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 입지 좁히는 인권 침묵[시론/박원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입력 2021-03-08 03:00수정 2021-03-0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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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판이 바뀌었으나 여전히 한국 정부는 안 보인다. 2018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의회 연설에서 “북한보다 자국 시민을 더 잔인하게 억압하는 독재 정권은 없다”고 신랄히 비판했다. 그러나 2018년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돌변하여 2020년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는 고백으로 이어졌다. 트럼프는 지난 4년 동안 미국의 정체성인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무시하고 정치적 이해만 맞으면 독재국가의 지도자와도 얼마든지 동행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2021년 1월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오늘은 민주주의 날’이라고 선포했다. 민주주의를 통해 ‘힘의 본보기’가 아닌 ‘본보기의 힘’이 되겠다고 천명했다. 바이든은 트럼프가 훼손한 세계질서를 민주주의, 다자주의, 동맹 복원을 통해 회복하려 한다. 더불어 미국 혼자가 아닌 동맹국과 함께 세계를 관리하면서 질서를 설계할 계획이다. 바이든은 시진핑과의 첫 통화에서 중국이 “홍콩 인권 활동가를 탄압하고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의 인권을 유린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바이든 행정부가 주도하는 자유민주주의 동맹국이 적극 참여하는 가치 외교 대열에서 빠지고 있다. 2월 미국 캐나다 등 59개국이 정치적 목적으로 외국인 구금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으나 한국은 불참했다. 캐나다 정부는 성명을 낸 이유가 “중국과 러시아, 북한, 이란”때문이라고 하였다. 역시 2월, 재가입을 선언한 유엔 인권이사회 연설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북한 인권결의안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촉구했다. 그러나 한국 대표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우려가 인도주의적 상황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방해해선 안 된다”는 난해한 입장을 내놨다. 문재인 정부는 올해도 북한 인권결의 공동제안국에 3년째 이름을 올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올 6월 한국은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호주 인도와 함께 초청받았다. 이른바 민주주의 10개국(D-10)의 전초전 성격이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로 묶인 국가들이 반인권 규탄과 인권 향상을 위한 공개적 행보에 나설 것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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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더 이상 국제사회에서 스스로의 입지를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 동시에 북한 인권을 방치했다는 역사적 오명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행동에 나서야 한다. 북한인권재단을 출범시키고, 북한인권 국제협력 대사를 임명하며, 북한인권기록센터 보고서를 공개해야 한다. 유엔의 북한인권결의 공동 제안국에 다시 이름을 올려야 한다. 더불어 인권에 대한 다자적 접근, 예컨대 지난해 10월 유엔에서 발표한 39개국의 홍콩 보안법 비판 성명에 불참했던 것과 같은 우를 결코 범해서는 안 된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 행보는 가치 외교를 인권으로 구체화하여 주창하는 바이든 행정부와 갈등할 수밖에 없고 최악의 경우 새롭게 구성하는 네트워크에서 배제될 가능성도 있다. 나아가 가치 충돌로 심화하는 미중 갈등에서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어떤 이해도 관철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국제사회#입지#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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