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한보」와 노동계 재파업

  • 입력 1997년 2월 10일 20시 08분


고구마줄기를 잡아 당기자 썩은 고구마덩이가 줄줄이 걸려 나오는 형국이다. 잡아챌수록 얼마나 많은 「부패덩어리」가 모습을 드러낼지 차라리 두려운 생각마저 든다. 설연휴가 끝나자마자 검찰이 신한국당 洪仁吉(홍인길)의원과 국민회의 權魯甲(권노갑)의원 등을 소환하고 나섬에 따라 한보수사는 권력의 핵심을 파고드는 국면으로 진입했다. 金泳三(김영삼)대통령과 金大中(김대중)국민회의 총재의 핵심 측근인사를 향해 들이대는 검찰의 칼날은 일단 「성역없는 수사」를 천명한 김대통령의 의지가 실천에 옮겨지는 듯한 인상이다. ▼ 「역시나」땐 파업 지지 ▼ 그러나 여기에도 세간의 눈길은 한가닥 의구심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공교롭게 양김(兩金)의 오른팔과 왼팔 역할을 맡아온 두 가신에 대한 연루설이 균형을 이뤄 흘러나온 뒤 전개되는 상황이 이들을 「대표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것이다. 홍의원이 『나는 깃털에 불과하다』고 「항변」한 것도 그같은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검찰의 한보수사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까지 이루어지느냐 못하느냐는 침몰위기의 「대한민국호」가 다시 힘찬 항진의 시동을 걸 수 있느냐와 직결돼 있다. 한보사태에 가려 잠시 잊고 있던 노동법시국이 재연 조짐을 보이고 있고 한보수사 결과가 「18일시한」으로 다시 시작될 예정인 노동계의 재파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예상때문이다. 수사결과가 「역시나」로 끝날 경우 지난번 노동법파업 때처럼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불만이 파업에 대한 심정적 지지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설연휴 전날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만난 權永吉(권영길)위원장도 이같은 상황에 대해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한보사태는 정부가 잘못해 만든 일이다. 한보사태로 더욱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는 경제상황이 4단계파업에 부담이 되는 일면이 있으나 어떻게 접목시키느냐에 따라 유리하게 이끌어 나갈 수 있다』 민주노총은 오는 13일 대의원대회를 갖고 여야가 18일까지 노동법 재개정을 구체화하지 않으면 예정대로 4단계파업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재정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계의 재파업움직임은 먼저 정치권의 진지한 노동법재개정 논의에서부터 실마리를 풀어가야 한다. 집안으로 튄 불똥을 처리하는데 신경을 쏟아 이를 소홀히한다면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파업사태를 가래로 막아야 하는 상황이 재연될지 모른다. 엎질러진 물이지만 당초 정부 여당이 경기침체와 명퇴바람에 위축돼 있는 국민정서를 사려깊게 감안하지 않은 채 노동법을 기습처리함으로써 파업사태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야당 또한 대안없는 반대로 일관해 여당에 날치기처리의 여지를 줌으로써 파업사태를 악화시키기는 마찬가지다. ▼ 노동계도 유연성 보일 때 ▼ 국가적 위기상황을 탈출하기 위한 지혜를 모으는데 노동계라고 남일 수는 없다. 지난번 총파업을 통해 연대투쟁의 길이 뚫렸다고 해서 노동계가 힘을 과신한다면 힘의 논리로 노동법 통과를 밀어붙인 것과 똑같은 실책을 범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노동법 재개정 논의가 최대한 균형을 잡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노동계는 「노조이기 때문에」라는 명분에서 벗어나 완숙함과 유연성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김종완<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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