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무력화하는 낮은 성인지감수성[시론/민무숙]

민무숙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원장 입력 2021-06-07 03:00수정 2021-06-0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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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무숙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원장
6월은 보훈의 달이다.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선열들과 국군장병을 기리는 달이다. 이러한 뜻깊은 달, 우리는 성추행을 당하고 지속적인 회유와 2차 피해를 견디다 못해 목숨을 끊은 공군 여부사관 사건을 직면하고 있다. 적과 싸우기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목숨을 버려야만 하는 것이 한국군의 민낯이다. 1만3000명에 달하는 여군은 과연 누구를 적으로 삼고, 누구를 경계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 8년간 성폭행으로 인한 여군의 사망 사건은 3건이나 있었다. 2013년 육군 15사단에서, 2017년 해군본부에서, 그리고 2021년 공군 20전투비행단에서 상급자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육해공군 공히 발생과 처리 과정의 부실함과 은폐 과정이 동일한 패턴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국방부는 사건 발생 때마다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성폭력 특별대책을 만들어 예방과 피해자 지원, 처벌에 이르기까지 단계별로 강화된 제도 개선책을 발표해 왔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이 현장에서는 제대로 작동되지 못했다. 집단적이고 폐쇄적인 조직문화, 여전히 낮은 성인지 감수성이 지침이나 매뉴얼을 무력화시킨 것이다. 그동안 시행해 온 제도들의 문제를 면밀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단순한 행동지침 교육을 넘어서 성인지 감수성을 성찰할 수 있는 폭넓은 학습 기회와 함께 사건 발생 시 방관자나 은폐자가 되지 않고, 적극적으로 사건에 개입할 수 있는 목격자 교육이 매우 필요하다.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여군 9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언어 폭력, 사적 업무 등 인권 침해 소지가 여전했다. 특히 1년간 성희롱 직접 피해 경험은 4.6%였으나 주변에서 목격한 경험은 14%로 높게 나타난 바 있다. 반면 2019년 국방부 조사 결과 피해 경험이 있는 여군들 중 32.7%가 신고하지 않은 걸로 나타났으며 그 이면에는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현재 군대 안에는 47명의 7급 수준의 성고충상담관과 각 군 과장급의 양성평등센터가 적은 인력과 예산을 가지고 성범죄 신고와 상담, 예방 교육 및 대책 수립 등의 임무를 맡고 있는 형편이다. 차제에 관련 조직의 역할과 위상을 대폭 높이는 한편 민간의 개입 통로를 보다 넓힐 필요가 있다. 미국이 2005년 군 성범죄 문제의 중요성을 깨닫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성폭력방지대응실(SAPRO)’을 따로 설치하고 민간과의 협력 체계를 강화한 점, 성범죄 추이와 예방 및 대책에 대한 연차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하는 의무를 국방부에 부여함으로써 정기적인 모니터링을 하는 점 등은 벤치마킹할 만한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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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으로는 군대뿐만이 아니라 사회 일반이 인권적 감수성과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는 노력을 함께 해야 한다. 일부가 저지르는 일탈적 행동이라는 시각을 넘어서서 성숙된 인권의식과 양성평등문화가 사회 전반에 뿌리내려야 한다.

민무숙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원장



#군대#성인지감수성#교육#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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