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란 말에, 치매 아버지는 고향땅 800평을 팔았다[히어로콘텐츠/헌트①-上]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2월 14일 21시 00분


〈1-상〉 친구의 배신
평생 바친 땅 800평을 판 치매 아버지
돈 뜯기고도 “나쁜 사람 아냐” 마지막 필담
30여년 만에 아버지를 찾아 요양원에 온 ‘그 사람’은 늘 요양원 면회 기록지에 관계를 ‘친구’라고 적었다. 5개월간 열 차례 요양원을 방문한 ‘친구’는 목적을 달성하자 자취를 감췄다. 지난달 12일 경기 화성의 한 요양원에서 아들 강성식 씨가 아버지의 면회 기록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30여년 만에 아버지를 찾아 요양원에 온 ‘그 사람’은 늘 요양원 면회 기록지에 관계를 ‘친구’라고 적었다. 5개월간 열 차례 요양원을 방문한 ‘친구’는 목적을 달성하자 자취를 감췄다. 지난달 12일 경기 화성의 한 요양원에서 아들 강성식 씨가 아버지의 면회 기록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나뿌사람 아니다.’

목소리를 잃은 아버지는 종이에 이렇게 적었다. ‘나쁜 사람 아니다’를 제대로 쓰지 못해, 글자 하나가 비뚤어졌다. 아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나쁜 사람 아니라고?” 아버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성식 씨(46)는 떨리는 목소리를 억누르며 말했다. “아빠 돈을 말도 없이 가져갔는데, 그게 나쁜 사람이지.” 아버지 강대용 씨(73)는 이번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손톱이 하얘지도록 볼펜을 꼭 쥔 채 종이만 바라봤다.

믿었던 고향 친구에게 인생과 다름없는 땅 800평을 빼앗긴 뒤에도, 아버지는 끝까지 그 사람을 감쌌다. 치매가 기억과 판단력을 앗아간 자리에 남은 건 사람을 믿고 싶어 하는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그 마음조차 누군가에겐 ‘사냥감’이었다.

10월 26일 요양원에서 목소리를 잃은 대용이 아들과 필담을 나누고 있다. 치매를 앓고 있는 대용은 ‘고향 친구’의 말을 믿고 땅을  판 뒤 그 돈을 돌려받지 못했지만, 끝까지 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종이 위에는 떨리는 손으로 쓴 ‘나뿌사람(나쁜 사람) 아니다’  ‘돈이 어디’와 같은 글자가 보인다.
10월 26일 요양원에서 목소리를 잃은 대용이 아들과 필담을 나누고 있다. 치매를 앓고 있는 대용은 ‘고향 친구’의 말을 믿고 땅을 판 뒤 그 돈을 돌려받지 못했지만, 끝까지 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종이 위에는 떨리는 손으로 쓴 ‘나뿌사람(나쁜 사람) 아니다’ ‘돈이 어디’와 같은 글자가 보인다.
10월 26일 경기 화성의 한 요양원에서 나눈 그 필담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화가 됐다. 이틀 뒤 아버지는 저녁 식사 도중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장례 후 찾은 요양원, 두 달 전 “복도라도 편하게 다니시라”라며 마련한 새 휠체어가 주인을 잃은 채 한쪽에 놓여 있었다. 성식은 휠체어 손잡이를 꽉 움켜쥐며 말했다. “돈은 못 받더라도 그 사람, 우리 아버지 속인 사람, 벌은 꼭 받았으면 좋겠어요.”

같은 날 아들 성식이 아버지 대용과 면회 후 뒷모습을 바라 보고 있다. 성식은 이 모습이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될 줄 몰랐다. 이틀 뒤 대용은 요양원에서 숨을 거뒀다.
같은 날 아들 성식이 아버지 대용과 면회 후 뒷모습을 바라 보고 있다. 성식은 이 모습이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될 줄 몰랐다. 이틀 뒤 대용은 요양원에서 숨을 거뒀다.
치매 노인 100만 명 시대. 정부가 추산한 이들의 자산은 154조 원에 이른다. 20년 뒤 치매 인구는 200만 명, 이들이 가진 자산은 414조 원 규모로 불어날 전망이다. 이 거대한 ‘치매머니’를 노린 조용한 사냥이 일상과 기억의 틈새를 파고들고 있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8월부터 5개월간 자산을 빼앗긴 치매 노인과 그 가족 36명을 인터뷰하고 이 가운데 치매 노인 3명 측의 협조로 그들의 통장을 분석했다. 그 안에는 30년 만에 나타난 친구에게 고향 땅을 잃고 세상을 떠난 대용의 삶과 죽음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가장 믿었던 이웃의 가면을 쓴 포식자의 잔혹한 사냥 일지가 적혀 있었다.

● 30년 만에 나타난 ‘친구’
지난달 12일 대용이 머물던 요양원에서 아들 성식이 빈 휠체어 앞에 서서 이마를 짚고 있다. 장례 후 찾은 병실에는 두 달 전 아버지께 사드린 새 휠체어가 주인을 잃은 채 한쪽에 놓여 있었다.
지난달 12일 대용이 머물던 요양원에서 아들 성식이 빈 휠체어 앞에 서서 이마를 짚고 있다. 장례 후 찾은 병실에는 두 달 전 아버지께 사드린 새 휠체어가 주인을 잃은 채 한쪽에 놓여 있었다.
지난해 5월 15일 석가탄신일. 성식은 “오늘은 아버지 모시고 고기라도 사 먹자”라는 생각에 모처럼 들떴다. 휴일을 맞아 초등학생 딸과 아내, 동생까지 함께 아버지의 요양원을 찾았다. 그런데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아버지는 뜻밖의 말을 했다.

“그 사람 집으로 돈 찾으러 가야 한다.”

갑자기 무슨 말인가 싶어 아버지의 휴대전화를 열어봤다. 성식은 그 자리에 돌처럼 굳었다.


혼자서는 외출도 어려운 아버지 통장에서 이렇게 큰돈이 오갈 리가 없었다. ‘설마 송금 실수겠지’하는 생각도 잠시, 아버지가 부르는 이름을 듣고 성식은 사달이 났음을 직감했다. 박영길(가명·76). 아버지에게 30년 만에 나타난 고향 친구였다.

영길이 요양원에 처음 찾아온 건 2023년 12월. 그는 대용과 고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했다. 상경한 지 30년도 넘었지만, 대용은 어린 시절과 20대 청춘을 보낸 고향에 대한 애착이 컸다. 영길은 “대용이가 요양원에 있다는 소식에 얼굴이라도 보러 왔다”고 했다.

성식은 아버지 지인 대부분을 알고 있었지만 영길은 초면이었다. 하지만 치매로 기억이 들쭉날쭉한 대용은 고향 이야기가 나오자 금세 얼굴이 환해졌다. 영길은 그 후로 요양원을 자주 찾았다. 면회 기록지에는 2023년 12월 3일부터 지난해 5월 7일까지 그의 이름이 열 차례 나온다. 관계를 묻는 칸에는 항상 ‘친구’라고 적었다. 영길은 요양원에 외박을 신청해 대용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 재우기도 했고, 면회가 없는 날에는 틈틈이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3년간 치매 아버지를 돌보다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워 요양원에 모신 뒤 줄곧 죄책감을 안고 살던 성식에게도 영길은 고마운 존재였다. 그에게 용돈을 건네자 “뭐 이런 걸 다 줘. 친구 보러 오는 건데”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고맙고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 조용히 시작된 사냥
시간이 흐르면서 영길은 대용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을 건드렸다. 대용은 요양원 생활을 답답해했고, 늘 30년 전 떠나온 고향이 그립다고 했다. 어느 날 영길이 말했다. “고향에 가서 살게 해줄게. 내가 다 알아봐 줄 테니 걱정하지 마라.”

솔깃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조건이 있었다. 집을 구하고, 요양보호사도 쓰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용에게는 한평생 일해 모은 고향 땅 2000평이 있었다. 영길은 그중 논 800평을 팔자고 했다. “자식들은 반대할 수 있으니 알리지 말자”라는 말도 덧붙였다.

매주 요양원을 찾는 아들조차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계획은 진행됐다. 지난해 3월 영길은 “옷을 사러 다녀오겠다”라고 말하고 대용과 고향의 면사무소를 찾았다. 그는 대용의 주민등록증을 재발급받고, 새 통장을 만들기 위해 왕복 500km 길을 하루 만에 오갔다. 인감을 파고, 땅을 살 사람도 미리 찾아뒀다.

두 달 뒤인 지난해 5월 7일, 대용의 논 800평이 4500만 원에 팔렸다. 시세보다 싼값이었다. 이튿날 아침 영길은 대용의 신분증과 통장, 도장을 들고 혼자 은행을 찾아 그 돈을 모두 찾았다. 통장과 비밀번호, 도장 찍힌 청구서만 있으면 누구든 인출할 수 있는 허점을 이용했다. 대용이 장기요양 등급을 받은 치매 환자라는 걸 은행은 몰랐다.

영길은 의심을 피할 ‘미끼’도 잊지 않았다. 찾은 돈 중 300만 원을 다발째 대용에게 건넸다. “이걸로 이걸로 간호사들 맛있는 것도 사주고, 너 먹고 싶은 것도 사 먹어라. 나머지는 내가 맡아뒀다가 고향 보내주는 데 쓸게.” 대용이 고개를 끄덕인 순간, 사냥은 거의 끝나 있었다.

아버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통화를 하던 박영길의 연락이 뜸해지자, 먼저 전화를 걸기도 했다. 성식이 자신이 사드린 흰색 효도폰에 남은 아버지와 영길의 통화 내역을 들어 보이고 있다.
아버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통화를 하던 박영길의 연락이 뜸해지자, 먼저 전화를 걸기도 했다. 성식이 자신이 사드린 흰색 효도폰에 남은 아버지와 영길의 통화 내역을 들어 보이고 있다.
그때부터 영길의 태도는 달라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걸려 오던 전화는 뜸해졌고, 요양원에도 오지 않았다. 대용은 아들이 사준 효도폰 키패드에 익숙한 번호를 꾹꾹 눌렀다. 0, 1, 0, 3, 3, 4…. 그러나 영길은 바쁘다며 서둘러 끊었다. 어느 날은 10번 넘게 전화해도 받지 않았다. 대용은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돈 찾으러 가야 한다”라고 한 건 그제야 올라온 분노였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성식은 영길에게 돈을 당장 돌려달라고 했다. 영길은 오히려 화를 냈다. “대용이 요양원을 싫어해 벗어나게 해주려고 한 것인데, 고맙다고는 못할망정 도둑놈 취급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달 말까지 돌려주겠다”고 했다.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며칠 뒤 다시 영길에게 전화를 걸자 이전과는 다른 연결음이 들렸다. ‘연결이 되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되오니 삐 소리 후….’ 수신 거부였다. 그가 떠난 사냥터에는,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과 뒤늦게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아들만 남았다.

● 평생을 바친 고향 땅
지난달 28일 대용의 고향을 찾은 아들 성식이 팔려버린 논 위에 서서 땅을 바라 보고 있다. 논 오른편으로는 아버지가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 했던 어린 시절 옛집이 보인다.
지난달 28일 대용의 고향을 찾은 아들 성식이 팔려버린 논 위에 서서 땅을 바라 보고 있다. 논 오른편으로는 아버지가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 했던 어린 시절 옛집이 보인다.
대용의 빼앗긴 고향 땅은 단순한 재산이 아니었다. 고단했던 73년 삶 그 자체였다. 1952년 6남매 중 맏이로 태어난 대용은 아홉 살부터 남의 집 더부살이를 했다. 입 하나라도 덜기 위해서였다. 교문은 문턱도 못 밟아봤다. 남의 논밭을 매고, 공사장에서 석재를 날랐다. 작두질을 하다 두 손가락이 잘리기도 했다. 험난한 환경 속에서도 일터에서 간식으로 나온 크림빵조차 아까워 아들에게 주려고 품에 안고 오던 아버지였다.

서른둘에 가족을 이끌고 경기 안산으로 올라온 뒤에도 그의 삶은 ‘노동’ 뿐이었다. 4층 상가 건물에서 36년을 경비로 일했다. 월급은 쥐꼬리만 했다. 화장실도 없는 4평 남짓한 상가 창고가 네 식구의 집이었다.

그렇게 번 돈으로 고향 땅을 조금씩 사 모았다. 아내의 결혼 패물까지 팔아 보탰다. 지인 보증을 잘못 서 폐지를 주워 팔아야 했던 시기에도 그 땅만은 지켰다. 성식은 “아버지에게 땅은 ‘인생의 증거’였다”고 했다.

식구를 키워낸 대용의 일터는 2018년경 재개발로 사라졌다.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철거된 상가처럼 대용의 삶도 주저앉았다. 하릴없이 집에만 있는 무기력한 하루가 되풀이됐다. 농사를 짓고 이웃들과 교류했던 고향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던 것도 그때부터였다. 그러나 치매와 외로움, 죄책감 사이로 파고든 고향 친구 한마디에 땅은 허망하게 넘어갔다.

고향집을 찾은 아들 성식이 과거 아버지가 지내던 방안을 응시하고 있다. 지금은 전기도, 수도도 끊긴 빈집이지만 아버지 대용과 아들 성식 모두 이 집에서 나고 자랐다. 성식이 과거 치매 아버지를 집에서 모실 때 아버지는 이 고향집으로 한 달간 가출을 하기도 했다.
고향집을 찾은 아들 성식이 과거 아버지가 지내던 방안을 응시하고 있다. 지금은 전기도, 수도도 끊긴 빈집이지만 아버지 대용과 아들 성식 모두 이 집에서 나고 자랐다. 성식이 과거 치매 아버지를 집에서 모실 때 아버지는 이 고향집으로 한 달간 가출을 하기도 했다.


● 전세 사기범의 새로운 ‘사냥터’
예방책이 없었던 건 아니다. 성식은 아버지가 요양원에 들어가기 전 ‘후견제도’를 알아봤다. 법원이 정한 사람이 통장을 대신 관리해, 돈을 함부로 빼내지 못하게 막는 장치다. 하지만 절차가 복잡하고 변호사 비용만 수백만 원이 들어 신청을 포기했다. 멀쩡히 숨 쉬는 아버지를 금치산자로 만든다는 죄책감도 이길 수 없었다. 사냥꾼은 그 틈을 파고들었다.

성식은 지난해 7월 영길을 횡령 혐의로 형사 고소하고 민사소송도 냈다. 영길은 경찰 조사에서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대용이가 자식들에게 학대당하고 있다고 해서 도와준 것뿐”이라며 “돈은 대용이가 맡아달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두 차례 열린 재판 기일에도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영길은 대용의 돈을 가져간 지 닷새 만에 자기 빚 3600만 원을 갚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가 소유한 경기 용인 빌라는 깡통전세나 다름없었다. 우편함엔 단전 안내문 등이 딱지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한 세입자는 “집주인(영길)에게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사람만 이 건물에 6명”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취재팀과 마주한 영길은 여전히 당당했다. “대용이와는 형제 같은 사이였어. 돈을 돌려주려고 했는데 그 친구가 전화를 안 받았다니까.” 돈을 언제 돌려줄 생각이냐고 하자 그는 역정을 냈다. “자꾸 기분이 안 좋네. 내가 아들(성식)한테 돈 줘야 할 법적 의무가 있어요? 차용증을 썼나?”

● 배신 그 이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요양원을 찾은 아들 성식이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저녁식사 도중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성식은 마지막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요양원을 찾은 아들 성식이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저녁식사 도중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성식은 마지막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
영길에게 속았다는 사실은 대용의 몸과 마음을 동시에 무너뜨렸다. 치매와 우울감은 더 심해졌고, 목소리마저 잃었다. 10월 26일 요양원에서 만난 대용이 종이에 ‘돈’이라고 적자, 성식은 “아직 돈 못 받았어, 아빠. 좀 더 기다려야 해”라고 했다. 대용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울음을 터뜨릴 듯했다. 잠시 뒤 그는 몇 글자를 더 썼다. ‘나뿌사람 아니다.’ 자신을 속인 사람을 끝까지 ‘나쁜 사람’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치매 노인의 마지막 방어선. 그 말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남긴 마지막 문장이 됐다.

이틀 뒤인 10월 28일, 요양원에서 저녁 식사를 하던 대용은 갑자기 의식을 잃고 고꾸라졌다. 입안에는 미처 다 넘기지 못한 밥알이 굴러다녔다. 요양보호사가 급히 가슴을 누르며 119를 불렀지만, 소용이 없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성식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대용의 심장이 멈춘 뒤였다. 온기가 남아 있는 아버지를 붙들고 아들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영길이 대용의 돈을 가져간 지 1년 5개월 만이었다.

대용의 고향 마을 지인은 “두 사람은 어릴 때 같은 동네에 살았지만, 서로 자주 어울리던 사이는 아니었다”고 했다. 지인은 영길에게도 대용의 부고를 전했지만, 조문은커녕 연락 한 통 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제 성식은 아버지를 대신해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돈은 못 받아도 처벌은 받게 해야죠. 아버지를 ‘친구’라고 부르던 사람이, 아버지 인생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법으로라도 남겨야 할 것 같아요.”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소송을 이어가기로 한 아들은 “돈은 못 받아도, 벌은 받아야 한다” 라고 말했다. 더 이상 아버지가 누워있지 않은 요양원에서 아들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소송을 이어가기로 한 아들은 “돈은 못 받아도, 벌은 받아야 한다” 라고 말했다. 더 이상 아버지가 누워있지 않은 요양원에서 아들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헌트: 치매 머니 사냥’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히어로콘텐츠팀>
▽팀장: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취재: 전혜진 박경민 최효정 기자
▽프로젝트 기획: 김재희 기자
▽사진: 박형기 기자
▽편집: 하승희 봉주연 기자
▽그래픽: 박초희 기자
▽인터랙티브 개발: 임희래 ND
▽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임선영 인턴

QR코드를 스캔하면 치매 노인의 자산을 노리는 ‘사냥’의 실태를 디지털로 구현한 ‘헌트: 치매머니 사냥’(https://original.donga.com/2025/HUNT)으로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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