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광암 칼럼]장동혁은 계획이 다 있구나

  • 동아일보

중도층 86% “국힘 계엄-탄핵 대응 부적절”
장동혁 “내 계획에서 크게 이탈 안 해”
프랑스 공화당, 극우-중도 줄타기 끝 자멸
보수 붕괴 막으려면 ‘장 계획’ 브레이크 필요

천광암 논설주간
천광암 논설주간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을 떠올려 보자. 4수생 기우(최우식 분)가 과외 알바 면접을 위해 집을 나선다. 자신을 대학생으로 속이기 위해 위조된 재학증명서를 손에 든 기우가 아버지 기택(송강호 분)에게 말한다. “아버지, 전 이게 위조나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 내년에 이 대학 꼭 갈 거거든요.”

기택이 감탄한다. “오∼,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기택-기우 부자보다 더 ‘계획’에 진심인 사람이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다.

“나만의 타임 스케줄과 ‘계획’을 갖고 가고 있다. 제가 생각했던 거에서 크게 이탈하지 않고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12월 6일)

“즉흥적인 게 아니라 사전에 ‘계획’해서 한 발언이다.”(11월 13일)

“이번 계엄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3월 1일)

먼저 12월 6일 발언은 장 대표가 ‘멸콩TV’라는 한 유튜브 채널에 나와서 한 말이다. 12·3 비상계엄 1년을 맞아 ‘윤 어게인’ 세력과 단절을 선언하고 대국민 사과를 하라는 요구와 주문이 여기저기서 쏟아졌지만 장 대표는 철저히 외면했다. 그냥 외면한 정도가 아니라, “12·3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고 강변하기까지 했다. ‘내가 윤석열’이라는 외침이나 다름없었다. 이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그 응답으로 나온 것이 멸콩TV 인터뷰다.

두 번째, 11월 13일의 ‘계획’ 발언은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지난달 12일 특검이 황교안 전 총리를 체포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 뭉쳐서 싸우자”고 외쳤다. 대표적인 부정 선거론자인 황 전 총리와 국민의힘을 동일시하는 것을 놓고는 당내에서까지 심각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자 ‘계획’ 발언이 나왔다.

세 번째, “하나님의 계획”은 장 대표가 한 우파 기독교단체 주최 집회에 참석해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기각’을 주장하면서 한 말이다. 장 대표의 주장대로 계엄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면, 윤 전 대통령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에게 윤 전 대통령은 불법 계엄을 실행한 ‘내란 수괴’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이행하기 위한 ‘도구’였던 셈이다.

요컨대, 12·3 계엄은 대한민국을 새롭게 고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고, ‘윤 어게인’ 세력과 부정선거론자들까지를 포함해 우파를 하나로 결속시킨 다음, 중도 확장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 승리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것이 장 대표의 계획인 셈이다. 장 대표의 ‘계획’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11일 공개된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도층의 63%는 ‘12·3 계엄이 내란에 해당한다’고 했다. ‘아니다’라는 응답은 23%에 그쳤다. 계엄과 탄핵 이후 ‘국민의힘 대응이 적절했다’고 본 중도층은 고작 10%였다. 중도층의 86%는 ‘부적절했다’고 평가했다. 이런 지경이니 국민의힘에 대한 중도층의 호감도는 바닥을 길 수밖에 없다. 한국갤럽이 12일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에 ‘호감이 간다’고 한 중도층은 21%에 불과하다. 더불어민주당(46%)에는 절반도 못 미치고, 조국혁신당(27%)보다 낮은 수치다.

이런 중도층을, ‘내가 윤석열’을 부르짖던 입으로 어떻게 설득하겠다는 건가. 부모가 돌아온 탕아를 맞듯, 자신이 아무 때나 “중도 확장”을 외치면 중도층이 두 팔 벌려 환영할 것이라고 장 대표는 생각하나. 이만저만한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주류 보수정당이 극우의 등에 올라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도박’인지는 프랑스와 브라질의 사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프랑스 공화당은 샤를 드골 대통령에게 뿌리를 둔 정통 보수정당으로 드골 외에도 조르주 퐁피두, 자크 시라크, 니콜라 사르코지와 같은 거물 정치인들을 배출했다. 하지만 중도 확장에는 눈을 감고 극우세력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다 거리 두기에 실패한 결과 이 당은 존립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2022년 대선에서는 이 당의 후보가 선거비용보전 기준(5%)에도 못 미치는 ‘초라한’ 득표율을 기록했을 정도다. 브라질의 사회민주당은 좌파 노동자당에 맞서 우파를 대변하는 최대 보수정당이었지만, 지금은 독자적으로는 대통령 후보조차 낼 수 없는 군소정당으로 전락한 상태다. 극우 선동가와 아스팔트 우파에 당 주도권을 내준 결과였다.

계엄 1년이 넘도록 아직도 계엄 옹호와 윤 어게인의 늪에서 헤매고 있는 장 대표의 ‘계획’은, 국민의힘을 프랑스 공화당이나 브라질 사회민주당 꼴로 만들겠다는 ‘보수 자폭 계획’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더 늦기 전에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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