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세계 첫 메커니즘 설계 자동화 아이디어오션
기계 작동에 필요한 모든 메커니즘… 목표-제한 조건 입력하면 척척 생성
스승 김윤영 교수 18년 연구 토대로 물리 법칙 기반 AI 자체 개발
현대차-삼성전자 기술 과제 수행… “인류가 모르던 설계안 많아질 것”
김중호 아이디어오션 대표이사가 9일 서울 관악구 본사에서 메커니즘 설계 자동화 솔루션 성능 검증을 위해 만든 탁구공 옮기는 로봇팔 작동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김 대표는 “범용 로봇팔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더 빠르게 옮기는 작업을 마쳤다”고 했다.
“로봇이나 기계 장치를 설계하려면 숙련된 석·박사급 엔지니어들이 일주일 넘게 매달려야 한다. 구조를 구상하고 설계한 뒤, 제대로 작동하는지 컴퓨터 모의실험(시뮬레이션)을 반복해야 한다. 이 과정을 인공지능(AI)으로 단축해 1주일 걸리던 일을 10분 만에 끝낸다.”
9일 서울 관악구 사무실에서 만난 김중호 아이디어오션 대표이사(32)는 메커니즘(기구) 설계 자동화 솔루션 ‘메테우스(METHEUS)’를 시연하며 이같이 말했다. 2023년 7월 설립된 아이디어오션은 사람의 직관에 의존하던 메커니즘 설계를 수학 모델과 AI 기술로 자동화해 주목을 받고 있다. 메커니즘은 로봇이나 기계 시스템 등에서 모터의 회전력을 특정한 움직임으로 바꿔 주는 뼈대(링크)와 관절(조인트) 구조를 말한다. ● 손으로 하는 메커니즘 설계
현재 로봇이나 기계 시스템에 필요한 메커니즘 설계는 여전히 수작업 영역에 머물러 있다. 엔지니어는 자신의 경험에 의존해 뼈대와 관절을 구상한 다음에 캐드(CAD) 프로그램으로 점을 찍고 선을 그어가며 일일이 설계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3D 모델로 만든 뒤 힘과 성능을 모의하고 분석하는 전산응용해석(CAE) 프로그램을 돌렸을 때 오류가 발견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설계를 뜯어고쳐야 한다. 김 대표는 “설계와 해석 프로그램이 서로 다르고 비용도 비싸다 보니 전문 인력이 붙어도 시행착오를 겪느라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모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 조건 넣으면 기기 작동구조 자동 설계
아이디어오션이 개발한 메테우스는 사용자가 원하는 기능, 작동 범위, 장애물 위치, 모터 위치 같은 조건을 입력하면 AI가 최적의 메커니즘을 자동으로 생성해 준다. 무게를 가장 가볍게 설계하는 방법이나 비용을 최소로 하는 방법 등을 고르는 것도 가능하다.
아이디어오션의 로봇팔(오른쪽)과 범용 로봇팔이 탁구공 옮기기 대결을 하는 장면. 아이디어오션 제공아이디어오션은 메테우스의 자동화 기술력을 검증 하려고 탁구공을 옮기는 로봇 팔을 제작해 범용 로봇팔(유니버셜 로봇)과 대결을 시켰다. 김 대표는 “메테우스가 설계한 로봇은 불필요한 기능을 빼고 최적화한 구조 덕분에 제작비용은 10분의 1에 불과했지만 작업 속도는 2배나 빨랐다”고 했다. 범용 로봇팔은 물건을 집거나 컵에 담긴 물을 따르는 일도 할 수 있지만, 탁구공을 옮기는 로봇은 그 일에만 최적으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설계 과정을 간편화했기 때문에 범용 로봇을 비싸게 사서 쓸 필요는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아이디어오션은 내년 9월 메테우스 정식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대기업과 협업하며 사용 편의성을 높이는 보완 작업을 진행 중이다. 제품은 보안이 중요한 대기업을 위한 구축형, 중소기업 및 교육용인 구독형, 기존 CAD 사용자를 위한 플러그인 같은 다양한 형태로 제공될 예정이다. 아이디어오션이 추산한 로봇-기계 설계 시장 규모는 135조 원이다.
● 거짓말 없는 물리 법칙 기반 AI
지난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및 가전제품 전시회 CES 2024에 참가한 아이디어오션 부스. 아이디어오션은 인공지능 부문 혁신상을 받았다. 아이디어오션 제공메테우스는 SBM(Stem Block Mechanism·줄기 메커니즘)이라는 수학 모델과 딥러닝 기술이 결합된 물리 법칙 기반 AI다. 핵심이 되는 SBM은 복잡한 작동구조를 레고 블록처럼 단순화해 자동 설계할 수 있도록 하는 독자적인 수학 모델이다. 수학 모델이 물리 법칙에 부합하는 수억 개의 설계안(데이터)을 지속적으로 생성했고, AI는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설계를 가장 잘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사용자가 목표와 기능, 제한 사항 등을 입력하면 AI는 학습을 통해 익힌 감각으로 설계 후보들을 재빠르게 추려낸다. 이 후보들만 다시 해석하고 검증함으로써 짧은 시간에 최적의 답을 찾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AI가 링크 길이를 10cm라고 했는데 공식에 넣어 보니 9.98cm가 더 정확하네’ 같은 사실을 알게 되면 설계안 보완도 한다. 실제 모터나 베어링, 링크 정보를 입혀 현실에서도 잘 작동하는지도 확인한다. 최종적으로 3D 설계도(CAD 파일)를 내놓는다.
챗GPT 같은 거대언어모델(LLM)은 확률에 기반해 문장을 생성하다 보니 사실이 아닌 내용을 지어내는 할루시네이션(환각) 문제를 일으키지만 메테우스는 물리 법칙에 맞는 데이터로만 학습하고 수학 모델로 검증을 거치기에 그런 문제가 없다.
메커니즘 설계를 AI로 자동화할 수 있게 된 것은 김 대표 지도교수인 김윤영 전 서울대 기계공학부 석좌교수 덕분이다. 김 석좌교수는 2007년부터 메커니즘 설계 자동화를 연구해 온 세계적 석학이다. SBM 개념을 만들고 18년간 연구했다. 메커니즘을 개념적인 연결 구조(줄기)와 기능을 담은 단위 요소(블록)로 나눠 설계하는 독창적인 방식이다. 메커니즘 설계를 레고 블록 조립처럼 바꾼 것이다. 이런 개념을 바탕으로 모든 메커니즘을 자동으로 산출할 수 있는 표준화된 수학 모델까지 완성했다.
● 상용 모듈 만들어 조립만 하면 시제품까지 나와
국내 기계 제조 생태계가 위축되면서 시제품 제작용 부품을 깎아 줄 공장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중국에 주문을 넣어도 납기 지연이 다반사다. 이에 아이디어오션은 시제품 제작 과정도 혁신했다. 메테우스가 설계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즉시 조립 가능한 ‘표준형 모듈’ 시스템을 갖춘 것이다. 미리 표준화된 링크와 조인트, 모터(근육)를 만들어 두고 활용하는 방식이다. 김 대표는 “가상 공간의 설계(Sim)가 현실(Real)에서 오차 없이 작동하도록 해 주는 파이프라인(Sim2Real)을 구축했다”며 “설계부터 시제품 검증까지 논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모듈로 시제품을 테스트한 결과는 메테우스에 투입돼 AI 성능을 고도화하는 데이터로 쓰인다. 이론적으로는 계산된 결과라 하더라도 부품에 있는 작은 공차나 물리적 특성이 반영된 움직임 등이 메테우스를 고도화하는 데 다시 쓰이는 것이다. 김 대표는 “수학 모델과 AI를 활용해 물리적으로 가능한 모든 방안에서 최적의 설계를 찾는 특징 덕분에 지금까지 인류가 몰랐던 획기적인 설계안이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 창업 생각하며 독자 기술에 늘 관심
김 대표의 창업 의지는 고교 시절 포스텍 영재기업인교육원 1기 과정을 밟으며 싹텄다. 일찌감치 ‘나만의 확실한 기술을 가진 기업가’를 꿈꾼 그는 서울대 기계공학부 박사 과정에서 지도교수인 김 석좌교수를 만나 그 꿈을 구체화했다. 김 대표는 김 석좌교수의 SBM을 실제 로봇 제작에 처음 적용한 논문을 로봇 관련 저널에 게재했다. 이때 학문적 연구의 상용화 가능성이 김 대표 눈에 보였다. 김 석좌교수의 뛰어난 연구와 제자의 창업 열망이 맞물려 아이디어오션이 탄생했다. 김 대표와 연구실 동료였던 이종준 최고기술책임자(CTO)는 공동창업자로 참여해 물리 법칙 기반 AI를 구축하는 역할을 맡았다.
김 대표는 “SBM은 로봇팔이나 다리, 자동차 힌지 같은 세상의 모든 움직임을 하나의 통일된 수학 언어로 표현한 원천 기술”이라며 “중국 칭화대를 비롯한 해외 유수 대학들이 뒤따라 연구하고 있지만 독보적인 기술 격차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사업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을 묻자 김 대표는 “이론적으로 완벽한 수식이 실제 현장의 물리적 오차까지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기술력으로 난관을 돌파한 아이디어오션은 현재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 의뢰를 받아 차세대 모빌리티와 가정용 로봇에 적용될 기구 설계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김 대표는 “설계는 물론 시제품 제작까지 책임지는 지능형 설계 자동화 분야의 세계적 선두주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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