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 321곳 중 85곳 “치매발병후 기초수급자 전락 사례 있어”[히어로콘텐츠/헌트③-下]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2월 16일 21시 31분


“후견인 둔 노인 있다” 1곳뿐


지난달 19일 요양원을 배회하는 치매 환자를 요양보호사가 병실로 인도하고 있다. 전국의 치매 환자 약 31만 명이 요양시설에서 지내고 있다.
지난달 19일 요양원을 배회하는 치매 환자를 요양보호사가 병실로 인도하고 있다. 전국의 치매 환자 약 31만 명이 요양시설에서 지내고 있다.
전국의 요양원과 요양병원은 2023년 말 기준 5917곳. 이곳에 머무는 치매 환자는 약 31만3250명이다. 전체 치매 환자 10명 중 3명이 집을 떠나 시설에서 생활하는 셈이다. 우리요양원 7층의 연순과 옥분, 명자는 그중 셋일 뿐이다.

이들처럼 새어 나가는 기억과 재산을 붙잡지 못하고 있는 ‘치매 머니 사냥’의 피해자는 전국 요양시설에 얼마나 퍼져 있을까.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10월 31일부터 지난달 6일까지 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와 함께 전국 요양원 321곳을 대상으로 심층 설문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곳곳에서 치매 노인이 자산을 뺏기고 방치되는 징후가 뚜렷했다. 설문에 응답한 시설 중 54곳(16.8%)은 “가족이나 지인에게 금융 범죄 피해를 본 치매 노인 사례를 직접 목격했거나 알고 있다”고 답했다. 구체적인 징후도 뚜렷했다. “입소 이후 노인의 자산이 급격히 감소한 경우가 있다”고 답한 곳은 33곳(10.3%)이었다. 멀쩡하던 노인이 치매 발병 후 빈털터리가 되어 “기초생활 수급자로 전락했다”는 응답도 85곳(26.5%)에 달했다. 시설 입소 노인 약 10명 중 3명은 치매가 온 뒤 평생 모은 재산을 잃고 국가의 지원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
치매 노인의 ‘금융 주권’은 사실상 박탈 상태였다. 입소 노인이 자기 재산을 직접 관리한다고 응답한 시설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반면 320곳은 “배우자나 자녀 등 보호자가 전적으로 관리한다”고 답했다. 법적 안전망인 후견 제도를 이용하는 노인이 있다는 곳은 단 1곳에 불과했다. 가족에게 통장을 맡긴 대가는 가혹했다. 117곳(36.4%)은 “재산을 가져간 보호자가 시설 비용조차 제대로 내지 않아 체납된 적이 있다”고 토로했다. 돈은 가족이 쓰고, 빚은 노인이 지는 구조다.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고립’이다. 208곳(64.8%)이 “특정 가족에게 입원 사실을 알리지 말라거나 면회를 막아 달라는 식의 ‘사생활 보호 조치’를 요청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한 요양원 관계자는 “재산 분쟁 중인 자녀가 부모를 독점하려고 면회를 차단하는 경우가 많다. 의도가 뻔히 보이지만 보호자 권한이 막강해 요양원이 개입하거나 신고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헌트: 치매 머니 사냥’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히어로콘텐츠팀〉
▽팀장: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취재: 전혜진 박경민 최효정 기자
▽프로젝트 기획: 김재희 기자
▽사진: 박형기 기자
▽편집: 하승희 봉주연 기자
▽그래픽: 박초희 기자
▽인터랙티브 개발: 임희래 ND
▽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임선영 인턴

QR코드를 스캔하면 치매 노인의 자산을 노리는 ‘사냥’의 실태를 디지털로 구현한 ‘헌트: 치매머니 사냥’(https://original.donga.com/2025/HUNT)으로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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