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

이진구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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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부터 ‘이진구 기자의 대화’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딱딱하고 가식적인 형식보다 친구와 카페에서 수다 떠는 듯한 편안한 인터뷰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sys1201@donga.com

취재분야

2024-06-27~2024-07-27
종교53%
문학/출판27%
문화 일반10%
역사7%
인사일반3%
  • [책의 향기]AI, 30%만 알면 당신도 쓸 수 있다

    중학생 때 컴퓨터 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 도스, 코볼 등 이름도 생소한 컴퓨터 언어를 배웠는데 솔직히 아무 관심도 없었지만, 학원을 간 건 “앞으로 컴퓨터를 모르면 도태된다”는 친구들과 엄마의 무시무시한 ‘협박’(?) 때문이었다. 이런 인생을 볼모로 한 협박은 대학생 때 386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또 한 번 광풍처럼 불었다. 전산과가 컴퓨터학과로 이름을 바꾸고,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등의 이름이 신문에 오르내린 것도 이때쯤이었다. 부모님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내가 몰두했던 것은 수많은 대학생들의 1교시를 사라지게 했던 ‘삼국지’ 게임이었지만, 문서 작성과 간단한 엑셀밖에 몰랐어도 사는 데 큰 지장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컴퓨터를 더 많이 알고, 잘했다면 분명히 지금보다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겠지만…. 인공지능(AI)이 화두인 지금도 비슷한 것 같다. 앞으로는 코딩을 모르면 살 수 없다고 그래서 초등학생 때부터 필수로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런 것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미국 하버드대와 캘리포니아대 교수인 저자들은 AI의 작동과 관련한 지식의 30%만 알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컴퓨터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의 세상은 AI가 열겠지만, 30% 수준이면 AI와 협업하는 데 충분하다는 것. 저자들이 말하는 30% 수준은 직접 코딩 등을 하는 전문기술이 아니라 AI로 대변되는 디지털 생태계를 이해하는 ‘디지털적 문해력’을 말한다. 예를 들면 최고경영자(CEO)가 정보기술(IT) 보안 전문가일 필요는 없지만, 디지털 생태계의 상호 의존성을 포용하면서도 데이터가 온갖 외부 위협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사실은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발생한 크라우드스트라이크발 IT 대란을 생각하면 고개가 끄떡여진다. AI 시대에 누구에게나 도움이 되는 내용이지만, ‘이제 코딩 교육은 필수’라며 아이를 학원에 보내려는 학부모도 꼭 한 번 읽었으면 좋겠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12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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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탁 대신 카메라 들고… 사찰 소개하는 스님 유튜버

    스님이 목탁 대신 카메라를 든 까닭은…. “불교가 이렇게 ‘힙’했어?”라는 말이 나오는 요즘 한국 불교. 그 배경에는 깊은 산중 참선에만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변하려고 노력하는 ‘젊은 스님’들이 있다. 유튜브 ‘무여 스님 TV’를 운영하는 비구니 무여 스님(대한불교조계종 경기 고양 보리선원 주지)도 젊은 그들 중 하나. 목탁 대신 카메라, 염주 대신 마이크를 든 그는 전국을 다니며 우리 사찰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다. “어느 날 문득 ‘나만 알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공부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더 많은 사람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리고 싶어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그때 유튜브가 대중화하면서 1인 방송 시대가 열린 거죠. 이거다 싶더라고요.” 그는 수많은 불교 콘텐츠 중에서 사찰 소개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비신자에게도 가장 친숙하게 불교를 알릴 수 있는 소재이기 때문”이라며 “개인적으로 가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라고 말했다. 석박사 공부하고, 절에서 맡은 일을 하다 보니 스님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가본 절이 많지 않았다는 것. 그는 “유튜브 덕분에 2019년 3월 개설한 이후 지금까지 5년여 동안 120여 곳의 사찰을 소개하며 사심을 채웠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쉽게 생각하고 덤빈 유튜브는 매주 피가 마르는 고통으로 돌아왔다. 대본 작성, 촬영, 편집 등 모든 것이 ‘생초보’인 데다, 혼자 만드는 처지에 겁 없이 구독자와 “매주 한 편씩 올리겠다”라고 약속한 것. 설상가상으로 첫 회인 ‘강화 전등사’ 편은 찍고 돌아와서 보니 화면이 흔들리고, 목소리가 너무 작아 다시 찍으러 가는 ‘참사’까지 벌어졌다. ‘돈벌이를 위한 것 아니냐’ ‘튀어 보이고 싶으냐’는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과 악플도 덤으로 따라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누가 볼까 싶었는데, ‘몰랐던 사찰의 아름다움을 알려줘서 고맙다’라고 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더라고요. ‘몸이 안 좋아 못 가는데 고국의 향수를 달랠 수 있었다’라고 고마워하는 교포들도 계셨고요. 그 힘으로 견뎠지요.” 사찰 소개로 시작한 ‘무여 스님 TV’는 지금 경전 독송, 해외 불교 성지 순례, 다양한 스님들과의 대화 등으로 범위를 넓히고 있다. 구독자는 5만4000여 명. 촬영을 도와주는 보살 한 분을 제외하면 대부분 혼자 만든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무여 스님은 “지치고 힘들 때 고요하게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며 명상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삶에 큰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종교를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모두에게 그런 ‘쉼’을 제공하는 채널로 만들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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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소멸 막으려면 교회도 함께 출산 도와야”

    “국민이 있어야 교회도, 신자도 있는 것 아닙니까?” 2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만난 이영훈 담임목사는 “목사가 정부보다 더 저출생 문제 극복에 앞장서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 목사는 2012년 교계에서는 처음으로 매년 출산장려금 지원을 시작했다. 결혼격려금, 미혼모 자립 지원 등 지금까지 순복음교회가 저출생 극복을 위해 지원한 금액은 780억 원에 달한다. 이 목사는 이 같은 공로로 최근 열린 ‘제13회 인구의 날’ 기념식에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이 목사는 “우리나라 출산율이 2명대에서 1명대로 급격히 떨어지는 걸 보면서 이러다가는 국민이 사라져 국가가 소멸하는 날이 오겠다는 두려움이 들었다”고 말했다. 국가도 국민도 없는데 교회가 어떻게 존립할 수 있겠느냐는 것. 이 때문에 저출생 문제 해결이 국가는 물론이고 교회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는 얘기다. 순복음교회는 현재 첫아이는 200만 원, 둘째 300만 원, 셋째 500만 원, 넷째부터는 1000만 원의 출산장려금을 지원하고 있다. 지금까지 수혜자는 5000여 명, 54억 원에 달한다. 올해부터는 세 자녀 갖기 운동도 펼치고 있다. 또 2019년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는 청소년 미혼모들을 돕기 위해 보호시설인 ‘바인센터’를 설립해 자립을 돕고 있다. “청소년 미혼모들은 부모님 집에서 나와 경제적으로 굉장히 어렵지만 서류상 부양가족이 있어 정부 지원도 못 받는 사각지대에 있어요. 고시원 같은 열악한 곳에서 힘겹게 아이를 키우는데 그마저 힘들면 아이를 버리는 경우가 많지요.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이 필요한 사람에게 실질적으로 더 도움이 되도록 촘촘해져야 합니다.” 이 목사는 정부와 정치권의 저출생 극복 정책에 대해 “캠페인, 세미나 등 실질적인 도움도 안 되는, 입만 가지고 하는 것에 한심할 정도로 너무 많은 돈을 쓴다”고 강하게 지적했다. 저출생 문제가 대두된 게 이미 오래전이고 한 해 수십조 예산을 쓰는데도 과거 산아제한 운동 때 만들었던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같이 국민 머리에 ‘탁’ 각인되는 저출생 극복 슬로건 하나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는 “과거 청와대의 한 핵심 인사에게 ‘이제는 아이 한 명당 1억 원씩 지원하는 아주 파격적인 정책이 아니면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조언했더니 대통령 있는 자리에서 자기들끼리 농담 소재로 써먹더라”고도 전했다. 전남 강진군처럼 파격적인 육아수당(7년간 매달 60만 원씩 최대 5000만 원)을 지원한 곳의 출산율이 2022년 93명에서 2023년 154명으로 65.6%나 늘어난 것을 보면 현금성 지원은 분명히 효과가 있다는 것. 지난해 출생아 22만여 명에게 1억 원씩 지급하면 22조 원인데, 저출생 극복 예산으로 그 두 배가 넘는 50조 원 가까이 쓰면서 출산율은 더 떨어져 0.7명대인 것은 헛돈을 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목사는 말로만 저출생 극복을 외치는 국회의 직무유기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는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국회에 대체 입법을 마련하라고 한 게 2019년인데 5년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안 하고, 의원들은 각종 캠페인이나 세미나나 다니면서 입으로만 저출생 극복을 외치고 있다”며 “여야가 300만 원짜리 명품 가방만큼의 관심을 저출생 문제에도 기울이면 이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4-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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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여름 멈춰볼까

    매년 어디로 갈지 고민하게 되는 여름휴가. 번잡함을 피해 조용한 휴식을 만끽하고 싶다면 템플스테이만 한 게 있을까. 17, 18일 기자가 찾은 곳은 백제시대 창건된 것으로 알려진 충남 예산군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덕숭총림 수덕사(주지 도신 스님). 총림(叢林)이란 선원(禪元), 강원(승가대 또는 승가대학원), 율원(율학승가대학원), 염불원을 모두 갖춘 종합수행 도량으로 조계종 25개 교구, 2800여 개 사찰 중 8곳뿐이다. 수덕사 템플스테이에는 1박 2일인 체험형(‘길 없는 길’)과 휴식형(‘일 없는 일’), 청소년을 위한 문화유산 투어(2박 3일), 심화 과정인 ‘하루 선방’(2박 3일) 등이 있다. 체험형에서는 저녁 공양, 새벽 예불, 도량 돌아보기, 암자 순례, 스님과의 차담 등과 함께 참가자 요청에 따라 태극권, 요가, 명상도 할 수 있다. 휴식형은 말 그대로 아무런 구애 없이 편하게 있다 가는 것. 청소년을 위한 문화유산 투어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과 예산·홍성지역 문화유산 탐방을 연계한 것이다. ‘하루 선방’에서는 묵언 수행 등 안거(安居)에 들어가는 스님과 같은 생활을 체험할 수 있다. 이날 기자가 체험한 것은 휴식형. 저녁 공양을 마친 뒤 국보 제49호 대웅전 앞을 산책하는데 장대한 범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녁 예불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다. 법고(북), 목어, 운판(雲板·구름 모양의 금속악기), 범종 순으로 치는데 법고는 육지 동물, 목어는 수중 생물, 운판은 날짐승, 범종은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영(靈)을 제도하기 위해 친다고 한다. 템플스테이를 담당하는 초은 스님은 “범종의 의미는 종소리를 듣는 순간만이라도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이라며 “심지어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빠진 죄인조차 이 순간만큼은 쉬어가길 바라는 자비의 소리”라고 말했다. 모든 지옥은 찰나라도 고통을 당하는 순간과 아닌 순간이 있는데, 무간지옥은 이 간격도 없이 고통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지옥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형벌을 당하는 곳이다. 산새와 계곡 물소리를 벗 삼아 이곳저곳을 산책하는데 돌담 위와 축대 틈새에 사람들이 쌓아 놓은 작은 돌탑이 수없이 보였다. 손가락 한두 마디 크기에서 주먹만 한 것까지 크기도, 높이도 다양한데 10m 높이 돌 틈새에 간신히 쓰러지지 않고 선 조약돌 5, 6개를 올려놓은 탑이 보인다. 얼마나 간절한 소원이면 저 위에까지…. 템플스테이의 숨겨진 매력은 마주치는 스님 누구와도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다. 마침 지나가던 스님과 몇 마디 하다가 “저 쌓인 돌들이 모두 사람들의 번뇌고 아픔인 것 같습니다. 돌이 말을 하는 것 같네요”라고 하자 그는 “마음을 비우고 들으면 세상에 법문 아닌 것이 없지요”라고 답했다. 불교에 무정설법(無情說法)이란 말이 있는데, 사람이 아닌 자연의 사물들이 설법을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새소리, 시냇물 흐르는 소리, 바람 소리 모두 우리에게 무상함을 깨우치는 법문이라는 것이다. 다음 날 새벽, 휴식형이지만 절에 온 김에 새벽예불(오전 3시 반)에 참석하려고 방을 나서는데 비가 세차게 내렸다. 신발이 젖지 않도록 물구덩이를 요리조리 피하려고 애쓰는데 신경만 잔뜩 쓰이고 얼마 가지 못해 다 젖었다. 벗는 게 차라리 낫겠다 싶어 신을 벗었는데 이게 웬걸? 방금까지 길이 아니었던 곳이 길이 되고, 밟지 못할 곳이 없어졌다. 고작 신발 하나 벗었을 뿐인데…. 발은 두 개인데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신지도 못한 ‘신발’을 놓치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며 살아왔을까. 하나만 놓을 수 있어도 어제보다는 편안해질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산문을 나섰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4-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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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발 하나 벗었는데, 길 아닌 곳이 없구나…수덕사 템플스테이 체험

    매년 어디로 갈지 고민하게 되는 여름휴가. 번잡함을 피해 조용한 휴식을 만끽하고 싶다면 템플스테이 만한 게 있을까. 17~18일 기자가 찾은 곳은 백제시대 창건된 것으로 알려진 충남 예산군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덕숭총림 수덕사 (주지 도신 스님). 총림(叢林)이란 선원(禪元), 강원(승가대 또는 승가대학원), 율원(율학승가대학원), 염불원을 모두 갖춘 종합수행 도량으로 조계종 25개 교구, 2800여 개 사찰 중 8곳뿐이다.수덕사 템플스테이에는 1박 2일인 체험형(‘길 없는 길’)과 휴식형(‘일 없는 일’), 청소년을 위한 문화유산 투어(2박 3일), 심화 과정인 ‘하루 선방’(2박 3일) 등이 있다. 체험형에서는 저녁, 새벽 예불, 도량 돌아보기, 암자 순례, 스님과의 차담 등과 함께 참가자 요청에 따라 태극권, 요가, 명상도 할 수 있다. 휴식형은 말 그대로 아무런 구애 없이 편하게 있다 가는 것. 청소년을 위한 문화유산 투어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과 예산·홍성지역 문화유산 탐방을 연계한 것이다. ‘하루 선방’에서는 묵언 수행 등 안거(安居)에 들어가는 스님과 같은 생활을 체험할 수 있다.이날 기자가 체험한 것은 휴식형. 저녁 공양을 마친 뒤 국보 제49호 대웅전 앞을 산책하는데 장대한 범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녁 예불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다. 법고(북), 목어, 운판(雲板·구름 모양의 금속악기), 범종 순으로 치는데 법고는 육지 동물, 목어는 수중 생물, 운판은 날 짐승, 범종은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영(靈)을 제도하기 위해 친다고 한다.템플스테이를 담당하는 초은 스님은 “범종의 의미는 종소리를 듣는 순간 만이라도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이라며 “심지어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빠진 죄인조차 이 순간만큼은 쉬어가길 바라는 자비의 소리”라고 말했다. 모든 지옥은 찰나라도 고통을 당하는 순간과 아닌 순간이 있는데, 무간지옥은 이 간격도 없이 고통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지옥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형벌을 당하는 곳이다.산새와 계곡 물소리를 벗 삼아 이곳 저곳을 산책하는데 돌담 위와 축대 틈새 틈새에 사람들이 쌓아놓은 작은 돌탑이 수 없이 보였다. 손가락 한두 마디 크기에서 주먹 만한 것까지 크기도, 높이도 다양한데 10m 높이 돌 틈새에 간신히 쓰러지지 않고 선 조약돌 5, 6개를 올려놓은 탑이 보인다. 얼마나 간절한 소원이면 저 위까지….템플스테이의 숨겨진 매력은 마주치는 스님 누구와도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다. 마침 지나가던 스님과 몇 마디 하다가 “저 쌓인 돌들이 모두 사람들의 번뇌고 아픔인 것 같습니다. 돌이 말을 하는 것 같네요”라고 하자 그는 “마음을 비우고 들으면 세상에 법문 아닌 것이 없지요”라고 답했다. 불교에 무정설법(無情說法)이란 말이 있는데, 사람이 아닌 자연의 사물들이 설법을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새소리, 시냇물 흐르는 소리, 바람 소리 모두 우리에게 무상함을 깨우치게 하는 법문이라는 것이다.다음 날 새벽, 휴식형이지만 온 김에 새벽예불(오전 3시 반)에 참석하려고 방을 나서는데 비가 세차게 내렸다. 신발을 젖지 않으려고 물구덩이를 요리조리 피하려고 애쓰는데 신경만 잔뜩 쓰이고 얼마 가지 못해 다 젖었다. 벗는 게 차라리 낫겠다 싶어 신을 벗었는데 이게 웬걸? 방금까지 길이 아니었던 곳이 길이 되고, 밟지 못할 곳이 없어졌다. 고작 신발 하나 벗었을 뿐인데…. 발은 두 개인데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신지도 못한 ‘신발’을 놓치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며 살아왔을까. 하나만 놓을 수 있어도 어제보다는 편안해질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산문을 나섰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4-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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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외국인이 본 한국, 이렇게 재밌다고?

    몇 년 전 일본 돗토리현 문화관광 담당 공무원들을 만났을 때다. 한국에는 찜질방이란 곳이 있는데 목욕하면서 숙박도 가능하고 컴퓨터 게임, 영화 감상도 할 수 있다고 했더니 굉장히 신기해했다. 그 모습에 신이 나서 좋은 곳은 볼링장, 노래방, 뜨거운 사우나는 물론이고 냉동고 같은 ‘얼음방’도 있다고 했더니 ‘에? 에?’ 하며 상상이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것이 외국인에게는 굉장히 재미있고 신기한 일이라는 걸 그때 피부로 체감한 것 같다. 이 책에는 그런, 우리는 다 알지만 외국인 눈에는 신기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 담겼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레스토랑 가격으로 굴 한 개에 4∼5달러가 기본이고, 더 비싼 것도 있다. 시장에서도 굴을 개수를 세서 판매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굴을 개수로 판매하지 않고 무게를 달아서 판매한다. 마트에서는 껍데기를 제거한 굴 20마리쯤을 5달러 내외에 판매한다.’(‘서울, 잠들지 않는 도시’ 중) 참 묘한 책이다. 보다시피 솔직히 우리에게는 별로 새롭지도 않은 내용. 그런데 한국을 모르는 외국인이 읽으면서 신기해할 생각을 하면 이상하게 재미있다. 삼겹살을 처음 먹어보고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는 서양인이나, ‘도전!’을 외치고 청양고추를 먹었다가 뒤로 넘어지는 일본인을 유튜브로 보는 느낌이랄까. 저자는 한국에서는 물건을 분실할 위험이 매우 낮다며 카페와 함께 경기가 열리는 날 지하철역 구내 물품 보관함 사례도 소개한다. 몇만 명이 몰려 보관함이 부족해지면 그 근처에 그냥 놓아뒀다가 경기 종료 후 가져가는 가방이 수백 개나 된다는 것. 택배 물건을 집 앞에 놓고 가도, 심지어 택배 기사가 차 문을 열어놓고 배달을 가도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다는 걸 알면 놀라지 않을 외국인이 몇 명이나 있을까. 게다가 트럭이든, 오토바이든 시동이 걸린 채로 말이다. 같은 내용을 영어로도 번역해 책이 꽤 두껍다. 저자는 한글 원고를 인공지능(AI)과 챗GPT를 활용해 영어로 옮겼다고 했는데, AI가 한국말을 어떻게 번역했는지 보는 것도 소소하게 재미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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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한복판서 禪 명상대회-불교도 대법회

    1700년 전통의 한국 불교와 K명상을 세계에 알리는 ‘2024 불교도 대법회’가 9월 23∼28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다. 특히 마지막 날인 28일에는 국내외 선(禪) 명상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국제 ‘선’ 명상대회도 열릴 예정이다.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18일 “전통 불교 문화 계승 행사를 통해 한국 불교의 아름다움과 정체성을 함양하고, ‘선’ 명상 대중화를 통해 국민 행복에 기여하기 위해 9월 23∼28일 서울 광화문광장 특설무대와 광화문광장 옆 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에서 ‘2024 불교도 대법회’와 국제 ‘선’ 명상대회를 개최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대법회에서는 △삼귀의계·오계 수계법회, 승보공양 등 전통문화 재현 △명상, 전통 불교 문화 및 템플스테이 체험 △국민음악회 △2024 국제 ‘선’ 명상대회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이 밖에 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에서는 대법회 기간 중 ‘마음의 평화, 행복의 길’을 주제로 전통 한지로 제작한 장엄등 등 20여 종류의 전통 등도 전시된다. 또 28일 광화문광장에서는 전국 3만여 명의 불자들이 참석하는 연합수계법회도 열린다. 불교도 대법회의 대미는 28일 오후 5시부터 광화문 특설무대에서 펼쳐지는 ‘사부대중과 함께하는 2024 국제 선 명상대회’.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주재하는 이번 대회에는 달라이라마 통역가이자 스탠퍼드 자비명상 핵심 개발자인 툽텐 진파 박사, 구글 명상 지도자 차드멩 탄, 우파야 젠 센터 주지 조앤 핼리팩스 등 해외 유명 명상 지도자들도 참석한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4-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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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계종, 9월 28일 ‘국제 선명상대회’ 광화문 일대에서 개최

    1700년 전통의 한국불교와 K 명상을 세계에 알리는 ‘2024 불교도 대법회’가 9월 23~28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다. 특히 마지막 날인 28일에는 국내외 선(禪)명상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국제 ‘선’ 명상대회도 열릴 예정이다.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18일 “전통 불교문화 계승 행사를 통해 한국불교의 아름다움과 정체성을 함양하고, ‘선’ 명상 대중화를 통해 국민 행복에 기여하기 위해 9월 23~28일 서울 광화문광장 특설무대와 광화문광장 옆 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에서 ‘2024 불교도 대법회’와 국제선명상대회를 개최키로 했다”라고 밝혔다. 이번 대법회에서는 △삼귀의계·오계 수계법회, 승보공양 등 전통문화 재현 △명상, 전통 불교문화 및 템플스테이 체험 △국민음악회 △2024 국제 ‘선’ 명상대회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이밖에 의정부지 역사유적공원에서는 대법회 기간 중 ‘마음의 평화, 행복의 길’을 주제로 전통 한지로 제작된 장엄등 등 20여 종류의 전통 등도 전시된다. 또 28일 광화문광장에서는 전국 3만여 명의 불자들이 참석하는 연합수계법회도 열린다. 이번 연합수계법회에는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전계사로, 원로의원이 지도위원으로 나선다. 수계법회 후에는 승보공양 법회가 봉행 된다. 불교도 대법회 대미는 28일 오후 5시부터 광화문 특설무대에서 펼쳐지는 ‘사부대중과 함께하는 2024 국제 선명상대회’.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주재하는 이번 대회에는 달라이라마 통역가이자 스탠퍼드 자비명상 핵심 개발자인 툽텐 진파 박사, 구글 명상 지도자 차드 멩 탄, 우파야 젠 센터 주지 조안 핼리팩스, ‘마인드풀니스 인 벨’ 편집장 팝루 스님, 수행 안거센터 운영자 직메 린포체 등 해외 유명 명상 지도자들도 참석한다. 조계종은 2022년 진우 스님 취임 이후 종단 정책으로 한국 불교의 전통 수행법인 간화선에 기반한 선명상 프로그램을 개발해 왔으며, 지난 5월 일부를 대중에 공개했다. 진우 스님은 지난달부터 자신이 직접 강의하는 8주 코스의 ‘사회 리더를 위한 선명상 아카데미’를 운영 중이다.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불교도 대법회를 통해 아름다운 불교 전통과 거룩하고 장엄한 불교 의식을 전 국민에게 알리고, 젊고 새로운 불교의 저력을 펼쳐 보일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아물러 누구나 알기 쉽고 따라 하기 쉬운 K 명상을 통해 국민 모두 마음의 평안을 찾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4-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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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배당 단상 위 으리으리 목사 의자, 교회 권위주의 산물”

    “예배당 강단 위의 으리으리한 의자는 한국 교회가 얼마나 권위주의에 빠져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지요.” 11일 충남 천안 백석대에서 만난 주도홍 전 백석대 부총장(부설 신학연구소장·목사)은 “한국 교회가 시간이 지나면서 초기 모습을 잃고 권위주의에 빠져버렸다”며 이렇게 말했다. 백석대는 대한예수교장로회(백석)계 대학으로, 종교개혁 분야 전문가인 주 전 부총장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국 교회 권위주의의 한 단면으로 강단 위 의자 문제를 지적했다. 이 글은 개신교계 내에서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주 전 부총장은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루터나 칼뱅이 설교했던 유럽 교회에 가보면 설교단만 있을 뿐, 강단 위에 담임목사 등을 위한 별도의 좌석이 없다”고 말했다. 하나님 앞에서는 어떠한 계급도 없고 모두가 동등한 성도이기에 목사도 설교할 때만 단에 오를 뿐, 마치고 나면 설교단에서 내려와 평신도들과 함께 나란히 앉아 다른 목사의 설교를 듣는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 교회, 특히 대형 교회에서는 담임목사 등 위계가 높은 목회자 여러 명이 설교를 마친 뒤에도 단상에 마련된 큰 의자에 앉아 다음 설교자와 단 아래 신도들을 내려다보는 모습이 일상적이다. 주 전 부총장은 “큰 교회일수록 목사의 위엄과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 강단이 엄청나게 크고, 강대상(설교단)과 강단 위 의자도 예술품 수준의 값비싼 것을 쓴다. 의자는 시중에서 파는 것이 아니라 작가에게 주문 제작한 것이며, 강대상을 장식하는 꽃에도 많은 돈을 쓴다”고 말했다. 이런 모습은 단순히 의자의 물리적 배치나 장식을 넘어 목사, 장로, 권사 등 교회 내 서열화, 목회자와 성도 간 수직적 관계, 당회 중심의 일방적 의사결정 구조 등 한국 교회의 권위주의를 보여주는 단면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일부 교회에는 목사가 서는 강단과 신도석 중간 높이로 별도 단을 만들어 사회자나 권사, 집사 등 직급이 낮은 사람이 발언할 때 서도록 하고, 심지어 여성 전도사는 단 아래에서 마이크만 놓고 말하도록 한다는 것. 그는 “여성 전도사가 강단 위에도 못 올라가는 곳에서 여성에게 목사 안수를 줄 리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주 전 부총장은 “한국 교회가 1970, 80년대 급격히 성장하면서 장점도 많지만 성공, 출세, 교회의 호화로움 등 물질적 풍요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보는 잘못된 믿음(번영신학)이 자리 잡는 문제가 생겼다”고 지적했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교회가 대형화되고, 그러기 위해 목사의 권위를 높이는 쪽으로 교회 문화가 흘렀다는 것이다. 그는 “목사의 권위는 성경에서 이르는 대로 가난하고, 불쌍하고, 어려운 사람들 곁에서 희생하고 봉사하며 생기는 것이지 신도들보다 높은 곳에 앉아 있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천안=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4-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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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바흐 아내作?

    ‘우리가 악장 자리에 여성을 고용하지 않음을 알려드리게 돼 유감입니다. 우리 오케스트라에 이미 많은 여성 연주자가 있으나 맨 앞자리는 남성으로 채워지기를 원합니다. (중략) 오케스트라의 맨 앞자리는 남성이 앉는 것이 더 낫다고 인생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스위스 출신의 여성 바이올리니스트인 마들렌 카루초는 1982년 취리히 체임버 오케스트라 악장 오디션에 응모했다가 이런 편지를 받았다. 분노한 카루초는 같은 해 다른 오케스트라의 오디션에 지원했고, 1882년 창단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00년 역사상 첫 여성 연주자(단원)가 됐다. 여성 단원을 허용한 베를린 필조차 같은 해 종신 지휘자 카라얀이 클라리넷 수석으로 임명한 여성 연주자(자비네 마이어)는 반대했다. 지휘자와 단원들의 갈등이 커지자, 마이어는 이듬해 스스로 베를린 필을 떠났다. 마이어는 지금 ‘클라리넷의 여제’로 불린다. 이 책은 다리를 벌려 연주하는 첼로는 정숙한 여성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식의 성차별이 가득했던 시절, 자신의 재능을 펼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여성 음악가들에 관한 이야기다. 클래식 전문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음악원 입학을 거부당하고, 심지어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거부하는 세상에서 자기 이름을 드러내고 당당하게 활동할 수 있는 여성 음악가는 거의 없었을 것이라 말한다. 이런 까닭에 수없이 많은 재능있는 여성 음악가들의 이름이 역사 속에서 지워졌는데, 저자는 한 연구 결과를 인용해 심지어 ‘신의 목소리’로 표현되는 저 유명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도 바흐의 두 번째 부인인 안나 마그달레나 바흐가 작곡했을 거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남성의 활약을 축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정받을 가치가 있는 이야기들을 정당하게 평가하기 위해 썼다고 말한다. 도발적인 책의 제목은 모차르트가 여성이었다는 뜻이 아니다. 성만 들어도 천재적인 백인 남성을 떠올리는 클래식 세계 뒤에 동생처럼 뛰어난 음악가였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대서 사라진 누나(마리아 안나 모차르트) 같은 이가 많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비유한 것이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4-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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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충 살면 편하지요… 살아가는 게 힘들면 열심히 사는 겁니다”

    “지금 사는 게 힘들다고 느껴진다면 사실은 자신이 최선을 다해 조심조심, 열심히 살고 있다는 의미예요. 아무것도 안 하거나 대충 살고 있다면 힘든 걸 느낄 수도 없으니까요.” 승려라면 누구나, 전국 모든 사찰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읊는다는 반야심경(般若心經). 서유기의 모델인 당나라 삼장법사 현장이 천축국에서 전래한 54구 260자의 짧은 내용이지만, 불교의 핵심 사상이 응축돼 있어 어떤 불교 행사에서도 빼놓지 않는 경전 중의 경전이다. 최근 ‘이제서야 이해되는 반야심경(사진)’을 출간한 원영 스님(대한불교조계종 청룡암 주지)은 “지혜란 뜻의 ‘반야’는 일상에서 활용하는 소소한 지혜가 아니라 만물이 ‘공(空)’한 줄 아는 통 큰 지혜”라며 “모든 사람이 반야심경을 통해 얻은 지혜로 세상을 더 잘 품고, 멋진 삶을 살기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고 말했다. ―만물이 ‘공’하다는 게 무슨 말인지요. “일체 만물에는 원인과 결과(연기·緣起)가 있지요. 하지만 고정된 게 아니라 연속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의지하며 변합니다. 처한 조건이나 결과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고, 단 한 순간도 동일한 상태에 머물지 않기에 ‘무상(無常·항상함이 없다)’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그래서 공은 ‘아무것도 없다(無)’가 아니라 조건에 따라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고, 또 무엇도 만들지 않을 수 있는 원리를 담은 이치를 말합니다. 그 이치를 빌 공(空)으로 쓰기로 약속한 거죠.” ―알 듯 모를 듯합니다만…. “하하하, 겨울에 귤나무를 베어 아무리 안을 찾아본들 귤이 있습니까? 그렇다고 그 나무에 귤이 없는 것인가요? 수확 철이 되면 주렁주렁 나오겠지요. 지금은 없으나 없다고 할 수 없는, 이것을 가리켜 ‘공’이라고 합니다. 햇볕과 물을 주고 농부가 잘 가꾸면 탐스러운 귤이 나올 테고, 그러지 못하면 열매를 맺지 못하거나 볼품없겠지요. 색즉시공(色卽是空), ‘색(물질로 이루어진 것)이 공과 다르지 않다’라고 하는 것은 이런 까닭입니다.” ―앞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기에 사는 게 힘들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출가하기 전인데, 저도 한때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할 정도로 사는 게 너무너무 힘들었던 적이 있어요. 앞도 보이지 않는 절벽 길을 매달려 가는 느낌이었는데, 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 험하게 걸었던 그 시간이 내 삶에 가장 힘을 비축했던 성장기였더라고요. 요즘 힘든 사람이 많고, 특히 젊은 세대는 더 그런데… 힘들다는 것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기에 느끼는 것이지요. 결코 힘듦으로만 끝나지 않아요. 지금이 한겨울의 귤나무인 순간일 뿐이죠. 지금 가장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면,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삶은 분명히 바뀝니다.” ―반야심경을 이해하면 마음의 괴로움도 줄일 수 있다고요. “예를 들어 상사가 인사를 안 받았어요.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떠오르겠죠. ‘내가 뭘 잘못했나’ ‘나를 싫어하나’ ‘나한테 왜 저러지?’ 하며 하루 종일 신경 쓰이고 괴롭겠죠. 근데 상사는 단지 딴생각 때문에 못 들은 것뿐일 수 있어요. 없는 고통을 스스로 만들어 자신에게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을 계속 쏜 거죠. ‘공’을 깊이 이해하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조건에 따라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도, 안 만들 수도 있는 게 ‘공’이니까요. 뛰어가서 더 친절하게 인사를 한다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될 테고, 그러면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은 없겠지요.”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4-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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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영 스님 “사는게 힘들다면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는 의미”

    “지금 사는 게 힘들다고 느껴진다면 사실은 자신이 최선을 다해 조심조심, 열심히 살고 있다는 의미에요. 아무것도 안 하거나 대충 살고 있다면 힘든 걸 느낄 수도 없으니까요.” 승려라면 누구나, 전국 모든 사찰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읊는다는 반야심경(般若心經). 서유기의 모델인 당나라 삼장법사 현장이 천축국에서 전래한 54구 260자의 짧은 내용이지만, 불교의 핵심 사상이 응축돼 있어 어떤 불교 행사에서도 빼놓지 않는 경전 중의 경전이다. 최근 ‘이제서야 이해되는 반야심경’을 출간한 원영 스님(대한불교조계종 청룡암 주지)은 “지혜란 뜻의 ‘반야’는 일상에서 활용하는 소소한 지혜가 아니라 만물이 ‘공(空)’한 줄 아는 통 큰 지혜”라며 “모든 사람이 반야심경을 통해 얻은 지혜로 세상을 더 잘 품고, 멋진 삶을 살기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라고 말했다. ―만물이 ‘공’하다는게 무슨 말인지요. “일체 만물에는 원인과 결과(연기·緣起)가 있지요. 하지만 고정된 게 아니라 연속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의지하며 변합니다. 처한 조건이나 결과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고, 단 한 순간도 동일한 상태에 머물지 않기에 ‘무상(無常·상이 없다)’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그래서 공은 ‘아무 것도 없다(無)’가 아니라 조건에 따라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고, 또 무엇도 만들지 않을 수 있는 원리를 담은 이치를 말합니다. 그 이치를 빌 공(空)으로 쓰기로 약속한 거죠.” ―알 듯 모를 듯합니다만….“하하하, 겨울에 귤나무를 베어 아무리 안을 찾아 본들 귤이 있습니까? 그렇다고 그 나무에 귤이 없는 것인가요? 수확 철이 되면 주렁주렁 나오겠지요. 지금은 없으나 없다고 할 수 없는, 이것을 가리켜 ‘공’이라고 합니다. 햇볕과 물을 주고 농부가 잘 가꾸면 탐스러운 귤이 나올 테고, 그렇지 못하다면 열매를 맺지 못하거나 볼품없겠지요. 색즉시공(色卽是空), ‘색(물질로 이루어진 것)이 공과 다르지 않다’라고 하는 것은 이런 까닭입니다.” ―앞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기에 사는 게 힘들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출가하기 전인데, 저도 한때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할 정도로 사는 게 너무너무 힘들었던 적이 있어요. 앞도 보이지 않는 절벽 길을 매달려 가는 느낌이었는데, 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 험하게 걸었던 그 시간이 내 삶에 가장 힘을 비축했던 성장기였더라고요. 요즘 힘든 사람이 많고, 특히 젊은 세대는 더 그런데… 힘들다는 것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기에 느끼는 것이지요. 결코 힘듦으로만 끝나지 않아요. 지금이 한겨울의 귤나무인 순간일 뿐이죠. 지금 가장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면,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삶은 분명히 바뀝니다.” ―반야심경을 이해하면 마음의 괴로움도 줄일 수 있다고요.“예를 들어 상사가 인사를 안 받았어요.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떠오르겠죠. ‘내가 뭘 잘못했나’ ‘나를 싫어하나’ ‘나한테 왜 저러지?’ 하며 하루 종일 신경 쓰이고 괴롭겠죠. 근데 상사는 단지 딴생각 때문에 못 들은 것뿐일 수 있어요. 없는 고통을 스스로 만들어 자신에게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을 계속 쏜 거죠. ‘공’을 깊이 이해하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조건에 따라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도, 안 만들 수도 있는 게 ‘공’이니까요. 뛰어가서 더 친절하게 인사를 한다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될 테고, 그러면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은 없겠지요.”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4-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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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故 김수환 추기경, 교황청서 시복 추진 승인

    고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1922∼2009·사진)의 시복(諡福) 추진을 교황청이 승인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5일 “지난달 18일 로마 교황청 시성부가 정순택 대주교 앞으로 보낸 답서에서 김 추기경 시복 추진을 ‘장애 없음(Nihil Obstat)’으로 알려왔다”고 밝혔다. ‘장애 없음’은 교황청 시성부에서 검토한 결과 시복 추진에 아무런 이의가 없다는 선언이다. 이에 따라 김 추기경은 공식 시복 추진 대상자인 ‘하느님의 종’으로 칭할 수 있게 됐다. 시복은 가톨릭에서 순교자나 성덕이 높은 사람을 사후에 복자(福者) 품위에 공식적으로 올리는 것으로 성인의 전 단계. 복자가 된 후에는 다시 성인인 시성(諡聖)으로 추진할 수 있다. 서울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는 김 추기경 시복 안건 역사위원회를 구성하고, 김 추기경의 생애와 영웅적 덕행, 성덕의 명성에 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김 추기경은 1968년 착좌 후 1998년 퇴임 때까지 30년간 서울대교구장으로 사목하면서 개인적인 덕행은 물론이고 한국 교회의 성장과 위상을 높이고 인권과 민주주의 정착을 위한 헌신으로 많은 이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특히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연민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가장 소외된 이들을 예수 그리스도처럼 대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벗’으로 불렸다. 선종 후에는 각막 기증을 통해 마지막까지 남김없이 내어주는 사랑을 실천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4-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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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선악 너머의 업적, 영웅일까 빌런일까

    남들의 생각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다. 결과와 후대의 평가에 따라 위인이나 영웅 또는 빌런이 되기도 하는데, 공통점은 선악의 개념을 떠나 ‘오직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한다는 점이다. 이 중에는 자신이 원하는 걸 성취하기 위해 자신은 물론 남의 목숨까지도 고려하지 않는 이도 있다. 이 책은 남아공 태생으로 영국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한 저자가 당대 관습에 저항한 12명의 모험을 담은 것이다.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행보를 보인 인물의 발자취를 추적하며 그들의 내면을 서술했다. 하지만 보통의 위인전과는 다르다. 인물 선정과 서술 방식에 선악의 개념을 반영하지 않았기에 읽다 보면 왜 이런 사람에 대해 썼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저자는 자신이 기술한 사람들을 개인과 사회의 역사에 활력을 불어넣는 ‘모험가’라고 부른다. “모험심이 강한 사람들은 고상함과는 거리가 멀고 정해진 법을 따르지도 않을뿐더러, 그들에게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는 순간 삶의 흥미를 잃고 만다”는 것이다. 책에 나오는 인물 중에는 영웅과 악인의 두 모습을 가진 이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사기꾼이나 난봉꾼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공통점은 당대 사람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했고,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철저히 선악의 평가를 배제하고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어떻게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는지 그 모험의 과정을 추적했다. 책의 부제가 The Story of Adventure(모험 이야기)인 것은 그런 까닭일 것이다. 약 100년 전 나온 책임에도 2016년 일론 머스크가 기자회견 중 이 책을 극찬하면서 아마존닷컴 중고책 시장에서 가격이 1500% 급등한 일화가 있다. 저자가 말한 ‘모험가’가 숱한 기행을 보이며 뭔가를 보여주고 있는 머스크 자신을 잘 대변해 준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4-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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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황청, 김수환 추기경 시복 추진 승인

    고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1922∼2009·사진)의 시복(諡福) 추진을 교황청이 승인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5일 “지난달 18일 로마 교황청 시성부가 정순택 대주교 앞으로 보낸 답서에서 김 추기경 시복 추진을 ‘장애 없음(Nihil Obstat)’으로 알려왔다”라고 밝혔다. ‘장애 없음’은 교황청 시성부에서 검토한 결과 시복 추진에 아무런 이의가 없다는 선언이다. 이에 따라 김 추기경은 공식 시복 추진 대상자인 ‘하느님의 종’으로 칭할 수 있게 됐다. 시복은 가톨릭에서 순교자나 성덕이 높은 사람을 사후에 복자(福者) 품위에 공식적으로 올리는 것으로 성인의 전 단계. 복자가 된 후에는 다시 성인인 시성(諡聖)으로 추진할 수 있다. 서울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는 김 추기경 시복 안건 역사위원회를 구성하고, 김 추기경의 생애와 영웅적 덕행, 성덕의 명성에 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김 추기경은 1968년 착좌 후 1998년 퇴임 때까지 30년간 서울대교구장으로 사목하면서 개인적인 덕행은 물론 한국교회의 성장과 위상을 높이고 인권과 민주주의 정착을 위한 헌신으로 많은 이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특히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연민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가장 소외된 이들을 예수 그리스도처럼 대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벗’으로 불렸다. 선종 후에는 각막 기증을 통해 마지막까지 남김없이 내어주는 사랑을 실천했다. 서울대교구는 지난해 3월 김 추기경의 시복을 추진키로 했으며, 한국 천주교주교회의는 같은 해 10월 정기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이에 동의했다. 한국 천주교회에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21∼1846) 등 103명의 성인과 124명의 복자가 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4-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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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인은 수어가 모국어인 소수 집단… 더 많은 농인 사제 배출되길”

    “‘당신이 포기하면 가톨릭 농인(聾人·청각장애로 인해 수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 교회에 대한 논문을 쓰는 농인은 아마 없을 것’이라는 말에 힘을 냈습니다.” 박민서 베네딕토 신부(56)는 지난달 26일 동아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논문지도 교수님의 응원이 큰 힘이 됐다”며 이렇게 말했다. 박 신부는 올 5월 미국 시카고 가톨릭연합신학대학원에서 ‘에파타! 시노달리타스에 관한 시노드에 응답하는 농인 교회’를 주제로 실천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아시아 최초의 농인 사제. 2021년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으로부터 해외선교 사제로 발령받아 현재 미국 워싱턴 대교구에서 사목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농인 사제가 농인들의 신앙생활에 관해 직접 연구하고 논문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 세계에 농인 사제가 20여 명밖에 안 돼 그동안 농인의 입장에서 신앙생활을 연구한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가능하면 기사에서도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청각장애인’ 대신 ‘농인’이라는 말을 써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수어로 의사소통하는 차이만 있을 뿐, 이것이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이 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논문에서 “많은 농인 학자가 ‘농인을 장애인으로 보지 않고 언어적 소수 집단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썼다. 농인은 수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라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다를 것이 없어서다. “모든 기준과 시선은 청인(聽人·청력의 소실이 거의 없는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지요. 하느님 앞에서 청인과 농인은 평등합니다. 청인의 입장과 기준으로 농인을 판단하는 것은 농인들을 힘들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어로 논문을 쓰는 것은 일반인도 쉽지 않은 일. 수어가 모국어 역할을 하는 대부분의 농인에게는 몇 곱절 더 힘든 길이다. 그는 두 살 때 홍역으로 청각·언어 장애를 가졌다. 박 신부는 “대부분의 한국 농인에게 한국어는 제2의 외국어”라며 “여기에 한국 수어와 많이 다른 미국 수어도 따로 배워야 했다”고 말했다. 강의를 듣는 데는 미국 수어 통역사 2명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의 농인 신자는 약 1만 명. 서울대교구 에파타성당, 인천교구 청언성당 등 농인성당이 있지만 대부분은 일반 성당에서 수어 통역으로 미사에 참례한다. 박 신부는 “다른 나라 말을 통역을 통해 들으면 답답한 것처럼 수어 통역으로는 신부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당연히 농인 사제나 수어를 하는 일반 사제가 직접 주관하는 미사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농인 사제는 여전히 그가 유일하다. (서울대교구에 따르면 올 2월 서울대교구 명동대성당에서 김동준 부제가 부제품을 받았다. 김 부제가 사제가 되면 농인으로는 두 번째 신부가 된다.) 한국에서 가톨릭 사제가 되려면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한 남자여야 하고, 장애가 있는 경우 천주교 교구장이 예외적으로 허락해야만 사제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박 신부는 “저도 당시 서울대교구장인 고 정진석 추기경님이 농인을 위해 사목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차원에서 예외적으로 특별히 사제품을 주었던 것”이라며 “앞으로는 좀 더 많은 농인 사제가 배출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4-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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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주사 석불석탑군, 풍수-도교-천문학까지 담아낸 희귀 사례”

    “다양한 형태의 석불상과 석탑, 별자리나 칠성신앙과 관련된 칠성석 등이 포함된 화순 운주사 석불석탑군은 한국뿐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입니다.” 지난달 전남 화순군청에서 한국, 태국, 일본, 파키스탄의 학자들이 참여한 ‘2024 화순 운주사 석불석탑군 세계유산 등재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일명 ‘천불천탑의 신비’로도 불리는 운주사 석불석탑군은 201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됐다. 신라 말 도선국사가 세웠다고 전하는 운주사는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에 고려 승려 혜명이 무리 1000여 명과 함께 천불천탑을 조성했다는 기록이 있다. 10∼16세기 말 조성된 다양한 석불과 석탑이 산등성이 곳곳에 있는데, 현재 남아있는 것은 석조불감(보물 제797호), 9층 석탑(보물 796호), 원형다층석탑(보물 798호), 길이 12m의 와불 등 석불 108구와 석탑 21기다. 이 밖에 하늘의 별자리를 거대한 북두칠성 모양의 원반석으로 구현한 칠성석은 국내 유일의 별자리 거석 문화유산이다. 특히 각 칠성석의 크기와 배치가 실제 보이는 별의 겉보기 등급과 거리에 비례하도록 의도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신앙 차원을 넘어 천문학적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경내에 불상과 불탑의 석재를 채굴했던 채석장과 석재 운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도 독특한 점. 세계유산 잠정 등록 때도 이런 점이 높이 평가됐다. 학술대회에서 박경식 동국대 명예교수(사학과)는 “운주사 와불은 다른 와불과 달리 다리를 뻗지 않고 가부좌를 틀고 있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창의성을 갖고 있어 이것만으로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충분히 등재될 수 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또 “운주사 석불석탑군은 불교라는 틀 속에서 풍수, 도교, 천문학 등 다양한 문화·종교적 교류의 결정체로 매우 탁월한 가치를 가진, 세계 어느 나라 불교 사찰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석조 기념물의 보고”라고 설명했다. 화순군은 9월 국가유산청에 ‘운주사 석불석탑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우선등재목록으로 신청할 계획이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4-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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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핫플에 둥지 튼 ‘저스트비 홍대선원’… “명상은 산속보다 사는 곳에서 해야”

    “젊은이들로 북적이는 ‘핫 플레이스’에서 명상이 되냐고요? 그런 곳에서도 잘되는 게 진짜 명상이죠.” 17일 서울 서대문구 ‘저스트비(Just Be) 홍대선원’에서 만난 주지 준한 스님(46)은 왜 대한민국에서 가장 번잡한 곳에 선원(禪院)을 차렸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2022년 10월 문을 연 홍대선원은 선원과 템플스테이, 게스트하우스를 접목한 곳으로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불과 300여 m 떨어져 있다. 지하 1층∼지상 5층인 건물은 공양간, 로비 겸 차를 마시는 ‘티 테이블’, 객실과 사무실, 명상·요가 등을 하는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공양간에서는 매일 아침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다양한 채식 음식이 제공된다. 세계 각국 젊은이들이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티 테이블’은 공짜. 품질과 종류가 웬만한 전문 티 하우스 못지않은데, 홍대선원을 응원하는 전국 사찰과 스님들이 무료로 차를 보내주기 때문이다. 이곳을 다녀간 사람은 지난해에만 40여 개국 6000여 명에 이른다. 준한 스님은 “대부분 삶의 의미와 자아를 찾는 20, 30대 젊은이들”이라며 “자원봉사자 50여 명 중 상당수가 이렇게 다녀간 게 인연이 된 외국인들”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구글에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비영리단체로 인정해 검색창 상단에 올려주는 지원도 받고 있다. 준한 스님은 홍대 앞에 자리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명상의 궁극적 목표는 명상하지 않고 있을 때도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편하게 있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삶의 대부분이 일상생활, 도시에서 이뤄지는데 멀리 떨어진 산속에서만 명상이 제대로 된다면 곤란하지 않으냐”고 했다. 선원이다 보니 건물 안에 법당이 있지만 종교 행위보다는 주로 좌선, 소리 명상, 춤 명상, 다도, 선 태극권, 요가 등 각종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장소로 쓰인다. 각 프로그램을 가르치는 선생님 섭외도 장소 덕을 톡톡히 봤다. 준한 스님은 “동네가 워낙 ‘핫 플레이스’이다 보니 자기 분야에서 독특한 내공을 가진 숨은 고수들을 많이 알게 됐다”며 “춤 명상이라는 독특한 명상도 그런 인연으로 하게 됐다”고 말했다. 평소 어떻게 하면 현대인들의 굳은 마음을 풀어줄 수 있을지 방법을 고민하던 차에 한 댄서가 춤 명상을 제안한 것. 일종의 현대무용 같은 동작을 따라 하는 것인데, 마음이 굳으면 몸이 딱딱해지는 것처럼 역으로 몸을 부드럽게 움직이면서 마음을 푸는 원리라고 한다. ‘모태 불자’였던 그는 중학교를 마치고 미국으로 가 그곳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했다. 대학 전공은 건축학과 경영학. 졸업 후에는 명상센터와 한국의 사찰음식 등 각 나라의 채식 요리를 접목한 창업을 할 계획이었는데, 재학 중 큰 교통사고를 겪으면서 출가하게 됐다고 한다. “출가 후에는 당연히 수행에만 집중했어요. 그런데 2020년경 보림(保任·깨달은 후 더욱 갈고닦는 불교 수행법) 1000일 기도를 얼마 안 남기고 한 불자를 만났지요. 홍대에서 게스트하우스를 하는데 운영이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인연이다 싶어 바로 임대차 계약을 했지요.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하하.” 그는 “종교적 색채는 최대한 빼고 재미와 위로가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그런 점이 청년들에게 호응을 얻은 것 같다”며 “모든 병은 마음에서 비롯되기에 이곳을 찾는 누구나 삶의 힘을 얻어 갈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4-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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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핫플레이스’에서 명상이 되냐고요? 그런 곳에서도 잘되는 게 진짜 명상이죠”

    “젊은이들로 북적이는 ‘핫플레이스’에서 명상이 되냐고요? 그런 곳에서도 잘되는 게 진짜 명상이죠.”17일 서울 서대문구 ‘저스트비(Just Be) 홍대선원’에서 만난 주지 준한 스님(46)은 왜 대한민국에서 가장 번잡한 곳에 선원(禪院)을 차렸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2022년 10월 문을 연 홍대선원은 선원과 템플스테이, 게스트하우스를 접목한 곳으로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불과 300여 m 떨어져 있다. 지하 1층~지상 5층인 건물은 공양간, 로비 겸 차를 마시는 ‘티 테이블’, 객실과 사무실, 명상, 요가 등을 하는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공양간에서는 매일 아침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다양한 채식 음식이 제공된다. 세계 각국 젊은이들이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티 테이블’은 공짜. 품질과 종류가 웬만한 전문 티 하우스 못지 않은데, 홍대선원을 응원하는 전국 사찰과 스님들이 무료로 차를 보내주기 때문이다.이곳을 다녀간 사람은 지난해에만 40여 개국 6000여 명에 이른다. 준한 스님은 “대부분 삶의 의미와 자아를 찾는 20~30대 젊은이들”이라며 “자원봉사자 50여 명 중 상당수가 이렇게 다녀간 게 인연이 된 외국인들”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구글에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비영리단체로 인정해 검색창 상단에 올려주는 지원도 받고 있다.준한 스님은 홍대 앞에 자리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명상의 궁극적 목표는 명상하지 않고 있을 때도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편하게 있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삶의 대부분이 일상 생활, 도시에서 이뤄지는데 멀리 떨어진 산속에서만 명상이 제대로 된다면 곤란하지 않으냐”고 했다.선원이다 보니 건물 안에 법당이 있지만 종교 행위보다는 주로 좌선, 소리 명상, 춤 명상, 다도, 선 태극권, 요가 등 각종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장소로 쓰인다. 각 프로그램을 가르치는 선생님 섭외도 장소 덕을 톡톡히 봤다. 준한 스님은 “동네가 워낙 ‘핫플레이스’이다 보니 자기 분야에서 독특한 내공을 가진 숨은 고수들을 많이 알게 됐다”며 “춤 명상이라는 독특한 명상도 그런 인연으로 하게 됐다”고 말했다. 평소 어떻게 하면 현대인들의 굳은 마음을 풀어줄 수 있을지 방법을 고민하던 차에 한 댄서가 춤 명상을 제안한 것. 일종의 현대무용 같은 동작을 따라 하는 것인데, 마음이 굳으면 몸이 딱딱해지는 것처럼 역으로 몸을 부드럽게 움직이면서 마음을 푸는 원리라고 한다.‘모태 불자’였던 그는 중학교를 마치고 미국으로 가 그곳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했다. 대학 전공은 건축학과 경영학. 졸업 후에는 명상센터와 한국의 사찰음식 등 각 나라의 채식 요리를 접목한 창업을 할 계획이었는데, 재학 중 큰 교통사고를 겪으면서 출가하게 됐다고 한다.“출가 후에는 당연히 수행에만 집중했어요. 그런데 2020년경 보림(保任·깨달은 후 더욱 갈고 닦는 불교 수행법) 1000일 기도를 얼마 안 남기고 한 불자를 만났지요. 홍대에서 게스트하우스를 하는데 운영이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인연이다 싶어 바로 임대계약을 했지요.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하하.”그는 “종교적 색채는 최대한 빼고 재미와 위로가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그런 점이 청년들에게 호응을 얻은 것 같다”며 “모든 병은 마음에서 비롯되기에 이곳을 찾는 누구나 삶의 힘을 얻어갈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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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년교회는 본질 잃은 기성교회 바꿔보려는 노력”

    “청년교회는 젊은 사람들끼리만 모이자는 게 아니라, 전통과 제도에 얽매여 본질을 잃은 기성 교회를 청년들이 바꿔보자는 노력입니다.” 18일 경기 파주시 한소망교회(위임목사 류영모)에서 만난 김동주 한소망청년교회 목사는 최근 교계에서 ‘청년교회’를 만들려는 곳이 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청년교회는 기존 교회에 종속된 청년부를 청년들이 재정, 행정 등을 독자적으로 운용하는 교회 내 교회로 독립시킨 것. 한소망청년교회는 지난해 1월 본교회에서 독립했다. 김 목사는 “MZ세대의 특성 중 하나가 조직문화가 불합리하면 불만을 표현하지 않고 조용히 나간다는 점”이라며 “교회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요즘 청년들은 내로남불에 굉장히 민감해요. 기독교인이라고 하면 외부에서 기대하는 모습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안 믿는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거나 심지어 안 믿는 사람보다 더 못한 모습을 보면서 왜 교회에 나가야 하는지 회의감을 가진 거죠. 그러다 보니 새로 안 오는 것은 물론이고 있던 청년들도 많이 나갔고요.” 김 목사는 또 이미 성인인데 기성 교회에서 청년을 여전히 아이들처럼 대하는 점도 청년들이 교회를 멀리하게 된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20∼30대, 심지어 미혼일 경우 40대까지도 청년부에서 활동하는데 마치 중고교생처럼 목사나 교회 어른들이 모든 걸 정하고 청년들은 따라가기만 했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처음 부임해 청년부 단톡방에서 인사를 했더니 60여 명 중 딱 2명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받아줄 정도로 청년부 활동에 아무 기대가 없었다”고 말했다. 한소망청년교회 재정은 청년들의 헌금으로 충당된다. 지난해에는 설립 초기라 일부 지원을 받았으나 올해부터는 모두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사역 등 목회 활동도 모두 스스로 계획해 진행한다. 일부 교단에서는 여전히 여성 목사, 여성 장로를 인정하지 않을 정도로 종교계는 의외로 여성 차별이 심한 곳. 하지만 한소망청년교회는 국장, 팀장 등 운영위원 대부분이 여성이다. 김 목사는 “국장은 제가 임명하지만 팀장은 국장들이 뽑는다”며 “여자라고 우대한 건 전혀 없고 그동안의 활동과 리더십을 보고 스스로 선출한 결과”라고 말했다. 변화는 신자 수 증가로 이어졌다. 청년교회를 만들기 전인 2021년 평균 예배 인원은 110여 명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350여 명으로 늘었다. 한소망교회를 떠났다가 돌아온 청년이 절반, 나머지는 대부분 다른 교회를 다니다가 안 나갔던 청년들이라고 한다. 그는 “청년들이 교회에 실망했을 뿐 신앙을 포기한 건 아니기 때문에 교회만 달라진다면 얼마든지 다시 올 수 있다는 희망을 봤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청년교회 또는 청년부 활성화를 시도했다가 실패하는 곳의 공통점이 교회 어른들이 ‘지켜만 볼 테니’ 또는 ‘도와주려고’라며 운영과 활동에 낀 곳”이라며 “사회에서 이미 성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청년들을 여전히 미숙하고 돌봐야 할 대상으로 취급하면 누가 교회에 오고 싶겠느냐”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4-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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