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모린 다우드]비눗방울 속에 갇힌 부시대통령

  • 입력 2005년 12월 2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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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비눗방울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느끼십니까.”

“아뇨, 전혀 느낄 수 없습니다.”

얼마 전 브라이언 윌리엄스 미국 NBC 뉴스 앵커와 조지 W 부시 대통령 간의 대화 내용이다.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최근호는 부시 대통령이 비눗방울 속에 갇혀 있는 모습을 표지 사진으로 실었다. 이 잡지는 백악관을 거대한 비눗방울에 비유하며 대통령이 외부와 단절된 세계에서 다양한 의견을 접할 기회를 차단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눗방울 속의 대통령’ 사진을 손에 든 앵커가 “각종 정책 이슈에 대해 조언하는 보좌관이 너무 적은 것 아니냐”고 재차 물었다. 그러자 부시 대통령은 “소수지만 능력 있는 보좌관들에게서 균형 잡힌 조언을 듣고 있다”면서 “민심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파악하고 있다”고 답했다.

비눗방울 속에 갇힌 사람은 자신이 갇혀 있는 줄 모른다. 방울 속에서는 방울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소수의 보좌관에 둘러싸인 대통령은 자신의 정책이 민심과 유리돼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부시 대통령이 다양한 시각을 접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는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이라크 포로 처리, 허리케인 카트리나 수습, 이라크 내 미군 철수 문제에서 부시 행정부는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최근 부시 행정부는 ‘테러 방어’를 이유로 영장 없는 비밀 도청을 승인했다.

부시 대통령은 자신이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보다 훨씬 가깝게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말한다. 전용기 에어포스원이 있다는 것이 바로 그 이유다.

링컨 전 대통령은 남북전쟁 당시 직접 총을 들고 싸웠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국민에게 자신의 국정 철학을 보여 준 것이다.

에어포스원을 타고 다니는 부시 대통령은 기동력 면에서 링컨 전 대통령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대중과 ‘자주 만날 수 있다’고 해서 ‘함께 호흡하는 것’은 아니다. 에어포스원의 검은색으로 칠해진 유리창 속에서 대중 위를 날아다닐 뿐이다.

부시 대통령은 안락한 비눗방울 속에서 공화당원, 군인, 기업 로비단체 등 소수의 그룹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민주당원, 시민단체, 이라크전쟁 전사자 부모 등과는 일정 거리를 유지한다.

국방 전문가인 잭 머사 민주당 하원의원은 초기 미국의 이라크전 개전에 찬성했던 중도파 정치인이다. 그는 7개월 전 이라크전에 대한 여러 가지 조언이 담긴 편지를 대통령에게 보냈지만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편지는 국방장관 보좌관이 묵혀 두고 있었다.

머사 의원은 부시 행정부의 ‘고립주의’에 경고를 보낸다. 이라크전 계획 수립 당시 군과 국무부는 철저히 배제됐다는 것이다. 그는 “백악관 전략회의는 3성 장군조차 끼어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비눗방울의 특징은 터지지 않도록 끊임없는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뉴스위크에 따르면 최근 한 외교 관리는 대통령을 접견하기 직전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에게서 주의 사항을 들었다고 한다. 그것은 “대통령을 혼란스럽게 하지 말라”는 준엄한 경고였다.

부시 대통령은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비눗방울 대통령’ 기사가 실린 뉴스위크 최근호를 보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백악관 보좌관들이 대통령을 혼란스럽게 할 기사를 전달했을 리 만무하다.

아마 대통령은 이 글도 읽지 못할 것이다.

모린 다우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정리=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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