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요청에도 달러 안 푼다… 기업 예금 이달 4.2억달러 증가

  • 동아일보

[고환율 방어 긴급대책]
고환율 장기화 기업 달러 예금 늘어
대미투자 대기 자금 풀기 쉽지않아
개인예금도 122.6억달러 연중 최고

18일 외국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서울 중구 명동의 환전소 거리 전광판에 주요 환율 시세가 표시돼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18일 외국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서울 중구 명동의 환전소 거리 전광판에 주요 환율 시세가 표시돼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정부가 고환율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수출기업들이 보유한 외화를 시장에 풀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기업들은 오히려 달러 보유를 늘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관세장벽에 대비해 향후 대미 투자를 위한 대기 자금 성격으로 풀이된다.

18일 5대 시중은행(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은행)이 보유한 기업 달러 예금 잔액은 이달 16일 기준 469억8800만 달러로 11월 말(465억7000만 달러) 대비 4억1800만 달러 증가했다. 기업 달러 예금 잔액은 10월 말 443억2500만 달러로 연중 최저치였지만 11월 이후 반등하고 있다.

통상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원화 가치는 하락) 투자자들이 차익 실현에 나서면서 달러 예금 잔액은 줄어든다. 11월 평균 환율은 1461.25원으로 전월(1428.21원) 대비 2.3%(33.04원) 올랐다. 이달 들어 18일까지 평균 환율은 1472.71원으로 10원 넘게 더 올랐다. 환율은 올랐는데 달러 예금은 불어나는 이례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개인 달러 예금도 16일 기준 122억6500만 달러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월 말(121억6600만 달러) 대비 1억 달러가량 늘었다.

은행 관계자는 “고환율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안전 자산인 달러 수요가 더 강해지고 있다”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실수요 자금일 가능성이 높아 정부가 달러를 풀어 달라고 해도 그 발언의 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여러 차례 대기업들을 만나 보유 달러를 풀어 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18일 삼성전자 등 수출기업과의 간담회에서 수출 대금의 원화 환전을 요청했다. 이달 16일에는 이형일 기재부 1차관이 나서 삼성전자 등 수출기업에 환 헤지 확대 등을 주문했고, 18일에는 김용범 대통령정책실장도 수출기업을 만났다.

은행권에선 기업들이 달러를 계속 쥐고 있는 주된 이유로 대미 투자 대기 자금을 꼽고 있다. 정부는 10월 29일 한미 관세협상 타결로 조선업 협력에 투자하는 ‘마스가(MASGA)’ 프로젝트에 1500억 달러를 투자하는 등 3500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문제는 수출기업들의 외화 보유 성향이 앞으로 더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미국을 비롯한 외국이 한국보다 성장률이 높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예상돼 달러 수요 강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국내 성장률을 높이고 기업 투자 환경을 바꾸지 않는 이상 기업이 달러를 쥐고 있는 현상을 개선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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