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사랑을 기록할 수 있을까?[허명현의 클래식이 뭐라고]

  • 동아일보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음악이 사랑을 기록할 수 있을까. 사실 음악은 문자 이전의 기록이었다. 글이 없던 시절, 인간은 소리로 감정을 표현했다. 북을 두드리고 노래를 부르며 공동체의 기억을 남겼다. 기록이라는 말은 적는 행위만을 뜻하지 않는다. 감정을 남기려는 시도 역시 기록이다. 사랑은 그 가운데 가장 보편적이고 오래된 주제였다. 누군가를 향한 마음, 헤어진 이를 향한 그리움, 공동체 안에서 나누는 애정은 소리로 표현됐다. 말로 적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음악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흥미로운 점은 음악이 사랑을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명은 언어의 역할이다. 언어는 이유를 말하고, 상황을 정리하며, 감정을 정의하려 한다. 그러나 음악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대신 감정을 남긴다. 멜로디의 흐름과 화음의 변화, 느린 템포와 점점 고조되는 선율은 사랑의 분위기를 기록한다. 구체적인 사건을 말하지 않아도, 누가 누구를 사랑했는지 밝히지 않아도 우리는 어떤 기분을 느낀다. 음악은 그렇게 사랑의 흔적을 우리에게 전한다.

클래식 음악은 사랑을 기록한 대표적인 사례다.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1811∼1886)의 작품을 떠올려 보자. 그의 피아노 음악은 화려한 기교로 유명하지만, 그 안에는 감정이 숨어 있다. 특히 ‘리베스트라움(Liebestr¨aume)’은 사랑을 꿈꾸듯 표현한 곡이다. 제목 자체가 ‘사랑의 꿈’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음악은 구체적인 이야기를 말하지 않는다. 대신 꿈처럼 흐르는 선율로 감정을 전달한다. 듣는 사람은 각자의 경험을 음악에 겹쳐 놓는다. 누군가는 설렘을, 누군가는 그리움을 떠올린다. 그것이 음악이 사랑을 기록하는 방법이다.

사랑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험이다. 물론 그 모호함 속에서도 우리는 시작과 끝을 날짜로 적을 수는 있다. 언제 만났고 언제 헤어졌는지를 기록하는 일은 가능하다. 그러나 그 날짜들이 감정의 결을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첫 만남에서 느꼈던 설렘, 신뢰가 쌓이며 생긴 안정감, 이별 뒤에 남은 여운은 시간표처럼 정리되지 않는다. 글로 적을 수는 있어도 감정 자체를 그대로 옮기기는 어렵다. 그래서 인간은 음악을 사용했다. 말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을 소리로 남기려 한 것이다. 언어 너머의 기록이었다.

음악은 언어가 규정하지 못하는 감정을 붙잡는다. 언어는 의미를 명확히 하지만, 감정을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랑을 글로 적을 수는 있어도 그 감정을 완벽히 옮길 수는 없다. 여기서 음악의 특별함이 드러난다. 언어는 설명하고, 음악은 환기한다. 설명은 이해를 목표로 하지만, 환기는 경험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음악은 듣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감정의 폭이 훨씬 넓다. 어떤 이는 위로를 받고, 어떤 이는 추억을 떠올린다. 음악은 정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모든 것을 열어 두고 해석을 허락한다. 그래서 음악은 개인적인 경험이면서도 공유 가능한 기록이 된다.

과거의 음악을 들을 때도 우리는 그 시대의 사랑을 나름의 방법으로 추측한다. ‘리베스트라움’을 들으며 19세기의 사람들이 무엇을 느꼈을지 상상한다. 그 시대의 사랑이 지금과 완전히 같지는 않겠지만, 감정의 본질은 같기 때문이다. 사랑은 시대를 넘어 인간에게 중요한 경험이었다. 설렘과 아픔, 그리움은 시대가 달라도 본질은 비슷하다. 음악은 그 본질을 저장했다가 다시 보여준다. 우리는 음악을 통해 과거를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해도 감정을 상상할 수 있다. ‘리베스트라움’이 작곡된 지 150년이 더 지났는데도 말이다.

미래의 인류도 우리의 음악을 들으며 같은 상상을 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만드는 음악은 시간이 흐른 뒤 우리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흔적이 된다. 그들은 우리의 시간을 직접 살지 않았지만, 음악을 통해 그때의 감정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 어떤 표정이었는지, 사람들이 무엇에 설레고 무엇에 아파했는지 상상하게 된다. 언어는 시대가 바뀌면 뜻이 흐려질 수 있지만, 음악은 감정을 남긴다. 감정은 인간이라는 공통된 경험 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와 ‘음악은 사랑을 기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이다. 그리고 이 기록은 단지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시간이 더 흐르고 세대가 바뀌어도, 우리의 음악은 여전히 누군가의 귀에 닿을 것이다. 음악이 시대를 건너 감정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 서로 다른 시간을 사는 사람들을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연결한다. 그렇게 음악은 시간을 넘어 감정을 전하는 매체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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