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순원]명절차례-제사 간소화해 어머니-아내 짐 덜어주자

  • 입력 2005년 12월 30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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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제 폐지, 여성가족부 출범, 대법원의 여성 종중원 인정 등 이제 법과 제도만큼은 양성평등 사회가 조성되었다. 이렇듯 시대는 변해 가는데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는 것이 있다. 전근대적인 생활관습과 문화의식 등이 그것이다.

어느 시대보다 여성의 활약이 두드러진 지금 여성의 의식은 놀랍도록 변화되었다. 핵가족화로 여성은 자기계발에 눈을 뜨게 되었고 급변하는 사회의 중심에 우뚝 서 있다. 반면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대부분의 권위적인 남성의 사고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남성들의 변화되지 않는 불합리한 생각이 여성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새해에는 남성들이 먼저 케케묵은 허위의 갑옷을 벗어던질 수 없을까.

주부들은 명절이 다가오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온다고 한다. 오죽하면 ‘명절증후군’이란 말이 생겼을까. 모두 즐거워야 할 명절에 여자들은 차례상에 올릴 음식을 장만하고 손님 접대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니 명절이 오히려 짐이다. 더구나 일 년에 여러 차례 제사를 지내야 하는 집에서는 제수 비용도 적지 않다.

여성이 남자와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얼굴도 모르는 시댁의 몇 대 조상까지 떠맡아 제사를 지내야 하고, 정작 제사상 앞에선 소외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우리는 일 년에 두 번,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는 인파로 교통대란을 치른다. 귀성길과 귀경길의 적잖은 사람이 장시간 길에 묶여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다. 대부분 차례를 지내러 가느라 벌어지는 진풍경이다.

우리는 이러한 고충을 알면서도 모른 척해 왔다. 뿌리 깊은 유교 사상에 은연중 길들여져 왔기 때문이다. 조상을 잘 모셔야만 자손이 복을 받는다는 의식이 과연 이 시대에 합리적인 사고인가?

따지고 보면 제사의식은 본래 우리 민족 고유의 것도 아니다. 고려 말엽 ‘주자가례’라는 책이 유행하고 이성계가 조선을 세울 때 성리학을 통치 기반으로 삼음으로써 조상 제사가 보편화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조선 중기에 유학과 샤머니즘의 영향으로 민간에까지 유행하게 된 것이므로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미풍양속이라 하려면 우리에게 어떤 좋은 영향을 끼쳐야 하는데, 득보다는 실이 많다. 사실 이 제사 제도로 인해 우리의 어머니 아내 며느리인 여성들의 희생만이 있었을 뿐이다.

제사는 떨어져 있던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여 화목을 다지는 자리도 되겠지만 처지를 바꿔 놓고 보자. 종일 손님치레로 허리 한번 펴지 못하는 여성들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평소에는 서로 전화 한 통화 없이 무관심하게 지내다가 굳이 제삿날에만 얼굴을 본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많은 것을 한꺼번에 바꾸기 힘들다면 제례음식부터 합리적으로 바꿔 보자.

메 편 갱(羹) 탕(湯) 적(炙) 전(煎) 숙채(熟菜) 침채 포(脯) 혜(醯) 과일 등 틀에 박힌 음식보다는 평소 고인이 즐기던 음식을 올리는 것이 좋다고 본다. 생전에 고인이 좋아하셨던 몇 가지로만 간소화하자. 그렇다면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돌아가신 분을 위해 상다리가 휘도록 음식을 차린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차라리 살아 계신 부모님에게 마음이 담긴 물 한 잔 올리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곁에 계신 부모님이야말로 진정한 공경의 대상이다.

정순원 트렌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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