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정착에 성공한 탈북민도, 실패한 탈북민도 존재한다. 그러나 ‘성공적인 정착’이라는 잣대로만 탈북민을 보는 시선은 부족함이 있다. 이에 주성하 기자가 21세기 한반도에서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온 탈북민들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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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33)은 떨리는 심장을 부둥켜안고 컴퓨터 앞에 마주 앉았다. 11살 때인 1998년 겨울 두만강을 넘어 탈북한 이후 이렇게 떨렸던 적이 언제 있었나 싶었다. 숨을 깊게 내쉬고 법무부 제11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명단을 확인하기 위해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런데 서버가 다운돼 접…
# 정해진 운명북한에서 그의 삶은 태어나기 전, 그러니까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꼬였다. 아니, 이미 결정된 것이었다. 한반도의 가장 북쪽인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1974년 태어난 조광호 씨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비상한 소질을 보였다. 5살 때부터 아코디언과 바이올린 연주를 …
2002년 2월 20일 동아일보 기사.도라산역 인근서 북한군 1명 귀순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비무장지대(DMZ) 인근 경의선 도라산역을 방문하기 불과 10여 시간 전인 19일 밤 소총 등으로 무장한 북한군 병사 1명이 서부전선으로 귀순, 군 당국이 귀순 경위를 조사 중이다. 국…
북한군 군용트럭 한 대가 칠흑 같은 새벽어둠을 뚫고 두만강을 향해 미친 듯이 내달렸다. 강가에 도착한 트럭 운전석에서 완전 군장을 군인이 뛰어내렸다. 하사 계급장을 단 그는 탄창 하나에 30발이 들어가는 AK47 자동소총을 메고, 탄창 3개를 허리에 둘렀다. 어깨에 멘 배낭 안에는 …
1982년 한반도 북단의 함경북도 은덕군에서 한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은덕은 악명 높은 아오지탄광이 있는 곳이다. 북한은 1977년 “김일성의 은덕으로 나날이 변모해가는 고장”이란 뜻으로 아오지의 원지명인 경흥을 은덕으로 바꾸었다가, 창피함을 알았는지 2005년에 경흥군으로 환원시켰…
평양에 출장을 다녀온다고 집을 나선 남편은 몇 달째 감감 무소식이었다. 사람을 통해 알아보았더니 ‘프룬제 아카데미사건’에 연루돼 조사받는다고 했다. “우리 남편은 정말 고지식하고 착한 사람인데, 죄가 없으니 조사받고 돌아올 거야.” 그러나 몇 달 뒤 남편이 반당반혁명범죄자로 …
1999년 가을. 늘 정전돼 암흑 속에서 살던 두만강 옆 동네에 모처럼 전기가 들어왔다. 6살 진우는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와 함께 TV 앞에 마주앉았다. 저녁 9시가 넘어 TV 연속극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쾅 열리더니 검정색 정장을 입은 사내 10여명이 집으로 들어왔다. …
‘따르릉… 따르릉….’전화벨 소리가 사납게 울렸다. 전화기를 내려다보는 서울 양천구 한 카센터 경리 김영희 씨의 심장이 벨소리만큼 사정없이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황급히 문을 열고 소리친다.“기사님~~. 전화 왔어요.”손에 기름을 잔뜩 묻히고 차를 수리하던 정비사는 인상을 찌푸리고…
2015년 9월 전북 남원에서 열린 ‘국민대통합 아리랑공연’ 한복 패션쇼는 기존과 다른 연출을 선보였다. 한복을 입은 모델들이 워킹 중심의 기존 패션쇼와는 달리 민요의 흥겨운 선율에 맞춰 우아한 춤을 추며 등장한 것이다. 무대 뒤에서 한 중년 여성이 차례를 기다리는 모델들에게 몸…
접이식 밀차에 책을 가득 싣고 나자, 사장이 말했다. “자, 이제는 이걸 택배 기사에게 끌고 가라.” “네?” 42세 늦깎이 신입사원 김인철 씨는 당황했다. 택배 기사가 물건을 받아가는 대로변 약속 장소까지 가려면 번화가인 서울 명동거리를 가로질러 가야 했다. 북한에서 무역일꾼도…
서울을 떠나 부산으로 내려가는 KTX 안에서 한 여인이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부푼 기대를 안고 입사한 회사는 6개월 만에 부도가 났다. 사장은 사채업자를 피해 어디론가 사라졌다. 당장 먹고 살기 어려운 상황이라 닥치는 대로 일자리를 찾아 헤맸다. 서울에 오면 …
1990년대 중반 북한에는 ‘고난의 행군’이라고 불리는 대기근이 휩쓸었다. 거리에 바싹 마른 시체들이 방치됐다. 병원 침대에선 영양실조로 실려 온 아이들의 눈빛이 꺼져가고 있었다. 의사들이 할 일은 없었다.함경북도 청진 시 중심부 포항구역의 한 병원 소아과 의사였던 김지은 씨도 할 수…
서울에서 북한 음악에 대해 궁금하다면 그를 찾아가면 된다. 한국에 온 탈북자 중 그만큼 북한의 음악 교육의 최정점에 있었던 사람은 없었다. 황상혁 교수(46)는 북한 최고의 음악대학인 ‘김원균명칭음악종합대학’에서 20년 동안 피아노 교수로 재직하다 6년 전 탈북해 한국에 왔다. 북에…
“꿈을 향해 달렸다. 길이 나타났다.” 한국에서 처음 본 소형 캠코더가 마흔 살 늦은 나이의 한 탈북민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꿈을 향해 17년 동안 잠시도 한 눈을 팔지 않고 걸어왔다. 이제 그는 세계 최초를 꿈꾼다. 허영철 원코리아 미디컴 프로덕션 대표(57)의 이야기다.…
“지하 김일성광장은 나만 가봤죠.”평양엔 김일성광장이 두 개 있다. 하나는 평양 중심부의 광장이고, 다른 하나는 지하 약 200m에 있는 ‘비밀의 광장’이다. 위치는 김일성·김정일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 바로 옆, 평양 대성구역 김일성종합대학 옛 운동장 바로 아래다.김일성대를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