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전혜진 동아일보 사회부 전혜진 기자 공유하기 sunrise@donga.com

해가 뜨고 지는 사이 벌어지는 사건사고를 취재합니다.

기사 제보
최신 순
“이준석, 朴 만남 돕겠다며 의원-하버드 동문 거론”국민의힘 윤리위원회까지 가게 된 이준석 대표의 관련 의혹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이 대표가 김성진 아이카이스트 대표로부터 박근혜 정권 초인 2013년 7월과 8월 대전 유성구의 한 호텔에서 성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다. 보수 성향의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는 지난해 “대전지방검찰청 수사 자료를 통해 확인했다”며 관련 의혹을 제기했지만 이 대표는 “(성 상납 의혹으로) 수사 받은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다른 하나는 증거인멸교사 의혹이다. 이 대표가 김철근 당 대표 정무실장을 성 상납 의혹의 증인으로 지목된 장모 씨에게 보내 투자유치 각서를 써주고 ‘성 접대가 없었다’는 사실 확인서를 받도록 지시했다는 것. 이 대표 측은 만남 자체는 인정하지만 성 상납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증거인멸교사도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윤리위는 성 상납 자체에 대한 판단보다는 이 대표가 증거인멸교사를 통해 품위유지의무를 위반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김 대표가 2013년 7월 이 대표와의 식사 자리에서 당시 박 대통령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묻자 이 대표가 ‘형님처럼 모시는 국회의원과 기업인’을 거론하면서 “내가 도와줄 수 있다”고 했다는 진술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린다. 이 대표가 언급한 2명은 이 대표와 하버드대 동문인 컨설팅사 대표 류모 씨와 전직 의원 김모 씨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표는 박 전 대통령을 직접 만나기 위해 이 대표가 거론한 2명을 자주 접촉했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이윤태 기자 oldsport@donga.com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2022-07-02 03:00
사면초가 이준석… 친윤 비서실장 사임, “20차례 접대” 추가폭로친윤(친윤석열)계로 꼽히는 국민의힘 박성민 당 대표 비서실장(사진)이 30일 전격 사임했다. 이준석 대표의 성 상납 증거인멸 교사 의혹에 대한 당 윤리위원회의 징계 심의를 일주일 앞두고 이뤄진 사임을 두고 “이준석 고사 작전”(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단순히 개인적 선택”(당 중진 의원) 등 다양한 반응이 이어진 가운데 이 대표는 “개혁에 박차를 가하겠다”며 사퇴 가능성을 일축했다.○ 윤리위 앞두고 李 떠난 친윤 비서실장박 의원은 이날 오전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일신상의 이유로 당 대표 비서실장직을 사임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운 박 의원은 3월 대통령선거 이후 당 대표 비서실장을 맡아 이 대표와 윤 대통령 간 소통 창구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최근 이 대표와 일부 친윤 세력 간 갈등으로 당 내홍이 격화되자 박 의원은 주변에 심적 고통을 토로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박 의원이 이전부터 친윤과 이 대표의 중간에 껴서 오해받고 고생했다고 수차례 얘기해왔다”고 했다. 당 안팎에서는 박 의원이 이 대표 곁을 떠난 것을 두고 해석이 분분했다. 친윤계에서는 7일 이 대표의 성 접대 의혹에 대한 당 윤리위원회 결정을 앞두고 윤 대통령이 이 대표와 더 거리를 두겠다는 신호라고 보고 있다. 박 의원이 윤 대통령과 권성동 원내대표가 모두 해외 출장을 떠나 있는 기간에 사임한 점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당 관계자는 “이 대표가 점점 당에서 고립무원에 빠지는 구도”라고 했다. 반면 비서실장의 사임이 이른바 ‘윤심(윤 대통령의 의중)의 이 대표 손절 수순’이라 보기엔 무리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한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고작 초선 비서실장의 거취에 대통령이 개입했을 리가 있겠느냐”며 “박 의원 개인 차원으로 봐야지, ‘윤심 손절’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라고 했다. 당내에서는 윤 대통령이 귀국하는 1일 이후 당 내홍의 새로운 전환점이 생길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 대표는 박 의원의 사임에 대해 “사전에 논의했다”면서 윤리위가 열리기 전 사퇴할 가능성에 대해 “그런 경우는 없다”고 일축했다. 이 대표는 30일 경북 경주 월성원자력본부 방문 후 기자들과 만나 “어제 포항에서 박 실장과 만나 어떤 상황인지 설명을 들었고 제가 (사임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라며 “아무리 계속 정치적 상황이 발생한다 해도 개혁의 동력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어 “당과 정부의 지지율 추세가 최근 부침을 겪고 있다”며 “이걸 돌파할 방법은 작년 이맘때처럼 개혁에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당 내홍 격화 속 2030세대를 중심으로 윤 대통령과 당 지지율이 동반 하락하는 점을 강조하며 ‘이준석발 혁신’의 불씨를 되살려 보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李 성 접대 제공’ 주장 인사 경찰 조사이 대표에 대한 경찰 조사도 속도를 내고 있다.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이 대표에게 성 접대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 김성진 아이카이스트 대표를 이날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다. 김 대표는 다른 사건으로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상태라 옥중 조사를 받았다. 김 대표의 법률대리인인 김소연 변호사는 경찰 접견 조사 후 “김 대표가 이 대표에게 성 접대 후 이른바 ‘박근혜 시계’를 선물로 받았다고 진술했다”라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또 “(2013년 당시) 김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을 모실 방법이 없겠느냐’고 묻자 이 대표가 (대통령을 연결해줄) 두 명을 거론하며 ‘힘써 보겠다’고 말했다”며 “한 명은 이 대표가 형님처럼 모시는 국회의원이고 나머지 하나는 기업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 대표가 김 대표에게 2013년부터 2016년까지 20차례 넘게 접대를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이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대선 이후 소통한 바도 없다”며 “없는 시계를 요청해서 구해줬다고 한바탕하더니 (그 두 명이) 누구 이야기하는지 이름이나 들어보자”고 반박했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이윤태 기자 oldsport@donga.com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2022-07-01 03:00
민법상 ‘자녀 징계권’ 삭제됐지만…부모 65% “훈육상 체벌 가능”지난해 1월 체벌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됐던 민법상 부모의 ‘자녀 징계권’ 조항이 삭제되고 1년 5개월이 지났지만 성인 10명 중 8명은 여전히 이를 알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제아동 비정부기구(NGO) 세이브더칠드런은 이 같은 설문조사 결과를 담은 ‘가정 내 체벌 금지 인식·경험’ 보고서를 27일 발표했다. 이 단체가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1일까지 전국 20~60대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8.8%는 징계권이 삭제된 사실을 모른다고 답했다. 지난해 1월 민법에서 ‘친권자는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이 제정 63년 만에 폐지되며 체벌의 근거가 사라졌다. 이 조항은 훈육이라는 명분으로 아동학대를 용인하는 근거가 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자녀를 훈육하기 위해 신체를 꽉 붙잡거나 때리는 등의 신체적 체벌은 어떤 경우에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답한 비율은 34.4%였다. 신체적 체벌을 ‘최후의 수단으로만 사용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36.2%, ‘상황에 따라 필요하다면 사용할 수 있다’는 28.9%였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의회 대표는 “부모에게 체벌하지 않고도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양육 방법을 알려나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2022-06-27 17:23
‘신변보호 여성 가족 살해’ 혐의 이석준, 1심서 무기징역 선고경찰의 신변 보호를 받던 여성의 가족을 살해한 이석준(26·구속)이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이종채)는 보복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석준에게 21일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살인 전 A 씨를 감금 및 성폭행했을 뿐 아니라 (피해자) A 씨의 가족을 상대로 잔혹한 범행을 저질렀고, 유족들이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며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 과정에서 이석준 측은 범행이 계획적 보복이 아니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강간상해 피의자가 되는 과정에서 분노가 일어 보복의 목적으로 피해자를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며 “미리 주소를 알아내고 흉기를 준비했으며 (피해자를) 감시하는 등 범행을 치밀히 준비했다”고 지적했다. 이석준은 지난해 12월 10일 A 씨의 집에 찾아가 A 씨 어머니를 흉기로 살해하고 남동생에게 중상을 입힌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석준은 범행 5일 전 대구에서 A 씨를 감금하고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에 A 씨가 경찰에 신변 보호를 요청하자 앙심을 품고 흥신소를 통해 거주지를 알아낸 뒤 택배기사로 위장해 A 씨 집에 들어가 범행을 저지른 혐의가 인정됐다.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2022-06-21 21:32
“왜 하필 6·25전쟁날 축제냐” 반발에… 연세대, 3년만의 ‘대동제’ 결국 취소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되면서 속속 재개되는 축제가 논란 끝에 취소되는 경우가 이어지고 있다. ‘위드 코로나’ 시대를 맞아 축제를 즐기려는 욕구가 최근 몇 년 동안 급속히 높아진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에 대한 감수성과 충돌하는 양상이다. 연세대 축제기획단은 2019년 이후 3년 만에 이달 24, 25일 개최할 예정이던 축제 ‘무악대동제’를 무대 운영의 어려움 등의 이유로 취소했다고 16일 밝혔다. 축제 취소에는 ‘개최일이 6·25전쟁 72주년과 겹치는 건 문제’라는 구성원들의 반발이 영향을 미쳤다. 최근 연세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6·25전쟁이 발발한 날 축제를 여는 걸 두고 “국가와 민족에 대한 역사·사명 의식의 문제”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구성원들은 “현대사에서 중요한 날인데 왁자지껄 떠들면 비판을 받을 것”, “술판이 벌어지는 응원제를 굳이 이날 해야 하느냐”고 지적했다. 함형진 연세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각종 논란으로 인해 대동(大同)의 의미가 퇴색된 것 같아 안타깝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취소에 대해 이 대학 재학생 조모 씨(23)는 “시험 기간 시간을 쪼개 축제를 준비한 학생들은 뭐가 되느냐”며 반발했다. 상당한 양의 물을 사용하는 도심 페스티벌도 화살을 맞고 있다. 올 들어 기록적인 가뭄이 이어지는 가운데 ‘물놀이 콘서트’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24∼26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개최 예정인 ‘워터밤 서울 2022’ 콘서트는 ‘물 낭비’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 배우는 12일 SNS에 “콘서트 물 300t, 소양강에 뿌려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가수 싸이의 ‘흠뻑쇼 SUMMER SWAG 2022’도 같은 논란이 일면서 추가로 계획했던 청주 공연 일정이 최근 취소됐다. 일각에서는 “축제를 안 하면 가뭄이 해소되느냐”, “가뭄 때문에 워터파크도 모두 문을 닫아야 하느냐”라는 반론도 나온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방역 등 규제가 많았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특히 젊은층을 중심으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졌다”라며 “문화 행사도 여러 사회적 맥락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타인을 배려하는 동시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 몸에 배어든 결과”라고 분석했다.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2022-06-21 03:00
이준석 “경고도 안돼” vs 당 윤리위 “선 넘은 발언”국민의힘 윤리위원회가 이르면 이번 주 이준석 당 대표의 성상납 의혹 관련 징계 논의에 들어갈 예정인 가운데, 이 대표와 윤리위가 각각 여론전을 이어가며 정면충돌했다. 이양희 윤리위원장은 18일 입장문을 내고 “윤리위 활동에 대한 추측성 정치적 해석이 제기되는 데다 당 사무처의 부적절한 업무 처리가 더해지면서 정상적 활동에 지장을 받고 있다”며 “윤리위는 당원 개개인의 지위 고하에 상관없이 모든 당원을 징계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앞서 이 대표가 17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가장 낮은 징계인) 경고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성상납 의혹은 윤리위의 판단 대상이 아니다”라고 한 데 대해 정면으로 반박한 것. 한 윤리위원은 통화에서 “이 대표의 발언은 사실상 윤리위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징계 논의를 앞둔 당사자로서 선을 넘고 있다”고 했다. 윤리위는 조만간 전체회의를 열고 이 대표의 성상납 의혹과 관련한 증거인멸 교사 의혹과 품위 유지 의무 위반을 따질 방침이다. 이 대표 측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가운데 ‘당원권 정지’ 이상의 징계가 나올 경우 대표 거취를 두고 당내 극심한 내홍이 예상된다. 이 대표에게 성상납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김성진 아이카이스트 대표에 대해서는 23일경 옥중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경찰은 19일 수백억 원대의 투자금을 가로챈 혐의로 복역 중인 김 대표의 참고인 조사를 위해 서울구치소에 수사접견 신청을 했다고 밝혔다.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2022-06-20 03:00
‘촌캉스’ 올여름 MZ세대 여행트렌드취업준비생 신정현 씨(26)는 이달 말 친구 4명과 강원 홍천군의 작은 호텔로 1박 2일 ‘촌캉스(村+바캉스)’를 다녀올 예정이다. 원래 해외여행을 가려다가 배 이상으로 뛴 항공권 값에 포기했다. 신 씨는 “부산이나 강릉처럼 사람이 붐비는 곳보다 한적한 곳에서 여행을 즐기고 싶다”라며 “친구들과 숙소에서 밀키트로 파티를 할 생각”이라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억눌렸던 여행 수요가 최근 폭발하는 가운데 유가 등의 영향으로 급등한 항공권 가격에 놀라 해외여행에서 국내로 발길을 돌리는 여행객이 늘고 있다. 특히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유명 관광지를 벗어나 비교적 덜 알려졌던 시골의 여행 명소를 찾는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안 붐비는 한적한 시골이 좋아”여행 전문 플랫폼 트리플에 따르면 이달 1∼15일 전국 숙소 예약 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1% 늘었다. 특히 유명 여행지가 많은 강원과 제주를 제외하고 영호남과 충청의 시군 지역(광역시 제외) 숙소 예약이 40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박지은 씨(26)는 지난달 울릉도와 독도로 4박 5일 자유여행을 다녀왔다. 박 씨는 “원래 제주도에 갈까 하다가 너도나도 가는 것 같아 새로운 곳이 끌렸다”며 “이번 여름에도 전주, 순천 등 국내 중소도시 여행을 가볼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숙박업소 예약 플랫폼 야놀자 관계자는 “부산 해운대나 강원 강릉 같은 유명 여행지 외에 교통이 다소 불편하더라도 관광객이 많지 않은 한적한 곳이 새로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MZ세대, 여행지로 취향 뽐내취향을 중시하는 MZ세대들이 차별화된 여행지를 찾아내고, 이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알리면서 묻혀 있던 지역 관광지가 새롭게 각광받는 일도 적지 않다. 서울의 직장인 이호진 씨(31)는 2월 강원 영월군의 한 게스트하우스로 ‘별 보기 여행’을 다녀왔다. 교통이 불편한 곳이었지만 SNS로 본 시골의 밤 풍경이 이 씨의 마음을 붙잡았다. 이 씨는 “유명 관광지보다 조용한 곳을 고르려고 둘러보다 사진 분위기가 맘에 들어 선택했다”라며 “올여름에는 경남 남해나 전남 완도에서 숨겨진 곳을 찾아볼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MZ세대가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면서도 존재감과 문화적 취향을 뽐낼 수 있을 만한 곳을 찾아내 SNS로 공유하면서 새 여행 장소가 발굴되고 있다”고 했다. 최경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관광정책연구실장은 “남들과 같은 것을 거부하는 MZ세대가 자신만의 관광지를 찾는 경향이 ‘국내 여행의 재발견’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했다.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2022-06-17 03:00
올여름 MZ세대는 중소도시서 ‘촌캉스’…“나만의 관광지 찾아요”취업준비생 신정현 씨(26)는 이달 말 친구 4명과 강원 홍천군의 작은 호텔로 1박 2일 ‘촌캉스(村+바캉스)’를 다녀올 예정이다. 원래 해외여행을 가려다가 배 이상으로 뛴 항공권 값에 포기했다. 신 씨는 “부산이나 강릉처럼 사람이 붐비는 곳보다 한적한 곳에서 여행을 즐기고 싶다”라며 “친구들과 숙소에서 밀키트로 파티를 할 생각”이라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억눌렸던 여행 수요가 최근 폭발하는 가운데 유가 등의 영향으로 급등한 항공권 가격에 놀라 해외여행에서 국내로 발길을 돌리는 여행객이 늘고 있다. 특히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유명 관광지를 벗어나 비교적 덜 알려졌던 시골의 여행 명소를 찾는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안 붐비는 한적한 시골이 좋아” 여행 전문 플랫폼 트리플에 따르면 이달 1~15일 전국 숙소 예약 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1% 늘었다. 특히 유명 여행지가 많은 강원과 제주를 제외하고 영호남과 충청의 시군 지역(광역시 제외) 숙소 예약이 40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박지은 씨(26)는 지난달 울릉도와 독도로 4박 5일 자유여행을 다녀왔다. 박 씨는 “원래 제주도에 갈까 하다 너도나도 가는 것 같아 새로운 곳이 끌렸다”며 “이번 여름에도 전주, 순천 등 국내 중소도시 여행을 가볼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숙박업소 예약 플랫폼 야놀자 관계자는 “코로나19가 잦아들면서 여행 수요가 급증해 해외 및 국내 여행 시장이 동반 성장 중”이라며 “국내에선 부산 해운대나 강릉 같은 유명 여행지 외에 교통이 다소 불편하더라도 관광객이 많지 않은 한적한 곳이 새로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MZ세대, 여행지로 취향 뽐내 취향을 중시하는 MZ세대들이 차별화된 여행지를 찾아내고, 이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알리면서 묻혀 있던 지역 관광지가 새롭게 각광받는 일도 적지 않다. 서울의 직장인 이호진 씨(31)는 지난 2월 강원 영월군의 한 게스트하우스로 ‘별 보기 여행’을 다녀왔다. 교통이 불편한 곳이었지만 SNS로 본 시골의 밤 풍경이 이 씨의 마음을 붙잡았다. 이 씨는 “유명 관광지보다 조용한 곳을 고르려고 둘러보나 사진 분위기가 맘에 들어 선택했다”라며 “올 여름에는 경남 남해나 전남 완도에서 숨겨진 곳을 찾아볼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MZ세대가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면서도 존재감과 문화적 취향을 뽐낼 수 있을 만한 곳을 찾아내 SNS로 공유하면서 새 여행 장소가 발굴되고 있다”고 했다. 최경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관광정책연구실장은 “해외에서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잘 알려지지 않았던 국내 지역을 찾아내 여행하는 것이 추세”라며 “남들과 같은 것을 거부하는 MZ세대가 자신만의 관광지를 찾는 경향이 ‘국내 여행의 재발견’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했다. 전혜진 기자sunrise@donga.com}2022-06-16 19:32
여론조사 전화 1625만통… 64%는 안 받거나 거절“업무에 집중하다가 모르는 전화를 받아보면 어김없이 여론조사더군요. 맥이 탁 풀렸습니다.” 서울의 40대 직장인 조모 씨는 지난 6·1지방선거 기간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여론조사 전화를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조 씨는 “업무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전화가 많이 왔다”고 돌이켰다. 동아일보 분석 결과 이번 지방선거 기간 여론조사 전화가 늘어 피로감을 느꼈다는 세간의 인식이 사실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건수, 전화 횟수 모두 늘어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선거운동 개시일(5월 19일)부터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일 전날(5월 25일)까지 7일 동안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심의위)에 결과가 등록된 여론조사 전화 횟수는 모두 1624만5204통이었다. 2018년 제7회 지방선거 당시 같은 기간(1426만2573통)보다 198만2631통(13.9%)이 늘어난 것이다. 분석 기간 등록된 여론조사 건수 역시 올해 지방선거가 389건으로 4년 전(225건)보다 72.9% 늘었다. 심의위에 따르면 이번 지방선거에선 총 1881건의 전화여론조사가 진행됐다. 분석 기간의 조사 건당 평균 통화 횟수(약 4만1800통)를 고려하면 여론조사 업체들은 이번 지방선거 때 모두 8000만 통에 가까운 전화를 유권자들에게 건 것으로 추산된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선거 여론조사 보도의 주목도가 높다 보니 너도나도 조사에 나선 결과라고 본다”고 분석했다. 한 여론조사 업체 관계자는 “올해 지방선거는 4년 전에 비해 경기, 충청 등 접전 지역이 많았기 때문에 심의위를 통해 공개되지 않는 정당이나 선거캠프의 여론조사 수요도 상대적으로 많았다”고 했다.○ 10명 중 6명은 전화 안 받거나 거절잦은 조사 전화에 피로해진 유권자들이 전화를 거부하는 경우도 늘었다. 올해 지방선거 여론조사 전화 가운데 63.8%(1036만9043통)는 유권자가 전화를 받지 않거나, 전화를 받은 뒤 거절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비율은 4년 전(55.4%)보다 8.4%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특히 통화 중이거나 부재중 등의 사유로 전화를 아예 받지 않은 건수가 693만3169건으로 4년 전(489만339건)에 비해 41.8% 급증했다. 발신자를 알려주는 통화 애플리케이션 사용자가 많아지면서, 여론조사임을 확인하고 전화를 받지 않는 유권자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유권자들의 전화 여론조사 피로감을 줄이는 방법으로는 인터넷 조사 확대나 여론조사기관 등록 요건 강화 등이 거론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대책을 고심 중이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재 선거 여론조사 건수나 전화 횟수에 대한 제한은 없다”며 “부정확한 여론조사를 줄이고 시민들의 피로감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했다. 여론조사 전화를 줄이려면 자신이 가입한 이동통신사에 ‘여론조사기관 가상번호 제공 거부’를 요청하면 된다. 다만 이 경우에도 무작위로 전화를 거는 임의전화(RDD) 방식의 조사 전화는 여전히 걸려 올 수 있다.남건우 기자 woo@donga.com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2022-06-16 03:00
변호사 단체 “의뢰인 권익 대변… 원한-앙심 안돼”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로 7명이 사망한 가운데 변호사들도 충격에 빠진 분위기다. 변호사단체들은 잇따라 성명을 내 변호사에 대한 위협이나 폭력을 막기 위한 시민들의 인식 개선은 물론이고 관련 입법이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제기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10일 성명을 내고 “변호사에 대한 테러 사건은 그동안 종종 문제가 돼 왔다. 상당수 변호사들은 업무를 수행하면서 당사자들에게 폭행, 협박, 폭언에 시달려본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변호사는 어떤 사건이든 최선을 다해 의뢰인의 권익을 대변하는 것이 법률이 정한 책무이고 개인적인 원한이나 앙심을 절대 변호사에게 이입시켜서는 안 된다”며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변호사에 대한 인식 개선을 바탕으로 다시는 이러한 참사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호사에 대한 폭력을 가중 처벌하는 입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 단체인 한국법조인협회(한법협)는 이날 성명에서 “변호사에 대한 폭언·협박·위해 행위를 엄중하게 처벌하는 법률을 만들어 달라”고 주장했다. 한법협 김기원 회장은 “단순한 형량 강화보다는 ‘변호사에 대한 폭력은 안 된다’는 시민적 인식을 만들어가자는 의도의 제안”이라며 “사건 관련자가 변호사뿐만 아니라 판사, 검사, 증인 등에게 폭력을 가할 경우 가중 처벌하는 입법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날 대구 경북대병원 합동분향소를 찾아 “사건의 진상이 명백히 규명되고 피해자 지원이 신속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종엽 대한변호사협회장도 분향소에서 “매우 안타깝고 슬프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이 같은 테러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계 당국과 대책을 마련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대구=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2022-06-11 03:00
“50대 늦깎이 신랑, 가족사랑 각별했는데…”“2년 전 결혼한 늦깎이 신랑인데… 이렇게 갔다는 걸 믿을 수가 없습니다.” 9일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로 숨진 사무장 김모 씨(54)의 동갑내기 친구 강창용 씨는 “(김 씨가) 늦게 결혼을 해서 친구들이 축하를 많이 해줬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믿을 수 없다. 가족 사랑이 각별했다”며 이같이 안타까워했다. 강 씨는 “어제 고교 동창들이 함께 쓰는 온라인 게시판에 ‘○○아, 이 세상에서 보여준 너의 모습, 다음 세상에서 우리 다시 보자’라고 적었다”며 “이제 다시는 답글을 받을 수 없는 글이 됐다”며 울먹였다. 신체 일부에서 자상이 발견된 김모 변호사(57)와 박모 사무장(57)은 대구의 한 고등학교 동문으로 오랜 친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우정을 이어온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 변호사 사무실에서 함께 일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김 변호사와 박 사무장이 오랜 친구라고 밝힌 한 남성은 “두 친구 모두 아마 방화범이 누군가에게 먼저 달려드는 것을 막기 위해 나섰다가 심하게 다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참변이 일어난 지 하루가 지난 10일 대구 중구 경북대병원 장례식장 104호에는 대구지방변호사회장(葬)으로 합동분향소가 차려졌다. 개별 빈소가 있는 2층에서는 오전부터 유족들의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김 변호사 유족은 “불에 타고, 칼에도 맞고…”라며 오열했다. 용의자 천모 씨(53)가 앙심을 품은 대상인 배모 변호사(72)도 황망한 심경을 전했다.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배 변호사는 “203호에 근무하던 사람들 모두 착실했다. (천 씨가) 대체 왜 이렇게까지 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며 “지금도 (가슴이) 벌렁벌렁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께 퇴근할 때 직원들 얼굴 본 게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고 했다.대구=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2022-06-11 03:00
“숨진 사무장은 2년 전 결혼한 늦깎이 신랑…가족사랑 각별했는데”“2년 전 결혼한 늦깎이 신랑인데… 이렇게 갔다는 걸 믿을 수가 없습니다.” 9일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로 숨진 사무장 김모 씨(54)의 동갑내기 친구 강창용 씨는 “(김 씨가) 늦게 결혼을 해서 친구들이 축하를 많이 해줬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 믿을 수 없다. 가족 사랑이 각별했다”며 이 같이 안타까워했다. 강 씨는 “어제 고교 동창들이 함께 쓰는 온라인 게시판에 ‘OO아, 이 세상에서 보여준 너의 모습, 다음 세상에서 우리 다시 보자’라고 적었다”며 “이제 다시는 답글을 받을 수 없는 글이 됐다”며 울먹였다. 신체 일부에서 자상이 발견된 김모 변호사(57)와 박모 사무장(57)은 대구의 한 고등학교 동문으로 오랜 친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우정을 이어온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 변호사 사무실에서 함께 일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김 변호사와 박 사무장의 오랜 친구라고 밝힌 한 남성은 “검안에 참석했는데 두 사람의 배와 옆구리가 심하게 훼손돼 있어서 안타까웠다. 두 친구 모두 의협심이 강했는데 아마 방화범이 누군가에게 먼저 달려드는 것을 막기 위해 나섰다가 심하게 다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친구들이 입은 옷가지에서도 혈흔이 보였는데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하는 마음에 황망하기 이를 데 없다”고 말했다. 참변이 일어난 지 하루가 지난 10일 대구 중구 경북대병원 장례식장 104호에는 대구변호사협회장(葬)으로 합동분향소가 차려졌다. 개별 빈소가 있는 2층에서는 오전부터 유족들의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김 변호사 유족은 “불에 타고, 칼에도 맞고…”라며 오열했다. 용의자 천모 씨(53)가 앙심을 품은 대상인 배모 변호사(72)도 황망한 심경을 전했다.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배 변호사는 “203호에 근무하던 사람들 모두 착실했다. (천 씨가) 대체 왜 이렇게까지 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며 “지금도 (가슴이) 벌렁벌렁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께 퇴근할 때 직원들 얼굴 본 게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고 했다. 대구=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2022-06-10 19:57
“어려운 민원인 헐값 변호, 따르는 이도 많았는데…”“봉사 차원에서 어려운 민원인들을 헐값에 변호해 주기도 했는데….” 9일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로 숨진 김모 변호사(57)를 두고 한 동료 변호사는 이렇게 말하며 안타까워했다. 이날 피해자 6명의 시신이 안치된 대구 중구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대구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는 “김 변호사를 20년 이상 알고 지냈다”며 “김 변호사는 적이 없는, 한마디로 ‘호인’이었다”고 했다. 이석화 대구지방변호사회장은 “김 변호사는 유난히 주변에 따르는 이가 많았다”고 돌이켰다. 다른 변호사는 “당장 내일 변호사회 회의가 예정돼 있었는데…”라며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 변호사의 사무장으로 같은 사무실에서 일했던 사촌동생 김모 씨도 이날 방화로 함께 변을 당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 밖에도 김 변호사와 배모 변호사의 사무실 직원으로 일했던 박모 씨(57)와 또 다른 박모 씨(53), 50대 여성 남모 씨, 30대 여성 엄모 씨 등이 화를 입었다. 이날 장례식장은 속속 도착하며 흐느끼는 유족들로 울음바다가 됐다. 설마 하는 심정으로 도착한 유족들도 신원 확인을 위해 경찰이 고인의 얼굴을 보이자 이내 자리에 주저앉으며 통곡했다. 대구지방변호사회는 변호사회장으로 합동장례를 치르는 방안을 유족들과 논의하고 있다.대구=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2022-06-10 03:00
출입문 막고 선 범인 “같이 죽자”…인화물질 뿌린뒤 불질러변호사 사무실이 모여 있는 대구시내 빌딩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7명이 사망하고 50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경찰은 부동산 투자금 반환 소송에서 패소해 앙심을 품은 50대 남성이 상대 측 변호사 사무실에 불을 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9일 대구소방안전본부와 대구경찰청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55분경 수성구 범어동 우정법원빌딩 2층 사무실(203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신고가 119에 접수됐다. 곧바로 출동한 소방대가 22분 만에 진화했지만 김모 변호사(57) 등 이 사무실에서 일하던 6명과 방화 용의자 천모 씨(53)가 현장에서 숨졌다. 부상자 50명은 모두 경상으로 그중 31명이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경찰 조사 결과 203호 사무실은 계단과 거리가 먼 데다 불길이 순식간에 확산돼 근무자들이 미처 피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1995년 12월 사용 승인을 받은 이 건물은 스프링클러가 지하에만 설치됐을 뿐 지상 층에는 없었다. 경찰은 “지상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203호는 김 변호사와 배모 변호사(72)가 함께 쓰는 사무실이다. 경찰은 천 씨가 배 변호사에게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천 씨는 2013년 대구 수성구 주상복합아파트를 지으려는 시행사에 6억8000만 원을 투자했다. 사업이 진척되지 않자 지난해 4월 시행사 대표를 상대로 약정금 반환 소송을 냈는데 1심에서 패소했다. 이때 시행사 대표 측 법률대리인이 배 변호사였다. 배 변호사는 이날 출장으로 사무실을 비워 화를 면했는데, 함께 사무실을 쓰는 김 변호사와 직원들이 화를 당했다. 경찰은 희생자 2명의 몸에서 날카로운 물체에 찔린 자상을 발견하고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망 원인을 밝힐 예정이다. 경찰은 화재 발생 빌딩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보해 천 씨가 인화성 물질이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상자를 집에서 들고 나온 뒤 흰 천으로 감싸 안고 화재 빌딩 2층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변호사 개인을 향한 범죄를 넘어 사법 체계와 법치주의를 위협하는 중대한 도전이자 야만 행위”라며 범행을 규탄했다.출입문 막고 선 범인 “같이 죽자”… 인화물질 뿌린뒤 불질러 ‘사무실 유일 생존’ 사무장 증언“죽겠구나 싶어, 불길 뚫고 탈출 나머지 직원들은 미처 못피해”CCTV속 용의자 인화물질 가져와 2층 사무실 올라간 후 25초뒤 연기옆 사무실 직원 “문고리 너무 뜨거워 어깨로 문 밀쳐내고 겨우 빠져나와”밀폐된 사무실 신속 대피 어렵고 스프링클러도 설치 안돼 피해 키워 “(범인이) ‘같이 죽자’고 외치더니 갑자기 인화물질에 불을 붙였다.” 9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 우정법원빌딩 화재로 방화 용의자를 포함해 변호사 사무실에 있던 8명 가운데 7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인 김모 씨는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이같이 증언했다. 이석화 대구지방변호사회장이 전한 김 씨의 증언에 따르면 이날 화재는 방화 용의자가 건물 2층에 있는 203호 사무실에 가져간 인화물질을 뿌린 뒤 불을 붙이면서 시작돼 폭발적으로 확산됐다. 범인이 출입문 바로 앞에 불을 지른 탓에 사무실 직원 대부분은 미처 피할 겨를이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생존한 김 씨는 출장으로 화를 면한 배모 변호사(72)의 사무장이다.○ “이러다 죽겠구나 싶었다”김 씨는 사건 당시 203호 안에 있는 별도 방에 있다가 밖이 소란스러워 나왔을 때 범인이 불을 붙였다고 전했다. 이 회장은 “김 씨가 이러다 죽겠다 싶어 연기와 불길을 뚫고 간신히 탈출했는데, 나머지 직원들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연기에 질식했다고 들었다”고 했다. 이 회장 역시 건물 4층 사무실에 있다가 소방에 구조됐다. 건물 내 폐쇄회로(CC)TV 화면을 보면 이날 오전 10시 52분경 청바지와 청록색 점퍼 차림의 남성이 이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방화 용의자 천모 씨(53)였다. 그는 빨간색 가방을 메고 작은 상자로 보이는 물건을 흰 천으로 감싼 채 들고 있었다. 경찰은 이 물체에 시너 같은 인화물질이 담겨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온 천 씨는 가방에서 뭔가를 꺼낸 뒤 곧바로 203호실로 향했다. 약 25초 뒤 주변 사무실 등에서 사람들이 뛰쳐나오고 짙은 연기가 2층을 뒤덮었다. 경찰에 따르면 화재 현장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의 범어동 한 아파트에 사는 천 씨는 이날 집에서 인화성 물질을 챙겨 나온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그의 집에서 인화물질이 담긴 통을 발견하고 감식을 의뢰했다. 불이 난 사무실 바로 옆인 202호에서 근무하는 한 남성은 “방화범의 목소리로 추정되는 격앙된 고함이 들리더니 폭발음과 함께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건물이 흔들렸다. 끔찍한 비명도 들렸다”며 “문고리를 잡았는데 너무 뜨거워 어깨로 문을 부딪쳐 간신히 빠져나왔다”고 했다.○ 스프링클러 없어 피해 커져 소방당국이 화재 신고로부터 22분 만인 오전 11시 17분경 불을 모두 껐음에도 사망자가 다수 발생한 건 건물 자체가 화재에 취약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화재가 발생한 건물은 대구지방법원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으며 지하 2층∼지상 5층 규모다. 다수의 변호사 사무실이 밀폐된 형태로 모여 있는 데다 사무실 창문이 작아 연기가 원활하게 배출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사건이 일어난 층에는 스프링클러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수성구에 따르면 1995년 12월 사용 승인이 난 이 건물은 당시 규정에 따라 지하층에만 스프링클러가 설치됐다. 현행법상 6층 이상 건물의 경우 의무적으로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하지만 이 건물은 5층이어서 현행 규정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대피한 이들에 따르면 당시 순식간에 검은 연기가 건물 복도를 꽉 채우면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2층의 변호사 사무실 직원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한 손으로는 입과 코를 틀어막고 다른 손으로 바닥과 벽을 짚으며 겨우 빠져나왔다”고 했다. 각 층 사이 통로는 좁은 계단과 엘리베이터 한 개뿐이어서 2층부터 차오른 연기가 순식간에 위층으로 올라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연기 흡입으로 인한 부상자가 47명이나 나왔다. 일부는 건물 외벽 쪽에 설치된 비상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긴급 대피해 고립돼 있다가 나중에 구조됐다. 이 건물은 매년 한 차례 민간 업체로부터 점검을 받은 뒤 결과를 소방서로 통보하는 ‘자체 점검 대상’이며 최근 2년 동안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대구소방안전본부 관계자는 “건물 내 비상 통로가 제대로 확보돼 있었는지 등을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대구=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대구=유채연 기자 ycy@donga.com대구=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2022-06-10 03:00
“적 없는 ‘호인’이었다”…숨진 변호사, 사무장인 사촌과 함께 변 당해“봉사 차원에서 어려운 민원인들을 헐값에 변호해주기도 했었는데….” 9일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로 숨진 김모 변호사(57)를 두고 한 동료 변호사는 이렇게 말하며 안타까워했다. 이날 피해자 6명의 시신이 안치된 대구 중구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대구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는 “김 변호사를 20년 이상 알고 지냈다”며 “김 변호사는 적이 없는, 한 마디로 ‘호인’이었다”라고 했다. 이석화 대구지방변호사회장은 “김 변호사는 유난히 주변에 따르는 이가 많았다”고 돌이켰다. 다른 변호사는 “당장 내일 변호사회 회의가 예정돼 있었는데…”라며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 변호사의 사무장으로 한 사무실에서 일했던 사촌동생 김모 씨도 이날 방화로 함께 변을 당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밖에도 김 변호사와 배모 변호사의 사무실 직원으로 일했던 박모 씨(57)와 또 다른 박모 씨(53), 50대 여성 남모 씨와 30대 여성 엄모 씨 등이 화를 입었다. 이날 장례식장은 속속 도착하며 흐느끼는 유족들로 연신 울음바다가 됐다. 설마 하는 심정으로 도착한 유족들도 신원 확인을 위해 경찰이 고인의 얼굴을 보이자 이내 자리에 주저앉으며 통곡했다. 유족들은 언론 노출을 피한 채 모여 합동 장례여부 등 장례 절차를 논의했다. 대구=전혜진 기자sunrise@donga.com}2022-06-09 20:42
‘2500억 환매 중단’ 장하원 디스커버리 대표 구속펀드의 부실을 알면서도 투자자들에게 계속 펀드 상품을 판매해 피해를 끼친 혐의를 받는 디스커버리자산운용 장하원 대표(63)가 구속 수감됐다. 서울남부지법 권기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8일 밤 “증거 인멸 및 도망할 염려가 인정된다”며 장 대표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장 대표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와 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디스커버리펀드는 2017년부터 판매됐으나 부실화돼 2019년 4월 환매가 중단됐다. 디스커버리펀드가 투자자들에게 안긴 피해액은 지난해 4월 말 기준 2562억 원에 달한다. 경찰은 장 대표가 신규 투자자가 낸 투자금을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금으로 지급하는 이른바 ‘폰지 사기’ 수법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의심하고 있다. 사건을 수사해 온 서울지방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지난달 10일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서울남부지검이 보완 수사를 요구하며 한차례 반려했다. 이후 경찰은 약 한 달간 보강 수사를 거쳐 영장을 재신청했다. 장 대표는 장하성 주중 한국대사의 친동생이다. 장 대사는 대통령정책실장 취임 직후인 2017년 7월 부인과 함께 약 60억 원을 이 펀드에 투자했다. 같은 달 공정거래위원장이던 김상조 전 대통령정책실장도 약 4억 원을 투자했다. 이들은 이 펀드 투자로 손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장 대사와 김 전 실장 등을 조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장 대표와 함께 구속영장이 청구된 디스커버리자산운용 관계자 김모 씨의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권 부장판사는 김 씨에 대해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 인멸의 염려나 도망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려워 현 단계에서 구속할 필요성과 상당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2022-06-09 00:30
육군병사 극단선택 7년만에… “중대장이 은폐 지시” 제보육군 병사가 부대 내에서 폭언 등에 시달리다 2015년 5월 휴가 중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과 관련해 부대 내 괴롭힘 사실을 중대장이 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군인권센터는 7일 기자회견을 열고 “육군 11사단 고(故) 고동영 일병과 같은 부대에서 근무했던 예비역 부사관이 부대 내 (진실) 은폐 시도가 있었던 정황을 최근 유가족에게 제보했다”고 밝혔다. 제보자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고 일병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당시 중대장이었던 A 대위가 간부들을 집합시킨 뒤 ‘헌병대 조사를 받을 텐데, 이상한 소리는 하지 말고 모른다고 말해라’라고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또 “정비반 간부가 고 일병을 심하게 야단치거나, 전차 안에 가둬 나오지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했다. 당시 부대 간부들은 ‘고 일병을 꾸중한 적은 있지만, 구타나 욕설은 없었다’고 진술했고 중대장은 근신 5일, 가해자로 지목된 정비반 간부는 견책 징계를 받았다. 국가보훈처는 고 일병이 개인적 스트레스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판단했고, 고 일병은 가족의 긴 법정 다툼 끝에 2020년에야 보훈보상대상자가 됐다. 유족은 최근 제보자 증언에 기초해 직권남용 혐의로 A 전 대위를 고소했다. A 전 대위는 지난달 25일 군 검찰에 기소됐다.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2022-06-08 03:00
경찰, ‘김혜경 법카 유용 의혹’ 식당 등 129곳 압수수색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배우자인 김혜경 씨의 ‘경기도청 법인카드 유용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이 법인카드 사용처 100여 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 3일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지난달 중순부터 약 일주일에 걸쳐 김 씨가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수도권 지역의 식당 등 129곳을 압수수색 했다고 밝혔다. 앞서 경찰은 4월 경기도청과 의혹의 핵심 인물인 경기도청 전 총무과 별정직 5급 직원 배모 씨의 집을 압수수색한 바 있다. 이번에 경찰이 압수수색한 식당에는 경기 성남과 수원의 백숙 전문점과 중식당, 초밥집, 쌀국수집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유용 혐의를 받는 금액은 수백만 원 수준이다. 경찰은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자료를 통해 김 씨가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이용한 게 맞는지, 사용 기간과 금액은 얼마나 되는지 등을 확인할 예정이다. 경찰은 압수물 분석을 마치는 대로 사건을 제보한 전 경기도청 비서실 7급 공무원 A 씨와 배 씨 등 사건 관련자들을 소환해 조사할 계획이다. 경찰이 조만간 김 씨에게 소환 통보를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경찰은 또 그동안 국민의힘과 시민단체가 제기한 불법 처방전 발급 등 김 씨 관련 각종 의혹 전반에 대해서도 사실관계를 확인할 방침이다. 앞서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이 전 지사 부부와 배 씨 등 3명을 직권남용과 국고손실 등의 혐의로 고발한 바 있다. 국민의힘은 당시 김 씨가 이 전 지사의 경기지사 재임 시기인 2018년부터 3년간 배 씨를 수행비서로 뒀다고 주장하면서 “혈세로 지급하는 사무관 3년 치 연봉이 ‘김혜경 의전’에 사용된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올해 2월에는 김 씨가 음식 배달과 집안일 등 사적 심부름에 공무원을 동원했고 개인 음식값을 경기도 법인카드로 결제하거나 타인 명의로 불법 처방전을 발급받게 한 의혹 등이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이들을 직권남용과 강요, 의료법 위반, 허위공문서작성·행사, 국고 손실, 업무 방해, 증거 인멸 등 혐의로 추가 고발했다. 경기도는 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에 대해 감사를 벌인 뒤 지난 3월 배 씨를 횡령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경기남부경찰청에 고발했다. 고발장에는 배 씨가 경기도청에 근무한 2018년 7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의 법인카드 사용내역 전체가 담겨있는 것으로 전해졌다.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2022-06-03 15:21
포성에 잠 깬 소피야 “이렇게 죽나”… 한국행 피란의 시작이었다“이제부터 엄마와 소피야, 둘이서 가야 해. 알겠지?” “아빠…. 안녕.” 우크라이나인인 예프레모바 소피야 양(15)은 올 3월 1일 몰도바 국경에서 아버지와 생이별했다. 소피야 양은 러시아 침공을 피해 어머니, 아버지와 차를 타고 고향인 남부 항구도시 미콜라이우에서 국경까지 약 300km를 달려왔다. 그러나 아버지는 국경을 함께 넘는 대신 집에 혼자 남은 할머니를 돌봐야 한다고 했다. ‘어서 가라’며 애써 밝은 표정을 짓던 아버지는 지금 포탄과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우크라이나에 있다. 고려인인 소피야 양과 어머니는 한국으로 피란했다. 소피야 양은 지금 경기 안산시 선일중 다문화 예비학교에 다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00일(3일)을 앞두고 소피야 양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일기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2월 24일: 폭발음으로 시작된 전쟁오전 5시 20분쯤이었다. 엄마가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 잠에서 깼다. 엄마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뭔가 ‘펑펑’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친구들이 모인 메신저 대화방은 순식간에 전쟁 뉴스로 채워졌다. 한 친구가 “주말에 햄버거 먹기로 한 우리 약속은 어떻게 되는 거야?” 하고 물었지만 아무도 답하지 못했다. 엄마에게 “이렇게 죽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2월 28일: “얼른 짐 싸!”오전 9시, 엄마의 독촉에 부랴부랴 싼 여행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일단 우크라이나를 떠나야 한다고 했다. 차를 타고 친구도 친척도 없는 몰도바로 향했다. 도로는 피란 차량으로 가득했고, 경찰은 수시로 검문을 했다. 오후 7시가 넘으니 통행이 금지됐다. 사흘 전 폭격을 피하러 내려간 아파트 지하 벙커에서 친구 블라다를 만났다. 작별인사를 못 하고 떠난 게 마음에 걸린다. 밤마다 안고 자던 곰돌이 인형을 집에 두고 왔는데…. 생각하니 눈물이 찔끔 났다.○ 3월 24일: 낯선 한국에6개국을 거치며 1만5300km를 여행한 끝에 한국에 도착했다. 살이 빠져 바지가 헐렁해졌다. 몰도바에서 엄마는 외할머니와 외삼촌이 사는 한국으로 갈 거라고 했다. 운 좋게 만난 엄마 직장 동료 차를 얻어 타고 계속 서쪽으로 달렸다. 차를 많이 타 심하게 멀미가 났다. 루마니아, 헝가리, 오스트리아를 지나 대모(代母)가 사는 포르투갈에서 18일 머문 뒤 다시 프랑스를 거쳤다. 엄마는 “이렇게 세계 여행의 꿈이 이뤄질 줄 몰랐다”고 농담하며 나를 안심시키려 했다. 인천국제공항에 마중 나온 외삼촌을 보니 ‘이제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삼촌이 사는 안산시는 평화롭다. 그래서인지 오늘따라 고향 생각이 더 난다.○ 5월 6일: ‘절친’은 러시아인첫 등교 전날 밤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잠을 설쳤는데, 어느덧 학교에 다닌 지도 한 달이 지났다. 오늘은 나란투야와 슬리퍼를 한 짝씩 바꿔 신었다. 요즘 학교에서 유행하는 우정의 표시다. 첫 한국어 수업에서 나란투야를 만났을 때부터 말이 잘 통했다. 나란투야는 우리나라를 침공한 러시아인 친구지만 상관없다. 전쟁은 높은 사람들이 일으킨 거지, 나란투야가 일으킨 게 아니니까. 친구가 생기니 마음이 든든하다.○ 6월 1일: 보고 싶은 아빠우크라이나의 친구가 폐허가 된 미콜라이우 사진을 보내왔다. 끔찍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콜라이우 유치원이 있는 주거지에 러시아군 포탄이 떨어져 최소 1명이 죽고, 6명이 다쳤다”고 했다. 친구 블라다의 아빠는 군인인데, 며칠 전 건물이 무너져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무엇보다 아빠가 걱정이다. 아빠랑 매일 밤 영상 통화를 한다. 새벽에 아빠가 문자를 보냈다. “토끼(아빠가 나를 부르는 애칭)야, 사랑한다.” 보자마자 답장을 보냈다. “나도 사랑해요. 내 가장 친한 친구, 아빠.”안산=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2022-06-03 03:00
폭발음에 잠 깬 소피야 “이렇게 죽나”…고려인 소녀의 한국행 피란기“이제부터 엄마와 소피야, 둘이서 가야 해. 알겠지?” “아빠…. 안녕.” 우크라이나인인 예프레모바 소피야 양(15)은 올 3월 1일 몰도바 국경에서 아버지와 생이별했다. 소피야 양은 러시아 침공을 피해 어머니, 아버지와 차를 타고 고향인 남부 항구도시 미콜라이우에서 국경까지 약 300km를 달려왔다. 그러나 아버지는 국경을 함께 넘는 대신 집에 혼자 남은 할머니를 돌봐야 한다고 했다. ‘어서 가라’며 애써 밝은 표정을 짓던 아버지는 지금 포탄과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우크라이나에 있다. 고려인인 소피야 양과 어머니는 한국으로 피란했다. 소피야 양은 지금 경기 안산시 선일중 다문화 예비학교에 다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00일(3일)을 앞두고 전쟁이 뒤바꾼 소피야의 삶을 일기 형식으로 재구성했다.●2월 24일, 그날: 폭발음으로 시작된 전쟁 오전 5시 20분쯤이었다. 엄마가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 잠에서 깼다. 엄마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뭔가 ‘펑펑’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얼마 뒤 휴대전화가 울렸다. “폭탄 소리를 들었다”는 친구들의 메시지였다. TV를 켜자 전쟁 뉴스가 흘러나왔다.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엄마에게 “이렇게 죽어야 하냐”고 물었다. 그날 학교 수업은 온라인으로 진행됐지만 아무도 집중하지 못했다. 주말에 같이 햄버거를 먹기로 한 친구들이 모인 온라인 메신저 대화방은 순식간에 전쟁 뉴스 링크로 채워졌다. 한 친구가 “우리 약속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었지만 아무도 답하지 못했다.●2월 28일, 5일째: “얼른 짐 싸!” “우크라이나를 탈출해야 해. 얼른 짐 싸.” 엄마 말씀을 듣고 등교 가방에 옷과 화장품을 담았다. 아침 9시에 아빠 차를 타고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몰도바로 향했다. 출발한 지 한참 뒤, 집에 곰돌이 인형을 두고 왔다는 걸 깨달았다. 5살 때부터 밤마다 끌어안고 잤던 인형이었다. 눈물이 찔끔 났다. 3시간이면 도착하는 몰도바지만, 12시간이 지나서도 여전히 우크라이나였다. 경찰관은 수시로 차를 세워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도로에는 피난을 떠난 차들이 긴 줄을 이뤘다. 오후 7시가 지나서는 도로 통행 자체가 금지됐다. 급히 잡은 낯선 호텔에서 하루를 묵었다. 집에 두고 온 곰돌이 인형이 생각났다. 눈물을 꾹 참았다. 사흘 전 폭탄을 피해 아파트 지하 벙커에서 만났던 친구 블라다가 떠올랐다. 그게 마지막일 줄 알았다면 작별인사라도 했을 텐데…. 마음에 걸렸다.●3월 1일, 6일째: “아빠 안녕”…7개국 거친 피란길 꼬박 하루를 걸려 넘은 몰도바 국경에서 아빠와 헤어졌다. 아빠는 할머니가 계신 우크라이나에 남겠다고 했다. 평소라면 가족과 절대 떨어지지 않을 아빠였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엄마와 나를 향해 어서 가라고 손짓했다.●3월 24일. 29일째: 낯선 한국에 6개국을 거치며 1만5300km를 여행한 끝에 한국에 도착했다. 집을 떠난 지 거의 한 달 만이었다. 몰도바에서 엄마는 외할머니와 외삼촌이 사는 한국으로 갈 거라고 했다. 운 좋게 만난 엄마 직장 동료 차를 얻어 타고 계속 서쪽으로 달렸다. 차를 많이 타 심하게 멀미가 났다. 루마니아, 헝가리, 오스트리아를 지나 대모(代母)가 사는 포르투갈에서 18일 머문 뒤 다시 프랑스를 거쳤다. 엄마는 “이렇게 세계 여행의 꿈이 이뤄질 줄 몰랐다”고 농담하며 나를 안심시키려 했다. 그동안 살이 많이 빠졌다. 우크라이나에 두고 온 가족과 친구들 걱정에 입맛이 없었다. 가져온 바지가 헐렁했다. 공항에 마중 나온 외삼촌 얼굴을 보자 ‘드디어 도착했구나’라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이제 안전하다’는 기분도 들었다. 7개국을 거친 긴 여정의 끝이었다. 외삼촌이 사는 안산시로 이동했다. 이곳은 평화로웠다. 이따금씩 들려오는 자동차 경적 소리 말고는 큰소리가 없었다. 몸은 편안했지만 마음은 불편했다. 고향 생각이 자꾸 났다. 다들 무사할지 계속 걱정됐다. 안산시로 가는 내내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았다.●4월 5일. 41일째: 첫 등교 오늘은 한국에서의 첫 등교날이었다. 안산시 선일중학교로 향했다. ‘친구들이 나랑 친하게 지내지 않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에 어제 잠도 못 잤다. 우크라이나에 있는 친구들에게 “등교하기 무섭다”고 메시지도 보냈다. 한국어 수업에서 나란투야를 만났다. 러시아에서 온 친구였다. 처음 만났는데도 말이 잘 통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한국에 왔지만 친구가 밉지는 않았다. 전쟁은 높은 사람들이 일으킨 거지, 나란투야가 일으킨 게 아니니까. 친구가 생기니 마음이 든든하다.●5월 6일, 72일째: ‘절친’은 러시아인 요즘 우리 학교에서는 친한 친구끼리 우정의 표시로 슬리퍼를 한 짝씩 바꿔 신는 게 유행이다. 2주 전에는 나란투야와 분홍색 슬리퍼를 바꿔 신었다.●6월 1일, 98일째: 보고 싶은 아빠 우크라이나의 친구가 폐허가 된 미콜라이우 사진을 보내왔다. 끔찍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콜라이우 유치원이 있는 주거지에 러시아군 포탄이 떨어져 최소 1명이 죽고, 6명이 다쳤다”고 했다. 전쟁 다음 날 아파트 지하 벙커에서 만났던 친구 블라다는 오스트리아로 갔다. 며칠 전 군인이신 블라다의 아버지가 전쟁으로 인해 건물이 무너져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우크라이나에 계신 아빠와는 매일 밤 연락을 주고받는다. 아빠가 많이 보고 싶다. 전쟁이 조금 수그러들면 아빠도 한국으로 오신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새벽에 아빠에게 이런 문자가 왔다. “토끼(아빠가 나를 부르는 애칭)야 사랑한다. 엄마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해. 뽀뽀를 보낸다. 잘 자.” 보자마자 답장을 보냈다. “나도 사랑해요.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아빠.”안산=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2022-06-02 22:35
기사통계
69건 최근 30일 간19건
주요 취재분야레이어보기
  • 사건·범죄
    37%
  • 사회일반
    28%
  • 보건
    10%
  • 인물
    7%
  • 교육
    3%
  • 정당
    3%
  • 검찰-법원판결
    3%
  • 정치일반
    3%
  • 유럽/EU
    3%
  • 종교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