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영]아파트 분양가의 진실

  • 입력 2005년 5월 4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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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민간업체가 짓는 아파트 분양가는 상한선이 정해져 있었다. 전용면적 25.7평 이하 아파트는 평당 105만 원, 이보다 큰 아파트는 평당 134만 원이었다. 예를 들어 40평형 아파트라면 분양가는 40×134만 원=5360만 원이었다. 불과 15년 전의 일이다. 대신 아파트를 분양받으려면 매입할 채권액을 써 내야 했다. 분양가와 기존 아파트 값의 차이가 워낙 커 투기 수요를 막기 위해 생긴 제도다. 채권을 많이 사는 사람 순으로 아파트에 당첨됐다. 하지만 채권매입액이 너무 치솟지 않도록 여기에도 상한액을 고시했다.

잘 들여다보자. 수요에 비해 공급이 항상 모자라다 보니 실제 아파트 값은 분양가보다 월등히 높았다. 그렇다면 분양가와 시세의 차액은 누가 가져야 할까. 정부일까, 업체일까, 당첨자일까. 아파트 분양제도 변천사는 바로 이 문제를 둘러싼 힘 겨루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대 분양가 상한제에서는 차액의 대부분을 채권입찰제를 통해 국가가 환수했다. 여기에 채권액에 상한선을 둠으로써 일부는 당첨자가 가져가게 했다. 건설업체들은 정부가 정한 분양가로 아파트를 지을 뿐 인센티브가 전혀 없었다.

이렇다 보니 업체들은 집을 짓지 않았고 공급 부족이 심화돼 갔다. 1989년 들어 집값이 폭등하자 정부는 서둘러 경기 성남시 분당과 고양시 일산 신도시 계획을 발표했다. 그해 11월에는 정부가 정한 표준건축비와 택지비를 합해 분양가를 정하는 원가연동제가 도입됐다. 그래도 분양가는 시세에 한참 못 미쳤고 채권입찰제를 통해 정부가 차액을 환수했다. 단 업체들의 사정은 조금 나아졌다.

원가연동제는 외환위기의 여파로 1999년 완전 폐지됐다. 건설업체들이 분양가를 결정하게 됨으로써 오랜 논쟁은 마무리된 듯했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금세 생겨났다. 어느 틈엔가 분양가가 기존 집값보다 높게 형성되기 시작했다. 택지비가 올랐고 내장재를 고급화해 건축비가 상승했다는 게 건설업체들의 얘기였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을까. 그것만으로 15년 전 평당 134만 원이던 분양가가 2000만 원을 상회하는 지금의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까.

완전 자율화된 분양가 제도에서는 건설 원가와 아파트 시세의 차액을 건설업체가 모두 가져갔다. 만일 이쯤에서 업체들이 분양가를 적절한 수준으로 유지했더라면 사회적 반작용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과거 채권입찰제와 비교하면 이윤은 충분했을 것이다.

치솟은 분양가가 오히려 기존 아파트 값을 끌어올리는 역(逆) 현상이 나타나기에 이르자 결국 올해 3월 전용면적 25.7평 이하 아파트에 대해 원가연동제가 부활했다. 업체들이 공공택지를 분양받을 때 채권을 사는, 과거와는 형태가 다른 채권입찰제도 다시 도입됐다.

건설업체들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이렇게 되기까지 자초한 책임은 없었을까. 집 지을 땅이 모자라 공급이 비탄력적인 시장의 왜곡 때문에 발생하는 원가와 시세의 차액을 적절한 선에서 만족하지 않고 끝없이 키우지는 않았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탐욕은 경제를 끌고 가는 동력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나 공공의 이익에 반하면 반작용을 부른다. 탐욕에도 금도(襟度)가 있는 법이다.

김상영 경제부장 you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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