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연봉 협상 시즌이 다가온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4년 12월 기준 임금근로자 월평균 소득은 375만 원(세전)이었다. 연봉으로 따지면 4500만 원이다. 연봉이 올라 올해 계약 연봉이 5000만 원을 넘을 것 같다면 좋아하기엔 이르다. 연봉 오른 것보다 물가와 세금 인상분이 더 클 수도 있다. 배보다 배꼽이 큰 격이다.
직급도 오르고 봉급도 올랐는데 살림살이가 별반 나아진 게 없다고 느껴진다면 ‘브래킷 크리프’의 함정에 빠진 게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 실질 소득은 변화가 없는데 명목 임금이 오르면서 적용되는 세율 구간(bracket)도 올라서(creep) 알게 모르게 ‘유리 지갑’이 털리는 현상을 말한다.
2008년에 연봉 5500만 원을 받은 직장인을 예로 들어보자. 매년 연봉이 올라 지난해 7854만 원을 받았다면, 실질 임금은 사실상 달라진 게 없다. 2008년 이후 지난해까지 소비자 물가가 42.8% 오르면서 연봉 인상률과 같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번 돈은 그대로이지만, 내야 할 세금은 늘어난다. 현행 근로소득세는 8개 과세표준 구간에 따라 6∼45% 세율이 적용된다. 과표가 5000만 원을 초과하지 않으면 1400만 원까지는 6%가 적용되고, 초과분은 15%를 세금으로 뗀다. 지난해 연봉이 7800만 원을 넘어섰다면 각종 공제를 감안해도 평균 과표가 5000만 원을 넘는다. 최고 15%였던 적용 세율이 24%로 9%포인트 높아진다는 뜻이다. 2008년보다 명목 임금이 2300만 원 넘게 늘었다는 이유로 세금이 늘어나, 실질적으로 지갑이 더 얇아지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직장인에게 걷은 근로소득세는 2015년 27조1000억 원 수준에서 지난해 68조4000억 원으로 152.4% 증가했다. 같은 기간 총 국세 수입이 71.6% 늘어난 걸 감안하면 증가세가 2배 이상으로 큰 셈이다.
많이 걷힌 세금 대부분은 고연봉자에게 나왔다. 2024년 근로소득을 신고한 2108만 명 가운데 총급여 상위 10%가 전체 근로소득세의 71.7%를 부담했다. 반면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은 직장인들이 684만 명에 달했다. 직장인 3명 중 1명은 여전히 면세자라는 뜻이다.
이런 현상은 요즘 한국 경제의 가장 큰 고민인 ‘K자형 양극화’와도 맞물린다. 유리 지갑 속 세 부담은 일부 고소득층에 집중되는데 선거철마다 쏟아지는 선심성 공제와 감면 제도가 면세자들을 양산하고 있다. 부자가 세금을 많이 내고, 저소득자가 세금을 안 내는 건 언뜻 조세 정의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명목 소득이 올라가는 중산층의 세 부담 증가로 근로 의욕이 저하될 수 있다. 무엇보다 나라 살림에 대한 다수 국민들의 민감도가 떨어져 ‘나랏돈은 공짜’라는 잘못된 인식이 굳어질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2월 페이스북에 “월급쟁이는 봉인가”라며 “실질 임금은 안 올라도, 누진제에 따라 세금이 계속 늘어난다. 사실상 증세해 온 건데, 이거 고칠 문제 아닌가 싶다”고 썼다. 마침 당시 더불어민주당 비상설특위 ‘월급방위대’에서 간사를 맡아 “(근로소득세를) 물가 수준에 따라서 자동으로 연동하게 하거나 비주기적으로 조정을 해주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했던 임광현 의원은 국세청장이 됐다. 그때 고칠 문제라고 판단했다면 집권한 지금 고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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