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 대사관에서 유학 비자 인터뷰를 마치면 “SNS 계정 검토 후 이상이 없으면 승인될 것”이란 안내를 받는다. 올 6월 소셜미디어 심사가 의무화됐기 때문이다. 유학 준비생과 학부모 사이에선 “정치적 의견이나 시위대가 포함된 사진은 올리지 말고 일상적이고 긍정적인 게시물만 올리라”는 팁이 돈다. 내년부터는 유학이 아니라 괌이나 사이판 여행을 가려 해도 미리 SNS를 점검해야 할 판이다. 미국 정부가 전자여행허가제(ESTA) 입국자에 대해서도 SNS를 들여다보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은 10일 한국, 영국, 일본 등 비자면제프로그램(VWP)에 가입한 42개국 단기 방문자를 대상으로 최근 5년간 사용한 소셜미디어 정보 제출을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5년간 쓴 전화번호, 10년간 이용한 e메일 주소는 물론이고 홍채와 DNA 등 생체 정보까지 요구하기로 했다. 휴가철을 맞아 돈 쓰러 온 관광객을 대상으로 유학·연수생이나 방문연구원 수준의 신원 확인을 하겠다는 것이다. 새 규정은 60일 동안 의견 수렴을 거쳐 이르면 내년 초부터 시행된다.
▷이번 조치는 국경 문턱을 높이는 트럼프 정부 반(反)이민 정책의 일환이다. 올 초 출범한 트럼프 2기 정부는 아프가니스탄, 이란, 소말리아 등 12개국 국민의 입국을 전면 금지했고 전문직 취업비자(H-1B) 수수료는 100배나 올려 개당 10만 달러(약 1억4800만 원)를 받고 있다. 간신히 입국했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 반유대주의 시위에 참여했다거나 과속 같은 경미한 교통 위반을 저질렀다는 등의 이유로 취소된 비자가 올해만 벌써 8만5000건에 달한다.
▷돈이 아주 많으면 강화된 출입국 규제를 피할 수 있다. ESTA의 허들을 높이겠다고 한 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정말 신나는 소식”이라며 직접 ‘골드카드’ 출시를 홍보했다. 100만 달러(약 14억8000만 원)를 내고 트럼프 대통령 얼굴이 담긴 황금색 카드를 사면 신속한 신원 확인을 거쳐 영주권을 준다는 것이다. 500만 달러(약 74억 원)를 더 내면 세제 혜택이 추가된 플래티넘 카드를, 연간 200만 달러(약 29억6000만 원)를 내면 기업용 골드카드를 받을 수 있다.
▷빗장을 걸어 잠근 탓에 미국은 올해 세계 184개국 중 유일하게 관광 수입이 줄어드는 나라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고환율까지 겹치면서 올 10월까지 방미한 한국인도 8만3000명 줄었다. 내년에 5년 치 SNS 정보 제출이 의무화되면 미국은 2026 북중미 월드컵 특수도 온전히 누리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더 이상 ‘기회의 땅’도, ‘자유의 땅’도, ‘열린 사회’도 아닌 미국에 사생활을 검열받아 가며 여행 갈 필요가 있을지 자문(自問)하는 사람이 더 늘어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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