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윌리엄 파프]메르켈 뜨고 블레어 진 EU무대

  • 입력 2005년 12월 23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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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는 예상 밖의 중요한 의미를 지닌 회의로 드러났다.

첫째, EU가 ‘사회적(social)’이고 ‘유럽적인’ 유럽으로 갈 것인지, 자유시장을 중시하는 북대서양적 유럽으로 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여기서 거의 해결됐다.

둘째, 앙겔라 메르켈 신임 독일 총리의 능력과 야심이 드러났다. 메르켈 총리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가 잃어버렸던 독일의 지도적 위치를 되찾았다.

토니 블레어 총리는 6개월 임기의 EU 의장직을 맡아 유럽의 정치 경제적 우선순위를 바꾸려고 했으나 실패함으로써 영국과 유럽의 관계는 예전 그대로 남게 됐다. 그는 6월 유럽에 영미식 경제의 활력을 심고, 프랑스와 독일이 고집하고 있는 ‘사회적 유럽’을 해체하겠다고 약속했다. 그건 결국 실패했다.

메르켈 총리는 EU의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다. 정상회의의 교착상태를 타개하는 과정에서 그가 보여 준 막후 조정력은 거의 만장일치의 박수를 받았다. 운도 따랐다. 독일 IFO경제연구소는 2006년 독일 경제가 1.2∼1.7% 성장하고 높아지는 실업률도 반전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전에 독일을 의혹의 눈길로 봐 온 폴란드 등 EU 각국 정상의 존경을 받으며 메르켈 총리는 브뤼셀을 떠났다.

특히 비유럽 지역 사람들은 과거 EU를 형성했고 오늘날에도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을 때 EU를 지탱하는 그 힘을 평가절하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치욕을 당한 프랑스와 패배한 독일, 분열된 이탈리아, 베네룩스 3국은 협력을 모색했고 결국 EU가 탄생했다. 당시 미국은 유럽의 가장 절친한 친구였다. 워싱턴 정부는 전쟁이 끝나기도 전부터 장 모네의 구상을 지지했다. 그 후에는 냉전에서 공산권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의 일치를 원했다.

오늘날도 워싱턴은 유럽의 절친한 친구로 남아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유는 달라졌다. EU가 라이벌로 성장하는 것을 막기 위해 EU를 분열시키려고 했던 최근 수년간 미국의 노력은 미국에 친근감을 느꼈던 많은 유럽인을 소외시켰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무도함―미 의회와 동맹국들에 거짓말을 하고 국제법과 인권 기준을 무시한 것, 대통령과 부통령이 변호하고 있는 체계화된 고문, 일방주의―은 많은 유럽인을 놀라게 했다.

이런 사고와 행동의 다음 희생자는 누가 될 것인가. 유럽은 나치 시절에 이런 것을 경험했다. 소련이 강하고 공격적일 때도 그랬다. 지금은 미국이 걱정스럽다.

영국은 여전히 반쯤만 EU 국가다. 영국 선거권자는 유럽과의 협력관계를 심화시키길 주저한다.

영국에도 미국의 행태에 의심을 품는 사람이 많지만 그들은 유럽보다 미국과 같이 갈 때 편안하게 느낀다. 영국은 유럽 밖에 있어야 한다는 샤를 드골의 충고를 따랐어야 했다.

메르켈 총리는 EU 헌법에 대한 논의를 다시 시작하길 원하고 있다. 그는 프랑스 독일뿐 아니라 스웨덴과 아일랜드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지나친 자유시장적 제안을 배제하고 새로운 사회적 차원을 그 헌법에 부여하길 원한다.

EU는 기독교적이고 사회민주주의적인 전통을 갖고 있다. 동독 출신으로 목사의 딸인 메르켈 총리는 그것을 잘 알고 있다.

독일이 2007년 EU 의장국을 맡게 될 때 블레어 총리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도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도 권좌에서 물러나기 직전이거나 이미 사라졌을 것이다. 그때 메르켈 총리의 임기 2년째가 시작된다.

정리=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윌리엄 파프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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