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짝 사역’하는 목사님

  • 동아일보

인천 항동교회 구자억 목사
“좋은 메시지 담고 사람들 좋아하면
트로트 찬송가라고 안될 이유 없죠”

구자억 목사는 “진리는 단순한데, 그 진리가 종교라는 틀을 거치면서 무겁고 딱딱해지는 면이 있는 것 같다”며 “어떻게 하면 재미있고 유쾌하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나온 게 트로트 사역”이라고 했다. 구자억 목사 제공
구자억 목사는 “진리는 단순한데, 그 진리가 종교라는 틀을 거치면서 무겁고 딱딱해지는 면이 있는 것 같다”며 “어떻게 하면 재미있고 유쾌하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나온 게 트로트 사역”이라고 했다. 구자억 목사 제공
“어느 날 교회 수련회에서 청년들이 신나게 춤추며 찬양하는 걸 보던 중장년층 성도님들이 ‘우리도 저렇게 원 없이 흔들어 봤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흥겹게 해드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 ‘뽕짝’ 사역이 떠올랐습니다.”

10일 인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인천 항동교회(기독교대한감리회) 구자억 목사는 ‘트로트 사역’을 하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저 노래 잘하는 동네 아저씨가 이따금 한 곡조 뽑는 정도로 생각하면 오산. 2009년 1집을 낸 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정규 앨범 5집, 싱글만 100여 곡을 낸 준프로 가수다. 모두 트로트 멜로디에 기독교적 가사를 담았다.

“아따 참말이여! 믿을 수 없것는디, 하나님 인간이 되셔 이 땅에 오셨다고”로 시작하는 ‘참말이여’(3집 수록곡)는 흥겨운 리듬과 구수한 가사가 입에 착 붙는 대표곡 중 하나. 구 목사는 “예수님이 유대 땅이 아니라 전라도에 왔으면 어땠을까를 상상하며 만들었다”며 “예수님이 무슨 트로트냐고 할지 모르지만,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예수님이 귀족들이 부르는 노래를 하진 않았을 것 같다”고 했다.

그의 ‘뽕짝 사역’에는 남모르는 고충도 있었다. 어릴 적부터 유달리 트로트를 좋아해 입에 배다 보니 찬송가가 자신도 모르게 트로트풍으로 나왔다고 한다. 일반 신자일 때는 괜찮지만 목회자가 찬송가를 트로트풍으로 부르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너무 위축돼서 목사님께 상담했더니 ‘절대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그걸 발전시킬 생각을 해 보라’고 하시더군요. 마침 그때 중장년층 성도들을 어떻게 흥겹게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한 교회 행사에서 트로트 곡을 찬양곡으로 개사해 불렀는데 다들 좋아하시더군요.”

물론 신성한 교회에서 트로트를 부르는 일이 순탄하게만 진행된 건 아니다. 그는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젊은 목사가 연예인 병에 걸렸다’며 혀를 차는 분도 많았다”면서 “초청받고 간 교회 행사에서 한창 노래하는 중에 한 장로에게 끌려 내려온 적도 있었다”며 웃었다.

아직은 먼 꿈이지만 그는 언젠가는 “우리 교회에서 트로트풍 찬송가가 불리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트로트가 우리 사회와 음악에서 굉장히 친숙한 장르인데, 유독 종교라는 분야와는 접목되지 못한 면이 있어요. 성경 ‘시편’에도 ‘새 노래로 찬양하라’라고 돼 있지, 딱히 어떤 음악은 안 된다고 하지는 않으니까요. 좋은 메시지를 담고, 많은 사람이 좋아하면 트로트 찬송가라고 안 될 이유는 없지 않을까요.”

#트로트#찬송가#기독교대한감리회#구자억 목사#뽕짝 사역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