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고갈 vs 독소 축적 등 가설…인지 피로가 뇌 화학 변화 유발
코로나19 이후 만성피로에 더 주목…개인화된 ‘피로감 기준’도 필요
뉴시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과도한 업무나 학업 끝에 몰려오는 극심한 정신적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 인공지능(AI)은 전원만 있으면 무한 작동하지만, 인간의 뇌는 피로를 느끼고 결국 판단력을 잃는다. 이처럼 누구나 겪는 ‘뇌가 지쳤다’는 현상은 인간의 뇌가 에너지를 소진하며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인지 피로(Cognitive Fatigue)’다.
단순한 권태를 넘어 부주의한 실수와 안전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이 인지적 탈진 상태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학계에서는 뇌의 생화학적 메커니즘을 규명하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2020년대 초반을 강타했던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이다. 이른바 ‘롱 코비드’라고도 불리는 만성 코로나19 증후군의 주요 증상 중 하나로 만성피로가 지목됐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이같은 만성 질환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맞춤형 치료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했다.
13일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따르면 최근 학계에서는 인지 피로를 설명하는 두 가지 주요 가설이 논의되고 있다.
통상적으로 학계에서는 뇌가 ‘인지 통제(Cognitive control)’라는 고도의 노력을 지속할 때 피로가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파리 뇌 연구소의 마티아스 페시글리오네 연구 책임자가 “왜 이 인지 시스템은 피로에 취약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연구의 필요성이 촉발됐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두 주요 가설은 뇌 세포의 에너지 공급이 한계에 부딪힐 때 발생하는 에너지 고갈설과 지속적인 신경 활동의 결과로 독성 물질이 축적된다는 가설로 나뉜다. 뇌가 느끼는 피로감도 일종의 통증에 빗댈 수 있으며, 이 피로라는 감각이 뇌가 생리적 한계에 근접했음을 알리는 일종의 보호용 경고라는 분석도 나온다.
문제는 오랫동안 인지 피로의 정의·측정·치료 등이 주로 ‘얼마나 피곤한가’라는 주관적인 자기 보고에 의존해왔다는 점이다. 인간은 자신의 피로도를 판단하는 데 매우 서툴고, 이로 인해 기존 측정 방법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학계에서는 뇌의 대사 물질과 신경화학적 메신저의 변화를 추적하는 보다 객관적인 방법을 통해 피로의 근원을 찾고 있다.
가장 유력한 가설은 인지 피로가 뇌의 화학적 변화를 유발해 정신적 노력을 기울이는 데 필요한 ‘비용-이점’ 계산 방식을 바꾼다는 것이다. 연구 결과 어려운 인지 과제를 수행한 사람들은 뇌의 외측 전전두엽 피질에 글루타메이트가 더 많이 축적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들은 보상이 지연되는 것보다 즉각적인 만족을 더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인지 피로가 단순히 무기력이 아니라 뇌 화학의 변화로 인해 동기 부여 회로가 영향을 받는 현상임을 시사한다. 도파민과 아데노신 같은 신경 전달 물질의 역동성 또한 피로 경험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현재 인지 피로에 대한 가장 직관적인 해결책은 수면이다. 특히 깊은 수면은 뇌의 야간 유지 보수 역할을 하며, 대사 잔해를 제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정론이다. 잠을 잘 수 없는 상황, 가령 업무나 학업 중에는 아데노신 수용체를 차단하는 카페인이나 각성도를 높이는 밝은 빛에서의 짧은 산책이 단기적인 대처 방안으로 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만성적이고 극심한 피로를 겪는 환자들에게는 근본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피로의 근본적인 병리를 알기 위한 과학적 규명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현재 극심한 만성피로 치료 방안 모색은 증상을 완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인지 행동 치료(CBT)는 노력을 기울이는 데 대한 장벽을 낮추고 동기를 부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일부 임상 전문가들은 에너지 전달을 높이기 위한 보충제(전해질, 비타민 B12) 복용을 권장하고 있다.
나아가 연구자들은 독성 물질 축적의 결과일 수 있는 신경 염증을 줄이는 약물 치료에도 주목하고 있다. 알코올 및 오피오이드(아편성 진통제) 중독 치료에 사용되는 저용량 날트렉손이 신경 염증을 줄이는 효과가 있는 지에 대한 시험이 진행 중이다.
학계는 피로를 유발하는 경로가 질병마다 겹칠 수 있어도 파킨슨병이나 만성 피로 증후군 등 서로 다른 질환에 단 하나의 약물이 만능으로 적용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있다. 앞으로의 연구는 “언제 피로감을 경청하고 언제 무시해야 하는가”에 대한 개인화된 기준을 제시하고, 더 정확한 진단 및 개입 방안을 마련하는 데 집중될 전망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