두면 의심을 받기 때문이다. 이를 잘 몰랐던 성호는 번 돈을 계좌에 넣어놨다가 2021년 12월 보이스피싱 의심 계좌로 신고, 정지됐다. 6000만 원이 들어 있었다. 은행에 직접 가야 묶인 계좌를 풀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의심을 사고 결국에는 경찰로 가게 될 텐데. 6000만 원 그냥 잊자. 성호는 그 대신 페이스북, 텔레그램 등에 ‘대포통장을 구한다’는 광고를 올려 300만 원씩 주고 통장을 사들였다. 그렇게 불린 통장만 수십 개. 통장에 돈이 들어오면 명품 매장에 뛰어갔다. 시계도 사고 옷, 모자, 신발……. 교복 차림의 친구들과는 다른 계급이 된 것만 같았다.● 도박을 못 하면 도박 사이트를 만들자 꼬리가 길면 밟힌다. 성호가 고2이던 지난해 아버지가 알았다. 휴대전화 단도리를 잘했어야 했는데. 가족들과 식당에서 밥을 먹던 중 성호의 휴대전화에 ‘650만 원이 입금됐다’는 문자가 날아들었고 아버지가 이를 봤다. 장난기 많던 아버지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딱 한마디 말했다. “그 일, 그만둬라.” 화수분처럼 벌던 돈이 끊기자 성호는 금단 현상을 겪듯 안절부절못했다. 돈을 벌 다른 방도를 찾아야 했다. 올해 고3에 올라간 성호는 온라인 도박 사이트를 만들어서 파는 새 일을 시작했다. 건당 1만 원 정도 들이면 만들고, 파는 건 5만 원씩. 제법 잘돼서 벌이가 쏠쏠하다. “이 정도면 잘 살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아무 문제가 없잖아. 내가 뭐 징역을 간 것도 아니고. 난 다시 과거로 돌아가도 아마 도박을 할 것 같아요.” 성호는 올해 5월 학교를 자퇴했다.특별취재팀▽팀장: 이상환 사회부 기자▽팀원: 이수연 손준영 이채완 서지원 사회부 기자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손준영 기자 hand@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 2024-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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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폭 피해 10명중 4명 “자해 충동 등 경험”

    지난해 한 초등학교 6학년생이 동급생으로부터 오랜 시간 괴롭힘을 당하다 끝내 세상을 등졌다. 유가족은 학교폭력 피해를 주장했지만 학교 측은 “사실관계 확인이 어렵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유가족은 “누구 하나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우리 아이의 죽음을 학교폭력이 아닌 가정 문제로 몰아간다”고 호소했다. 학교폭력 피해자 10명 중 4명이 자살이나 자해 충동을 경험했다는 조사가 나왔다. 가해 학생 측 학부모에게 이른바 ‘쌍방 신고’를 당했다고 답한 비율도 40%를 넘었다. 전담지원센터를 늘리는 등 피해 학생과 가족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학교폭력 예방 전문기관인 푸른나무재단은 이런 내용이 담긴 전국 학교폭력·사이버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재단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전국 초중고교생 859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3.5%가 학교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응답했다. 특히 학교폭력 피해 학생의 39.9%는 ‘자살·자해’ 충동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자살·자해 충동 응답 비율은 2021년 26.8%, 지난해 38.8% 등 매년 늘고 있다. 재단 관계자는 “개입이 시급하다고 판단하고 출동했던 사례 25건 중 자살·자해 사건이 19건으로 76%에 달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학교폭력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실제 피해 학생의 절반 이상(52.2%)은 ‘피해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응답했는데, 전년(34.5%)보다 17.7%포인트 상승했다. 재단 관계자는 “학교폭력 피해가 해결되지 않고 쌓이면서 학생들을 내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해자가 ‘맞불 신고’를 하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었다. 피해 학생 보호자 38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40.6%는 “가해 학생 측으로부터 쌍방 신고를 당했다”고 답했다. 김미정 재단 상담본부장은 “최근 학교폭력 현장은 갈등 및 법적 분쟁의 온상이 되어 해결이 어려워지고 있다”며 “피해 학생을 위한 통합지원 보호 기관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한편 피해 가정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 2024-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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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카오 김범수, SM 시세조종 의혹 영장심사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 주가를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현 경영쇄신위원장)가 22일 사전 구속영장 실질심사에 출석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김 위원장은 굳게 입을 닫고 법정으로 향했다. 서울남부지법 한정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2시부터 6시경까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 위원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열고 구속 필요성을 심리했다. 오후 1시 44분경 법원에 모습을 드러낸 김 위원장은 “시세조종 혐의 인정하나”, “어떻게 소명할 예정인가” 등 취재진의 질문에 일절 답하지 않고 법정으로 들어섰다. 영장심사에는 수사를 맡은 장대규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 부장검사(사법연수원 37기)가 파워포인트(PPT) 200여 쪽 분량의 자료를 준비해 김 위원장의 혐의를 조목조목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에 앞서 1000쪽에 달하는 의견서도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은 심사를 마치고 오후 6시 1분경 호송차량을 타고 구속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대기를 위해 서울 구로구 남부구치소로 이동했다. 그는 법원에서 나와 차량에 타는 과정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일절 답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2월 카카오가 에스엠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경쟁사인 하이브의 공개 매수를 방해하려는 목적으로 에스엠 주식을 대량 매입하는 것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에스엠 주가를 하이브의 공개 매수가인 12만 원보다 더 높게 올리려 했고, 이 과정에서 김 위원장이 사전에 계획을 보고받고 승인도 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반면 김 위원장 측은 주식을 매입하는 것만 알았을 뿐 구체적인 방식까지는 몰랐다는 입장이다. 앞서 18일 김 위원장은 카카오 임시그룹협의회에 참석해 임원들에게 “현재 받는 혐의는 사실이 아니다. 어떤 불법 행위도 지시하거나 용인한 적이 없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최원영 기자 o0@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 2024-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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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M 시세조종 혐의’ 카카오 김범수 구속…“증거인멸·도주 우려”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 시세 조종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아온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현 경영쇄신위원장·사진)가 23일 구속됐다. 검찰과 금융당국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수사에 착수한 지 1년 5개월 만이다. 카카오가 2006년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는 관측이 나온다.이날 서울남부지법 한정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 위원장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연 뒤 영장을 발부했다. 법원은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고, 도망할 염려가 있다“라며 영장 발부 이유를 밝혔다.김 위원장은 지난해 2월 하이브와 에스엠 경영권 인수 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경쟁자인 하이브를 방해하려 에스엠 주식을 단기간에 대량 매입할 것을 보고받거나 지시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하이브가 에스엠 주가가 급등한 이유를 조사해 달라며 금융감독원에 요청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금감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특사경)은 지난해 11월 김 위원장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김 위원장이 구속되며 지난해 11월부터 8개월간 이어져 온 검찰 수사도 곧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창업주가 구속된 카카오의 경영은 향후 ‘시계 제로’ 상태에 놓였다는 관측이 나온다.● 檢 PPT 200여 장-의견서 1000쪽 준비전날(22일) 오후 1시 44분경 서울남부지법에 도착한 김 위원장은 ‘시세 조종 혐의를 인정하나’, ‘어떻게 소명할 예정인가’ 등 언론의 질문에 일절 답변하지 않고 굳은 표정으로 10여 초 만에 법정으로 들어갔다.오후 6시까지 약 4시간 10여 분간 이어진 영장심사에서 장대규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 부장검사(사법연수원 37기)는 파워포인트(PPT) 자료 200여 장을 준비해 김 위원장의 혐의를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그에 앞서 1000쪽 분량의 의견서도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김 위원장은 오후 6시경 영장심사를 마치고 서울 구로구 서울남부구치소로 이동해 자정을 넘긴 시간까지 대기했다. 법원은 심사 시작 약 11시간 만인 23일 오전 1시 10분경 영장을 발부했고, 구치소에서 대기 중이던 김 위원장은 곧바로 구속됐다.법조계에선 지난해 2월 시작된 카카오 주가 조작 관련 수사가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2월 카카오가 에스엠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경쟁사인 하이브의 공개 매수를 방해하려는 목적으로 에스엠 주식을 단기간에 대량 매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김 위원장이 주식 대량 매입 계획을 미리 보고받고 승인도 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 카카오, 창사 이래 최대 위기김 위원장의 구속으로 카카오는 2006년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게 됐다. 국내 대표적인 정보기술(IT) 플랫폼인 이른바 ‘네카라쿠배(네이버, 카카오, 라인플러스, 쿠팡, 배달의민족)’ 중 창업주가 구속된 것은 카카오가 처음이다.카카오는 충격에 휩싸인 분위기다. 김 위원장 본인이 혐의를 적극 부인해 왔고 최근에는 임원들을 모아 본인의 결백을 주장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카카오 관계자는 “대기업 창업주인 만큼 도주의 우려가 없는데도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카카오와 공모해 에스엠 주식의 시세를 조종했다는 혐의를 받는 사모펀드 운용사 원아시아파트너스 대표가 22일 보석으로 풀려난 것과도 모순된다”고 주장했다.카카오는 김 위원장의 결정이 필요한 신사업 투자 및 경영 쇄신 등의 작업도 차질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회사 안팎에선 지난해 12월부터 고강도 쇄신을 주도해온 김 위원장의 부재 탓에 계열사별 개선안 마련과 자회사 매각 작업도 멈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M&A), 신사업 발굴, 지배구조 개편 등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도 차질이 예상된다. 현재 카카오는 카카오VX , 카카오게임즈, 카카오페이, 에스엠엔터 등 자회사 매각 여부를 검토 중이다.인공지능(AI) 신사업 분야에서도 차질이 예상된다. 지난해 상반기(1~6월) 선보일 예정이던 카카오의 한국어 특화 대규모언어모델 코GPT는 1년 넘게 공개가 미뤄지고 있다. 네이버가 지난해 초거대 AI ‘하이퍼클로바X’를 검색 등에 도입하며 속도를 내는 것과 대조적이다.향후 김 위원장이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거나, 양벌규정에 따라 카카오 법인에 벌금형이 내려지면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에 따라 카카오뱅크 1대 주주 지위를 내려놔야 할 수도 있다. 한 카카오 임원은 “카카오의 혁신이 위축될까 우려스럽다”며 “사법 리스크에 발이 묶여 조직 문화가 보수적으로 변하면 제2의 카카오톡은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최원영 기자 o0@donga.com장은지 기자 jej@donga.com}

    • 2024-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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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카오 김범수 구속영장… ‘SM엔터 시세조종’ 의혹

    검찰이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 시세 조종’ 의혹을 받는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58·경영쇄신위원장·사진)에 대해 신병 확보에 나섰다. 에스엠 인수 경쟁자였던 하이브가 금융감독원에 에스엠 주가가 갑자기 급등한 이유를 조사해 달라고 진정을 낸 지 1년 5개월 만이다. 카카오가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부장검사 장대규)는 17일 김 위원장에 대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위원장을 불러 조사한 지 8일 만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2월 에스엠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경쟁사인 하이브의 공개 매수를 방해하려는 목적으로, 에스엠 주가를 하이브의 공개 매수가인 12만 원 위로 올리기 위해 주식을 단기간 대량 매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인수전에서 결국 하이브가 물러섰고 카카오가 에스엠을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앞서 검찰은 9일 김 위원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20시간 넘는 고강도 조사를 벌이며 김 위원장이 인위적으로 에스엠 주가를 높일 것을 지시하거나 승인했는지를 집중 추궁했다. 김 위원장 측 변호인단은 이날 입장문에서 “어떠한 불법적 행위도 지시, 용인한 바가 없다”며 “구속영장 청구는 심히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향후 영장 심문 과정에서 이를 성실히 소명하겠다”라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의 구속 여부를 결정할 구속 영장 실질심사는 22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릴 예정이다. 檢 “김범수, SM 시세조종 승인” 金측 “불법적 지시 안해”카카오 김범수 구속영장 청구檢 “하이브 인수 막으려 주가 올려”金측 “정상적 수요따른 장내 매수”檢, 다른 계열사도 횡령의혹 등 수사법조계에선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 시세 조종’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17일 김범수 카카오 창업주(58·경영쇄신위원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에 대해 “혐의가 인정될 경우 시장질서 교란으로 인한 중대범죄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경쟁사인 하이브의 인수를 방해할 목적으로 2000억 원이 넘는 대규모 자금을 동원해 실제 인수를 저지했다는 혐의의 중대성을 감안해 전격적으로 영장이 청구됐다는 것이다. 카카오는 영장 청구 소식이 알려진 직후 긴급 임원회의를 여는 등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검찰 “김 위원장이 시세조종 승인” 17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부장검사 장대규)는 김 위원장이 에스엠 인수와 관련해 인위적으로 주가를 높이는 방식(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의 보고를 받고 승인을 했다고 판단하고 영장을 청구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해 2월 카카오와 하이브가 에스엠 인수전을 벌이면서 시작됐다. 당시 에스엠 창업주이자 전 총괄프로듀서였던 이수만 씨가 이사진과의 분쟁에서 밀려 경영 일선에서 떠나게 되자, 이 씨의 지분을 인수하려고 두 회사가 경쟁했다. 당시 하이브는 이 씨와, 카카오는 에스엠 이사진과 손을 잡았다. 하이브는 에스엠 주가가 계속 올라 공개 매수 희망 가격마저 넘어서자 인수를 포기했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주가 급등 현상을 조사해 달라’고 금융감독원에 진정서를 냈고, 금감원은 기소 의견으로 지난해 11월 김 위원장을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이미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배재현 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의 공판에서 김 위원장 등 카카오 고위 임원이 참여한 카카오그룹 투자심의위원회(투심위)가 시세 조종을 승인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카카오가 지난해 2월 16, 17일과 27, 28일 등 총 4일간 2400억 원을 투입해 총 553회에 걸쳐 에스엠 주식을 하이브의 공개 매수 가격인 12만 원보다 높은 가격에 사들여 주가를 올렸다는 것이다. 다만 김 위원장에 대한 영장 청구서엔 배 전 대표 등에게 적용된 사모펀드 원아시아파트너스와의 공모 혐의는 빠져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 측은 입장문을 통해 “지난해 SM 지분 매수에 있어 어떠한 불법적 행위도 지시, 용인한 바 없다. 사업 협력을 위한 지분 확보의 목적으로 진행된 정상적 수요에 기반한 장내매수”라고 반박했다. 또 김 위원장이 에스엠 인수와 관련된 보고를 받고, 승인을 한 것은 맞지만 구체적인 인수 방법에 대해선 보고받지 못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남부지법 한정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2일 오후 김 위원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열 예정이다.● 카카오 다른 계열사들도 수사 중 카카오 앞에 산적한 사법 리크스는 더 있다. 현재 카카오는 바람픽처스 인수 관련 시세조종 의혹, 카카오T 블루 콜 몰아주기 의혹, 가상화폐 횡령·배임 의혹 등에 대해서도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수사가 본격화될 경우 카카오는 회사 여력의 상당 부분을 한동안 재판 대응에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이다. 에스엠 시세 조종 사건으로 향후 김 위원장이 유죄 판결을 받거나, 양벌규정에 따라 카카오 법인에 벌금형이 내려지면 카카오뱅크 1대 주주 지위를 내려놔야 할 수도 있다.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은 산업자본이 인터넷은행 지분을 10% 넘게 보유하려면 ‘최근 5년간 조세범 처벌법·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공정거래법 등 위반으로 벌금형 이상의 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재 카카오는 카카오뱅크의 지분 27.17%를 보유하는 대주주다. 카카오 내부에서는 김 위원장이 구속되면 계열사 매각이나 인수합병, 쇄신 작업 등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사법리스크 여파로 지난해 12월 카카오페이의 미국 종합증권사 시버트 경영권 인수가 무산됐으며, 카카오모빌리티의 유럽 최대 택시 호출 플랫폼 ‘프리나우(FreeNow)’ 인수도 사실상 물 건너간 상태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장은지 기자 jej@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 2024-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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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사태 취약지역’ 2만9000곳→11만곳으로 확대

    정부가 산사태 관리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산사태 취약지역’을 대폭 늘린다. 17일 산림청은 현재 약 2만9000곳인 산사태 취약지역을 2027년까지 11만 곳으로 늘린다고 밝혔다. 산사태 취약지역이란 산사태 등으로 인명 및 재산 피해가 우려되는 곳을 미리 지정해 정부가 예방 조치를 하는 곳을 말한다. 2011년 서울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 이후 처음으로 도입돼 2019년 2만6238곳, 2021년 2만6923곳, 2023년 2만8988곳 등으로 매년 늘어나고 있다. 산사태 피해의 대부분은 산사태 취약지역 밖에서 일어났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이달 폭우 및 산사태로 사망 사고가 발생한 충남 금산군 진산면 지방리 일대도 3년 전 산림청 조사에서는 산사태 위험이 없다고 판단돼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았다(동아일보 17일자 A1, 12면 참조). 2018년부터 5년간 발생한 산사태 총 피해 건수 9668건 중 93%가 취약지역 밖에서 일어났다. 이에 산림청은 산사태 취약지역을 3년 안에 3배 이상 늘리기로 결정했다. 산림청 관계자는 “앞으로 산사태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산사태 취약지역에 대한 지정·관리와 산사태 예방사업을 더욱 강화해 국민 피해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 2024-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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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檢, 김범수 조사 8일만에 구속영장… “SM 시세 조종 승인”

    법조계에선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 시세 조종’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17일 김범수 카카오 창업주(58·경영쇄신위원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에 대해 “혐의가 인정될 경우 시장질서 교란으로 인한 중대범죄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경쟁사인 하이브의 인수를 방해할 목적으로 2000억 원이 넘는 대규모 자금을 동원해 실제 인수를 저지했다는 혐의의 중대성을 감안해 전격적으로 영장이 청구됐다는 것이다. 카카오는 영장 청구 소식이 알려진 직후 긴급 임원회의를 여는 등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검찰 “김 위원장이 시세조종 승인”17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부장검사 장대규)는 김 위원장이 에스엠 인수와 관련해 인위적으로 주가를 높이는 방식(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의 보고를 받고 승인을 했다고 판단하고 영장을 청구했다.이번 사건은 지난해 2월 카카오와 하이브가 에스엠 인수전을 벌이면서 시작됐다. 당시 에스엠 창업주이자 전 총괄프로듀서였던 이수만 씨가 이사진과의 분쟁에서 밀려 경영 일선을 떠나게 되자, 이 씨의 지분을 인수하려고 두 회사가 경쟁했다. 당시 하이브는 이 씨와, 카카오는 에스엠 이사진과 손을 잡았다.하이브는 에스엠 주가가 계속 올라 공개 매수 희망 가격마저 넘어서자 인수를 포기했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주가 급등 현상을 조사해달라’고 금융감독원에 진정서를 냈고, 금감원은 기소 의견으로 지난해 11월 김 위원장을 검찰에 송치했다.검찰은 이미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배재현 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의 공판에서 김 위원장 등 카카오 고위 임원이 참여한 카카오그룹 투자심의위원회(투심위)가 시세 조종을 승인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카카오가 지난해 2월 16, 17일과 27, 28일 등 총 4일간 2400억 원을 투입해 총 553회에 걸쳐 에스엠 주식을 하이브의 공개 매수 가격인 12만 원보다 높은 가격에 사들여 주가를 올렸다는 것이다. 다만 김 위원장에 대한 영장 청구서엔 배 전 대표 등에게 적용된 사모펀드 원아시아파트너스와의 공모 혐의는 빠져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 측은 입장문을 통해 “지난해 SM 지분 매수에 있어 어떠한 불법적 행위도 지시, 용인한 바 없다. 사업 협력을 위한 지분 확보의 목적으로 진행된 정상적 수요에 기반한 장내매수”라고 반박했다. 또 김 위원장이 에스엠 인수와 관련된 보고를 받고, 승인을 한 것은 맞지만 구체적인 인수 방법에 대해선 보고받지 못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남부지법 한정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2일 오후 김 위원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열 예정이다.● 카카오 다른 계열사들도 수사 중카카오 앞에 산적한 사법 리크스는 더 있다. 현재 카카오는 바람픽처스 인수 관련 시세조종 의혹, 카카오T 블루 콜 몰아주기 의혹, 가상화폐 횡령·배임 의혹 등에 대해서도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수사가 본격화될 경우 카카오는 회사 여력의 상당 부분을 한동안 재판 대응에 쏟아 부어야 하는 상황이다.에스엠 시세 조종 사건으로 향후 김 위원장이 유죄 판결을 받거나, 양벌규정에 따라 카카오 법인에 벌금형이 내려지면 카카오뱅크 1대 주주 지위를 내려놔야 할 수도 있다.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은 산업자본이 인터넷은행 지분을 10% 넘게 보유하려면 ‘최근 5년간 조세범 처벌법·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공정거래법 등 위반으로 벌금형 이상의 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재 카카오는 카카오뱅크의 지분 27.17%를 보유하는 대주주다.카카오 내부에서는 김 위원장이 구속되면 계열사 매각이나 인수합병, 쇄신 작업 등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일부 사업이나 프로젝트는 원점 재검토되거나 연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사법리스크 여파로 지난해 12월 카카오페이의 미국 종합증권사 시버트 경영권 인수가 무산됐으며, 카카오모빌리티의 유럽 최대 택시 호출 플랫폼 ‘프리나우(FreeNow)’ 인수도 사실상 물 건너간 상태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장은지 기자 jej@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 202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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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림청, 산사태 취약지역 2027년까지 11만 개소로 늘린다

    정부가 산사태 관리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산사태 취약지역’을 대폭 늘린다. 산림청은 현재 약 2만9000개인 산사태 취약지역을 2027년까지 11만 개로 늘린다고 17일 밝혔다. 산사태 취약지역이란 산사태 등으로 인명 및 재산 피해가 우려되는 곳을 미리 지정해 정부가 예방 조치를 하는 곳을 말한다.산림청은 산사태 취약지정을 지정·고시하고 현장 점검이나 보수 공사 등 예방 조치를 벌이고 있다. 2011년 서울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 이후 처음으로 도입돼 2019년 2만6238개소, 2021년 2만6923개소, 2023년 2만8988개소 등 매년 늘어나고 있다. 다만 산사태 피해의 대다수가 산사태 취약지역 밖에서 일어났다는 지적이 제기됐다.이달 폭우 및 산사태로 사망 사고가 발생한 충남 금산군 진산면 지방리 일대도 3년 전 산림청 조사에서는 산사태 위험이 없다고 판단돼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았다.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발생한 산사태 총 피해건수 9668건 중 93%가 산사태 취약지역이 아닌 곳에서 일어났다. 이에 산림청은 산사태 취약지역을 3년 안에 3배 이상 늘리기로 결정했다. 산림청 관계자는 “앞으로 산사태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산사태 취약지역에 대한 지정·관리와 산사태 예방사업을 더욱 강화하고 현지점검을 철저히 해 국민 피해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 202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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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산사태 사망 지방리, 3년전 산림청 점검땐 ‘위험지역 아니다’ 평가

    10일 폭우로 1명이 숨진 충남 금산군 진산면 지방리 주민들은 여전히 사고 당시의 참상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지방리 이장 송미숙 씨는 “비만 내리면 또 사고가 날까 너무 두렵다”고 16일 기자에게 말했다. 당시 폭우로 무너진 산이 주택을 덮쳐 60대 여성이 매몰돼 숨졌다. 송 씨는 “사고 지점은 원래도 비가 내리면 주민들이 산사태를 걱정하던 곳”이라며 “최근에는 외부인들이 투자 목적으로 난개발까지 일삼고 있어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평소 산사태를 걱정해왔고 결국 우려대로 사망 사고까지 벌어졌지만, 동아일보 취재 결과 이 지역은 정부가 지정, 관리하는 ‘산사태 취약지역’에서 제외돼 있었다. 산사태 취약지역이란, 산사태 등으로 인명 및 재산 피해가 우려되는 곳을 별도로 지정해 현장 점검이나 보수 공사 등 예방 조치를 하는 것이다. 산림청은 3년 전 지방리 일대를 점검했을 때 ‘동네 야산’ 정도로 간주하고 “산사태 위험 대상이 아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산림청 관계자는 본보에 “사고가 발생한 곳은 200m 높이의 동네 야산 수준이라 강원이나 경북처럼 산사태 위험이 있다고 보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산림청에 따르면 매년 벌어지는 산사태 인명 피해의 대부분은 정부가 지정한 산사태 취약지역이 아닌 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산사태 전문가인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지금의 산사태 취약지역은 산 상부에 초점을 둬 만들었지만 실제로 산사태 피해는 인위적 개발이 벌어졌던 산 하부에 집중됐다”며 “도로, 건물, 태양광발전단지 등 공사가 있었던 산 주변 지역까지 감안해 위험 등급을 재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사태 93%가 취약지역 밖… “위험지도 새로 그려야”5년간 산사태 9668건 중 8977건산림청 “국토 63% 산림, 관리 한계”“난개발 조사 등 대책 시급” 목소리충남 금산군 진산면 지방리 주민들이 전한 10일 산사태 당시 현장은 참혹했다. 쏟아진 폭우가 산에 스며들어 지반이 약해졌고 결국 산이 무너졌다. 밀려온 토사는 사람이 사는 주택을 덮쳤다. 길이 3m가량 될 법한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 뒹굴었다. 한 주민은 “지방리 일대 산림이 마구잡이로 개발돼 여기저기 산을 깎는 공사가 벌어지고 있다. 산사태 걱정에 불안한 여름을 보내는 중”이라고 16일 동아일보 취재팀에 말했다. 최근 5년간 벌어진 산사태 피해의 93%는 ‘산사태 취약지역’이 아닌 곳에서 발생했다. 정부의 산사태 관리 정책이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더 이상의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해 제도와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산사태 93%, 취약지역 밖에서 발생 산림청은 산사태로 인해 인명 및 재산 피해가 우려되는 지역을 산림보호법에 따라 ‘산사태 취약 지역’으로 지정·고시한다. 지정 절차를 보면 우선 해당 지역에 대한 기초 조사를 하고, 관할 지방청 및 지방자치단체가 현장 실태조사를 거친다. 산사태 위험등급, 지형, 사람이 사는 인가 규모, 공공시설, 낙석 및 붕괴 여부, 지반, 심어진 나무 종류, 토양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이 제도는 2011년 16명이 숨지고 50명이 다친 서울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 참사 이후 마련됐다. 산림청은 매년 관리 대상을 넓혀 지난해 기준 총 2만8988곳을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관리하고 있다. 취약지역으로 지정되면 산사태 예방 사업 우선 시행, 연 2회 이상 현지 점검, 대피소 지정, 거주민 대상 산사태 예방 교육 등의 혜택이나 지원을 받는다. 문제는 대부분의 산사태 피해와 사상자가 산사태 취약지역이 아닌 곳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산림청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이양수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8∼2022년 5년간 발생한 산사태 총 피해건수 9668건 중 93%(8977건)가 산사태 취약지역이 아닌 곳에서 일어났다. 특히 지난해엔 취약지역이 아닌 곳에서 인명 피해가 집중됐다. 지난해 산사태로 5명이 숨졌던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 2명이 숨진 예천군 감천면 벌방1리도 취약지역이 아니었다. 총 2명이 숨진 영주시 장수면 갈산리, 각각 2명이 사망한 봉화군 춘양면 학산리와 서동리 모두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곳이었다. 이에 대해 산림청 관계자는 “산림당국에서 관리하는 전국 산림 47만여 개를 모두 취약지역으로 지정해서 관리할 순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진산면처럼 마을 주민들은 이미 산사태 위험을 사전에 감지하고 있었는데도 취약지역으로 지정되지 않고, 결국 인명 피해가 발생한 곳들을 감안하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사태 취약지역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최근 이상기후와 잦아지는 폭우 및 극한 호우, 산림 난개발 등으로 산사태 위험성은 매년 높아지고 있다. 진산면 역시 사고 당일 오전 3시간 동안 약 170mm의 ‘물 폭탄’이 쏟아졌다. 산림청 측은 “한국은 전체 국토의 63%가 산림이다. 폭우가 지속되면 대부분의 지역은 위험할 수밖에 없다”며 “모든 곳을 관리하기엔 인력, 예산 등의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개선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명예교수는 “산사태는 비가 왔다고 한두 시간 내에 발생하는 게 아니라서 예측 가능하다”고 말했다. 얼마든 인명 피해를 사전에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산사태 취약지역 선정이 지반, 토양 등 산사태가 발생하는 자연적 요소에만 집중되다 보니 공사 등으로 인한 산 하부의 변화는 간과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실제로 산이 무너진 곳과 산사태 취약 지역이 다르다. 새로운 위험지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금산=이정훈 기자 jh89@donga.com최원영 기자 o0@donga.com}

    • 202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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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시간 상시 교대근무’ 공군 군사경찰…인권위 “휴식시간 늘려야”

    24시간 상시 교대 근무를 하는 공군 군사경찰(헌병) 병사의 휴식 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의견이 나왔다. 15일 인권위는 공군참모총장에게 이러한 의견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공군 군사경찰 병사들의 위로 휴가 일수를 점차 늘리고 이와 별개로 인력도 늘려 휴식 시간을 추가로 부여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앞서 공군 군사경찰을 자녀로 둔 진정인들은 인권위에 “병사들이 주말과 공휴일도 없이 24시간 상시 밤낮이 매일 바뀐 상태로 근무해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는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 조사 결과 실제로 병사들은 복무기간 동안 평일과 공휴일 구분 없이 24시간 교대 체계로 근무하며, 근무시간이 매일 바뀌는 탓에 수면시간도 불규칙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공군 측은 업무 특성상 24시간 상시 교대는 불가피하며, 군사경찰 병사들에게는 6주마다 1일의 위로휴가를 추가로 부여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인권위 군인권보호위원회는 공군 측의 해명을 받아들여 현행 근무 체계를 인권침해로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특히 공군이 제공한 위로휴가 일수는 군사경찰의 현실적인 인력상황을 고려해 기준을 정했다고 판단했다. 대신 인권위는 군사경찰 임무의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다른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유지되도록 하기 위해 휴식 시간을 늘리는 방안을 권고하기로 결정했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 2024-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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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서울 가드레일 83% 보행자 못지켜… 사망사고 났던 곳은 미설치

    서울 지역에 설치된 전체 가드레일(방호울타리)의 80% 이상이 차량과의 충돌 사고에서 보행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행자가 차에 치여 다치거나 숨진 일부 지역에는 사고 전후로 바뀐 게 없었다. 앞서 1일 9명의 사망자를 낸 서울 시청역 역주행 참사를 계기로 가드레일 체계를 점검하고 보행자 안전을 보호하는 쪽으로 개선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서울 가드레일 80% 이상은 보행자용… 충돌에 취약 10일 서울시가 서울시의회 박유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서울 가드레일 설치 현황’에 따르면 서울에 가드레일이 설치된 곳은 총 1만2614곳이다. 이 중 1만509곳(83.3%)이 보행자용, 2105곳(16.7%)이 차량용이다. 보행자용은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고 무단횡단을 막고 자전거 넘어짐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된다. 차량 충돌 시험 등을 거치지 않아 충돌 사고로부터 보행자를 보호하기 힘들다. 시청역 사고 현장의 가드레일이 바로 2012년에 설치된 보행자용이었다. 반면 차량용은 차량 충돌 시험을 거치고 9단계로 나뉘는 성능 기준을 충족한다. 차량이 돌진해도 그 충격을 일정 부분 상쇄하거나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다. 10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살펴본 서울 영등포구 7호선 보라매역 5번 출구 인근 차도와 인도 사이에는 보행자용 가드레일 8개가 설치돼 있었다. 앞서 5월 이곳에서는 70대 운전자가 몰던 차량이 중앙선을 넘어 인도로 돌진해 운전자, 동승자, 보행자 2명이 다쳤다. 사고 이후에도 보행자용 가드레일은 바뀌지 않았다. 특히 이곳은 오전에도 30분간 100여 명이 다닐 정도로 유동인구가 많지만, 가드레일이 일부 구간만 설치되어 있어 무단횡단하는 사람을 모두 막지도 못했다. 차와 버스가 쌩쌩 달리는 와중에도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이 3명 있었다. 지난해 8월 약물에 취한 남성이 롤스로이스를 몰다 인도로 돌진해 여성을 치어 숨지게 한 서울 강남구 압구정역 4번 출구 인근에는 사고 이후에도 가드레일이 새로 설치되지 않았다. 취재팀이 둘러본 현장은 인도와 차도 사이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 사고 위험이 높아 보였다. 10여 분간 현장을 지켜보는 동안 보행자 40여 명 중 5명은 차도로 내려가 걸었다. 가드레일이 없다 보니 인도와 차도에 걸쳐 차량 5대가 일명 ‘개구리 주차’돼 있어 시민들이 지나다니기도 쉽지 않았다. 시민들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압구정역 현장에서 만난 직장인 김모 씨(34)는 “사고가 났던 곳인 줄 몰랐다. 인도로 차량이 돌진해 사람이 죽었는데 바뀐 게 없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말했다. 보라매역 인근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나모 씨(36)는 “사람들이 무단횡단을 많이 하고 차량도 불법 유턴을 많이 해서 사고가 잦은 편”이라며 “약한 가드레일을 튼튼한 걸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당시 사고를 목격했다는 한 식당 주인은 “단순한 무단횡단 방지용 말고 시민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민 최모 씨(42)는 “시청역 때도 보행자용 가드레일이 쓸모없었는데 여기 있는 것도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 “위험 지역 전수조사 필요” 전문가들은 보행자 교통사고 위험지역을 전수조사를 통해 우선 파악한 뒤 차량용 가드레일을 설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염건웅 유원대 경찰소방행정학부 교수는 “보행자가 많은 곳, 사고가 잦은 곳 등 위험 지역들을 파악해 보호 강도가 높은 가드레일을 설치해야 한다”며 “내 집 앞이나 매일 걷는 길이 공포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정부는 긴급 예산이라도 편성해 가드레일을 설치하거나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준한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어떤 지역이 더 위험한가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며 “시속 30km로 달려오는 차라도 견디는 방호울타리 설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수범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인공지능(AI) 기법 등을 도입해 도로 특징들을 파악한다면 전수조사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 2024-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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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M 시세조종’ 의혹 카카오 김범수 첫 검찰 조사… 12시간 넘겨

    검찰이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 인수전에서 하이브의 인수를 방해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주가를 조작한 혐의(자본시장법 위반)를 받고 있는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경영쇄신위원장)를 9일 피의자 신분으로 처음 불러 조사했다. 지난해 11월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특사경)이 사건을 검찰에 넘긴 지 약 8개월 만이다.● 남부지검, 김범수 12시간 넘게 조사 이날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제2부(부장검사 장대규)는 김 위원장을 소환 조사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오전 8시 10분경 취재진을 피해 비공개로 출석했다. 검찰은 지난해 2월 김 위원장이 에스엠 인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경쟁사 하이브가 에스엠을 인수하지 못하게 하려고 인위적으로 에스엠 주가를 끌어올릴 것을 지시, 승인했는지를 집중 추궁하며 12시간 넘는 고강도 조사를 벌였다. 앞서 3월 검찰은 이 사건과 관련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배재현 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의 공판에서 김 위원장 등 카카오 고위 임원이 참여한 카카오그룹 투자심의위원회(투심위)가 하이브의 에스엠 인수를 저지하려는 목적으로 시세조종을 승인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카카오그룹 고위 경영진이 참석해 의사결정을 하는 기구인 투심위를 통해 김 위원장이 에스엠 인수 과정에서 벌어진 시세조종을 보고받거나 관여한 것으로 의심하는 것이다. 당시 공판에서 검찰은 하이브 공개매수 마지막 날인 지난해 2월 28일 오전 에스엠 투심위가 열렸고, 이 자리에 김 위원장 등이 참여한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투심위가 열리기 전후 카카오 경영진이 주고받은 카카오톡 대화에서 김 위원장이 회의에 관여한 내용이 담겼다는 것이다.● 지난해 2월 에스엠 주가 급등이 발단 사건은 지난해 2월 카카오와 하이브가 에스엠을 인수하기 위해 1조 원대 ‘쩐의 전쟁’을 벌이면서 시작됐다. 당시 이수만 에스엠 창업자(전 에스엠 총괄프로듀서)가 경영에서 손을 떼겠다고 밝혔고, 방시혁 의장의 하이브는 이 씨가 보유하고 있던 에스엠 지분의 80%가량인 14.8%를 인수하겠다고 공개 선언했다. 지난해 2월 9일 당시 에스엠 주가는 주당 9만8500원이었는데, 하이브가 밝힌 공개 매수 가격은 12만 원이었다. 카카오도 에스엠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이후 에스엠 주가는 갑자기 뛰기 시작했고 지난해 2월 16일에는 주당 13만1900원, 지난해 3월 8일에는 하이브의 공개 매수 희망 가격을 넘어선 주당 15만8200원까지 올랐다. 결국 하이브는 인수 계획을 접었고, 카카오가 에스엠을 인수했다. 하이브는 에스엠 주가가 갑자기 급등한 이유를 조사해달라고 금융감독원에 요청해 수사가 시작됐다. 검찰은 카카오가 사모펀드 운용사 원아시아파트너스와 공모해 2월 16, 17일과 27, 28일 등 총 4일간 2400억 원을 투입해 총 553회에 걸쳐 에스엠 주식을 12만 원보다 높은 가격에 사들여 주가를 올린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검찰은 이와 관련해 배 전 대표와 지모 원아시아파트너스 대표를 각각 지난해 11월과 올 4월 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김 위원장이 금감원에서 송치된 지 8개월 만에 불러 조사한 검찰은 그의 진술 등을 검토해 추가 조사 여부를 판단할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선 김 위원장 소환 조사를 기점으로, 지난해 4월부터 시작된 카카오 관련 수사가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날 카카오는 김 위원장의 소환 조사와 관련해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았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장은지 기자 jej@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 202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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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독가스 새는 듯” 강남 건물 40명 대피 소동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건물에서 화학물질 누출 의심 신고가 접수돼 시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소방 당국의 확인 결과 하수구 등 악취가 원인으로 추정됐고, 특별히 유해한 화학물질은 검출되지 않았다. 7일 강남소방서에 따르면 6일 오후 2시 2분경 강남구 삼성동의 한 근린생활시설에서 “건물 내부에 알 수 없는 기체가 새는 것 같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이 사고로 건물 주민 등 40명이 대피했고, 총 11명이 메스꺼움이나 통증을 호소해 응급처치를 받았다. 이 중 8명은 병원으로 이송돼 검사 후 귀가했다. 소방 당국과 경찰 등은 인력 172명, 장비 60대를 동원해 현장을 통제하고 8시간 동안 화학물질 누출 여부를 조사했다. 1차 조사에서 황화수소가 검출됐으나 극소량이었고 정밀조사 결과 다른 화학물질은 검출되지 않았다. 썩은 계란 냄새가 나는 황화수소는 흡입할 경우 질식할 수 있는 독성 가스다. 노출 정도와 시간에 따라 호흡곤란, 어지럼증부터 사망까지 이를 수 있다. 다만 황화수소는 하수구나 집수정 악취로도 극소량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소방 당국은 건물 집수정에서 배관을 타고 올라온 악취가 원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만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8일까지 건물을 폐쇄하기로 했다. 소방 당국 관계자는 “일단 유관 기관에 집수정을 청소하도록 조치했다”고 밝혔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 2024-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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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방차 접근땐 파란불… 긴급차 우선신호, 출동시간 40% 빨라져

    올 1월 경기 부천에서 임산부를 이송하던 구급차가 황색신호에 직진하던 승용차와 충돌해 구급대원 3명이 다쳤다. 지난해 8월엔 충남 천안의 한 교차로에서 구급차와 승용차가 충돌해 구급차에 타고 있던 보호자가 숨지고 구급대원 1명이 크게 다치는 등 7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소방·구급차 등 긴급자동차의 교통사고가 매년 200건 넘게 발생해 190여 명이 다치거나 숨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체 사고의 약 절반이 교차로에서 일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응급 환자를 이송하거나 화재 진압을 위해 출동하던 긴급자동차를 일반 차량이 미처 피하지 못한 사고가 대부분이었다. 이 때문에 현재 일부 교차로에 설치돼 운영 중인 ‘긴급차량 우선신호시스템’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시스템은 긴급자동차가 출동할 때 교차로 신호를 자동으로 파란불로 바꿔 출동 속도를 높이고 사고도 예방할 수 있다.● 소방자동차 사고, 매년 200건 이상 발생 현행법상 소방차와 구급차 등은 ‘긴급자동차’로 분류돼 긴급 출동 시 신호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이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일반 차량과 충돌하는 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소방청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21∼2023년) 총 672건의 긴급자동차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연평균 224건으로, 매년 191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구급활동 중 일어난 사고가 437건으로 가장 많았고, 화재(119건)가 뒤를 이었다. 도로 유형별로는 전체의 47%가 교차로에서 발생했다. 소방차나 구급차 등은 도로교통법에 따라 긴급자동차로 분류된다. 도로교통법 제29조에 따르면 일반차량 운전자는 교차로나 그 부근에서 긴급자동차가 접근하는 경우 교차로를 피해 일시 정지하거나, 긴급자동차가 우선 통행할 수 있도록 진로를 양보해야 한다. 하지만 일반 차량이 소방차 등을 발견하지 못한 채 주행하다가 사고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소방청 관계자는 “일반 차량의 속도가 빠를수록 운전자의 시력이 급격히 저하되고, 전방의 시공간 범위도 좁아져 긴급자동차와 부딪칠 확률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출동 시간 줄이고 안전도 지킨다 소방청과 경찰청, 도로교통공단 등은 ‘긴급차량 우선신호시스템’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2017년 처음으로 도입된 이 시스템은 소방차 등의 이동 경로에 따라 교차로 신호를 일시적으로 제어한다. 소방차 등이 요청할 경우 교차로의 신호등이 모두 파란색으로 바뀌는 것이다. 지난달 19일 이 시스템이 설치된 경기 의왕시 지역에선 실제 소방차의 출동 시간이 40%가량 빨라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의왕소방서 협조로 소방 펌프차에 탑승해 확인한 결과 시스템을 켜지 않고 소방서에서 약 4.9km 떨어진 롯데마트 의왕점으로 출발하자 총 12분 11초가 걸렸다. 의왕소방서 관계자는 “이 지역은 군포나 안양 등으로 빠져나가는 차가 많은 구간이라 항상 막힌다”며 “특히 출퇴근 시간에는 차가 거의 멈춰 있는 상태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탑승 때는 우선신호시스템을 켜고 출발했다. 소방차 내부 태블릿PC에 롯데마트 의왕점을 도착지로 지정한 후 ‘출동’ 버튼을 누르자 시스템이 실행됐다. 이어 펌프차가 주행하는 구간의 신호등마다 모두 파란불로 바뀌면서 7분 14초가 걸렸다. 시스템을 켜지 않고 출동했을 때보다 5분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소방서 관계자는 “시스템을 가동하면 긴급차량이 신호등의 200∼300m 거리로 접근할 때마다 즉각 파란색으로 바뀐다”고 설명했다. 현장의 소방관, 구급대원 등은 빠른 출동 시간과 안전 운행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 의왕소방서 김태준 소방관은 “사이렌을 켜도 7분 안에는 절대 못 오는 거리인데, 시스템을 켜니까 무리하지 않고 빨리 올 수 있었다”며 “환자 이송, 화재 진압 등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빨리 출동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빨간불에 가는 거랑 파란불에 가는 건 확실히 다르다. 소방관들과 구급대원들의 안전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지역별로 편차 큰 우선신호시스템 다만 긴급차량 우선신호시스템은 일부 지역에만 많이 설치돼 있는 상황이다. 신호를 제어해야 하는 만큼 소방청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등 관계기관의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올 5월 말 기준 이 시스템은 전국 2만3967곳에 설치됐다. 경기(1만1179곳), 인천(3084곳), 부산(2189곳) 등 상위 세 곳이 전체의 약 68.6%를 차지했다. 반면 대구는 1곳에 불과했고, 광주(31곳), 울산(48곳), 서울(704곳) 등 대도시도 적은 편이었다. 전문가들은 응급 상황에서 골든타임을 확보하고 구급대원 등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우선신호 시스템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조준한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화재, 구조, 구급 등 긴급 상황에서 골든타임 확보를 위해 긴급차량의 우선신호 도입은 필요하다”며 “출동 시간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소방차량의 교통사고 등을 예방할 수 있도록 일부 지역뿐만 아니라 전 지역으로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긴급차량 우선신호 시스템소방차, 구급차 등 긴급차량의 이동경로에 따라 교차로 신호를 일시적으로 제어해 긴급차량이 신호 제약 없이 무정차 통행할 수 있도록 맞춤형 신호를 부여하는 시스템.공동 기획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경찰청 소방청 서울시 한국교통안전공단 손해보험협회 한국도로공사 도로교통공단 한국교통연구원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교통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독자 여러분의 제보와 의견을 e메일()로 받습니다.특별취재팀▽팀장 송유근 사회부 기자 big@donga.com▽소설희(경제부) 이축복(산업2부) 이청아(국제부)이채완(사회부) 한종호(산업1부) 기자}

    • 2024-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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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렌 들리면 교차로 서행, 오른쪽으로 車붙여 길 터줘야

    재난 및 응급 상황에서 소방·구급차 등이 신속히 출동해 대처하기 위해선 시민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고 관계 당국은 강조한다. 소방시설 주변엔 불법 주정차를 하지 않아야 하고, 교차로에서 사이렌이 들릴 경우 차량을 서행하는 등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화재 진압엔 7분, 심정지 환자 소생엔 5분이 ‘골든타임’이다. 골든타임이란 시민의 생명 보존과 재난 확산 제어를 위해 관계 당국이 대응해야 하는 한계시간이다. 이 시간을 지체할 경우 응급환자 소생 가능성이 급격히 떨어지고 재난 확산 가능성은 높아진다. 먼저 차량 주정차가 중요하다. 비상소화장치 등 소방시설로부터 5m 이내나 소방차 진입이 어려운 좁은 도로, 소방차 전용 구역에는 절대 주차를 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통행로와 소화전 확보가 어려울 경우 소방 당국은 불법 주정차 차량을 제거하거나 견인하는 등의 ‘강제처분’을 할 수 있다. 소방기본법 제25조에 따라 강제처분된 차량은 보상을 받을 수 없다. 시민들도 소방차 전용 구역에 5분 이상 불법 주차한 차량을 발견할 경우 ‘안전신문고’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신고할 수 있다. 교통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교차로와 도로에선 시민들의 ‘길 터주기’가 특히 중요하다. 교차로에서 구급차 등 긴급차량이 지나갈 경우 교차로를 피해 도로 오른쪽 가장자리에 일시 정지해 통행로를 확보해 줘야 한다. 일방통행로는 우측 가장자리에 정지하면 긴급차량이 지나갈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사이렌이 들린다면 신호등이 파란불이더라도 일단 서행하면서 교차로에 진입하는 것도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일반 도로에서 긴급차량이 지나간다면 편도 1차선 도로는 우측 가장자리로 붙어 최대한 진로를 양보하고, 편도 2차선 도로는 긴급차량이 1차선으로 갈 수 있도록 2차선으로 이동하면 된다. 편도 3차선 이상의 도로에선 긴급차량이 2차선으로 갈 수 있도록 일반차량은 1차선이나 3차선으로 양보해 운전해야 한다. 조준한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긴급차량 우선신호 시스템이 대폭 확대돼야 하지만 대도시의 경우 정체 구간이 많아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며 “시민들의 길 터주기 협조와 불법 주정차 문제 해결 등이 일단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공동 기획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경찰청 소방청 서울시 한국교통안전공단 손해보험협회 한국도로공사 도로교통공단 한국교통연구원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교통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독자 여러분의 제보와 의견을 e메일()로 받습니다.특별취재팀▽팀장 송유근 사회부 기자 big@donga.com▽소설희(경제부) 이축복(산업2부) 이청아(국제부)이채완(사회부) 한종호(산업1부) 기자}

    • 2024-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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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사현장 가드레일, 보행자 보호 아닌 무단횡단 방지용이었다

    1일 발생한 서울 시청역 역주행 참사 당시 인도에 서 있었던 사상자들과 가해 차량 사이의 가드레일(방호울타리)이 충돌 사고로부터 보행자를 보호할 목적으로 설치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가드레일은 단순 무단 횡단 및 자전거 추락 방지용이었다. 성능 기준이 취약한 탓에 애초부터 보행자 보호 역할을 할 수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서울 중구에 따르면 이 가드레일은 2012년에 설치됐다. 현행법상 가드레일은 ‘차량용’과 ‘보행자용’으로 나뉜다. 차량용은 차량이 도로를 이탈해 인도 등을 침범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사고 위험 구간, 교차로, 고속도로 등에 설치된다. 차량 충돌 시험도 거쳐 일정한 성능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반면 보행자용은 무단 횡단이나 자전거 쓰러짐 사고를 막기 위한 목적이다. 충돌 성능 시험도 거치지 않는다. 사고 현장 폐쇄회로(CC)TV를 보면 가해 차량은 순식간에 가드레일을 부수고 시민들을 덮쳤다. 전문가들은 보행자용도 차량 충돌을 버틸 수 있도록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호주에선 내년 1월 1일부터 모든 도로에서 새 가드레일을 설치할 경우 MASH 3등급(TL3) 이상을 충족하도록 했다. 이는 무게 2270kg 차량이 시속 100km로 충돌해도 버티는 정도의 성능이다. 이번에 가해자가 몰던 제네시스 G80은 공차(빈차) 중량이 1930kg이었고, 시속 100km로 역주행했다. 더 튼튼한 가드레일이 있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거라는 지적이 나온다. 조준한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현재의 보행자용 가드레일은 차가 들이받았을 때 엿가락처럼 휘어질 수밖에 없다. 내구성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행로 가드레일, 손으로 흔들어도 덜컹덜컹… “기준 강화해야”[서울 시청역앞 역주행 참사]사고 대비용 아닌 사람-차도 분리용… 성능-관리 규정 모호해 곳곳 방치시속 85km 충돌 견디게 강화 검토… 美-호주선 차량 충돌시험 의무화1일 역주행 참사가 벌어진 서울 중구 시청역 뒤편 인도에는 사고 당시 부서진 가드레일의 잔해가 3일까지도 그대로 있었다. 가해 운전자 차모 씨(68)의 제네시스 G80 차량이 질주한 세종대로18길 100여 m 구간에는 같은 규격의 가드레일이 인도에 설치돼 있었다. 가드레일 곳곳은 과거에도 충격을 받은 듯 휘어져 있었다. 일부 가드레일은 고정 장치가 헐거워서 기자가 손으로 잡고 흔들자 통째로 덜컹덜컹 흔들릴 정도였다. 근처를 지나가던 직장인 손모 씨(28)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가드레일 덕분에 안전하다고 느꼈는데 이번 사고 영상을 보곤 생각이 바뀌었다”며 “앞으로는 차도에서 멀리 떨어져 걸어야겠다”고 말했다.● 법 규정 미비… 충북, 경남서도 유사 사고현재 가드레일 유지, 보수, 성능과 관련된 법 기준은 취약하다. 보도 설치 및 관리 지침에 따르면 인도에 설치된 가드레일은 명확한 교체 주기가 없다. 도로 표지병(도로 바닥에 설치하는 불빛 장치)은 3년, 시선유도표지는 5년마다 교체하도록 규정한 것과 다르다. 이 탓에 가드레일은 심각하게 훼손됐을 때를 빼면 교체하지 않고 있다. 서울시 차원의 점검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시 관계자는 “가드레일은 보행자 무단횡단 방지 등이 목적이기 때문에 별도로 전체 조사를 실시한 적이 없다”며 “미관상 문제가 되는 부분을 개선하는 정도였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관계자는 “사고 현장에 있던 가드레일은 사람과 차도를 구분하고, 사람이 차도로 뛰어들거나 무단횡단하는 것을 방지하는 분리시설”이라며 “차량 사고에 대비한 방어 울타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전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인도를 덮친 차량을 가드레일이 막아주지 못해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이 여러 번이었다. 지난해 5월 충북 음성군에서 70대 운전자의 차량이 인도를 침범해 10대 두 명이 숨졌다. 가드레일이 있었지만 피해를 막지 못했다. 지난해 9월에는 경남 양산시에서 덤프트럭이 가드레일을 뚫고 근로자 2명을 덮쳐 그중 1명이 숨졌다.● 서울시 대책 마련… 전문가들 “설치 기준 강화해야” 가드레일을 둘러싼 우려가 커지자 서울시는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시 관계자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사람들이 모여 있어 차량에 의해 상해를 받을 수 있는 곳들을 점검하고 (가드레일의) 강도를 보완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는 시속 85km로 돌진하는 차량에도 보행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가드레일의 안전성을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유동 인구가 많거나 차량이 빨리 달리는 구간, 사고 위험이 큰 구간을 먼저 조사한 뒤 가드레일을 ‘핀셋 보강’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가드레일의 성능을 강화하고 관련 기준도 명확히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명훈 한국교통안전공단 교수는 “돌진하는 차량을 밀어낼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해야 한다”며 “아랫부분은 차량용 가드레일, 윗부분은 기존 보행자용으로 된 ‘겸용 방호울타리’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염건웅 유원대 경찰소방행정학부 교수는 “보행자용 가드레일 설치 기준이 정부 차원에서 마련돼야 한다”며 “기술 개발도 지원하면 설치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호주와 미국 일부 주(州) 등에서는 가드레일을 설치할 때 차량 충돌 시험을 의무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미국 연방고속도로관리국(FHWA)은 2016년경부터 공사 현장 인근 등에는 충돌 시험을 통과한 제품만 사용하도록 했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

    • 2024-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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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령운전 사고 작년 3만9614건 ‘역대 최대’

    지난해 고령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가 통계 집계 이후 가장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1일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에서 68세 남성 운전자가 일으킨 교통사고로 9명이 사망하면서 고령 운전자의 면허 반납을 독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서울시에서 면허를 자진 반납한 고령 운전자는 3.9%에 그친 것으로 파악됐다. 2일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는 3만9614건으로, 2005년 통계 집계 이후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2005년 6165건이던 고령 운전자 사고는 2015년 2만3063건, 2020년 3만1072건 등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의 치사율은 2.1%(2022년)로 전체 교통사고(1.4%)보다 높다.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고령층 운전면허 소지자도 급증하고 있다. 2019년 333만7165명이었던 65세 이상 운전면허 소지자는 지난해 474만7426명으로 42.3% 증가했다. 이 추세라면 2040년 고령 운전자가 1300만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경찰청은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각 지방자치단체가 시행 중인 면허 자진 반납 정책의 실적은 저조한 편이다. 서울시는 2018년부터 70세 이상 운전자가 면허를 반납하면 10만 원 상당의 교통카드를 지급하는 사업을 시행해 왔다. 하지만 반납자 수는 2022년 2만2626명으로 전체 면허 소지자(57만1974명)의 3.9%에 그쳤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반납자에게 ‘100원 택시’ 등을 지원하는 등 반납 후 생길 불편을 해결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올해 5월 고령 운전자에게 운전 능력 평가 등을 실시해 결과에 따라 야간·고속도로 운전을 금지하는 ‘조건부 면허제’를 발표했다가 반발이 거세게 일자 하루 만에 철회하기도 했다. 안전장비 장착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 국토교통성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내년 6월 도로운송차량법 시행령을 개정해 신차를 대상으로 페달 오작동 방지 장치를 의무적으로 달게 할 계획이다. 이 장치는 차량 앞뒤에 장착된 센서와 카메라로 장애물을 인식해, 운전자 실수로 가속 페달을 세게 밟으면 자동으로 엔진 출력을 낮춰 급가속을 방지한다. 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 2024-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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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텔 나온뒤 시속 100㎞ 역주행… 시민-車 충돌후 속도 줄며 멈춰

    1일 서울 시청역 인근 역주행 참사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경찰이 가해 차량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으로 옮겨 조사에 나섰다. 가해 운전자 차모 씨(68)가 왜 역주행을 했는지, 그의 주장대로 급발진이나 차량 결함인지, 왜 사람들을 치기 전 운전대를 틀지 않았는지, 고령탓인지 등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제기된다.● 주차장 나간 뒤 역주행 질주… “굉음” 경찰과 목격자, 차 씨의 진술 등을 종합하면 1일 오후 9시 26분경 서울 중구 시청역 뒤편에 있는 웨스틴조선호텔 주차장에서 차 씨의 검은색 제네시스 G80 차량이 빠져나왔다. 차 씨 부부는 호텔에서 열린 처남의 칠순 잔치에 참석했다가 귀가하는 길이었다. 운전석에는 차 씨, 조수석에는 아내가 탔고 다른 탑승자는 없었다. 사고 당시 폐쇄회로(CC)TV 등을 보면 차 씨의 차는 갑자기 세종대로 18길 4차선 일방통행 도로를 신호도 무시하고 빠르게 역주행했다. 경찰이 사고기록장치(EDR)를 분석한 결과 차 씨는 가속 페달을 90% 이상 밟았고, 시속 100km가 넘었다. 약 200m를 질주한 끝에 인도와 차도를 분리해 놓은 가드레일을 먼저 들이받았다. 그러곤 붕 떠서 날아가는 듯이 인도 위의 시민 11명과 오토바이 2대를 연속으로 쳤다. CCTV에는 담소를 나누던 시민들이 갑자기 다가오는 헤드라이트 불빛을 보고 놀라는 장면이 담겼다. 차량 속도가 너무 빨라 피할 겨를이 없었다. 이후 차 씨의 차량은 계속 질주해 횡단보도에 서 있던 시민들과 BMW, 쏘나타 승용차를 추가로 들이받았다. 그러곤 교차로를 가로질러 2호선 시청역 12번 출구 근처까지 와서야 속도를 줄이며 멈춰 섰다. 앞에 행인들이 있었지만 차량 속도가 줄어든 덕분에 재빨리 자리를 피할 수 있었다. 불과 몇 초 만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소방 등 당국에는 9시 27분에 사고가 처음 접수됐다. 인근 호프집에서 사고를 목격한 신모 씨(61)는 “천둥 소리가 나서 놀라 나가 보니 피 흘리는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고 말했다. ● 급발진 논란… 전문가 “운전자 부주의 가능성” 현장에서 검거된 차 씨는 급발진을 주장했다. 하지만 목격자들은 “일반적인 급발진 사고와 달라 보였다”고 말했다. 목격자 정모 씨는 “시속 100km도 넘어 보이는 속도로 브레이크도 안 밟고 시민들을 친 것 같았다”며 “사고 이후엔 멈추더니 차에서 남녀가 내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운전자 부주의일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공학과 교수는 “사고 영상으로는 브레이크가 정상 작동을 하며 차가 멈췄던 것으로 보인다”며 “운전 부주의로 보이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교통사고 전문 최충만 변호사는 “급발진 차량은 정면으로 가지 역주행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며 “급발진의 경우 장애물에 막혀야 차가 멈춘다.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는다고 차가 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해 차량은 두 달 전 경기 안산의 한 차량정비업체 종합검사 결과에서 아무런 이상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동아일보가 입수한 사고 차량 자동차등록원부에 따르면 해당 차량은 2018년 5월 제조돼 2022년 6월과 올 5월 두 차례에 걸쳐 안산의 차량정비업체에서 검사를 받았다. 올해 5월 8일 종합검사를 진행한 A업체는 “(가해 차량에 대한) 종합검사 당시 모든 항목에서 ‘양호’가 나왔다”고 밝혔다. 급발진과 관련해선 “‘센서 진단’을 진행했는데 적합, 양호하다고 나왔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2일 국과수에 가해 차량 감정을 의뢰했다. 차 씨 부부가 차량에 타기 전 다투는 모습이 목격됐다는 소문에 대해서 경찰은 “블랙박스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블랙박스에는 차 씨 부부가 운전 중 놀란 듯 ‘어, 어’ 하는 음성 등만 담겼다. 경찰은 차 씨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도 검토할 계획이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 2024-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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