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음식과 비교할 때 가장 두드러지는 한식의 특징은 뭘까 생각한 적이 있다. 외국 친구들의 이야길 들어보면 무엇보다 밥상에 함께 나오는 더할 나위 없이 다양한 찬의 가짓수다. 그들 눈에는 그 찬들이 하나하나 고급스러운 일품요리처럼 보인다고 한다. 서양에도 에피타이저나 디저트처럼 절차…
동네를 산책하다 보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장사를 하던 밥집이 문을 닫고는 더 이상 밥을 내지 않는 것을 심심찮게 접한다. 이처럼 수많은 밥집들이 길 위에서 문을 열고 문을 닫는다. 노포는 길의 운명과 함께한다. 사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길이 난다. 그 길을 또 사람들의 발길이 채운다. …
강원 철원군은 분단과 남북 간 대치의 표징 이미지가 짙다. 누구나 철원 하면 군부대, 철조망, 비무장지대(DMZ) 등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고읍 본래의 감수성이 가려져 있다. 고구려의 부활을 꿈꿨던 궁예가 도읍지로 삼았을 만큼 비옥한 땅, 전북 김제시와 더불어 한…
꽤 여러 해 전부터 냉면은 사시사철 먹는 음식이 됐다. 어떤 이들은 한겨울에 이 시리도록 먹는 냉면 맛이 진짜라고도 한다. 아무리 그래도 냉면은 더위를 느끼기 시작할 때 시원한 맛으로 먹는 음식 아닐까 한다. 내 주관적인 견해로는 대략 봄의 마지막 절기인 곡우(穀雨)를 지나 입하(立夏…
노포를 사회학의 프레임과 레토릭으로 글을 써오면서 내가 확인한 것은 노포는 무엇보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그가 창업주든, 고용된 경영자든, 아니면 직원이든 그들의 손과 발로 만들어 내는 루틴이 노포의 문화를 특정 짓고 역사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노포에서 내는 …
전북 남원시 인월면. 품 넓은 지리산 자락에 가만 안겨 있는 듯한 인월은 ‘달을 끌어온다’는 뜻이란다. 끌리어 온 달빛이 부락을 포근하게 비추는 사이 봄이 손님처럼 다가오고 들녘에서는 새순이 꿈틀거리며 돋을 준비를 했으리라. 인월에서 금계까지 지리산 둘레길 3코스 출발점에 자리한 ‘지…
전북 남원시 인월면은 행정 권역에서 동쪽으로 치우친 지역으로 경남 함양군과 인접해 있는 지리산 자락에 속한다. 남원 중심지에서는 차로 30∼40분 거리에 있어, 이곳 원주민들은 함양 사람들과의 교류가 잦다.개그맨 전유성 씨를 만나러 지리산 둘레길 제3코스(인월∼금계)의 출발점이 있는 …
전북 정읍시 구도심. 계피 향과 대추 향이 진동하는 ‘쌍화차 거리’의 길목이 사거리로 갈라지는 지점에는 ‘이화담’이라는, 무려 6대째 이어져 오고 있는 맛집이 있다. 한 번도 건물을 옮기지 않고 같은 장소에서만 장사를 해왔다고 하니 정읍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찐’ 터줏대감이다…
겨울 바다를 보러 충동적으로 격포에 왔다. 전북 부안군 변산반도 끝자락에 위치한 격포는 변산반도 국립공원 권역에 속하는 수려한 관광지로, 위도 등을 오가는 여객터미널 항과 어항으로 모두 이름난 곳이다. 인근 군산, 서천 등과 활발하게 교역하면서 해산물의 중간 집산지로도 예전부터 ‘유명…
다음과 같은 명제에 나는 적잖은 한국 사람들이 동의하리라 믿는다. ‘자랑스레 내세울 만한 갈비집이 없는 도시는 외롭고 적막하다’고. 한국 사람들에게 갈비는 풍요와 여유를 상징하는 문화자본이다. 국민의 생활 수준이 어지간히 올라간 지금도 갈비는 한국인의 의식 속에서 매우 특별한 먹거리로…
한국에서 냉면은 좀 특별한 성격을 갖고 있는 음식이다. 음식에도 사회적 위계가 있을 수 있다는 걸 냉면만큼 명료하게 증명하는 음식이 달리 없기 때문이다. 분식집에서 몇천 원이면 사먹을 수 있는 냉면도 있지만 브랜드의 가치를 확보한 명가의 냉면들은 한 그릇에 1만5000∼2만 원을 호가…
충남 강경에 왔다. 목적은 아주 강경하고 명백한 단 한 가지. 젓갈백반정식을 맛보기 위해서다. 한국 사람들은 입맛이 없을 때 흰밥을 물에 말아 짭조름한 젓갈을 올려 먹곤 한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딱히 영양소랄 것도 없을 그 단출한 조합이 잃었던 입맛을 돌아오게 하고 원기를 불어넣어…
부산에서 나고 자란 이들에게 “지금은 그 어디서~”로 시작하는 가요 ‘부산갈매기’는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국가 이상의 지위를 갖는다. 부산 연고 야구팀의 응원가로 쓰이면서 그 지위는 불가역적인 것이 됐다. 바닷가에서 흔히 보는 친근한 갈매기를 모티프로 연모의 마음을 애절하면서도 서민적…
필자가 칼국수 마니아여서 하는 말이지만, 서민들에게 친근한 한 끼 먹거리로 칼국수만한 건 없다고 감히 단언한다. 비슷한 지위를 누리는 짜장면과 순대국은 집에서는 만들어 먹기 어려운 맹점이 있는데, 칼국수는 집에서 만들어 먹기도 수월하고 입맛대로 칼국수 맛집을 찾아다니는 매식도 가능하다…
인류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다른 생물을 포획하거나 길러서 효율적으로 희생시키고 그것을 먹음으로써 만물의 영장으로서 지위를 갖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쾌감과 함께 죄책감이란 걸 느끼게 되었고, 병이나 재앙이 찾아올 경우 자신들이 희생시킨 것들이 내리는 벌이라고 보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