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에서는 술이 유명하다. 도수가 높은 안동소주다. 그런가하면 고택에서는 어르신들이 지금도 최고급 품질의 안동포를 짜고 있다. 1년에도 수차례 제사를 지내고, 손님을 맞이해 온 선비들의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 전통이 낳은 안동의 독특한 문화다. 코레일관광개발이 농림축산식품부, 안동시, 한식진흥원과 함께 기획한 ‘K-미식 전통주 벨트 팝업열차’를 타고 안동의 미식을 체험했다. ● 조선판 ‘사랑과 영혼’
경북 안동의 월영교 야경. 보름달이 떠 있는 날에는 더욱 황홀한 풍경이 펼쳐진다.
경북 안동에서 MZ세대들이 즐겨 찾는 핫플레이스는 월영교다. 길이 387m의 월영교는 국내에서 가장 긴 목책교다. 보름달이 휘영청 뜬 날 찾아가니 더욱 감동적이다. 천연색 조명으로 빛나는 분수가 곡사포처럼 쏘아지는 호수 위로 초승달 모양 문보트(Moon Boat)가 떠다닌다.
안내문을 읽어보니 월영교는 미투리를 형상화한 모습이라고 한다. 미투리가 무엇일까? 볏짚으로 만든 짚신처럼 생겼는데, 좀 더 질겨 품질 좋은 신이다. 대마 껍질로 만든 삼(麻)줄로 짰다.
안동 택지개발지구의 한 무덤에서 발견된 16세기 원이 엄마가 세상을 떠난 남편에게 쓴 편지.1998년 안동 택지개발지구에서 고성 이 씨 이응태(1556∼1586)의 무덤이 발견됐다. 31세 젊은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난 고인의 시신 위에는 한글로 쓴 편지와 미투리가 놓여 있었다. 세상을 떠난 남편을 위해 아내가 넣어 준 마지막 선물이었다.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두 사람이 머리 희어지도록 같이 살다가 죽자’고 하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찾아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 주세요.”
가로 58.5cm, 세로 34cm 종이에는 빽빽하게 한글이 쓰여져 있었다. 사랑하는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는 아내 ‘원이 엄마’의 편지였다.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했을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라는 구절은 조선 시대 부부 사랑이 요즘 MZ세대와 다르지 않다는 점을 보여 준다.
미투리는 삼으로 만들기 때문에 황토색을 띠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미투리는 검은 실처럼 보이는 것이 엉켜져 있었다. DNA를 검사한 결과 삼과 머리카락을 엮어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 아내가 ‘하늘나라에 가서라도 이 신을 신고 내게 돌아와 달라’는 염원을 담아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미투리를 삼은 것이다.
이튿날. 경북 안동시 임하면 금소마을의 고택 ‘금곡재(金谷齋)’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청마루에 하얀 한복에 앞치마를 두른 할머니 세 분이 앉아 있었다. 할머니들은 대마 속껍질을 가늘게 쪼개 삼실을 꼬아내며 ‘베틀가’를 불렀다.
베틀 위에서 안동포를 짜고 있는 금곡마을 어르신.“베틀 놓세 베틀 놓세 옥난간에 베틀 놓세∼ 옆집이야 김 선비야 뒷집이야 이 선비야. 다른 선비는 다 오는데 우리 선비는 왜 안 오노. 오기사야 온다마는 칠성판에 실려 온다. 아이고 답답 내 일이야…”
MBC 라디오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에 나오는 할머니들처럼 나지막한 목소리에 반복되는 가락과 리듬. 구성진 노동요를 듣다가 500년 전 황망하게 죽은 남편에게 편지를 썼던 원이 엄마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그만 눈물이 또로록 떨어졌다.
과거를 보러간 남편. 앞집의 김 선비도, 뒷집의 이 선비도 돌아오는데, 우리 집 남편은 왜 안 돌아오는 것일까. 결국 남편은 칠성판(관 바닥에 까는 널조각)에 실려 오고야 말았다.
금소마을은 고택이 즐비한 골목길 사이로 작은 시냇물이 흐르는 예쁜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는 ‘안동포 짜기 마을’이란 간판이 서 있다. 한때는 이 마을에서 안동포 짜는 사람이 800명을 넘었다고 한다. 지금도 나이 든 주민 40여 명이 삼베 짜는 일을 하고 있다.
삼베 원료는 대마다. 그래서 마을 곳곳에 있는 대마밭에는 ‘경찰이 폐쇄회로(CC)TV로 감시 중’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환각성분이 들어 있는 대마 잎을 따 갈 경우 적발된다는 경고문이다. 안동포전수관 앞마당 빨랫줄에 갈색 삼줄이 길게 늘어져 마르고 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긴 머리카락처럼 바람에 흩날리는 갈색 삼줄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유교식 봉제사(奉祭祀) 전통을 잘 지켰던 안동 선비들은 부모가 돌아가실 경우 삼베옷을 입고 삼년상을 치렀다. 3년 동안 입어도 잘 해지지 않는 안동포는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대마민국’이란 별칭으로 불리는 금소마을은 대마를 테마로 한 다양한 농촌 체험을 할 수 있다. 농협 창고를 개조한 카페에서는 ‘대마씨(햄프씨드) 차’와 목련차를 마실 수 있다. 볶은 대마씨앗을 우려낸 차는 구수한 숭늉이나 현미차 맛이 난다.
대마의 환각성분은 대마 잎과 꽃에 고농도로 존재하기 때문에 환각성분이 없는 씨앗을 볶아서 만든 차는 영양성분이 많은 슈퍼푸드로 알려져 있다.
금소마을에서는 대마밭에서의 명상, 대마 뿌리를 넣은 닭백숙 식사, 대마 줄기로 만든 소원등(燈) 띄우기를 비롯해 대마를 테마로 한 여러 체험도 할 수 있다. ● 안동소주를 찾아서
“이 투명한 술을 눈으로 먼저 음미한 뒤, 흔들어서 향을 맡아 봅시다. 그리고 입술을 한번 적셔 보세요. 달짝지근함은 쌀의 단맛이예요. 술 한 모금을 3초 동안 천천히 삼키면서 코로 숨을 내쉬어 보세요. 뜨듯한 온기가 착 내려가면서 코로 향이 싹 나오죠?” (명인안동소주 박춘우 본부장)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6호 박재서 명인의 ‘명인 안동소주’에는 가문의 500년 술 빚는 전통을 보여 주는 안동소주역사관이 있다. 반남 박 씨 25대손 박재서 명인의 정통성을 그대로 계승해 안동소주를 빚는 공간이다.
소줏고리에서 증류돼 나온 78도짜리 안동소주 원액을 맛보는 체험객.체험장에서는 21도, 35도, 45도 소주를 맛볼 수 있다. 막 증류돼 흘러나오는 78도짜리 소주 원액을 잔에 받아서 마셔 볼 수도 있다. 살짝 탄 누룽지 같은 쌀의 향이 남아 있는 78도짜리 소주는 높은 도수에도 ‘발렌타인 30년’ ‘로열살루트’ 부럽지 않을 정도로 목 넘김이 부드러웠다.
그런데 목을 지나 몸속으로 들어간 소주가 식도와 위를 지나 장 속으로 흐르며 뱃속이 뜨듯해진다. 그래서 안동소주를 ‘내장 확인주’라고 부르는가 보다.
‘안동소주 하이볼’도 만들어 본다. 얼음을 넣은 잔에 45도 안동소주와 탄산수, 레몬 슬라이스를 섞고 블루 퀴라소 시럽을 더하면 푸른색 하이볼이 완성된다. 안동소주 하이볼은 위스키 하이볼보다 깔끔한 맛으로, 몰디브에서 마시는 모히또 한잔처럼 청량했다. 명인의 손에서 탄생한 안동소주 한잔에는 500년의 세월이 오롯이 담겨 있지만, 마시는 방법은 현대인 입맛에 맞게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었다.
낙동강 상류 안동 맹개마을로 들어가는 징검다리.농암 이현보 종택 근처에 있는 맹개마을에서는 직접 재배한 밀로 진맥소주를 빚는 귀농 부부가 산다.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선 학소대 앞을 휘돌아나가는 낙동강 상류를 트랙터를 타거나 징검다리를 건너야 도착할 수 있는 그림 같은 마을이다.
부부는 이곳 9만9000㎡(3만 평) 땅에 밀을 심었다. 그리고 조선시대 음식 조리책 수운잡방(需雲雜方·보물 제2134호)에서 밀로 빚는 ‘진맥(眞麥)소주’ 제조법을 찾아 재현해 냈다.
“안동소주는 몽골 지배의 산물입니다. 고려 왕실은 태자를 볼모로 몽골로 보내 몽골 공주와 결혼시켜 부마국이 되지요. 이때 들여온 것이 몽골 증류주였죠. 안동은 고려말 충렬왕, 공민왕 때 2번에 걸쳐 임시 수도가 됐기 때문에 소주 문화가 자리잡게 됩니다.”
진맥소주를 만드는 맹개마을 박성호 이사는 책 ‘안동소주’를 썼다. 박 이사는 “본래 페르시아를 비롯한 중동 지역 연금술사가 발명한 증류주가 몽골 제국의 서방 원정 과정에서 전파돼 고려까지 전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몽골이 일본 정벌의 전초기지로 탐라총관부를 둔 제주에서도 ‘고소리술’이라는 증류주 문화가 발달한 것처럼, 고려 임시 수도 역할을 한 안동에서도 소주 문화가 정착하게 됐다는 얘기다.
● 안동찜닭 골목
안동 구시장에 가면 안동찜닭 원조 맛을 그대로 즐길 수 있는 ‘안동찜닭 골목’이 있다. 골목을 걷다 보면 ‘찜닭’ 간판을 내건 30여 가게들이 양쪽으로 이어진다. 집집마다 외부에 화로를 내놓고 섭씨 400도의 강한 불에서 닭을 졸여 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안동찜닭은 안동 반가(班家)의 접대 음식인 ‘닭찜’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안동 장 씨(장계향)가 쓴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조리서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에는 어린 닭을 이용한 닭찜 조리법이 자세하게 나온다. 안동 전통 닭찜은 비교적 맑은 간장 국물로 담백하게 조리했다. 그런데 현대적인 맛과 비주얼의 안동찜닭은 1980년대 후반 안동 구시장 닭 골목에서 탄생했다. 구시장 상인들은 서양식 프라이드 치킨에 맞서기 위해 닭조림(닭찜)에 굵게 썬 감자와 당근, 당면을 넣고 간장소스로 맛을 낸 요리를 개발했다. 좀 더 맵고, 달고, 양도 풍부한 안동찜닭이 현대 안동의 향토음식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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