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완준

윤완준 기자

동아일보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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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부장을 거쳐 정치부장으로 있습니다. 베이징 특파원을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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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4-03-26~2024-04-25
칼럼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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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가 만난 사람]“존폐 위기 與, 수도권 민심에 닿을 촉수가 없다”

    《“총선 때 국민의힘이 뭘 잘못했는지 묻는 건 질문이 잘못됐어요.”국민의힘 윤희숙 전 의원은 선거 참패의 결정적 원인을 묻자 대뜸 이렇게 강조했다. 누구나 물을 법한 이 질문에 문제를 제기한 건 의외였다. 하지만 1시간 반여 인터뷰를 진행하며 이 도발적 반박이 그가 반복해서 강조한 “존폐 위기에 놓인 보수정당”을 관통하는 핵심임을 알 수 있었다.》국민의힘이 총선에서 참패한 지 8일 만인 18일 서울 종로구 경제사회연구원에서 만난 그는 선거에서 나타난 문제는 “증상일 뿐”이라고 했다. 증상을 나타나게 한 본질적 문제는 훨씬 더 깊은 곳에서 치유가 불가능할지도 모르게 곪아가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이번 선거 때 뭘 잘못했는지 묻는 건 단기적이고 대증적이에요. 이번 선거는 이미 여당이 불리한 판에서 시작했습니다. 그 불리한 판을 만든 여당의 문제가 뭘까요.” 그는 “집권 2년간, 아니 4년 전 총선 참패 이후, 더 나아가면 20년 전 한나라당 천막당사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 집권 2년간 정부 여당의 가장 큰 문제는 “민심에 둔감했다”는 것이다. 4년 전 국민의힘 전신 미래통합당이 참패했을 때도 똑같은 문제의식이 당내에서 나왔다. “그런데 4년간 달라진 게 없어요.” ‘차떼기당’ 비판 속에 ‘한나라당’ 간판을 떼고 천막을 쳤던 2004년. “그때도 민심에 둔감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외에서 주민과 함께 호흡하며 언젠가 보수정당을 지지할 잠재적 지지층을 확대하는 것이 살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달라진 게 있나요?”● “미움받는다는 느낌” 서울 서초갑에서 여유 있게 당선된 4년 전과 달리 윤 전 의원은 험지로 꼽히는 한강벨트 중-성동갑에서 그의 말대로 “어려운 선거”를 치렀고 낙선자가 됐다. 윤 전 의원은 그동안도 정부 여당에 대한 쓴소리와 직언으로 유명했다. 그런 그도 인터뷰 전 “지금 당이 완전 초상집이기도 하고, 낙선자로서 인터뷰하는 것이 이른 감이 있어 주저했다”고 했다. 설득 끝에 인터뷰에 응한 그는 “보수정당의 존폐”까지 거론하며 더욱 독하게 국민의힘이 처한 문제의 본질을 짚었다. 이번 선거 경험이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이번 선거 때 들은 민심을 먼저 물었다. “지지하지 않는 분들도 만나잖아요. 보수정당이 어떻게 해야 한다, 터놓고 얘기하는 분들이 없어요. 그만큼 우리 당에 신뢰가 없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오히려 적개심을 보이고 무엇보다 미움받는 느낌이었어요. 보수정당은 ‘있는 사람을 위한 정당 이미지’라는 거예요. ‘너는 괜찮아도 당이 싫어서 찍지 못하겠다’ 이런 상황을 바꾸지 못하면 보수정당의 미래는 없어요.” 그는 이 말을 덧붙였다. “그런 문제가 있다는 걸 스스로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그만큼 민심에 둔감할 정도로 촉수가 망가져 있다는 게 더 큰 문제예요.”● “수도권 민심 느낄 촉수가 끊겼다” 그가 말한 민심은 정확히 말하면 “수도권 민심”이다. 수도권 중에서도 여당 텃밭인 강남을 제외한 곳이다. 여당에 마음을 주지 않는, 아니 심지어 “미워하는” 시민들의 민심이다. 102 대 90. 그는 이 수치를 제시했다. 102는 더불어민주당이 수도권에서 차지한 지역구 의석수다. 90은 국민의힘이 전국에서 얻은 지역구 의석수다. “민주당이 수도권에서 얻은 의석수보다 국민의힘이 전국에서 얻은 의석수가 적어요.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정당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게 되는 거죠. 정말 밑바닥으로 내려가 길을 찾지 않으면….” ―수도권 민심이 왜 중요합니까. “전국 민심의 풍향계입니다. 전국에서 이촌향도한 사람들이 다 모여 있잖아요. 글로벌 도시로 상식과 합리성에 대한 기대도 높아요. 다시 말하면 전국의 민심이 응축돼 있을 뿐 아니라 정치 수준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거죠.” ―그런데 그 민심에 둔감하다는 건…. “그 민심을 온몸으로 느낄 촉수가 국민의힘의 몸에 없어요. 예민한 수도권 민심을 빨아들일 촉수가 다 끊겨 있다는 말입니다.” ―왜 그렇게 됐습니까.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정말 많이 느꼈어요. 수도권 출신 정치인이 당에서 전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구조예요. 4년 전에 대패했을 때 제가 초선이었죠. 그때도 똑같았어요. 당 이름을 바꾸고 이름에서 보수를 빼고, 이는 전혀 본질이 아니에요.” 윤 전 의원은 여기에 국민의힘의 패착이 있다고 짚었다. “수도권에서 전멸했으면 수도권 시민들과 소통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정책을 제시하는 게 정당이 할 일인데, 전혀 안 했어요.” 그의 목소리가 커져 갔다. “왜 그러냐고요. 수도권 정치인들은 대부분 낙선자들이거든요. 당선인보다 낙선자가 더 많죠. 그들이 선거 이후 시민들과 만나며 무엇에 실망했고 삶의 어떤 어려움을 해결해 줘야 하는지 듣도록 당이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구조 자체가 없어요.” 윤 전 의원은 “지금도 선거 패배 수습을 위한 매우 피상적인 얘기만 오가고 있다”며 “이러면 4년 뒤 총선에서 수도권 의석수는 더 쪼그라들 것”이라고 했다.● “산업화 세대-강남 영남 의존 안 돼”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산업화의 승리의 기억을 가진 세대에만 의존하거나 특정 지역에 의존하면 안 돼요. 고단한 삶을 사는 주민들에게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는 당으로 가려면 촉수를 그 외 세대와 지역으로 뻗어야 합니다.” 그가 말한 특정 지역은 강남과 영남이다. “어느 사회나 두 날개를 가져야 해요. 진보적인 철학에 매력을 느끼는 젊은이도 있고 보수적인 철학에 자긍심을 느끼는 젊은이도 있어요. 그런데 보수적 지향을 가졌거나 가질 수도 있는 젊은이들을 당으로 끌어들이는 통로가 없잖아요. 보릿고개 기억을 가진 고령층 이외 세대들이 보수정당을 왜 사랑해야 하는지, 그에 대한 답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흘러내려 가야 해요. 그런데 그 회로가 막혀 있어요. 이들이 우리 당의 잠재적인 지지자들인데 말이죠. 이들과 소통하도록 당이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해요.” ―구체적으로 무엇이 바뀌어야 합니까. “낙선자를 포함해 수도권 충청의 민심을 전할 수 있는 이들이 지역에서 주민들과 호흡하고 우리가 꿈꾸는 사회가 뭔지 계속 공감대를 넓혀 가도록 당의 체질을 바꿔야죠. 이들 지역의 3040 낙선자들의 당협 활동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당직에 기용해 당내 의사 결정에 참여하도록 해야 해요.”● “손을 잡아 일으키는 지혜로운 포퓰리즘” ―그게 정책으로 연결돼야 실력 있는 정당이 되는 것 아닐까요. “그렇죠. 지금 정부가 능력 있는 사람을 밀어주고 규제를 완화하는 건 잘하고 있다고 봐요. 하지만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서민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애정을 더 보여야 합니다. 정치의 본질이 그것이죠.” 그는 이 대목에서 “지혜로운 포퓰리즘”이라는 표현을 썼다. ‘포퓰리즘 파이터’로 불리며 전임 정부의 현금 살포성 정책을 강하게 비판해온 윤 전 의원이 이런 말을 한 건 의외였다. “지혜로운 포퓰리즘은 나라를 말아먹는 갈라치기 포퓰리즘과는 달라요. 불안한 시대에 어려운 상황에 처한 국민에게 정부가 사랑한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거죠. 이를 표현하는 방법은 그 어려움을 헤쳐나갈 버팀목을 제공하는 거예요. 모든 사람에게 돈을 뿌리며 쇠고기 사먹으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고물가로 고통받는 서민을 위해 돈을 왜 못 씁니까. 재정건전성은 이런 어려운 상황에 어려운 이들을 위해 돈을 쓰라고 유지하는 겁니다. 지금은 재정건전성을 어느 정도 허물어서라도 한계에 몰린 이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 지혜로운 포퓰리즘입니다.” ―따뜻한 정당으로 지향점을 바꿔야 한다는 것인가요. “그동안 보수정당에 결핍된 것이 ‘내가 다시 일어날 수 있게 손을 잡아주는 따뜻한 느낌이 없다’는 점이에요. 당의 지향을 바꿔야 합니다. 이것 역시 민심에 둔감하면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면 당의 미래는 없는 거죠.” 윤 전 의원에게 총선 참패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보인 모습에 대한 평가를 여러 차례 물었다. 그는 “직언은 내 스타일이지만 지금은 윤 대통령이 방향을 고심하고 있을 때이니 아직 평가할 시점이 아니다. 결과물이 나온 뒤 직언하겠다. 지켜보겠다”고 했다. 윤 전 의원에게 당권에 도전할 생각이 있느냐 물었다. 그는 “당을 위해 목소리를 내겠다”는 점은 분명히 하면서도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4년 전 대학교수 관두고 정치에 뛰어들 때 공적인 삶을 살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을 돌려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죠. 낙선자로서, 정치인으로서 어떻게 그 목표를 채워 갈지 많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창이 열릴 거라 생각합니다.”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 2024-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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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윤완준]휴브리스, 대통령의 추락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의료 파업에 참여한 의사들의 면허를 다 정지시켜야 한다는 취지로 주변에 말했다고 한다. 그래야 의사들이 정신 차린다는 인식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총선 직전인 이달 초 발표한 의대 정원 증원 담화 초안은 공개된 담화보다 의사들에 대한 훨씬 더 강경한 비판이 담겨 있었다. 참모들이 대화 가능성을 더 열어둬야 한다고 설득해 그나마 발표된 담화로 정리됐다. 하지만 그 담화마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데 할애됐다. 담화가 나온 뒤 참모들은 내용이 어떻게 읽힐지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다.불통은 최고 권력 취한 오만에서 온다 국정 운영에 대한 윤 대통령의 태도, 인식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윤 대통령은 뚝심이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민심은 이를 불통이라고 읽었다. 불통은 최고 권력에 취한 오만에서 온다. 휴브리스(Hubris). 권력자의 오만을 가리키는 이 말이 대통령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가른다. 권력자의 추락 여부를 결정하는 그 오만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공교롭게도 이번 총선 민심이 선택한 윤 대통령 심판은 조국혁신당 돌풍과 함께 일어났다. 문재인 정부 시절 검찰총장 윤석열의 이미지는 공정과 상식, 불의에 저항하는 뚝심이었다. 정권의 반대, 공격에도 굽히지 않고 원칙대로 조국 수사를 지휘한 리더십이 그에 대한 지지를 높였다. 책 ‘위기의 대통령’(함성득)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2019년 9월 6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단둘이 저녁을 먹었다. 윤 총장이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문제를 설명하자 문 대통령은 “그럼 조국이 위선자입니까?”라고 물었다. 윤 총장은 “저의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안 된다”라고 한 뒤 “조국 부인 정경심을 기소하겠다”고 보고했다. 문 대통령은 “꼭 그렇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고 윤 총장은 “법리상 그렇게 해야 한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이런 모습이 뚝심이자 원칙일 것이다. 당시 여권이 윤석열을 공격하면 할수록 윤석열의 존재감은 커졌다. 윤 대통령을 잘 아는 한 정치학자는 “지금은 공정과 상식, 원칙 같은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보여줬던 리더십이 안 보인다”고 했다. 오히려 그 좋은 자질이 고집과 불통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조국혁신당의 돌풍을 “역사가 거꾸로 반복되는 아이러니”라고 했다. 조국 대표는 그런 상황을 십분 이용했다. 자신을 윤 대통령의 정치적 희생자이자 순교자로 규정하고 정권 심판을 윤 대통령 업보로 부각했다. 왜 그런 전략이 먹혔나. 부인 김건희 여사 디올백 수수 논란에 대해 분명한 사과 한마디 제대로 하지 않은 윤 대통령의 모습은 국민 눈높이에선 조국을 수사한 검찰총장 윤석열의 공정, 상식과 반대였다. 민심은 5년 전 조 대표에게 ‘내로남불’을 물었고, 이제 윤 대통령에게 ‘내로남불’을 물은 것이다.검사 마인드 버리고 국민에 고개 숙여야 대통령에게 모든 정보가 집중되니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민심의 도도한 흐름을 읽지 못한다. 뚝심이 고집으로 변하는 건 여기서 나오는 최고 권력자의 오만 때문이다. 많은 권력자들이 이 때문에 추락했다. 윤 대통령의 휴브리스는 김 여사, 이종섭, 의대 정원 증원 문제 등 곳곳에서 드러났다. 국민에게 진정 고개를 숙이고 겸손한 태도로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는 것. 많은 이들이 윤 대통령에게서 그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한다. 범죄자 때려잡는 검사 윤석열이 아니라 정치인 대통령 윤석열로 마인드를 바꿔야 가능한 일이다.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 2024-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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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윤완준]윤-한 갈등은 정말 끝났나

    찐윤(진짜 친윤석열) 국민의힘 이철규 의원은 지난해 12월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추대 과정의 여론전을 주도했다. 그달 비윤계에서 한 위원장 추대에 반발이 나올 때 이 의원은 “당원과 민심, 의원들의 선택은 압도적으로 한 위원장을 향하고 있다”고 했다. 친윤은 일사불란하게 한 위원장 추대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 의원을 필두로 한 친윤은 한 위원장 말고는 위기의 국민의힘을 반전시킬 카드가 없다고 봤다. 그런 그가 총선 후보 등록일 시작(21일) 하루 전날 “밀실”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한 위원장과 공천 갈등이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한 위원장의 공천이 한동안 ‘조용한 공천’ 평가를 받았지만 양측의 갈등은 누적되고 있었다. 공천 본격화 전 1월 윤석열-한동훈 1차 갈등의 본질이 공천 파워게임에 있다고 본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한 위원장이 이 의원에게 공천 관련 오해를 낳을 수 있으니 자신의 사무실에 자주 오지 말라는 취지로 얘기했을 때부터 균열은 시작됐다. 이 의원은 20일 회견에서 “상황의 본질, 전후관계를 밝히는 게 국민과 당원에 대한 도리라 생각하고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내가 월권이면 한동훈도 장동혁도 모두 월권이고 잘못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의원은 윤심(윤 대통령 의중)을 읽으며 이를 당에 전해왔다. 그런 점에서 이 의원의 회견은 한 위원장 공천에 대한 친윤 진영의, 나아가 윤 대통령의 잠복했던 불만을 쏟아낸 셈이다. 특히 ‘한 위원장에게 특정 개인을 요구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 의원이 한 말이 눈길을 끈다. “한 위원장에게 주기환 위원장 (추천을) 얘기했다.” 주기환 광주시당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20년 지기다. 윤 대통령과 특수 관계인 인물의 비례 추천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며 “이게 사천이냐”고 했다. 그날 밤 늦게 발표된 비례대표 후보 조정 결과에 주 위원장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윤 대통령은 민생특별보좌관을 신설해 주 위원장을 임명했다. 위인설관 논란이 뻔히 보이는데도 한 위원장에 대한 윤 대통령의 불쾌감을 드러내는 방식이 노골적이었다. 이 의원이 회견을 연 날은 여권이 ‘이종섭-황상무’ 문제를 둘러싼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 2차 갈등 봉합 분위기를 만든 날이다. 이 의원은 이런 분위기에 자칫 찬물을 쏟을 수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여당 참패 위기론이 그토록 분출하는데도 공천 갈등의 치부를 밖으로 드러내며 분노를 쏟아냈다. 공천을 둘러싼 한 위원장과 친윤 간 갈등, 나아가 윤-한 갈등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격렬하게 진행됐는지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정치인들은 국민을 위한 공천이라고 하지만 실제론 자기 사람을 넣기 위한 권력 투쟁이다. 남이 삼킨 음식을 목구멍에서 빼서 내 입에 넣는 게 공천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윤 대통령의 임기는 3년 남았다. 차기 유력한 대권 주자인 한 위원장의 향방은 여당 총선 성적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총선 결과가 어떻든 여당이 이전처럼 윤 대통령 말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라는 보장이 없다. 윤-한 갈등의 긴장은 현재진행형일 가능성이 높다. 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 2024-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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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윤완준]진보당 우려는 색깔론 아니다

    2012년 5월 4일 금요일 오후 2시경. 국회 의원회관에서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원회 회의가 시작됐다. 통진당은 당시 총선에서 민주통합당과의 야권 연대로 의원 13명을 당선시켰다. 그중 6명이 비례대표였다. 이날 회의가 열린 이유는 비례대표 선출 경선 부정 의혹 때문이었다. 당시 통진당의 구성은 이랬다. 우선 경기동부연합을 핵심으로 하는 민주노동당(NL·민족해방계열) 출신들. 이들을 당권파라 불렀다. 국민참여당(친노무현 그룹) 출신과 진보신당 탈당파(PD·민중민주계열)가 비당권파였다. 이정희 유시민 심상정 공동대표가 각 계파를 대표했다. 비당권파를 중심으로 비례대표 부정 경선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 보고서를 냈다. 비당권파는 공동대표단 사퇴뿐만 아니라 경선으로 순번을 받은 비례대표 후보 14명 모두 사퇴해야 한다는 안건을 올렸다. 당시 현장 취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 회의가 그렇게 오래 걸릴지 몰랐다. 33시간 40분. 회의는 5일 토요일 새벽을 넘겨 그날 오후 11시 40분경에야 끝났다. 그때 기사에 “진보의 가면 뒤에 숨었던 통진당 당권파의 비민주적, 비상식적 민낯을 들여다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고 적었다. 그들은 부정선거 의혹의 진상을 밝히길 거부하며 자기 편 감싸기에 바빴다. 그들이 내세운 것은 당원이었다. 이정희 공동대표는 “국민을 두려워하는 만큼 당원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했다. 안건 표결을 “초헌법적인 쿠데타”라고 비난했다. 진상조사 보고서를 “사실이 아닌 부실한 의혹만 제기한 천안함 보고서 같은 진상 조작 보고서”라고 비난했다. 당권파들은 회의를 방해하며 비당권파들을 감금하려 하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민노당 대표를 지낸 강기갑 당시 의원마저 이정희 대표에게 “야욕과 집착을 끊고 버려야 할 땐 정말 버려야 한다”고 했다. 유시민 대표가 “당 통합 전 느꼈던 막연한 두려움의 실체가 나를 힘들게 한다”며 눈시울을 붉히던 모습이 기억난다. 8일 뒤. 통진당 중앙위원회가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렸다. 당권파는 단상에 난입해 비당권파 대표단을 집단 구타했다. 진중권 교수는 당시 “마치 사교 집단의 광란을 보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해 통진당은 분당으로 치달았다. 비당권파는 이석기 김재연 당시 의원의 사퇴를 요구했다. 12년 뒤. 더불어민주당은 진보당에 위성정당 비례대표 3석을 보장했다. 진보당은 통진당 당권파의 후신이다. 진보당이 비례대표 후보 3명을 확정했다. 통진당 후보로 총선에 출마했던 이는 이석기 전 의원의 사면 복권 운동을 주도했다. 진보당 홈페이지에 있는 강령을 보니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해체해 민족의 자주권을 확립한다”고 한다. 3월 첫째 주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진보당 지지율은 1%다. 자력으로 비례대표 의석을 확보할 수 있는 3%에 못 미친다. 더군다나 민주당과 진보당은 지역구에서도 단일화를 하고 있다. 서울 서대문을 김영호, 경남 양산을 김두관 의원이 이미 진보당 후보와 단일화했다. 12년 전의 그 김재연 전 의원이 경기 의정부을 진보당 후보로 출마했다. “민주당이 통진당 부활의 숙주가 됐다”는 비판을 민주당은 색깔론으로 치부한다. 12년 전 통진당 당권파가 벌였던 행태를 떠올리면 색깔론이 아니다. 통진당 당권파는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했던 세력이다. 그 민낯이 4월 총선 이후 다시 드러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 2024-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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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윤완준]野 공천 파동, 이재명 리스크

    “공천 잡음이 이어지며 우리 당에 따가운 비판이 있다.” “공천의 핵심은 잣대가 하나여야 하는데 자기편한테는 잣대가 구부러지고 미운 놈한테는 잣대를 꼿꼿이 세워 문제가 생겼다.” 더불어민주당의 ‘비명 공천 학살’ 논란 관련 발언이 아니다. 12년 전 민주통합당 공천 논란 때 얘기다. 첫 번째 발언은 김부겸 당시 최고위원, 두 번째 발언은 정동영 당시 상임고문이 했다. 당시 민주통합당은 이른바 ‘노이사’ 공천 논란이 지도부 내분으로 번졌다. 친노, 이화여대 라인, 486 운동권에 공천하고 옛 민주당 인사 등 비노 인사들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해서 노이사였다. 이들을 중심으로 공천 대상을 미리 결정하고 회의에서 이를 밀어붙이고 경선을 지원했다는 비판이 거셌다. 그해 총선을 한 달도 남겨 놓지 않은 시점, 박영선 당시 최고위원은 “당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 지도부 누군가는 책임지고 국민께 사죄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며 사퇴했다. 2011년 말 친노계와 시민단체 인사들 중심으로 혁신과통합을 만들었다. 2017년 대통령이 된 문재인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 이해찬 전 총리가 주축이었다. 2007년 대선 패배 이후 스스로 폐족이라 부르며 2선으로 물러났던 이들은 총선을 앞두고 다시 등장했다. 민주당과 합당으로 민주통합당이 탄생했다. 혁신과통합 세력이 당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공천 파동이 터졌다. “이들이 총선 승리보다 (2012년) 대선에서 친노 후보를 만들기 위해 당을 장악하려 무리한 공천을 하고 있다”는 당시 당내 비판이 지금도 기억난다. 민주통합당은 그해 총선 한 달 전 통합진보당과 야권 연대를 추진했다. 그에 힘입어 통진당은 13석을 얻었다. 통진당은 경기동부연합이 주축이 된 당권파의 비례대표 경선 부정 의혹으로 총선 뒤 사분오열된다. 그 과정에서 반대파를 무차별 린치하는 당권파의 민낯이 드러난다. 지금 이낙연 대표가 이끄는 새로운미래에 참여하고 있는 당시 통진당 새로나기특별위원회 박원석 위원장은 이렇게 비판했다. “당은 특정 정파의 도구가 아니다. 그럼에도 당권파는 민주적 운영 원리나 질서를 파괴하면서 당과 국민보다 정파 논리와 이익을 앞세우는 모습을 보였고 ‘당원’의 이름으로 그런 행위를 합리화하려 했다.” 2012년 총선 결과는 새누리당 152석, 민주통합당 127석. 민주통합당이 과반을 내주며 패했다. 2012년 상황을 잘 아는 민주당 의원은 “민주당이 지난 10여 년간 선거 과정에서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던 문제들을 한꺼번에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친노 계파 공천, 통진당과 후보단일화로 그해 총선에서 졌다. 통진당 국회 입성으로 민주당은 19대 국회 시작 이후에도 계속 욕을 먹었다”는 것이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박용진도 공천 걱정하지 않는 당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의원평가 하위 20%’의 칼날은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국면을 비롯해 이 대표 비판 의원들을 유독 향하고 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친명 지도부가 위성정당 참여 대가로 통진당 후신인 진보당에 의석수 최소 4석 확보 길을 열어준 데 대해서도 “정당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통진당 당권파에 똑같아서 그런 것은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이길지 질지는 지금 알 수 없다. 하지만 공천 과정은 한 정당의 민주주의 수준을 보여준다. “총선에서 져도 이재명당을 만들겠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비명계뿐 아니라 중립 성향 의원들에게서도 나오고 있다.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 2024-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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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윤완준]‘유사 정당’ 돼가는 정치 유튜브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2022년 대선 때 정치 유튜브 채널을 집계해보니 600여 개였다. 그중 유권자에게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본 채널은 110개였다. 대선 기간 이 채널들이 생성한 영상 2만7000개에 달린 댓글 700만 개를 분석했다. 그랬더니 인신공격, 정치혐오, 의혹제기 등의 부정적 댓글이 중립적이거나 긍정적으로 분류한 투표독려, 후보응원, 상호토론 등 주제 댓글보다 훨씬 많았다. 상대 진영에 대한 증오를 부추긴 건 정치인이다. 유튜브는 그 증오를 증폭시키는 대표적 통로가 됐다. 영국 저널리스트인 요한 하리가 쓴 ‘도둑 맞은 집중력’에 따르면 유튜브는 사용자의 시청 시간이 늘어날수록 많은 돈을 번다. 하리는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잔인하고 충격적이고 극단적인 영상을 볼 때 시청 시간이 늘어나는 걸 알고 있다. 유튜브는 계속 영상을 시청하게 하려고 점점 더 극단적인 영상을 보여준다”고 했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상대 진영을 저주하는 극단적 언어가 담긴 자극적 영상을 더 많이 추천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특히 총선이 다가오면서 정치 유튜브 채널들이 ‘유사 정당화’되고 있다는 게 장 교수의 진단이다. 사실상 정당에 준하는 권력을 행사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어떤 점에서 그런지 그의 분석을 들어봤다. 우선 정치 유튜브 채널은 공천관리위원회처럼 의원 평가를 하고 있다. 문제는 특정 계파를 타깃으로 한다는 점이다. A 채널은 지난해 9∼12월 16개 지역구 현역 의원에 대한 공약 평가 영상 13개를 내보냈다. 평가 대상이 된 더불어민주당 의원 8명은 모두 비명(비이재명)계였다. 이들은 모든 평가 항목에서 대부분 상중하 중 ‘하’ 평가를 받았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에 대한 평가 섬네일엔 ‘부산의 강남(해운대갑) 하태경 공약 이행은’이라는 중립적인 제목이 달렸다. 민주당 조응천 의원에게는 ‘관종행위 몰두한 조응천 지역구 공약이행 탐방’ 제목이, 민주당 송갑석 의원에게는 ‘지역구 거널난 송갑석’ 제목이 달렸다. 둘째, 의원 지지율 여론조사를 발표한다. B 채널은 이 채널과 관련 있는 여론조사 업체가 실시한 지역구별 가상대결 조사를 발표하고 있다. 비명계 의원 지역구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셋째, 사실상 총선 예비후보를 검증하거나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C 채널은 한 코너에 주로 친명(친이재명)계 총선 도전자들을 출연시키고 있다. ‘이재명 대표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등의 질문을 던진다. 강성 지지층 앞에서 정체성을 검증하는 셈이다. 정치 유튜브 채널들은 ‘유사 공천권’을 행사할 정도의 권력이 돼가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강성 지지층에 어필하고 구독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더욱 자극적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유튜브는 지난해 12월 진행된 국내 앱 이용자 수 조사에서 처음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극단적 증오를 부추기는 내용들이 자극적 콘텐츠를 추천하는 알고리즘을 타고 더욱 확산된다. 이전엔 문제 콘텐츠는 생산자에게 책임을 물어야지 배포자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생각이 강했다. ‘수만 권 책을 진열한 서점 주인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유럽이 도입한 디지털서비스법(DSA)은 플랫폼 기업에 허위정보 등 유통을 막을 책임을 지운다. 우리도 배포자인 유튜브가 문제를 확인하고 투명하게 공개할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해야 할 때가 왔다.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 2024-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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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尹-韓 갈등’ 본질은 공천 파워게임[오늘과 내일/윤완준]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함께 창밖을 바라봤다. 정면충돌했던 두 사람이 이제 같은 곳을 바라본다는 연출이다.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을 여전히 검사 후배로 생각한다면 갈등은 완전히 풀리지 않을 것이다. 총선을 70일 앞둔 두 사람 갈등의 본질은 여당 공천, 즉 권력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리스크, 이를 제기한 김경율 비대위원 문제가 1차 갈등의 표면적 이유지만 이면은 공천 주도권을 둘러싼 파워게임이다. 한 위원장은 17일 김 위원과 어깨동무를 하며 주먹을 치켜들었다. 그는 “이재명 사당으로 변질된 안타까운 민주당을 상징하는 얼굴이 정청래”라며 김 위원의 마포을 출마를 직접 밝혔다. 김 위원은 그날 한 방송에 출연해 김 여사 리스크를 언급하며 “프랑스 혁명이 왜 일어났을까. 당시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 난잡한 사생활이 하나하나 드러나면서 감성이 폭발한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한 위원장이 김 위원의 마포을 출마 의지를 공개한 걸 보면서 공교롭게도 한 위원장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겨냥해 쓴 “사당화”라는 표현으로 한 위원장을 비판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주변에 “한 위원장이 줄 세우기 사천을 하고 있다는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대통령을 뒷배 삼았다”는 표현을 썼다는 것이다. 한 위원장이 윤 대통령 자신의 신뢰를 이용해 자기 정치를 한다는 불신이다. 사퇴 요구 논란이 불거지기 이틀 전인 19일 밤 이관섭 대통령비서실장은 윤 대통령의 뜻이라며 “공천은 당에서 알아서 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에게 공천 관련 특혜를 기대하지 말라”고 실명으로 밝혔다. 김 위원의 출마 의지를 직접 밝힌 하루 전날, 한 위원장은 이 대표 지역구 계양을 출마 의지를 밝힌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과 어깨동무를 했다. 주먹을 치켜드는 모습까지 김 위원 때와 비슷했다. 윤 대통령이 원 전 장관에 대해 사천 문제를 제기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비대위원장은 임시 관리인이니 중진들과 잘 상의해야 한다.” 한 위원장 취임 전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에게 당부했다는 이 말에 윤 대통령의 속내가 담겨 있다고 본다. 임시 관리인이 자기 정치를 한다는 것. 사천 논란은 김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한 괘씸한 김경율을 사퇴시키라는 경고였을 것이다. 한 위원장이 취임 뒤 윤 대통령과 거리를 두는 동안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정체되고 한 위원장 지지율은 급상승하는 디커플링이 생겼다.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의중을 당에 전해온 ‘찐윤’ 이철규 의원에게도 자신의 사무실에 자주 오지 말라는 취지로 얘기했다고 한다. 당에서는 윤 대통령이 꼭 챙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용산 참모들의 이름이 거론돼 왔다. 총선 앞 공천은 권력이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20여 년 인연이지만 그간 검사 선후배, 대통령과 장관 관계였다. 권력을 나눈 사이가 아니다. 1차 갈등은 봉합 수순이지만 갈등의 발단은 해결되지 않았다. 여권에서 완전한 봉합이 아니라고 얘기하는 것에 이런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한 위원장은 30일 ‘윤-한 갈등 봉합’ 관련 질문에 “대통령과 저의 관계가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후배에게 뒤통수 맞았다”는 윤 대통령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한 위원장의 바람이 쉽게 이뤄지긴 어려울 것이다. 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 2024-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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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윤완준]“비핵화 위해 핵보유” 美에 요구해야 한다면

    “우리가 비핵화를 위한 핵보유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미국에 얘기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17일 만난 유성옥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가 말한 비핵화는 북한 비핵화, 핵보유는 한국의 핵보유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차원에선 서로 모순되는 말처럼 보이지만 그는 이를 위해 정교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국가정보원 산하 싱크탱크다. 유 이사장은 국정원에서 대북 정보 업무만 26년을 한 자타 공인 북한 전문가다. 그가 가정한 이 전략이 필요한 상황은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다. 지금 이 가능성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다음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가 북핵 동결, 즉 핵보유국 인정을 제재 완화 및 북-미 관계 정상화와 맞바꾸는 직거래를 시작하려 할 때다. 이 가능성 역시 높다. 제재로 인한 경제난을 벗어나려는 김정은과 한반도 문제에서 발을 빼고 싶은 트럼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모든 말과 행보는 트럼프에게 맞춰져 있다. 김정은은 미 대선까지 도발 강도를 높일 것이다. 트럼프와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이뤄질 것이다. 북한의 대미 위협이 더욱 현실화되고 있다고 미국인들이 느끼게 하려는 게 김정은의 의도다. 트럼프는 “봐라, 바이든의 실책 때문에 상황이 엉망이 되고 있다. 미국은 더욱 위험해지고 있다. 내가 집권하면 김정은과 잘 얘기할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김정은은 11월쯤 되면 “정말 큰일 났다. 트럼프가 대통령 안 되면 워싱턴 뉴욕이 공격받을 수도 있다”는 미국인의 불안을 자극할 대형 도발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진짜 두려워할 게임체인저는 핵추진전략잠수함 개발이다. 김정은은 수개월씩 바닷속에서 이동한 핵잠이 불쑥 미국 앞바다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할 기술을 개발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기술을 러시아가 북한에 전수할 수 있기에 미국이 북-러 군사협력을 극도로 경계하는 것이다 . 트럼프 집권이 현실화되면 트럼프는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고 미 본토 타격은 막자”는 여론을 김정은과 담판의 명분으로 삼을 것이다. 김정은은 그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SLBM은 포기할 테니 전술핵무기는 인정해 달라”며 핵군축 협상 요구를 할 것이다. 거래가 잘된다면 북-미 관계 정상화, 제재 해제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면 트럼프가 집권 시절 이미 많이 얘기한 주한미군 철수가 이슈가 될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비즈니스맨인 트럼프에게 사정해 봐야 안 된다. 한미동맹을 믿을 수 없다면 트럼프가 우리와 거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유 이사장의 생각이다. “북핵을 용인하면 한국도 핵무장할 수밖에 없다. 한시적으로라도 핵을 가져야 핵균형이 이뤄지고 그래야 북한과 핵폐기 협상을 할 수 있다”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핵보유가 일본 대만의 핵도미노로 이어질 수 있다는 미국의 우려를 이용해 트럼프를 압박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과 가까워지는 대신 한국을 중국에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기도록 중국과의 관계도 이용할 정도로 대담해야 한다고 유 이사장은 말했다. 이는 트럼프 당선이라는 가정의 영역이다. 하지만 김정은은 이미 이런 구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본다. 동북아 질서의 판을 우리가 흔들 수도 있다는 대담한 카드까지 갖출 준비를 지금 정부는 하고 있나.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 2024-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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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 압승한 날… 김정은 ‘핵 직거래’ 도박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집권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한국과의 대화를 완전히 단절한 채 차기 미 행정부와 핵보유국 인정 직거래를 시도하겠다는 위험한 도박을 시작했다. 16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김 위원장의 전날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 발언은 이런 근본적 노선 전환을 분명히 보여준다. 김 위원장은 “한국은 불변의 주적” 헌법 명기,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등 대남기구 폐지를 지시했다. 한국은 북핵 문제 등 어떤 대화나 교류의 상대도 아니라는 선언이다. 김 위원장은 미국을 비판했지만 대미 대화 단절은 거론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트럼프 전 대통령은 15일(현지 시간) 미 대선의 첫 관문인 공화당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에서 과반 득표율로 압승을 거뒀다. 트럼프 전 대통령 대세론이 본격화된 시점에 김 위원장이 내놓은 발언은 조만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이 예상되는 가운데 북-러, 북-중 밀착에 기대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을 고립시키고 판을 흔들겠다는 새로운 대외 전략의 시작이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11월 미국 대선에서 집권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자신이 직접 트럼프 전 대통령과 북핵 동결과 제재 해제 담판에 나서는 게 가능하다고 보고 윤석열 정부를 이 거래에서 배제하는 통미봉남을 시도하겠다는 뜻을 노골화한 것”이라고 당국도 보고 있다. 대북 압박 정책 위주의 우리 정부 스탠스가 애매해질 수도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현 정부의 대북, 외교안보 정책에 가장 큰 도전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15일 “헌법에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같은 표현을 삭제하고 한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으로 간주하도록 교육하는 내용을 반영하라”고 지시했다. 북한은 이날 남북 회담과 교류 업무를 담당하는 조평통과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국을 폐지했다. 김 위원장이 “헌법에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 평정, 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시키는 문제’를 반영하라”고 한 대목도 눈에 띈다. “통일 개념을 완전히 제거하라”면서도 ‘김정은식 무력통일 노선’을 공식화했기 때문이다.김정은, ‘트럼프 시즌2’ 핵동결-제재해제 담판 노려… 南 완전배제 정치부장의 D브리핑바이든의 한미일 3각공조 흔들고… 서방제재 풀어 경제난 탈출 모색김일성-김정일 통일노선까지 부정“영토-영해 0.001㎜ 침범 땐 전쟁”… 尹 “北 스스로 반민족적 집단 자인” 김 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한국과는 대화도 교류도 하지 않겠다는 남북 관계의 근본적 전환을 선언한 반면 미국에는 “반공화국 대결 정책”을 비판하면서도 대화 단절을 거론하지 않았다. 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11월 집권할 경우 핵 동결과 대북 제재 해제를 맞바꾸고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이른바 ‘김-트 직거래’가 가능하다고 김 위원장이 판단했다는 유력한 증거다. 한국을 대화, 교류 상대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근본적 변화를 헌법에 반영하겠다는 공언 이면엔 트럼프 집권 시 가능하다고 본 북-미 간 직접 협상에서 어떤 경우에도 한국을 배제하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실제로 북핵 문제에서 김 위원장과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2019년 이른바 ‘하노이 노딜’ 전까지 두 사람은 직접 협상에 적극적이었다. 북핵 동결 카드는 하노이 노딜 이후 협상 재개를 위해 당시 트럼프 정부에서 거론됐던 방안이다. 미 정치 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북핵 동결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최근 보도하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가짜뉴스”라고 부인했지만 북핵 등 한반도 문제에서 발을 빼고 미중 패권경쟁에 집중하려는 그의 구상이나 집권 시절 보인 행보를 보면 개연성이 작지 않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4일 아이오와 코커스를 하루 앞둔 유세에서도 “김 위원장은 똑똑하고 터프하다. 나와 잘 지내서 미국이 안전했다”고 주장했다.● 통미봉남에 통일봉남까지 韓 고립 시도 김 위원장은 이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해야 조 바이든 미 행정부에서 대폭 강화된 한미일 3각 협력에 균열을 내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인한 경제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실제 김 위원장은 2018년 싱가포르 북-미 1차 정상회담에 나서면서 북핵 동결과 제재를 맞바꿔 미국 등의 경제 지원을 받는 발전 전략이 가능하다고 군부를 설득했다는 게 정통한 대북 소식통의 전언이다. 하지만 하노이 노딜 직전까지 북-미는 협상의 디테일에서 진척이 없었다. 협상 결렬 이후 분노한 김 위원장은 북-미 간 북핵 협상 전략을 버린다. 이후 글로벌 신냉전 구도에 올라타 러시아, 중국과 밀착해 각종 협력을 강화하면서 경제난 위기를 견뎌내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심각해지는 경제난을 돌파하고 주민들의 불만을 무마하기는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도 사이가 나쁘지 않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하면 한반도 정세의 판을 다시 흔들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뿐 아니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납북자 문제에서 북-일 대화에 적극적이다. 이를 이용하면 트럼프 전 대통령 집권 시 통미봉남은 물론이고 통일봉남으로 한미일 3각 협력을 무너뜨리고 한국 고립이 가능하다고 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이 “한국을 배제한 채 미국 일본과 대화하려는 신호”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 카드를 위해 북한은 미 본토를 사정권에 둔 신형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물론이고 미국의 주요 핵전력이 있는 괌 미군기지를 타격할 신형 고체연료 극초음속 미사일까지 발사하며 도발 강도를 높이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집권 시절 2018년 북-미 간 협상이 본격화되기 전에도 2017년 북한은 도발 강도를 최대로 끌어올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당시 전쟁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최근 대남 초토화를 위협하며 “전쟁을 피할 생각이 없다”고 공언하는 것도 이런 불안감을 자극하려는 것이다. 당국자들은 이 때문에 “트럼프 집권 시 김정은-트럼프 직거래로 윤석열 정부가 곤란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며 트럼프 리스크를 우려한다.● “김정은 정권 안전 위해 영구 분단 추구” 최근 한국을 “주적”, “적대적 교전국”으로 규정한 김 위원장은 15일 “평양의 남쪽 관문에 꼴불견으로 서 있는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도 철거하라”고 지시했다. 자신의 할아버지 김일성, 아버지 김정일이 내세운 통일 노선도 부정해 버린 것이다. 북방한계선(NLL)이 “불법 무법”이라고 주장한 뒤 “대한민국이 우리의 영토, 영공, 영해를 0.001mm라도 침범한다면 그것은 곧 전쟁 도발로 간주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장기화 속 심각해지는 경제난으로 인해 누적되는 주민들의 체제 불만을 외부의 적, 즉 한국에 돌리려는 의도다. 이는 한국에 대한 동경이 주민들 사이에 퍼지자 이를 대남 적개심으로 돌리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체제 내부의 불만이 크다는 뜻이다. 김천식 통일연구원장도 “김정은 정권의 안전을 위해 영구 분단을 추구하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 한국에 대한 동경이 확산되지 못하도록 남북 관계를 단절시키려는 것”이라고 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대남 도발의 책임을 현 정부에 돌리는 ‘갈라치기’ 수법으로 남남 갈등을 일으키려는 의도도 있다. 이를 의식한 듯 윤석열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북한 정권 스스로가 반민족적이고 반역사적인 집단이라는 사실을 자인한 것”이라며 “‘전쟁이냐 평화냐’ 협박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 위원장의 이런 전략엔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대남 대미 도발의 수위를 높일수록 무기 개발에 자원이 더 투입되고 경제난은 악화된다. “체제 불안을 더 악화시키는 악순환이 될 수 있다”고 정부 고위 당국자가 지적한 것은 이 때문이다. 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 2024-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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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윤완준]증오 부추기는 정치 4월에 퇴출해야

    “Wilfully, wilfully misled parliament(의도적으로, 의도적으로 의회를 오도했다).” 이언 블랙퍼드 스코틀랜드국민당 하원 원내대표는 2022년 1월 영국 하원 회의장에서 보리스 존슨 당시 영국 총리를 이렇게 비판했다. 린지 호일 하원의장은 이 말을 취소하라고 거듭 요구했지만 블랙퍼드는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그는 “총리가 진실을 말하지 못할 정도로 신뢰받지 못한다면 내 잘못이 아니다”라고 했다. 집권 보수당 쪽에서 고성이 나왔다. “하원 의사규칙 43조에 따라 당장 하원 회의장을 떠날 것을 명령합니다.” 블랙퍼드는 호일의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회의장을 떠났다. 당시 존슨 총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기간 중인 2020년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에서 자신의 생일파티를 연 것에 대해 방역 지침을 어겼다는 의혹이 나온 상황이었다. 하원 의사규칙 43조는 의장 지시에 계속 불복하는 의원에게 회의장 퇴장을 명할 수 있는 규정이다. 호일이 블랙퍼드에게 발언 취소를 요구한 것은 ‘비의회적 언어(unparliamentary language)’를 쓰지 말라는 규정이 영국 의회에 있기 때문이다. 영국 하원의원들이 “거짓말하고 있다” “의도적으로 호도하고 있다” 등의 발언으로 서로 비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영국 의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이런 ‘비의회적 언어’에는 불한당, 겁쟁이, 멍청한 놈, 쥐새끼, 끄나풀, 배신자 같은 말이 포함돼 있었다. 2016년 84세의 데니스 스키너 노동당 하원의원도 이 규정에 근거해 회의장에서 쫓겨났다.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총리를 “거짓말쟁이(dodgy) 데이브”라고 불렀다는 이유였다. 지난해 9월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은 국회 대정부 질의 도중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공산전체주의에 맹종한다”고 공격했다. 그러자 박영순 의원 등 민주당 의원들이 “쓰레기” “부역자” “빨갱이” 등 표현으로 태 의원을 공격했다. 우리 국회에서 나오는 막말을 보면 영국 하원의원들이 회의장에서 쫓겨난 근거인 ‘비의회적 언어’는 막말 축에도 끼기 어려울 정도로 느껴진다. 더 큰 문제는 여야의 막말이 상대 진영을 악마화하고 극단적 적대감을 부추기는 증오언어라는 점이다. 이들의 언어가 강성 지지층들의 증오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양극단의 강성 지지층들은 자기 진영의 극단적 주장을 맹목적으로 믿고 상대 진영의 말은 무조건 저주한다. 유튜브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보면 정치적 내전 상태나 다름없다. 이런 정치 양극화에 기대 정치적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장본인이 증오언어를 뿜어내는 정치인들이다. 정치인들은 증오언어를 통해 국회의원 자리를 유지한다. 그들로서는 선순환이지만 우리 정치는 악순환에 빠진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자극적인 언어만 언론에 부각되니 여당 의원들도 일부러 그런 언어를 골라 쓴다. 언론에 한 줄 안 나도 증오를 부추기는 언어를 쓰고 싶지 않다”고 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정치란 비판하고 싸워도 술 한잔하며 오해를 푸는 것이다. 이제는 여야 의원 중 그런 사람이 없다. 상대에 대한 저주만이 남았다. 같은 당에서도 정적을 없애겠다는 이유로 허위 정보도 불사한다”며 한숨 쉬었다. 증오정치를 부추기는 국회의원들은 어디서 왔나. 4년 전 총선 여야 공천에서 왔다. 그들을 공천한 국민의힘과 민주당 책임이다. 이들을 다시는 국회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라. 어물쩍 넘어가지 못하도록 감시할 것이다.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 2024-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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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윤완준]尹心 믿고 양지 찾는 新윤핵관들

    “폭망 분위기다.” 친윤(친윤석열)계로 분류되는 여권 인사의 내년 4월 총선 여당 전망이다. 그는 총선 승패는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에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40%를 넘어야 수도권에서 어느 정도 승부를 펼칠 수 있다는 게 여권의 시각이다. 30%대로는 대구·경북(TK)과 서울 강남 3구를 제외하고는 후보들이 아무리 개인기를 발휘해 봐야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에게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 직무수행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12월 둘째 주 31%다. 오랜 기간 31∼36% 박스권에 갇혀 있다. 위기감을 느낀 여권이 판을 바꿔 보겠다고 선택한 것이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카드다.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 앞에 놓인 여러 과제 중 하나는 인적 쇄신이다. ‘인요한 혁신위원회’의 키워드는 험지 출마와 불출마를 내세운 ‘희생’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한 인적 쇄신으로 기득권 정당 이미지를 벗어나는 것이다. 인적 쇄신은 여당의 절대 우세 지역이라 해도 제 역할을 못하는 의원들은 과감히 물갈이하는 것이다. 경쟁력 있는 이들이 험지로 나가 당선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자격 미달 의원들 물갈이는 헌신이나 희생이 아니지만 험지 출마는 헌신과 희생의 결단이 필요하다. 그 결단은 현 정부나 여당에서 기득권을 누린 사람들이 해야 할 몫이다. 하지만 총선용 개각과 대통령실 개편으로 출마에 나선 장관과 대통령실 참모들의 모습은 여당의 위기감과는 딴판이라는 게 여당 다수 인사들의 지적이다. 임기가 남았음에도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출마 지역으로 서울 서초을, 경기 성남 분당을을 거론하다가 지역구 쇼핑 비판을 받았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인사의 말이다. “그들은 장관, 참모를 하며 권력을 누린 것 아니냐. 그런 이들이 윤 대통령이 준 직책으로 경쟁력을 갖췄으면 그 경쟁력을 써먹을 험지에 가야지, 서울 강남갑 성남 분당을 같은 양지만 고집하는 건 이해가 안 된다.” 이 인사는 교체 장관 모두 총선 출마 대상인이었던 ‘총선용 개각’ 그 자체도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장관, 참모들이 윤심을 업은 것처럼 됐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들이 원하는 곳에 공천을 줘야 하는 ‘윤심 공천 약속’을 받은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인사는 “이들이 바로 이 정부 들어 새 권력의 혜택을 누린 새로운 윤핵관 아닌가. 이들이 희생하고 헌신해 험지에 출마해야 새 바람이 분다”고 했다. 그는 “호남 가라는 게 아니다. 장관-참모로 일하며 얻은 경쟁력을 만만치 않은 곳에서 발휘하며 이겨 보라는 것”이라고 했다. “한동훈 비대위가 장관-참모 출신에게 쉬운 지역구를 주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정권을 떠나 총선에 나가겠다는 장관-참모 출신들은 정치인으로서 책임을 보여야 한다. 친윤 핵심들도 방향성은 옳았다고 한 인요한 혁신위가 내놓은 혁신안 중 하나도 내년 총선 때 모든 지역구에서 전략공천을 원천 배제하고 대통령실 출신도 예외 없이 똑같이 경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동훈의 여당이 ‘용산 낙하산 공천’ 논란을 어떻게 돌파해 공정한 공천이라는 숙제를 풀지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 2023-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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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윤완준]尹, 왜 투표 날까지 엑스포 대패 몰랐나

    11월 29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은 화가 많이 나 있었다. 국제박람회기구(BIE) 엑스포 총회 표결 결과가 자신이 보고받아 왔던 판세와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전날까지 윤 대통령이 직접 각국 정상들에게 전화로 유치를 호소했던 걸 생각하면 허탈감이 컸을 것이다. 그날 오전 윤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가 담긴 담화문을 발표했다. “제 부덕의 소치” “예측이 많이 빗나갔다”는 이례적 표현들이 담겼다. 국정의 총책임자인 윤 대통령마저 부산이 경쟁 도시인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크게 열세라는 걸 투표 날까지 몰랐다는 자괴감이 반영됐을 것이다. 유치전 막판 1차 투표에서 부산을 지지하겠다고 한 국가가 50개국 이상이라는 외교부의 분석이 대통령실에 보고됐다. 정부는 사우디가 물량 공세를 펼친 아프리카 중남미 국가 가운데 부동표가 상당수 있다고 판단했다. 잘못된 판세 판단은 2차 결선 투표에서 “우리를 찍어 달라”는 잘못된 전략으로 이어졌다. 대통령실은 각국의 투표 동향을 파악하지 못했다며 국가정보원의 해외 정보 역량 부실부터 문책할 듯하다. 해외 정보 파트의 대대적 인사 조치가 예상된다. 엑스포 유치 기간 김규현 전 국정원장과 국정원 해외 파트를 총괄하는 권춘택 전 국정원 1차장이 인사 문제로 파벌 싸움을 벌였다는 점을 대통령실은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국정원이나 외교부 등 실무 부처에서 진작 열세라는 정보와 판단이 있었는데도 이런 보고들이 대통령 귀에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부산이 리야드에 대패할 수 있다는 판세 분석은 이미 9월부터 나왔다는 것이 정부 당국자들의 얘기다. 실무자들은 “근소한 열세가 아니라 최소 수십 표 차 대패 수준”이라고 우려했다. “엑스포 유치가 힘들다”는 아프리카 중남미 지역 재외공관의 분석이 외교부 본부로 보고됐다고 한다. 정부 내 엑스포 담당자들은 유치 실패가 예상되는 자리에 대한 부담감을 호소했다고 한다. “2030년이 아니라 2035년 엑스포 유치를 염두에 두고 준비하고 있었으니 내년에 다시 유치를 신청하면 된다”는 분위기도 있었다. 대통령실 내부에서도 이번 유치는 어렵다는 기류가 있었다. 아프리카 국가들 정상 측에 유치를 설득했지만 사우디로부터 지원받은 자금 때문에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는 얘기도 들렸다. 여권 관계자는 “실무 부처의 비관적 판세가 대통령실에 들어가도 윤 대통령에게는 이런 상황이 보고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한국은 사우디보다 1년 늦게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천문학적 오일머니를 내세운 사우디의 물량 공세에 아프리카 중남미 국가들 마음을 돌리기 쉽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평창 겨울올림픽도 2전 3기 끝에 유치에 성공했다. 하지만 유치 실패 과정에서 드러난 정보 역량, 외교력 부실을 넘어 실상이 윤 대통령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상황은 심각하다. 새만금 잼버리의 총체적 준비 부실도 대통령실은 파악하지 못했고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실상 대신 ‘장밋빛 보고’가 반복되고 그로 인해 문제가 발생해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번 대통령실 개편과 개각은 새 국정 동력을 얻기 위한 쇄신보다 내년 4월 총선에 장관과 참모들이 대거 출마하면서 이뤄진 총선용이다. 집권 3년 차에 접어들며 근본적 인적쇄신을 생각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 2023-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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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윤완준]정치인 인요한

    “제 인생의 가장 중요한 두 달을 보내고 있습니다. 막말로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다니고 오해도 많이 받고 망가질 겁니다. 어느 언론을 보니 저를 엄청 씹던데 대츠 오케이(That’s okay). 나 하나 망가지고 한국 정치에 긍정적인 변화 있으면 좋은 겁니다.” 지난달 27일 본보 신나리 기자가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장을 인터뷰했다. 그가 위원장에 임명된 지 4일 만이었다. 그날 인터뷰 전문을 보며 이 대목이 눈에 띄었다. 그가 두 달을 얘기한 건 혁신위 임기를 가리킨 것이다. 그는 자신을 “올바른 방향으로 가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분위기 메이커”라고 했다. “(나는 혁신위가) 뭘 주문하면 그걸 전달하는 도구다. 과대망상에 빠진 사람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2주가 지난 지금 인 위원장은 기존 정치인과 다른 화법과 행보로 화제의 중심에 서 있다. 인 위원장을 아는 인사에게 그가 어떤 인물인지 물었다. “말을 빙빙 돌리지 않아요. 정해진 형식보다 자신이 원하는 실질적인 대답을 듣기를 원하는 아주 직선적인 스타일입니다.” 그는 “웬만한 정치인보다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인물”이라며 “상대를 격의 없이 부둥켜안는 포용력이 있다”고도 했다. 이 인사는 인 위원장의 행보에 대해 “그가 정치 경력이 없는 의사라는 면에서만 생각하면 그의 발언에 호응을 받지 못할 부분이 있고 비토 세력이 많겠지만 정치가 바뀌길 원하는 국민의 시각에서 보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도 있는 좋은 실험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인사의 말처럼 인 위원장의 정치적 직설적 화법과 감각은 여권의 판을 흔들고 있다. 위원장 임명 직후 통합을 얘기한 그는 곧바로 희생을 화두로 들고나왔다. 그가 내놓은 친윤·당 지도부·영남 중진의 불출마, 수도권 험지 출마는 여당 공천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그는 “과거엔 정치인이 희생한 게 아니라 국민이 (정치를 위해) 희생했다. 그걸 엎자는 것이다. 국민이 희생을 그만하고 정치인이 희생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여당 입장에선 불출마, 수도권 험지 출마론이 논란의 여지가 있는 말이지만 국민 눈높이에선 여당의 유력 정치인들이 정말 자신을 내려놓을 용기가 있는지 가늠할 키워드인 것이다. 생각이 달라도 상대를 미워하지 말자는 인 위원장은 무작정 이준석 전 대표를 찾아갔다. 영어를 쓰며 인 위원장을 거부한 이 전 대표를 ‘젊은 꼰대’로 보이게 만들었다. 당 지도부와 갈등하는 홍준표 대구시장을 만났다. 인 위원장은 본보 인터뷰에서 “가면 갈수록 우리 당(국민의힘) 안에서 곤혹스럽게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 “20%는 꼴통 보수고 20%는 꼴통 좌익”이라며 “60%가 선거의 결론을 낸다”는 대목은 표현은 거칠었지만 어떻게 해야 유권자의 마음을 살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인 위원장은 “완전히 망가지고 멍들어도 일만 잘하면 된다. (혁신위가 끝난 뒤) 뒷방에 앉아서 TV를 보면서 ‘참 보람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서울 서대문갑 출마가 거론된 데 대해서는 “나는 내려놓았다. 서대문갑 유혹 받았는데 지금은 생각이 없어져 버렸다. (혁신위) 끝나는 날까지 올인해야 한다”고 했다. 기존 정치와 다른 화법과 스타일만으로 성공할 수는 없다. 다음 달 혁신위가 일을 마무리할 때 인 위원장이 던져 놓은 각종 화두가 말만으로 그친다면 그 역시 실패하는 것이다. 그의 행보가 ‘정치인 인요한’의 몸값을 높이는 데만 쓰이지 않기를 바란다. 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 2023-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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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윤완준]윤석열 이재명, 31일 시정연설 때 만나라

    윤석열 대통령 집권 5개월 만인 지난해 10월 25일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첫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을 보이콧했다. 시정연설에 앞서 윤 대통령이 국회의장실에서 김진표 국회의장, 여당 지도부와 환담할 때 이재명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 자리는 비어 있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당시 이 대표가 이 환담 자리에 참석하는 것으로 얘기가 됐었다”고 했다. 이 환담 없이 곧바로 본회의장으로 가 시정연설을 할 수도 있었지만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차를 마시며 얘기할 기회로 봤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이 대표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이 관계자는 말했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전 윤 대통령이 여야 극단 대치를 풀기 위해 이 대표와 만날 생각이 있는지 물었을 때 나온 얘기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만나 협치를 논할 생각이 있지만 이 대표 측이 소극적이라는 게 대통령실의 인식이었다. 지난해 시정연설 보이콧 이후 1년간 대통령실·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소통의 정치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이 대표의 민주당은 과반 의석수에 기대 논란의 법안들을 강행 처리했다. 국민의힘은 “거야의 폭주”라는 비판 외에 무기력했고 윤 대통령은 거부권에 의지했다. “공산 전체주의 세력”까지 거론한 윤 대통령의 이념 발언은 대통령실과 여당 내부에서조차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여당의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가 여권을 흔들자 윤 대통령이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이념은 충분히 언급했으니 이제 민생에 집중해야 한다”고 건의했다고 하다. 내년 4월 총선도 결국 윤 대통령 얼굴로 치러야 한다는 여권의 절박감이 반영됐을 것이다. 민생 현장으로 가겠다는 윤 대통령의 얘기도 떠난 중도층 민심을 잡으려면 경제와 민생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는 치명적이다. 보통 사람들은 ‘윤 대통령이 나 같은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소통하려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이 참모와 외부의 조언을 허심탄회하게 수용하고 국민에게 지며 야당에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야 “변화했다”고 느낄 것이다. 이 대표는 검찰의 구속영장 기각 이후 보궐선거 승리로 기세를 잡았지만 그 역시 변하지 않으면 내년 총선을 장담하기 어렵다. 사법 리스크가 여전한 것도 걸림돌이지만 더 큰 건 정치 리스크다. 민주당 내엔 그가 수평적 소통이 부족하고 행정가 시절의 상명하복식 수직적 소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무엇보다 강경 지지층에 기댄 채 정치다운 정치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중진 의원들의 비판이 심상치 않다. 소통과 통합 측면에서 그도 낙제점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23일 당무에 복귀한다. 현장을 찾아 최고위원회를 열고 민생과 통합 메시지를 내겠다는 얘기가 들리는 것도 변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일 테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 중 누가 얼마나 먼저 빨리 크게 변하느냐가 중도층을 움직이고 총선 승패를 결정할 것이다.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31일이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이 대표를 만날 수 있지만 여야 대표와 함께 만나는 형식을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시정연설 전 환담은 대통령과 야당 대표 회동의 가장 좋은 시작이 될 수 있다. 누가 먼저 열린 마음으로 접근하는지 유권자들은 지켜볼 것이다. 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 2023-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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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윤완준]‘윤석열표 이념론’ 사용법

    “지금은 탈냉전 시대가 아니다. (신)냉전 시대다. 이념이 필요 없는 탈냉전 시대라는 사고가 오히려 구태의연하다.” 통일부 차관을 지낸 김천식 통일연구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최근 ‘이념 드라이브’에 대해 야권이 “냉전적 사고”라고 비판한 건 잘못이라며 강조한 말이다. 미국과 중국은 전략적 체제 경쟁을 하고 있다. 이 경쟁이 바로 냉전의 핵심이라는 게 김 원장의 진단이다. 전략적 체제 경쟁은 가치와 체제, 군사, 경제 네트워크의 3대 경쟁이다. 중국은 지난해 20차 당대회에서 “중국식 현대화를 통한 중화민족 부흥”을 목표로 제시했다. 미국 등 민주주의·자본주의 진영과 체제 경쟁을 통해 중국식 사회주의가 우월하다는 걸 증명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2050년경에는 사회주의 중국이 미국을 뛰어넘어 세계를 이끄는 국가가 되겠다는 것이 중국몽이다. 한중 간 경제 협력 속에서도 체제 이념 문제를 둘러싼 대립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미국이 추진하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은 미국 중심의 안보 네트워크에 적극 동참하지 않으면 미국이 주도하는 첨단 기술의 경제 네트워크에서 배제될 것이라는 경고다. 좋든 싫든 이런 국제 현실을 인정하면 한국이 지향해야 할 가치를 세계에 분명히 밝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그것이 국익이다. 지금 상황에서 전략적 모호성은 가치와 철학의 부재를 뜻한다”고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 정상회담은 동북아 질서가 신냉전의 한복판임을 보여준다. 북한을 수차례 방문하며 오랫동안 북한을 관찰해 온 미국 미들베리국제연구소의 시그프리드 헤커 교수는 로버트 L 칼린 연구원과 함께 미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에 글 한 편을 기고했다. 북-러 정상회담이 미국 대북정책의 근본적 변화를 뜻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번 회담으로 김정은이 “1990∼2019년 30년간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하려는 북한의 노력을 포기했다”고 썼다. 김정은과 푸틴은 군사협력을 전방위로 전개할 계획임을 숨기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과 러시아가 충돌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정은의 선택은 단순히 상황이 절박해서가 아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이후 러시아와 중국의 지원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북한 정책에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는 게 두 사람의 진단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7월 동해 북방한계선(NLL) 바로 위쪽에서 사상 처음 연합 해상훈련을 했다.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굉장히 주목하는 사안”이라고 했다. 한반도가 신냉전의 중심으로 휘말려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어느 국가가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지, 권위주의 체제인지 따지는 것은 신냉전 질서에서 생존을 위한 선택지가 됐다. 그런 면에서 보면 “국가가 정치적으로 지향해야 할 가치 중 제일 중요한 것이 이념”이라는 윤 대통령의 발언은 국제 현실의 엄중함을 짚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다만 이념을 강조하는 대통령의 언어가 그런 현실을 진단해 국가 방향을 제시하는 걸 넘어 정치적 내 편과 네 편을 나누는 것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윤 대통령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외연 확장을 뜻하는 ‘산토끼’보다 전통적 보수층인 ‘집토끼’를 잡으라고 했다는 말도 들린다. 많은 참모들이 대통령의 발언을 야당과 싸우는 전사가 되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윤 대통령의 이념론이 대통령과 이념적으로 한 몸이 된 ‘내 편의 전사’만 키우려는 정치적 도구로 이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신냉전이라는 엄중한 현실을 헤쳐 나갈 도구로 사용하기를 바란다.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 2023-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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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윤완준]통일부, 제대로 살리라

    최근 주말의 일이다. 통일기반 조성 업무를 담당하는 통일부 과장이 문승현 차관 방을 찾았다. 통일기반 조성 관련 구상을 담은 두꺼운 보고서가 손에 들려 있었다. 이 과장은 문 차관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하고 논의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두 사람은 2시간여 보고서 내용을 토론했다. 새만금 잼버리 사태로 일하지 않는 공무원에 대한 질타가 쏟아진다. 이런 공무원 조직으로 나라 망한다는 자조까지 고위 당국자 사이에서 들린다. 하지만 여전히 주말에도 나와 자기 업무에 적극 임하는 실무급 공무원들이 있다. 폐지론에 이어 인력 감축과 조직 개편으로 뒤숭숭한 통일부 소속이다. 통일부는 정원의 13%에 해당하는 81명을 감축하기로 했다. 이 중 일부는 다른 부처로 갈 기회가 있다는 이직 권고를 듣는다. 일부는 교육을 가고 파견을 간다. 대기발령 상태인 공무원도 있다. 남북 교류협력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들은 남북관계관리단으로 통합됐다. 교류협력이라는 말은 국장급 이상 부서에서 사라졌다. 그동안도 가장 약한 부처라는 말을 들었다. 정권마다 부침이 심했다. 통일부 일부 공무원들 사이에선 국가공무원법상 징계 시효가 3년이라는 점이 회자된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 때 일로 징계 대상에 올라 조사받는 공무원들이 많다 보니 나온 말이다. 3년 이전의 일은 징계받지 않으니 뭐라도 하려면 정권 초에 하고 그다음부터는 복지부동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자조다. 사기가 크게 떨어진 통일부 분위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시기에도 보통 공무원들은 기피하는 장문의 보고서를 준비해 차관과 토론하는 공무원이 통일부에 있다. 많은 이들이 통일부 업무의 전부가 남북 교류협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통일부 차관을 지낸 김천식 통일연구원장은 교류협력은 통일부 업무의 20∼30%라고 했다.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준비하고 대한민국에 이런 권리가 있다는 걸 대내외에 적극 알리는 게 통일부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했다. 통일부는 북한 영토에까지 대한민국의 연고권이 있음을 알리는 가장 핵심적인 부처다. 그것이 통일부 존재의 이유다. 그런데도 이를 잘 모른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남북 교류협력은 남북이 국가와 국가 간 관계가 아니라 민족 간 특수관계라는 점을 근거로 한다. 교류협력을 통해 북한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교류협력 자체가 목적이 되고 이권으로 문제가 생겼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가 2019년 북한에 소금을 지원하겠다며 5억 원 보조금을 받았는데 정작 위탁을 맡긴 업체는 소금을 구매하지 않았다. 지금 통일부가 위기라지만 오히려 특수관계인 북한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제대로 된 교류협력 방안을 연구할 기회다. 북한 상황을 정확히 분석하고 새로운 통일 전략을 수립할 기회다. 지금까지 통일부에서 대북-통일 장기 전략의 기틀이 될 제대로 된 보고서가 나온 적 있는지 돌아봐야 할 때다. 1946년 미국 외교관이었던 조지 케넌은 8000자나 되는 장문의 전문(롱 텔레그램)을 본국에 보냈다. 소련 동향을 심층 분석한 그 보고서는 미국의 소련 봉쇄 정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북한 봉쇄 정책을 염두에 두라는 게 아니다. 어떤 방향이든 통일부가 한국 정부의 장기적인 대북-통일 전략의 기반을 만들 롱 텔레그램을 작성할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게 움직일 때 통일부는 강한 부처로 거듭날 것이다. 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 2023-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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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윤완준]“잼버리 부실, 우리는 왜 몰랐나”

    “왜 우리는 몰랐나.”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전북 부안 새만금에서 열린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개막 전까지 “총체적 부실 상황을 대통령실 정부가 미리 파악하지 못했다”고 했다. 물론 파행의 1차적 책임은 전라북도다. 전북도지사가 잼버리 집행위원장이다. 부지 선정부터 잘못됐다. 나무도 한 그루 없는 진흙탕에 야영장이 만들어졌다. 문재인 정부도 책임이 크다. 기반시설 조성에 손을 놓았다. 2017년 8월 새만금이 개최지로 선정된 뒤 6년 시간이 있었지만 본격적인 잼버리 관련 공사는 2021년 11월에야 시작됐다. 야영장 내 샤워장과 급수대 설치 공사는 올해 3월에야 시작됐다. 국회에서 지난해 11월까지 3차례나 예산 집행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누구도 새겨듣지 않았다. “행사 개최가 1년도 남지 않은 2022년 9월 말까지도 기반시설 설치가 계속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지적을 무시했다. 잼버리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는 아직 예산 집행률조차 정확히 집계하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태풍 폭염에 대한 대책을 다 세워놓았다고 주장했다. 개막하고 보니 샤워장 화장실 급수대 등 필수 위생시설이 태부족했다. 나무도 없는 야영장 부지는 지나치게 넓었다. 캠프와 캠프 사이가 너무 떨어져 있어 필수물자 조달도 어려웠다. 조직위원회는 어떤 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허둥댔다. 조직위는 아직 실제 입국한 잼버리 참가자가 몇 명인지도 정확히 모른다. 참가 신청자 자료만 가지고 있어 숙소를 분산 배정할 때 문제가 생겼다. 배정해 놓은 숙소에 대원들이 오지 않았다. 실제론 입국하지 않았거나 이미 한국을 떠난 대원들에게 숙소가 배정됐기 때문이다. 여가부는 무능력했다. 공무원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조직위 공동위원장 시스템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체제였다. 조직위는 와해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공무원들로 대한민국이 어떻게 버텨왔는지 신기할 정도다. 대통령실 주도로 새만금 야영장 화장실 문제부터 숙소 분산까지 수습에 나선 뒤에야 혼란이 어느 정도 해결되기 시작했다. 여가부와 전북도의 부실 책임을 묻는 동시에 이런 황당한 부실 준비 실상이 개막 전까지 윤석열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되지 않고 뒤늦게 임시방편 대책에 나선 상황을 돌아봐야 한다. 장관들이 대통령 듣기 좋은 얘기만 하고 실상을 보고하지 않은 것 아닌가. 폭염 대책 부실에 대한 우려가 컸는데도 그런 민심은 윤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되지 않았다. 지금 대통령실과 정부에 진짜 민심과 여론을 가감 없이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기능이 마비된 것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윤 대통령은 비위나 정보 캐는 걸 대통령실에서 하지 않겠다며 민정수석실을 없앴다. 민정수석실의 또 다른 주요 임무는 국민 여론과 민심 동향 파악이다. 민정수석실 폐지로 국민 여론을 듣는 이런 기능까지 사라져 대통령실이 민심과 괴리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곳곳에서 나온다. 잼버리 부실 준비 실상을 미리 알지 못한 것도 이와 관련 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구중궁궐에서 벗어나 국민과 소통하겠다며 용산 대통령실 시대를 열었다. 잼버리 사태는 대통령실이 ‘좋은 얘기만 전하는 장밋빛 보고’가 아니라 진짜 민심을 가감 없이 들을 수 있는 기능을 살려야 한다는 경고다.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 2023-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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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윤완준]외교부, 2017년 10월의 사드 진실 밝히라

    2017년 10월 31일. 문재인 정부와 중국이 사드 3불을 거론하며 한중 관계 개선에 합의한다. “사드 문제가 (더 이상 불거지지 않도록 이번 합의로) 봉인됐다고 보면 된다.” 그날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이후 당시 정부 고위 당국자들은 “우리는 (사드는) 일단락된 것으로 이해한다”고 입을 맞춘 듯 말한다. 그해 11월 13일. 일이 터진다. 리커창 당시 중국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드 문제의 단계적(階段性) 처리에 한중이 합의했다”고 말했다. “사드 문제는 봉인됐다”는 청와대 설명과 달랐다. 중국은 ‘한국이 다음 단계로 사드를 잘 처리할 책임이 있다’는 메시지로 압박한다. 문재인 정부는 회담 내용을 전한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중국어 “階段性”의 영문 번역이 “in the current stage(현 단계에서)”라고 돼 있다는 해명을 내놓는다. “현 단계에서 문제를 일단락, 봉합하자는 것”이라는 설명자료를 낸다. 당시 베이징 특파원으로서 중국 외교부 당국자에게 “리 총리가 말한 ‘階段’이 영어로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때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 “One step toward final goal. The final goal is the removal of THAAD in peninsula.” “최종 목표를 향한 첫 단계다. 최종 목표는 한반도에서 사드 제거(철수)”라는 말이었다. “사드 문제 일단락”을 주장하던 문재인 정부 당국자들과 정반대 얘기를 한 것이다. 더군다나 중국의 최종 목표가 사드 철수라고 했다. 그해 11월 22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강경화 당시 외교부 장관에게 3불에 더해 “사드 시스템이 중국의 안전 이익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입장 표명을 중시한다”고 했다. 다음 달 중국 환추시보는 ‘3불 1한’이라는 말을 처음 쓴다. 왕이의 그 말이 사드 운용 제한에 해당하는 ‘1한’이었을 것이다. 왕이는 “중국에는 ‘말에는 반드시 신용이 있어야 하고 행동은 반드시 결과가 있어야 한다(言必信行必果)’”는 말이 있다. 한국 측은 계속 이 문제를 적절히 처리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중국은 3불 1한을 한국의 약속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해 11월 2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강경화 장관은 “3불은 우리가 중국에 동의해 준 사안이 아니고 기존 입장을 반복하고 확인해줬을 따름이다. (중국의) 1한 추가 요구도 분명히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지금 6년여 전 그 한 달을 복기해 보면 중국은 ‘한국이 다음 단계로 사드 문제를 잘 처리할 책임이 있다’는 메시지로 약속 이행을 압박했다. 문재인 정부는 3불은 약속이 아니라 했다. 1한의 존재는 부인했다. 2019년 12월 4일 국방부 문서에는 “2017년 10월 3불 합의”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러면서 “중국 측은 환경영향평가 절차 진행을 사드 정식 배치로 간주해 한중 간의 기존 약속에 대한 훼손으로 인식하고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2020년 7월 31일 국방부 문서는 “중국은 양국이 합의한 3불 1한이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명시했다. 최근 사드 환경영향평가와 관련해 드러난 사실들은 2017년 10월 31일 이후 일어난 석연치 않은 일들이 한중 관계를 이유로 안보 주권을 양보한 결과일 수 있다는 의심이 들게 한다. 윤석열 정부 외교부는 당시 한중 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밝혀야 한다. 진실을 알아야 한중 관계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다.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 2023-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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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윤완준]이름 없이 지는 별들 명예, 누가 지켜주나

    “음지에서 일하다 이름 없이 지는 별.” 전직 국가정보원 고위 인사는 “국정원이 비록 부침을 겪어 왔지만 많은 직원들이 여전히 자신들의 업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국정원에는 임무 수행 중 숨진 요원을 기리는 ‘이름 없는 별’ 추모석이 있다. 현재 별의 숫자는 19개다. 이 인사는 “퇴직 뒤에도 무슨 일을 했는지 공개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국정원 직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직에 대한 명예와 자부심이다. 이게 땅에 떨어지면 국정원이 무너질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 인사 파동이 그들의 명예와 자부심을 짓밟고 있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달 재가한 국정원 1급 인사를 철회했다. 김규현 국정원장의 측근 A 씨가 인사에 무리하게 개입한 정황을 확인했다는 게 여권 고위 관계자들의 얘기다. 승진 인사 대상에는 A 씨의 입직 동기가 여럿 포함됐다. 인사 파동의 팩트는 분명했다. 그런데 책임 소재를 둘러싼 국정원 내부 갈등은 내전을 방불케 했다. A 씨 측은 이번 1급 인사가 “문재인 정부 서훈, 박지원 전 원장 시절 득세한 좌파들 때문에 망가진 국정원을 바로 세우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이를 “A 씨의 인사 전횡으로 모는 건 인사에서 배제된 김 원장 반대 세력의 쿠데타”라는 게 이들의 시각이다. 반면 인사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쪽은 “좌파와 결탁한 반개혁 세력의 저항이라는 프레임으로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한다. 이 내전은 인사 파동에서 드러난 사실관계마저 극과 극으로 전달하게 만들었다. A 씨 측은 교체 대상이 됐던 미국과 일본 정보거점장 자리에 있었던 이들이 “비리 때문에 소환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두 자리에 인사를 하려다 인사 파동으로 뒤집혔다는 것이다. 반면 다른 국정원 인사는 “징계성으로 소환된 게 아니라 임기가 다 된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이 두 자리에 A 씨와 가까운 이들을 앉히려 했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난장판 속에 윤 대통령은 해외 순방을 떠났다. 귀국 뒤인 29일 윤 대통령은 첫 개각 날 김 원장으로부터 조직 정비 보고를 받았다. 윤 대통령의 재신임으로 김 원장은 유임됐다. 하지만 곪아 터진 국정원의 뿌리 깊은 파벌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지난 정부 때 망가진 국정원을 정상화하겠다”는 명분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 않는다. A 씨가 부적절하게 국정원장이나 다른 고위직들의 눈과 귀를 가렸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명분이 잘못된 방법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A 씨는 문재인 정부 때 한직으로 밀렸다고 한다. 그 역시 문재인 정부의 부당한 인사 피해자일 것이다. 이번 인사에 문제가 있다는 이들 가운데서도 문재인 정부가 “국정원 적폐 청산”을 내세워 국정원을 망가뜨렸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이런 폐해 때문에 “국정원 내부에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정글의 법칙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좌우를 가르고 파벌을 만드는 방식으로 무리한 인사를 정당화하면 직원들 간 적대감만 커질 것이라고 전직 국정원 고위 인사는 말했다. “진정한 우파는 소수고 대부분은 전 정부에 부역한 좌파나 기회주의자라는 식으로는 국정원 직원 다수를 설득할 수 없다”고도 했다. 인사가 특정 라인에 편중되면 조직을 스스로 특정 울타리에 가두게 된다. 그러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 파벌 싸움의 악순환이 또 반복될 수밖에 없다. 국정원 다수 직원의 명예와 자부심을 살리며 개혁할 방법을 찾아야 국정원이 진짜 살아날 것이다. 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 2023-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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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윤완준]이재명, 사법 아니라 정치리스크

    “적이 저러는 건 그런가 보다 하는데 내부 총질은 아프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주변에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자신에 대한 당내 비판을 ‘내부 총질’로 규정하고 불편한 심경을 드러낸 것이다. 이 대표는 검찰의 수사를 대선에서 패배한 자신을 정치적으로 죽이려는 것으로 보고 이 대응에 진력하고 있다. 제1야당 대표로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그의 상황으로 민주당이 직면한 위기를 비명계는 사법 리스크라 부른다. 내년 총선까지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가 민주당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민주당이 직면한 ‘이재명 리스크’는 사법 리스크가 아니다. 정치 리스크다. 이 대표에게서 정치가 보이지 않는 데서 오는 리스크다. 그는 “편을 만들지 않는다”고 얘기하지만 비명계나 중립 성향 의원들은 이 대표가 당내 비판 세력을 포용하지 못하고 ‘자기편’인 강성 팬덤에 기대고 있다고 본다. ‘내부 총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가 그를 경직되게 만들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일부는 그가 정당 대표가 아니라 여전히 경기도지사처럼 행동한다고 본다. 지시하면 따르는 직원들과 일하던 단체장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인은 자신을 비판하고 싫어하는 사람과도 웃으며 일하는 직업이다. 그들과 소통하고 설득하는 것이 정치인이다. 이를 통해 세력을 키워간다. 하지만 “편을 만들지 않는다”는 그의 말은 거꾸로 보면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설득할 생각이 별로 없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그러다 보니 “당의 통합보다 자신의 강성 지지층인 개딸에 의지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래경 사태’는 이 대표의 정치 리스크를 가장 적나라게 보여줬다. 우선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을 당 혁신위원장에 임명한 인사는 이 대표의 정치적 실패다. 현충일 전날에 “자폭된 천안함 사건을 조작해 남북 관계를 파탄 낸 미 패권 세력”이라는 주장을 펼친 음모론자를 다른 자리도 아닌 혁신위원장에 앉혔다. 그는 2019년 ‘이재명 지키기 범국민 대책위원회’를 추진한 인사다. ‘이재명 편’이라는 얘기다. 혁신기구는 지도부 비판이 불가피하다. 두 번째는 정치적 조정 과정 실종이다. 이 대표는 임명 전날 저녁에야 지도부에게 임명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박광온 원내대표가 “이래경이 누구냐”고 했을 정도다. 친명계를 제외한 당 지도부와 원내지도부 모두 이런 방식에 불만을 제기한다. 일부 의원들은 “이 대표가 당은 수직적이지도 않고 의원들 모두 생각이 다 다르다는 걸 외면한다”고 비판한다. 세 번째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임명한 인사가 9시간 만에 물러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음에도 다음 날 이에 대한 얘기 없이 SNS에 다른 얘기들을 올렸다. 야당 대표가 정부 여당 비판하는 걸 탓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당이 닥친 그 혼돈에 침묵하는 유체이탈 화법 같은 묘한 장면이었다. 그는 8일까지도 “결과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는 것이 당 대표가 할 일”이라는 애매한 말 외에 사태를 수습할 뚜렷한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 정치 실종의 ‘이재명 리스크’가 민주당을 더 큰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 2023-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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