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내란 혐의로 기소할 수 없다는 검찰의 주장이 공분을 일으켰다. 검찰의 논리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2년 뒤 대법원은 두 사람의 내란죄를 인정하며 그 논리를 반박했다. 신군부가 정권을 세우는 데 성공했다 해도 내란에 대한 형사 처벌은 면할 수 없다고 했다.
그것은 쿠데타가 일어난 지 17년이 지나 이뤄진 ‘지연된 정의’였다. 내란에 성공할 경우 정권을 잡은 권력자가 힘을 잃을 때까지 내란을 처벌할 방법이 없는 뼈아픈 현실을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대법원은 국헌 문란의 목적 달성 여부와 관련 없이 이를 위해 폭행, 협박 행위를 하면 내란죄가 완성된다고 했다. 내란이 성공하지 못해도 그 시도만으로 내란죄 처벌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韓, 내란 성공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1심 재판부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판단한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윤 전 대통령의 궤변은 배척됐다. 친위 쿠데타는 실패했지만 헌정 질서를 무력화하려는 포고령,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와 선관위에 진입하는 폭동이 있었기에 내란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1심 판결에 따르면 한 전 총리는 그 쿠데타에 합법의 외양을 입히려 했다. 윤 전 대통령이 열 생각이 없었던 국무회의를 제안했고, 계엄을 선포하러 가는 윤 전 대통령을 말리지도 않았다. 재판부는 한 전 총리에게 불법 계엄을 막아야 할 의무를 저버린 ‘부작위’의 죄가 있다며 23년형을 선고했다. 여기까지가 그에게 내릴 수 있는 사법적 단죄일 것이다. 그런데 판결문에 눈에 띄는 내용이 있다. “내란이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일원으로 가담하기로 선택했다”는 대목이다.
계엄이 실패한 이후 이듬해 대선 국면까지 한 전 총리의 행보는 국민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비정상의 연속이었다. 그 6개월의 언행은 그가 계엄을 저지할 책무를 외면한 부작위를 넘어 계엄의 실패를 뒤집으려는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게 한다.
우선 한 전 총리는 윤 전 대통령 탄핵 심판을 위한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했다. 당시 헌법재판관은 3명이 공석인 6명이었다. 1명이라도 탄핵에 반대하면 기각인 상황이었다. 재판관 2명의 퇴임도 예정돼 있어 아예 탄핵 심판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었지만 한 전 총리는 끝내 등을 돌렸다.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자 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한 전 총리는 권한대행으로서 대선을 공정하게 관리해야 했다. 하지만 한 달 만에 대선에 출마하며 대행직을 내던졌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그를 대선 후보로 만들기 위해 경선으로 선출된 당의 후보를 쳐내는 황당한 날치기까지 벌이려 했다.
왜 대선 나가 정권 잡으려 했나
이 수상쩍은 6개월의 시간 동안 한 전 총리는 계엄의 밤 자신의 행위에 대한 진실은 숨겼다. 윤 전 대통령한테서 계엄 문건을 받지 않았다고 거짓말하거나 기억이 없다고 발뺌했다. 계엄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태도였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그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윤 전 대통령에게서 단전 단수 지시를 받은 사실을 알고서도 제지하기는커녕 독려했다’고 밝혔다. 계엄 문건을 받은 줄도 몰랐다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
그날 밤의 실상은 지난해 10월 용산 대통령실 폐쇄회로(CC)TV가 공개된 뒤에야 드러났다. 결국 한 전 총리는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계엄의 공모자가 될 수 있는 행동을 해놓고 계엄이 실패한 뒤엔 윤 전 대통령 탄핵 심판에 방해가 될 수도 있는 결정을 한 셈이다. 그다음엔 대선에 나가 정권을 잡으려는 시도까지 했다. 그의 뜻대로 됐다면 실패한 계엄은 실패로만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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