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석준/청와대 ‘토마토’ 잘 키우려면

  • 입력 2003년 10월 6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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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토마토 날’(토요일마다 토론하는 날)을 운영하기로 했다고 한다. 직원들의 업무 효율 향상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고 하니 반가운 소식이다. 이름부터 신선하고 첫 행사 이후 ‘엔도르핀을 돌게 한다’는 내부 평가도 나왔다니 다행이다. 청와대는 ‘토마토’ 첫 주제로 이라크 파병 문제에 대해 수석실별로 토론했다. 이에 앞서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 고위 보좌진들이 근무하는 백악관 서쪽 별관을 무대로 한 NBC 드라마 ‘웨스트 윙(The West Wing)’을 즐겨 본다는 보도도 있었다. 청와대의 학습 열기가 뜨겁게 느껴진다.

▼실천없이 토론위한 토론 곤란▼

대통령 비서실이 권부가 아니라 학습하는 조직이 되겠다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제대로 된 학습이어야 한다. 토론을 위한 토론이나 과시하기 위한 행사여서는 곤란하다.

토마토 행사에서는 잘하는 팀에는 시상을 한다는데, 과연 누가 누구에게 시상을 한단 말인지 한번 따져볼 일이다. 자기들끼리 말 잘하는 사람에게 시상을 한다는 것 같은데, 이것이 국민과 무슨 관계인가. 그렇지 않아도 말만 무성하고 실천은 없다는 비판이 많다. 말도 격에 어긋나고 부적절해 많은 물의를 일으켰다. 진행 중인 국책사업을 되돌리고 사회갈등을 부추기는 말에 국민은 지쳤다.

방송매체들이 ‘토론 문화’에 맞춰 프로그램을 개편했지만 이른바 ‘코드’를 확산시킨 것 외에 어떤 공헌이 있는가. 편향성 논란을 빚고 있는 KBS의 송두율 교수 관련 특집이 그 한 예다.

지식정보사회에서 학습조직으로의 변화는 필연적이다.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가조직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는 출범 이후 기존 청와대와 국가경영 시스템을 해체했다. 지난 40여 년간 청와대는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춘 학습조직이었다. 정보의 획득 배분 해석 축적이라는 네 가지 학습과정이 제도와 시스템 및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축적돼 왔던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들어서 모든 채널이 해체되고 경험 있는 전문가들은 운동권 출신 386세대로 교체됐다. 기능하지 않는 책임총리제를 전제로 한 대통령 프로젝트 중심의 청와대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각종 위원회와 태스크포스를 축으로 토론은 무성하나 실천은 뒤따르지 않았다.

토론은 팀 방식에 의한 정보획득의 수많은 방법 중 내부채널의 하나일 뿐이다. 내부채널은 비서실장 정책실장 정책보좌관 수석비서관 비서관 행정관으로 이어지는 라인이다. 이들 간의 토론은 계층조직의 경직성을 보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자칫하면 비효율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특히 비전문가들일 경우에는 대부분 그런 함정에 빠진다.

전문성보다 코드가 중시되는 조직에서는 공식 직급과 무관하게 비공식 실세가 토론과정을 장악하는 ‘코드 독재’로 나타난다. 386실세의 아마추어적 국정운영이 논란이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대통령은 여야의 정치지도자 국회의원 국무총리 장관 국정원장 행정부 전문가 등 공식 외부채널을 활용해야 한다. 또한 경제단체 시민사회단체 이익집단 언론 등 비공식 외부채널과의 관계도 활성화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청와대는 정보 획득의 공식·비공식 채널 모두가 막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적대 관계를 조성해 정보가 왜곡되고 고립되는 상황을 자초하고 있다. 정보 획득이 이러하니 그 배분이나 해석, 그리고 축적이 잘 될 턱이 없다.

▼폐쇄적 정보채널 효율성 떨어져▼

학습조직에서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아마추어로는 한계가 있다. 손오공이 삼장법사의 손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청와대의 학습은 일을 해가면서 그 경험과 정보를 축적해 경쟁력 있는 국가경영의 중추조직이 되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 점에서 노 대통령은 제대로 학습하고 제대로 일하는 비서실이 되도록 대대적인 물갈이를 해야 한다. 코드 인사가 아닌 경륜과 능력에 따른 인사여야 한다. 그럴 때 제도화된 대통령부로서의 미국 백악관의 모습을 그린 ‘웨스트 윙’의 스토리가 제대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김석준 이화여대 교수·바른 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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