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시선]영덕 원전 갈등, 정당한 절차로 풀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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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헌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
권기헌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
경북 영덕에서 신규 원전 건설을 둘러싼 갈등이 커지고 있다. 영덕 반핵단체는 ‘영덕 핵발전소 유치찬반 주민투표관리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내달 11, 12일 주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한다. 주민들이 지역 현안에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하려는 것을 폄훼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 투표가 과연 법률(주민투표법)에 따른 지역 주민들의 정당한 권리 행사인지 의구심이 든다. 이미 강원 삼척에서도 확인됐듯이 원전 유치는 법률상 투표 대상이 아닌 국가사무로, 법적 효력이 없는 ‘지역투표’가 재연되는 셈이다.

영덕은 2010년 영덕군의회의 만장일치 의결로 원전 유치를 신청했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부지선정위원회의 객관적 평가를 거쳐 후보지로 선정됐다. 5년이 채 지나지 않아 그동안의 과정을 무시하고 국가사무를 거부하겠다는 것은 결국 정책 과정의 절차적 타당성을 저해하는 행위이다.

주민투표가 시행되면 지역 공동체는 분열되고 지방자치단체는 정치력을 상실하며 신의를 저버린 해당 지역의 투자 매력도는 떨어지고 국가사무는 난항을 겪게 된다.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결과의 승리’가 아닌 ‘과정의 승리’가 필요하다.

원전 유치에 찬성하는 분들이나 반대하는 분들 모두 영덕을 사랑한다. 2010년과 달라진 현 상황에서 원전이 우리 고장에 들어서면 군민들의 안전은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는지, 지역 발전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 등을 진지하게 토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무시한 채 원전 유치에 찬반을 선택하라고 결과만 강요하는 것은 합리적 의사결정 과정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행위이다.

갈등은 언제, 어디에든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역할이고 실력이다. 갈등은 정당한 절차로 풀어야 한다. 최근 갈등관리와 정책분석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풀뿌리’ 민심을 확인하는 숙의적 의견수렴 방식이 많이 활용되며, 진정성을 갖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는 가운데 미래지향적 목표를 찾아야만 상생적 지역 발전이 가능하게 된다.

영덕을 사랑하는 분들에게 필요한 것은 주민투표가 아니라 나와 다른 생각을 존중하면서 토론하는 숙의적 민주주의의 자세다. 지금이라도 머리를 맞대고 보다 진지한 토론을 거쳐 해법을 찾는, 영덕 주민들의 ‘과정의 승리’가 절실히 요구된다고 하겠다.

권기헌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
#영덕 원전#주민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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