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1잔도 심장엔 독”…국내 연구진이 밝힌 ‘가벼운 음주’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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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소주 1잔인데? 연구 결과 ‘심방세동 위험 증가.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딱 소주 1잔인데? 연구 결과 ‘심방세동 위험 증가.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소주 한 잔쯤은 괜찮겠지”라는 자기 체면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 정도의 음주조차 심장 건강을 해치고, 특히 심방세동(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부정맥의 일종)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사실을 확인한 국내 연구진은 심혈관 건강에 있어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음주량은 없다’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심혈관 질환은 전 세계 사망 원인 1위, 국내에선 암에 이어 2위다.

고대구로병원 심혈관센터 이대인·강동오 교수와 고대안산병원 심혈관센터 김선원 교수 연구팀은 알코올 섭취와 심혈관 질환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 단 한 잔의 음주도 심장 리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적당한 음주가 심혈관 건강에 좋다”는 근거 불분명
그동안 일부 연구에서는 경·중등도 음주가 특정 심혈관 질환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결과가 제시돼 왔다. 하지만 연구마다 대상 질환과 음주 습관, 개인 특성이 달라 결과가 엇갈렸고, 이를 바탕으로 명확한 임상 지침을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연구팀은 대규모 코호트 연구, 무작위 임상시험, 멘델리안 무작위 분석, 기초 병태생리 연구를 종합 검토해 단순 음주량뿐만 아니라 음주 패턴, 개인의 유전적·생물학적 차이가 심혈관 건강에 미치는 영양을 다층적으로 분석하고, 그 상호작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음주가 심혈관 건강에 미치는 병태생리 기전에 대한 개념적 모식도. 고대 구로병원 제공.
음주가 심혈관 건강에 미치는 병태생리 기전에 대한 개념적 모식도. 고대 구로병원 제공.

알코올, 몸속에서 어떻게 심장을 망가뜨리나?
연구진은 알코올이 심혈관 질환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세 단계로 설명했다.

1차 유발 단계
알코올이 체내에 들어오면 산화 스트레스가 증가하고 염증 반응이 활성화하면서 에너지 대사 균형이 깨진다.

2차 매개 단계

일차적인 생물학적 변화는 뇌와 자율신경계의 조정 기능에 영향을 미치고, 호르몬과 면역 체계의 균형을 저해한다.

최종 장기 반응

그 결과 혈소판 응집과 혈전 형성 촉진, 혈관 염증과 동맥경화가 가속화한다. 이에 따라 심장과 뇌 등 주요 장기에 부담이 누적된다.
이러한 연쇄 반응이 반복되면 결국 심방세동, 뇌졸중, 심부전 등 중증 심혈관 질환 위험 증가로 이어진다.

“한 잔만 마셔도” 심방세동 위험 증가
질환별 분석 결과는 더욱 분명했다.
소주 한 잔 수준의 소량 음주만으로도 심방세동 발생 위험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증가했다.
주당 소주 6~7잔에 해당하는 알코올을 섭취하면, 심방세동 위험이 비음주자보다 약 8% 증가했다.
음주량이 늘어날수록 심방세동 위험은 비례적으로 상승했다. 특히 소주 1병을 넘는 폭음은 위험을 급격히 증가시켰다. 나아가 이러한 음주로 의한 심방세동 발생 증가는 색전성 뇌졸중과 심부전 등 심혈관 사건 위험 증가로 이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논문 제1 저자인 이대인 교수는 “심방세동은 뇌졸중·심부전·돌연사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대표적인 부정맥 질환으로, 평소 증상 없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더욱 위험하다”며 “이번 연구는 심방세동 발생 위험이 있거나 이미 진단받은 환자라면 소량의 음주라도 중단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제시했다는 데 큰 학문적·임상적 의의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술에 약한 체질 많은 아시아인 더 위험
연구진은 유전자에 따른 차이도 함께 분석했다.
그 결과, 한국인을 포함한 동아시아인에게 흔한 ALDH2·ADH1B 유전자 변이를 가진 경우, 같은 양의 술을 마셔도 체내에 독성 알코올 부산물인 아세트알데하이드가 더 오래 남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혈관 염증과 심장 전기 신호 이상이 더 쉽게 발생했다. 이는 이른바 ‘술이 약한 체질’과 관련된 유전자 변이를 가진 사람은 소량 음주라도 심방세동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혈압·심근경색·사망 위험까지 증가
연구에서는 음주로 인한 추가 위험도 확인됐다.
하루 알코올 섭취량이 12g(소주 약 1.5잔)을 초과할 때 고혈압 발생 위험의 지속 증가 경향이 관찰됐다. 이러한 연관성은 여성보다 남성에게서 두드러졌다,
폭음은 전체 사망률과 심혈관 사망 위험을 추가로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심근경색 병력 가진 환자에서 음주 시 사망 위험이 더욱 뚜렷했다.
주 1회 이상 소주 1병(알코올 50g) 초과 과음이나 폭음 습관 역시 관상동맥질환 위험 증가 요인으로 분석됐다.
고대구로병원 심혈관센터 이대인·강동오 교수, 고대안산병원 심혈관센터 김선원 교수
고대구로병원 심혈관센터 이대인·강동오 교수, 고대안산병원 심혈관센터 김선원 교수

술, 줄이는 게 아니라 끊는 게 안전
논문 공동 제1 저자인 김선원 교수는 “이번 연구는 음주가 심혈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단순히 섭취량 기준으로 판단하던 기존 관점을 넘어, 개인의 유전자적 특성, 기저 질환, 음주 패턴에 따라 위험이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 중요한 근거”라고 말했다.

교신 저자인 강동오 교수는 “이번 결과는 향후 국내 음주 가이드라인 개정과 고위험군 관리 전략 수립 및 환자 맞춤형 예방·치료 정책 마련에 중요한 기초자료로 활용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Trends in Cardiovascular Medicine’에 초청 리뷰 논문으로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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