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토머스 프리드먼]이라크에 싹트는 시민의식

  • 입력 2005년 12월 28일 03시 01분


코멘트
훈련된 이라크 군인의 수로 이라크에서의 성공을 평가하는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의 측정방식에 반대한다. 완전히 잘못된 방식이기 때문이다. 숫자놀음에 빠지게 되면 지금껏 이라크에서 해 왔던 것보다 더 큰 실수를 하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라크 군인의 수가 아니라 이라크 ‘시민’의 수다. ‘시민’이 없으면 군인은 아무리 많아도 충분하지 않다.

저항세력은 뛰어난 전투능력을 입증해 왔다.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를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라크군도 미군의 훈련을 따를 의지가 있을 때 실전에서 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정부를 믿고 방어해야 할 동기가 부여될 때 싸울 의지를 갖게 될 것이다.

최근 이라크 총선에서 1100만 명이 자유롭고 공정하게 투표에 참가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민주정치를 거의 경험하지 못한 지역에서 자유선거가 실시됐다는 점에 미국인들은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하지만 이라크인들이 누구에게, 무엇을 위해 투표했는지는 아직 불명확하다. 어떤 이들은 분리 독립을 쟁취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쿠르드 지도자들에게 투표했다. 일부는 신정 체제를 구축하려는 열망으로 시아파 성직자들에게 투표했다. 권력을 회복하려는 희망으로 수니파 지도자들에게 투표한 사람들도 있다. 통합 이라크를 기대하고 타협을 통해 모두가 동의하는 방식으로 헌법이 다시 제정되기를 바라며 투표한 이들도 있다.

이들이 각 종파에 투표한 것에 불과하다면 시아파, 쿠르드족, 수니파만 있을 뿐 ‘시민’은 없다. 하지만 그들이 통합 이라크를 위해 투표했다면 우리에게 아직 기회는 있다.

‘시민’과 ‘국가지도자’가 있다면 우리가 원하는 방식의 이라크 재건을 이뤄 낼 동반자를 얻게 될 것이다. 이 경우 지금까지의 이라크 전략을 유지하면 된다. 하지만 ‘시민’이 없거나 부족하다면 우리에게 진정한 동반자는 없는 셈이다. 현재의 전략을 밀고 나가 봐야 우리가 기대하는 형태의 이라크를 건설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인 모두가 미국식 다원민주주의를 열망하고 있다고 말한다. 민주주의를 달성할 때까지 미국이 충분히 주둔할 수 있을지가 유일한 변수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라크인의 의지가 무엇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다수파로서 시아파가 어떻게 행동할지, 소수파로서 수니파가 어떻게 대응할지에 미래가 달려 있다. 승리한 시아파가 아량을 발휘할지, 수니파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헌법을 개정할지, 수니파는 주어진 몫을 받아들이는 데 동의할지, 아니면 타협이 실패로 끝날지 모든 것은 불분명하다.

이라크를 방문했을 때 부족중심주의 속에서도 시민권과 국가정체성에 대한 열망이 존재함을 확신할 수 있었다. 좌파와 달리 통합 이라크 건설은 결코 달성되지 않으리라고, 모든 것은 헛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파와 달리 지금까지의 전략을 유지한다면 민주화가 필연적으로 달성되리라고 확신하지도 않는다. 지금 유일하게 확신하는 것은 이라크인이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이라는 것뿐이다. 앞으로 6개월 동안 이라크인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증명해 보일 것이다. 조심스럽게 희망을 점쳐 본다.

일이 잘 풀리고 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쉽다. 그때가 되면 이라크군은 미군에 의지하지 않고서도 전투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싸워야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