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尹 진술번복 거짓말’ 무게
“조사 일정 조율” 수사 속도 올려
일부 정치인 “尹 만난건 맞다” 인정
김건희 여사에게 청탁 목적으로 명품 가방과 목걸이를 전달한 혐의를 받는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 윤영호 씨가 3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통일교의 여야 정치인 금품지원 의혹 사건을 수사중인 경찰이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의 진술 번복과 별개로 관련자들에 대한 강제수사를 통해 증거 확보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윤 전 본부장이 8월 특검에선 여야 정치권에 대한 금품 지원을 진술했다가 돌연 12일 공판에선 입장을 번복한 게 최근 논란에서 비켜가기 위한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 警, 윤영호가 바꾼 진술은 신빙성 낮다고 판단
14일 경찰 등에 따르면, 경찰 전담수사팀은 주말 동안 출근해 윤 전 본부장의 11일 서울구치소 접견 진술과 기존 김건희 특검(특별검사 민중기)에서의 진술을 비교 분석하는 데 집중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경찰은 윤 전 본부장이 8월 특검 조사에서 금품을 건넸을 당시 앞뒤 맥락과 구체적인 장면까지 상세하게 진술했던 점을 감안할 때 최근 법정에서의 진술 번복이 오히려 사실이 아닐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본부장은 8월 특검 조사에서 “통일교의 숙원 사업이었던 한일 해저터널과 관련 청탁 차원에서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의원에게 2018년 9월경 현금 4000만 원을 작은 박스에 담아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건넨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전 의원이 처음엔 거절했지만, ‘복돈이니 받아도 된다’고 하자 금품을 받아갔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윤 전 본부장은 통일교 한학자 총재에게 보고하는 2018년 9월 10일 특별보고에 “(통일교 성지인) 천정궁에 방문했던 전 의원도 (통일교 관계자) 600여 명이 모인 부산 5지구 모임에 참석해 축사를 했다”며 “우리 일에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고 적은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전 의원은 해당 진술이 모두 허위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특검과 경찰은 전 의원이 당시 민주당 부산시당 위원장이었고, 그해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에 당선된 오거돈 전 시장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점을 감안하면 금품을 건넨 목적과 경위가 비교적 뚜렷해 사실관계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특검이 직접 수사하진 않았지만 사건번호를 부여하고 경찰에 사건을 이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밖에도 윤 전 본부장은 임종성 전 민주당 의원과 김규환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에 대해서도 “2020년 총선 전에 만나 3000만 원씩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 전 의원에겐 친명(친이재명)계 연결고리 역할을 기대하는 차원에서, 한일의원연맹 소속인 김 전 의원에 대해선 일본 교세 확장에 힘써달라는 명목으로 금품을 건넸다는 게 윤 전 본부장의 주장이었다.
앞서 특검이 구속 기소한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에 대한 혐의도 윤 전 본부장의 진술이 결정타가 됐다. 권 의원이 천정궁에 방문해 한 총재에게 큰절을 하고 금품이 든 쇼핑백을 받아갔다고 구체적으로 진술했는데, 관련 내용이 전 의원에 대한 진술과 상당 부분 유사하다는 점에서 향후 경찰 수사가 급물살을 탈 가능성도 있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뇌물 사건은 받은 쪽이 부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경찰이 정치인들의 천정궁 방문 기록 등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윤 전 본부장의 진술을 얼마나 잘 보강하느냐가 수사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 전 본부장은 2020년 5월 세계본부장으로 오른 뒤 한 총재의 최측근이자 통일교 내 2인자로 불렸다. 그는 인사나 자금 등 조직 운영은 물론 외부 협력 등 대내외 업무를 총괄해왔다.
● 일부 정치인 “윤영호 만난 건 맞다” 인정하기도
윤 전 본부장은 12일 권 의원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제가 만난 적도 없는 분들에게 금품을 제공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기존 진술을 번복했다. 하지만 이미 공여자로 지목된 정치인 중 일부는 금품 수수 의혹은 부인하면서도 윤 전 본부장 등 통일교 측과의 만남 자체는 인정하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은 동아일보와 통화에서 “(통일교 행사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윤 전 본부장과 만나 인사를 한 적이야 있겠지만 금품을 받은 사실은 없다”고 했다. 임 전 의원도 “여럿이서 봤을 수는 있지만 따로 만난 적은 없다. 금품 수수 사실도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
금품 수수에 대해 언급하진 않았지만 여야 정치인 5명 중 한 명으로 윤 전 본부장이 8월 특검에서 거론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 역시 “윤 전 본부장을 야인 시절 단 한 번 만난 적이 있다”고 만남 자체는 인정하기도 했다. 윤 전 본부장이 2022년 대선 당시 접촉했다고 언급한 이종석 국가정보원장도 “통일교 관계자가 면담을 요청해 와 한 차례 만난 바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같은 정황에 비춰볼 때 강제수사를 통한 증거확보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관련자 조사를 위한 일정 조율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윤 전 본부장이 입장을 선회하면서 수사가 난관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관련자들이 금품 수수를 전면 부인하는 상황에서 윤 전 본부장마저 경찰 조사에서 비협조적으로 일관할 경우 혐의 입증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통일교 내부에선 “윤 전 본부장이 공여자로 추가 처벌을 받을 수 있어 입장 번복을 번복한 것 같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송유근 기자 big@donga.com 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 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 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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