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로 닥친 ‘피크 트럼프’… ‘안방’ 마이애미 선거 28년만에 참패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2월 13일 01시 40분


집권 1년도 안돼 레임덕 경고
마러라고 코앞서 공화 후보 패배… 텃밭 조지아 州하원의원 보선도 져
식료품 물가-의료비 상승 등 불만 커
지지율 36%… 집권 2기 들어 최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 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초당적 의원 교류 행사인 ‘의회 무도회’에서 참석자들을 바라보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 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초당적 의원 교류 행사인 ‘의회 무도회’에서 참석자들을 바라보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의 ‘권력 중심지’ 마이애미가 그에게 경고를 보냈다.”(미국 워싱턴포스트·WP)

“마이애미의 민주당 시장 당선은 ‘지각 변동(seismic shift)’이다.”(영국 가디언)

9일(현지 시간) 실시된 미국 플로리다주 최대 도시 마이애미의 시장 선거 결과에 대한 각국 언론의 논평이다. 야당 민주당의 백인 여성 후보 아이린 히긴스(61)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를 등에 업은 집권 공화당의 쿠바계 에밀리오 곤살레스 후보에게 19%포인트 차로 압승했다. ‘공화당 텃밭’ 마이애미에서 민주당 소속 시장이 탄생한 것은 1997년 이후 28년 만이며 여성 시장은 사상 최초다.

공화당은 같은 날 치러진 조지아주 주 하원의원 보궐선거는 물론이고 지난달 4일 실시된 뉴욕 시장, 버지니아 및 뉴저지 주지사 선거에서 모조리 패했다. 내년 11월 중간선거가 채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지방선거의 참패가 잇따르자 백악관과 공화당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 또한 30%대에 불과하다. 관세 등 그의 정책에 대한 논란이 크고 사상 최장 기간인 43일간의 연방정부 ‘셧다운’(일시 업무정지)까지 겹치면서 국민 불만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그의 조기 ‘레임덕’(권력 누수) 가능성을 거론한다.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또한 ‘트럼프가 정점을 지났나(Has Trump passed his peak)?’ 칼럼에서 잇따른 지선 참패로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약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안방’ 마이애미 시장 28년 만에 내준 공화당

이번 선거에서 서민 주거 안정 등을 강조한 히긴스 당선인은 59.5%를 얻어 반(反)이민 등을 주창한 곤살레스 후보(40.5%)에게 압승했다. 그는 특히 이민자가 많은 지역에서 고른 지지를 얻었다. WP는 대통령의 핵심 정책인 불법 이민자 대규모 단속은 물론이고 임대료 상승세에 대한 마이애미 시민의 반감이 선거 결과를 결정지었다고 논평했다.

마이애미는 트럼프 대통령이 종종 주말을 보내고 해외 정상을 초청하는 사저 마러라고 리조트와 불과 70마일(약 112km) 거리다. 트럼프 대통령의 퇴임 후 그의 기념 도서관도 들어선다. 역시 쿠바계인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의 고향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기간 내내 곤살레스 후보를 지지했다.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겠다”며 그의 당선을 기정사실화했다. 인구 약 46만 명 중 라틴계가 67%인 도시에서 대통령이 후원한 쿠바계 후보가 대패하자 백악관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미 정계에서는 대통령이 마이애미 시장 선거에 과도하게 개입한 것이 자충수가 되어 스스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본다. WP에 따르면 일부 트럼프 측 인사들은 “곤살레스 후보에 대한 대통령의 지지 선언이 마이애미 시장 선거를 전국적 의제로 부상시켰다. 선거 패배의 책임 또한 대통령이 지게 됐다”며 불만을 표했다.

공화당은 같은 날 조지아주 주 하원의원 보궐선거에서도 패해 기존 의석을 상실했다. 민주당의 에릭 기슬러 후보는 50.9%로 공화당의 맥 게스트 4세 후보(49.1%)에게 신승했다. 이번 선거는 마커스 위도워 전 공화당 주 하원의원이 사업에 전념하겠다며 사퇴해 실시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때 이 지역구에서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 겸 전 부통령을 12%포인트 차로 눌렀다. 역시 안방을 뺏긴 것이다.

공화당은 11일 북동부 텃밭으로 꼽히는 인디애나주의 선거구 조정안에도 실패했다. 현재 인디애나주의 연방 하원의원은 총 9석이고 이 중 7석이 공화당 몫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머지 두 석도 가져오기 위해 공화당에 유리한 선거구 조정을 추진했으나 공화당 소속 주의회 의원들조차 “유권자의 반감만 커진다”고 반발해 주의회 통과가 무산됐다. 뉴욕타임스(NYT)는 대통령이 당과 의회에서 적지 않은 균열과 마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논평했다.

● 민생 악화에 지지율 하락 뚜렷

여론조사회사 갤럽의 지난달 28일 발표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36%로 집권 2기 들어 최저치다. 같은 달 21∼24일 시사매체 이코노미스트, 또 다른 여론조사회사 유고브의 조사에서도 그의 지지율은 31%에 그쳤다.

특히 경제, 의료 정책 등에 대한 불만이 높다. 11일 AP통신과 시카고대 여론연구센터(NORC)에 따르면 “대통령의 경제 운용을 지지한다”고 밝힌 응답자가 31%에 불과했다. 무역 및 외교(각각 37%), 이민(38%) 정책에 대한 지지율보다 훨씬 낮다.

지난해 전체로 전년 대비 2.3% 상승했던 미국의 식료품 물가는 올 1∼9월 누적으로 한 해 전보다 2.9% 올랐다. 셧다운 여파로 10, 11월 물가 지표가 발표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실제 상승세는 더 높을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공 의료보험 ‘오바마케어’ 관련 보조금 삭감을 거듭 강조하는 것도 서민층의 불만을 키운다. 주요 도시의 임대료 또한 어지간한 직장인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비싸다.

현 상황을 뒤집을 만한 요인 또한 거의 안 보인다. 이르면 올해 안에 나올 연방대법원의 관세정책 적법성 판결에서 행정부가 패소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은 더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 협상을 중재하는 작업 또한 지지부진하다. ‘희토류 무기화’를 앞세운 중국과의 패권 전쟁에서도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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