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정착에 성공한 탈북민도, 실패한 탈북민도 존재한다. 그러나 ‘성공적인 정착’이라는 잣대로만 탈북민을 보는 시선은 부족함이 있다. 이에 주성하 기자가 21세기 한반도에서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온 탈북민들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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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 백두산으로 자유여행을 떠났던 탈북청년 강원철에게 인생의 목표가 생겼다. 한국 국적을 따면 중국 여행을 하겠다는 생각은, 그가 중국에 숨어 지낼 때부터 가졌던 오랜 꿈이었다. 그는 한국에 오자마자 여권을 만들었고, 대학 입학을 기념해 중국에서 함께 지냈던 탈북 친구와 함…
2018년 11월, 세계 3대 투자자로 꼽히는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이 정유나 씨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유나, 너를 보좌관으로 영입하고 싶다.”앞서 로저스 회장은 정 씨에게 몇 차례 메일을 보냈다. 정 씨는 장난 메일인줄 알고 무시하다가 마지막 메일에 “만약 회장님이 맞다면 전…
2000년 10월 평양과 남포 사이 42㎞ 구간에 왕복 10차선의 청년영웅도로가 건설됐다. 북한은 이 도로를 ‘위대한 장군님 시대의 청춘 서사시’라고 찬양했다. 북한은 약 2년 동안 10만 명이 넘는 청년들이 동원돼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인력만으로 완공한 고속도로’라며 격찬했다.…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처음 태풍을 맞는 곳이다. 제주 사람들에게 이곳에서도 가장 바람이 센 곳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주저없이 남서쪽 송악산과 산방산 아래에 위치한 대정과 안덕면을 꼽는다.몇 년에 한 번 큰 태풍이 오면 숱한 나무들이 꺾여 쓰러지는 이곳 산방산 아래에 한 탈북 여성이…
“남조선은 월급을 잘 줍니까?”치료하던 환자의 딸이 자신에게 탈북을 권했을 때 김성희 씨가 했던 첫 질문이었다.환자 가족과 함께 두만강을 넘어 석 달 뒤 한국에 도착한 뒤에도 김 씨는 한국이 어떤 곳인지 잘 몰랐다.인천공항에서 조사기관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김 씨는 생각했다.…
허수현은 한반도 최북단 탄광마을이 낳은 수재였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직전 북한 전체에서 700명에게만 수여하는 ‘7.15 최우등상’을 수상했다. 7.15최우등상은 김정일이 평양 남산고급중학교를 졸업한 날인 1960년 7월 15일을 기념해 1987년에 만들어진 상이다. 지금은 이 상이…
양강도 혜산을 끼고 유유히 흐르는 압록강 기슭에 앉아 있던 인민군 대위가 별안간 강물에 뛰어들었다. 아직 해가 중천에 떠있던 시각이었다.빨래를 하던 30명 남짓의 여인들은 처음에는 무슨 일인지 몰라 가만히 보다가 대위가 가슴 깊이까지 들어가자 한꺼번에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그 …
1994년 10월. 6·25전쟁 때 적의 포로가 됐던 조창호 소위가 43년 만에 귀환했다. 사람들은 그를 ‘인간 승리의 표본’이라고 불렀다.그로부터 4년 뒤인 1998년 12월 15일. 국군포로 박동일, 김복기 씨가 동시에 한국에 입국해 기자회견을 했다. 국군포로 2호 귀환자들이었다.…
신의주의 압록강변에 사랑에 빠진 두 남녀가 앉았다. 중국 단둥을 건너다보며 남자가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나를 따라 어디든 갈 수 있어?”“영남 동지가 조국을 배반하지 않는 이상 어디든 가겠습니다.”결혼 뒤 남편은 아내에게 한국 라디오 방송을 듣게 했다. 두 달이 지나자 아내가 말했…
“엄마, 딱 한 번이라도 밥을 실컷 먹고 싶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어린 딸이 부르튼 입술을 애써 놀리며 말했다. 이룰 수 없는 꿈인 것을 서로가 알았다. 그러나 그 말은 비수가 돼 엄마의 가슴 속 깊이 아픔으로 박혔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너를 위해 엄마가 목숨 한…
서울 강서구 가양3동 자율방범대 대장 강윤철. 그의 경력은 특이하다. 북한 호위사령부 경보대대 군인 출신이다. 평양에서 김 씨 일가의 안전을 지키던 그는 지금은 30명의 대원을 이끌고 저녁에 2~3시간씩 순찰을 하며 서울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강서구 의용소방…
“안녕하세요. 저는 북에서 온 권봄이라고 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동네에선 ‘패션여왕’이었어요. 학교에서 교복을 제일 먼저 고쳐 입은 사람이 바로 저였다니까요. 그런데 옷을 고칠 때마다 비판무대에 오르고, 강제노동까지 하고 너무 고초를 많이 겪었어요. 하지만 전 굴복하지 않았어요. 마…
이달 초 서울 종로구 혜화아트센터에서 탈북화가 심수진 전시회 ‘자유의 땅에서 내 꿈의 여행’이 열렸다. 지금까지 탈북민 사회에서 심수진이란 이름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에 어떤 작가인지 궁금해서 찾아가봤다. 솔직히 큰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전시실에 들어선 순간 뭔가 색다름이 확 와 닿…
1997년 6월 어느 아침. 남루한 행색의 14세 소년이 풀밭을 헤치며 두만강 기슭을 헤매고 있었다. 울먹이며 삼촌을 애타게 불렀지만,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간밤 소년은 30대 후반의 외삼촌과 함께 두만강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서로 손을 꽉 잡고 강물을 헤쳤지만, 비 온 뒤의 두…
깜깜한 어둠. 흰눈 덮인 압록강에 10~15명의 밀수꾼 무리가 나타났다. 금속이 든 60㎏짜리 마대를 메고 앞장선 밀수꾼 두목은 30대 초반의 여인이었다. 이름 박윤희. 13살에 북한군 호위사령부에 입대해 국가대표 바이애슬론 선수로 활약했던 노동당원. 현직은 보천보혁명박물관 관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