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의 인생홈런]금메달 감독→‘딸기 농부’ 김형일 “아기처럼 키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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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농부’ 김형일 전 한국 사이클 대표팀 감독이 빨갛게 익은 딸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딸기 농부’ 김형일 전 한국 사이클 대표팀 감독이 빨갛게 익은 딸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이헌재 스포츠부장
이헌재 스포츠부장
지난해 12월 1일. 거구의 중년 남성은 양손에 빨간 딸기를 들고 펑펑 눈물을 쏟았다. 그는 1년여의 노력 끝에 처음으로 딸기를 수확했다.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양쪽 뺨으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김형일 전 대구시청 사이클 감독(48)은 평생 자전거와 함께 산 ‘자전거인’이다. 자전거가 좋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안장에 올랐다. 서울체중·고와 한국체육대를 나와 2002년에는 부산 아시안게임에도 출전했다. 아쉽게 4위로 메달을 따진 못했지만 어엿한 국가대표 선수였다. 이후 경륜으로 전향한 뒤에도 꽤 이름을 날렸다.

지도자가 되어선 더 성공했다. 2013년 대구시청 감독을 맡아 수많은 제자를 길렀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는 여자 사이클 국가대표 감독으로도 활동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그가 이끈 여자 대표팀은 역대 한국 사이클 최고 성적인 금메달 5개와 동메달 1개를 수확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소강체육대상 지도자상을 받았고, 2020년에는 체육훈장 맹호장까지 수상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의 마음에는 자연과 흙에 대한 갈망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꽂힌 게 바로 딸기였다. 김형일은 “농사를 지으려고 마음먹은 뒤 딸기를 생각하게 됐다. 딸기는 싫어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과일이지 않나”라며 “공부를 하다 보니 스마트팜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딸기 업체도 알게 됐다. 나도 그렇게 해보자고 결심했다”고 했다.

그는 2024년 12월 31일자로 대구시청 감독직을 내려놨다. 그리고 이듬해 1월 17일 농업회사법인 흰돌팜을 설립했다. 몇해 전부터 틈틈이 익혀 온 지식을 이용하고, 외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경기 여주에 딸기 스마트팜을 세웠다.

딸기는 겨울 작물이다. 대개 9월에 심기 시작해 12월부터 수확한다. 그는 ‘사계절 딸기’에 도전했다. 더 일찍 심어서 더 늦게까지 수확하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농사라는 게 그리 만만한 게 아니었다. 그는 두 차례나 애지중지 키우던 딸기밭을 갈아엎어야 했다.

멋모르고 시도한 게 패인이었다. 9월에 다시 정식으로 3만 주를 심었다. 그는 “마치 아기 3만 명을 키우는 심정이었다. 매일 밤 농장에 와 ‘제발 잘 자라 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라며 “감독을 할 때는 더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선수를 몰아세울 수 있다. 하지만 딸기를 키울 때는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첫 딸기를 수확한 이후부터는 정상 가도에 들어섰다. 첫 달에 700kg을 땄고, 1월에는 1000kg을 넘겼다. 모양이 예쁘고, 맛도 좋은 흰돌팜 딸기는 인천의 한 5성급 호텔에 납품도 한다. 대부분의 판매는 온라인으로 이뤄진다. 김형일은 “생일을 맞은 사람에게 온라인으로 커피나 케이크를 선물하는 것처럼 프리미엄 딸기를 선물하는 날이 올 때까지 열심히 할 것”이라고 했다.

딸기 농부로 이제 첫발을 뗀 그이지만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제2호 농장, 제3호 농장으로 규모를 키우고 딸기 전문 카페까지 차리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의 고향은 여전히 자전거다. 그는 “딸기로 성공한 뒤 언젠가는 다시 사이클로 돌아갈 것이다. 감독을 하는 동안 재정 부족으로 힘들 때가 적지 않았다”라며 “돈을 많이 벌어서 자전거 선수나 팀을 후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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