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이진구 동아일보 오피니언팀 이진구 기자 공유하기 sys1201@donga.com

2017년부터 ‘이진구 기자의 대화’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딱딱하고 가식적인 형식보다 친구와 카페에서 수다 떠는 듯한 편안한 인터뷰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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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한 송해 선생님, 무대엔 엄격… 장윤정도 늦었다가 야단맞아”[이진구 기자의 對話]《“전구∼욱 노래자랑! 빰빰빰 빰 빰 빰∼ 빰 ♬ 빠빠빠∼ 딩동댕! 전국에 계신 독자 여러분, 한 주일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오늘도 지구촌 곳곳에서 새로운 희망 속에 열심히 살아가시는 해외 우리 동포 여러분들, 해외 근로인 여러분들, 그리고 해외 자원봉사원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은 송해 선생님과 30년간 전국노래자랑을 함께한 신재동 악단장을 모시고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푸근한 인상과 달리 선생님께서 야단도 많이 치셨다고요. “일에는 0.0001%도 흐트러짐을 허용하지 않으셨거든요. 한없이 인자한 얼굴과 달리 가슴속에는 늘 넘치는 에너지가 있으셨어요. 그래서 당신이 보기에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이 벌어지면 그냥 넘어가지 않으셨지요. 초대가수들이 리허설에 늦게 오거나, 건방을 떨거나 하면 된통 혼났으니까요.” (혹시 누가….) “하하하, 가수 장윤정 씨도 초창기 때 조금 늦었다가 호되게 야단맞은 적이 있고… 한두 명이 아니에요. 그런데 뒤끝은 전혀 없으세요. 5분도 안 지나서 바로 풀어지시니까. 전국노래자랑에는 선생님의 그런 생각과 애정이 곳곳에 배어 있어요. 일단 시작하면 거의 NG 없이 생방송처럼 녹화하는 것도 그렇지요.” ―출연자가 일반인인데 가능합니까. “선생님 지론인데… 몇천 명이 한참 흥겨워서 달아오르고 있는데 다시 찍자고 중간에 끊으면 김이 빠져서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웬만하면 중간에 끊고 다시 찍는 일이 거의 없어요.” (예측 못 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합니까.) “그럴 때 잘 타고 넘어가는 게 선생님 실력이죠. 예전에 한 양봉업자가 온몸에 벌을 붙이고 무대에 선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분이 내려간 뒤에도 꽤 많은 벌들이 무대에 날아다니는 거예요. 송 선생님은 방충망 같은 걸 쓰고 진행했고, 뒤이은 출연자는 벌이 입에 들어가서 본의 아니게 ‘땡’을 받았는데도 벌을 잡기 위해 끊지 않았어요. 선생님은 녹화가 시작되면 절대 자리에 앉지도 않아요.” ―녹화가 3시간 넘게 걸린다던데요. “리허설 때는 대본을 정리해야 하니까 앉지만 일단 녹화가 시작되면 끝날 때까지 몸을 똑바로 세우고 무대를 지켜보세요. 비가 와도 다 맞고요.” (출연자가 노래할 때는 앉아도 되지 않습니까? 화면에 나오는 것도 아닌데요.) “젊을 적 악극단 시절부터 몸에 밴 습관인 것 같아요. 관객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사실 50, 60대도 서서 3시간 넘게 있기는 힘들어요. 리허설부터 하면 7∼8시간이나 걸리는데, 요즘 같은 무더위에 야외에서 진행하면 더 힘들지요. 그걸 90세가 넘어서도 하셨으니…. 체력만 좋으신 게 아니에요. 정의감도 불타셨지요.” ―전국노래자랑에서도 불의한 일이 벌어질 때가 있습니까. “예전에 충청도 어디였는데… 리허설이 한창인데 공무원들이 관객석 맨 앞자리에 의자를 놓고 있더라고요. 군수, 군의원들 앉을 자리라는 거예요. 그 소리를 듣자마자 선생님이 ‘지금 뭐 하는 짓인가. 당장 치워라. 앉고 싶으면 저 뒤에 아무 데나 앉아라. 전국노래자랑에는 특석이 없다’고 노발대발 소리쳐서 뺐지요.” ―우리 정서상 과거에는 그런 행태나 요구가 꽤 있었을 것 같은데요. “제가 1992년부터 참여했는데, 그때만 해도 공무원들이 맨 앞자리 가운데를 끈으로 쳐서 귀빈석을 만들었어요. 선생님은 그런 모습을 굉장히 못마땅하게 여겼는데 그게 쌓였다가 그날 터진 거죠.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아직도 저런 짓을 하고 있느냐’면서…. 그 뒤로 전국노래자랑은 지자체장이든, 지역 국회의원이든, 유지든 별도의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아요. 지역 행사다 보니 지자체장들이 지역을 소개하고 무대에서 노래 한 곡 부르게는 해줘요. 하지만 실제 방송에서 노래 부르는 장면은 편집하고 내보내지 않지요. 선생님은 저희들이 못 받은 월급을 대신 나서서 받아주기도 했어요.” ―월급이 안 나오다니요.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프로그램이 한 8주 정도 결방됐어요. 워낙 사회적으로 슬픔이 큰 사건이다 보니 흥겹게 노래 부르는 프로는 내보내기 어려웠던 거죠. 그래서 그 기간 동안 저를 포함해서 악단 단원들 월급이 안 나왔는데 선생님이 대신 회사와 담판 짓고 받아주셨어요.” ―선생님이 중간에 잠시 하차하신 건 왜 그런 겁니까. “1994년 4월경인가? 경북 영천이었는데… 녹화 날 아침에 그냥 짐 싸서 올라가셨어요. 담당 PD와 프로그램을 놓고 의견 충돌이 잦았는데 선생님은 선생님의 생각이 있고, 또 PD는 너무 자기 고집이 강한 선생님이 마음에 안 들다 보니 녹화 때마다 서로 쌓인 거죠. 녹화 전날부터 ‘안 한다. 안 한다’ 하셨는데 ‘그럼 하지 말라고 해’ 뭐 이런 말까지 나오고…. 설마 진짜 가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아요.” ―진행은 누가…. “관객이 몇천 명이 왔는데 안 할 수는 없잖아요. 급하게 초대가수로 왔던 현철 씨가 다른 사람 한 명이랑 MC를 봤어요. 그렇게 대충 찍기는 했는데… 결국 실제 방송으로는 못 나갔어요.” (못 나가다니요?) “그 녹화는 방송을 못 내보내고 나중에 다시 가서 제대로 찍어서 내보낸 거죠. 그 뒤로 김선동 아나운서가 진행을 했는데, 와… 진짜 전국에서 ‘송해를 돌려 달라’는 항의가 빗발쳤어요. 결국 그해 10월에 복귀하셨지요. 그 정도로 국민의 사랑을 받으셨지만 정작 선생님 자신은 외로워 보일 때가 많았어요. 저는 선생님이 술을 그렇게 드신 것도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해요.” ―녹화 전날 새벽까지 드신다는 얘기는 워낙 유명합니다만….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예요. 보통 버스 앞에서 세 번째 줄 정도에 앉으시는데 만남의 광장쯤 오면 뒤를 슥 한번 보세요. 눈이 마주치면 말하나 마나 내리라는 뜻이죠. 그때 작곡가 이호섭(현 전국노래자랑 진행자)이 있으면 같이 내리고, 아니면 저만 내리는데 양재 쪽에 자주 가시는 돼지갈비 집에 가서 또 마셔요. 큰 컵에 20∼25도나 되는 빨간 뚜껑 소주를 부어 드시는데, 식사는 거의 안 하시고 안주만 아주 조금 드셨지요. 그렇게 밤새 마시고 택시를 태워 보내드리는데 그 뒷모습이 너무 쓸쓸하고 안타까워 보일 때가 많았어요. 가족들 다 두고 홀로 내려 오신 데다 사고로 아들도 잃으셨으니….” ―늘 버스로 함께 다니셨다고요. “버스가 녹화 전날 오전 10시에 여의도에서 출발해요. 선생님은 늘 오전 7시쯤 먼저 오셔서 스태프와 함께 아침을 먹고 차 한잔하고 얘기하다가 타셨지요. 댁이 경부고속도로를 타는 양재동 근처라 저희가 가는 길에 들르겠다고 해도 한 번도 그러신 적이 없어요.”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하차 문제를 많이 고민하셨습니까. “최근 몇 달간 고민을 많이 하셨어요. 마음과 달리 몸이 힘드셨거든요. 전국노래자랑이 코로나19 때문에 현장 녹화를 못 하고 과거 방송을 편집해 내보내는 스페셜 편으로 방송됐는데 힘드시면 스튜디오에 못 나오시기도 했으니까요.” (많이 안 좋으셨습니까.) “돌아가시기 2∼3주 전에는 살이 다 빠지셔서… 예전 모습이 거의 없으셨어요. 저보고 ‘신 단장 이거 봐봐. 배가 쑥 들어가서 옷이 이만큼이나 남아’ 하시더라고요. 몸을 만져 보니 정말 뼈만….” ―제작진도 고민이 많았겠습니다. “말을 꺼내기가 너무 어려웠을 거예요. 30년을 넘게 하신, 당신 분신 같은 프로그램인데 그런 말을 들으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상처가 되겠어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선생님이 결국 마음을 정하셨더라고요. 돌아가시기 전주쯤에 늘 다니시던 양복점에 지인을 통해 양복을 주문하셨거든요. 마지막으로 그 옷을 입고 무대에서 ‘이제 저는 이 프로그램을 놓습니다’라고 고별인사를 하려고 하신 거죠. 돌아가신 날(8일) 다음 날이 옷 찾는 날이었어요.” (선생님은 지금 하늘에서 뭘 하고 계실까요.) “하하하. 아마… 천국노래자랑 새로 만드시느라 바쁘시지 않을까요?” 신재동1992년부터 전국노래자랑에 참여한 작곡가 겸 베이시스트. 송해의 ‘유랑청춘’, 남진의 ‘신기루 사랑’, 김국환의 ‘어쩌다 산다’ 등을 작곡했고, 2012년부터 악단장을 맡고 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2022-06-27 03:00
심상정 류호정 장혜영은 왜 당 내 성폭력에 침묵할까[이진구 기자의 대화, 그 후-‘못 다한 이야기’]지난달 말 강민진 전 청년정의당 대표를 인터뷰했습니다. 강 전 대표는 지난달 16일 자신의 당 내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개했지요. 강 전 대표가 어려움을 무릅쓰고 피해사실을 알린 것은 6개월이 넘도록 당 지도부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강 전 대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당 행사 뒤풀이에서 한 당 내 인사가 그의 허벅지 안쪽을 만지는 등 성폭력을 저질렀다고 합니다. 강 전 대표는 이 사실을 이틀 후 당시 여영국 당 대표 등 당 지도부가 참석한 회의에서 알렸지요. 그런데 정의당은 다른 정당의 성폭력 사건을 대할 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강 전 대표 사건을 대했습니다.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먼저 진상조사부터 하는 게 순서입니다. 그런데 강 전 대표의 설명을 들은 여 대표는 그 자리에서 “이 일은 공식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다만 다음에 또 이 같은 일이 일어나면 그 때는 절차대로 처리하겠다. 내가 해당 위원장에게 엄중 경고하겠다”고 결론을 냈습니다. 사실상 사건을 듣자마자 종결한 것이죠. 함께 있던 지도부 인사들 중에 ‘그렇게 간단히 처리하면 안 된다’고 문제를 지적한 사람도 없었다고 합니다. 국민의힘 당 대표가 이렇게 처리했다면 정의당은 뭐라고 했을까요.6개월이 지나도록 진상조사조차 없는 사이에 가해자는 지난 지방선거 기초단체장 후보에 공천됐습니다. 견디다 못한 강 전 대표는 지난달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성폭력 피해사실을 알렸지요. 정의당의 해괴한 일처리는 바로 다음날(17일) 또 벌어졌습니다. 언론에 ‘긴급 대표단회의 결과’란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이동영 당 수석 대변인이 브리핑을 한 것이죠. 요지는 이 사건이 해당 위원장이 옆자리에 앉는 과정에서 강 전 대표를 밀치면서 벌어진 ‘불필요한 신체접촉’이었고, 강 전 대표가 이 사안이 성폭력으로 볼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 언론에 배포한 그 보도자료에 가해자인 해당 위원장의 사과문을 첨부했습니다. 진상조사는 하지도 않았는데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공개한 바로 다음날 당이 성폭력은 없었다고 브리핑을 하고, 가해자 사과문을 대신 배포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 정의당 당직자들의 행태도 가관입니다. 강 전 대표가 갈무리해 공개한 당직자 텔레그램방 대화방을 보면 이들의 인식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여지껏 참았는데 선거이후에 문제 제기해도 될 일을 왜 좀 더 참지 못했을까’ ‘강민진은 지저분하게 해당 행위를 하지 말고 떠나십시요’ ‘사건이 안 되는 내용이라 2차 가해 운운해서도 안 되는 겁니다’ 이런 내용들이 즐비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의 어른이라는 심상정 의원, 차세대 유망주라는 류호정 장혜영 의원 등 청년 정치인들이 왜 이 사건에 침묵하고 있는 지입니다. 사석이나 회의석상에서 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 이들이 공개적으로 무책임한 당 행태를 지적하고, 피해자와 함께 연대하겠다는 상투적인 말조차 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냥 침묵상태인 것이죠. 심 의원은 지난해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에게 “지금 이 순간에도 성폭력으로 고통 받고 있는 여성을 대신해서 제가 묻는다. 윤 후보는 정말 성범죄자 안희정 씨 편인가”라고 물었습니다. 당시 윤 후보의 부인인 김건희 씨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를 두둔한 통화 내용이 공개됐기 때문이죠. 윤 후보는 사과했습니다. 그런데 당 내 문제에 대해서는 반년이 넘도록 아무 언급도 없습니다. 류·장 의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류·장 의원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우려해 박원순 전 서울시장 조문도 거부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당 내에서 벌어진 일에는 다른 잣대를 적용하나봅니다.도대체 왜 정의당에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져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걸까요. 강 전 대표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안에서 문제가 벌어졌을 때 정의당에는…외부에 알려져 논란이 되면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겨 꼬리를 자르고, 밖으로 안 알려지면 아무 문제가 안 되는 악순환이 있다”고요. 세상 무엇보다 조직보위가 최우선이라는 것이죠. 평시에도 그럴 진데 공교롭게 대선, 지방선거가 연이어있었으니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앞서 소개한 한 당직자의 ‘여지껏 참았는데 선거이후에 문제 제기해도 될 일을 왜 좀 더 참지 못했을까’란 말이 딱 그거 아니겠습니까. 여성의 인권, 성폭력 같은 문제는 조직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뒤에 놓을 수 있다는 사고방식.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습니다. 당 내 성폭력 피해자는 외면당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류호정 정의당 원내대변인은 14일 공군 고 이예람 중사 성추행 가해자가 2심에서 감형된 판결과 관련해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은 오늘 유족의 가슴에 다시 한번 대못을 박았다. ‘이 중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 오로지 피고인의 책임으로만 물을 순 없다’는 게 감형의 이유다.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논리, 아무도 동의할 수 없는 법리”라고 브리핑했더군요.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참패로 존립위기에 빠진 정의당은 13일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습니다. 이은주 비대위원장은 “가장 두려운 것은 선거에서 참패했다는 것, 의석을 잃었다는 것이 아니라 ‘정의당의 정치가 지속 가능한가’라는 시민의 물음이다”라고 했습니다. 제 눈의 들보는 안 보고 남의 눈의 티끌만 보며, 조직에 해가 된다면 당 내 성폭력조차 묻고, 그 당의 어른과 기대주조차 이런 사태에 침묵하는 정당이 실패하지 않고 성공한다면…그게 더 무서운 세상일 겁니다.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2022-06-18 13:00
“라면 즐긴 盧, 美 쇠고기 찾던 MB, 혼밥 하던 朴… 생각하면 짠해”[이진구 기자의 對話]《지난달 10일 청와대가 개방되면서 구중궁궐 이야기가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단연 관심은 대통령의 의식주. 20년(1998∼2018년) 동안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의 식사를 책임졌던 천상현 전 청와대 조리팀장은 “대통령 밥상에는 식사 때마다 진상품이 올라갈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며 “오히려 의외의 모습 때문에 마음이 짠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대통령들의 밥 먹는 모습이 짠했다니 의외입니다. “박 전 대통령은 혼밥을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행사 같은 데 가면 참석자들과 함께 식사를 해야 할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소화를 잘 못 시키다 보니 함께 못 먹고 그냥 올라오곤 했지요. 그래서 저희가 비행기나 기차에서 드시게 김밥이나 샌드위치 같은 간단한 음식을 미리 마련했어요. 그리고 이건 제 생각인데… 박정희 대통령 돌아가신 후에 거의 혼자 밥 먹던 세월이 18년이나 된다잖아요. 사람들은 대통령이 혼밥한다고 뭐라 하지만 그런 세월이 너무 길다 보니 습관이 된 탓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탄핵으로 청와대를 나갈 때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스타킹에 구멍이 나 있더라고요.” ―머리 손질을 안 하면 외출도 안 하는 스타일이라던데요. “오후 6시쯤인가? 관저 관리 직원들을 부르셨어요. 조리팀 사람들에게는 ‘4년 동안 음식 너무 고맙게 먹었어요. 감사합니다’라고 하셨는데 뭐라고 말할 수가 없어서 고개만 숙이고 있었지요. 그때 엄지발가락 스타킹에 구멍이 나 있는 게 보였어요. 구멍 난 걸 모르고 신은 건지, 신고 있다가 구멍이 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그러더라고요. 품성이 되신 분이라고. 솔직히 그 경황에 그냥 나가도 뭐라 할 사람은 없잖아요. 노 전 대통령은 주방에도 자주 오시고, 라면도 직접 끓여 드셨지요.” ―노 전 대통령만의 맛 스타일이 있나요. “그건 아니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우리가 알아서 해 먹을 테니 조리팀은 좀 늦게 나오라고 하셨어요. 조리팀은 늘 새벽에 출근하거든요. 그래서 전날 재료를 주방에 갖다 놓으면 직접 라면을 끓여 드셨지요. 심한 건 아닌데… 노 전 대통령은 컨디션이 안 좋을 때면 밀가루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났어요. 그래서 자장면도 쌀로 만든 거, 빵도 전분으로 만든 걸 드셨는데 그런데도 라면은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이 전 대통령은 어땠습니까. “어릴 때 어렵게 살아서인지 음식 남기는 거 정말 싫어했어요. 늘 음식 버리지 않게 너무 많이 담지 말라고 하셨지요. 청와대 잔디밭에서 야외 바비큐도 자주 했는데… 그럴 때는 (광우병 파동을 의식 해서인지) 미국산 쇠고기로 하라고 지시가 왔어요. 대통령이 미국산 사와서 구워 먹자고 했대요.” ―대통령 침실이 80평이나 되는데 그 안에 침대 하나밖에 없었다는 게 사실인가요. “제가 그렇게 말하기는 했는데…. 침실이 굉장히 크다는 걸 강조하다가 저도 모르게 실수를 했어요. 침실 옆에 목욕탕, 서재 등을 다 합치면 아마 80평 정도 될 거예요. 침실만은 20평 정도일 것 같은데 그것도 굉장히 크긴 한 거죠. 나중에 정정했는데 안 고쳐지고 그냥 나가더라고요. 침실이 크다 보니 박 전 대통령은 휑하다고 안 쓰고 그 옆 작은 방에서 잤어요. 다른 대통령들은 그냥 쓰셨고요.” ―청와대에는 어떻게 들어가게 된 겁니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중식을 좋아했는데 당시 청와대에는 중식 요리사가 없었어요. 그래서 청와대에서 제가 근무하던 신라호텔에 추천을 의뢰해 들어갔죠. 서른 살 때였어요.” (실례지만 경력이 더 많은 분도 많지 않았습니까?) “청와대에서 한국 사람을 보내 달라고 했거든요. 당시 특급 호텔 중식당은 화교 출신이 거의 대부분이고 한국인은 몇 명 없었어요. 웍(중국 음식을 요리할 때 쓰는 우묵한 큰 냄비)을 좀 돌려본 사람 중에 한국 사람이 별로 없다 보니 제가 추천을 받은 거죠. 전 그때 사실 중식 조리사 자격증도 없었거든요.” (청와대에 들어가서 딴 겁니까.) “필기까지만 붙은 상태에서 들어갔는데, 실기 시험 날 대통령 행사가 잡히더라고요. 그렇게 두 번 못 보고 필기부터 다시 치러서 나중에 땄어요.” ―아직 못 만드는 걸 대통령이 갑자기 주문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그때는 짬뽕, 볶음밥, 요리 몇 가지 정도만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사실 볶는 요리는 비슷비슷해요. 팔보채를 볶는 거나 유산슬을 볶는 거나 비슷하거든요. 그리고 재료 한두 개 실수로 빠져도 잘 몰라요. 하하하. 게살수프에 게살이 빠지면 알지만 팔보채에 재료 하나 빠진 건 모르니까…. 안 해본 것들은 대통령이 순방 같은 걸 가면 신라호텔에 가서 배웠지요. 대통령이라고 매일 랍스터 먹는 거 아니에요. 그런 건 자주 올릴 수도 없어요. 콜레스테롤 때문에…. 연세가 있으시잖아요.” ―대통령 진상품이 진짜 있습니까. “진상품 그런 건 없고요, 김 전 대통령은 활홍어를 좋아했는데 아들이 아버지 드시라고 6∼7kg짜리 흑산도 홍어를 보냈어요. 그걸로 회도 뜨고 초무침도 했지요.” (활홍어가 뭡니까?) “삭히지 않은 홍어인데 DJ는 삭힌 홍어는 안 드셨어요. 밖에서 대통령 진상품이라고 홍보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건 다 가짜예요. 청와대에 식재료를 납품하는 게 알려지면 대통령 경호 때문에 바로 납품을 끊거든요. 식재료에 뭘 넣을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계약할 때 아예 그런 조건을 넣지요.” ―입맛이 까다로운 분은 없었는지요. “그렇게 까다로운 분들은 없었어요. 출신 지역에 따라 다른 정도? 경상도 분들은 된장국에 방앗잎이 들어가야 ‘그래, 이 맛이야’ 하시더라고요.” (방앗잎이 뭡니까.) “방아라고 부르는 식물 잎인데 독특한 향이 있어서 향신료로 쓰지요. 경상도분들은 추어탕 같은 데도 넣어서 드시는데 전라도분들은 잘 안 드세요.” ―문재인 대통령 때 명예퇴직을 신청하고 나왔더군요. “원래 박 전 대통령 퇴임 때 나오려고 했는데… 박 전 대통령이 갑자기 물러나고 어쩌다 보니 좀 더 있었던 거죠. 문 대통령 취임 1년쯤 지났는데 새로운 사람을 뽑는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저는 굉장히 오래 있었어요. 청와대 요리사도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대개 바뀌거든요.” ―요리사가 정무직도 아닌데 왜 5년마다 바뀝니까. “정해진 규정은 아니고 그냥 관습인 것 같은데…. 노 전 대통령 취임하면서 저랑 홀 서비스 직원 한 명만 남고 다 바뀌었어요. 이 전 대통령 때도 똑같이 저랑 홀 서비스 직원 한 명만 살아남았고, 박 전 대통령 때는 스스로 그만둔 사람 하나 빼고 다 남았지요.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저쪽 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요리사는 그렇다 치고 홀 서비스 직원은 왜 바꾸는 겁니까.) “요리사보다 오히려 홀 서비스 직원이 대통령에 대해 세세한 건 더 많이 알 수 있죠.” (그런데 어떻게 20년을 버텼습니까.) “저도 잘 모르겠어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지요.” ―혹시 음식 불평을 하는 손님은 없습니까. 대통령이 먹던 음식은 다를 거라 생각하고 오는 분도 있을 것 같은데요. “생각보다 그런 말이 없는 게… 제 생각에는 대통령 다섯 분이 똑같이 드신 음식이니까 그 기에 눌린 게 아닌가 싶어요. 하하하.” (식당에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 사인 접시를 나란히 거셨더군요.) “퇴임하고 나가시기 전에 제가 대통령들이 쓰던 접시를 들고 가서 받았어요. 나란히 건 이유는… 두 분 관계가 좀 그랬잖아요. 노 전 대통령은 돌아가셨지만… 나중에라도 관계가 잘 풀렸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란히 걸었어요. 김 전 대통령 퇴임 때는 받을 생각을 못 했고, 박 전 대통령 때는 사인을 받을 상황이 아니었지요.” ―이제는 청와대 요리사란 이름도 사라지겠군요. “용산 요리사라고 해야 하나요? 하하하. 그런데 지금 조리팀은 굉장히 힘들 거예요. 정권 초기 서너 달은 대통령이 일정, 행사는 물론이고 만나는 사람도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많이 고생하거든요. 청와대처럼 모든 시설이 완비된 곳에서 해도 힘든데 용산은 새로 시작해서 시설이 많이 부족할 테니까요. 개인적으로는 개방된 청와대 잔디밭에서 다문화가정이나 연세 드신 분들을 위해 음식 대접을 해보고 싶어요. 꼭 고급 요리가 아니라 자장면이나 된장찌개라도…. 청와대 요리사들이 청와대 셰프 옷 입고 대접하면 무척 근사하지 않을까요? 청와대 개방 취지에도 어울리는 것 같고요.”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2022-06-13 03:00
나사(NASA) 본부가 워싱턴에 있는 이유는…[이진구 기자의 대화, 그 후- ‘못 다한 이야기’]4월 말 누리호 2차 발사를 한 달여 남기고 이상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을 인터뷰했습니다. 순수우리기술로 제작된 누리호는 개발 착수 11년 여 만인 지난해 10월 21일 1차 발사했지만 아쉽게도 궤도진입을 못했지요. 그 누리호가 15일 2차 발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1차 발사 때 나타난 문제점 외에 다른 문제는 없다고 하는군요. 8월에는 달 궤도선도 발사됩니다. 성공하면 우리 손으로 만든 궤도선이 달을 도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죠. 이에 발 맞춰 새 정부는 국정과제로 한국형 나사(NASA·미 항공우주국)인 항공우주청 신설할 계획입니다. 아직은 정부조직법 개정도 되지 않은 상태고, 넘어야할 산도 많지만 누리호 2차 발사가 성공하면 추진에 탄력을 받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독자 여러분께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왜 우리는 기술 개발보다 아직 설립도 되지 않은 항공우주청 유치전에 더 관심을 갖는 걸까요. 항공우주청 유치 전에는 대전과 경남 사천이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사천은 항공우주 기업들이 많고, 대전은 KAIST, 항공우주연구원 등 연구기관이 많아 시너지 효과를 거두는데 서로 자신들이 최적지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직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만 지난달 안철수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은 사천 손을 들어준 바 있지요. 이를 근거로 사천시는 전국노래자랑 사천시 편 포스터에 ‘항공우주청 사천 설치 확정 기념’이라는 타이틀을 달아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지자체들의 우주청 유치 전을 보다가 문득 자타가 공인하는 항공우주분야의 최고봉인 미국 나사 본부는 어디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영화에서 늘 “여기는 휴스턴”이란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나사 본부가 당연히 관제센터가 있는 텍사스 휴스턴에 있는 줄 알았지요. 그런데 나사는 대통령 직속 기관이란 특성상 워싱턴D.C.에 본부가 있더군요. 메리 W. 잭슨 나사 헤드쿼터 빌딩(Mary W. Jackson NASA Headquarters building)이라고 불리는데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로 유명한 흑인 여성 공학자인 메리 W. 잭슨의 이름을 땄다고 합니다. 나사 본부와 휴스턴 관제센터(정식 이름은 존슨 우주 센터)는 직선거리로 1962km입니다. 아폴로 11호가 발사된 케네디 우주센터는 플로리다 케이프 커내버럴에 있습니다. 나사 본부와는 직선으로 1209km 떨어져있고, 나사의 연구를 진행하는 제트추진연구소는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스 북쪽 칼텍에 있습니다. 워싱턴과 LA입니다. 굳이 거리를 설명해야할까요? 3700km입니다. 앨라바마주 헌츠빌에 있는 마셜 우주비행센터는 그나마 좀 가깝(?)군요. 969km네요. 우리 지자체들이 주장하는, 가까이 있어야 시너지 효과가 크다는 주장이 맞다면 나사의 본부 위치선정은 최악인 것 같습니다. 지역 불균형은 점점 더 심화되고, 뾰족한 경제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도 부족한 지자체가 정부 기관을 하나라도 더 유치하는데 전력을 기울이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본질은 제대로, 가장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곳에 항공우주청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이제 지방선거도 끝났고, 며칠 후 누리호 2차 발사가 성공하면 본격적으로 항공우주청 설립 논의가 시작될 것입니다. 당연히 우주청의 목표와 역할, 세부 기능 등이 순차적으로 정리되겠지요. 우주청의 입지는 이런 상위 개념들이 먼저 정해진 후에 그 기능을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찾아 정하는 게 순서가 아닌가 합니다. 인터뷰 마지막에 이상률 원장에게 40년 가까이 우주개발 분야에서 일했는데 가장 아쉬운 게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이 원장은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기는 했지만 우리가 대체로 추격형 대형 프로젝트를 많이 하다보니 30~40년 뒤를 준비하는 게 굉장히 부족했다”고 말하더군요. 당장은 써먹지도 못하고, “뭐 그런 걸 하고 있어?”라는 말을 듣더라도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지금은 생각도 못하는 것에 예산과 인력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일도 쉬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도 남들이 닦아놓은 길만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앞으로 인류가 가야할 길’이라고 이정표를 제시하고 맨 앞에서 덤불을 헤쳐 가며 길을 내는 역할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칼 세이건은 저서 ‘코스모스’에서 “‘우주라는 바다’에 대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거의 대부분 우리가 이 바닷가에 서서 스스로 보고 배워서 알아낸 것이다. 직접 바닷물 속으로 들어간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그것은 겨우 발가락을 적시는 수준이었다. 아니, 기껏해야 발목을 물에 적셨다고나 할까”라고 했습니다. 남들보다 늦은 만큼 더 빨리 첨벙첨벙 뛰어 들어가도 부족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정치와 지역 이기주의 때문에 본질적이지도 않은 청사 유치 전에 발목이 잡혀 국가적 에너지를 소모한다면 너무 안타까울 것 같습니다. 앞서 말했지만 워싱턴 D.C 나사 본부와 휴스턴 관제센터 간의 거리는 1962km입니다. 서울과 대만 타이베이는 1483km지요. 윤석열 대통령이 항공우주청 입지 결정 때 왜 나사가 본부를 워싱턴에 뒀는지 깊이 참고해 결정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2022-06-04 13:00
[이진구 기자의 對話]“2차 가해 발언보다 차가운 침묵이 더 무서워요”《공정이란, 부당한 일이 벌어졌을 때 공동체가 정당한 절차를 거쳐 시시비비를 가려 주는 것이다. 그런데 공동체가 정당한 절차는 고사하고, 되레 나의 말을 필요한 부분만 떼어서 일방적인 결정을 내린다면? 최근 자신의 당내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개한 강민진 전 청년정의당 대표(27)는 “피해 호소 당일 당 대표가 사실상 상황을 종료했다”며 “이후 6개월이 지나도록 진상조사도 없었다”고 말했다.》 ―진상조사를 안 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진상조사를 하려면 담당 기구가 있어야 하고, 제가 출석해 공식적으로 진술을 해야 하잖아요. 양측 주장의 사실관계도 확인하고요. 그런 과정은 없었어요.” ―이동영 당 수석대변인은 사실관계를 면밀히 파악했다고 브리핑까지 했는데요. “성폭력이 벌어진 다음 날인 작년 11월 21일 배복주 당 젠더인권특별위원장에게 성폭력을 알리면서 지도부 회의를 요청했어요. 그 다음 날 열린 회의에서 피해 사실을 말했는데 그건 진상조사가 아니잖아요. 여영국 당 대표는 그 자리에서 ‘이 일은 공식 절차를 밟지 않고, 다만 다음에 또 이 같은 일이 일어나면 그때는 절차대로 처리하겠다. 내가 해당 위원장에게 엄중 경고하겠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피해 호소 당일에 사실상 종결됐다는 말입니까?) “그런 셈이죠. 그런데 사실관계를 면밀히 파악했다니….” ―그렇게 처리하면 안 된다고 한 사람은 없었습니까. 당시 심상정 대선 후보, 이정미 전 당 대표도 있었는데요. “심 후보는 중간에 자리를 떠서 잘 모르겠는데… 별다른 얘기를 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어째서 이런 일이 생겼나, 참 심각하다 이런 정도의 반응만 있었고….” (당신은 왜 그때 반발하지 않았습니까.) “두려워서… 대선을 앞두고 있던 때라 저 때문에 선거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말을 들을 게 두려웠어요. 김종철 전 대표 성추행 사건 때도 괜히 문제를 제기해서 당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되레 피해자(장혜영 의원)를 탓하는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장혜영도 그러더니 강민진도 저러네, 그것도 대선을 앞두고… 그런 말을 듣는 게 두려웠어요. 더 이상 문제 제기를 했다가는 정의당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런데 미안한 얘기지만 왜 6개월이나 지난 지금 공개한 겁니까. “살고 싶어서… 더 이상 가슴에 묻고 얘기하지 않으면 마음이 터져서 죽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살려고 말했어요.”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했습니까.) “힘들어질 수 있지만 그것도 일단 살아야 걱정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그때는 당이 제가 피해 사실을 공개한 바로 다음 날(이달 17일) 2차 가해가 난무한 입장문을 발표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니까요. 정의당에서는 이제 저를 거의 끝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 같아요.” ―심상정 류호정 의원 등은 함께 나서줄 만도 한데…. “아직…. 그런 건 없었어요. 지금은 2차 가해 발언보다 차가운 침묵이 더 무서워요.” (차가운 침묵?) “적극적으로 2차 가해 발언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성폭력 아닌데 허위 주장한다고도 하고, 또 정치적 의도 때문에 저런다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데 더 많은 당내 분들은… 침묵이에요. 그냥 아무 일 없다는 듯. 당 홈페이지에는 즐거운 선거운동 사진만 있고. 이제는 뉴스도 많이 안 나오니까 이러다 보면 지나갈 거라 생각하나 봐요.” ―당 대변인은 당신이 성폭력이 아니라고 했다고 브리핑을 했던데요. “저는 성폭력이 아니었다고 말한 적이 없어요. 지도부 회의에서도 가해자가 제 허벅지 안쪽을 만졌고, 피하려고 (밖으로) 나오니까 계속 따라왔다고 분명히 말했어요. 이게 성폭력이 아니면 뭔가요? 성폭력이 아니면 제가 왜 지도부 회의를 요청했겠어요. 그런데 이달 16일 제가 페이스북에 성폭력 피해를 공개하자 바로 다음 날 당 대변인이 긴급 브리핑을 하더군요. 이 사건이 가해자가 제 옆자리에 앉는 과정에서 저를 밀치면서 일어난 ‘불필요한 신체 접촉’이었다고요. 불필요한 신체접촉은 가해자가 쓴 말이에요. 가해자의 용어를 당이 대신 쓰다니… 그리고 언론에 가해자의 사과문을 배포했어요. 그럴 수는 없는 거잖아요.” ―다시 물어서 미안한데, 그럼 당은 왜 그렇게 말하는 겁니까. “가해자가 제 허벅지를 만져서 당황해하고 있는데 마침 다른 여성 청년분이 옆자리로 왔어요. 그분도 당할까봐 안 들리게 ‘지금 내가 이런 일을 당했는데 설마 성적인 의도는 아니겠지만 당신도 조심해라’라고 얘기해줬어요. 다음 날 배복주 위원장과 통화하면서, 내가 어제 사건 당일은 너무 당황해서 성적 의도가 아닐 거라고 생각하려 애썼는데 오늘 다시 생각해보니 너무 충격적이고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고 했어요.” (그럼 당이 당신이 옆자리로 온 여성에게 했다는 말만 가지고 판단했다는 겁니까.) “그런 것 같아요.” ―당은 공식 절차 대신 경고와 서면 사과로 조치한 것도 당신 요구 때문이라고 했습니다만. “좀 말장난 같은데… 배 위원장과 통화할 때 가해자에게 분명한 경고와 제지가 필요하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표현을 쓰기는 했어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치할지는 지금 판단이 잘 안 서니 당이 함께 고민해서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했지요. 지도부 회의도 그런 차원에서 요청한 것이고요. 그런데 그건 당이 공식적인 절차는 밟지 않아도 되고, 당 대표가 구두로 경고해 달라는 의미가 아니잖아요.” ―사과문은 왜 받은 겁니까. “…지도부 회의가 끝난 뒤 가해자에게 계속 전화와 문자가 왔어요. 사과하겠다고. 당에서 연락을 한 모양이에요. 너무 놀라서 배 위원장에게 지금 너무 힘드니까 연락이 안 오게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랬더니 배 위원장이 당 대표에게 권한을 위임받아 가해자에게 사과문을 받고 제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이틀 후인가? 배 위원장이 사과문을 전해줘서 받았어요. 그리고 그냥 수용한다고 했어요.” (마치 용서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한테 가해자 사과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다시는 그 사람을 보고 싶지도, 그 사람으로부터 무슨 말을 듣고 싶지도 않았고, 그냥 빨리 잊고만 싶었던 상황이라 사과문을 받아서 더 이상 연락이 안 올 수 있다면… 그렇게 생각한 거죠. 그래서 사과문 내용이 뭐든지 상관없었어요.” ―정리하면 진상조사 없이 피해 사실을 들은 그날 당 대표가 상황을 정리했고, 6개월간 아무 조치가 없다가 이달 16일 폭로하자 작년에 했던 말 중에 필요한 부분만 따서 성폭력은 없었다고 했다는 말입니까. “저는 당 대표가 개인적으로 가해자에게 경고해 달라고, 또 사과문을 받으면 끝내겠다고 한 적이 없어요. 당 입장문을 보면 피해자인 제가 그 사건에 대해 어떻게 느꼈는지는 다 삭제되고 가해자의 목소리만 남겨둔 것 같아요.” (혹시 수사 의뢰 생각은 안 했습니까.) “일단 당 안에서 해결하려고 했으니까요. 만약 가망 없다면 다른 방법도 찾아봐야 할 것 같아요.” ―당신이 당에 바랐던 건 뭡니까. 당신이 알던 정의당이 아니라고 했던데요. “제가 바랐던 건, 지도부가 이 문제의 심각성을 공감해줬으면 하는 것이었어요. 피해자의 충격과 두려움, 문제를 꺼내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마음을 이해해주길 바랐지요. 그런 뒤에 가해자를 어떻게 조치할지에 대해서는 함께 고민하고, 또 당의 전반적인 문화를 바꾸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지도 모색하는…. 그런데 되레 피해자에 대한 위로와 공감은 한 방울도 없고, 오히려 성폭력이 아니라고 가해자를 옹호하니….” ―정의당이 이런 식으로 대처하는 이유가 뭡니까. “안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정의당에는… 외부에 알려져 논란이 되면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겨 꼬리를 자르고, 밖으로 안 알려지면 아무 문제가 안 되는… 그런 악순환이 있어요. 제 문제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안들 중에도 그런 게 많아요.” ―지금 제일 아픈 게…. “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사회운동을 했고 그게 정치까지 이어졌는데… 세상에는 이해관계보다 옳은 것, 진실 이런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언젠가는 그런 사람들이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그게 제가 정의당에 들어간 이유지요. 그게 흔들리니까…. 제가 더 정치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여성 청년 정치인들에게는 더 이상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해요.” 강민진(27) 10대 때부터 청소년 인권 운동가로 활동한 청년 여성 정치인. 2015년 정의당에 입당한 뒤 청년대변인을 맡았고, 지난해 3월 당 내 당인 청년정의당 대표에 선출됐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2022-05-30 03:00
이봉주가 레이스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이진구 기자의 대화, 그 후- ‘못 다한 이야기’]지난 12일 인터뷰를 위해 이봉주 선수를 만났을 때 사실 속으로 좀 놀랐습니다. 2년이 넘게 근육긴장이상증이란 희귀질환과 싸우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보기 힘들 정도로 쾌활했기 때문이죠. 근육긴장이상증은 의지와 관계없이 근육이 수축하여 뒤틀리거나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질환입니다. 이 때문에 그는 배 쪽 근육이 계속 잡아당기는 바람에 허리를 펴기 힘든 상태지요. 이 선수를 인터뷰 한 것은 그 자신이 투병 중인데도 불구하고 지난달 20일 장애인의 날에 봉사활동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오히려 아픈 뒤에는 전처럼 자주 못가 되레 미안한 마음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아파 보니까 몸이 불편하다는 게 어떤 건지 더 피부로 와 닿았다고 했습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그의 인생 자체가 한 편의 영화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초등학교 운동회 100m 달리기에서 한 번도 상을 받은 적이 없는, 평발에 짝발인 아이. 목장 주인이 되고 싶어 들어갔던 농고에서 친구 권유로 우연히 시작한 달리기 특별활동. 제대로 배우고 싶어 1년을 꿇고 다른 학교로 재입학. 1년 만에 재정난으로 육상부가 없어져 다른 학교로 다시 전학. 3초 차이로 놓친 올림픽 금메달.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무소속으로 뛴 세계대회에서 한국 신기록 수립. 44회 출전에 41회 완주한 국민 마라토너. 은퇴 후 찾아온 희귀병…. 우리는 마라톤을 자주 인생에 비유합니다. 그래서인가요? 그가 선수 시절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인생과 마라톤의 공통점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라고 합니다. 그런데 참… 저도 기자지만 20~30대 젊은 선수에게 ‘인생’에 대해 묻는 건 좀 그렇지 않습니까? 이 선수도 그러더군요. 그 나이에 자신이 인생에 대해 뭘 알겠느냐고요. 그런데 나이도 들고, 은퇴도 한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 마라토너가 자신만의 마라톤을 완성하는 것처럼 인생도 그러한 것 같다고요. 그는 마라토너는 순위가 결정되고, 자신의 기록 경신에 실패한 후라도 레이스를 멈추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등수와 기록이 전부라면 금메달이 결정되고, 기록 경신에 실패한 순간 레이스를 멈춰야하지만 그런 마라토너는 없다는 것이죠. 그는 우리가 살면서 마주치는 수많은 작은 일들에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마라토너에게는 레이스 하나하나가 그 작은 일들이고, 완주는 그 싸움에서 자신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라톤의 진정한 승자는 1등이 아니라 완주자고, 지금 힘들지만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44번 출전에 41번 완주는 삶과 마라톤에 대한 그런 생각과 자세의 결과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라톤은 대회 준비에만 3~4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1년에 두 번 이상 출전하기가 힘들다고 하는 군요. 44회 출번이면 22년 동안 한결같이 몸 상태를 유지했다는 의미입니다. 보통 마라톤 선수들이 평균 15회 정도 출전하면 은퇴하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차이죠. 그는 1996년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3초 차이로 은메달에 그친 것이 오히려 더 오래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던 동력이 됐다고 했습니다. 그때 금메달을 못 땄기 때문에 계속해서 목표를 높게 잡고 뛸 수 있었다는 것이죠. 만약 당시에 금메달을 땄으면 선수 생활을 훨씬 빨리 그만뒀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그는 술을 마셔도 대리운전을 부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차를 두고 간 뒤 아침 해장마라톤으로 가지러 갔다는 군요. 유럽 신혼여행 때도 새벽에 에펠탑 주위를 뛰었고요. 부상이나 상중이 아니면 매일 새벽 달리기를 안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물론 그도 사람이라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없던 것은 아닙니다. 어떨 때는 달리는데 누가 넘어뜨려 주지 않나하는 엉뚱한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는 군요. 그만큼 힘든 과정을 이겨냈기에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가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보니 인생과 마라톤은 확실히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인생이라는 경주에 나선 우리들도 등수에 상관없이 자신만의 마라톤을 완주해야 한다는 것이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마라톤이라는 종목이 금메달이 결정되고, 세계신기록 수립이 실패한 순간 모든 선수들이 그 자리에서 레이스를 중단하는 경기였다면 우리가 과연 마라톤에 대해 지금과 같은 경외심을 가질까 하는 것이죠. 인생도 그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역전승이 짜릿한 것처럼 힘든 걸 극복하고 이겨냈을 때 더 살만하지 않겠습니까. 이봉주 선수가 하루빨리 쾌차해 힘차게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2022-05-21 12:00
이봉주 “인생과 마라톤의 진짜 승자는 1등 아닌 완주자… 포기 않고 일어설 것”《30km 정도가 지나면 어김없이 찾아온다는 마라톤의 벽. 극단적인 피로로 몸은 천근만근 무거워지고, 발이 마치 땅에 달라붙은 것 같지만 마라토너에게는 반드시 이겨내야만 하는 구간이다. 2년 넘게 근육긴장이상증이란 희귀 질환과 싸우고 있는 이봉주(52)는 “마라톤에서 진정한 승자는 1등이 아닌 완주자”라며 “마라톤의 벽처럼 힘든 시기지만 끝까지 달려 꼭 이겨 내겠다”고 말했다.》 ―실례지만 몸은 좀 어떠신지요. “2년 정도 됐는데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아요. 단지 한참 안 좋았을 때는 통증 때문에 약을 먹지 않으면 잘 수가 없었는데 그래도 지금은 끊은 상태죠.” (약이라면 수면제를 말하는 건가요.) “네. 배 쪽에 있는 근육이 계속 잡아당기다 보니 허리를 펴기 힘들어요. 누우면 고개가 들리기 때문에 지금도 똑바로 누워서 자지는 못하지요. 그래서 옆으로 누워서….” (지난해 6시간에 걸쳐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은 받았는데 그렇게 크게 나아진 것 같지는 않아요. 그래서 지금은 좀 다른 치료를 받고 있어요.”※근육긴장이상증은 의지와 관계없이 근육이 수축하여 뒤틀리거나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질환이다. ―투병 중인데도 작년, 올해 장애인의 날(4월 20일)에 봉사활동을 갔더군요. “봉주르 원주봉사단이라고 아내가 전에 살던 원주에서 동갑내기들과 마라톤 동호회를 만들었는데 그 동호회에서 봉사활동도 하고 있어요. 전에는 거의 매주 갔는데 아픈 뒤에는 자주 못 가 미안하죠. 제가 아파 보니 몸이 불편하다는 게 어떤 건지 더 피부로 와닿더라고요.” (본인도 아픈데… 원래 낙천적인가요.) “하하하, 울고 인상 쓴다고 낫는 것도 아니잖아요? 마라톤을 한 게 병을 이겨내는 데 도움도 되는 것 같아요.” ―어떤 부분이 그렇습니까. “선수 시절 기자분들이 가장 많이 한 질문이 ‘인생과 마라톤의 공통점이 뭐라고 생각하느냐’였어요.” (뭐라고 했습니까.) “20∼30대 때 인생이 뭔지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기억도 안 나요. 이제 나이가 들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마라토너는 1∼3등이 결정돼도, 이미 자신의 기록 경신에 실패한 후라도 레이스를 멈추지 않아요. 모든 것이 결정되고, 몸은 천근만근이 되고, 이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순간이 와도 끝까지 달리지요. 순위와 관계없이 모두가 자신만의 마라톤을 완성해야 하니까요.” ―자신만의…마라톤? “등수와 기록이 전부라면 금메달이 결정되고, 기록 경신에 실패한 순간 레이스를 멈춰야겠지요. 하지만 그런 마라토너는 없어요.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작은 일을 만나죠. 그 작은 일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고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꼈다면 좋은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마라토너에게는 레이스 하나하나가 그 작은 일들이고, 완주는 그 싸움에서 자신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에요. 저는 마라톤의 진정한 승자는 1등이 아니라 완주자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도 힘들지만 저를 사랑해주고,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아요.” ―1996년 미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3초 차이로 금을 놓쳤는데도 오히려 기뻐했던 것도 그런 생각 때문이었습니까. “사실 은메달도 굉장히 잘한 건데 우리는 금메달을 못 따면 선수 자신이 마치 큰 죄를 진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울먹이고 그랬잖아요. 죄송하다고…. 하지만 저는 그때 진짜로 굉장히 기뻤어요. 잘한 거잖아요. 그래서 1등을 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투과네에게 축하한다고 하고, 저도 태극기 들고 트랙을 돌았는데… 사실 다른 이유도 좀 있긴 했죠. 그때 동메달이라도 못 따면 군대 가야 했거든요. 더 이상 연기할 수 없을 정도로 미뤄서….” (아까 등수는 중요하지 않다고….) “스물여섯 살 때라… 하하하.” ―지금 생각하면 어떻습니까. 올림픽 금은 의미가 다른데요. “아쉬운 게 없지는 않지만 그때 금메달을 못 땄기 때문에 오히려 더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 은메달이었기 때문에 금메달이라는 목표를 향해 계속 달릴 수 있었거든요. 제가 44번 출전해 41번을 완주했는데 만약 애틀랜타에서 금을 땄다면 은퇴 시기가 더 빨랐을지도 몰라요. 적어도 40번이 넘게 출전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보통 마라토너들은 15회 정도 출전하면 은퇴한다고 하더군요. “마라톤은 대회 준비에 3∼4개월 정도 걸리기 때문에 1년에 두 번 이상 나가기 힘들어요. 정말 많아야 3번? 에너지를 많이 쓰기 때문에 휴식도 필요하고요. 훈련에 들어가면 매일 20∼40km를 뛰지요. 40번이면 20년을 매년 출전한 셈이니까 몸 관리가 쉬운 일은 아니죠. 일찌감치 금메달을 땄으면 그렇게 오랜 시간을 버티기 힘들었을 거예요. 전 대리운전도 부른 적이 없거든요.” (술을 안 합니까?) “마시기는 하지만 차를 두고 갔다가 새벽에 해장 마라톤 겸 뛰어서 찾으러 가요. 어차피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두 시간씩 뛰니까 코스만 조금 바꾸면 되니까요. 신혼여행에도 운동화와 유니폼을 가져갔는데요 뭐.” ―설마 진짜 뛰지는…. “운동화, 유니폼, 건강식을 챙겨 가니까 아내가 놀라기는 하더라고요. 일주일간 유럽을 돌았는데 낮에 관광하면서 새벽에 뛸 코스를 봤어요. 파리에서는 에펠탑 근처를 뛰었고요.” ―그래도 사람이니까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겠지요. “누가 넘어뜨려 주지 않나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을 때도 있고, 슬럼프도 있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은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했던 대회였는데 레이스 중 다른 선수들과 부딪히는 바람에 24등에 그치기도 했죠. 사람들이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많이 묻는데 저는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요. 그런 행복한 기분은 마음이 편하고 여유가 있어야 나오는데 경기 중에는 집중하느라 풍경도 눈에 잘 안 들어오거든요.”※러너스 하이=고통을 참고 계속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찾아오는 행복감. ―정신력은 그렇다 치고 평발은 어떻게 극복한 겁니까. 무척 아팠을 텐데요. “사실 제가 평발이란 것도 서울시청팀에 들어가서야 알았어요. 그 전에는 ‘좀 불편한데?’ 정도로만 생각했지요. 그런데 얼마 전에 큰아이가 신체검사 받는 데 함께 갔는데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혹시?) “하하하, 저한테 너무 고맙다고 하더군요. 발 때문에 공익근무요원(사회복무요원)이 됐다고요.” ―초등학교 때 운동회에서 상 한번 못 탔다는 건 진짜입니까. “정말 한 번도 운동회 100m에서 3등 안에 들어온 적이 없어요. 순간적으로 튀어 나가는 단거리는 일반인보다도 느려요. 오죽하면 아들 운동회 학부모 100m에서 간신히 3등을 했겠어요.” (최근 일입니까?) “아니요, 2009년 은퇴하고 이듬해죠.” (선수 출신이라 봐준 건가요.) “애들이 보고 있어서 진짜 전력으로 달렸어요. 1, 2등 하신 분들은 뿌듯했을 거예요. 보스턴 마라톤 우승자인 이봉주를 이겼으니까. 하하하.” ―당신이 세운 한국 신기록이 22년이 지나도록 안 깨지고 있더군요. “시대가 변해서 그런지 이제는 마라톤같이 힘든 운동은 안 하려는 것 같아요. 저 때는 학교마다 육상부가 있었는데 이제는 많지 않아요. 중고교 선수들을 위한 대회도 많이 없어졌고요. 그리고 선수들도 국제대회 우승이나 신기록 같은 큰 목표보다 국내 대회 순위 경쟁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고요. 기록 단축은 굉장히 힘든 자신과의 싸움이에요. 하지만 국내에서 등수 경쟁만 하면 상대적으로 편하거든요.” (선수라면 다들 올림픽 같은 큰 대회에서 우승하고 싶어 하는 줄 알았습니다.) “요즘은 그런 큰 꿈을 잘 안 갖는 것 같아요. 그리고 마라톤 실업팀 대부분이 시·군·도청팀이라 전국체전, 도민체전에 더 신경을 쓰는 탓도 있지요. 빨리 제 기록이 깨져야 하는데….”※현재 한국 신기록은 그가 2000년 도쿄 국제마라톤에서 세운 2시간7분20초다. ―지도자의 길을 안 간 이유가 있습니까. “그게… 시기를 좀 놓친 것 같아요. 은퇴 직전에 소속사에서 지도자 수업을 제의했는데 그때는 당분간 쉬고 싶었거든요. 그동안 가족과 많은 시간을 갖지 못한 게 아쉬웠는데 코치가 되면 또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아질 수밖에 없고요.” (지금도 가능하지 않습니까.) “신생팀을 맡아서 키워 보고는 싶어요. 그게 아니라도 인기 종목에 가려진 육상이라는 길을 선택한 후배들을 돕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하려고 해요.”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2022-05-16 03:00
[이진구 기자의 對話]“2030년 한국형 달착륙선 성공, 꿈 아닌 TV서 볼 수 있어”《지난해 10월 21일, 순수 우리 기술로 제작된 ‘누리호’가 개발 착수 11년 7개월 만에 마침내 하늘로 날아올랐다. 비록 마지막 단계에서 궤도 진입은 못 했지만, 실패라기보다는 ‘미완의 성공’이라는 평가가 더 많다. 그 누리호가 다음 달 15일 2차 발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상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은 “1차 발사 때 나타난 문제점 외에 다른 문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며 “누리호에 이어 8월 달 궤도선까지 성공하면 우리도 민간 주도 우주 개발 시대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 10월 1차 발사는 왜 실패한 건가. “3단 발사체 안의 헬륨 탱크 고정 장치를 설계할 때 실제 비행 시 발생하는 부력을 생각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비행 중 탱크가 떨어져나가면서 내부에 충격을 줬고, 이로 인한 균열로 산화제가 누출되면서 엔진이 일찍 꺼졌다.” ―실제 비행 시 발생하는 부력을 고려하지 못한 것은 1, 2단 발사체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건 문제가 없었는데…. “생각 못 한 건 맞는데 1, 2단 발사체는 훨씬 크기 때문에 공간이 충분해서 외벽 쪽으로 튼튼하게 고정할 수 있었다. 그런데 3단 쪽은 크기도 작고 내부가 거의 원형이라 벽 쪽으로 고정시키기가 애매했다. 그래서 탱크 아래쪽을 잡았는데 이게 고정력이 약했던 거다.” ―실제 비행 경험 부족 때문에 생긴 문제인데, 미국항공우주국(NASA) 출신 같은 외국 인력을 스카우트하거나 수시로 자문했다면 사전에 발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설계 초기에는 자문을 했다. 그런데 개발이 본궤도에 오른 상태에서도 자문을 하면 그 과정에서 우리 독자 기술이 외부에 알려지는 문제가 생긴다. 정신없이 바쁜데 개발자들이 그때마다 외국에 다녀오기도 힘들고….” (전화나 이메일로는 안 되나?) “하하하, 보안 문제도 있고, 또 로켓 자문이 전화 몇 마디로 해결되는 간단한 게 아니니까. 외국 인력 스카우트는 계약 조건 맞추기도 쉽지 않지만 그들은 계약기간이 끝나면 돌아가기 때문에 앞서 말한 대로 우리 기술이 유출되는 문제가 있다.” ―누리호가 성공하면 세계에서 7번째로 1t 이상의 실용급 위성을 발사한 나라가 된다고 하는데 1t의 의미가 뭔가.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1957년)는 발사에 성공했다는 의미는 있지만 크기(83kg)가 작아 인공위성으로서의 기능은 거의 하지 못했다. 제 기능을 하려면 관측 등 필요한 각종 장비를 탑재할 만큼의 크기가 필요하고, 그러려면 1t 이상은 돼야 한다. 제대로 된 기능을 하는 인공위성을 독자적으로 쏘아 올릴 수 있는 7번째 나라가 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달 탐사 궤도선을 왜 스페이스X사 로켓에 실어 보내는 건가. 누리호로 보내면 더 의미가 깊을 텐데. “원래는 그렇게 하려고 했다. 2007년 처음 달 탐사 계획을 만들 때 나도 참여했는데… 그때 2020년 달 궤도선, 2025년 달 착륙선을 보내기로 계획했다. 그래서 그러면 궤도선과 착륙선을 어떤 방법으로 달에 보내느냐, 외국 로켓을 써도 되냐 이런 논의를 하고 있는데 당시 교육과학기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굉장히 명확하게 ‘당연히 우리 손으로 만든 발사체로 보내야 한다’고 했다.”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판단 아닌가.) “그래서 ‘OK’ 하고 사업이 시작됐다. 그런데 2014년인가? 처음에는 없던 계획이 갑자기 끼어들어 왔다.” ―없던 계획이라니…. “2020년 달 궤도선 발사에 앞서 시험용 궤도선을 발사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건 시험용이니까 외국 발사체로 쏴도 된다고 했다.” (우주개발 프로젝트가 갑자기 툭 던져도 다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나.) “그러다 보니 당초 계획보다 막 늦어지게 됐다. 그러니까 2018년에 계획을 또 바꿨다. 궤도선은 없애고, 달 착륙선은 2030년으로 미룬 거다.” (8월 발사하는 게 궤도선인데 궤도선을 없앴다니?) “시험용 궤도선, 궤도선, 착륙선에서 시험용 궤도선과 착륙선이 남은 거다. 그런데 궤도선이 없는데 시험용 궤도선이 있으면 좀 그러니까 우리 명칭에서는 ‘시험용’이란 말을 뺐다.”※한국형 달 궤도선(KPLO·Korea Pathfinder Lunar Orbiter)은 달 100km 고도를 비행하며 달을 관측하는 무인 탐사선이다. ―우여곡절은 있지만 우리 힘으로 달 궤도선이라니 들으면서도 잘 안 믿긴다.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우주개발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 헤딩으로 달까지 가게 된 셈이다. 정말 짧은 시간에 엄청난 발전을 이뤘는데 예를 들면 달 궤도선을 4개월 반 동안 우리가 조종해서 달에 보내는 것도 그렇다.” (아폴로 11호는 3일 만에 갔는데 직접 가는 게 아닌가?) “그렇게 직접 가는 방법도 있고, 태양 달 지구의 중력을 이용해 가는 방법도 있다. 스페이스X사 로켓의 역할은 우리 달 궤도선을 우주에 띄워주는 것까지다. 이건 발사 20분 만에 끝난다. 그다음부터는 우리 관제센터에서 궤도선을 조종해 달로 보내는데, 먼저 태양 쪽으로 보낸 뒤 태양과 달의 중력, 추진기를 이용해 조금씩 방향을 틀고 잡으면서 달에 간다. 그 기간이 4개월 반 정도가 걸린다. 기술은 많이 발전했다. 그런데 진정한 민간 우주시대를 열려면 지금과는 마인드가 달라져야 한다.” ―당신은 지금처럼 나랏돈 누가 가져가는 수준으로는 안 된다고 했던데…. “과거처럼 우주개발을 정부가 아닌 스페이스X 같은 민간기업이 주도하는 시대를 뉴 스페이스(New Space)라고 한다. 민간 우주개발의 특징은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고 펀딩을 받아 사업을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뉴 스페이스 시대를 열려면 정부가 더 많은 돈을 민간기업에 내려보내야 한다고 한다. 이미 정해진 국가 예산을 관련 기업이 나눠 갖는 게 무슨 뉴 스페이스인가. 일론 머스크처럼 기존의 틀을 완전히 깨는 과감한 혁신과 아이디어 없이 정부가 돈만 내려보내는 식으로는 진정한 민간 우주시대를 열 수 없다.” ―머스크가 어느 정도나 틀을 깼기에…. “예를 들면… ‘스뎅’으로 우주선을 만들었다.” (스뎅? 냄비나 식칼 만들 때 쓰는 스테인리스스틸을 말하는 건가.) “그 ‘스뎅’ 맞다. 기존 항공우주 분야에서는 누구도 ‘스뎅’으로 우주선을 만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우주선을 만들 때 중요한 게 비행체 무게다. 그래서 가능한 한 가볍게 하기 위해 알루미늄 합금이나 탄소 복합재 같은 소재를 쓰는데 머스크는 스테인리스스틸을 썼다. 왜 기존에는 생각도 안 했냐면 스테인리스스틸이 알루미늄에 비해 3배 이상 무겁기 때문이다.” ―그런데 머스크는 왜…. “무엇보다 값이 엄청 싸다. 열도 더 잘 견디는데 반면에 또 용접도 쉽다. 더군다나 더 튼튼하다. 엔진 기술만 확보할 수 있으면 ‘스뎅’이 훨씬 더 장점이 많은 거다. 그러다 보니 결과적으로 엔진도 훨씬 성능이 좋은 걸 만들어내게 됐다. 또 전통적인 우주개발 방식에서는 사고가 나면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모든 절차가 중단됐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스페이스X는 원인 분석과 재시도를 거의 동시에 진행했다. 덕분에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지만 개발 시간도 굉장히 단축했다.”※스테인리스스틸은 탄소섬유 가격의 2%정도라고 한다. 머스크는 이것이 스타십 디자인에서 가장 훌륭한 결정이라고 했다. ―새 정부가 ‘항공우주청’을 신설할 계획이다. 그런데 우리는 앞서 말한 기술과 정책의 혁신보다 청사를 어디에 두느냐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미국 NASA 본부는 워싱턴에 있다. 흔히 영화에서 많이 보는 미국 휴스턴 관제센터(존슨 우주센터)는 텍사스, 케네디우주센터는 플로리다에 있고…. 항공우주청은 행정본부인데, 그게 제작업체들이 밀집해 있는 곳에 있다고 큰 도움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NASA 유관기관들은 연구를 담당하는 제트추진연구소는 캘리포니아, 고더드 우주비행센터는 메릴랜드주, 마셜 우주비행센터는 앨라배마주 등 전국에 산재해 있다. ―40년 가까이 우주개발 분야에 있는데 아쉬운 점이 있나.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우리가 대체적으로 추격형 대형 프로젝트를 많이 하다 보니 30, 40년 뒤를 준비하는 게 부족하다. 예를 들면 누리호 사업이 벌써 12년째인데 이렇게 큰 프로젝트 중심으로 인력과 예산이 묶이다 보면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지금은 생각도 못 하는 것을 고민하기가 쉽지 않다. 당장은 써먹지 못하더라도 수십 년 뒤를 보며 고민하고 연구하는 투자가 필요하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2022-05-03 03:00
미국은 정말 푸틴을 전범 재판에 회부하고 싶을까 [이진구 기자의 대화, 그 후- ‘못 다한 이야기’]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국제 전범 재판에 회부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하지만 국제사법재판소(ICJ)는 국가간 분쟁만 다루는데다 당사국이 모두 동의해야만 재판을 열 수 있고, 국제형사재판소(ICC)는 개인을 재판할 수는 있지만 궐석재판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푸틴을 잡아오지 않는 한 불가능한 것이죠. 백강진 전 캄보디아 크메르루주 전범특별재판소(ECCC) 국제재판관을 인터뷰한 것은 우리가 이 전쟁범죄를 심판할 방법이 정말 없는지 답답했기 때문입니다. 선문답 같은 대답이지만 방법은… 없다고 생각하면 없고, 있다고 믿으면 있었습니다. 당장은 못하지만, 국제사회가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심판하겠다는 의지와 각오를 잃지 않는다면 할 수 있다는 것이죠. ECCC같은 특별재판소를 만들어 재판을 시작하고, 추후 푸틴이 실각하기를 기다려 형을 집행하는 방법을 찾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크메르루주 전범 재판도 특별재판소 설립요청에서 재판이 끝나는데 무려 25년이 걸렸으니까요. 크메르루주가 정권을 빼앗긴 1979년부터 따지면 무려 43년이 걸린 셈입니다. 그래서 저는 푸틴을 단죄하는데 정말 중요한 것은 방법이 아니라 우리의 ‘의지’라고 생각합니다.그런데 국내법과 달리 국제법은 힘의 논리가 우선입니다. 선한 의지를 실현시키려면 그만큼 강한 힘이 필요하지요.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게 러시아가 아니라 북한이었다면 아마 그 즉시 그린베레나 네이비실 같은 특수부대가 출동해 잡아왔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현실적으로 러시아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강대국인 미국이 얼마나 그 의지를 실행할 각오가 돼있느냐가 푸틴 전범 재판을 여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미국은 정말 그 정도의 의지가 있을까요.물론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푸틴을 전범이라고 했습니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와 함께 우크라이나에 전쟁물자도 지원하고 있지요.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ICC를 정식으로 지원하는 게 법적으로 가능한지도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미국이 ICC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뭔가 굉장히 공허합니다. 미국 정부의 행동이 쇼는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푸틴 전범 재판을 열고 싶다면 ICC지원을 검토하는 게 아니라 먼저 회원국으로 가입부터 하는 게 순서 아닐까요. 백 전 재판관은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미군 범죄에 대한 ICC 조사를 막은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수십 년간 내전 상태였던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만 반인도적인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닙니다. 아프간 정부군뿐만 아니라 미군 및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저지른 범죄도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았습니다. 그래서 보다 못한 ICC가 2020년 3월 미군 범죄에 대한 파투 벤수다 소추관의 수사 개시를 허가했지요. 그랬더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발동해 ICC 수사에 직접 관여하는 인사들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고 이들과 직계가족, 피고용인의 미국 입국을 금지했습니다. 전쟁범죄를 수사하는 사람들의 자산을 동결하다니요? 더욱이 벤수다 소추관은 그 전해에 이미 미국 입국 비자를 취소당했습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ICC의 수사개시 허가 결정에 대해 “법적 기구인 양 행동하는 무책임한 정치적 기관이 내린 참으로 놀라운 조치”라고 비난했습니다. 누가 했는지 모르고 들으면 북한 조선중앙TV의 리춘희 아나운서 말 같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 외교부 산하 외교안보연구소는 ‘ICC의 미군 전쟁범죄 수사개시결정과 우리 외교에의 함의’라는 분석보고서를 냈습니다. 이 보고서는 ‘미국복무요원보호법’(American Servicemembers‘ Protection Acts)도 설명하고 있는데, 2002년 제정된 이 법은 미국인의 신병을 ICC에 인도하게 될 ICC회원국에 대한 군사적 원조를 금지합니다. 또 미국인이 ICC에 의해 구금된 경우 대통령은 구출을 위해 적절하고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권한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필요한 모든 조치에는 군사력 사용도 배제하지 않고 있지요. 그래서 이 법에는 일명 ’헤이그 침공법‘이라는 오명이 붙어있습니다. ICC본부가 헤이그에 있기 때문이죠. 보고서는 또 ’미국은 ICC설립 초기부터 전 세계에서 군사작전을 펼치는 미군에 대해 전쟁범죄 등을 이유로 한 ICC의 기소가능성을 우려해 이에 대비한 여러 가지 국내적, 국제적 방지장치를 마련해왔다‘고 설명합니다. 아무리 힘이 우선인 국제법이라 해도 그것이 재판인 이상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절차와 형식이 필요합니다. ICC가 궐석재판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피고의 항변권을 보장하기 위해서지요. 내가 저지른 범죄를 지적하면 “시끄러워”하면서 남의 범죄는 재판하겠다고 하면 우습지 않습니까? 설사 열린다 해도 그 판결에 얼마나 많은 나라들이 수긍할까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이 나치 전범 재판을 열자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은 즉결 처분하지 않고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때 수석 검사를 맡았던 미국의 로버트 하윗 잭슨 연방대법관은 “이 재판에서 일부는 무죄를 받고 나갈 수도 있겠지만, 그걸 허용하는 게 문명이다. 처벌만을 위해 만들어진 법원은 존중받을 가치가 없다. 이 재판의 실제 원고는 문명이다”고 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인류를 퇴행시킬 수 있는 수많은 일들이 벌어졌지만 그래도 우리가 조금씩 전진해온 건 이런 생각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과 푸틴의 전쟁범죄를 어떻게 단죄하느냐는 우리가 이 지구에 남아있을 가치 있는 존재인지를 증명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침략자와 침략을 옹호하는 사람들, 그리고 범죄에 눈감은 자들만 존재한다면 그것은 괴물들의 세상입니다.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2022-04-23 12:00
“유엔 ECCC 모델이면… 푸틴 전범재판 열 수 있어”[이진구 기자의 對話]《블라디미르 푸틴을 전범재판에 회부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국제사법재판소(ICJ) 국제형사재판소(ICC) 모두 현실적 제약 때문에 처벌은커녕 재판 자체도 열 수 없는 상황. 백강진 전 캄보디아 크메르루주 전범특별재판소(ECCC) 국제재판관(53·광주고법 부장판사)은 “ECCC 같은 특별재판소 모델은 정해진 틀이 없기 때문에 유엔과 당사국 합의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 수 있다”며 “전범은 공소시효가 없기 때문에 재판을 먼저 시작하고 푸틴 실각 후 형을 집행할 방법을 찾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귀가 번쩍 뜨이는데…. “ICJ는 국가 간 분쟁만 다루고, ICC는 결석재판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푸틴을 잡아오지 않는 한 열 수 없다. 반면 특별재판소는 합의하기 나름이다. 유엔과 캄보디아 정부가 2006년 설립한 ECCC는 캄보디아 정부 안에 법원을 두되, 유엔이 파견한 국제재판관과 캄보디아 판사가 함께 재판하는 형식이다. 레바논 총리 암살테러 사건으로 설립된 유엔 레바논특별재판소(STL)는 결석재판을 인정한다.” ―결석재판은 절차적 흠결 논란이 생길 수 있지 않나. “물론 피고의 항변권에 제약이 있고, 이 때문에 판결이 과연 적절하냐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전범특별재판소는 당장 한두 달 만에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ECCC도 논의 시작부터 설립까지 10년 가까이 걸렸다. 일단 논의를 시작하고 우려되는 점을 보완하면 된다. ICC가 있음에도 코소보, 시에라리온, 동티모르, 캄보디아, 레바논 등에 특별재판소가 계속 생긴 것도 각 지역과 상황의 특수성을 반영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저것 때문에 다 못하면 국제형사정의는 어떻게 실현하나.” ―특별재판소가 푸틴을 전범으로 판결해도 처벌할 수는 없는데…. “푸틴이 실각하지 않는 한 처벌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하루라도 빨리 재판을 열어 그가 전범이라는 걸 전 세계에 확인시키고, 법적으로 유효한 증거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크메르루주 정권(1975∼1979년)에서 170만 명이 학살됐지만 재판은 약 30년이 지난 2006년에야 시작됐다. 여기에 재판에 16년이나 걸리면서 고령인 피고들 대부분이 사망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증인과 증거도 사라진다.” (안 그래도 러시아는 범죄 증거들을 인멸하고 있다.) “전 세계가 특별재판과 경제 제재로 압박을 하고, 이로 인해 러시아에서 푸틴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고, 그 결과 반푸틴 세력이 집권하면 죗값을 받게 할 날이 올 수 있다. ECCC가 만들어진 배경도 이와 비슷하다.” ―ECCC는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 “1979년 현 훈센 총리가 크메르루주를 몰아내고 정권을 잡았지만 내전이 계속될 정도로 크메르루주 세력이 강했다. 이들을 압박하고, 정권을 잡은 정당성도 알리기 위해 크메르루주가 저지른 반인도적 범죄를 대대적으로 부각시켰는데, 존 레넌의 ‘imagine’으로 유명한 영화 ‘킬링필드’(1985년)가 제작될 수 있었던 데도 이런 배경이 있다. 전범재판으로 정권을 잡은 정당성을 부각시키고, 유엔과 함께하면 혼자 하는 것보다 판결의 공신력도 생기기 때문에 1997년 훈센 총리가 당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에게 요청해 만들어졌다. 푸틴도 영원히 집권할 수는 없지 않나.” ―늦게나마 전범재판이 열린 건 다행이지만 달랑 9명만 기소하고, 그중 3명만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이럴 거면 뭐하러 했느냐는 말이 나올 만도 한데. “그게 전범재판이 어려운 이유인데… 모든 관련자를 다 처벌할 수도 없는 데다 캄보디아 정부가 유엔과 설립 조약을 맺을 때 기소 범위를 ‘고위 지도자 및 중대범죄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자’로 한정했다. 재판관도 캄보디아 판사가 한 명 더 많게 구성하도록 하고….” (그럴 거면 유엔이 함께할 이유가 없지 않나.) “유엔은 법정은 외국에 두고, 혼합으로 재판관을 구성하되 유엔이 임명한 국제재판관이 더 많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래야 공정한 판결이 담보되니까. 캄보디아가 끝내 양보를 안 하자 코피 아난 사무총장은 협의를 중단했다. 그런데….” ―유엔 사무총장이 ‘패싱’된 건가? “미국이 주도해서 (캄보디아 주장대로) 유엔 총회에 안건을 상정하고 통과시켜 버렸다. 그리고 총회 결정을 사무총장에게 집행하도록 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기소 범위에 한계가 있었다. 또 30년 가까이 지난 뒤에 재판이 시작되다보니 폴 포트 등 책임 있는 자들 상당수는 이미 죽었고, 재판 과정에서 또 여러 명이 죽었다. 실형(종신형)을 받은 3명 중 카잉 구엑 에아브 투올슬렝 교도소장은 2020년 병원에서 죽었고, 누온 체아 공산당 부서기장은 형 확정 3년 후인 2019년 93세로 사망했다.” (무늬만 종신형인 셈인데.) “미흡한 점도 많지만 30년 넘게 이루어지지 않은 법적 책임을 지웠다는 점은 큰 의미가 있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전범재판을 시작해야 한다.” ―남은 한 명은 지금 교도소에 있나. “키우 삼판 전 국가 주석(91)이 구치소 같은 데 있기는 한데….” (‘구치소 같은 데’라니?) “구치소는 아니고 동남아에서 볼 수 있는 별장 같은 곳에서 일종의 가택연금 형식으로 지내고 있다. 올해 말 항소심 결과가 나오는데 그때까지는 거기에서 산다. ECCC 재정담당자가 마사지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푸념하더라.” (전범에게 마사지라니.) “아이러니하기는 한데… 아프다고 하는데 방치했다가 만에 하나라도 죽으면 안 되니까. 살아있어야 재판도 할 수 있지 않나.” ―방탄차로 출퇴근을 했다던데 아직도 잔존 세력이 남아 있나. “어느 날은 출근하니까 내 방 창문틀에 죽은 새가 매달려 있더라. 다리가 실에 묶여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피가 흥건했다. 조사를 요청했더니 돌아온 답이… 다리에 실이 묶인 새가 날아가다 그 끈이 내 방 창문에 걸려 죽은 거라고 하더라.” (푸틴을 재판하면 러시아는 새 정도로 끝내지는 않을 것 같은데.) “유엔에서 파견된 경호팀이 있는데 나는 선고 다음 날 경호를 해제했다. 그런데 프랑스 판사는 귀국할 때까지 유지하더라. 아, 안 그래도 우크라이나가 곧 유엔에 특별재판소 설립을 요청할 거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아나?) “ECCC에서 함께 일한 유엔 직원 중에 우크라이나 직원이 두 명 있는데 계속 연락을 하고 있다. 막 법안을 만들었는데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고 했다.” ―지금은 국제사회가 푸틴을 비난하지만 실제 재판을 여는 데 얼마나 적극적으로 동참할지 솔직히 의문이다. “수십 년간 내전 상태였던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과 아프간 정부군뿐만 아니라 미군 및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저지른 반인도적 범죄도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았다. 그래서 보다 못한 ICC가 2020년 3월 아프가니스탄이 ICC에 가입한 2003년 5월 이후의 미군 범죄에 대해 파투 벤수다 소추관의 수사 개시를 허가했다. 그랬더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발동해 ICC 수사에 직접 관여하는 인사들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고 이들과 직계가족, 피고용인의 미국 입국을 금지했다. 벤수다 소추관은 그전에 미국 입국 비자를 취소당했다.” ―국제기구가 아프리카에서만 힘을 쓴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미국과 러시아는 ICC 회원국도 아니다. ICC에 가입하면 자국민이 나쁜 짓하면 잡아서 갖다줘야 할 의무가 생기니까.”※미국복무요원보호법은 미국인이 ICC에 구금된 경우 대통령은 구출을 위해 적절하고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권한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170만 명이나 죽인 전범들에게 왜 사형을 선고하지 않은 건가. “국제적으로 사형제가 있는 나라도 있지만 사형제 폐지에 찬성하는 나라들이 더 많아서 그게 반영됐다. 완전히 합의된 건 아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전범재판 이후로는 국제재판에서 관습적으로 사형 판결은 안 하고 있다. 푸틴도 사형까지는 안 나올 수 있다. 대신 전범에게는 공소시효와 사면이 없다.” ―법과 인륜을 초월한 전범들에게 너무 관대한 것 같은데…. “미국이 나치 전범 재판을 열자 윈스턴 처칠은 즉결 처분하지 않고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했다. 그때 수석 검사를 맡았던 미국의 로버트 하윗 잭슨 연방대법관이 이런 말을 했다. ‘이 재판에서 일부는 무죄를 받고 나갈 수도 있겠지만, 그걸 허용하는 게 문명이다. 재판에 회부한다는 것은 무죄로 풀려날 가능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처벌만을 위해 만들어진 법원은 존중받을 가치가 없다. 이 재판의 실제 원고는 문명’이라고.” (너무 멋진 말인데 속은 쓰리다.) “역사적으로 우리를 퇴행시킬 수 있는 수많은 일들이 벌어졌지만 인류가 그래도 조금씩 전진해온 건 이런 생각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2022-04-18 03:00
“충성심을 인사의 보이지 않는 척도로 삼지 않았으면…” [이진구 기자의 대화, 그 후-‘못 다한 이야기’]5년 전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던 날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을 인터뷰했습니다. 모든 정보가 모이는 청와대에서 왜 조각과정에 늘 인사검증 실패가 벌어지는 지 이해할 수없었기 때문이지요. 정도 차이가 있을 뿐 인사청문회 낙마 사례가 없는 정권이 없고, 직전 박근혜 정부에서는 무려 3명의 국무총리 후보자가 자진사퇴 또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넘지 못했습니다. 청와대 인사검증팀은 검찰 경찰 행정안전부 국세청 등 각 부처에서 납세 전과 위장전입 논문표절 경력 등 후보자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받습니다. 경찰은 거주지 주민 평가를, 국가정보원은 주변 인물들과 근무처 평판 등도 종합해 올린다고 하는 군요. 여기에 대통령실장(지금은 청와대 비서실장) 주재의 예비청문회도 거칩니다. 그런데도 국무위원 후보자가 내정되면 온갖 의혹과 문제들이 제기되고, 이 중 상당수는 결국 낙마에 이릅니다. 청와대의 검증 능력이 떨어져서일까요? 그럴 리야 없겠지요. 결국 문제는 능력 있는 사람을 쓰는 게 아니라, 시키고 싶은 사람에게 자리를 주려다보니 생기는 것 같습니다. 후자의 경우 인사검증은 형식적인 절차로 전락할 수밖에 없지요. 이명박 정부 시절 모 인사가 국방부 장관 후보로 올라왔는데 최종 단계에서 전역 후 방위산업체 고문을 맡은 것이 문제가 돼 제외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이 인사를 국방부 장관으로 지명했고, 결국 같은 문제로 낙마했지요. 임 전 실장은 검증 과정을 종합해 최종적으로 인물에 대한 판단을 쓸 때 펜을 잡은 사람의 주관이 개입될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예를 들어 능력은 있지만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을 경우 시키고 싶다면 ‘소신 있게 일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대인관계가 다소 미흡함. 하지만 업무 능력은 탁월함’이렇게 쓴다는 것이죠. 만약 반대라면 ‘업무 능력에 비해 대인 관계에서 많은 적이 있음’ 이런 식으로 쓰고요. 미흡, 탁월, 적이 많음 이런 용어들이 워낙 주관적인 용어라 증명할 방법도 없지 않겠습니까. 물론 자리를 얻고 싶은 사람이 목숨을 걸고 달려들어 평가서를 좋게 쓰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공직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불나방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섭게 달려든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임 전 실장은 대통령이 큰 결심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표현이 좀 조심스럽습니다만 일해야 하는 사람과 챙겨 줘야할 사람을 구별해야한다는 것이죠. 선거 때 받은 도움 때문에 일 할 능력이 안 되는 사람에게 ‘일하는 자리’를 주면 나라가 불행해진다는 것이죠. 챙겨 줘야할 사람들은 외부에 적당한 자리가 많으니 그런 쪽으로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 임 전 실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당부한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인사를 정국 운영 카드로 쓰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죠. 대체로 역대 정부가 꼬인 정국을 풀기 위해 개각 등 인사 카드를 쓰는데 의도와 달리 부담만 가중시키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이것이 정말 중요한데… 충성심을 인사의 보이지 않는 척도로 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정치권 인사들과 만나서 얘기하다보면 그들이 사람을 쓰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충성심인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만난 어떤 국회의원은 보좌관 추천을 부탁하면서 자신은 충성심을 가장 중요하게 본다고 하더군요. 충성심은 어떻게 해야 임명권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걸까요. 혈서라도 써야하나요? 임 전 실장과의 대화는 5년 전일입니다. 그런데도 전혀 기시감이 들지 않는 군요. 그동안 나라를 이끈다는 집권여당 의원들이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 ‘한번도 만나본적 없던 대한민국과 대통령을 맞이하게 됐다’며 용비어천가를 서슴지 않았던 탓이겠지요. 윤석열 정부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요. 당선인 자신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당선인이 새 정부를 구성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같은 잣대를 적용해준다면 분명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2022-04-09 12:00
[이진구 기자의 對話]“한국이 붕대라도 보내줄 수 없냐고… 친구가 울며 물어”《우크라이나에서는 러시아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아이들의 팔다리가 날아가고 있는데, 모스크바에서는 18일(현지 시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8주년 기념축제가 열렸다. 행사장 안팎에는 20여만 명이 몰렸고 모두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연설에 열광했다. 국내에서 러시아 침공 규탄 집회를 주도하고 있는 올레나 쉐겔 한국외국어대 우크라이나어학과 교수(41)는 “이 전쟁을 ‘푸틴이 잘못해서’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대부분 푸틴 탓으로 보지 않습니까. “한국에 있는 러시아 사람들 중에 제게 미안하다고 한 사람은… 20년 전 유학 와서 룸메이트도 함께한 친구 단 한 명뿐이었어요.” (주변에 러시아분들이 꽤 있을 텐데요.) “러시아 정부의 프로파간다(선전선동) 영향도 있겠지만, 다른 (러시아) 사람들은… 미안하다는 말은 고사하고 아예 말을 안 해요.” (포로로 잡힌 러시아 군인들은 ‘훈련인 줄 알았다’ ‘모르고 왔다’고 합니다만.) “저는 잡히면 그렇게 말하라고 교육받았다고 생각해요. 국경까지 올 때야 훈련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 그런데 국경을 넘었는데, 그리고 민간인을 향해 총을 쏘고 병원을 폭파시키면서도 훈련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이 전쟁을 푸틴만의 잘못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지도자가) 잘못된 전쟁을 하면 국민들이 들고일어나야죠. 100만 명이 나서는데도 전쟁을 계속할 수 있을까요?” ―그 친구는 뭐라 하던가요. “(전쟁 직후) 전화가 왔는데 못 받겠더라고요.” (왜요?) “그 친구가 우크라이나말을 몰라서 러시아어로 말해야 하거든요. 제가 러시아어로 얘기해야 한다는 게 너무 싫었어요. 그러다가 3, 4일 후에 받았는데… ‘부모님은 잘 계시느냐’고 묻더라고요.” ―편하게 답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만…. “부모님과 몇 시간만 연락이 안 돼도 미칠 것 같은 상황에서 제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래 어떨 것 같으냐. 너희 나라에서 이렇게 폭격하고 있는데 괜찮을 것 같으냐….” (그런 생각이 든 건가요.) “아니요. 대놓고 말을 했어요. 그 친구는 평소에 푸틴에 대해 비판적이에요. 그 친구가 전쟁을 일으킨 게 아니라는 것도 알죠. 머리로는 아는데….” ―러시아말을 하는 것조차 싫은데, 내 나라 수도를 러시아식 표기로 매일 보고 들어야 하는 건 더 힘들었겠습니다. “원래 주한 우크라이나대사관에서 우크라이나 발음으로 바꾸는 운동을 추진해 왔는데 그동안은 잘 안 됐어요. 그런데 전쟁이 나면서 바뀐 거죠. 한국에 있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내 나라 지명을 침략자 발음으로 매일 보고 들어야 한다는 건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이에요. 다행히 한국 언론에서 바꿔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이달 초부터 그동안 러시아식으로 표기되던 수도 키예프는 키이우, 하리코프는 하르키우, 리비프는 리비우 등으로 바뀌었다. ―혹시 우리가 본의 아니게 우크라이나분들에게 실수한 점은 없습니까. “오늘 하나 있기는 한데… 인터뷰를 했는데 제가 말하지도 않았고, 한국분들이 보면 화날 수 있는 제목을 뽑은 거예요.” (뭐라고 했습니까.) “한국이 6·25 때 받았던 빚을 갚아야 한다고….” (당시 우크라이나가 도와줬으니 이번에 갚으라는 뜻으로 오해받을 것 같습니다만.) “그러니까요. 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어요. 그리고 우크라이나는 6·25전쟁 때 한국에 해준 것도 없어요. 설사 해준 게 있어도 빚 갚으라는 식으로 말하면 안 되지 않나요? 국제사회의 도움을 부탁한 것뿐인데…. 저는 우크라이나가 한국에 어떤 도움을 요구하거나 요청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해요. 단지 부탁을 할 뿐이지요. 그런데 이런 기사가 나가면 한국분들이 좋게 보지 않을 거 같아요. 그래서 인터뷰를 안 하는 게 더 나을지 고민도 했어요.” ※이 기사는 이날 오후 내내 인터넷에 게재됐다. 이후 일부 수정이 있었지만 이미 원본이 곳곳에 퍼진 상태다. ―교수님이 아니면 한국에서 우크라이나 입장을 들을 통로가 거의 없지 않습니까. “침공 직전 푸틴이 대국민 연설을 할 때 기자분들에게 연락이 많이 왔어요. 푸틴 주장 중에 어떤 게 진짜고 가짜인지 묻기 위해서죠. 한국에 우크라이나 사람은 300여 명밖에 없고, 그중에서도 한국어를 하는 분은 많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알리지 않으면 한국에서는 미국이나 러시아, 또는 유럽의 시각으로만 상황을 보겠죠. 특히 러시아발 뉴스의 진위는 가리기 힘들 테고요.” ―집회도 주도하셨던데요. “제가 주도한 건 아닌데 그렇게 보여서…. 전쟁이 터지고 너무 힘든데 제가 뭘 할 수 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보려고 재한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모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커뮤니티에 들어갔어요. 거기서 집회를 하자는 의견이 이미 나왔어요. 그런데 관할 경찰서까지 근무시간 안에 직접 가서 집회 신청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저밖에 없는 거예요. 다들 생업이 있고, 지방에 계신 분도 있고, 무엇보다 한국어가 돼야 하니까요. 그래서 제가 신청하고, 성명서도 읽다 보니…. 모두가 자기 몫을 했어요.” ―한국도 뒤늦게 보내기는 했습니다만 필요한 물품이 한둘이 아닐 것 같습니다. “현지에서 간호봉사 하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어요. 울면서… 혹시 한국 정부가 붕대나 의료용품 같은 걸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봐달라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됐습니까.) “제가 아는 곳이 어디 있겠어요. 국회에서 우크라이나 상황 설명을 해달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필요한 물품 목록을 드리고 부탁을 하는 정도죠. 다행히 종교·시민단체분들이 긴급구호연대를 결성했는데 실제로 물품을 보내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려요. 지원 물품 중에도 소용없는 게 너무 많대요.” ―소용이 없다는 게 무슨 말인가요. “예를 들어 구호 물품이 든 컨테이너 하나가 오면 그 안에 진짜 필요한 건 30% 정도밖에 안 돼요.” (나머지는 뭔가요.) “곰돌이 인형 같은 거… 마음은 고맙지만 지금 곰돌이 인형을 어디에 쓰겠어요.” (음식은 어떻게….) “우크라이나군이 장악하고 있는 곳은 물자 공급이 되는데, 러시아군에 포위된 곳은 정말 힘들어요. 눈이 있을 때는 녹여 마시고, 지하실 파이프에 고인 물을 마시기도 하고…. 협상 중에는 인도주의적 통로를 열어두기로 했지만 말뿐이에요. 우리가 화물차를 보내면 바로 포격하니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코미디언 출신임에도 대통령이 된 게 이전 정치세력이 워낙 썩어서였다고 하던데…. “2012년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때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재임 2010∼2014년) 통역을 했는데….” (2014년 시민혁명으로 쫓겨난 친러 대통령 말인가요.) “네 맞아요. 푸틴의 꼭두각시인데 군 복무기간도 2년 반에서 1년으로 단축하고, 막판에는 6개월까지 줄이려 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 정상회의에 애인을 데려왔어요.” (네?) “영부인이 아니고 자기 요리사 출신의 불륜 관계인 여자를….”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는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 중국 후진타오 국가주석 등 50여 개국 정상이 참석했다. ―죄송합니다만 믿기 힘들군요. “그러실 거예요. 도착 당일 통역을 한 뒤에 다음 날 정상회의가 있으니까 몇 시까지 오면 되느냐고 물었더니 정상회의 때는 필요 없다고 하더라고요.” (회의 통역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닙니까?) “저도 이해가 안 돼서 ‘무슨 말이냐’고 물으니까 내일 그 애인과 측근들 관광쇼핑 통역을 해달래요. 점심을 한국 전통식으로 예약해 달라고 했는데….” (궁중요리 같은 걸 원했나요?) “종류는 상관없고 1인당 100달러 이하는 절대 안 된다는 거예요.” ―현지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부모님과 여동생은 키이우에 있다가 외곽으로 피란했는데 얼마 전에 폴란드로 넘어갔어요. 사실 손녀만 아니었으면 부모님은 키이우에 남으셨을 거예요. 제 여동생에게 18개월 된 아기가 있는데 너무 위험해서 여동생이 혼자라도 나가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차마 혼자 보낼 수 없어서 함께 수도 외곽으로 피했는데 거기도 포격이 심해지니까 도저히 있을 수가 없어서….” (다른 지인들은 어떻게….) “연락이 안 되는 사람들이 있는데… 죽었다고 생각하면 너무 견딜 수 없어서 그냥 연락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전화기를 잃어버렸거나 통신이 안 돼서 그런 것뿐이라고….” ※후원계좌 174-910024-87105(하나은행)예금주 우크라이나 대사관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2022-03-21 03:00
정은경 질병청장은 방역 완화 반대했는데 왜 정부는 풀었을까[이진구 기자의 대화, 그 후-‘못 다한 이야기’]코로나19 확진자가 한창 폭증하던 2일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를 인터뷰 했습니다.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은 모르는 바 아니지만 확진자가 폭증하는데 방역은 점점 더 완화하는 상황이 좀 앞뒤가 안 맞았기 때문이지요. 이 교수는 이런 정부 대응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지난달 중순 정부 코로나19 일상회복지원위원회 위원직을 사퇴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인터뷰를 한 2일은 마침내 처음으로 확진자 20만 명을 넘은 날이지요. 그때 다음주면 30만 명을 넘을 수 있다고 했는데 정말 3월 8일 34만 명을 찍었습니다.이 교수가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이제 확진자가 너무 늘어나서 정부가 다 관리해줄 수가 없기 때문에 정부가 국민들에게 상황을 솔직하게 말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이 위기라는 것이죠. 델타보다 증상이 약하다고는 하지만 오미크론 자체도 아직 완전히 무시할 정도는 아닌데다 델타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또 다른 문제들이 파생되고 있기 때문입니다.의사도 감염되면 일주일 동안 자가 격리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부는 경증이면 3~5일만 격리하고 나와서 일하라고 합니다. 환자나 다른 의료진의 감염은 어떻게 하나요? 이 교수가 근무하는 병원에는 흉부외과 교수 두 명이 에크모(ECMO·인공심폐기)를 돌리고 있다고 합니다. 만약 이분들이 격리되면 코로나 환자가 아닌 사람도 기계를 제대로 못 돌려 죽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최근에 코로나에 걸린 영유아들이 잇달아 숨졌다는 기사를 보셨을 것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증상이 악화돼서, 병상이 다 차서 그런 일이 벌어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는 소아응급체계가 무너진 슬픈 우리 의료현실이 있었습니다. 출산율이 줄면서 소아과가 돈이 안 되니 인기가 없어진 것이죠. 메이저 대학병원 정도를 빼면 소아과 레지던트가 있는 병원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레지던트가 있는 곳도 낮 근무 때문에 밤에 당직은 못 세우고요. 그래서 대부분의 대학병원에서 소아과는 밤에 응급 콜을 안 받고 있다고 하는 군요. 야간에 소아응급을 받는 곳을 찾다보니 시간이 지체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런데 코로나가 2년이나 지났는데 왜 지금 와서 문제가 드러났냐고요? 그 전까지는 지금처럼 확진자가 폭증하지 않았기 때문에 메이저 병원에서 감당할 수 있었지요. 지금은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고요.이 교수는 “확진자가 너무 늘어서 집중관리군 외에는 정부가 관리해 줄 수가 없다. 그러면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처럼 국민들에게 지금이 위기이고, 국민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라는 걸 솔직히 말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지금까지 너무 잘해왔다고 자부하다 보니, 위기를 인정하는 걸 마치 방역을 포기하는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죠. 재택치료, 수동감시 등의 이상한 이름도 그런 이유에서 나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집중관리군 외에는 아무 것도 못해주는데 ‘재택치료’라니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 확진자 동거인은 격리여부를 스스로 결정하라고 하면서 ‘수동감시’라니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데 마치 뭔가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으니 이런 용어를 만들어내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 우리 몸은 우리가 지켜야만 하는 시기가 왔습니다. 그런 면에서 지난 인터뷰 기사에서 다 쓰지 못한 자가진단키트의 정확성 문제를 얘기해야겠군요. 자가진단키트를 너무 믿고 ‘두 줄(코로나 양성)’이 안 나왔다고 안심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교수는 “증상이 있는 사람은 50~60% 정도, 증상이 없는 사람은 20% 정도 밖에 못 잡아낸다”고 하는 군요. 그런데 이상하지요? 정부는 늘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기준을 충족했다고 합니다. 민감도(감염자가 양성으로 진단되는 비율)는 90%, 특이도(비감염자가 음성으로 나오는 비율)는 99%를 충족했다고요.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이 말이 자가진단키트로 실제 환자를 검사했을 때 90%, 99%가 나오는 줄 압니다.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이 수치는 제조회사 실험실에서 환자 검체를 모아 조금씩 희석시키면서 어느 정도까지 바이러스를 잡아내는지를 보여주는 시험 결과라고 합니다. 제조회사가 특이도, 민감도를 자체 검사하고, 그 결과와 시험 과정을 식약처에 제출하는 방식이라는 군요. 그래서 이 교수는 “마음만 먹으면 99%를 만들기는 쉽다”고 합니다. 일종의 자동차회사에서 연비 선전하는 것과 비슷한 거죠. 사실 진짜 90%, 99%면 굳이 유전자증폭(PCR)검사를 또 할 필요도 없지 않겠습니까?이 교수는 “우리나라 키트가 다른 나라 것보다 위양성(가짜 양성비율)도 높다”고도 했습니다. “키트로는 양성인데 PCR검사에서는 음성으로 나오는 비율이 20%정도나 된다”고 했지요. 신속항원검사는 바이러스를 잡아내는 확률은 좀 낮아도, 일단 잡아내면 이 사람은 확실하게 걸렸다고 얘기해주기 때문에 쓰는 겁니다. 그런데 키트에서는 양성인데 PCR에서 음성이면, 애초에 키트 자체를 믿을 수가 없는 거지요. 아, 이 얘기는 꼭 해야겠습니다. 2월 18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대형마트 QR인증을 폐지하고, 식당 카페 등의 영업시간을 밤 10시까지 한 시간 더 연장하는 거리두기 조정안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방역정책을 완화하면서 전날인 17일까지 한 달 동안 일상회복지원위원회는 열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위원회가 조정안을 검토할 시간도 없었던 것이죠. 그런데 이 전날 열린 회의에서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전주 대비 환자 수가 2배 이상 급증했고… 위중증·사망자가 지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행 정점 시기와 규모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 유행 정점까지는 안정적인 상황 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완화하면 안 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왜 정부는 밀어붙였을까요? 2월 18일 확진자는 10만2211명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이 채 안 된 3월 8일 34만2446명으로 늘었습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2022-03-12 11:00
[이진구 기자의 對話]“현장은 지옥인데… 정부 내 전문가 중 잘못된 사인 주는 그룹 있어”《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다음 주면 하루 확진자가 35만 명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반면 방역정책은 점점 더 완화되는 상황. 정부가 영업제한 시간을 오후 11시까지로 연장하는 거리 두기 조정안을 발표한 4일에는 역대 하루 최다인 216명이 사망했다. 최근 정부 코로나19 일상회복지원위원회를 사퇴한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정부가 3만 명 예상할 때 ‘20만 명 갈 수 있다’고 했더니 나보고 비관론자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오늘(2일 0시 기준) 확진자가 처음으로 20만 명을 넘겼다. 비관론자는 아닌 것 같은데…. “정부 쪽에서 맥시멈(Maximum) 3만 명 볼 때 20만 명 얘기했더니 정부와 일하는 전문가들은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나와 정재훈 가천대 길병원 예방의학과 교수는 비관론자라고…. 나는 일상회복지원위원이었고, 정 교수는 김부겸 국무총리 특보다. 우리는 정부랑 일을 안 했나. 정부 내 전문가 중에 잘못된 사인을 주는 그룹이 있다.” ―그 전문가들이 방역 정책 완화에 일조하고 있다는 건가. “바이러스는 정직하다. 대응하면 줄고, 안하면 는다. 지금 거리 두기는 영업제한 시간을 빼면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하지않나. 방역 패스도 풀고, 역학조사도 안 하고. 확진자 수가 정점을 찍었을 때 완화해도 되는 걸 한창 폭증하는 상황에서 왜 앞당겨 푸는 지 이해가 안 간다. 오미크론이 델타보다는 위험성이 낮고, 백신접종률도 높으니까 걸릴 만큼 걸려서 이번 유행을 마지막으로 만들어보자고 각오한 게 아니면 절대로 이런 방향으로 가면 안 된다.” ―의료진 감염까지 속출하고 있는데 정부는 경증이면 3∼5일만 격리하고 업무에 복귀해도 된다고 한다. “경증이라 일은 할 수 있다고 치자. 환자나 다른 의료진의 감염은 어떻게 하나. 병원이 멈출 정도의 상황이라면 해야겠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나오라고 말하면 안 된다. 확진 후 7, 8일이 지나 격리가 해제돼도 바이러스가 20% 이상 나온다. 3∼5일이면 아프고 열나는 것과 상관없이 바이러스가 한창 뿜어올 때인데 안 아프면 나오라니. 내가 경증이라고 나한테 옮은 사람도 경증인가? (정부 쪽) 전문가 중에 병원에서 일해보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현장은 지옥인데 현장을 모르는 사람들이 정책에 관여한다.” ―당신은 의료체계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했다. “병상이 다 차면 더 이상 환자를 받을 수 없지 않나. 의사가 감염되면 일주일 동안 수술이나 진료를 할 수가 없다. 경증이면 그냥 하라고? 마취과도 들어오고, 간호사들도 붙고, 다른 의사들도 있는데…. 우리 병원에 흉부외과 교수 두 명이 에크모(ECMO·인공심폐기)를 돌리는데 만약 이분들이 격리되면 기계도 제대로 못 돌린다. 코로나 환자만 죽는 게 아니다.” ―그런 상황이 오면 외국처럼 록다운(lockdown·이동제한령)이라도 해야 하나. “필요한 상황이 오면 할 수도 있다고 보는데…문제는 임기 말 정부가 록다운 같은 강력한 행정조치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레임덕이라 제대로 지킬지도 의문이고, ‘다 끝난 우리가 왜?’라고 생각하지는 않을는지. 새 정부 입장에서도 시작부터 그렇게 고통스럽고 인기 없는 정책은 하고 싶지 않을 것 같고. 그래서 앞으로 몇 달이 방역 정책적으로는 굉장히 애매하고 이상한 시간이 될 수 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코로나 중환자가 최근 한 달간 6배가 늘었다는데,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는 게 무슨 말인가. “확진자 중에 인공호흡기나 에크모 등 기계에 호흡을 의존하는 경우만 코로나 중환자로 집계하기 때문이다.” (확진자 중 뇌졸중, 협심증 등은 숨만 스스로 쉴 뿐 중환자 아닌가.) “당연하다. 그런데 그런 경우에 대한 환자 분류 체계를 안 만들었다.” ―분류 체계를 안 만들었다니…. “전에는 코로나에 걸리면 주로 폐에 문제가 생겼다. 자가 호흡 중환자는 일부라 분류가 별로 의미가 없었는데 오미크론으로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이런 중환자도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어이없는 일?) “병상 배정은 보건복지부가 하는데 국·과장급에 의사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의료 현장을 잘 모른다. 그러다보니 자가 호흡 중환자가 코로나 중환자 병상에 누워있으니까 ‘이 사람들이 왜 여기 있느냐, 빨리 빼라’고 하는 거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자가 호흡 중환자’는 2월 1일 104명에서 3월 1일 597명으로 5.7배로 늘었다. ―숨만 스스로 쉴 뿐 중환자인데 병상을 빼면 어디로 가라는 건가. “갈 데가 없다. 코로나에 감염된 심부전 투석 환자를 일반 중환자실에서 돌볼 수는 없지 않나. 그런데도 분류 체계상으로는 (코로나 중환자가)아니니까 빼라는 거다. 병원에서 난리를 치니까 지난달에야 관련 지침에 ‘기타 질환에 의한 중환자도 수용할 수 있다’는 한 줄을 넣었다. 그 한 줄 넣는데 참 오래 걸렸다.” ―최근 영유아들이 이송 중이나 재택치료 중에 잇달아 숨졌다. “그게 병상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소아과가 인기가 없어진 탓도 있다. 출생률이 줄면서 돈은 안 되는데, 부모들의 항의는 많아지니까 소위 일하기 힘든 분야가 된 거다. 메이저 대학병원 정도를 빼면 소아과 레지던트가 있는 병원이 거의 없다. 레지던트가 있는 곳도 낮 근무 때문에 밤에 당직은 못 세운다.” (밤에 응급 소아는 어떻게 하라고.) “대부분의 대학병원에서 소아과는 밤에 응급 콜을 안 받는다. 우리 병원도 소아 응급진료는 못 본다. 코로나와 별개로 우리나라 소아 진료 체계 중에 응급 부분은 이미 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다.” (왜 이제야 그런 문제가 드러난 건가.) “델타 이전까지는 소아 감염이 많지 않아서 메이저 병원에서 감당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 수를 넘었으니까.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이런 문제들이 파생됐다. 그런데 완화라니….” ―일상회복지원위원회는 왜 그만뒀나. “1∼2월에 오미크론이 막 퍼지는데 방역은 완화 기조로 자꾸 바뀌었다. 뭐라고 말을 해도 받아들여지지도 않았고, 더군다나 그 중요한 시기에 위원회는 한 달 동안이나 회의를 하지 않았다. 자가 격리나 재택치료, 역학조사 포기 등 다뤄야할 중요한 사안이 많았는데도 안 했다. 그래서 위원회 방역·의료분과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에 ‘이럴 거면 저는 더 이상 참여할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하고 나왔다. 사실 더 빨리 그만두려고 했다.” ※위원회는 1월 12일 7차 회의 후 한 달여 만인 2월 17일 8차 회의를 열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다음 날인 2월 18일 대형마트 QR인증을 폐지하고 식당, 카페 영업은 오후 10시까지 한 시간 더 연장하는 거리 두기 조정안을 발표했다. 이 때문에 위원회 회의가 사실상 형식적으로 열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갈등이 좀 있었나. “지난해 11월 1일부터 시작된 ‘단계적 일상회복’을 준비할 때였는데 우리는 5단계 정도로 천천히 완화하는 식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3단계 안을 가져왔다. 옥신각신하다가 그거라도 중간에 브레이크 장치(긴급 방역 강화제도)만 넣는다면 방역분과에서 동의할 수 있겠다고 했는데….” (발표 때는 중증환자 입원 병상 가동률이 75%가 넘으면 발동하겠다고 했는데 정작 넘어도 안 하던데.) “그래서 브레이크 장치를 넣는 조건으로 동의한 건데 시행을 안 하면 위원회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정부는 3단계가 아닌 2단계 안을 하고 싶어 했는데 소리를 질러가며 싸워서 막았다. 회의에서 ‘정말 중환자실에서 몇 백, 몇 천 명씩 죽는 꼴 보고 싶냐’고 난리를 쳤으니까.” ―그런데 이해가 안 가는 게… 지난달 17일 위원회에서 정은경 질병청장은 거리 두기 완화에 부정적인 의견을 냈는데 다음 날 정부는 완화된 조정안을 발표했다. “질병청과 보건복지부 눈에는 문제가 생길 게 뻔히 보였겠지만… 청와대나 총리실에서 워낙 푸는 쪽으로 가니까. 그때도 전문가들은 왜 (정부가) 상황과 동떨어진 판단을 하는지 의아해했다.” ※17일 8차 일상회복지원위에서 정 청장은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전주 대비 환자 수가 2배 이상 급증했고… 위중증·사망자가 지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행 정점 시기와 규모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 유행 정점까지는 안정적인 상황 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당신은 지금 가장 중요한 게, 정부가 위기를 위기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 확진자가 너무 늘어서 집중관리군 외에는 정부가 관리해 줄 수가 없다. 그러면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처럼 국민들에게 지금이 위기이고, 국민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라는 걸 솔직히 말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너무 잘해왔다고 자부하다 보니, 위기를 인정하는 걸 마치 방역을 포기하는 것으로 여긴다. 지금 정부는 적어도 소통 부분에서는 이전 정부들과는 다를 줄 알았는데… 똑같다는 생각밖엔 안 든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2022-03-07 03:00
[이진구 기자의 對話]“금메달 도둑맞은 심정? 눈 뜨고 코 베여보셨나요?”《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베이징 겨울올림픽이 20일 끝났다. 특히 쇼트트랙에서 우리 선수들이 겪은 불이익은 온 국민이 공분했을 정도.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고도 석연치 않은 실격 처리로 중국에 금메달을 빼앗긴 김민정 전 국가대표 선수(37)는 “올림픽뿐만 아니라 각종 세계 대회에서 우리 선수들이 겪는 견제와 반칙, 편파 판정은 상상, 그 이상”이라고 말했다.》 ―우리 선수들이 특히 많이 당하는 이유라도 있나. “제일 잘하니까. 다른 나라는 우리 정도로 당하지는 않는다. 오죽하면 우리가 발 내밀기 기술로 금메달을 자꾸 따자 없던 규정을 만들어 제대로 못하게 만들까.” (어떻게 바꿨기에?) “원래는 다리를 자유롭게 들 수 있었다. 그러다가 우리 선수들이 자꾸 이 기술로 금메달을 따니까 규정을 바꿔 스케이트 날을 빙판에 붙인 채 내밀도록 했다.” ※발 내밀기는 1992년 알베르빌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0m 계주에서 김기훈 선수가 처음 선보였다. 이후 1994년 릴레함메르, 1998년 나가노에서 우리 선수들이 이 기술로 잇따라 금메달을 따자 중국 등 다른 나라들이 항의를 했고, 이후 규정이 바뀌었다. ―외국 선수들도 발을 뻗으면 되지 않나. “흔히 ‘그까짓 거 마지막 순간에 발 쭉 뻗으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정말 하기 힘든 기술이다. 마지막 바퀴는 체력이 완전히 극한까지 고갈된 상태에서 정신력으로 버틴다. 마지막 젖 먹던 힘을 짜내서 내밀어야 하는데, 그게 굉장히 힘들기 때문에 대부분 그냥 들어온다. 더군다나 오직 정신력으로만 버티는 상황에서 왼발로 할지, 오른발로 할지, 코너를 나오자마자 왼발부터 뻗은 뒤에 하는 게 승산이 더 있을지, 인코스로 할지, 아웃코스로 할지 등을 생각해야 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편파판정도 심하다던데… 밴쿠버 때 당신이 출전한 우리 여자 계주팀은 세계신기록을 세우고도 실격 처리됐다. “눈 뜨고 코 베였다는 게 그런 게 아닐까? 나는 지금까지도 당시 동영상을 찾아본 적이 없다. 보면 너무 속상하니까. 기가 막힌 건… 심판이 실격 사유도 명확하게 짚지 못해 말할 때마다 달랐다.” (당시 기사마다 반칙 사유가 다른 게 그 때문인가.) “왜 실격이냐고 항의하니까 처음에는 내가 중국의 쑨린린에게 크로스트래킹(cross tracking·진로방해)을 했다고 하다가, 다시 임피딩(impeding·밀기 반칙)이라고 하더니 나중에는 중국 선수(장후이) 얼굴에서 피가 난 게 내 스케이트 날에 찍혀서라고 했다. 난 그 선수와 같이 달린 적도 없는데….”(당시 비디오를 판독한 전문가들이 반칙은 없었다고 했던데.) “오히려 쑨린린이 내 스케이트 뒷날을 쳤다. 그래서 넘어질 뻔했는데 되레 내가 반칙을 했다며 우리 팀을 실격 처리하더라.” ※한국 팀(박승희 이은별 조해리 김민정)은 4분7초07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1위로 들어왔다. 하지만 김 선수가 반칙을 했다는 이유로 실격 처리돼 중국이 금메달을 가져갔다. 장후이의 피는 중국 선수들이 자축하는 과정에서 베인 것으로 나중에 확인됐다. ―공교롭게 심판이 2002년 솔트레이크 에서 김동성 선수를 실격 처리해 미국의 안톤 오노에게 금메달이 돌아가게 한 호주의 제임스 휴이시였는데…. “태극기 들고 세리머니를 하는데, 다른 심판들은 끝났다고 가려고 하는데 휴이시만 계속 비디오 판독기 앞에 있는 게 보였다. 좀 불안했지만 그래도 워낙 우리가 깔끔하게 잘 타서 별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휴이시가 우리 코치 박스로 가더라. 그 순간에 느낌이 ‘쎄∼’했다. ‘뭐지?’ ‘왜 가지?’ 1등인 걸 알려주려고 가는 일은 없으니까.” ※남자 1500m 결선에서 김동성 선수가 1위로 들어왔다. 그러나 휴이시는 진로방해라며 김 선수를 실격 처리했고, 이 때문에 금메달은 할리우드 액션을 한 오노에게 돌아갔다. 전명규 감독이 휴이시에게 “Are you crazy?”했더니 그는 “Yes, I‘m crazy”라고 했다고 한다. ―경기 전에 좀 걱정되지 않았나. “정말 그렇게까지 할 줄 누가 알았겠나. 그런데 우리 팀을 실격시키고 나니까 언론에서 얼마나 휴이시가 한국에 편파적이었는지 줄줄이 기사가 나오더라.” (그러면 안 되지만 분노한 한국 누리꾼 수사대가 휴이시의 야동 다운로드 내역까지 파헤쳤다.) “‘휴이시, 이번엔 그냥 안 넘어 간다’는 기사를 본 것 같기는 한데. 하하하.” ※휴이시는 2002년 김동성 이승재(솔트레이크 겨울올림픽), 2006년 최은경(토리노 겨울올림픽), 안현수(세계선수권대회), 2007년 송경택(밀라노 월드컵), 2008년 진선유(ISU 2차 월드컵), 2010년 성시백(밴쿠버 겨울올림픽) 등을 줄줄이 실격시켰다. 당시 언론에는 연일 ‘휴이시, 그는 누구인가’ ‘휴이시, 한국 싫어하나’ 등의 기사가 게재됐다. ―베이징에서도 그랬지만 쇼트트랙은 왜 제소를 해도 받아주질 않나. “쇼트트랙이…국제빙상연맹(ISU)에 제소를 하고, 뭘 해도 번복이 안 된다.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심판 권한이 굉장히 크다. 예를 들어 명백히 나온 비디오 화면을 들고 가서 ‘봐라, 부딪힌 게 없지 않느냐’고 해도 심판이 ‘내가 본 각도에서는 부딪혔다’고 해버리면 끝이다. 황대헌 선수, 헝가리 류 사오린 선수에게 실격을 준다는 게 말이 되나.” ※남자1000m 결선에서 중국 런쯔웨이가 헝가리 류 사오린 샨도르를 두 손으로 잡아채 밀어내는 장면이 화면에 잡혔다. 사오린은 1위로 들어왔는데 심판이 실격 처리해 중국이 금, 은을 땄다. 준결선에서 황대헌, 이준서 선수가 실격 처리된 그 종목이다. 사오린은 아버지는 중국인, 어머니는 헝가리인인데도 당했다. ―황대헌, 이준서 선수 실격 사유인 레인변경 반칙이 심판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큰 규정이라고 하던데. “예전에는 직선 코스에 줄이 없었는데 올해부터 생겼다. 그 선을 기준으로 자기 진로에서 많이 벗어난 선수에게 레인변경 반칙을 준다. 예를 들어 누가 나를 추월하려고 하는데 내가 옆으로 넓게 벌려서 진로를 막으면 실격 처리된다. 그런데 이게 되게 애매한 게… 모두 붙어서 빠른 속도로 질주하다 보니 심판이 보는 각도에 따라 실제 상황과 다르게 보이기가 쉽다. 쇼트트랙은 추월이 묘미인데, 추월할 때든, 막을 때든 자기 레인에서 약간씩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누구에게 레인변경 반칙을 주려고 작정하면 추월했든(황대헌 경우), 추월을 막았든(이준서 경우) 다 줄 수 있는 거다. 항의가 들어와도 앞서 말했지만, ‘내가 볼 때는 많이 벗어났다’고 하면 끝이니까.” ―황 선수를 실격시키며 ‘레인 변경이 늦어서 신체접촉을 유도할 수 있다’고 했던데, 가능성도 반칙 사유가 되나. “되긴… 그런 예측성 반칙이 어디 있나.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거지. 황 선수 경기 다음 날 쇼트트랙 코치들끼리 모여서 얘기하는데… 이준서처럼 앞에 있어도 실격, 황대헌처럼 뒤에서 추월해도 실격, 그러면 우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달려야 하냐는 말까지 나왔다. 오죽하면 동네 운동회보다 못 하다는 말이 나오겠나.” ―중국이 다른 대회에서도 반칙을 많이 하나. “중국 선수들이 다른 나라 선수들에게 어떻게 반칙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우리 선수들에게는 굉장히 많이 한다. 반칙도, 이상한 판정도 많다. 다른 나라 선수들은 중국처럼 막 잡아당기거나, 미는 행동을 많이 하지는 않는다.” (중국도 잘하는 편 아닌가? 굳이 왜 그런 반칙을….) “밴쿠버 때는 오히려 중국이 우리보다 실력이 위였다. 중국은 힘과 순발력은 좋지만 작전의 다양성은 별로 없는 편이다. 반면에 우리는 훈련도 열심히 하지만 기술과 작전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큰 대회에 굉장히 강하다. 그러다 보니 견제 심리가 강한 것 같기는 하다.” ―갈수록 견제가 심해지면 우리 선수들이 정말 힘들 것 같은데. “그래서 제자들이 한 점의 흠도 없이 완벽하게 이기게 하려고 더 꼼꼼하고 철저하게 가르치고 있다. 나같이 어처구니없게 금메달을 놓치는 선수들이 더 이상 없게. 길게 보면 중국은 참 안된 거다. 당장은 반칙과 편파판정으로 금메달을 가져가 기쁘겠지만, 그런 방법으로 이득을 봤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런 안 좋은 방법을 가르치고 배우려 할 테니까. 반면에 우리는, 당장은 억울하고 속상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빌미 하나 주지 않는 완벽한 체력과 기술을 개발하려고 애를 쓸 테고. 베이징에서 보듯 대한민국 쇼트트랙이 괜히 세계 정상인 게 아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2022-02-21 03:00
25만 명이 투표 못하는데 왜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까[이진구 기자의 대화, 그 후- ‘못 다한 이야기’]설 연휴가 끝난 다음날인 3일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을 인터뷰 했습니다. 그는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출신으로 2020년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대선이 한 달 정도 남은 시점이라 장애인 정책과 관련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만났지요.독자 여러분은 25만 명에 달하는 발달장애인들이 이번 대선에서 사실상 투표를 할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16년 지적장애, 자폐 등 발달장애인들도 투표보조인의 도움을 받아 투표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4년간 시행되던 이 지침이 2020년 갑자기 삭제됐지요. 이유는 투표 보조인이 투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헌법이 부여한 투표권은 있지만 사실상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 셈입니다. 발달장애인들의 장애 유형은 매우 다양합니다. 판단 능력이 부족한 경우도 있고, 판단 능력에는 문제가 없는데 기표소에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투표용지 접는 것을 깜빡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옆에서 조금만 도와주면 아무 지장 없이 투표를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일괄적으로 이들 모두를 싸잡아 제대로 판단할 수 없는 사람들로 치부한 것입니다. 시각·신체 장애인들은 투표 보조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김 의원도 지난 총선에서 어머니 도움을 받았지요. 손이 없는 장애인의 투표용지는 투표보조인이 대신 접어줄 수 있는데, 발달장애인의 투표용지를 접어주는 건 판단에 영향을 끼치는 행위인가요? 사회적 약자들은 대규모 재난에 더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힘들다보니 그들의 어려움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난 2년간 코로나19 때문에 투표소에서 지급한 비닐장갑을 끼고 기표를 해야 했습니다. 방역을 위해 당연히 필요한 일입니다만, 중증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예상치 못한 불편함도 있었습니다. 비밀투표를 위해 점자 투표지는 만들 수 없다고 합니다. 대신 투표지 위에 덮어씌우는 얇은 종이 한 장을 주는데 여기에 점자로 후보 번호와 이름, 기표하는 파여진 홈이 있다고 하는 군요. 이 종이를 손으로 만져 기표를 해야 하는데, 비닐장갑이 손에 딱 안 맞고 손 끝에 남는 부분이 있다보니 점자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중도 실명을 한 분이나 촉감 능력이 좀 떨어지는 분들은 더 힘들었을 거라 하더군요. 어려움은 투표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이제 오미크론 확산 때문에 방역정책이 대폭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자가 검사를 해 양성이 나와야만 PCR검사를 받을 수 있지요. 이게 중증시각장애인들에게는 날벼락이 됐습니다. 점자 설명서를 갖춘 자가진단키트가 없기 때문이지요. 코에 넣었던 면봉을 시약통에 넣은 뒤. 시약통의 용액을 검사용구에 떨어트려야하는데 시각장애인은 이를 보면서 분량을 조절하기가 어렵습니다. 검사용구에 나타나는 선을 보고 양성 여부를 알 수 있는데 누군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중증시각장애인들이 무슨 재주로 확인하겠습니까. 활동지원을 해주는 분들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수시로 해야 하는 자가 검사 때마다 부를 수는 없겠지요. 무엇보다 감염 우려가 있는데 어떻게 부르겠습니까. 2020년 기준 등록장애인은 260만 명에 달합니다. 이 중 시각장애인이 약 25만 여명, 발달 장애인이 25만 여명 정도입니다. 200만 명에 달하는 청각, 언어 등 다른 장애를 가진 분들이 코로나 속에서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을지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시각장애인들은 버스도 타기 힘들다고 합니다. 정류장에서 음성으로 버스번호를 알려줘도, 두 대 이상이 동시에 오면 어느 버스가 내가 타야할 1234번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하차 벨과 카드단말기도 버스마다 고정된 위치가 조금씩 달라 더듬거리며 찾아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받았듯이,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 물려줄 의무가 있습니다. 지금보다 나은 세상이 첨단 AI를 개발하고, 입자가속기를 설치해주고, 몇 조원을 들여 공항을 만드는 게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지금보다 나은 세상은, 우리가 지향하는 선진국은, 모두가 겪는 엄청난 재난이 닥쳤을 때, 사회적 약자들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해줄 수 있는 사회가 아닐 런지요. 대선 후보들이 그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정작 우리는 후보 부인들의 무성의한 사과 기자회견이나 보고 있으니 암담합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2022-02-12 12:00
“발달장애인 투표, 지난 대선 땐 했는데 이번엔 못해…”[이진구 기자의 對話]《‘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헌법 제24조)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대선 후보들은 저마다 서민과 약자를 위하겠다고 목청을 높이지만, 25만여 명에 달하는 발달장애인들이 이번 대선에서 사실상 투표할 수 없게 됐다는 걸 알까.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42)은 “2020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관련 지침을 삭제하면서 사실상 투표권이 박탈됐다”고 말했다. 시각장애 피아니스트 출신인 그는 비례대표로 21대 국회에 입성했다.》 ―투표권을 사실상 박탈당했다니…. “2016년 선관위가 지적장애, 자폐 등 발달장애인들도 보조인의 도움을 받으면 투표를 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했다. 그런데 4년간 시행하다 2020년 갑자기 투표 보조인이 투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지침을 삭제했다. 투표권만 있지 사실상 투표를 할 수 없게 된 셈이다. 그래서 발달장애인들도 신체·시각장애인처럼 투표 보조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개정안을 냈는데… 대선이 코앞인데 아직도 논의가 안 되고 있다.”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를 다 했다는 건데 왜 지금 와서….) “보조인이 투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본인들이 영향을 안 받고 할 수 있다는데 남이 아니라고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우려가 있다면 보완을 해서 참정권을 확대하는 게 맞지 않을까.” ―투표소 참관인들이 도와주면 영향을 미칠 우려는 없을 것 같은데. “그래서 요청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개정안을 낸 거다. 정치개혁특위 위원장과 양당 간사에게 이번 대선에 적용될 수 있도록 빨리 논의해 통과시켜 달라고 부탁 및 사정 및 요청 등등을 드렸는데, 휴… 별로 관심이 없다.” ※발달장애인들이 투표 시 겪는 어려움은 다양하다. 혼자 기표소 안에 있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하고, 투표용지 접는 것을 잊기도 한다. 의사결정과는 무관한 경우다. ―당신도 지난 총선에서 투표 보조를 받았다고. “평소 같으면 혼자 했을 텐데 지난 총선이 중요하다 보니….” (출마했으니까?) “하하하, 다른 때와 달리 정당 간 간격이 너무 좁아서 어머니께 정확히 찍었는지만 봐 달라고 했다. 잘못 찍거나 무효 처리되면 안 되니까.” ※2020년 21대 총선은 비례대표 선거 참여 정당이 35개에 달해 용지 길이는 역대 최장인 48.1cm, 정당 간 칸 간격은 2mm에 불과했다. ―투표용지가 너무 긴 데다 간격도 좁아 투표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나 같은 시각장애인에게는 얇은 종이 한 장(투표보조용구)을 주는데 거기에 점자로 후보 번호와 이름이 적혀 있고, 기표하는 부분은 홈이 뚫려 있다. 이 종이를 투표용지 위에 정확히 맞추고 손으로 짚어 기표를 한다. 그런데 2020년 총선 때도 그랬지만 이번 대선에서도 시각장애인들은 비닐장갑 때문에 지장이 많을 것 같다.” ―방역상 끼는 비닐장갑에 문제가 있나.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손가락이 짧아서 딱 맞지 않고 손끝에 공간이 남았다. 우리는 점자와 홈을 만져야 투표를 할 수 있는데, 손끝에서 남는 비닐이 돌아다니니까 많이 힘들었다. 실명한 지 오래되지 않은 분들이나, 촉각이 예민하지 않은 사람은 지장이 클 것 같다.” ―선거만 힘든 건 아닐 것 같은데. “시각장애인들은 뭘 많이 만져야 하니까…. 이제는 자가 검사를 한 뒤에 양성이 나와야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받을 수 있게 바뀐것도 걱정이다.” (혼자서는 검사가 힘들 것 같은데.) “활동 지원을 해주시는 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시간 제약도 있고, 지금 검사할 거니 당장 와 달라고 할 수도 없을 것 같고. 설사 시간이 돼도 감염 우려 때문에 요청할 수 있을까? 저시력 장애인은 어떻게 한다 해도, 저처럼 완전히 안 보이고, 또 혼자 사는 분들은 정말 어려울 것 같다.” ※점자 설명서를 갖춘 자가진단키트는 없다. 콧구멍에 넣었던 면봉을 시약통에 넣은 뒤, 시약통의 용액을 검사키트에 떨어뜨려야 하는데, 시력의 도움을 받기 어려우니 손끝 힘으로만 분량을 조절해야 한다. 검사키트에 점자가 없으니 혼자서는 양성 음성 여부를 알기도 어렵다. ―발의한 법안들을 보면서 든 생각인데, 성격이 좀 순한 편인가. “왜 그런 생각을?” (100건이 넘는데 대부분 안 지켜도 벌칙이 없더라. 점자법 개정안도 그렇고.) “법을 지키는 이유가 규제와 벌금 때문이라면 그건 너무 1차원적이지 않을까? 이상적일지는 몰라도 자발적으로 지키는 게 좋고, 그게 더 오래간다고 생각해서….” ※점자법 개정안은 점자 문서 제공을 요구받은 공공기관 등이 제공 실적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제출하고, 장관은 이를 국회 소관 상임위에 보고하도록 했다. 2020년 11월 통과됐다. ―점자 문서 제공을 의무화했는데도 법원조차 점자 프린터가 없다고 안 주지 않나. “나도 기사를 봤는데 법원조차 법이 정한 걸 제공하지 않았다는 데 깜짝 놀랐다. 그래서 장관에게 제공 실적을 보고하게 하면 지키지 않을까 싶어 개정안을 냈던 거다.” (기계가 법원이 부담 될 정도로 비싼가?) “400만∼500만 원부터 하는데… 공공기관이 못 살 가격도 아니지만 굳이 살 필요도 없다. 지역마다 점자도서관이나 시각장애인 복지관이 있기 때문에 필요할 때 여기에 요청하면 된다. 점자 문서 요청이 매일 있는 것도 아니고. 마음이 없는 거지.” ※2019년 시각장애 1급인 A 씨가 법원에 점자판결문 교부 거부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재판 관련 문서가 일반 활자라 읽을 수가 없었기 때문인데 법원은 점자 기계 미비를 이유로 제공하지 않았다. ―한두 가지는 아니겠지만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을 위한 세심함이 부족한 부분이 꽤 있을 것 같은데. “음… 시각장애인들은 갤럭시보다 아이폰을 많이 쓴다. 볼 수 없으니까 음성지원 기능이 필수인데 시각장애인들 사이에서 갤럭시는 이용하기 좀 불편하다는 인식이 있다. 기능이 있기는 한데 자신의 장애 상태에 맞게 설정해 쓰는 과정이 여의치 않다고…. 그래서 나도 아이폰을 쓴다. 사과 그려진 회사가 사용자 접근성에 대한 배려가 더 세심한 것 같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 따르면 갤럭시도 다양한 손쉬운 조작 방법을 제공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이폰처럼 사용자 요구에 따라 입력 방식을 변경할 수는 없다고 한다. ―댓글을 음성으로 들으면 상처가 더 클 것 같은데. “어휴… 장난 아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기사만 보고 댓글은 안 본다. 전에 요즘은 어떤 악플이 트렌드인가 한번 알아보고 싶어서 봤다가….” (욕은 표기가 안 되는데.) “그래서 숫자로 대신 쓰거나 ㄱㅅㄲ 이렇게 자음만 쓰는 사람도 있는데, 보다 보면 한편으로 좀 웃기기도 하다. 안 써지는 걸 알면서 저렇게까지 저 말을 쓰고 싶었을까 싶어서. 그 노력과 의지가 대단하다 싶기도 하고.” (ㄱㅅㄲ은 어떻게 읽어주나.) “그냥 똑같이. 댓글이 ‘이진구 ㄱㅅㄲ’ 이러면 ‘이진구 기역 시옷 쌍기역’ 이렇게.” ―혹시 의원이 되고 안 좋아진 게 있나. “뭘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졌다. 롯데마트 건도 그렇고 시각·청각장애 안내견 출입을 막는 곳이 아직도 많다. 그래서 안내견 출입을 환영하는 식당들을 찾아서 사장님 소개를 하는 식으로 칭찬 릴레이 유튜브 영상을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나는 하면 안 된다고 하더라.” (누가?) “선관위가. 지역구 의원은 자기 지역만 벗어나면 할 수 있는데, 비례대표는 전국이 지역구라 공직선거법상 안된다는 거다. 아직은 적지만 설명서에 점자 표기를 해주는 의약품, 화장품 회사들이 있다. 그런 착한 기업도 유튜브를 통해 소개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안 된다더라.” (그건 또 누가?) “선관위….” (다음에 또 출마할 것도 아니지 않나. 너무 기계적으로 접근하는 것 같은데.) “아닌데도….” ―조이가 우리 사회의 안내견 인식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는데 괜찮은가. “괜찮다는 게 무슨 말인가.” (사람도 여의도 오면 이상해지니까.) “하하하, 아직까지는. ‘국개의원’이라 그런지 나보다 적응을 더 잘하는 것 같다. 그런데 얘가 사람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특이하게 어떤 의원들에 대해서는 불러도 쳐다보지도 않는다.” (혹시 국민의 지탄을 받는?) “아는 것 같기도 하고.” “누구나 들을 수 있고, 누구나 계단을 오를 수 있고, 누구나 복잡한 공약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장애인도 헌법이 보장하는 선거권을 부여받았고, 당연히 이를 행사할 권리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감이 아닌 배려로만 보장되고 있는 장애인 참정권은 아직 반쪽입니다.”(김예지 의원)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2022-02-07 03:00
[이진구 기자의 對話]“돼지 췌도이식 임상 성공하면… 당뇨병 근본 치료 가능해”《7일(현지 시간) 미국에서 세계 최초로 유전자를 교정한 돼지 심장이 사람에게 이식됐다. 수술을 받은 데이비드 베닛(58)은 보름여가 지난 지금까지 생존 중. 박정규 전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장(서울대 의대 교수)은 “미국도 한 해 6000여 명이 대기 중 사망할 정도로 기증 장기가 부족하다”며 “장기 이식 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 환자들에게는 가뭄 끝에 단비 같은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8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세계 최초로 무균돼지의 췌도를 당뇨병 환자에게 이식하는 임상시험을 신청해 승인을 기다리는 중이다.》 ―베닛이 어느 정도 생존하면 성공이라고 볼 수 있나. “이식 직후 48시간이 가장 위험한데 그 시간은 무사히 넘겼다. 이종장기 이식의 첫 번째 목표는 ‘브리지(bridge)’ 개념인데, 사람 장기를 이식 받을 때까지 견뎌주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2∼3개월만 베닛이 생존해도 엄청난 성공이다. 보통 원숭이로 시험했을 때는 6개월 정도 생존하면 충분히 성공한 걸로 본다.” ―그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던데, 사람 장기이식은 왜 못한 건가. “인공심장은 부정맥이 심해 달 수 없었고, 사람 심장은 의사 말을 안 들어서 받을 수 없었다고 하더라.” (말을 안 들었다고?) “과거에 한 번 사람 심장을 이식 받은 적이 있는데 이후 의사 지시를 잘 안 지켜서 면역 거부반응이 일어났던 것 같다. 면역억제제를 제대로 복용하지 않은 거지. 이런 사람들은 대기자 리스트에서 완전히 바닥으로 밀린다. 장기이식을 받는 건 굉장한 행운이다. 그 어려운 걸 받았는데 의사 지시를 안 따라서 다시 문제가 생겼으니 또 해주겠나.” (말 잘 듣게 보이지는 않더라.) “그가 ‘죽거나 돼지 심장을 이식받는 것 외에는 선택이 없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게 그런 까닭이다.”※이식 환자들은 면역체계가 이식된 장기를 외부 물질로 인식해 공격하는 거부반응을 막기 위해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한다. ―베닛이 선택된 이유가 있을까. “속사정이…베닛을 수술한 미 메릴랜드대학팀은 돼지 심장을 원숭이에게 이식해서 3년 동안 살리는 등 아주 오랫동안 이종이식 연구를 해왔다. 그래서 미 식품의약국(FDA)에 이종장기이식 임상시험을 신청했는데, FDA에서 개코원숭이 10마리를 더 시험한 결과를 가져오라고 했다. 돈이 없어서 못하고 있었는데 그때 베닛이 나타난 거다.” (개코원숭이가 비싼가.) “우리 돈으로 한 마리에 약 5억 원 정도 한다. 베닛이 직접 정보를 안 건 아닌 것 같고, 심장 질환으로 입원 중이었으니까 의사가 인공심장은 안 되고, 사람 심장은 받기 어려우니 돼지 심장 이식을 받아보겠냐고 권유한 것 같다.” ―돼지 췌도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임상시험을 신청했는데, 임상이 성공하면 어떤 문제가 해결되는 건가. “췌도 세포에서 인슐린을 거의 만들지 못하는 게 제1형 당뇨병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걸리기 때문에 소아나 청소년 환자가 많은데, 췌도 이식이 가장 좋은 치료법이지만 현실적으로 사람의 췌도 이식은 굉장히 어렵다.” (기증자가 적기 때문인가.) “췌도는 췌장 안에 있는데, 마치 섬처럼 띄엄띄엄 박혀 있다. 그래서 췌장을 떼어낸 뒤 다시 췌도만 골라내야 하는데 아무리 수술을 잘해도 손실이 발생한다. 또 뇌사자에게서 장기를 적출할 때 췌장을 가장 마지막에 떼어내기 때문에 장기에 손상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2∼4명 것을 모아야 한 사람에게 이식할 수 있다. 장기이식 자체가 대기자의 10% 정도만 기회가 오는데, 췌도는 2∼4명분을 모아야 하니 더 어려운 거다. 어른도 물론이지만 고통 받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어떻게든 구해야 하는데….”※1형 당뇨병은 징병검사에서 5급(제2국민역)에 해당한다. 크론병, 모야모야병, 양성뇌종양, 검사로 확인된 뇌전증 등이 같은 등급이다. ―기증 장기가 워낙 부족하다 보니 불법인 줄 알면서도 장기 밀매를 하는 환자가 많다고 하던데…. “중국이나 파키스탄, 인도 이런 데서 수술 받고 오는 사람이 많은데… 심각하다. 국내에서 이식 수술을 받은 기록은 없는데, 이식 후 면역치료를 받는 사람들은 그렇다고 보면 된다. 더군다나 고령화로 기증을 해도 쓸 수 없는 것도 늘고 있다. 각막은 라식을 하면 쓸 수도 없고. 그래서 이종장기이식이 대안인데 갈 길이 너무 멀다. 사회적 관심도 많이 부족하고. 지금도 미국에서 돼지 심장 이식을 했으니까 관심을 받는 거지 만약 그런 게 없었으면 이종이식이 뭔지도 몰랐을 거다.” ―임상을 승인 받는 게 그렇게 힘든가. “사연이 좀 긴데… 2004년 보건복지부 지원으로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이 출범했지만 10여 년이 지나도록 법이 없어서 임상을 할 수 없었다. 복지부와 식약처는 서로 넘겼고.” (핑퐁게임을 한 건가.) “복지부는 돼지 췌도 세포 이식은 세포치료제의 일종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식약처에 신청하면 검토할 수 있을 거라 하고, 식약처는 이름은 세포지만 췌도가 장기로 구분되기 때문에 세포치료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하고….” ―임상을 하지 못하면 연구한 게 다 물거품이 되지 않나. “그래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는데… 임상을 하려면 관련 법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연구를 시작할 때부터 그 준비를 했다. 그런데 법안 초안을 만들고, 정부 입법이 어려울 것 같아 국회의원들도 찾아갔는데 별로 관심이 없더라. 이게 언제 된다고 지금 만드느냐는… 그런 반응이었다.” (연구가 다 끝날 때가 돼서야 간신히 법이 만들어졌던데.) “2018년 5월 급하게 미국으로 갔다. 이듬해 5월이면 사업단을 해체해야 했는데, 그 오랜 시간을 고생해 연구하고 임상도 못하고 없어지면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게 되니까. 외국 전문가들에게 우리 임상계획서를 보여주고 가능한지 검토해 달라고 했다. 이후 국내 실사 등을 거쳐 검토 결과를 발표했는데 미 FDA에서도 승인 받을 수 있을 정도라는 기사가 나가자 식약처에서 연락이 왔다. 검토해 보겠다고.”※이종장기이식 임상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2019년 8월에야 통과돼 2020년 9월 시행됐다. ―그런데 왜 아직도 승인이 안 난 건가. “처음 있는 일이다 보니 신중을 기하기 위해 추가 자료 요구가 많았다. 돼지는 인간에게 없는 바이러스(레트로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감염 우려를 확실하게 없애야 했다. 면역거부반응도 없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담당자가 바뀌기도 했고….” ―사업단 차원에서 임상을 하면 안 됐던 건가. 금지하는 법은 없었다던데…. “금지하는 법은 없었지만, 동물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면 인수공통감염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동물에 있던 이상한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들어가 신종 바이러스 질환이 생겼는데, 이 사람이 세계 여행을 다니면서 퍼뜨리면 마치 코로나19처럼 될 수 있는 거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WHO), 세계이종이식학회(IXA) 등 국제기관들이 합의한 게, 반드시 국가의 법체계 안에서 임상시험을 하도록 하고 있다.” ―기술의 발달을 보다 보면 문득 무서워질 때가 있는데… 영화 ‘아일랜드’처럼 인간복제 시대가 정말 올까.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시기가 올 거다. 요즘은 그 전 단계 기술이 개발되고 있는데, 예를 들면 돼지가 사람의 췌장을 갖고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동물이 사람 장기를 갖고 태어난다고?) “집쥐의 어떤 유전자를 제거하면 췌장을 안 갖고 태어나게 할 수 있다. 여기에 착상 때 생쥐 줄기세포를 넣어주면 생쥐의 췌장을 가진 집쥐가 태어난다. 이런 식으로 돼지가 사람의 장기를 갖고 태어나게 만드는 거다. 자기 세포를 넣는 거니까 면역거부반응도 거의 없다는 장점이 있다.”※마이클 베이 감독의 영화 ‘아일랜드’는 부유층의 장기 대체용으로 복제된 인간들에 관한 이야기다. ―임상 승인은 언제쯤…. “2월 중 승인이 날 걸로 예상했는데 추가 자료를 요구해서 조금 늦어질 것 같기는 하다. 이번에 요구한 자료가 거의 마지막 단계라 희망적으로 보고 있다.” (베닛이 얼마나 오래 사는지도 중요할 것 같은데.) “갑자기 이상한 일이 벌어지면 아무래도 영향을 받을 수 있으니까. 흉악범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베닛의 수술로 인해 인류가 얻을 수 있는 자료가 엄청나게 많다. 그동안 얻은 자료는 원숭이까지였는데 이제는 사람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게 된 거니까. 그래서 이 수술이 굉장히 의미가 있고, 한 획을 긋는 사건이 된 거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2022-01-25 03:00
“어제도 갓난아기가 부모 빚 떠안았는데… 국회는 뭐하는지”[이진구 기자의 對話]《지난해 5월 본보를 통해 부모 빚을 대물림 받는 아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졌다. 빚 상속은 영·유아를 가리지 않았고, 성인이 돼 월급 통장이 압류된 후에야 빚의 존재를 알게 된 경우도 있었다. 상속과 관련된 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여론이 들끓자 국회에서는 한 달여 만에 몇 건의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그뿐. 각 당이 대선 경선에 들어가면서 해를 넘긴 지금까지 아무 소식이 없다. 지난해 1억 원이 넘는 빚을 대물림 받은 유철이(가명·당시 18세)의 개인파산을 신청한 대한법률구조공단 정경원 변호사(38)는 “엊그제도 8개월 된 갓난아기가 엄마 빚을 떠안은 건이 들어왔다”며 “대법원도 법을 고치라고 했는데 국회는 뭐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8개월 된 아기가 어떻게 빚을 떠안게 된 건가. “엄마가 지난해 12월에 사망해서….” (아빠는….) “작년 4월에 태어났는데, 서류상 아버지가 없는 걸 보면 미혼모인 것 같다. 그러니까 이 갓난아기가 상속인이 된 거지. 자녀가 있으면 나이에 상관없이 법상 그 아이가 모든 재산과 채무를 승계하는 1순위자다. 8개월여 만에 엄마를 잃고 상속인이 된 건데, 지자체에서 상황을 파악하다가 빚이 있어 보여서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는 지금 파악 중이다.” (엄마는 나이가….) “스물일곱….” ―도와줄 방법이 있나. “물려받은 재산 안에서만 빚을 갚는 상속 한정승인을 신청할 생각이다. 재산과 빚을 모두 포기하는 상속포기도 있지만 혹시라도 나중에 모르는 재산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그것보다는 한정승인으로 해주는 게 낫다. 그래도 이렇게 알게 되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다. 어떻게든 도와줄 수 있으니까. 파악이 안 돼서 그렇지 성인이 돼 갚을 때까지 족쇄를 차고 살아야 할 아이들도 많을 거다.” ※미성년자가 빚을 대물림 받지 않으려면 상속포기, 한정승인, 특별한정승인을 신청해야 한다. 특별한정승인은 한정승인 신청 기간(3개월)이 지난 뒤 빚을 알게 됐을 때 이용할 수 있다. ―구제 제도는 있지만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던데. “미성년자는 직접 법률 행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법정대리인이 신청해야 한다. 친권자가 있으면 다행이지만 없는 경우도 있고, 있어도 오래전에 헤어져서 이제는 나 몰라라 하는 부모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누군가가 친권 정지 재판을 해서 이기지 못하면 법정대리인도 세울 수 없다. 친권 정지 재판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상속포기, 한정승인 신청기간이 3개월로 너무 짧은 것도 문제다. 남편이나 아내의 장례를 치르고, 마음을 추스르기도 부족한 시간인데 그 안에 재산 정리를 다 해보고 신청하라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하는 거다. 없는 사람들에게 이런 지난한 법 절차까지 밟게 하는 건 한참 잘못된 것 아닌가.” ※상속 한정승인을 잘 활용한 사람 중 하나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다. 조 전 장관의 부친은 웅동학원을 설립하며 진 빚을 다 갚지 못하고 2013년 사망했는데 남긴 재산은 21원이었다. 법원은 조 전 장관의 모친 18억 원, 조 전 장관 형제는 각각 12억 원을 채권자인 캠코에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조 전 장관 일가는 물려받은 재산 안에서만 빚을 갚는 한정승인을 신청했기 때문에 갚지 않아도 됐다. 그는 2014년 6월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란 책을 출간했다. ―채권자들이 신생아에게까지 빚 독촉장을 보낸다던데, 갚지 못하는 걸 뻔히 알면서 왜 보내는 건가. “그게 내막이… 금융권에서 채권을 대량으로 사온 회사들이 무조건 기계적으로 뿌리기 때문이다.” (채권을 산 회사들?) “회수 가능성이 거의 없는 채권을 금융권에서 아주 싼값에 대량으로 사들이는 회사나 개인들이 있다. 채권의 5∼10%, 심지어 1∼2% 가격으로도 산다. 금융권에서는 회수 가능성이 거의 없으니까 얼마라도 손실을 보전하려고 그렇게 판다. 대량으로 사와서 일괄적으로 뿌리기 때문에 대상이 어른인지 청소년인지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안 한다.” ―그런 채권을 사면 이득이 있나. “전액은 아니지만 다만 얼마라도 갚겠다는 사람이 나온다. 1000만 원짜리 채권을 20만∼30만 원에 사왔는데 채무자가 100만 원이라도 갚으면 엄청나게 남는 장사 아닌가. 이런 일을 하는 회사와 개인들이 엄청 많다. 일괄 독촉장을 보낸 뒤 반응이 없으면 소송을 건다.” (돈을 받아내기 위해서?) “그런 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일단 채권 시효를 늘리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상행위로 인한 채권은 소멸시효가 5년이다. 그런데 소송을 하면 확정된 날부터 10년이 더 늘어난다.” ―유철이는 불이익이 큰 개인파산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던데. “기초생활수급자인 유철이 어머니는 남편이 사망하고 5개월 후에 찾아왔다. 상속포기나 한정승인 신청기간은 지났기 때문에 처음에는 특별한정승인을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문제?) “아버지가 생전에 빚 소송을 당했는데 그때 어머니도 공동 피고였던 사실을 모른 거다. 그래서 특별한정승인도 신청할 수 없었다.” (남편이 다 처리했다면 살림만 하는 아내는 모를 수도 있지 않나.) “실제로 몰랐던 것 같기는 한데, 입증할 방법은 없으니….” ―담당 판사조차 개인파산 말고 다른 방법이 없냐고 물었다던데. “유철이 경우에는 설사 특별한정승인을 받더라도 채권자가 다시 소송을 걸 게 분명했다. 어머니가 과거에 공동 피고였는데 어떻게 특별한정승인이 나올 수 있냐며 효력을 없애 버릴 수가 있다. 문제는 채권자가 언제 소송을 걸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다. 유철이가 개인파산을 신청하고 면책을 받는 데 1년 정도 걸렸다. 그러고 나면 5년간 신용정보원에 신용불량자로 등재된다. 신용거래가 아예 안 되는 거지. 작년에 유철이가 고3이었다. 만약 채권자가 몇 년 후에 소송을 걸고, 그 결과가 나온 후에 파산·면책을 받으면 빨라도 20대 중후반까지 신용불량자가 된다. 신용불량자는 휴대전화도 개통할 수 없다.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할 때 그런 일이 벌어지기보다는 차라리 대학생 때 겪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휴대전화도 개통을 못 하나. “파산·면책을 받으면 신용등급이 최하위로 떨어지고 신용카드, 대출 등 모든 신용 거래가 제한된다. 휴대전화는 보통 단말기를 할부로 사니까 못하는 거지. 물론 일시불로 다 주고 사면 개통할 수 있지만 파산 신청을 하는 사람이 그럴 돈이 어디 있나.” ―프랑스는 빚의 대물림이 발생하지 않는다던데. “프랑스는 미성년 상속인의 법정대리인은 한정승인만 가능하고, 상속 재산이 빚보다 많은 게 명백한 경우에만 법원의 허가를 얻어 단순승인을 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러니 대를 물려 빚이 이어질 수가 없다. 프랑스였다면 유철이는 상속 즉시 한정승인이 되기 때문에 파산 신청을 할 필요도 없고, 당연히 신용불량자가 될 일도 없었을 거다.” ―앞서 말했지만 3개월인 신청 기간은 너무 짧은 것 같다. “독일은 빚이 있는 걸 모르고 재산을 상속했다면 이를 취소할 수 있는 기간이 30년이나 된다. 또 미성년자가 빚을 물려받아도 성인이 된 시점에 가진 재산만큼만 갚도록 하고 있다.” (우리도 10년 정도로 늘려주면 안 되나.) “안 될 건 없다고 본다. 단지 채권자 입장에서는 빨리 결정이 나야 포기든, 법적 조치든 할 텐데 그게 10년 정도 어정쩡한 상태로 있으면 좀 곤란하기는 할 거다. 돈을 받아야 할 사람의 권리도 있으니까.” ―그럼 독일은 왜 30년이나 주는 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쪽에 더 방점을 둬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는 거지. 달리 선진국일까. 우리도 프랑스, 독일처럼 가야 하지 않나 싶다. 미성년자는 빚이 생기는 과정에 아무것도 한 게 없다. 빚이 생기는데도, 구제 신청을 기간 내에 못 한 것도 본인 탓이 아니다. 책임의 원칙에도 반하는데 법적으로 빚을 갚아야 하는 건 너무너무 억울하지 않나. 흙수저 무(無)수저 이런 말을 하는데…, 이 아이들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족쇄를 차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런 상황을 어른들이 방치하면 어떻게 하나.”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2022-01-10 03:00
심상정 후보는 지지율이 왜 안 오르는지 정말 모를까[이진구 기자의 대화, 그 후-‘못 다한 이야기’]지난해 12월 중순 청년정의당 강민진(27) 대표를 인터뷰했습니다. 청년정의당은 정의당 내 35세 미만의 당원들로 구성된 당 내 당이지요. 강 대표를 인터뷰 한 것은 그가 지금 주목받는 청년 청년정치인 중의 한 명인데다, 거대 양당 대선후보들의 비호감도가 역대 최고라면서도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반사이익조차 못 받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독자여러분께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각 대선 후보들은 자신들의 지지율이 왜 오르지 않는지, 왜 내려가는지 정말 모르는 걸까요. 저는 안다고 확신합니다. 남의 지지율이 내려가는 이유를 물으면 이래서 그렇다고 말을 하니까요. 유권자의 선택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배우거나, 양자 역학을 이해하거나, 빅뱅이론을 공부해야만 알 수 있는 난해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상식만 있으면 알 수 있는 문제죠. 강 대표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정의당이 양념 같은 역할을 하는데 만족한다면 지금처럼 이념성향이 강해도 무방하지만, 대선에서 다수 유권자의 표를 얻으려면 당의 이념성향이 좀 더 대중적이 돼야하지 않느냐고요. 강 대표 자신도 언급했지만 정의당이 중점을 두는 분야는 다소 범위가 제한된 면이 있습니다. 과문한 탓인지는 모릅니다만 노동, 여성, 인권, 환경 같은 분야는 목소리가 높은데, 상대적으로 경제, 외교, 국방 등의 분야에 대해서는 잘 듣기 어렵지요. 선입관일수도 있습니다만 노조나 노동자 보호에는 앞장서도, 어떻게 하면 기업이 자유롭게, 막말로 돈을 더 잘 벌 수 있게 도와 줄 수 있을까하는 고민은 적은 것 같습니다. 이 기업이라는 단어를 재벌로 바꾸면 아마 더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것입니다. 5~10석 정도의 소수정당에 그친다면 소금 같은 역할로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국가를 운영하겠다면 달라져야하지 않겠습니까. 일반 국민에게 ‘정의당이 집권한다면 기업하기 더 좋은 나라가 될까요’라고 묻는다면 어떤 답이 더 많이 나올까요. 그렇다고 지금 정의당에서 기업 규제를 풀어주고, 경영자가 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자는 주장이 대세가 될 수 있을까요?저는 여기에 정의당의 딜레마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의당은 당원 충성도가 매우 강한 집단입니다. 더군다나 노동·민주화·시민사회운동이 출신 배경인 사람들이 다수인 곳이죠. 그런 특성 때문인지 선거 공약에도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면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것도 많습니다. 2020년 총선 공약으로 발표한 최고임금제가 그런 경우죠. 공공기관의 최고임금은 최저임금의 7배, 민간기업은 30배로 제한한다는 내용입니다. 국회의원은 5배입니다. 물론 이런 고민이 왜 나왔는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정의당은 이 공약을 발표하면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능력과 성과에 따른 임금의 차이를 인정하는 제도이고, 정의당은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체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월 250만 원을 못 벌고 있는데, 민간기업, 공공기관, 금융기관의 최고경영자들이 수십 배에서 수백 배에 이르는 임금을 받는 것은 건전한 시장경제하의 정당한 임금격차로 볼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공약의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묻고 싶은 것은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공약을 지지하고, 이 공약에서 자신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볼 수 있을까하는 점입니다. 부도덕한 경영진의 월급을 깎으면 화는 풀리겠지만 그렇다고 내 월급이 오르는 것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민간기업의 월급을 국가가 어떤 이유로 제한 할 수 있다면, 같은 논리로 다른 모든 분야도 이유만 있으면 제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도한 임금을 받는 부도적한 경영진을 근절한다는 시각에서 보면 그럴듯하지만, 이런 시각이면 빌게이츠나 스티브 잡스는 나올 수 없겠지요.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최저임금의 30배 밖에 못 받는다면 잡스가 회사를 차리겠습니까. 그런 규제를 안 받는 ‘잡(job)’을 찾거나 규제가 없는 나라에 가서 하겠지요. 강 대표는 인터뷰에서 지금 정의당에 필요한 것은 의외성이라고 했습니다. 정의당하면 늘 떠오르는 것 말고 국민이 보기에 신선한, 그 무엇을 얘기해야한다는 것이죠. 저도 동의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에도 마찬가지로 통용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굳어온 습관이, 소위 말하는 정체성이란 것이, 그 습관에 굳어진 당원들이, ‘의외성’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지금까지 해오던 것과 다른 말과 행동을 하면 “정체성이 흐려진다” “그런 말하려면 국민의힘으로 가라” “집토끼가 도망간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또 한 편으로 외연을 넓혀야한다, 중도를 잡아야한다고 합니다. ‘웃프다’는 말은 이럴 때 써야하지 않을까요? 아무런 마찰과 아픔 없이 정체성도 지키면서 외연도 넓힐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왜 고민이겠습니까. 다수 유권자의 표를 받고 싶다면 자신들의 생각이 다수 유권자의 보편적인 생각을 따라가야지요.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지키고 싶다면 그 정체성을 지지하는 사람들끼리만 모이면 됩니다. 정체성은 유지한 채 표는 얻고 싶으니 이상한 공약을 남발하게 되고, 결국 당선 후에 지키지 못합니다. 이런 일이 너무 만연하다보니 이제는 아예 취임 초에 지킬 수 없는 것은 지킬 수 없다고 확실하게 말하는 것이 좋은 정치의 모습처럼 됐습니다. 좋은 정치는 애초에 이상한 공약을 남발하지 않는 것이죠. 질러놓고 못하겠다고 선언하는 게 아니고요. 대통령 당선자에게 우리가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는 특정 정당의 후보가 아니라 전 국민의 대통령이 돼달라는 것이지요. 이 말의 진정한 의미는 선거는 비록 특정 정당을 기반으로 해 치렀지만 이제부터는 생각과 행동을 전체 국민과 국가 입장에서 해달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특정 정당의 후보로 당선됐다고 그 정당의 가치관과 지향점을 전 국민에게 강요하는 것은 전체 국민과 국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선거는 특정 정당을 기반으로 치렀지만 당선 후에는 그 좁은 그릇을 털고 나와야지요. 그런데 각 정당 대선 후보 중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정의당은 늘 거대 양당 프레임 때문에 지지율이 안 나온다고 말합니다. 그런 면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이 되겠다고 합니다. 엄청난 자기모순이지요. 마크롱이 4~5% 지지층 입맛에 맞는 얘기만 했다면 마크롱이 됐겠습니까? 4~5%만 좋아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왜 지지율이 안 오를까를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 좀 안타깝기도 합니다. 비호감도가 역대 최대라는 거대 양당 후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상한 말과 행동을 계속하니까 비호감도가 높아지는 것이지요. 이상한 말과 행동을 하지 않으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을, 그것은 하지 않고 엉뚱하게 토론을 하자고 하고, 신발을 벗고 절을 합니다. 이제부터는 정신을 차리고 모든 것을 바꾸겠다는데 왜 모든 것을 바꿀까요? 자신들만 바뀌면 나머지는 자동으로 바뀔 텐데요.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2022-01-0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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