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중현]34년간 40% 매립… 새만금 희망고문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2월 14일 23시 18분


“정부는 총 1조3000억 원을 투입해 1998년까지 33km의 방조제 건설과 외곽 공사를 끝내고, 이어 1억2000만 평에 이르는 방조제 안쪽 개발사업을 2004년까지 마무리 지을 것입니다.” 1991년 11월 노태우 대통령은 새만금 간척공사 기공식에서 이렇게 밝혔다. 대선후보 시절 내놨던 공약을 실천에 옮겨 ‘서해안 시대’를 연다는 계획이었다. ‘한반도 역사상 최대 국토 개발 사업’이 이렇게 시작됐지만, 34년이 지난 지금도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12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김의겸 새만금개발청장 보고를 받던 중 “30년 동안 전체 면적의 40%밖에 매립하지 못했다. 앞으로도 20∼30년을 애매모호하게 갈 수는 없다”고 했다. 새만금 사업이 우여곡절을 겪으며 늦어지는 건 잘 알려져 있지만, 매립 면적이 절반에 못 미친다는 사실에는 많은 국민이 놀랐다.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로 기네스북에 오른 새만금 방조제가 15년 전인 2010년 4월 완공됐는데, 이후 간척된 땅이 40.2%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개발 비용은 천정부지로 높아지고 있다. 착공부터 재작년까지 들어간 정부 예산만 14조6000억 원이다. 새만금개발청은 추가 매립에 필요한 10조 원 정도를 민간투자를 끌어들여 충당하겠다고 하는데, 사업자를 찾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이 대통령은 “민자로 매립해 들어올 기업이 어디 있겠느냐”면서 “다 될 것처럼 얘기하는 건 일종의 희망고문”이라고 했다. 착공 이후 대통령이 8번 바뀌는 동안 지역 정서를 고려해 ‘거의 불가능한 사안’을 가능한 일처럼 설명해 주민들 기대 수준만 높여 왔다는 지적이다.

▷한 세대가 바뀌는 동안 새만금의 용도는 끊임없이 변경됐다. 간척지 대부분을 농지로 쓰려던 초창기 계획의 사업성이 떨어지면서 산업단지 개발 비중은 계속 높아졌다. 문재인 정부는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중심지로 개발하겠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 첫해인 2023년 여름에는 새만금을 국내외에 홍보하고, 중앙정부 지원을 확대하려고 유치한 ‘세계스카우트 잼버리’가 야영지 선정 문제, 준비 부족 등으로 심각한 파행을 겪었다. 결국 지난해 새만금 관련 예산이 대폭 삭감됐다.

▷새만금이 아직도 뚜렷한 청사진 없이 흔들리는 건 역대 정권이 이를 ‘사업’이 아닌 정치 사안으로 인식해 실질적인 해법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현실적으로 어느 부분을 정리하고, 어느 부분은 재정으로 반드시 해야 할지 확정해야 한다”고 한 건 그런 점에서 진일보한 면이 있다. 이제 새만금의 어깨에서 ‘대한민국 지도를 바꿀 역사(役事)’란 무거운 짐을 덜어내고 차분히 계산기를 두드려볼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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