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 이통사 영업현황 실시간 감시시스템 구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기업들의 핵심 영업비밀까지 감시… 단통법 비판여론 잠재우려 ‘역주행’

방송통신위원회가 별도 시스템까지 구축해 국내 이동통신 3사의 영업 정보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겠다고 나선 것은 사회적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을 끝까지 지켜내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LG전자가 정부에 보조금 상한선을 폐지해 달라고 요청하는 등 단통법의 부작용에 대한 지적이 커지는 상황에서 철저한 시장 감시를 통해 비판 여론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 소비자는 뒷전

방통위는 휴대전화 단말기 유통시장을 감시할 별도 조직인 단말기유통조사담당관을 5월 말에 신설하는 등 단통법 개정보다는 강화 쪽에 무게중심을 둬 왔다. 총 10명으로 구성된 단말기유통조사담당관은 경찰청 소속 경감 1명까지 포함시켜 위상을 강화했다. 이번에 구축하는 이동통신사 감시 시스템도 이 조직에서 주로 활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단통법을 지켜내려는 방통위의 움직임이 소비자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2004년 번호이동제 도입 이후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가 수집한 번호이동 고객 정보는 소비자는 물론이고 이동통신사 모두에 도움을 줬다. 소비자가 통신사를 바꿀 때 필요한 기존 회원 정보를 통신사끼리 공유해야 한자리에서 번호이동 서비스가 원스톱으로 가능한 것이다. 만약 번호이동 고객에 대한 정보공유가 되지 않으면 번호이동제도 자체는 무용지물이 됐을 것이다. 번호이동제도 도입으로 통신사 간 경쟁이 강화되면서 혜택은 소비자에게 돌아갔다.

신규 가입이나 기기 변경 고객에 대한 정보는 이동통신사들이 공유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내용이어서 보호가 필요하다. 이동통신사들이 먼저 나서서 정보를 수집해 공유하겠다고 나설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이동통신사들이 자발적으로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는 방통위 주장에 설득력이 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익명을 요구한 이동통신사 고위 임원은 “영업비밀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도구를 만들겠다고 나설 기업이 어디 있겠느냐”며 “방통위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이통사들이 구축비용 6억 원까지 냈다”고 귀띔했다. 막강한 규제 권한을 가진 방통위의 위력 앞에 이동통신사들이 자신들을 감시하는 도구를 자신들의 돈으로 만들게 된 셈이다.

이동통신업계 관계자는 “방통위가 신규 가입이나 기기 변경 고객 정보까지 모두 들여다보면 통신사는 완전히 발가벗겨지는 꼴”이라며 “방통위가 철저한 감시체제를 구축해 모든 것을 들여다보는 빅브러더가 되려고 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 통신시장 경쟁 활성화 정책과도 맞지 않아

이번 조치는 제4이동통신사까지 도입해 통신시장에서 경쟁을 활성화해 가계 통신비를 낮추려는 현 정부의 정책 기조와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통위가 기업의 영업활동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보면서 이상 징후가 발생할 때마다 단속에 나서면 결국 기업의 영업활동이 위축돼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의 5 대 3 대 2 구도는 고착화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시장이 고착되면 경쟁이 사라져 소비자에게 돌아갈 혜택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방통위 관계자는 “정상적인 마케팅 활동은 문제 삼지 않을 것”이라며 “갑자기 가입자가 증가하는 등 이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적극적으로 단속하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전문가들은 다르게 보고 있다.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는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가입 고객 상황을 실시간으로 감시하지 않는다”며 “모든 정보가 이런 식으로 관리되면 소비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김기용 kky@donga.com·신무경 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