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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국제

“플랜Z 시작” 돈바스 반군 발표 직후… ‘Z’표시 러 탱크들 침공[글로벌 포커스]

입력 2022-02-26 03:00업데이트 2022-02-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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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돈바스에 집착하는 러시아, 왜?
푸틴의 ‘新러시아 연방’ 구상… 석탄 많아 러 주민 대거 이주
내전 부추기는 러시아… ‘크림반도’ 방식 합병 나서나
25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를 관통하는 드네프르강 인근 고속도로에서 흰색으로 알파벳 ‘Z’가 선명하게 새겨진 군용 트럭이 줄지어 이동하고 있다. Z 마크는 러시아군이 아군을 식별하기 위해 사용하는 표시로 알려져 있다. 돈바스 내 친러 반군이 설립한 도네츠크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또한 자신들과 러시아의 합병을 위한 ‘Z 작전’으로 규정하고 있다. 트위터 화면 캡처
“신(新)러시아연방(노보로시야)을 위한 ‘플랜Z’가 시작됐다.”

24일(현지 시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이뤄지기 직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내 친러 반군이 세운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 측이 밝힌 말이다.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영토 진입은 DPR와 LPR가 러시아와의 연방을 구성하기 위해 불가피한 수순이라는 의미다.

당시 돈바스 지역에는 부대 휘장 없이 하얀색 페인트로 ‘Z’를 표시한 러시아군 탱크와 군용차량이 대거 발견됐다. 정확한 의미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서구 언론은 러시아군이 아군을 구별하는 표시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Z가 있으면 러시아군, 없으면 적군이라는 의미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부터 옛 소련이 속한 연합군이 아군을 겨냥한 발포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사용한 방법으로 알려졌다.

앞서 21일에도 DPR와 LPR는 러시아에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한 것을 승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또한 즉각 이곳에 군대를 파견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계 주민의 보호 요청을 받아들여 군대를 보냈을 뿐이므로 이번 사태는 ‘타국 침공’이 아니며 우크라이나에 진입한 러시아군 또한 ‘평화유지군’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우크라이나 침공의 시작과 끝에 모두 돈바스가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돈바스는 왜 이렇게 러시아와 밀착하려 할까.
○ 제정 러시아 시절부터 러시아화 진행
돈바스는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를 일컫는다. 일대를 관통하는 도네츠강의 분지 지형 명칭에서 유래했다. 이 분지에서 석탄, 철강 등 풍부한 원자재가 생산된다. 인구는 620만 명, 면적은 5만3200km²로 각각 우크라이나 전체의 약 14.3%, 8.0%에 불과하다.

특히 DPR와 LPR는 돈바스 내에서도 3분의 1 정도만 점유하고 있다. 즉 면적만으로 보면 한국의 6배에 달하는 60만 km²가 넘는 넓은 영토를 보유한 우크라이나에서 돈바스의 비중은 그야말로 미미하다.

이곳이 유럽의 화약고가 된 이유는 우크라이나 내 타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은 러시아어 화자 및 러시아계 주민 비율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체의 러시아계 주민 비율은 17.3%다. 마지막 공식 자료인 2001년 우크라이나 인구조사에 따르면 돈바스 주민의 약 38.6%가 러시아계로 우크라이나 전체 비율보다 2배 이상 높다. 또 전체 주민의 약 70%는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한다. 즉 러시아계가 아닌 수많은 우크라이나인조차 제1언어로는 러시아어를 쓸 정도로 러시아화가 진행됐다.

돈바스에 러시아계 주민이 많은 이유는 이곳이 19세기 제정 러시아의 석탄 생산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당시 러시아인의 1차 이주가 이뤄졌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옛 소련 또한 노동자를 대대적으로 이주시켰다. 한때 돈바스는 소련 내 철강용 석탄의 절반을 생산할 정도로 위세를 떨쳤다. 독립 직후에도 돈바스 광산업은 한때 우크라이나 전체 수출의 25%를 담당했다. 그러나 2014년 내전 발발 후 공장이 폐쇄되고 사람들 또한 떠나면서 경제가 극도로 피폐해졌다.

소련은 우크라이나어와 역사 교육을 전면 금지하는 등 강력한 민족 말살 정책을 폈다. 이로 인해 가뜩이나 러시아계 주민이 많은 돈바스에서는 우크라이나어 화자가 사실상 사라졌다. 이런 현상은 1991년 우크라이나가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03년 키예프국제학연구소(KIIS)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서부로 갈수록 러시아어 화자가 드물고 동부로 갈수록 러시아어 화자가 대폭 증가하는 현상이 뚜렷하다. 서부는 러시아어 화자가 5.0%에 불과하고 수도 키예프를 포함한 중부에서도 25.6%에 그친다. 돈바스가 포함된 동부에서는 92.7%가 러시아어를 쓴다.
○ 야누코비치 축출 후 러시아계 주민 불만 고조
2014년 7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상공에서 친러시아 반군이 격추한 말레이시아항공 소속 민항기 ‘MH17’의 잔해. 이로 인해 298명이 숨졌고 격추에 러시아제 미사일이 쓰였음이 드러났는데도 친러 반군은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정부군 탓이라고 주장했다. 트위터 화면 캡처
돈바스의 친러 세력은 우크라이나의 독립 직전인 1990년에도 독립을 반대하는 ‘인터프런트 운동’을 벌였다. 1994, 2004년에도 자치권을 요구하며 결집했지만 당시에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걸핏하면 중앙정부와 대립하던 이들이 결정적으로 러시아에 쏠린 계기로 역시 돈바스 태생이며 집권 내내 친러 정책을 편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72)의 축출이 꼽힌다. 도네츠크주 예나키예베에서 태어난 야누코비치는 소련 붕괴 후 도네츠크 주지사를 지냈고 2010년 집권했다.

고질적 경제난으로 2013년 11월 우크라이나의 외환 위기가 가중됐을 때 우크라이나는 유럽연합(EU)으로부터 약 200억 달러의 경제 지원을 받는 대신 강도 높은 개혁을 실시하겠다는 협정 서명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 모스크바를 찾아 푸틴 대통령과 만난 야누코비치가 돌연 ‘EU와의 협정을 파기하겠다’고 선언했다.

분노한 국민은 키예프의 마이단 네잘레주노스티(독립 광장이라는 뜻)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장소 이름을 따 ‘유로마이단’으로 불린 이 시위로 2014년 2월 야누코비치 정권이 무너졌다. 야누코비치 또한 러시아로 도피했고 의회는 러시아어의 제2공용어 지위를 박탈했다.

분노한 러시아는 한 달 후 러시아계 주민 비율이 60%인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했다. 이번 사태에서 DPR, LPR가 취한 행동과 마찬가지로 당시 크림반도의 친러 세력 또한 러시아에 군사 지원을 요청했다. 2014년 3월 16일 러시아와의 합병을 묻는 주민투표가 실시됐고 97%가 찬성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를 근거로 아직까지도 “크림반도 합병은 국제법 위반이 아니며 주민 의견을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크림반도 합병 후 돈바스 내 친러 세력 역시 덩달아 분리 독립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들은 2014년 4월 DPR와 LPR를 세웠고 주민투표 또한 실시했다. 두 곳 모두에서 약 90%가 “독립을 찬성한다”고 답했다.

이후 러시아는 반군에게 대규모 병력과 무기 등을 노골적으로 지원하며 중앙정부와의 전쟁을 부추겼다. 2014년 7월 친러 반군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가던 말레이시아항공 소속 민항기를 적의 군용기로 오인해 격추했다. 탑승자 298명 전원이 숨졌다. 당시 서방 정보당국은 격추에 러시아제 ‘부크’ 미사일이 쓰였으며 반군 지도자가 러시아군 고위 간부와 격추 사실을 논의하는 통화 내역까지 입수했지만 반군 측은 책임을 부인했다.

우크라이나, 반군, 러시아, 독일은 2014년 9월 이웃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1차 휴전 협정을 맺었다. 교전이 끊이지 않아 2015년 3월 2차 민스크 협정이 체결됐다. 이후에도 양측은 내내 대립했다. 이번 침공까지 8년간 약 1만5000명이 숨졌고 2000건의 휴전 위반 사례가 발생했다.
○ 러, 돈바스 주민에게 여권 발급·공무원 급여 지급
DPR와 LPR는 설립 후 사실상 러시아 지방정부처럼 행동했고 러시아 또한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화폐 흐리우냐를 포기하고 러시아 루블을 공식 통화로 채택했고 학교에서도 러시아어와 러시아 교과 과정만 가르친다. 지난해 DPR는 아예 6월 12일을 국경일로 지정했다. 이날은 러시아가 소련으로부터 새롭게 설립된 날을 기념하는 러시아의 국경일이다.

2016년 로이터통신은 러시아가 DPR 공무원의 급여 및 연금을 지원했다고 보도했다. 중앙정부가 2014년 이후 이 지역 공무원에 대한 급여 지급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국제위기감시기구(ICG)는 러시아가 연 10억 달러(1조2000억 원)를 지원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2019년 4월 푸틴 대통령은 돈바스 주민의 러시아 시민권 획득을 촉진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이후 80만 명이 러시아 여권을 받았다. 타국 국민에게 여권을 발급하는 것이 노골적인 주권 침해 행위임을 알면서도 감행한 것이다. 이 같은 ‘여권 정책(passportization)’은 우크라이나인의 대규모 러시아 귀화를 통해 합병을 꾀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러시아 정치인 또한 종종 돈바스를 찾아 ‘러시아와 돈바스는 하나’라는 식으로 연설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반박하면 “러시아 국적자가 많으니 이곳에서 유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1월 푸틴 대통령 또한 러시아와 돈바스 상품 수출입 규제 철폐를 명령했다. 2017년부터 우크라이나 중앙정부가 돈바스와의 교역을 중단하며 경제 봉쇄를 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해석된다. DPR와 LPR는 즉각 “러시아와의 통합을 향한 중요한 걸음”이라고 환영했다.
○ 크림반도 때처럼 주민투표 후 병합 수순?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DPR와 LPR를 독립 국가로 승인한 것을 두고 노골적인 합병 의지를 드러냈다고 보고 있다. 그간 지원은 하되 공식적으로는 인정하지 않는 시늉이라도 했지만 이제 독립 국가로 승인한 만큼 노골적인 지원 및 합병 여론 조성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이에 크림반도 합병 때와 마찬가지로 돈바스 또한 주민투표를 거쳐 러시아에 편입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러시아가 크림반도 합병 때도 겉으로는 ‘주민투표라는 민주적 절차를 거쳤다. 강제 병합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듯 같은 행동을 취할 것이란 의미다. 침공 하루 만에 수도까지 함락 위기에 놓일 정도로 허약한 우크라이나의 실정을 감안할 때 돈바스를 내주지 않으면 러시아가 군대를 철수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투표 결과 또한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미 워싱턴포스트(WP) 조사에 따르면 돈바스 내 친러 반군 점령지의 주민 80%가 러시아와의 합병을 지지했다. ‘우크라이나 복귀’ 응답은 12%에 불과했다.

강윤희 국민대 유라시아학과 교수는 “러시아의 침공 전에는 돈바스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에서 일종의 완충지대 역할을 했지만 이번 침공으로 러시아가 완전히 돈바스를 차지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민스크 협정 이후처럼 정부군과 반군이 공존하던 시기는 끝났고 두 번 다시 돈바스가 우크라이나에 편입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졌다는 의미다.

문제는 돈바스의 약 3분의 2는 친러 세력이 점령하고 있는 곳이 아니며 280만 명의 주민 또한 러시아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표적 지역이 도네츠크 2대 도시이자 남부의 군사 요충지인 마리우폴이다. 이들 또한 원하지도 않는 러시아 국민이 되는 길을 반길 리 없어 러시아로의 합병이 진행되면 거세게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WP 조사에서 친러 반군 점령지 이외 지역에 있는 돈바스 주민의 70%는 우크라이나 복귀를 희망했다. DPR와 LPR가 주민의 자유로운 이동을 금지하고 반대파를 탄압하는 소련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식 공포 통치를 펼쳤다는 점도 비러시아계 주민의 반발을 사고 있다.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김성모 기자 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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