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환율 왜 이래…범죄자금 유입? 바트화 초강세 미스터리[딥다이브]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2월 18일 10시 00분


요즘 우리나라는 고환율, 즉 원화 약세가 큰 이슈죠. 치솟은 원달러 환율 때문에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인하를 멈추고, 정부는 수출 기업의 달러 환전을 독려할 정도인데요.

이와 정반대로 통화가치가 너무 강해서 난리인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태국이죠. 12월 16일 기준 태국 바트화 환율은 1달러당 31.4바트. 올해 들어 통화가치가 10% 넘게 뛰면서 관광산업도, 농산물 수출도 비상 상황인데요. 경제 성장이 그리 강하지도 않은데, 바트화 가치만 무섭게 뛰는 게 영 이상합니다. 그리고 그 숨은 이유가 서서히 드러나는 중이죠. 태국 바트화 강세의 미스터리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이례적인 바트화 강세가 태국 경제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게티이미지
이례적인 바트화 강세가 태국 경제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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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트화가 뛴 만큼 관광객이 줄었다
-9.8%. 태국 관광청이 예상하는 2025년 외국인 관광객 수 증가율입니다. 전 세계 하늘길이 막히다시피 했던 팬데믹 시기도 아닌데, 이 정도로 급감하다니. 관광대국 태국으로선 굴욕이 아닐 수 없는데요.

홍수, 국경 분쟁, 범죄 증가 등. 여러 원인이 거론되지만, 무엇보다 큰 건 환율입니다. 바트화 환율이 2021년 6월 이후 최저로 떨어지면서(=바트화 강세) ‘가성비 좋은 동남아 관광지’라는 장점이 사라져 버렸고요. 다른 동남아 경쟁국(예-베트남)으로 관광객을 뺏기게 된 거죠.

관광 성수기에 접어든 파타야 지역 언론은 이렇게 한탄합니다. “파타야를 찾는 관광객에 이번 시즌 가장 큰 충격은 교통 체증, 무더위, 치솟는 식료품 가격이 아닌 환율이다. 한때는 합리적이었던 것들이 이젠 빠듯하게 느껴진다. 술집, 식당, 마사지샵, 시장 상인들은 고객들이 방문할 때 쓰는 돈이 줄어들고 가격에 더 민감해졌다고 말한다.”
태국의 유명 관광지 파타야의 모습. 게티이미지
태국의 유명 관광지 파타야의 모습. 게티이미지
올해 초 1달러당 34.61바트였던 환율은 이제 31.41바트. 이를 통화가치로 환산하면 10.1% 넘게 뛰었습니다. 통화가치 상승률과 관광객 감소율이 거의 일치하죠.

관광산업만 비상이 아닙니다. 태국 수출 기업도 타격을 받았죠. 안 그래도 미국의 트럼프 관세 충격이 여전한데, 환율 때문에 가격 경쟁력마저 떨어졌습니다. 특히 쌀, 고무, 과일 같은 예전엔 저렴했던 태국산 농산물이 이제 해외에서 비싸지면서 수출이 내리막입니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 태국으로선 큰일이죠.

이전과 똑같은 물량을 수출한다 해도, 손에 쥐는 바트화 기준 수익은 줄어드니 수출 기업은 울상일 수밖에 없는데요. 포즈 아람왓 타나온 태국 상공회의소 회장은 정부의 환율 대책을 촉구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바트화의 과도한 강세는 태국 경제의 잠재력을 반영하는 게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저해합니다.”
최근 1년간 미국 달러 대비 바트화 환율 그래프. 현재 1달러당 31.4바트 수준으로, 2021년 6월 이후 가장 낮다. 그만큼 바트화가 강세를 보인다는 뜻이다. 인베스팅닷컴
최근 1년간 미국 달러 대비 바트화 환율 그래프. 현재 1달러당 31.4바트 수준으로, 2021년 6월 이후 가장 낮다. 그만큼 바트화가 강세를 보인다는 뜻이다. 인베스팅닷컴


이게 금 투기 때문이라고?
태국 통화가치는 왜 이렇게 올랐을까요. 한동안 태국 정부는 ①미국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로 인한 달러화 약세 기조와 ②경상수지 흑자 확대, 이 두 가지를 이유로 설명해 왔는데요. 하지만 약달러 영향은 태국뿐 아니라 모든 나라 공통이고요. 경상수지 흑자라고 무조건 다 통화가치가 오르는 건 아니잖아요. 1~10월 누적 경상수지 흑자가 사상 최대이지만, 원화 약세에 시달리는 한국을 보면 알 수 있죠.

그리고 올해 태국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면, 사실 바트화가 약세로 가는 게 훨씬 더 자연스럽습니다. 이웃 나라 캄보디아와 국경 분쟁으로 무력 충돌을 빚었고요. 패통탄 친나왓 전 총리가 취임 1년 만에 해임될 정도로 정치적으로 불안정했거든요. 신흥국에서 이 정도 혼란이 벌어지면 외국인 투자자가 발을 빼면서 통화가 약세를 보이기 마련인데요. 그 반대로 간 겁니다.
태국 중앙은행은 급증한 금 수출을 통화 강세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게티이미지
태국 중앙은행은 급증한 금 수출을 통화 강세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게티이미지
도대체 중력을 거스르는 바트화 가치 급등의 진짜 이유가 무엇인가. 각종 분석이 쏟아졌고요. 지난 9월 태국 중앙은행이 한 곳을 지목합니다. 태국의 금 거래 시장이었죠.

올해 내내 금은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투자처였죠. 국제 금값은 60% 넘게 급등했는데요. 전통적으로 태국인은 금을 좋아하고 금에 많이 투자합니다. 대대로 금을 물려주는 집이 많고, 그래서 민간이 보유한 금의 양이 상당한데요. 올해처럼 금값이 무섭게 뛸 때면 태국인들은 집안에 고이 간직해뒀던 금을 내다 팔곤 합니다. 그리고 금은방은 이렇게 확보한 금을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팔죠. 그러면서 태국의 금 수출이 급증했는데요.

올해 1~9월 태국의 금괴(가공되지 않은 금) 수출액은 3645억 바트(약 17조원). 2024년 같은 기간보다 100% 넘게 급증했습니다. 유례없는 대호황이었죠.

전 세계적으로 금 투자가 유행하면서 금을 사려는 외국 자금이 이례적으로 밀려들었고, 그래서 바트화 가치가 이상 급등했다. 이게 당시 태국 중앙은행의 해석이었습니다.

금값은 바트화의 주요 변동 요인입니다. 금값이 오르면 바트화는 다른 통화 대비 강세를 보이고, 반대로 금값이 하락하면 다른 통화보다 더 큰 폭으로 약세를 보입니다.” (태국 중앙은행 금융시장부의 파비니 짓몽콜세마 수석이사)

정체불명의 자금 수십조원이 들어오다
미친 금값 때문에 태국 통화가치가 덩달아 널뛴다? 제법 설득력 있는 해석이었습니다. 올해 금 투기 열풍이 유별나긴 했으니까요. 이에 태국 중앙은행은 바트화 강세를 막겠다며 금을 살 때 붙이는 세금, 즉 ‘금세’ 신설까지 검토하고 나섰는데요.

하지만 의문은 여전히 남았습니다. 왜 금 투기 수요가 다른 데가 아닌 유독 태국으로만 몰리는 거죠? 그 금을 사 간 외국인들은 도대체 누구죠?

피팟 루앙나루미차이 박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던 2019~2024년 분기별 국제수지 그래프. 빨간색으로 표시된 ‘오차 및 누락’의 플러스 규모가 2024년 유독 컸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자금 유입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다.
피팟 루앙나루미차이 박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던 2019~2024년 분기별 국제수지 그래프. 빨간색으로 표시된 ‘오차 및 누락’의 플러스 규모가 2024년 유독 컸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자금 유입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다.
이렇게 바트화 미스터리가 말끔히 풀리지 않던 중, 태국의 경제학자들이 새로운 해석을 내놓습니다. 키앗나킨 파트라금융그룹의 수석 경제학자인 피팟 루앙나루미차이 박사, 국가경제사회개발위원회의 수파부드 사이추 위원장이 그 주인공인데요. 바트화 강세의 진짜 원인은 금 수출이 아니라 ‘출처를 알 수 없는 자금’의 대량 유입이란 주장이었죠.

그들은 태국의 국제수지 통계에서 경상수지나 자본수지로 설명되지 않는 ‘오차 및 누락(Net Errors & Omissions)’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데 주목했습니다. 특히 2024년 연간 통계에선 이 규모가 무려 5300억 바트(약 25조원)로 불어났는데요. 통계에 오차는 있을 수 있지만, 구멍이 커도 너무 큽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불투명한 해외 자금의 비정상적 유입. 이건 혹시 불법 자금세탁의 흔적 아닐까요?

경제학자들의 이런 문제 제기는 큰 반향을 일으킵니다. ‘범죄집단의 불법 자금이 태국으로 밀려들고 있다’, ‘태국이 세계적인 자금세탁 중심지로 전락했다’며 여론이 들끓었고요. 중앙은행이 나서서 “국제수지의 오차·누락 규모가 꼭 불법 자금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어차피 그게 불법 자금인지 아닌지는 중앙은행도 알 도리가 없으니까요.

결국 정부가 움직였습니다. 총리 지시로 재정정책국·중앙은행·증권거래소·자금세탁방지국·증권거래위원회가 특별 태스크포스를 구성했죠. 바트화 강세의 주범으로 지목된 설명할 수 없는 대규모 자금 유입, 그 출처를 밝혀내기 위해서입니다.

뒷문 열린 태국, 불법자금 놀이터 됐다
그럼, 범죄자금은 어떤 식으로 태국으로 흘러 들어갔을까요. 아직 정부 TF의 최종 조사 결과가 나오진 않았는데요. 많은 이들이 의심하는 유력한 통로는 가상화폐 거래소입니다.

범죄집단이 추적을 피하기 위해 불법 자금을 가상화폐로 관리하는 건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죠. 하지만 검은돈을 영원히 코인으로 둘 순 없고, 언젠가는 이를 현금화해야 할 텐데요. 한국처럼 법에 따라 가상화폐 거래소도 깐깐하게 고객 신원을 확인하는 나라에선 이게 쉽지 않죠. 규제가 가장 약한 곳을 통해 빠져나갈 텐데, 태국이 바로 그런 나라입니다.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태국 가상화폐 거래소가 국제 범죄집단의 환전 창구로 쓰이고 있다. 게티이미지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태국 가상화폐 거래소가 국제 범죄집단의 환전 창구로 쓰이고 있다. 게티이미지
태국은 가상화폐의 바트화 환전을 규제하는 법률이 아직 없고요. 따라서 별다른 고객 신원확인 절차 없이 가상화폐를 얼마든지 현금으로 인출할 수 있다는데요. 이렇게 바트화로 바뀐 불법 자금은 다시 태국에서 금괴나 호화 콘도, 회사채, 주식 매입으로 흘러갑니다. 검은돈이 태국의 금융·부동산 시장을 거치면서 합법적인 자금처럼 완전히 세탁되는 거죠. 그 결과 시장에선 바트화 유동성이 고갈되면서, 통화가치는 급등하게 됩니다.

왜 태국의 금 수출, 특히 캄보디아로의 수출이 급증했는지도 짐작할 수 있죠. 캄보디아를 기반으로 한 범죄집단이 가상화폐를 거쳐 태국에서 바트화로 환전한 돈으로 금을 사고요. 그 금괴를 캄보디아로 보내 자금세탁을 완결하는 겁니다. 즉, 금 수출의 비정상적 급증은 바트화 강세의 원인이 아니라 최종 결과물인 셈이죠.

그리고 이를 입증할 만한 증거들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이달 초 태국 정부는 미국 연방수사국(FBI) 정보를 받아 국제 사기 조직이 태국에서 보유해 온 불법 자산 약 100억 바트(약 4600억원) 어치를 압류했는데요. 적발된 건 캄보디아를 기반으로 하며 국경을 넘나들며 사기 행각을 벌여온 조직-‘임 리악-벤 스미스’, ‘콕 안’, 프린스그룹 천즈 회장-이었고요. 압류된 자산엔 은행 예금, 토지, 콘도미니엄, 유가증권, 요트, 고급승용차 등이 포함됐습니다. 그만큼 막대한 범죄자금이 태국으로 흘러들어와 있었던 거죠.

특히 일부 태국의 전현직 고위급 정치인들이 사업가를 가장한 이 범죄조직 수괴들과 친분이 있다는 사실도 이번에 드러났는데요. 혹시 이 사기꾼들이 태국 정치권력의 비호를 받고 있었던 걸까요. 사건이 정치 스캔들로 번질 조짐입니다.
12월 3일 태국 자금세탁방지국이 국제 사기 범죄 조직에서 압류한 고급 차량을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태국 자금세탁방지국 제공
12월 3일 태국 자금세탁방지국이 국제 사기 범죄 조직에서 압류한 고급 차량을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태국 자금세탁방지국 제공
역대급 바트화 강세가 태국 경제의 성장 때문이 아니라 범죄집단의 불법 자금 유입 탓이었다니. 태국 국민들로선 분통 터질 일입니다. 어차피 해외여행을 즐기거나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상류층이 아닌 한 바트화 강세로 덕 볼 일은 거의 없고요. 오히려 그로 인한 피해를 쌀 수출이 줄어든 농가, 관광객 감소로 타격받은 상인들이 고스란히 받고 있으니까요.

태국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일단 금융기관의 정보를 한 데 묶어서 의심스러운 자금 흐름을 감시하는 ‘데이터국’을 설립했고요. 내년엔 자금세탁방지법을 개정해 규제를 더 촘촘히 할 예정이죠. 금융 범죄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도 약속했고요. 중앙은행은 금은방들이 매일 거래 내역을 보고하도록 의무화할 예정입니다.

참, 뒤늦은 대응이 아닐 수 없는데요. 정부가 제 역할을 소홀히 하면 이런 황당한 상황에 처할 수 있군요. 바트화 급등의 미스터리는 어느 정도 풀렸지만, 이 비정상적 상황이 언제쯤 바로잡힐지는 두고 봐야겠습니다. By.딥다이브

지난 6월 1바트에 41원이던 바트화 환율이 이제 46.8원까지 뛰었습니다. 우리 원화는 약세, 바트화는 강세인 탓이죠. 두 나라 모두 환율 때문에 난리로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

-태국 바트화 강세가 심상찮습니다. 올해 들어서만 10% 넘게 통화가치가 뛰었는데요. 그 결과 외국인 관광객 유입이 크게 줄면서 관광산업은 비상이고요. 쌀을 비롯한 농산물 수출에도 타격이 큽니다.

-태국 경제 성장이 그리 강하지도 않은데, 통화가치만 왜 이리 뛰었을까요. 한동안 태국 금시장의 이례적 호황이 원인으로 지목됐습니다. 세계적인 금 투기 열풍이 불면서 태국의 금 수출이 급증한 탓이란 해석이었죠.

-하지만 진짜 원인은 따로 있는 게 아닐까요. 전문가들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자금의 대량 유입을 원인으로 지목합니다. 동남아 사기 범죄 집단이 가상화폐 거래소를 통해 범죄 수익을 태국에서 현금화하고 있다는 추측이죠. 실제 이런 식으로 태국에 유입돼 부동산, 주식시장으로 흘러든 불법 자금이 적발되고 있습니다. 태국 정부는 뒤늦게 대책을 마련 중이죠.

*이 기사는 12월 1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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