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신바람 야구 주역 서용빈은 현재 LG 전력 강화 코디네이터 겸 총괄로 일하고 있다. 1994년 선수로 우승한 그는 지난해 31년 만에 LG 소속으로 우승 맛을 봤다. 이헌재 기자
사람에게 있어 인생의 황금기는 언제일까. 많은 사람들이 젊은 시절을 가장 좋았던 때로 생각한다.
1990년대 LG 트윈스의 신바람 야구의 주역이었던 서용빈(55)도 그랬다. 단국대를 졸업하고 LG에 입단한 1994년 그는 신인으로 인생의 정점에 섰다. 당시 MBC 청룡을 이어받아 신생구단에 가깝던 LG는 그해 서용빈과 김재현, 유지현까지 ‘신인 3인방’을 앞세워 프로야구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신인 3명이 동시에 최고의 활약을 펼친 LG는 정규시즌에 이어 한국시리즈까지 제패했다. ‘신바람 야구’라는 조어를 탄생시킨 LG는 한국 최고의 인기 프로야구 팀이 됐다.
1990년대 LG 신바람 야구를 이끌었던 3인방. 왼쪽부터 류지현, 김재현, 서용빈. 동아일보 DB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화려하게 핀 꽃이 그렇게 빨리 저물 줄은. 그리고 인내의 시간이 그렇게 오래동안 계속될 줄은.
스타플레이어가 즐비했던 LG는 여전한 인기를 자랑했지만 성적은 그렇지 못했다. 1997년과 1998년에는 한국시리즈까지 올랐지만 현대에 막혀 준우승에 그쳤다. 2002년 다시 한국시리즈에 올랐지만 삼성에 패하며 또 다시 정상 문턱에서 미끄러졌다.
야구도, 인생도 기회가 끝나면 위기가 온다. LG도 마찬가지였다. LG는 2003년부터 길고 긴 암흑기에 빠져들었다. 구단의 대대적인 투자와 선수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LG는 2003년 6위를 시작으로 2012년까지 10년 연속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지 못했다.
신인 3인방도 뿔뿔이 흩어졌다. 신인이던 1994년과 이듬해 1995년까지 2년 연속 전경기 출장에 3할 타율을 기록했던 서용빈도 부상과 군복무 등을 거치며 평범한 선수로 전락했다. 2005년과 2006년 2년 연속 1할 대 타율을 기록한 뒤 선수에서 은퇴했다.
이후 코치가 돼 계속 LG 유니폼을 입었지만 사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코치 시절의 대부분의 LG 암흑기의 한 가운데서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20대 초반 짧은 영광을 맛본 후 30, 40대는 방황과 절망의 연속이었다.
LG 코치 시절 배팅볼을 던지고 있는 서용빈.동아일보 DB 운이 다시 트기 시작한 건 50대가 돼서였다. 야구 해설위원을 거쳐 2021년 KT 위즈 2군 감독으로 취임했는데 그해 KT는 창단 후 처음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직접 그라운드에서 우승의 감격을 함께한 것은 아니었지만 1994년 이후 무려 27년 만에 ‘우승의 맛’을 봤다.
그리고 다시 친정팀 LG로 돌아온 지난해 전력강화 코디네이터 겸 총괄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한번 우승을 경험했다. 그가 LG 소속으로 정상에 오른 건 무려 31년 만이었다. 서용빈은 “대전 원정 경기에서 우승이 결정됐다. 우승을 확정 짓는 순간 너무 가슴이 벅차올라 혼자 우와~하고 함성을 질렀다”며 “그날 밤 편의점에서 안주와 맥주를 사와 혼자만의 ‘우승 파티’를 했다. 예전 힘들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고 했다.
2010년 스프링캠프를 떠나는 LG 선수단 모습. 당시 코치였던 서용빈(왼쪽)과 염경엽 현 LG 감독(가운데), 정성훈의 모습. 동아일보 DB 그 오랜 기다림 사이에 인생의 버팀목이 되었던 건 중 하나는 바로 공부다. 평생을 야구장에서 살던 그는 2018년 한국체육대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한때 프로야구에서 잘 나가던 스타플레이어 출신이 40대 후반의 나이에 조카뻘 학생들과 수업을 들은 것이다. 서용빈은 “2017시즌이 끝나고 잠시 유니폼을 벗게 됐다. 한편으로는 잘 됐다 싶었다. 이전부터 이론과 공부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던 터였다. 스포츠코칭을 전공으로 선택했다”고 했다.
물론 그도 단국대에서 학부를 마쳤다. 하지만 야구부 시절 대학 생활에 대한 기억은 야구장과 숙소를 오간 게 대부분이다. 밥도 학생식당이 아닌 숙소에서 먹었다. 서용빈은 “당시만 해도 운동선수들은 수업도 제대로 듣지 않을 때다. 캠퍼스의 낭만이란 건 전혀 없었다”고 했다.
2023년 29년 만에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른 LG의 기념비 제막 모습. 오른쪽이 서용빈, 왼쪽은 차명석 LG 단장. LG 제공 중년의 학교생활은 즐거움 그 자체였다. 대학원 수업은 일주일에 두 번 있었는데 그는 4, 5번학교에 갔다. 시간이 있으면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들고, 동료들을 만나고, 논문을 찾아보곤 했다. 서용빈은 “학교에 가는 것 자체가 너무 재미있었다. 수업이 없어도 학교 특유의 분위기가 너무 좋아 학교를 찾곤 했다”고 했다. 석사 과정을 마친 후엔 2023년부터는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현재 55세인 서용빈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꼽는 게 바로 다시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50대의 서용빈은 뒤늦은 학교생활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서용빈은 “석사, 박사 공부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겸손’이란 단어를 가장 많이 배운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지난 선수 생활과 코치 생활을 돌이켜 보니 스스로에겐 자만했고, 상대방에게는 배려가 부족했더라. 한 명의 인간으로서 항상 더욱 겸손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정말 열심히, 그리고 착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라며 “(비싸지 않은) 학생식당에서 내가 밥을 한 번 사면 그 사람들은 껌이나 캔 커피라도 하나 사서 보답했다.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새삼 깨달은 게 큰 수확”이라고 했다.
오랜 현장 생활을 거쳐 그는 현재 프런트로 제2의 야구 인생을 살고 있다. 그라운드가 아닌 낯선 사무실로 무대가 바뀌었지만 그는 ‘회사 생활’도 즐기고 있다. 서용빈은 “사무실 직원들과 함께 밥 먹고 생활하고 대화하는 것 자체가 재미있고 신기하다”라며 “예전의 나라면 전혀 알지 못했던 것들을 새롭게 경험하고 있다. 빨리 적응하려 노력 중”이라며 웃었다.
해설위원 시절의 서용빈. 뉴시스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이중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탄탄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그가 선수 생활에서 은퇴한 후 코치가 되면서 결심한 것 중 하나가 ‘배 나온 지도자는 되지 않겠다’는 거였다. 서용빈은 “선수 생활을 할 때 배 나온 지도자, 아침에 술 냄새를 풍기는 지도자는 선수들의 존경을 얻지 못했다”라며 “처음 결심한 대로 요즘도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요즘도 하루 한 시간 가량은 운동을 한다. 아침에 기상하면 20~30분 가벼운 유산소 운동을 하고, 피트니스센터나 집에서 30분 정도 근력 운동을 한다. 선수 시절에 비해 먹는 양도 줄였다. 그는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숟가락을 잘 놓는 편이다. 조금 과하게 먹었다 싶으면 알아서 숟가락을 내려놓는다”고 했다.
골프는 서용빈의 오랜 취미 중 하나다. 왼손 타자인 서용빈은 골프는 오른쪽으로 친다. LG 제공 프로야구 선수 출신으로 그는 야구장 안팎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 오고 있다. 그는 자신이 겪으며 느꼈던 일들을 후배 선수들도 경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용빈은 “학교와 회사를 다니면서 배우고 경험한 것들을 운동 후배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책임을 느낀다”라며 “유니폼을 입고 있든, 아니면 정장을 입고 있든 상관없이 어느 자리에서건 야구계를 위한 역할을 잘 해내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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