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 제2의 도시였던 라이프치히는 독일 통일 직전 인구가 53만 명에 달했다. 하지만 1998년 43만 명까지 줄었다. 산업 기반이 급격히 무너지며 인구가 대거 유출됐다. 빈집만 6만 채였다. 독일 정부는 ‘동부 도시 재구조화’ 프로그램을 추진하며 역사적 가치가 높고 주거지로 선호하는 도심 지역을 집중 개선해 도시의 매력을 유지했다. 반면 공산주의 시절 건설했던 외곽 대규모 아파트단지는 철거하고 공원을 조성했다.
한국은 2020년 사망자가 출생아보다 많아지는 이른바 ‘인구 데드 크로스’가 시작됐다. 지난해 말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2070년엔 생산연령인구보다 고령인구가 많은 인구 역피라미드 구조가 나타날 전망이다. 인구 위기는 미래 잠재력 약화, 국가 역량 위축, 부양 부담 가중 등으로 이어진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조엘 모키어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가 “한국은 ‘인구 위기’ 외에는 지금처럼 계속 성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할 정도다.
해외에선 이미 ‘축소 사회’를 적지 않게 경험했다. 축소 사회는 인구 감소를 극복 대상이 아닌 ‘뉴노멀’로 받아들이고 사회 시스템을 재설계하는 개념이다. 우리보다 앞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국가 전략을 대거 수정했다. 과거 도농 균형발전 정책은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그 대신 ‘관계 인구’ 개념을 도입했다. 고향 납세(기부), 원격근무, 주말 방문 등 해당 지역과 관계를 맺는 이들을 새로운 인구로 인정하고 지원한다. 모든 마을이나 지역을 살리려는 노력 대신 행정, 복지, 상업 기능을 한곳에 모으고 연결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반면 국내는 여전히 ‘인구 O만 명’ 지키기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구가 유지돼야 교부금을 많이 받고 공무원 자리도 줄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의 인구 정책은 여전히 뜬구름 잡기식이다. 이제는 적극적으로 ‘축소 사회’를 지향해야 할 때다. 양적 팽창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한정된 자원을 극대화하는 ‘질적 발전’으로 시스템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인구 정책 핵심에는 외국인 정책이 있다. 출생아를 늘리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지만 단기간 가장 효과적인 정책은 외국인에 대한 문호 개방이다. 당장 이민을 전면적으로 수용하긴 어렵겠지만, 외국인에 대한 장벽을 낮추는 방안은 지속 가능성을 위해 필요하다.
정부는 2000년대 이후 고용허가제를 통해 외국인 근로자를 들여왔다. 다만 전문직이나 관리자는 전체 외국인 근로자의 10% 미만이고, 최근에는 오히려 감소하는 추세다. 영국 고등교육평가기관 QS에 따르면 한국은 2030년 일본을 제치고 역내 2위의 유학생 유치국이 될 전망이지만, 현재는 대학 졸업 유학생의 15% 정도만 국내에 남는 실정이다.
외국인 전문인력이 볼 때 한국 기업은 여전히 수직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다. 정주 환경도 좋지 않은 편이다. 고학력 외국인들은 높은 연봉과 함께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곳을 선호한다. 싱가포르는 창업자, 전문가 등을 위해 2년짜리 특별 비자인 ‘테크 패스’를 도입했다. 독일은 학력, 경력 등 일정 자격을 충족한 사람에겐 ‘기회 카드’를 주고 일단 입국한 뒤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국은 아직 문턱이 높다. 글로벌 인재들이 더 많이 남을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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