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

허진석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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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허진석 기자입니다.

jameshur@donga.com

취재분야

2024-06-27~2024-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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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구장 절반 크기 돔 아래 층층이 돈 되는 작물[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텃밭이라도 가꿔 보면 알게 된다. 농사는 날씨가 짓는다는 것을. 비가 한동안 오지 않으면 상추가 타들어 갈까 봐 애가 탄다. 반대로 장마철 비가 며칠 연속 내리면 병충해나 침수 피해를 걱정해야 한다. 야생동물의 존재도 알게 된다. 멧돼지나 새들은 애써 가꿔 놓은 고구마나 옥수수를 먼저 먹어 치우곤 한다. ‘농작물을 상품으로 키우려면 자연의 위험을 줄여 줄 장치가 필요하겠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비닐하우스나 유리온실을 활용하는 이유다. 경북 경산시에 본사를 둔 애그유니는 비닐하우스나 유리온실을 뛰어넘는 신개념 ‘식물공장’에서 농사짓는 시대를 열려는 스타트업이다. 연중 어디서나 어느 작물이든 경제적으로 기를 수 있도록 하고 싶어 한다. 8월 말 그 중요한 시험대가 완성된다. 애그유니는 자사 기술을 집약한 3200㎡(약 970평) 규모 에어돔 식물공장을 경기 화성시에 짓고 있다.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 서울사무소에서 만난 권미진 대표이사(32)는 “기둥 없이 넓은 재배 공간과 온도 및 습도를 작은 에너지로 관리하는 기술, 고부가가치 작물을 키울 수 있는 토양 기반의 수직 재배 시스템, 건강하게 자라게 할 작물별 재배법까지 갖췄다”고 말했다. 이어 “식물공장 공급에 그치지 않고, 계약을 맺은 식물공장주들에게서 고품질의 작물을 사들여 유통까지 하는 것이 우리 계획”이라고 했다. 미국에도 법인을 설립한 상태다.● 에어돔과 수직 재배 시스템, 작물별 재배법 화성에 조성 중인 식물공장은 가로 100m, 세로 32m, 최고 높이 17m의 거대한 반(半)원통형 에어돔 구조물이다. 식물공장 2개가 국제 규격 축구장(105m×68m)에 거의 꽉 찬다. 최고 높이는 아파트 6층(층고 2.8m 기준) 정도이고 기둥은 하나도 없다. 돔 재질은 반투명 특수필름으로 자연광 80%가량을 작물이 활용토록 해준다. 권 대표는 “기존 스포츠 시설로 활용되던 에어돔을 농업용으로 개발했다”며 “지열 등으로 온도와 습도를 최적으로 관리하는 공기 순환 기술, 자연광 활용을 위한 이중막 구조, 수증기 재활용 기술 등이 적용됐다”고 설명했다. 애그유니는 에어돔 구축에 필요한 기술 7개 특허를 확보했고, 4개는 출원했다. 무너지지는 않을까. 권 대표는 “에어돔 내부로 필요한 때만 최소의 공기를 넣어 구조물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는 게 기술”이라며 “외부 압력에도 유연하게 반응해 1m 쌓인 눈과 초속 60m 바람도 견뎌 비닐하우스나 유리온실보다 튼튼하다”고 했다. 이어 “2중으로 설치되는 필름은 칼로 베어도 잘 찢어지지 않으며, 일부 찢어져도 안전하게 수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에어돔에는 공기 필터실과 기계실 같은 유지 시설도 포함돼 있다. 애그유니에 따르면 깊이 70cm가 넘는 땅속 콘크리트 구조물과 결합된 특수필름이 해충의 침입을 막고, 에어 항균 필터는 곰팡이나 바이러스를 차단한다. 애그유니는 60일 공정으로 에어돔을 완성해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기둥이 없어 기존 농기계로 농사짓는 것도 가능하고 과수를 기를 수도 있다. 대량 생산을 위해 애그유니가 개발한 수직 재배 시스템을 넣을 수도 있다. 많은 스마트팜 기술이 수경 재배를 전제로 개발되는데, 수직 재배 시스템은 실내에서 키우는 작물 제한을 받지 않기 위해 토양 기반으로 개발했다. 수직 재배기에는 작물이 자라는 상자(모듈)가 담긴다. 작물 뿌리 부근에 물과 공기를 가압 공급하는 독자적 기술이 적용됐다. 권 대표는 “일반 노지 재배에 비해 뿌리 발달과 생육 속도는 약 30% 빠르고, 화학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병충해나 잡초가 잘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작물 재배 시스템도 5개의 특허권을 확보했고 11개 특허를 출원 중이다. 수직 재배 시스템 소프트웨어는 양액 정보 센서, 토양 정보 센서, 관수 제어기, 냉난방기를 비롯한 각종 센서 및 제어기와 연결된다. 애그유니는 통합관제실을 두고 국내외 여러 에어돔 농장을 관리할 계획이다.●“에어돔에서 생산한 농산물 판매까지 책임” 에어돔은 가장 작은 것이 3300m²(약 1000평) 가까운 규모다. 더 작게 지을 수는 없느냐는 문의를 받지만 권 대표는 경제성을 가질 수 있는 최소 단위라고 판단한다. 이는 에어돔을 기반으로 식물공장에서 생산된 농산물의 유통 체계까지 갖추려는 권 대표의 비전과도 연결돼 있다. 약 1000평 단위로 규모화와 표준화를 이루면 고품질 작물을 균일하게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애그유니는 에어돔으로 작물을 재배할 파트너를 찾고, 그들에게서 고품질의 식용 및 특용 작물을 매입해 판매까지 책임지는 시스템을 차근차근 만들어 가고 있다. 권 대표는 “농산물은 수요자가 있으면 절반은 성공한 사업이라고 생각한다”며 “두릅 등 몇몇 작물에 대해서는 이미 수요처를 확보해 단가를 협상하고 있다”고 했다. 애그유니는 경북 경산에서 약용 작물로 고가에 팔리는 대마 재배에 자사 기술을 적용해 성공하기도 했다. 두릅이나 와사비, 당귀, 백수오같이 고가에 팔리는 식용 및 약용 작물 20여 가지 재배법을 갖추고 계속 작물 종류를 늘리고 있다. 수직 재배 시스템을 두고 백수오나 당귀 등을 기를 경우 일반 비닐하우스에 비해 생산량을 7∼8배 늘릴 수 있다는 것. 연중 생산을 위한 재배 기술을 연구 중인 두릅의 경우 수직 5단으로 연간 3, 4모작이 가능해지면 에어돔 시설비를 2, 3년 내에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에어돔 설치비는 3.3m²(약 1평)당 50만 원 선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권 대표는 “평당 시설비는 유리온실보다 조금 더 경제적이고, 에너지 비용 같은 운영비를 크게 아낄 수 있는 방식이다”라고 했다. 애그유니는 올해 4월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 현지 법인을 설립했다. 에어돔 3개동 설치를 위한 유휴 부지를 확보한 상태로 미국에서도 사업을 벌인다. 한국 에어돔에서 생산한 작물 수출도 추진한다.●창업 이후 오랜 연구개발 권 대표는 대구가톨릭대에서 무역경영학 및 비즈니스영문을 전공하고 무역회사에서 잠깐 일하다가 2019년 창업했다. 농산물 유통업을 하던 아버지 일을 잠깐 도운 것이 계기가 됐다. 권 대표는 “기후변화와 고령화 등을 고려하면 작물 생산 방식에 혁신이 필요해 보였다”고 했다. 그런데 전공과는 거리가 있는 분야의 창업이라 여러 곳에서 사업 계획을 발표할 때 도전적인 질문을 많이 받았다. ‘농업인이 아닌데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렸는지’ ‘이공계열이 아닌데 실현할 수 있는지’ 등등. 권 대표는 오히려 더 큰 자극을 받았고, 더 힘줘서 얘기함으로써 조금씩 인정받은 것 같다고 했다. 덕분에 창업 이후 4년 정도는 현장을 직접 뛰면서 고객과 전문가를 만나 조언을 얻으며 연구개발에만 매달렸다.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대학원 푸드테크학과에도 진학해 공부했다. 주변의 도움도 많았다. 권 대표는 “전공자나 전문가가 자기 기술을 갖고 창업할 수도 있지만, 사업을 보는 마음의 크기로도 사업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투자는 2023년 3월에 처음으로 받았다. 글로벌 사업 등을 위해 미국 코넬대 경영대학원을 나온 인력도 최근 영입했다. 권 대표는 “친환경, 고부가가치 농업의 대안이 되고 싶다”며 “장기적으로는 에어돔을 중심으로 관광과 체험 및 문화시설까지 갖춘 융복합단지를 만들어 농촌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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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설-조선소 안전사고 ‘0’ 목표… 대규모 현장 위험 예방 자부심”[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요즘 승용차에는 후진 때 운전자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자전거가 갑자기 뒤쪽에 나타나면 긴급하게 정지하는 기능이 있다. 갑작스러운 ‘끽’ 소리와 함께 차가 정지하면 운전자가 놀라기도 하지만 충돌을 피한 걸 알면 가슴을 쓸어내린다. 센서와 제어장치가 탄생시킨 안전장치의 좋은 사례다. 부산 수영구에 있는 무스마는 여러 센서와 통신시스템, 제어장치 등을 활용해 산업 현장의 안전사고 위험을 획기적으로 줄이려는 스타트업이다. 건설현장이나 조선소 같은 대형 사업장이 주요 대상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기 5년 전인 2017년에 설립됐다. 센서와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산업 현장 위험을 관리하는 스마트 안전 시장을 일찍 내다본 셈이다. 신성일 무스마 대표이사(40)는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하다가 창업하게 됐다”며 “자율주행 선박을 연구하면서 얻은 센서와 통신 기술을 활용해 당시 사고가 빈번하던 타워크레인 충돌 방지 시스템을 만든 것이 시작이었다”고 했다. 무스마는 현재 타워크레인 충돌 방지 시스템, 이동형 폐쇄회로(CC)TV를 비롯해 20여 가지 스마트 안전 설비로 산업 현장 안전을 개선 중이다. 넓은 작업장에 설치된 많은 센서와 데이터를 주고받기 위해 장거리 저전력 무선통신 관련 특허까지 보유하고 있다. ● 타워크레인 충돌 방지 규모가 큰 구조물을 움직이는 곳에서는 타워크레인이 빠지지 않고 설치된다. 타워크레인 여러 대가 동시에 가동되는 대형 사업장이 많다. 서로의 회전 반경이 겹칠 때 자칫하면 충돌 같은 대형 사고가 난다. 크레인이 운반하던 무거운 철 구조물이 떨어져 인명사고가 나고, 크레인 자체가 쓰러지기도 한다. 신 대표가 무스마를 창업한 2017년을 즈음해 타워크레인 사고가 잇달았다. 무스마의 원래 창업 아이템은 산업 현장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이었다. 스마트폰 앱으로 원격지에서 공장의 여러 센서 데이터와 동영상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도구였다. 대우조선해양을 찾았을 때 현장 관리자들이 타워크레인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장치를 빨리 개발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신 대표는 “당장 요청을 했으니 시장 수요는 확실했고, 창업 자본금이 바닥을 보일 즈음이어서 사업 방향을 생산성보다는 안전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변경했다”고 했다. 밤낮없이 매달려 3개월 만에 타워크레인 충돌 방지 장치를 완성했다. 센서 2개와 통신장비를 설치해 관제실에서 관리도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타워크레인의 정확한 좌표와 회전 각도를 측정해 충돌을 예방한다. 타워크레인끼리 가까워지면 경보음을 울리고 타워크레인 기사에게 통보해 사고를 방지한다.● 임시 현장 안전도 높이는 이동형 CCTV 무스마의 스마트 안전 장비들은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 자동화 기술이 결합된 형태다. 화재 및 가스 센서 등이 공사장 곳곳에 설치돼 있고, 저전력 장거리 통신망(LoRa)을 통해 관리를 담당하는 컴퓨터 서버로 관련 데이터가 수집된다. 조선소같이 드넓은 현장에서 제대로 센서들과 통신하려면 장거리 통신이 필요하다. 전자통신연구원(ETRI) 도움을 받아 통신 성능이 개선된 통신 시스템을 개발하고 특허도 받았다. 휴대전화 통신망 롱텀에볼루션(LTE)과도 결합해 동영상같이 수집된 데이터를 AI로 분석하고 사고를 예측한다. 무스마는 특정 사업장에서 필요로 하는 20여 가지 안전장치와 관리 시스템을 함께 공급한다. 건설 현장에서는 현장 상황에 따라 고정형 CCTV 설치가 어려운 곳이 많다. 이런 경우 작업자 안전을 위협하는 사고가 나도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다. 중대재해처벌법 등에 따른 법적 판단에 필요한 증거자료 확보도 어렵게 된다. 무스마는 이동형 CCTV를 개발해 더 쉽게 위험을 관리할 수 있게 했다. 이동형 CCTV는 카메라 삼각대 같은 지지대 위에 노란 박스가 부착된 형태로 전기선이 없는 곳에도 설치가 가능한 배터리 장착식이다. AI 카메라는 작업자가 안전모를 벗는 것을 감지하면 스피커를 통해 ‘모자를 쓰라’고 자동으로 경고한다. 작업자에게 트럭 같은 물체가 안전거리 이내로 가까이 오면 스피커에서 큰 경고음이 나면서 동시에 경광등을 깜빡이며 주의하라고 알린다. 현장과 소통할 일이 있으면 휴대전화 앱을 통해 이동형 CCTV와 소통할 수도 있다. 공사장에서 발생하는 안타까운 사고 방지는 스마트 안전 장비 개발의 주요 목표가 된다. 땅속 깊은 곳에서 흙을 담아 올리는 클램셸(조개 껍데기처럼 두 부분으로 나뉘어 바닥이 벌어지는 이송용 대형 철제 상자) 협착 방지 시스템도 그렇게 개발됐다. 기존에는 작동자가 아래에 사람이 다니지 않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뒤 클램셸을 내렸다. 자칫 실수라도 하면 클램셸에 사람이 깔려 다치거나 죽는다. 무스마는 상승과 하강 경로에 라이다(LiDAR) 센서 등을 설치해 사고를 예방한다. 건설현장에서는 작업자 낙상 사고가 특히 위험하다. 무스마는 근거리 데이터 통신기술 ‘비콘’을 활용해 작업자가 자신이 차고 있는 안전고리를 안전대에 걸어야 할 위치에서 걸지 않으면 경고음을 내는 장비도 개발했다.● 창업경진대회 함께 나간 멤버와 창업 신 대표는 영국 서리대에서 전기전자공학으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2년 대우조선해양에 입사해 산업기술연구소에서 자율주행 선박을 비롯한 자동화 시스템을 연구했다. 창업 동기에 대해 “입사 전부터 창업에 대한 꿈이 있었다”며 “내 아이디어로 새로운 일을 만들고 사회에서 역할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창업해야 하는 이유를 아내와 셀 수도 없이 고민했다고도 했다. 당시에 창업 이유와 창업 이후 하고 싶은 일들을 적은 메모에는 크고 작은 이유들이 각각 30가지 넘게 적혀 있었다. 2016년 회사 울타리 밖으로 나와 창업을 준비했다. ‘스타트업 위크엔드 부산’이라는 창업경진대회에서 베스트 비즈니스상을 받으며 비즈니스 모델 등에 대한 기본적인 검증을 받았다. 창업경진대회를 준비하며 팀을 꾸릴 때 공동창업자 진준호 최고기술책임자(CTO·39)를 만났다. 진 CTO는 부산대 기계공학과를 나와 LG디스플레이 공정관리부에서 일했다. 신 대표는 이후 부산 ‘갈매기 소프트웨어 창업사관학교’에서 기본 창업 교육을 받았고, KAIST에서 기술경영학으로 공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무스마는 사업이 성장해 가는 단계다. 현대건설과 삼성엔지니어링,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LG에너지솔루션 등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신 대표는 “해외시장 개척은 국내 대형 건설사의 해외 사업장 위주로 진출한 정도지만 곧 독자 진출할 계획을 갖고 있다”며 “안전에 대한 관심이 더 높은 편인 선진 해외시장에서 아직 스마트 안전 시스템을 제공하는 곳이 드물어 눈여겨보고 있다”고 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올해부터 5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되고 있다. 신 대표는 “더 적은 비용으로 공사장이나 제조업체 안전을 관리할 수 있도록 임대 형태로도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다”면서 “더 적은 비용으로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기술 개발에 더 매진할 계획이다”라고 했다. 안전하려면 비용이 든다. 시간과 정성은 물론이고 돈도 더 든다. 공정은 더뎌질 수 있다. 그 대신 누군가에게 ‘전부’인 사람을 살릴 수 있다. 부산=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4-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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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딩 없이 칩 최적화 설계… “기간도 1년에서 1주일로 줄일 것”[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반도체 칩에 대한 관심이 인류사에서 지금처럼 뜨거운 때가 있나 싶다. 인공지능(AI) 칩을 설계하는 엔비디아는 세상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기업 자리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자동차에서 자율주행 기능을 맡는 칩, 모바일 기기를 구동하는 칩에 대한 수요도 점점 늘고 있다. 삼성전자에서 테슬라 자율주행 칩 등 다양한 시스템반도체를 16년 동안 설계한 경험이 있는 전호연 대표(44)는 2022년 ‘잇다반도체’를 설립했다. 삼성전자 출신 동료 2명과 함께한 공동창업이다. 칩 설계 업무를 하면서 설계 과정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겠다 싶어서 한 도전이다. 경기 화성시 동탄역 인근 화성사이언스허브의 사무실에서 17일 만난 전 대표는 “시스템반도체 설계를 하려면 여러 부서와 엔지니어의 협업이 필요해 최소 1년은 걸린다. 우리는 그 시간을 1주일로 줄일 것이다”고 했다.● 시스템반도체 설계 업무의 ‘보틀넥’ 시스템반도체를 설계하려면 한 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많은 지식과 노력이 필요하다. 칩의 기능과 성능 구현을 위한 시스템 지식, 최적으로 구동하려면 반도체 소재 등의 특성까지 반영해야 하기에 반도체 제조 공정에 대한 지식도 필요하다. 회로도는 선을 그어서 설계하지 않고 코딩으로 만드는데, 특정 기능에 최적화된 프로그램을 짤 수 있는 코딩 실력도 갖춰야 한다. 필요한 지식과 경험이 많아 여러 부서, 여러 전문가의 협업이 필수다. 전 대표는 “대학에서 반도체 설계를 배워도 삼성전자 같은 반도체 회사에 입사하면 업무를 하면서 배워야 하는 게 너무 많다. 예컨대 모든 반도체 구동에 필수적인 전력 관리 부분 설계는 대학에서는 거의 배우지 못한다”고 했다. 반도체 인력이 모자란다고 대학 정원을 늘려도 기대했던 것만큼 빠르게 국가의 반도체 설계 능력이 좋아지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전 대표는 이를 반도체 설계 업무의 보틀넥(병목 현상)으로 봤다. 그는 “시스템반도체 회로 코딩 전에 여러 전문가가 협의하는 데만 연 단위 시간이 필요하다”며 “제작 공정에 필요한 배경 지식을 소프트웨어에 담아 자동화하면 이 시간을 거의 없앨 수 있다”고 했다. 시스템반도체 설계는 신도시 설계에 비유되곤 한다. 신도시에 상주할 인구에 맞춰 주택과 교통, 업무시설 등을 효율적인 위치와 동선을 고려해 설계하는 식이다. 잇다반도체는 신도시가 감당해야 할 기능에 대한 핵심적인 설계안만 있으면 인프라에 가까운 설비들은 소프트웨어가 자동으로 설계해 준다. 신도시에 필요한 전력량과 전력망, 상하수도 용량과 배선 등이 자동으로 생성되는 것과 비슷하다. 시스템반도체 설계를 하면서 쌓은 경험과 지식을 자동화 소프트웨어에 내재화한 것이다.●“드래그&드롭으로 칩 설계” 잇다반도체는 반도체 설계 전공자가 회사에 입사해서 시스템반도체를 최소의 인력으로 바로 설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전 대표는 “반도체 설계 업무 경험이 있는 실무자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좀 더 간편하게 구현할 수 있는 도구가 생기는 것이어서 더 창의적인 시도를 해볼 수 있다”고 했다. 잇다반도체의 솔루션은 사용자가 드래그&드롭 방식으로 자동화 소프트웨어 내에 지정된 아이콘을 끌어다 놓고 필요한 프로그램 모듈을 지정하기만 하면 된다. 기존 방식이라면 전문가들은 협의를 한 뒤 확정된 세부 사항을 문서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런 문서화 작업도 자동으로 해준다. 잇다반도체는 설립 2년도 채 안 돼 파워(Power)시스템과 클록(Clock)시스템 설계 등을 자동화해 상용화했다. 파워시스템은 칩이 효율적으로 전력을 사용하고 관리할 수 있게 해준다. 전력 소비를 최소화하는 저전력 설계 기법이 적용되고, 칩 내부에 전력이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설계해야 한다. 클록시스템은 칩 성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다. 칩 내부 모든 동작이 동기화돼 일어날 수 있도록 칩 동작 속도나 메모리 대역폭 등을 고려해 설계해야 한다. 전 대표는 “파워와 클록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는 전문가는 세계적으로 숫자가 줄고 있는 반면 AI의 확산으로 칩 전력 소비를 줄이는 설계 수요는 크게 늘고 있다”며 “파워와 클록시스템 설계 자동화만으로도 수천억 원 규모의 글로벌 시장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했다. 글로벌테크 기업들은 성능(performance)뿐만 아니라 소비전력을 줄이기 위해 많은 인력과 돈을 들이고 있다고도 했다. 잇다반도체는 자동차용 자율주행 시스템반도체 등을 만드는 보스반도체에 자사 솔루션을 판매했고, 국내 유명 반도체 대기업들과도 공급 협상을 진행 중이다. 전 대표는 “우리 솔루션에는 공동창업자들이 그간 쌓아 둔 경험이 녹아 있어 그림으로 설계를 하면 최적의 반도체 구조가 나오도록 돼 있다”며 “단순히 설계 시간만 줄이는 것이 아니라 효율 좋은 설계 구조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잇다반도체의 다음 계획은 파워시스템과 클록시스템을 포함해 총 10여 개 설계 부문을 자동화해 시스템반도체 노코딩 솔루션인 ‘SoC 캔버스’를 만드는 것이다. 현재 칩의 결함을 테스트할 수 있는 체계(DFT·Design for Test)를 자동화하는 중이다. 설계된 칩의 결함을 자동으로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기존에는 전문가가 매달려 칩 사양에 따라 일일이 코딩 작업을 해야 했다. 전 대표는 “어려운 부문인 파워와 클록시스템 설계 자동화를 이미 완성했기 때문에 나머지 8개 부문은 2∼3년 내에 마무리될 것”이라고 했다. 잇다반도체는 칩 설계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인정 받아 최근 중소벤처기업부 ‘초격차 스타트업 1000+’에 선정되기도 했다. ● 삼성전자 출신 3명이 공동창업 잇다반도체는 삼성전자에서 시스템반도체와 설계 자동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던 인력들이 나와 창업했다. 전 대표는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전자·컴퓨터 전공으로 학사를 받고, KAIST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 개발 분야에서 16년간 경험을 쌓았다. 테슬라의 자율주행 칩과 갤럭시폰 및 아이폰 칩 등의 파워시스템을 설계했다. 김아찬 최고기술책임자(CTO)는 KAIST에서 전자공학으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고, 삼성전자에서 갤럭시폰의 파워시스템과 구글폰의 클록시스템 설계 등으로 10년 동안 경험을 쌓았다. 김인규 최고제품책임자(CPO)는 성균관대 반도체공학과를 나와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지적자산(IP) 및 시스템반도체 사양 설계, 자동화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 등에서 8년간 일했다. 전 대표는 “테슬라나 구글의 칩 개발에 참여하면서 글로벌 테크 기업이 원하는 수준도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고 했다. 창업 동기에 대해서는 “시스템반도체 설계 과정에 있는 비효율을 제거하고 싶다는 생각과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욕구가 겹쳤다”고 했다. 그는 “칩 설계는 매번 비슷한 과정을 거치는데 칩이 요구하는 사양이 달라질 때마다 비슷한 작업을 오랜 시간에 걸쳐 하는 게 너무나 비효율적으로 보였다”고 했다. 파워시스템을 설계하는 전문가가 많지 않아 만약 사업에 실패하더라도 다시 취업을 하는 데는 문제가 없겠다는 ‘마지노선’도 생각해 봤다고 했다. 창업을 위해 KAIST 경영대학원을 다녔다. 전 대표는 “업계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미국의 반도체 설계 회사 전문가들과도 소통하는데, 반도체 설계 방식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우리 솔루션에 관심이 많았다”며 “미국 등으로 곧 진출할 계획”이라고 했다. 화성=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4-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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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증권, 초고액자산 가문 투자 30조 원 넘게 유치

    삼성증권이 초고액자산가를 위한 ‘패밀리오피스’ 서비스로 유치한 투자금이 100가문 30조 원(2024년 5월 말 기준)을 넘겼다고 17일 밝혔다. 삼성증권이 2020년 6월 업계 최초로 패밀리오피스 서비스를 론칭한 지 4년 만이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가문별 평균 자산은 3000억 원으로, 특히 올해 1월 슈퍼리치 고객 전담 조직인 ‘SNI 패밀리오피스센터’를 연 이후 5개월 동안에는 20가문 10조 원을 유치하는 성과를 올렸다”고 했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패밀리오피스 100가문은 전통 부유층이 50%, 스타트업 창업자 및 임직원 등 신흥 부유층이 20%, 지분 매각 오너가 30%다. 이 중 최근 들어 지분을 매각한 오너들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지분 매각을 통해 확보한 자산을 안정적으로 운용하고자 하는 욕구가 큰 것으로 보인다고 삼성증권은 분석했다. 자산 운용을 위해 직접 패밀리오피스를 설립하는 것보다 삼성증권과 같이 전문성 있는 기관에 자산을 위탁해 관리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삼성증권이 분석한 패밀리오피스 고객들의 특징 3가지는 다음과 같다. △3개 이상의 자산군으로 분산한 포트폴리오 투자 △기관투자가급의 장기투자 수요 △투자 정보 및 투자와 연관된 전문지식의 수요 등이다. 기본적인 세무, 부동산 등 컨설팅 외에도 고도화된 서비스에 대한 욕구가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투자 자산을 분석한 결과 주식 20%, 금융상품 67%, 현금 13%로 나타났다. 자산 중 40% 이상을 채권으로 구성해 안정성을 갖추고, 20%는 다양한 금융상품에 투자한다. 현금성 자산을 10% 이상 보유해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 전체 실질 자산 중 달러 자산 비중이 25.4%에 달한다. 슈퍼리치 고객들은 자산 배분에 있어 자산군뿐만 아니라 통화까지 분산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패밀리오피스 고객의 장기투자를 위해 삼성증권의 엄격한 자기자본 투자 심의를 통과한 전용상품을 제공 중이다. 골드만삭스, 칼라일, MBK파트너스 등 글로벌 유명 운용사의 사모대체펀드를 국내에 독점 공급하면서 글로벌 투자자들과 동시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국내 우량 비상장 회사에 대한 투자와 투자은행(IB)과 연계된 사모대출 투자 등의 기회도 제공했다. 특히 올해 상반기에만 상장사 구조화 상품에 1150억 원, 해외 인공지능(AI) 반도체 비상장기업 프로젝트 딜 710억 원, 글로벌 운용사 사모대체펀드 550억 원 등 2400억 원 이상의 패밀리오피스 전용 상품을 모집했다. 이 중 상장사 구조화 상품은 연 5%대 이상의 목표 수익을 추구하면서 주가 상승 시 초과 수익이 가능한 구조로 설계됐다. 패밀리오피스 고객들은 향후 가업 승계 및 가문의 자산 관리를 위해 금융과 세무 등에 대한 교육 수요가 컸다. 삼성증권은 세무와 부동산, 경제, 투자 기초와 심화 학습 커리큘럼을 구성해 일대일 맞춤형 자녀교육을 제공 중이다. 삼성증권 WM부문장 박경희 부사장은 “삼성증권은 2002년 국내 증권업 최초로 자산관리업을 시작한 이래 2010년 업계 최초 초부유층 전용 SNI 브랜드 론칭, 2020년 패밀리오피스 서비스 론칭 등 국내에서 초고액자산가 자산관리 서비스를 선도해 왔다”며 “더 많은 패밀리오피스 고객을 모실 수 있도록 글로벌 투자 서비스와 비재무적 서비스를 고도화해 나가겠다”고 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4-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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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콩, 비켜! “세상에서 가장 작은 식물에 단백질 가득”[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새로운 발견은 기회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대구 군위군에 연구소를 두고 있는 ‘바이루트’는 수초(水草)인 개구리밥에서 그런 기회를 찾았다. 개구리밥의 단백질 함량이 콩보다 많고, 이틀이면 개체 수가 2배로 늘어날 정도로 성장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다. 바이루트는 연구소로 사용 중인 경북대 농업생명과학대학 부속 실험실습장에서 부평초와 분개구리밥이라는 두 가지 개구리밥을 키우고 있다. 개구리가 물속에서 나올 때 얼굴에 붙이고 나오는 경우가 많아 개구리밥으로 불리지만 개구리는 개구리밥을 먹지 않고 곤충을 잡아 먹는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이는 개구리밥은 부평초다. 지름이 1cm 정도 되는 여러 장의 작고 둥근 잎과 뿌리를 가지고 물 위에 떠서 자란다. 강장(強壯)이나 발한(發汗), 이뇨(利尿), 해독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한약재 원료로 쓰이고, 보습이나 염증 개선을 위한 화장품 원료로도 쓰인다. 분개구리밥은 지름이 1mm 정도밖에 안 되는 녹색 알갱이처럼 생겼다. 뿌리는 없다. 역시 물 위에 떠서 성장한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식물로 불린다. 건조한 분개구리밥 기준으로 단백질 함량이 40%나 된다. 콩과 같은 양의 단백질을 얻는 데 물과 땅이 10분의 1만 있어도 된다. 지난달 21일 연구소에서 만난 허태욱 대표(35)는 “한약재를 취급하다 개구리밥의 영양 성분을 알게 됐다. 부평초나 분개구리밥을 국내에서 재배하는 곳은 우리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속 가능한 단백질 원료 확보에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세상에서 가장 작은 ‘채소’” 바이루트가 식품 원료로서 잠재력이 크다고 보고 집중하는 식물은 분개구리밥이다. 분개구리밥은 김이나 파래 같은 엽상체 식물이다. 줄기와 잎, 뿌리 기관이 분화하지 않은 식물로 전체가 잎으로 작용하면서 물과 양분을 흡수하고 광합성을 한다. 식품공전(食品公典·식품위생법에 따라 식품 제반 규정을 제시하는 고시)에 분개구리밥은 식품에 사용할 수 있는 원료로 등재돼 있다. 미국이나 이스라엘 스타트업들도 단백질 원료나 식품으로 내놓고 있다. 이 업계에서는 물에서 나는 렌틸콩이라는 의미로 워터렌틸로도 부른다. 태국 미얀마 라오스 같은 동남아시아에서는 오래전부터 식재료로 쓰였다. 태국 북부에서는 카이남(khai-nam)이라고 부르는데, ‘물달걀’이라는 의미다. 연구소에서 갓 수확한 워터렌틸을 맛봤다. 상추 맛이 살짝 나는가 싶더니 풋사과 맛도 조금 났다. 전반적으로 맛이나 향은 약해서 채소지만 채소를 먹는다는 느낌은 적다. 식감은 사각거리는 편이다. 분개구리밥에는 전분도 40% 함유돼 있다. 필수아미노산도 고르게 분포한다. 바이루트 분석에 따르면 워터렌틸에는 근력 증강에 필요한 발린과 이소류신 함량이 대두(大豆)보다 많다. 허 대표는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대체 식량과 대체 단백질 가능성 덕분에 일본 아지노모토와 미국 켈로그 같은 세계 유수의 식품 기업과 세계적 벤처캐피털 구글벤처스 등이 관련 스타트업들에 투자하고 있다”고 전했다. 바이루트는 생산량이 적지만 워터렌틸을 온라인 쇼핑몰에서 신선식품으로 공급하곤 한다. 허 대표는 “워터렌틸로 요리해 본 주부들이 맘카페에 ‘김밥이나 계란말이에 넣으니 야채를 먹기 싫어하는 아이가 거부감 없이 잘 먹었다’ ‘그냥 얹어 먹어도 되니 채소 섭취가 간편해졌다’ 같은 후기를 올리곤 한다”고 했다. 바이루트는 워터렌틸을 넣은 프로틴바도 만들어 판매 중이다. 허 대표는 식물성 단백질 원료로 분개구리밥이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대량생산 시설이 갖춰지고 분개구리밥 양식이 확산된다면 단백질이 풍부한 새 신선식품을 확보할 수 있으며 축산 사료용 콩 재배를 위한 산림 훼손까지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허 대표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식물로 인류의 큰 문제인 식량 부족과 기후변화 해결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식물성 단백질 대량생산 기술 바이루트는 분개구리밥 대량생산 기술과 단백질을 효율적으로 뽑아내는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다. 대량생산을 위해 성장 속도를 기존의 2.7배 이상으로 높이는 법을 개발했다. 그동안은 48시간 정도에 개체 수가 2배로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17시간 20분까지 줄인 상태다. 분개구리밥이나 부평초 모두 무성생식 한다. 식물 본체에서 ‘싹’이 나 일정 시간이 지나면 분리돼 번식한다. 허 대표는 “물 온도와 필요한 영양분, 수확 후 남겨 두는 개체 수 같은 여러 변수를 고려해 생육 속도를 더 빠르게 하는 데 성공했다”며 “인공지능 등을 활용해 성장 속도를 계속 높이고 있다”고 했다. 분개구리밥 생육에 특화된 식물공장 시스템도 개발 중이다. 사람의 손길이 적게 가도 되도록 물과 영양액이 자동으로 공급되고 수확도 자동화하며, 일정 주기마다 필요한 바닥 정비도 자동화할 계획이다. 수확한 분개구리밥에서 단백질을 추출하는 공정은 기존 용해식 공정보다 40%가량 간편해진 분리막 활용 방식을 개발했다. 기존 단백질 추출 공정 방식은 원료를 가라앉히고 원심분리와 전기분해를 거친 뒤 다시 침전, 원심분리, 막 추출 같은 공정을 거친다. 이어 식물이나 곡물을 특정 용매로 해서 여러 차례 녹이는 과정 등을 거친다. 반면 바이루트가 개발한 공정 방식은 원료를 가라앉힌 뒤 분리막 추출 공정만 거치면 된다. 허 대표는 “바이루트 기술고문 이성은 경북대 응용생명과학과 교수와 변홍식 계명대 화학공학과 명예교수의 도움으로 경제성을 갖춘 독자적인 단백질 추출 기술을 확보했다”며 “더 큰 용량에 적용하기 위해 기술을 고도화하는 과정에 있다”고 했다. 분개구리밥을 신선식품과 건조 분말, 분리 단백질 등으로 판매할 계획인 바이루트는 올해 투자를 받아 양산 시설을 갖출 계획이다. 부산의 유명 비건(채식) 레스토랑과는 워터렌틸 요리 개발 협약을 맺었고, 제빵 재료로 활용하려는 유명 카페들과 납품 협의도 진행 중이다. 부평초는 양식을 해서 프랑스 화장품 회사에 꾸준히 공급하고 있다. 이 같은 기술 개발에는 개구리밥의 짧은 생육 기간이 큰 도움이 됐다. 하루 정도면 1세대 성장이 끝나는 덕분에 다양한 환경이나 기술을 적용한 실험을 빠르게 시행할 수 있었다. 허 대표는 “농업 스타트업 중 작물을 키우는 경우 짧게는 수개월에서 1년이 걸리는데, 하루 단위로 실험 계획을 짤 수 있어 상대적으로 기술 개발 속도도 빨랐다”고 회상했다.●“한약재 유통하다 새로운 기회 발견” 허 대표는 중국 상하이 중의약대 중약학과를 졸업한 뒤 한약재를 유통하는 동우당제약 마케팅지원실장을 지냈다. 유통 품목 중에는 우리나라 연못에서 채취해 프랑스 화장품 회사에 납품하는 부평초가 있었다. 전국에서 부평초 채취를 전문으로 하는 단 한 사람에게 의뢰해 수출하고 있었는데 태풍 같은 천재지변 탓에 채취량이 없는 해도 있어 애로가 많았다. 허 대표는 “부평초를 직접 재배하면 어떨까 궁리하면서 생육 조건 등을 공부하다 분개구리밥까지 알게 된 것이 창업 계기였다”고 했다. 창업하면서 경북대 농업생명과학대학 응용생명과학과 석사과정에도 진학해 수료한 상태다. 최고기술책임자는 박준성 이사가 맡고 있다. 경북대 원예학과 학사와 석사를 거쳐 스마트팜 식물 재배 및 천연물 나노 소재 연구를 하는 회사를 다니다 합류했다. 아직은 대량생산이 되지 않아 생산단가를 낮춰야 하는 과제가 바이루트에 남아 있다. 허 대표는 “콩에 비해 생산단가가 높지만 필요한 토지와 물이 적어 지속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자본이 확충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대구=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4-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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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형 에어컨도 앱으로 원격 제어… 편리함-에너지 절약 일석이조”[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여름이 온다. 푹푹 찌는 더위에 시달릴 날이 많아진다는 의미다. 그런 날, 퇴근해서 집 현관문을 열었는데 시원한 공기가 나를 맞아준다면 얼마나 상쾌할까. 사물인터넷(IoT)이 확대되고 있다지만 에어컨은 여전히 사람이 직접 켜는 경우가 많다. 사용 연한이 길어서 오래전에 설치된 게 많고, 오피스텔이나 상가같이 에어컨이 대량 설치되는 건물에는 경제성 때문에 IoT 기능이 없는 에어컨이 많이 설치되고 있어서다. 스타트업 에어딥은 IoT 모듈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기술로 생활의 질을 높이는 데 관심을 두는 회사다. 여러 제품과 기술 중 최근에는 휴대전화로 멀리 떨어진 에어컨을 제어해주는 제품을 선보였다. 20일 경기 수원시 광교비즈니스센터에서 만난 김유신 에어딥 대표이사(50)는 “생활 밀착형 기술로 에너지 절약은 물론이고 매일 들이마시는 실내 공기 관리를 손쉽게 하도록 돕는 기술과 서비스 제공의 최고 스타트업이 되고 싶다”고 했다.●“24시간 스터디카페 주인들 사이 입소문” 에어딥이 최근에 업그레이드해 내놓은 에어딥큐(Q)는 손바닥만 한 조약돌 모양의 지능형 에어컨 제어기다. 건전지만 넣어 에어컨에 부착하면 된다. 천장형이나 벽면형, 타워형 에어컨을 가리지 않고 적외선 리모컨으로 작동하는 에어컨이면 대부분 다 된다. 에어딥은 LG전자, 삼성전자, 캐리어같이 국내에서 사용되는 대부분 에어컨의 적외선 리모컨 신호를 분석해 에어딥큐 하나로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에어딥큐는 와이파이 통신망을 이용하는데 AAA 건전지 3개로 6∼12개월 동안 문제없이 작동할 수 있는 초(超)저전력 모듈 설계 기술로 제작됐다. 에어딥 애플리케이션을 깔아 구형 에어컨을 집 밖에서 켜거나 끌 수 있고 풍향과 풍속을 임의로 작동할 수도 있다. 예약도 된다. 에어딥큐에는 온도와 습도를 측정하는 센서와 진동 감지 센서 등이 들어 있다. 동작 감지 센서를 추가하면 사람의 움직임이 없을 때 자동으로 에어컨을 끌 수도 있다. 실내 공기 상태를 감지해 여러 인공지능(AI) 모드로 관리할 수 있다. 집에 홀로 있는 반려동물을 위한 모드, 공공기관 에너지 지침에 따른 에너지 소비 최소화 모드, 최적 업무 모드, 습도 관리 모드 등이 가능하다. 김 대표는 “우리의 IoT 플랫폼 기술 일부를 적용해 개인 소비 시장에 내놓은 제품이 에어딥큐”라며 “24시간 운영하는 스터디카페나 골프연습장 사장님들 사이에서 손님이 없을 때 에어컨을 간편하게 끌 수 있는 기기로 소문이 나면서 좀 알려지는 듯하다”고 했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소형 미용실에서는 손님이 도착하기 직전에 에어컨이나 난방기를 켜는 용도로 활용되기도 한다. 에어딥은 IoT 플랫폼 기술을 적용할 분야를 찾다가 에어컨 제어를 통한 에너지 절약 및 삶의 질 개선에 관심을 갖게 됐다. 김 대표는 “국내에만 현재 구형 에어컨이 2000만 대가량 있고, 매년 새로 나오는 에어컨 약 250만 대 가운데 100만 대 이상은 IoT 기능이 없다”고 했다.●전력 수요 관리 시장까지 내다본다 에어딥은 에어딥큐로 빌딩 관리 시스템 시장 진출도 꾀하고 있다. IoT 모듈을 설계해 제작하고, 센서에서 감지한 데이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소프트웨어 역량이 있어서다. 맞춤식으로 IoT 기기 제작이 가능하고, 기존 빌딩 관리 시스템 서버로 에이딥큐가 수집한 정보를 매끄럽게 전달해 줄 수 있다는 의미다. 김 대표는 “여러 브랜드의 구형 에어컨을 갖춘 학교나 기숙사 같은 곳에서는 에어딥큐를 설치하고 우리가 만든 통합관리 소프트웨어를 활용하면 에너지 관리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누군가 작동 방식은 흉내 낸다고 하더라도 초저전력을 구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며 기기가 수집한 데이터를 다루는 소프트웨어 역량도 쉽게 따라오지는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에어딥은 더 나아가 전력 수요 관리 시장까지 보고 있다. 한국전력거래소는 전력 수요가 공급을 넘지 않도록 최대 전력(피크)을 관리한다. 그중 ‘에너지 쉼표’ 사업이라는 게 있다. 개별 가정이나 점포, 공장이 전력 수요 관리 사업자를 통해 에너지 쉼표 사업에 가입하고, 최대 전력이 예상될 때 전력 소비를 줄이면 인센티브를 받는 식이다. 에어딥은 전력 소비량이 큰 에어컨을 원격으로 손쉽게 관리할 수 있는 기술이 확대되면 전력 수요 관리가 더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 대표는 “원격지에서 바로 에어컨을 끄거나 전력 감축 요청이 있을 때 자동으로 멈추게 하는 것 등이 가능할 것”이라며 “전력 수요 관리 사업자로서 국가 에너지 절감 노력에 동참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에어딥큐에는 에어컨 실제 작동 시간을 감지할 수 있는 진동 센서가 도입됐다. 에너지 사용량을 추산할 수 있어 온도와 날씨, 지역, 점포별 특성에 따른 전력 관련 빅데이터 분석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에어딥은 국내 시장과 함께 일본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일본에서는 구형 에어컨이 대부분인 데다가 에너지 감축 욕구도 많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중견기업 사업부에서 분사해 창업 에어딥은 2020년 데이터방송 관련 솔루션 회사의 데이터사업부가 분사하며 생겼다. 김 대표는 당시 이 사업부를 이끌며 IoT 기술을 활용해 환기장치를 원격 감시하고 제어하는 외부 연구과제를 수행했다. 3년간의 연구 덕분에 IoT 모듈을 설계하고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하는 소프트웨어 솔루션을 갖게 됐다. 현재 직원 대부분이 기존 회사 구성원들이다. 김 대표는 “회사가 사업을 정비하면서 분사를 하게 됐는데 IoT 플랫폼 기술을 확보한 상태였고 모회사가 적절한 가치로 인정해줘서 창업을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 완성된 기술을 적용할 시장도 금세 눈에 들어왔다. 창업 이듬해에는 경기도 초중고교 1500개 교실의 청정 환기 장치에 들어갈 IoT 모듈을 공급했다. 완제품으로 차량용 흡연 탐지 솔루션 ‘에어딥카’도 선보였다. 공유차량이나 렌터카 운전자가 차 안에서 흡연하는지 사업자가 실시간 감지할 수 있는 솔루션이다. 2022년에는 호텔 같은 실내 공간에서 공기질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에어딥룸’도 출시했고, 지난해에는 에어딥큐 첫 버전으로 중소기업 우수 브랜드를 인정하는 ‘서울어워드’ 우수제품상을 받기도 했다. 김 대표는 국민대에서 경영정보시스템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국 텍사스주립대 객원 연구원, 서울시립대 빅데이터분석학 전공 객원교수 등을 지냈다. 김 대표는 “제품 개발 역사는 시장 수요를 찾아가며 관련 시장을 넓히는 과정이기도 했다”며 “IoT 플랫폼 기술이 알려지면서 화장실 냄새를 관리하는 회사 의뢰를 받아 악취 관리 솔루션도 개발하는 등 IoT 영역을 계속 넓히고 있다”고 했다.수원=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4-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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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시간 연속 보행 사족로봇 개발… 산길-모래밭 가리지 않아”[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사족 로봇으로는 2020년 시장에 나온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스폿(SPOT)’이 유명하다. 사람에게 익숙한 개를 닮은 형상이다. 네 다리로 보행하며 주변을 살피는 모습이 떠오르고, 사람이 밀쳐 내더라도 넘어지지 않고 중심을 잡는 모습 등이 대중의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근래에는 중국 기업들의 사족 로봇 사업화도 활발해지고 있다. 로봇 공학자들이 동물의 다리 형태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험난한 지형을 뚫고 사람을 구하거나 밟으면 움직이는 물건들이 많은 재난 현장 같은 곳에서도 안정적으로 기동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유리해서다. 또 사족 보행 기술은 우주 탐사 등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는 분야에서도 필수적인, 잠재력이 큰 기술이다. 대전 소재 KAIST에 있는 ‘라이온로보틱스’는 여느 기업과 달리 인공지능(AI)으로 제어하는 사족 로봇을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KAIST 기계공학부 황보제민 교수(36)가 작년 10월에 교원 창업으로 회사를 세웠다. 7일 KAIST 연구실에서 만난 황보 교수는 “미국과 중국에서 상업용 사족 로봇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어려운 지형의 보행과 배터리 사용 시간 측면에서는 개선할 여지가 많아 창업으로 도전하게 됐다”며 “컴퓨터 시뮬레이션상의 경험을 사족 로봇의 AI에 이식할 수 있는 기술 등을 확보해 어려운 지형을 극복했고, 배터리 사용 시간도 8시간까지 늘림으로써 실용적인 활용이 가능토록 했다”고 밝혔다.●“기존 사족 로봇 배터리 사용 시간 2시간 안 돼” 라이온로보틱스는 작년 말 사족 로봇 ‘라이보2’를 완성했고 올해 말부터 양산에 나설 계획이다. 라이보2는 무게 41kg으로 초속 5.8m(시속 21km)까지의 속도를 낸다. 배터리 시간은 8시간이다. 황보 교수는 “35∼50kg급 사족 로봇 시장에서 라이보2만큼 빠르게 걷고, 배터리 사용 시간도 긴 로봇은 아직 없다”고 했다. 넓은 공장에서 정해진 길을 따라 각종 검사와 장비 점검을 할 수 있고, 긴 모래사장이 있는 해변을 순찰하는 것도 가능하다. 미국이나 중국 대기업이 선보이는 사족 로봇은 대부분 1시간 30분∼2시간 정도 사용이 가능하고, 보행 속도는 초속 2m 이하다. 황보 교수는 “가격 또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 중이다. 비슷한 규모의 중국 사족 로봇의 가격이 1억 원 정도인데, 라이보2는 이보다 더 경쟁력 있는 가격대에 생산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내후년 말에는 가격을 더 많이 낮출 계획이다. 기본 사족 로봇은 짧은 배터리 사용 시간 때문에 사용에 제한이 많다. 라이온로보틱스에 따르면 대형 야외 사업장을 가진 국내 한 대기업은 외국의 사족 로봇을 도입했지만 사업장의 전체 순찰 길이가 8km에 달해 주요 공정 순찰 등에만 제한적으로 사용 중이다. 치안이나 군용으로 사용할 경우 배터리 사용 시간은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배터리를 남긴 상태에서 출발 지점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순찰이나 정찰 반경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높은 산악 지역으로 조난자를 찾으러 나설 때도 1∼2시간의 배터리 사용 시간으로는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다.●컴퓨터상 다양한 지형 학습 후 로봇에 ‘이식’ 황보 교수는 AI 강화학습에 기반해 로봇을 제어하는 분야의 전문가다. 컴퓨터상에서 일반 지면은 물론이고 험준한 산악 지형, 모래밭, 자갈밭, 풀밭 등 실제 있을 수 있는 다양한 지형을 만들고, 각 환경에서 최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제어값을 산출할 함수를 생성한다. 이렇게 시뮬레이션을 활용해 AI 학습용 데이터를 만들면 실제로는 10년 걸려 쌓을 경험을 몇 시간 내에도 해결할 수 있다. 황보 교수는 “엔비디아와 딥마인드, 그리고 우리만 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했다. 이런 식으로 생성한 함수는 라이보의 AI 칩에 이식된다. 라이보는 네 다리로 지각한 최소한의 데이터로 최적의 함수를 찾아 적은 계산량으로 관절을 빠르게 제어한다. 기존 사족 로봇은 대부분 모델 기반 방식으로 제어된다. 로봇 몸체의 동역학을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그때그때 계산하는 방식이다. 이 계산량이 많아 배터리 소모도 많다. 외부 환경을 인식하기 위해 카메라와 라이다(LiDAR) 센서까지 달아야 하는 것도 배터리에는 부담이다. 황보 교수는 “강화학습 기반의 제어는 지형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더라도 로봇을 안정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며 “라이보2는 여느 로봇과 달리 모래밭이나 자갈밭, 무너지기 쉬운 재난 현장과 같은 가변적인 지면에서도 안정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장점”이라고 했다. 라이보2는 현재 카메라나 라이다 없이도 안정적 보행이 가능하다. 비전 정보를 활용하는 선택 옵션도 개발 중이다. 라이온로보틱스는 라이보2에 들어가는 주요 부품을 직접 개발하면서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했다. 예컨대 구동기에는 유성기어가 쓰이는데 기어비를 최적화함으로써 열 손실을 줄여 배터리 사용 시간을 늘렸다. 모터제어기와 모터도 직접 개발하며 에너지 소모를 기존에 비해 20∼50%가량 줄였다. 구동기와 다리, 몸체 등 주요 부위를 모듈화해 고장이 났을 때 여느 사족 로봇들과 달리 필요한 부분만 교체하면 되도록 했다.●가족 이민으로 캐나다서 공부하고 귀국해 창업 황보 교수는 중학교 때 온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되면서 고교와 대학을 캐나다에서 다녔다. 캐나다 토론토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는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ETH) 대학원에서 2013년 석사 학위, 2019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1년은 취리히 연방공대 로보틱 시스템 랩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지냈고, 2020년 3월부터 KAIST 교수로 근무 중이다. 스위스에서 있을 때는 산업용 사족 로봇 ‘애니멀(ANYmal)’의 개발에도 참여했다. 2019년 로봇 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발표한 ‘다리 달린 로봇을 위한 민첩하고 역동적인 운동 기술 배우기’ 논문은 네이처가 선정한 그해 논문 10선에 선정될 정도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라이온로보틱스의 직원은 대학원생을 포함해 총 6명이다. 4년가량 강화학습 기반 사족 로봇 제어 기술을 같이 연구한 대학원생들이 주축이다. 황보 교수는 “강화학습을 기반으로 한 사족 로봇 제어는 이제 막 시작되는 분야”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창업을 한 이유에 대해서는 “대학원 다닐 때쯤부터 연구를 위한 연구보다는 실제 사용 가능한 로봇을 만드는 연구자가 되고 싶었다”며 “연구 결과가 집적돼 자연스럽게 창업을 하게 된 것 같다”고 했다. 현재 라이온로보틱스가 처음으로 완성한 라이보2는 외국에 팔려 나간 상태다. 올해도 대여섯 대 더 판매할 계약이 맺어져 있다. 향후 사족 로봇은 사람이 장기 거주하기 힘든 곳 등에서 사람을 대신해서 감시와 순찰 업무를 하게 될 공산이 크다. 산업 현장에서는 해양 플랜트와 화학공장, 발전소 등에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육지와 먼 해양 플랜트에서 사족 로봇이 플랜트 시설을 돌아다니며 설비 이상 유무를 알려줄 수 있다. 군에서는 해변이나 산악에서 정찰을 목적으로 사족 로봇을 활용할 수 있다. 황보 교수는 “지형에 구애받지 않는 라이보2는 산업용 검사 로봇과 군용 로봇, 치안 유지 로봇 등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글·사진 대전=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4-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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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는 기술 전쟁 중… R&D 전략 오판은 치명적”

    세계 주요국들은 기술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다. 미국과 중국 일본 등은 천문학적인 지원금과 과감한 정책으로 반도체, 인공지능 등과 같은 첨단기술 확보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지난해 산업기술 예산 축소를 경험한 공학인들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한국공학한림원(NAEK)은 2일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호텔에서 ‘산업·기업 R&D 특별 포럼’을 열고 대기업을 포함한 민·관·학 협업 체제로 신산업을 창출할 수 있는 대형 기술 개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공학한림원의 특별 포럼은 ‘선도형 혁신 생태계 육성을 위한 산업·기업 R&D 지원 방향’을 주제로 열렸다. 같은 주제로 기조발표를 한 이병헌 광운대 경영학부 교수는 “미래 먹거리가 될 기술은 새로운 산업을 만들 정도의 임팩트가 있는 기술이고, 이런 R&D는 대기업이라 하더라도 감당하기 불가능한 위험이 있다”며 “세계적인 흐름도 산업기술 개발에서 국가의 역할이 더 커지고 있는 만큼 정부가 재정 지원을 확대하면서 민간 투자도 크게 끌어내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NAEK 산하 ‘산업·기업 R&D 지원 방향 연구 태스크포스(TF)팀’의 공동위원장을 안현실 NAEK 기술경영정책분과위원장과 함께 맡았다. 19명으로 구성된 TF팀은 이날 국가전략기술 개발 프로젝트 신설 등을 담은 7대 제언을 발표했다. 안준모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왜 산업기술 R&D인가’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기존에는 기초연구를 바탕으로 개발과 사업화 등이 단계적으로 진행됐지만, 지금은 게임체인저가 돼 무한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R&D와 사업화가 동시에 이뤄지는 시대”라며 “핵심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정부의 과감하고 통합적인 R&D 지원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국제사회는 기술 확보 경쟁 격화로 선택적 국제 협력과 핵심기술 확보의 중요성, 기술력 중심의 글로벌 리더십 등을 골자로 하는 신산업정책이 부활한 상황이다”라고 소개했다. 양현모 전략컨설팅 집현 대표이사는 ‘한국 산업·기업 R&D 성과와 과제’ 발표를 통해 “그간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1980년대 조선과 가전, 1990년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2000년대 이후 정보통신 분야를 주력 산업으로 키울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정권 교체 등으로 신성장 동력 창출을 위한 정책의 일관성 등이 부족했고, R&D를 신산업 창출로까지 이어지게 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양 대표는 “역대 정부 대형 R&D를 보면 대기업의 참여가 있을 때 좋은 성과가 나왔지만 2017년 이후로 대기업의 참여는 크게 줄었다”고 했다. 양 대표는 “2023년 정부 R&D 예산 삭감으로 산업 R&D 지원도 축소됐고, 일각에서는 정부의 직접 지원 축소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이라며 “그간의 성공과 글로벌 흐름을 고려할 때 바람직하지 않은 인식”이라고 했다. 특별포럼의 패널로 참석한 학계와 첨단산업계 관계자들은 R&D를 하면서 느낀 점을 바탕으로 건설적인 대안들을 제시했다. 이동수 네이버클라우드 이사는 민간 수요 중심의 연구개발을 강조했다. 그는 “엔비디아와도 파트너로 일하는데, 그들이 AI 서비스 기업의 수요를 맞춰 주려 기민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놀라곤 한다”며 “정부가 기업 수요와 어긋나는 중장기 개발 계획을 다 세워 놓으면 민간기업이 정확한 수요를 얘기하기도 힘든 만큼 정부가 AI 반도체를 의미 있는 국가 주력 산업으로 키우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다면 민간이 (대형 R&D 과제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하는 방안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반도체 제조 산업은 글로벌 톱이 됐다. 산업을 선도하는 입장에서 더 이상 원천기술을 해외에 의존하기 힘들다. 원천기술은 국내의 학교와 연구기관 등에 있어야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산업·기업 R&D가 기초·원천기술을 견인하고, 기초·원천기술이 산업기술로 이어지는 ‘산업향 원천기술’을 활성화하는 선순환 기술 생태계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김기남 한국공학한림원 회장은 “대한민국이 기술패권 시대에 퍼스트무버(선도자)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리스크가 있지만 성공하면 임팩트가 큰 선도형 융복합 R&D에 민관의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며 “한국공학한림원은 이를 위해 산업·기업의 목소리를 담아 정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더욱 충실히 노력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4-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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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략기술-첨단산업 분야 ‘국가 미션 프로젝트’ 추진하자”

    한국공학한림원은 이날 R&D 전환을 위한 7대 제언을 발표했다. 김필성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본부장과 전호일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단장, 박소희 로운인사이트 부대표가 연구에 참여했다. 연구팀은 우선 국가전략기술 및 첨단산업 분야의 ‘국가 미션 프로젝트’ 추진을 제안했다. 민간 주도 초격차 기술 개발로 시장 주도권을 강화하고 핵심 소재 부품 의존도 완화가 가능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2차전지, 생명공학·바이오헬스, AI 분야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발굴해야 한다고 했다. 이업종 융합형 R&D의 촉진도 촉구했다. 세계 각국과 글로벌 기술 기업들이 AI와 바이오 등 첨단기술을 융합해 신산업 창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에 대응하자는 것이다. 기초연구와 사업화를 한 번에 진행하는 통합형 R&D 지원 사업 추진도 제안했다. R&D의 초점을 기술 개발에만 맞추지 말고 최종 목적과 그 목적이 구현되는 시장 수요로까지 확대하자는 취지다. R&D 지원 방식의 개선 방향도 제시했다. 과제 발굴 때 단기적인 기술 수요 조사를 벗어나 미래를 예측하고 잠재적인 수요를 목표로 해야 선도적 과제를 발굴할 수 있다는 제안이다. 또 연구 수행 관리를 정부 주도에서 민간 수요 기업 주도로 전환해 관련 산업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성과 관리를 할 때는 단순히 산출물 중심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파급력과 영향력 위주로 할 것을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선도형 산업 R&D 활성화를 위해 예산과 세제 지원을 최적으로 조합해 지원 효과를 높일 필요가 있고, 기업의 성장 단계와 규모에 맞춰 투자형이나 융자형, 후불형 등으로 지원하는 입체적 펀딩 전략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4-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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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6조 규모 반도체기술센터 출범… 日 10년간 탄력적 지원

    미국은 올해 2월 반도체지원법(칩스법)에 근거해 50억 달러(약 6조8000억 원) 규모의 민관 연구개발(R&D) 컨소시엄인 국립반도체기술센터를 출범시켰다. 생명과학 분야에서는 2022년 9월 20억 달러를 투입하는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국립과학재단(NSF) 주도로 ‘국가 인공지능 연구소 프로그램’을 시작해 2020년 7개, 2021년 11개의 인공지능(AI) 연구소를 선정했다. 구글과 아마존, 인텔 등 민간 대기업 등이 참여하고 있다. 독일은 ‘플랫폼 인더스트리 4.0’을 연방경제에너지부와 연방교육연구부, 독일산업연합, 독일 금속노조, 지멘스, 도이치텔레콤 등 정부와 대기업이 협업하는 대형 프로젝트로 운영 중이다. ‘디지털 허브 이니셔티브’ 프로젝트를 통해서는 450개 스타트업을 대기업 200곳과 중소기업 80곳, 연구기관 100곳과 네트워크화해 주고 있다. ‘인공지능 실행 계획’을 발표하면서는 2025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2% 비율로 AI 연구개발에 투자를 확대할 계획을 밝혔다. 일본은 2020년 ‘그린 성장 전략’에 따른 14대 중점 분야를 대상으로 연구개발과 실증, 사업화에 이르기까지 10년간 연속적 탄력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매년 500억 엔의 예산이 투입되는 ‘전략적 혁신창조 프로그램(SIP)’에서는 에너지와 차세대 인프라, 지역자원, 건강장수 등 4개 분야를 정해 부처 칸막이를 뛰어넘는 횡단형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한국공학한림원은 첨단전략 산업·기술의 보호를 위해 각국 정부가 기술 개발에서 제조·생산 단계까지 ‘확장된 산업정책’을 펴고 있다고 분석했다. 바이오 부문의 경우, 연구개발만이 아니라 생산, 공급망 확보, 인력 양성 등을 총력 지원하고 있다는 것. AI, 양자, 사이버보안 분야에서는 우수한 민간기업이 연구 프로그램과 프로젝트에 참여해 기술표준 확보, 민관 파트너십 구축, 국제 협력 확대 등 R&D 영역을 크게 확장하고 있다고 봤다. 탈탄소 및 그린에너지 기술 개발은 연구개발, 실증, 확산 단계를 거쳐 국가와 사회 전반의 혁신까지 고려한 ‘패키지형 정책’을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4-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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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립패스’, 한국 찾는 몽골인 서비스 강화로 시장 공략

    모바일 여권을 기반으로 관광 및 금융 플랫폼 ‘트립패스’를 운영하는 로드시스템(대표이사 장양호)이 몽골로 진출한다. 로드시스템은 1일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비자 발급 센터 관계자를 대상으로 트립패스 플랫폼에 대한 설명회와 업무협약식을 지난달 24일 진행했다”고 밝혔다. 트립패스는 실물 여권 정보와 결제 기능이 결합된 플랫폼이자 애플리케이션(앱)이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은 트립패스만 있으면 여권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휴대전화를 이용해 QR코드나 안면 인식으로 신분을 증명하고 결제나 세금 환급을 받을 수 있다. 로드시스템은 몽골에서 대한민국 사증(査證)업무 대행을 하는 비자 센터 관계자를 대상으로 자사 모바일 여권의 우수한 보안성 및 모바일 택스 리펀드(tax refund) 같은 금융과 신분 확인이 결합된 트립패스의 주요 기능과 서비스를 소개했다. 현지 대한민국 사증 접수 공식 대행법인 ‘G&SK Corporation’과 트립패스 플랫폼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로드시스템은 협약을 통해 G&SK를 비롯한 몽골 비자 센터를 통해 트립패스 플랫폼을 홍보하고 한국을 방문하는 몽골인이 체류 기간 금융과 신분 확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할 예정이다. 트립패스 플랫폼을 활용하면 외국인등록번호가 없는 단기 체류 외국인도 모바일 여권 기반으로 전자지급 수단을 발급받아 교통, QR 결제 같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고 로드시스템 측은 설명했다. 무엇보다 6개월 미만 단기 체류 외국인이 CU, GS25 같은 트립패스 택스 리펀드 가맹점에서 실물 여권 없이 모바일 여권으로 부가세 즉시 환급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장양호 로드시스템 대표는 “몽골에서 비자 센터와 은행, 보험사, 모빌리티 업체 등을 방문해 글로벌 크로스보더 결제 플랫폼으로 확장하기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며 “세계 공통 신분증인 여권만으로 간편하게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혁신적인 플랫폼인 만큼 글로벌 관광과 금융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트립패스는 이 같은 비즈니스 모델로 올해 미국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서 금융기술 부문 최고혁신상과 사이버보안 개인정보 부문 혁신상을 수상했다. 국내 최대 정보통신기술 전시회인 2024 월드IT쇼에서는 ‘올해의 혁신상’ 우수상 기업에 선정됐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4-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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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성통증, 앱으로 치료 도와”… 환자 스스로 재활운동 제대로[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근육을 만들어 주는 약이 있다면 재활 운동은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약은 아직 없다. 만드는 시도는 있지만 성공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근육을 만들어 신체적 기능을 정상화하는 재활 운동은 대체될 수 없는 중요한 치료법인 것이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에버엑스’는 환자 스스로 재활 운동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돕는 디지털 치료 기기를 만든다. 정형외과 의사가 만든 스타트업이다. 서울대 의대를 나온 윤찬 대표(40)는 서울 강서구 부민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다 디지털 치료 기기 완성을 위해 지금은 개발에만 전념 중이다. 19일 에버엑스 사무실에서 만난 윤 대표는 “재활 운동은 수술 후에는 수술 효과를 결정지을 정도로 중요하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여러 만성 통증 관리에는 거의 유일한 수단인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재활 운동에 들여야 하는 시간, 경제적 비용 등 때문에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다. 필요성은 뻔히 보이는데 해결책이 안 보여 창업을 하게 됐다”고 했다.●재활 운동의 중요성 윤 대표는 재활 운동의 중요성을 환자들이 제대로 인지할 수 있도록 상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어깨관절에 통증과 운동 제한이 나타나는 오십견(유착성 관절낭염) 환자를 예로 들었다. 윤 대표는 “오십견 환자의 약물치료는 약물로 병을 직접 낫게 하는 것이 아니다. 환자 본인이 운동하기 편하도록 돕는 과정일 뿐이다”라고 했다. 약물로 통증을 덜 느끼게 된 상태에서 환자가 운동을 제대로 해야 뼈와 힘줄, 근육이 제대로 자리를 잡고 기능이 정상화된다는 것이다. 수술을 하더라도 수술 후에는 재활 운동이 필요하다. 윤 대표는 “수술이 반이고, 재활 운동이 또 다른 반이다. 재활 운동을 해야 수술로 생긴 근육 주변 상처들이 제대로 아물고 기능이 정상화되는 것이다. 수술만 받고 재활 운동을 하지 않으면 완치는 힘들다”고 했다. 에버엑스는 디지털 앱을 통해 환자 스스로 제대로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앱은 동작 분선을 통해 재활 과정 중의 경과 호전을 파악한다. 의학적으로 효과가 있는 운동 프로그램(라이브러리)을 구축해 디지털 치료 기기로도 효과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 가고 있다.●의학적 근거에 기반한 디지털 치료법 구축 에버엑스는 정형외과와 재활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가들을 모아 의학적 근거와 풍부한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근골격계 특화 재활 운동 치료 브랜드 ‘모라(MORA)’를 만들었다. 모라는 3000여 개의 재활 운동 라이브러리와 고도화된 인공지능(AI) 자세 추정(pose estimation) 기술로 객관적인 근골격계 평가가 가능하다는 강점을 갖고 있다. 휴대전화 카메라로 환자 움직임을 다각도로 정밀 분석해 의료진이 환자를 모니터링하고 증상의 경과를 추적할 수도 있다. 에버엑스는 모라의 핵심 자산을 기반으로 질환과 기능에 특화된 4가지 대표적인 솔루션을 개발해 제공하고 있다. 모라 엑스(MORA Ex)는 3000여 개 재활 운동 과정이 담긴 비대면 재활 운동 솔루션이다. 의료진이 웹으로 환자에게 맞춤형 재활 운동을 배정하면 환자는 모라 앱을 통해 시공간 제약 없이 간편하게 재활 운동을 수행할 수 있다. 의료진은 환자가 수행한 재활 운동 데이터를 기반으로 모니터링이 가능해 수행과 치료 경과를 추적할 수 있다. 현재 서울대병원과 한양대 구리병원을 비롯한 주요 상급종합병원 등 60여 개 의료기관에서 의료진 200여 명이 사용 중이다. 환자 수행률(치료 순응도) 약 70%, 통증 개선율 81%로 유의미한 결과를 확보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에버엑스 리햅(EverEx Rehab)’이라는 브랜드로 론칭해 작년 7월 재활 운동 및 원격 모니터링 목적으로 미국식품의약국(FDA) 2등급 의료기기로 등록됐다. 미 뉴저지주 물리치료센터 등에서 시범 사용 및 도입이 이뤄지고 있다. 모라 큐어(MORA Cure)는 재활 운동 치료와 인지 행동 치료가 병합된 새로운 형태의 다학제적 디지털 치료기기다. 슬개대퇴통증증후군, 만성요통 같은 만성 통증에는 심리 치료를 돕는 인지 행동 치료가 필요하지만 정형외과를 찾은 환자가 심리 치료를 위해 다시 정신과까지 찾기 힘든 점을 감안해 앱으로 만들었다. 에버엑스는 모라 큐어 임상을 진행 중이다. 슬개대퇴통증증후군은 현재 탐색 임상이 종료된 상황으로 지난달 의료기기 임상시험계획승인(IDE)을 받아 확증 임상에 들어갈 예정이다. 만성 요통 치료도 확증 임상을 준비 중이다. 모라 뷰(MORA Vu)는 에버엑스가 자체 개발한 AI 기반 자세 추정 모델을 바탕으로 근골격계 동작 분석에 특화된 솔루션이다. 50만 건의 근골격계 운동 동작 데이터를 집중적으로 학습해 근골격계 동작 분석의 정밀함을 높였다. 모라 뷰는 기존 아날로그 측정 기계와 비교하면 검진 공간이 거의 필요 없는 수준이다. 올 2월 국내 근골격계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로서는 최초로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근골격계 분석 소프트웨어 2등급 의료기기 인증을 받았다. 모라 케어(MORA Care)는 기업 구성원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로, 에버엑스 재활전문가와 함께 근골격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근로자 지원 프로그램(EAP)이다. 일자목, 요통 같이 업무 환경에서 발생하거나 악화될 수 있는 근골격계 증상에 적합한 재활 운동을 제공해 준다.●의료와 IT 전문가들 모아 사업화 윤 대표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명과학과와 서울대 의과대를 졸업했다. 의학을 배울 때와 환자를 진료하면서 재활 운동이 지속적으로 행해지지 않는 환경을 안타까워하다 2019년 에버엑스를 차렸다. 에버엑스 이사진에는 의료 전문가와 AI를 비롯한 정보기술(IT)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다. 김병훈 AI 개발 총괄은 연세대 의대 의생명시스템정보학교실 교수다. 연세대 의대에서 학사와 석사를 받고 KAIST에서 바이오 및 뇌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치현 인지 행동 치료 개발 총괄은 서울대 의대에서 학사와 석사를 받고 서울대 보라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지냈다. 에버엑스에는 현재 AI본부에 5명, 의학본부에 4명, 제품개발본부에 17명 등 46명의 임직원이 디지털 치료제 개발을 완료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에버엑스는 글로벌 시장을 노리고 있다. 윤 대표는 “미국 근골격계 질환 시장 규모는 6000억 달러에 달하고 글로벌 근골격계 환자 수는 18억 명이나 된다”고 했다. 어느 나라나 환자는 여러 번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 데 따른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싶어하고, 의사는 병원 밖 재활 운동 결과를 모니터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수요를 노리는 것이다. 윤 대표는 의사 자격을 갖추고 창업한 것에 대해 “병을 치료하는 과정을 다년간 겪어 본 의사가 아니면 디지털 치료제에 어떤 과정을 넣어야 하고, 어떻게 해야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는지 세세한 노하우를 프로그램에 담기 힘들다”며 “창업은 분명 쉽지 않은 길이지만 더 많은 의사들이 창업해 더 싸고 편리하면서도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도구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고 했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4-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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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진연구자 권한 확대… 글로벌 도전 기회 제공”

    신진 연구자가 연구 책임자인 과제의 비중을 현 10% 수준에서 5년 내에 20%로 늘린다. 또 기업 수요와 연계한 신진 연구자 전용 연구개발(R&D) 지원 사업을 신설한다. 산업통상자원부(장관 안덕근)는 16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에서 대학·연구소 신진 연구자, 기업 최고경영자(CEO) 및 최고기술책임자(CTO) 등과 산학연(産學硏) 협력을 통한 신진 연구자 성장 방안을 논의하며 이 같은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신진 연구자는 박사학위 소지자 가운데 박사학위 취득 7년 이내이거나 만 39세 이하인 경우, 또는 최초 조교수 이상 임용된 지 5년 이내 연구자를 말한다. 정부는 지원 방안 마련을 위해 16차례에 걸쳐 239개 기업 및 연구기관과 소통했다. 먼저, 정부 연구과제 방향성을 정하는 투자 전략 결정은 물론이고 굵직한 R&D 기획에 신진 연구자 참여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또 과제 평가를 위한 선정평가위원에도 신진 연구자 참여를 늘리기 위해 선정평가위원 풀(pool) 중 신진 연구자 수를 현재의 약 2배인 2600명으로 늘린다. 미래 연구자 양성을 위한 투자를 확대한다. 매년 산업계가 요구하는 산업·에너지 분야 석·박사 6000명을 양성한다. 또 12개 글로벌 산업기술협력센터를 구축해 글로벌 R&D 공동연구 때 국내 신진 연구자 참여를 의무화하고, 첨단산업 분야 해외공동연구비용(약 1억 원·6∼12개월)을 지원해 신진 연구자들이 세계적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신진 연구자가 세계적인 연구 주제를 잡을 수 있도록 기업과의 네트워킹 강화도 지원한다. 기업을 위한 연구자 정보와 연구자를 위한 기업 전략 정보를 지원하고, 협업 파트너 연결 플랫폼을 고도화한다. 매월 첨단산업 온라인 기술 교류회를 열고 주요 학회를 통한 오프라인 네트워킹, 기술 분야별 프로그램 책임자(PD)와 상시소통 채널도 구축하기로 했다. 학생 연구자나 신진 연구자의 연구비 정산 및 관리 부담을 덜어 연구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대학과 출연연구소에 대해서는 외부 회계법인을 통한 정밀 정산 대신 자체 회계감사를 통한 정산을 허용한다. 또 연구비 5억 원 이상 프로젝트에서는 연구비 관리 지원 인력 활용을 의무화해 영수증 첨부 같은 행정 부담을 대폭 줄여주기로 했다. 대학에 대해서는 재료비, 회의비를 비롯해 10만 원 이하 연구비 증빙을 면제해 주기로 했다. 약 100분간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 약 70분은 신진 연구자들과 기업 연구책임자를 비롯해 20명이 안덕근 장관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으로 마련됐다. 이 자리에서 이민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은 “기획·평가위원에 특정 기관이나 인맥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으니 더 투명한 선발 절차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황선관 SK바이오팜 CTO 등 다수의 기업 연구책임자들은 “신규 연구 영역에 대한 연구 파트너 정보가 매우 부족하다”고 토로했고 신진 연구자들 역시 “기업 의사결정권자가 참여하는 네트워크 활성화 등이 필요하다”며 기업과의 접점 확대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를 주재한 안 장관은 “인재가 우리 미래를 결정한다”며 “신진 연구자들이 기업과 협력해 초격차 우위 확보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세계적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하겠다”고 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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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속혈당측정기, 스마트반지… 헬스 기기 맞춤형 칩 공급”[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신도시에 있는 ‘네메시스’는 사람이나 동물의 몸에서 발생하는 생체신호를 ‘똑똑하게’ 처리하는 반도체를 설계하는 회사다. 움직이는 생체에서 나오는 신호를 악조건에서도 제대로 처리해야 하고, 초소형 최소 전력으로 설계하는 것이 관건이다. 8일 판교 본사 사무실에서 만난 왕성호 대표이사(57)는 “생체신호를 처리하는 반도체는 지금까지 글로벌 회사들이 내놓은 범용의 신호처리 칩을 사용해 왔다”며 “생체신호 처리에 특화된 반도체를 전문으로 설계하고, 센서 특성에 맞춰 칩을 최적화해 제작해주는 곳은 세계에서 우리가 유일하다”고 했다. 건강을 위해 자신의 몸을 모니터링하는 기기들이 최근 들어 늘어나고 있다. 심박수와 운동량 등을 측정하는 반지, 수면 관리를 위한 뇌파 측정기, 침대나 옷에 설치하는 심전도 측정 장치 등이 나오고 있다. 혈당 관리를 위한 연속혈당측정기는 다이어트나 건강관리용으로도 쓰인다. 팔뚝에 붙여 둔 센서를 통해 2주 동안 휴대전화로 자신의 혈당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당뇨나 당뇨 전 단계 사람들의 혈당 관리는 물론이고 건강에 해로운 식습관 개선을 원하는 일반인에게도 유용하다. 왕 대표는 “디지털 헬스 기기 개발 회사들은 생체신호를 감지하는 센서를 만든 뒤 우리가 만든 반도체와 융합해 완성도 높은 헬스 기기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움직임 많은 생체신호 처리 노하우 바이오 신호는 노이즈가 많고 불규칙하다. 왕 대표는 “생체가 움직이면 발생하는 신호의 강도가 급격히 변하기도 하고, 주변 전자기장의 간섭도 많이 받는다”며 “신호와 잡음을 구분하려면 바이오와 반도체 부문을 모두 통합해서 다룰 수 있는 전문성과 노하우가 필요하다”고 했다. 저전력으로 구동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도 필수적인 기술이다. 전지가 작아지면 헬스 기기의 사용감이 좋아지고,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으며 편의성이 좋아진다. 헬스 기기 개발 회사들은 자신들이 개발한 센서의 특성에 딱 맞춘 반도체를 공급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대신 일반 용도로 나온 범용 칩을 개조해서 써야 한다. 만약 생체 센서의 출력값이 범용 칩의 입력값 범위 밖에 있으면 센서와 반도체를 결합시키느라 애를 먹는다. 왕 대표는 “신호처리 반도체를 만드는 우리가 센서의 출력값에 맞춘 설계를 해주면 문제는 쉽게 풀린다”고 했다. 이어 그는 “어렵게 개발한 기기에 범용 칩을 사용하면 칩의 모델 번호 등으로 인해 그 기능이 쉽게 드러나기 때문에 기기 개발 회사가 차별화된 경쟁력을 유지하기 힘들 수 있다”며 “우리는 고객 맞춤형으로 칩을 제작해주기 때문에 기기 회사에 더 많은 이점을 제공한다”고 했다.●“초소형 머신러닝 수행 칩도 개발” 네메시스는 다양한 반도체 칩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먼저 전기화학 기반의 바이오 신호를 처리하는 칩이 있다. 몸속 체액과의 화학적 반응으로 생기는 전기신호를 감지한 센서의 신호를 넘겨받아 정확한 데이터로 변환해주는 제품이다. 연속혈당측정기나 뇌파측정기 등에 사용된다. 타액이나 소변 등을 검사하는 체외 진단 기기에도 활용할 수 있다. 네메시스는 2년여 전까지 연속 혈당 측정을 할 수 있는 센서까지 직접 개발했지만 지금은 센서 사업은 접고 반도체 설계 기술에만 집중하고 있다. 스마트반지나 스마트시계 등 여러 생체신호를 측정하는 기기에 쓰는 ‘멀티 바이탈 사인 모니터링용 신호처리 칩’도 만든다. 여러 신호를 하나의 칩에서 처리하려면 필요한 때에 특정 신호만 감지할 수 있도록 최적으로 설계하는 기술이 관건이다. 그래야 부피와 전력을 줄일 수 있다. 초소형(tiny) 머신러닝 기반의 바이오 신호처리 시스템온칩(SoC)도 개발했다. 프로세서와 메모리 등을 한 칩에 집적한 후 생체신호를 머신러닝을 기반으로 처리해 신호를 정확하게 구별하고 처리한다. 이런 칩들은 인체는 물론이고 동물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의 건강상태를 모니터링하는 기기가 늘고 있다. 가축으로 키우는 소의 경우 가임기간이 하루 정도여서 새끼를 낳게 하려면 배란 시기를 아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알아내기 위한 모니터링 기기에도 반도체 칩이 쓰인다.● 두 번째 창업 KAIST 공학박사 출신인 왕 대표는 회로설계 전문가다. 2000년대 초까지 SK하이닉스에서 근무했다. 근거리 무선 통신 기술의 미래를 보고 2003년 레이디오펄스를 창업했다. 직비(ZigBee)라는 근거리 무선 통신 표준을 활용해 여러 통신 칩과 기기를 만들었다. 이 회사는 2015년 나스닥 상장 기업에 팔았다. 주요 주주의 주식만 넘기는 방식이 아니라 회사 지분 100%를 매각하는 방식이어서 창업 멤버뿐만 아니라 주식을 갖고 있던 대부분의 직원에게 회사 매각 수익이 돌아갔다. 왕 대표는 매각 이후 2017년까지 첫 회사의 운영을 돕다가 2017년 퇴직하고 네메시스로 두 번째 창업을 했다. 네메시스에는 학계나 업계에서 경험을 쌓은 전문가가 많다. 최고기술책임자이자 공동창업자인 김근회 부사장은 연세대 공학박사 출신으로 레이디오펄스에서도 최고기술책임자를 맡았던 멤버다. 공동창업자이자 기술고문으로 활약 중인 KAIST 제민규 교수는 생체신호 처리 분야의 전문가다. 역시 공동창업자인 최현무 부사장은 삼성전자 출신으로 국내와 아시아 부문 세일즈를 책임지고 있다. 공동창업자인 길준호 상무는 네메시스 SoC연구소 소속이다. KAIST 공학박사 출신이다. 레이디오펄스도 공동으로 창업했다. 왕 대표는 “스타트업으로는 드물게 칩 설계와 생산, 판매에 경험이 많은 인력이 포진해 있다”며 “20년 이상 칩 양산 경력을 갖추고 레이디오펄스 시절에 3000만 개 이상의 칩을 불량 이슈 없이 삼성과 LG에 공급했다”고 했다.●“생체신호 처리 반도체 전문회사로 글로벌 진출” 네메시스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를 통해 올해 2종의 칩을 대량 생산할 계획이다. 4종의 주요 칩은 실제 반도체 칩으로 만들어 성능 테스트를 끝낸 상태다. 디지털 헬스 기기에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왕 대표는 “생체신호 처리 반도체는 그동안 판매량이 적었지만 연속혈당측정기처럼 2주에 한 개 사용하고 교체하는 기기들이 나오고 있어 앞으로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또 중요하게 보고 있는 것은 의료 체계의 변화 조짐이다. 의사의 진단과 처방, 복약으로 진행되던 일방적 방식에서 모니터링 기기의 발달로 진단과 처방, 복약 이후 모니터링 결과를 의사가 다시 참조하는 양방향으로 바뀌는 것이다. 모니터링 기기에 들어갈 반도체 칩의 수요도 함께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네메시스는 올해 1월 중소벤처기업부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개최한 ‘초격차 창업기업 투자설명회(IR)’에 참석해 글로벌 벤처캐피털들에 회사의 기술 현황과 전략을 알렸다. 네메시스는 글로벌 시장 개척에 전력을 다할 예정이다. 왕 대표는 “디지털 헬스 기기에 맞춤식 반도체를 제공하는 세계적인 기업이 되는 것이 네메시스의 비전”이라고 했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4-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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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신기술 사업화에 16.6조원 기술금융 공급”

    산업통상자원부가 혁신기술 보유 기업의 기술 사업화를 위해 올해 3조4100억 원 규모의 투자 및 융자금을 공급한다.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펀드 2조4000억 원, 산업기술혁신펀드 4000억 원(CVC 펀드와 1000억 원 중복), 투자연계형 연구개발(R&D) 1700억 원은 투자 형태로 공급하고, 융자형 R&D자금을 신설해 5400억 원을 지원한다. 산업기술혁신펀드 중 360억 원은 올해 신설 선정된 방산 분야에 투자된다. 정부는 기술금융으로 2028년까지 16조6000억 원을 공급할 계획이다. 산업부는 4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기술금융 투자확대 전략회의’를 개최하며 이 같은 내용의 ‘민간주도 기술금융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날 행사에는 방산업계와 외국 벤처캐피털, 국내 CVC 및 금융기관 등 다양한 민간 주체가 펀드 공동 출자자 자격으로 참석했다. 기술금융은 기술을 가진 기업에 투자를 하거나 기술을 담보로 대출을 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기술성 중심의 기존 R&D 지원을 보완하고, 긴 사업화 과정에서 매출이 본격적으로 발생하기 전 자금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죽음의 계곡’을 극복할 수 있게 돕는다. 산업부는 우선 민관 합동으로 기업형 CVC 펀드를 올해 2조4000억 원 규모로 조성해 혁신형 창업기업 등에 투자한다. 대·중견기업이 대주주인 CVC를 통해 대·중견기업의 사업 및 마케팅 역량이 혁신기업에 흡수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이다. 산업기술혁신펀드로 조성될 4000억 원은 첨단산업 육성(1640억 원)과 산업생태계 강화(2360억 원)로 나눠 공급된다. 육성 분야는 바이오(460억 원), 인공지능(AI) 및 로봇을 활용한 자율제조(460억 원), 무탄소 에너지(CFE·360억 원) 등이다. 올해는 특히 방산 분야를 처음으로 선정해 첨단민군협력 펀드(360억 원)라는 이름으로 투자한다. 산업생태계 강화를 위해 CVC 스케일업 분야에 1000억 원(CVC 펀드에 출자), 지역산업 활력에 1000억 원, 중견기업 혁신에 360억 원을 투자한다. 융자형 R&D 자금인 5400억 원은 초저금리(연 0.5∼1.84%)로 공급된다. 기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 중기부와 협업하여 기술보증 수수료를 0.5%포인트 내린 1.0%로 지원한다. 민간 벤처캐피털이 투자한 혁신 기업에 정부 R&D 자금을 지원하는 투자연계형 R&D는 올해 1700억 원 규모로 공급한다. 시장성이 좋은 기술을 발굴해 지원하는 전략의 일환이다. 이날 행사에서는 올해 신설된 융자형 R&D 사업을 취급하는 13개 은행이 참여하는 융자형 R&D 협약식, 포스코기술투자와 SGC파트너스·어센도벤처스(공동)가 운용사로 선정된 CVC 펀드 투자 협약식, 산업기술혁신펀드 조성 협약식 등 3개의 협약식이 이뤄졌다. 산업기술혁신펀드 운용사이자 공동 출자자 중 한 곳인 이스라엘 ‘아워크라우드(OurCrowd)’사가 이날 행사에 참석해 400억 원 이상의 해외자본을 한국 기술혁신펀드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서는 바이오 신호 처리 반도체 솔루션을 가진 네메시스 등 8개 기업의 투자설명회도 열렸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이날 “중소·중견기업이 기술개발 이후 상품화까지 겪게 되는 죽음의 계곡을 넘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CVC 펀드, 융자형 R&D, 투자연계형 R&D 등 기술금융의 유형과 공급 규모를 더 확대하겠다”고 밝혔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4-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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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 성장동력, AI 비롯한 지역 혁신 기술로 찾는다”

    광주의 성장 동력 모색을 위해 지역에 속한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 등이 모여 협력 방안을 논의한 ‘2024 광주특구 과학기술 사업화 폐어’가 최근 3일간의 일정을 끝내고 막을 내렸다. 이번 행사는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모색하는 포럼을 시작으로 해커톤 경진대회와 광주 특구 혁신성과 전시회, AI를 활용해 모빌리티와 광융합, 반도체, 바이오 산업의 혁신을 꾀하는 세미나, 특구의 신성장동력 사업 발굴을 위한 토론회 등으로 지난달 22∼24일 광주과학기술원에서 열렸다. 행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고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과 광주과학기술원이 공동으로 주관했다. 포럼에서는 박현용 덕성여대 교수가 ‘중소기업 연구개발(R&D) 글로벌 협력을 위한 국가 전략과 과제’, 배성훈 한국국토정보공사 책임연구원이 ‘기후변화와 식량안보 대응을 위한 혁신’ 등을 발표했다. 해커톤 경진대회는 대학생과 대학원생이 참여해 AI 기술을 활용해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해결책들을 제시해 겨루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광주과학기술원 학생들로 구성된 팀이 제시한 ‘그래픽 정보 점자 형태 변경 서비스’가 1등을 차지했다. 세미나는 광주 특구 주력 산업인 AI 기술을 역시 주력 산업인 모빌리티, 광융합 및 반도체, 바이오 기술 등과 융합해 지역 산업 발전과 확장을 꾀하자는 취지로 열렸다.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인 ‘오토노머스에이투지’가 ‘AI 기반 초연결 모빌리티 안전기술’에 대해 발표했다. 정상호 광주과학기술원 박사는 ‘슈퍼비전을 위한 겹눈모방 뉴모로픽 반도체’를 주제로 발표했다. 강병삼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은 “이번 행사는 AI 분야의 다양한 활용 및 지역 혁신 성과물을 확인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며 “광주 지역에서 기업이 실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혁신 주체 간 연계하는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광주특구 과학기술 사업화 페어는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혁신 주체 네트워크 사업’ 일환으로 진행됐다. 광주시 주력 산업은 광산업과 자동차, 가전, AI, 반도체 등으로 다변화하는 중인데, 지역의 기존 산업과 AI 기술을 융합해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해 마련된 사업이다. 재단은 혁신 주체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기술사업화 생태계를 조성하고 지역 과학기술 혁신에 힘을 싣는다는 계획이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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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층권까지 비행체 올려주는 이차전지 기술… 세계 최고 수준이죠”[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이차전지는 자동차, 중대형 드론, 로봇 등 다양한 곳에 쓰이고 있고, 앞으로 도심항공모빌리티(UAM)와 우주항공 등으로도 확대될 전망이다. 전지의 효율과 안정성을 높이는 기술은 점점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대전 유성구에 있는 유뱃(UBATT)은 이차전지의 핵심 부품인 전극을 균일하게 제조하는 기술로 전지의 효율을 높이는 원천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이다. 같은 전극재(활물질+도전재+바인더)를 사용하더라도 유뱃의 기술을 적용하면 전기 흐름이 훨씬 빨라지고, 전기 흐름이 양호한 양극을 두껍게 만들어 오래가는 배터리를 제조할 수 있다. 26일 대전 본사에서 만난 이창규 대표이사(52)는 “전극 제조 기술을 혁신해 기존 전극에 비해 전기 흐름을 2배 정도 빠르게 했다”며 “전기 흐름을 향상시키는 기술로 에너지 밀도를 높임으로써 부피와 무게는 작지만 출력과 용량이 상대적으로 큰 배터리를 제조하고 있다”고 했다. 작아도 성능이 좋은 배터리를 적용하기 가장 적합한 분야로 항공 모빌리티를 상정하고, 우선 상용 및 군용 드론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자동차용 배터리 시장은 향후 라이선스를 파는 방식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전극을 균일하게 제조하는 기술 유뱃은 대전 본사 1층에 배터리 제조 공장을 갖추고 있다. 자사가 보유한 기술로 양극과 음극을 생산해 적진을 탐색하거나 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군용 드론의 배터리를 만든다. 이차전지의 양극은 양극재를 알루미늄 박막에 코팅해 만들고, 음극은 음극재를 구리 박막에 코팅해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양극과 음극 사이에 분리막을 넣고 돌돌 말아서 전해액을 주입하면 원통형 이차전지가 되고, 판자 형태로 겹겹이 쌓아 전해액을 주입하면 파우치형 이차전지가 된다. 유뱃은 전극을 균일하게 제조하는 방식에 ‘균일 후막 전극(TEP·Tunable Electrode Platform) 기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양극 활물질은 리튬과 니켈, 망간, 코발트 등이 섞인 광물 가루다. 여기에 활물질들이 잘 결합할 수 있도록 바인더 성분을 넣고, 활물질까지 전자가 잘 이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도전재를 넣는다. 이 대표는 “독자 기술로 개발한 첨가제로 전극 구조를 제어(카본 도메인의 자기조립화)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기술”이라며 “일반적인 방식으로 만든 전극이 굴곡진 국도라면 우리가 만든 전극은 고속도로인 셈”이라고 했다. 유뱃은 TEP 관련 특허 12건을 보유하고 있다. 비밀유지 계약으로 구체적인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국내 및 글로벌 기업들과 기술검증(PoC) 및 공동 연구개발을 여러 건 진행 중이다.● 항공모빌리티에 ‘최적’… 확장성 넓어 유뱃의 기술을 활용하면 동일한 전극재를 사용하더라도 고성능을 낼 수 있다. 같은 전지 무게라면 출력과 용량을 높일 수 있고, 같은 출력과 용량이라면 무게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수색이나 구조, 탐지 임무를 하는 드론의 경우 이렇게 해서 늘린 비행시간은 특정 임무의 실패와 성공을 가르는 관건이 될 수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이 대표는 “수색이나 구조 등 안전이나 국방과 관련된 업무에 적용할 기술을 국내 기업인 우리가 보유하고 있다는 것에 적지 않은 자부심을 느낀다”며 “근래 방산용 배터리를 제조하던 업체들이 이스라엘과 러시아, 미국 기업에 인수합병돼 국내 기업이 거의 남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현재 유뱃은 리튬메탈전지 ‘스트라토스(STRATOS)’와 리튬이온전지 ‘트로포스(TROPOS)’의 개발 막바지에 있다. 스트라토스는 지구 대기 성층권(Stratosphere·지상 10∼50km 구간)의 영문명에서 따왔다. 전기추진 비행체가 성층권까지 도달하려면 우리나라의 경우 강한 편서풍대에 놓여 있어 450Wh/kg 이상의 에너지밀도가 요구된다. 기존 리튬이온전지 및 리튬메탈전지(최대 400Wh/kg)로는 한계가 있다. 유뱃은 TEP 기술로 초고에너지밀도(400∼600Wh/kg) 리튬메탈전지를 만들어 한계를 극복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에너지밀도를 가진 이 배터리는 올해 초 미국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서 선보여 해외 여러 기업으로부터 기술검증 제안을 받았다. 리튬이온전지인 트로포스의 이름은 성층권 아래인 대류권(지상 0∼10km 구간)의 영문명에서 나왔다. 유무인 항공기가 주로 운항되는 구간이다. 항공모빌리티 시장에 특화된 제품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유뱃의 기술은 여러 소재에 적용이 가능하다. 안정성은 높지만 용량이 낮은 리튬인산철(LFP) 양극에 적용해 기존 대비 10% 이상 성능을 향상했다. 실리콘이 포함된 음극에 적용할 경우 에너지 밀도를 kg당 250Wh로도 높일 수 있다. 이는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기존 삼원계(NCM이나 NCA) 배터리와 유사한 성능을 내도록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경영자와 기술자들의 만남 이 대표는 KAIST 화학공학 학사 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에서 테크노MBA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물산과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코리아, 포스코 등을 거쳐 창업을 두 차례 했다. 2016년 이상영 연세대 화학생명공학과 교수(56·당시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와 연이 닿아 공동으로 유뱃을 창업했다. 부사장을 맡고 있는 이 교수는 서울대 공업화학과 학사, KAIST 화학공학과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LG화학에서 배터리 연구개발을 12년 한 뒤 학계로 옮겼다. 최고운영책임자인 김창현 전무(51)는 KAIST에서 학사와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롯데케미칼에서 연구개발을 12년 한 뒤 배터리 기업에 근무하다가 2022년 합류했다. 유뱃의 기술진에는 이 교수의 제자들이 포진해 있다. 창업 멤버이자 최고기술책임자인 최근호 이사(36)는 UNIST를 최우수로 졸업했고 배터리 연구 경력 14년, 배터리 관련 특허를 25개 이상 보유하고 있다. 최 이사가 개발한 초박형 배터리 제조 기술이 창업 당시 핵심 기술이었고, 그 기술을 발전시켜 TEP 기술이 완성됐다. 창업 멤버인 김정환 연구소장(36) 역시 이 교수의 제자로 배터리 관련 특허를 10개 이상 보유한 전문가다. 유뱃은 올해 하반기부터 제품 양산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본사 인근에 연면적 650여 평의 건물을 확보해 생산시설을 확대하고 있다. 이 대표는 “확장 가능성이 넓은 TEP 기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수요에 맞춘 고성능 배터리를 고도화할 계획”이라며 “항공 모빌리티 분야에서 UAM에 쓰일 대용량 배터리는 물론 자동차용 초고에너지밀도 배터리 시장에도 진출할 것”이라고 했다. 대전=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4-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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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 마음 빼앗은 마케팅 문구는 AI 작품… 사진-영상도 곧 자동화”[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사람 마음을 끌어당기는 마케팅 문구를 자동으로 쓸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 스타트업 ‘아스타’의 목표다. 2022년 말 설립된 아스타는 이를 위해 ‘감성 있는’ 인공지능(AI)을 만들어 고도화하고 있다. 7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난 이재원 대표(28)는 “2022년 11월 (생성 AI 대화형 챗봇) 챗GPT가 공개되면서 AI를 이용한 서비스에 관심이 급증했다”며 “소상공인 마케팅을 돕는 AI 서비스를 준비하다가 창업하게 됐다”고 했다. 아스타는 감성에 호소하는 마케팅 문구에 집중하고 있다. ‘감성 AI’에 인간의 진짜 감성이 담겼다는 의미는 아니다. 인간의 감성에 따라 분류된 문구를 학습했다는 의미다. 챗GPT 등장 이후 생성형 AI가 만들 경제적 부가가치에 대한 기대도 커졌다. AI가 만드는 게 글이니, 글로써 제품이나 브랜드를 알리는 콘텐츠 마케팅 분야가 AI 활용처로 제격이다. 양질의 마케팅 콘텐츠를 만들 때 드는 돈과 시간을 줄일 수만 있어도 승산이 있다.● 감성 데이터 학습한 ‘아비카’ 챗GPT가 나오자 사람들은 흥분했다. 광고 문구를 100개씩 만들라고 해도 주저없이 내놓았다. 하지만 아쉬운 대목도 적지 않았다. 엉뚱한 문구를 만들어내거나 결과물이 너무 밋밋해서 사용자가 업무에 적용하기 힘들었다. 이 대표는 “당시 챗GPT가 학습한 자료는 1년 전 것들이어서 최신 마케팅 트렌드나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용어를 반영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고 했다. 콘텐츠 마케팅을 잘하려면 문화와 트렌드, 감성, 키워드, 신조어 등을 문구에 잘 반영해야 한다. 아스타는 광고 카피라이터를 비롯한 전문가들 손을 거쳐 유명 광고 문구 40만 개를 분류했다. 클릭을 유도해줄 수 있는 소비자 감정을 안정감, 고마움, 격려, 도전, 성취 같은 15가지로 분류했고, 이를 전달하는 문구 분위기(톤)는 ‘친근한’ ‘전문적인’ ‘대담한’ ‘유익한’ ‘재치 있는’ ‘설득력 있는’을 비롯해 9가지로 나눠 감성 AI 아비카를 학습시켰다. 관건은 얼마나 쓸모 있는 결과를 만들어내 인간 업무를 잘 돕느냐일 것이다. 같은 홍삼 제품을 팔더라도 구매 대상이 젊은 층이면 효심에 초점을 맞춰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마음’을 던지고, 중장년층이라면 활력과 도전을 강조한 ‘당신도 모르는 사이 몸속부터 건강해지는 기적의 비밀’ 같은 문구를 내놓는 식이다. 시장에서 나물 파는 가게 홍보 문구로는 ‘쓱∼ 지나면 맛볼 수 없는 봄의 맛’을 내놓기도 했다. 이 대표는 “아비카를 갤럭시 S24 출시 때 모 기업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마케팅을 진행했는데 투입한 광고비 대비 10배의 매출 효과를 봤다”고 했다. 통상 광고 프로젝트는 투입한 광고비 대비 두세 배 매출 증대 효과만 있어도 성과로 인정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갤럭시 S24의 성능과 특징을 넣어줬더니 아비카는 이런 광고 문구를 만들었다. ‘갤럭시 S24를 손안에, 세계를 내 손안에’였다. 마케팅 담당자가 문장 끝부분을 다듬기는 했다. 휴대전화에 내장된 실시간 통역 기능과 이미지에서 특정 부분을 지정하면 해당 부문만 검색하는 기능 등을 참고해 세상과의 대화가 손쉬워진 것을 표현한 듯했다.● 원고지 7장 분량 글도 매끄럽게 아비카를 기반으로 광고 문구를 만들어주는 카피클 서비스(copykle.ai)를 써봤다. 홈페이지에는 광고 문구, 블로그 글 쓰기, 인스타그램 문구 만들기, 동영상 15초 대본 만들기 같은 서비스가 있다. 블로글 글 쓰기 화면에서 블로그 이름과 키워드, 블로그 종류, 카테고리, 언어(한국어 영어), 톤 설정에 있어 블로그 본문에 포함돼야 하는 내용을 넣으니 원고지 7장 분량 글이 나왔다. 사용자가 무엇을 입력하느냐에 따라 결과물도 달라지겠지만 집에서 사용하는 강아지 탈취제 사용 후기를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 문법적으로 틀린 문장은 거의 없었고 글 전개도 자연스러워 블로그에 거의 그대로 옮길 수 있을 정도였다. 이 대표는 “국내 유명 광고기획사와 협업해 평가를 받았는데 89% 만족도를 보였고 블라인드 테스트에서는 사람이 작성한 글보다 아비카의 글이 더 많은 선택을 받았다”며 “사람이 쓴 것 같은 풍성한 표현이나 새로운 아이디어, 감성과 톤을 적절하게 반영하는 것 같다는 피드백을 받았다”고 했다. 대기업 실무자 반응 중에는 ‘기업은 저마다 감성과 보이스(소리)가 있는데 이를 아스타 (AI) 엔진이 잘 해결해주는 편이다’ ‘제품의 소구점을 감성과 분위기까지 반영해 살려줘서 생산성이 10배는 좋아진 것 같다’ 등도 있었다고 전했다. 광고기획사 HS애드와 소상공인 지원 기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등에서도 아비카를 활용했다.● 장교 복무하며 AI 공부 아스타의 감성 AI 아비카는 일종의 튜닝된 인공지능이다. 이 대표는 “한국어를 지원하는 맞춤형 거대언어모델(sLLM)을 기반으로 튜닝했다”고 했다. 운용하면서 생성된 문구와 시장 트렌드들을 다시 학습 데이터로 넣어 AI가 스스로 성능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기법도 적용 중이다. 이 대표는 서울과학기술대 기계시스템디자인공학과를 졸업했다. 육군에서 장교로 복무하며 독하게 주경야독했다. 창업을 염두에 두고 AI 기술 서적과 자기계발서를 400권이나 읽었다. 인사과장 보직을 맡아 병사들 병영 생활을 돌볼 때 감성 AI 기반 상담 챗봇을 만들어 활용했다. 병사들 진로 관련 교육을 하다가 창업 교육에도 관심을 가진 것이 계기가 돼 제대하고 SM창업영재스쿨을 만들어 운영했다. 교육생 경영 컨설팅까지 하다 보니 마케팅으로 연결됐다. 이 대표는 “마케팅이 중요한데도 소규모 회사나 가게가 이를 제대로 수행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알게 돼 아스타를 차리게 됐다”고 했다. 감성 AI 기반으로 콘텐츠 마케팅을 자동화하는 사업을 하겠다는 아이디어를 여러 곳에 얘기하고 다니던 과정에서 변돈우 최고기술책임자(CTO)와 연이 닿았다. 변 CTO는 엔씨소프트와 와이더플래닛, NHN 등에서 데이터와 광고 플랫폼 등을 다뤘다. 카피라이터들도 함께하고 있다. 유행어와 신조어가 포함된 새로운 데이터를 섬세하게 분류할 때 전문가 안목이 필요해서다. 아스타는 아비카 개발 과정에서 만들게 된 카피라이팅 알고리즘, 데이터 학습 및 반영 방식, AI 자가 성능 발전 방식 등의 특허를 출원해 두고 있다.● “이미지와 영상까지 자동화” 아스타는 이미지와 영상까지 결합해 마케팅 콘텐츠를 만들어주는 ‘아스타마이즈’도 올 상반기에 출시할 예정이다. 아스타마이즈에 제품 사진을 올린 뒤 필요한 배경을 얘기하면 AI가 해당 제품 사진을 활용해 적절한 배경을 만들어주는 식이다. ‘나무가 울창한 숲길에 놓인 탈취제’라고 하면 탈취제 사진을 활용해 배경까지 만든다. 여기에 AI가 생성한 문구를 얹어 콘텐츠를 완성한다. 동영상은 이미지를 기반으로 영상화한다. 이미지 한 장만으로 광고 영상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이 대표는 설명한다. 마케팅 텍스트부터 이미지와 영상, 마케팅 집행 결과와 관리까지 한 번에 하는 원스톱 콘텐츠 마케팅 플랫폼을 내놓는 것이다. 이 서비스는 구독 형태로 선보일 계획이다. 이 대표는 “여러 대기업과 소상공인, 유명 인플루언서들이 아스타마이즈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아스타는 카피클 서비스를 운영하며 1억 원이 좀 넘는 매출을 올렸다. 올해 아스타마이즈 운영이 시작되면 매출 50억 원을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대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릴 사진과 영상, 제품을 소개할 사람까지 모두 AI로 구현이 가능해지고 있다”며 “대기업은 물론 소상공인도 세련된 마케팅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4-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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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보다 전기 잘 통하는 구리 제작… “녹슬지도 않아 무궁무진 활용”[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부산 금정구 부산대 안에 있는 스타트업 CIT(정승 대표이사)는 구리 박막을 만든다. 자연 상태 구리를 물리적으로 가공하는 것이 아니라 단결정(單結晶·single crystal) 형태 구리로 만든 뒤 이를 이용해 박막을 만든다. 단결정 구리는 구리 원자들이 하나의 흐트러짐도 없이 정렬되도록 만든 ‘인공적인’ 구리다. 자연산 구리는 원자 배열 형태가 뒤죽박죽인 다결정(多結晶·polycrystal) 구리다. 원자들 연결이 끊긴 곳이 많고 비스듬히 연결된 곳도 많다. 이런 구조에서는 전기가 상대적으로 더디게 흐르지만 인류는 그런 구리에 익숙해 있다. 하지만 첨단 소재가 늘어나면서 단결정 구리가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정승 대표(46)는 “단결정 구리는 최고급 산업 재료이기도 한 금보다 전기 전도성이 40% 정도 좋고 녹이 슬지도 않는다”고 했다. CIT는 이런 단결정 구리를 수십∼수백 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두께 박막으로 만들며 이를 응용해 5세대(5G) 통신의 고주파(28GHz) 신호를 거의 손실 없이 전송될 수 있도록 해준다. CIT가 구리 박막을 절연체에 증착시켜 만든 연성동박적층필름(FCCL)은 고주파 통신 기기 주요 부품인 연성인쇄회로기판(FPCB)의 핵심 소재다. 정 대표는 “빠른 데이터 통신이 필요한 확장현실(XR)과 자율주행, 스마트 팩토리 시장을 보고 통신 기판용 필름 소재를 먼저 개발했다”며 “전기 전도성이 탁월하고 녹이 슬지 않는 구리를 활용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고 했다.●‘네이처’ 논문 게재 정세영 교수와 공동 창업CIT는 실제로 구리 원자 1개 두께(약 0.2nm)로도 박막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정세영 부산대 광메카트로닉스공학과 교수가 개발한 기술이다. 정 대표와 정 교수가 CIT를 공동 창업했다. 금속 결정을 30여 년간 연구한 정 교수는 단결정 구리 제조 기술과 이 단결정 구리를 이용해 단결정 박막을 제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2022년에는 평평한 단결정 구리 표면에는 산소가 결합하기 힘들어 녹이 슬지 않는 현상을 규명한 논문을 세계적인 과학 저널 ‘네이처’에 게재하기도 했다. 단결정 구리는 자연산 구리를 진공 상태에서 녹인 뒤 결정을 인공적으로 키워 만든다. 섭씨 1200∼1300도에서 0.1도 단위로 온도를 제어하는 기술은 만만치 않다. 결정이 성장하는 동안 결정을 키우는 축의 회전 속도나 방향 제어도 중요하다. 결정성장은 조그만 진동에도 큰 영향을 받기에 진동도 제대로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구리를 단결정 박막으로 만드는 기술은 원자 증착 결정성장(ASE·Atomic Sputtering Epitaxy) 기술로 불린다. 아르곤 가스를 플라스마 형태로 만든 고압실에서 단결정 구리를 원자 단위로 분리해 원하는 절연체 표면에 고르게 입히는 기술이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뒤쪽이 훤히 보일 정도로 얇게 박막을 만들 수 있다. 그 표면은 원자 1개 두께 정도 편차만 날 정도로 ‘완벽하게’ 편평하다. CIT 측은 향후 10∼20년 내에는 이런 기술을 구현하는 곳이 없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정 교수는 부산대에서 물리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고 독일 쾰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선임연구원을 지내고 1991년부터 부산대에 재직하고 있다. 여러 단결정 금속을 연구자에게 제공하는 단결정은행연구소장도 맡고 있다. 오디오 스피커에서 잡음을 없애주는, 단결정 구리로 만든 오디오 라인 제조 회사를 차린 경력도 있다. 정 대표는 러시아 모스크바 금속합금대에서 금속 전공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실트론과 LS전선 등에서 연구원을 지냈다. 기업에 있을 때 정 교수와 인연이 닿아 구리 박막 제조를 의뢰한 적이 있다. 그걸 해내는 정 교수의 실력에 탄복했다. 그리고 평소 교류가 있던 정 교수 연구실을 방문했다가 정 대표의 다양한 사업 경험을 아는 정 교수 제안으로 창업하게 됐다.●“고주파 통신 소재로 5G 이후도 대비”CIT가 노리는 시장은 5G 통신 기기에 쓰이는 FCCL이다. 구리 박막이 절연체에 붙어 있는 필름이다. 전자부품 회사들은 이 필름을 가져다가 그 위에 회로도를 그린다. 고주파를 신호 손실이나 속도 저하 없이 전송하려면 절연체도 중요하다. 폴리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PTFE)이 그런 절연체로 주목을 받아 왔다. 흔히 테프론이라고 부르며 프라이팬 코팅에도 쓰이는 이 소재는 다른 물질과 접착이 힘든 게 문제였다. 다른 기업이나 연구소에서는 구리 박막을 PTFE와 붙이기 위해 접착제 등을 만들어 봤다. 하지만 접착제 때문에 신호 손실이 커지고 속도가 저하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CIT의 ASE 기술을 이용하면 PTFE 소재에 아무런 접착체 없이 증착시킬 수 있다. 정 대표는 “구리 박막의 균일한 분포로 생기는 자연 흡착력이 PTFE 소재에도 그대로 작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상용화된 FCCL 중 가장 높은 효율을 내는 일본 기업 제품(리퀴드 크리스털 폴리머)보다 더 신호를 잘 보내는 자체 테스트 결과를 얻었다”며 “5G나 6G는 물론 그 이후 나오는 고주파 대역 통신 기술까지 대응할 수 있다”고 했다. 국내에서 5G 통신 장비 구축이 더딘 요인 중에 이러한 원천 소재 기술 부족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CIT는 올해 안으로 FCCL 양산 설비를 구축할 계획이다. 필름 두께는 후처리 공정을 고려해 300nm 수준으로 제작할 계획이다. CIT는 웨어러블 전자 기기에 다양하게 쓰일 수 있는 신축성 기판 필름 시제품도 만들어 뒀다. 정 대표는 “구리 박막을 신축성 있는 적절한 소재에 결합시킬 수 있는 ASE 기술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기판 소재를 개발할 수 있다”고 했다. 박막 뒤쪽이 훤히 보일 정도 수준으로 구리 박막을 만들 수 있기에 최근 소개된 투명 디스플레이에 적용할 수 있는 박막 필름도 개발해 뒀다. 정 대표는 “올 2월 미국 하버드 메디컬스쿨과 의료용 센서를 공동 연구하기로 협약을 맺었다”며 “어떤 소재에도 붙일 수 있고 전기 전도성이 탁월한 구리 박막 기술이 더 다양한 곳에 쓰일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했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4-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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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기업은 혁신 수혈받아야… 유통-화학 연관 분야에 집중 투자”[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산업통상자원부는 작년 7월 국내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 42개사를 묶은 ‘CVC 얼라이언스’를 출범시켰다. 내년까지 총 8조 원의 CVC 펀드를 조성할 계획도 있다. 대기업 위주로 형성된 주력 산업과 스타트업의 신산업을 제대로 연결시켜야 세계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어서다. 스타트업은 투자금은 물론이고 기술 검증과 시장 개척에서 대기업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대기업은 스타트업의 ‘혁신’을 수혈받을 수 있다. 전체 스타트업 투자액 중 CVC가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이 미국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스타트업들의 자금 조달이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CVC 대표들을 만나 투자 방향과 계획 등을 들어 본다. 롯데벤처스는 모기업인 롯데그룹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동남아 국가 중에서도 빠른 성장이 기대되는 베트남에 2021년 지사를 설립했다. 베트남 정부의 기업 등록발급 승인을 받은 첫 외국계 벤처투자법인이다. 그룹의 유망 사업을 발굴해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식품과 유통, 화학, 모빌리티 등 그룹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스타트업들을 눈여겨보고 있다. 전영민 대표이사(57)를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책들로 둘러싸인 집무실에서 만났다. 롯데벤처스는 2016년 설립됐고, 전 대표는 2020년 대표이사에 취임했다.―지난달 롯데그룹 전체 사업 방향을 논의하는 회의(VCM)가 열렸다. 롯데벤처스는 올해 뭘 염두에 두고 투자를 하나. “우리 그룹의 비즈니스를 환골탈태해 줄 그런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데 더 집중한다. 과감하게 실험적 도전을 하는 스타트업을 눈여겨볼 것이다. 우리가 영위하고 있는 산업에서 혁신을 일으키는 이들에게 투자하고, 그들이 세운 비즈니스 모델을 검증할 것이다. 성장 과정에서 필요한 인맥이나 전문성, 경험, 영업망과 같은 기반 인프라를 더 열심히 제공할 것이다. 혁신을 일으킬 것 같은 스타트업에는 더 많은 투자를 해서 성장 속도를 높이는 역할을 할 것이다.”―스타트업이 그룹에 혁신을 불러온다고 믿나. “에디슨이 발명한 것 중에 가장 위대한 것은 제너럴일렉트릭(GE)이 아니라 엔지니어들을 고용해서 사내에 만든 ‘에디슨 연구소’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발명 프로세스를 도입한 거다. 그 이후에 대기업들이 사내 연구소를 속속 설치했다. 지금은 CVC가 그런 역할을 한다. 미국이 먼저 시작했다. 기업이 부속 CVC를 만들고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혁신을 적극적으로 구매하는 것이다. CVC는 초기 투자를 거쳐 성공 가능성이 확인되면 나머지 지분에 대한 정당한 가치를 지불하고 인수합병(M&A)을 해서 같은 식구로 만든다. 미국에서는 창업자들의 출구(엑시트) 전략에서 대기업에 매각하는 방식이 매우 활성화돼 있다. 앞으로 한국도 그렇게 갈 것이다. 이게 미래형 혁신과 신규 사업의 정답이라고 생각한다.”―유망할 것으로 보는 분야는 어디인가. “인터넷이라는 기반 기술이 나올 때 창업 붐이 일었다. 스마트폰이 나올 때도 그랬다. 지금은 인공지능(AI)이 그런 기술이고, 크리스퍼 카스9과 같은 유전자 가위가 그렇다.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에 기반한 친환경 발전과 배터리, 우주산업, 드론에 기반한 항공산업 기술도 그렇다. 이런 게 모두 한꺼번에 연구실에서 산업으로 터져 나오는 시대다. 무궁무진한 기회가 열리고 있다고 본다. 동갑내기인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가 컴퓨터 기술이 나오던 시점에 창업한 것과 같이 요즘 청년들에게 유사한 기회가 주어진 거라 생각한다. 새 기반 기술을 활용해 기존 비즈니스 모델의 틀을 바꾸는 식품, 유통, 콘텐츠 서비스, 호텔, 석유화학과 소재 관련 스타트업을 눈을 더 크게 뜨고 찾고 있다. 가장 먼저는 AI일 것 같다. 초기인 지금은 오픈AI나 구글같이 인공지능을 만드는 기업이 주목받지만 진짜는 AI의 응용에 있다고 본다. 스마트폰을 만드는 회사보다 그걸 응용해서 비즈니스에 파괴적 혁신을 일으킨 창업자가 성공했다. 스마트폰은 애플이나 삼성전자가 만들지만 토스, 쿠팡, 배달의민족 같은 스타트업이 크게 성공했다.”―스타트업 업계가 투자의 혹한기를 맞아 위축됐다. 대처 방안은 없나.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도는 ‘투자’와 ‘기반 기술의 혁신 강도’라는 두 축에 의해서 결정되는데 한 축의 힘이 빠져 있는 셈이다. 빠른 금리 인상은 늘 약한 고리를 건드린다. 근본적으로는 미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투자금이 마른 때에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데, 한국 정부는 그 예산을 줄였다. 아쉽다. 중장기적으로 대기업, 스타트업, 정부, 대학이 긴밀하게 협력해 총력전을 벌이는 체제가 필요하다. 세상을 바꾸는 스타트업을 얼마나 많이 배출하는가가 국가의 경쟁력과 미래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할 수만 있다면 낮은 밸류로 지금 투자를 받는 것보다는 비용을 최대한 줄여 생존 기간을 늘리는 방법을 먼저 시도하라고 권하고 싶다.”―지난해 대통령 경제사절단 내 벤처캐피털로서는 유일하게 베트남을 방문하는 등 동남아 진출이 활발한 것 같다. “독자적인 스타트업 생태계로 번영하기에는 한국 시장이 작다. 스타트업 생태계는 미국, 중국, 이스라엘, 싱가포르에서 활성화돼 있다. 미국과 중국은 시장 자체가 충분하고, 이스라엘과 싱가포르에서는 아예 외국 시장을 보고 시작한다. 성공에는 절대적으로 시장 규모가 필요하다. 그래서 롯데벤처스가 연결이 가능한 시장에 우리 스타트업들이 쉽게 진출할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치관이나 생활습관이 비슷한 베트남과 일본이 우선 고려하는 시장이다. 베트남 정부에서 최초로 외국계 벤처캐피털 면허 1호를 롯데벤처스에 주었다. 베트남 정부도 이런 걸 해본 적이 없어서 과정이 1년 넘게 걸렸다. 하노이에서 지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번에 베트남 시장에 롯데벤처스가 투자펀드를 만들었는데 그것도 베트남 정부가 해본 적이 없어서 1년 정도 걸리고 있다. 우리가 베트남에서 외국계 벤처캐피털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 유망한 한국 스타트업들의 진출을 적극적으로 도울 예정이다.”―인사 전문가로서 4년 동안 롯데벤처스를 이끌며 창업자들을 만나 보고 느낀 점은…. “혁신적인 창업가들과 함께 어울리니까 20년은 젊어진 느낌이다. 많이 배우고 있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우리 미래가 밝다는 희망을 느낀다. 3년 전 미국의 창업자 270만 명을 조사한 논문이 있다. 46세에 창업한 사람의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창업 성공에 영향을 미치는 독립변수 1위는 ‘좋은 기업에 취업을 해서 많은 경험을 했는가’라는 것이었다. 뜻이 맞는 몇몇이 회사를 시작할 때는 모르지만 회사가 성장하는 동안 수많은 문제들을 겪게 된다. 그 문제 중에는 아이디어나 천재성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게 있다. 경험이 해결해야 할 대목이다. CVC는 자금 투자와 인프라 제공 외의 값진 것을 제공한다. 그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경험이다.”전영민 대표는… △1967년 출생△고려대 철학 학사, 경영학 석사△경희대 경영학 박사△1992년 롯데그룹 본부 인사팀 입사△2013년 롯데인재개발원 인재경영연구소장△2019년 롯데인재개발원장△2020년 롯데벤처스 대표이사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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