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동원해도 꿈쩍 않는 환율… 정부, 외환규제까지 풀어

  • 동아일보

[고환율 방어 긴급대책]
금융기관 달러 보유 규제 완화하고, 외국인 국내주식 거래 문턱 낮춰
대통령실, 기업-증권사와 대책 논의… 증권사 해외투자 마케팅 중단 계획
“투자환경 개선 장기대책 나와야”

18일 서울 중구 명동의 환전소 전광판에 주요 환율 시세가 표시돼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18일 서울 중구 명동의 환전소 전광판에 주요 환율 시세가 표시돼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정부가 18일 내놓은 외환시장 규제 완화 조치들은 그동안 달러의 국내 유입을 제한했던 방침을 바꿔 시중에 달러 유동성을 늘리도록 정책 방향을 바꾼 것이다. 고환율이 일시적 현상이 아닌 구조적 문제라고 인정하고 ‘달러 빚’을 끌어와서라도 외환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고환율 불을 끄기 위해 국민연금, 수출 대기업, ‘서학개미’로 불리는 개인투자자의 해외 투자를 전방위로 관리하고 나선 정부가 외환 건전성 규제까지 완화해 달러 유입량을 늘리려고 하는 것이다.

● 수출기업 외화대출 허용 확대

기획재정부는 우선 은행, 증권사 등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외화 유동성 스트레스테스트(위기 시 건전성 관리) 감독 조치’를 내년 6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멈춘다고 밝혔다. 금융기관들은 평소 외환 유입에서 유출을 뺀 순유입액이 정해진 기준보다 적으면 이를 어떻게 충당할지에 대한 계획을 금융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은행들은 이를 맞추려 달러를 쌓아놓는 경향이 있었는데 내년 6월 말까지 이 계획서를 제출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의미다. 정부는 은행이 보유하던 달러 자금을 시장에 풀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정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뒤 국내 외환시장이 외부 충격에 대비할 수 있도록 각종 건전성 규제를 만들어 관리해 왔다. 2010년 도입된 외화 유동성 스트레스테스트도 그중 하나다.

이와 함께 외국계 은행의 국내 법인인 SC제일은행과 한국씨티은행이 보유해야 하는 선물환 순자산 비율도 75%에서 200%로 늘어난다. 해외 본점에서 한국에 들여올 수 있는 달러를 크게 늘려준 것이다.

수출기업들이 국내에서 쓸 경영자금을 외화로 대출받는 것도 가능해진다. 1997년 외환위기 원인으로 꼽혔던 외화대출은 국내 사용 목적일 경우 그간 엄격하게 금지돼 왔지만 지난해 말 수출기업에 한해 국내 시설투자 목적의 자금은 허용된 바 있다. 이것이 일반 운전자금 용도로도 가능해진 것이다. 달러화나 엔화 대출이 늘면 국내에 외화가 풀려 결국 원화 강세 요인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외국인들의 국내 주식 투자를 늘리기 위한 방안도 포함됐다. 외국인 개인투자자가 국내 증권사의 계좌 없이 해외 증권사 계좌로도 한국 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통합계좌 활용도를 높이도록 하고, 해외 중소형 증권사도 이 같은 통합계좌를 개설할 수 있게 했다.

● 증권사, 서학개미 마케팅 중단키로

정부는 이날도 수출 대기업과 증권사들을 만나 환율 대책을 논의했다. 김용범 대통령정책실장은 이날 삼성전자, SK, 현대자동차, LG, 롯데, 한화, HD현대 등 7개 대기업 고위 임원을 불러 고환율 대책을 논의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도 이날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키움증권 등 증권사 10곳 안팎 대표 등을 오전, 오후로 나눠 소집했다. 이 원장은 증권사들의 과도한 해외 투자 마케팅으로 인해 이른바 ‘서학개미’가 피해를 볼 수 있다며 실태조사 후 검사로 전환할 것을 지시했다. 사실상 환율 급등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돼온 ‘서학개미’의 해외 투자 쏠림 현상을 겨냥한 언급이었다. 증권사들은 해외 투자 지원금, 커피 쿠폰 제공, 수수료 무료 등의 이벤트를 중단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전방위적 대책이 근본적인 해법이 되긴 어려울 것으로 봤다. 실제로 정부가 연일 국민연금, 수출 대기업, 대형 증권사들을 만나고 있지만 원-달러 환율은 이달 들어 1470원대 후반에 머물고 있다. 정부가 금융사 외환 건전성 규제까지 일부 완화한 것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급하니까 자꾸 단기 처방에만 골몰하는데 이는 원화 저평가 문제의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며 “결국 국내 자본시장의 매력을 끌어올리고, 기업 투자 환경을 개선하는 장기적인 대책도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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