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좋으면 꼴찌?” 야구 김용희-골프 김재호 父子의 우승 꿈[이헌재의 인생홈런]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2월 14일 13시 36분


김용희 롯데 2군 감독은 야구계의 신사로 명망 높다. 롯데 제공
김용희 롯데 2군 감독은 야구계의 신사로 명망 높다. 롯데 제공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2008승을 거둔 리오 듀로셔 감독(1991년 사망)은 “사람 좋으면 꼴찌(Nice guys finish last)”라는 명언을 넘겼다. 인성보다는 승부욕 강하고 독한 선수가 더 성공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야구계의 신사’로 불리는 김용희 프로야구 롯데 2군 감독은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다. 별명에서 알 수 있듯 김 감독은 사람 좋기로 유명하다. 선수나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그의 태도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가득하다.

김 감독은 선수 시절 최고 스타 중 한 명이었다. 포항제철 야구단 시절 실업야구를 대표하는 거포였다. 큰 키(신장 190cm)에서 뿜어져 나오는 호쾌한 스윙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프로야구가 출범 후에도 롯데를 대표하는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1982년 롯데 유니폼을 입은 그는 초대 올스타전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했다, 2년 후인 1984년 다시 한번 올스타전 MVP에 뽑혔다. 당시 올스타전 MVP에게는 승용차를 부상으로 줬는데 그는 그 당시엔 무척 귀했던 승용차를 2년 사이에 두 대나 받았다.

1984년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별중의 별로 뽑힌 김용희.   동아일보 DB
1984년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별중의 별로 뽑힌 김용희. 동아일보 DB


김용희 감독이 부상으로 받은 승용차 위에서 포즈를 취했다. 동아일보 DB
김용희 감독이 부상으로 받은 승용차 위에서 포즈를 취했다. 동아일보 DB
실력만큼 유명한 게 후덕한 인품이었다. 말 많고, 탈 많은 야구계에서 그는 물의 한번 일으키지 않고 모범적인 선수 생활을 했다. 아쉬운 건 고질적인 허리 부상으로 일찍 유니폼을 벗어야 했다는 것이다. 김 감독은 “재활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오른팔을 다쳐 깁스를 한 적이 있는데 선수가 없다고 감독님이 경기를 뛰라고 한 적도 있었다”며 “무릎뼈가 튀어 나와도 파스 한 장 붙이고 시합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사람 좋고 소통 잘하는 그였기에 여러 팀에서 지휘봉을 맡겼다. 1995년부터 1998년까지 롯데 감독을 지냈고, 2000년에는 삼성 감독으로 취임했다. 또 2015~2016년에는 SK 감독을 맡기도 했다. 이후 야구 해설위원과 KBO 경기운영위원 등을 거쳐 2024년부터 롯데 2군 감독을 맡고 있다. 70세가 된 그를 찾는 팀이 여전히 있다는 건 그가 어떻게 인생을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

다만 아쉬운 건 우승 트로피다. 그가 프로 유니폼을 입고 우승한 건 1984년이 유일하다. 당시 롯데는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 7차전까지 가는 혈전 끝에 4승 3패로 우승했다. 고 최동원이 혼자서 한국시리즈 4승을 모두 거둔 바로 그 해다.

하지만 김 감독은 이후 선수는 물론이고 지도자로도 우승한 적이 없다. 그가 가장 아쉬워하는 건 롯데 사령탑 첫해였던 1995년이다. 그해 두산과 치른 한국시리즈에서 5차전까지 3승 2패로 앞서다 내리 두 번을 져 준우승에 그쳤다.

SK 와이번스 감독 시절의 김용희 감독. 동아일보 DB
SK 와이번스 감독 시절의 김용희 감독. 동아일보 DB
골프 선수인 아들 김재호(43)도 비슷했다. 누가 봐도 우승을 할 만한 실력인데 좀처럼 우승 트로피를 들지 못했다. 1, 2라운드 때 선두권을 달리는 경우는 적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최종일만 되면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그렇게 20대가 지나갔고, 30대도 흘러갔다. 나이는 언제 골프채를 놔도 이상하지 않을 4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러던 지난달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렉서스 마스터즈에서 마침내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김재호가 210년째 대회 만에 생애 첫 우승컵을 들어 올린 것이다.

3라운드까지 공동 선두였던 김재호는 이날도 여지없이 샷이 흔들렸다. 버디 2개를 잡는 동안 보기 5개를 범하며 3오버파를 쳤다. 예전의 김재호라면 그대로 무너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한 타 차 2위로 들어간 마지막 18번홀에서 버디를 잡아내며 다시 공동 선두로 올라서 연장전에 돌입했다. 그리고 연장 첫 번째 홀에서 버디를 잡아내며 꿈에 그리던 정상에 올랐다. 우승을 확정한 김재호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 장면을 보고 더 기뻤던 건 김용희 감독이었다.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TV로 경기를 지켜보던 김 감독은 “초반에 타수를 잃길래 오늘도 또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본인이 스스로 포기하지 않을까 내심 걱정도 했다”라며 “그런데 끝까지 인내하고 이겨내는 모습을 보였다. 그게 바로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라고 했다.

김용희 롯데 2군 감독의 아들 김재호가 KPGA 렉서스 마스터즈에서 우승한 뒤 롯데 유니폼을 입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보이고 있다. KPGA 제공
김용희 롯데 2군 감독의 아들 김재호가 KPGA 렉서스 마스터즈에서 우승한 뒤 롯데 유니폼을 입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보이고 있다. KPGA 제공
이 대회 16번홀(파3)에선 선수들이 자신이 고른 배경 음악을 틀고 입장하는 이색 이벤트가 진행됐다. 롯데 유니폼을 입은 김재호는 프로야구 롯데의 응원곡 ‘영광의 순간’을 선택했다. 김재호는 우승 세리머니 때도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유니폼 뒷면에는 아버지 김용희 이름과 등번호 99번이 새겨져 있었다. 김재호는 인터뷰에서 “모두 아버지 덕분”이라며 눈물을 쏟았다.

김재호가 골프채를 잡은 건 김용희 감독이 1994년 미국 텍사스로 야구 연수를 떠난 게 계기였다. 김 감독은 “쉬는 날 가끔 골프장을 가곤 했는데 방학 때 미국에 온 재호가 골프 카트 모는 재미에 골프장에 왔다가 재미를 들였다”고 했다. 그는 또 “운동이 얼마나 힘든 건지 알기에 시키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세 달만 보겠다’던 재호가 정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하는 걸 보고 시키게 됐다”고 말했다.

KBO 경기 운영위원 시절의 김용희 감독.  스포츠동아
KBO 경기 운영위원 시절의 김용희 감독. 스포츠동아
전형적인 경상도 부자(父子)인 둘은 김재호의 우승 후에도 서로에게 크게 감정을 드러내진 않았다. 아버지 김 감독은 “수고했다”라고 짧게 한 마디를 건넸다. 김재호 역시 “축하한다, 잘했다 같은 얘기는 말은 서로 잘 하지 않는다”며 웃었다.

중년들에게 희망을 준 김재호의 우승은 김용희 감독에게도 적지 않은 자극이 됐다. 롯데는 올해도 7위에 그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1992년 마지막 우승 후 33년간 우승하지 못했다. 김 감독은 “내 역할은 1군 선수단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전력을 2군에서 만들어 내는 것”이라며 “롯데는 내 모든 인생이 들어있는 팀이다. 잘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김 감독은 “현재 롯데가 부진하고 팬들게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 최송하다”며 “하지만 하나하나 약점을 고쳐가면 언제든 좋아질 수 있는 팀이다. 하루하루 새로운 걸 채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형 롯데 감독과 김용희 롯데 2군 감독. 두 사람은 롯데의 우승을 위해 힘을 합쳤다. 이헌재 기자
김태형 롯데 감독과 김용희 롯데 2군 감독. 두 사람은 롯데의 우승을 위해 힘을 합쳤다. 이헌재 기자
김 감독이 평생 마음에 새기고 사는 사자성어는 ‘종신지우(終身之憂)’다. 무언가를 이루려면 몸이 다할 때까지 근심이 없을 수 없다는 뜻이다. 김 감독은 “내게 야구는 평생의 근심 덩어리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야구를 할지, 더 좋은 야구 시스템을 만들지가 고민”이라며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근심이 없을 수 없다. 롯데 유니폼을 입고 있는 요즘은 자나깨나 어떻게 롯데를 좋을 팀으로 만들까 고민한다”고 말했다.

다시 한번 유니폼을 입고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건강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쓴다. 한때 애연가였던 그는 2001년 12월 금연을 선언한 뒤 한 번도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다. 두주불사일 정도로 술도 좋아했지만 6년 전부터 아예 끊어버렸다. 요즘엔 안 좋은 음식을 멀리하고, 먹는 양도 최대한 줄이려 한다. 김 감독은 “롯데가 우승하는 날 축배를 들 생각이다. 딱 세 잔을 마실 것”이라며 웃었다. 롯데가 우승하면 통산 세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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