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한국, 아시아 9개국중 '환경지수' 7위

  • 입력 2000년 5월 25일 19시 01분


김포공항에 내려 서울 시내로 들어서는 외국인들은 대부분 금세 이맛살을 찌푸린다. 각종 차량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커먼 연기, 차량 경적소리에 입과 귀를 틀어막게 된다.

홍콩에 본부를 둔 정치경제위험상담기구(PERC)는 24일 아시아 9개국에 대한 대기 소음 수질 조사결과 한국이 종합 7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이중 소음은 한국이 가장 심했다. 월드컵 한일 공동개최가 불과 2년여 앞으로 다가왔다. 세계인의 이목이 쏠리는 월드컵을 계기로 ‘일본은 쾌적한 나라’ ‘한국은 불쾌한 나라’로 인식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숨막히는 대기▼

“속이 썩어 들어가는 느낌입니다.” 서울 사당역 부근에서 5년째 버스 전용차로 위반 단속업무를 하고 있는 경동호(慶東浩·50)씨는 아무리 더운 날씨라도 입마개를 벗을 수 없다. 하루 4시간 도로변에 서있고 나면 시커먼 가래가 끓고 머리와 가슴이 꽉 조이는 듯 아프다. 퇴직한 동료들 상당수도 만성적인 호흡기 질환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경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과천 방면에서 서울로 진입해 들어오는 차량들, 특히 버스와 화물차량은 움직일 때마다 시커먼 그을음이 섞인 연기를 뿜어대고 있다. 다른 단속원 정익선(鄭益善·51)씨는 “일과를 마치고 머리를 감으면 먹물처럼 검은 물이 나온다”고 말했다. 바람없는 우중충한 날씨에는 매연이 땅에 낮게 깔리기 때문에 고통이 더욱 심하다.

대기 오염의 주범은 자동차, ‘주범중의 주범’은 경유차이다. 지난해 말 자동차는 1116만대. 이중 29%인 경유차가 자동차 오염물질의 64%를 배출한다. 국내 경유차 비율은 미국(3%) 일본(18%)에 비해 훨씬 높다.

자동차에서 나오는 미세먼지(PM10) 질소산화물 탄화수소 등은 천식이나 폐암 등의 원인 물질로 지적된다. 특히 PM10의 95% 이상은 입자의 직경이 2.5㎛로 폐 깊숙이 침투해 폐암 등 폐질환의 직접적 원인이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 기준은 ㎥당 30∼50㎍이나 지난해 6월 현재 서울 68㎍, 부산 65㎍, 대구 66㎍ 등. 아직 공식적인 조사를 안했지만 금년에는 더 늘어났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추정. 일본은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이다.

▼소음 공해▼

삼성증권 리서치센터 에디터인 캐나다인 유리 반 델 리스트(26)는 “한국인들은 소음에 둔감해 보이지만 나는 솔직히 외출하기가 겁난다”고 토로했다. 명동 거리를 한번 갔다 오면 자동차 경적소리에 각종 시위 구호, 건물 밖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에 정신을 빼앗겨 하루종일 멍해져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

정부 과천청사 앞 운동장에서도 매일같이 집회가 열리는데 최고 성능의 방송 장비를 통해 운동가를 부르거나 구호를 외쳐대 외국인들의 구경거리가 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휴대전화 소음공해가 이슈로 떠오르면서 정부가 공공 장소에서의 휴대전화 소음공해 방지를 위한 전파차단장치 설치를 허용해 달라고 정보통신부에 권고하기도 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도로변인 서울 종로구 견지동 견지빌딩의 소음은 지난해 평균 주간 73㏈, 야간 64㏈로 환경 기준인 70㏈과 60㏈을 초과했다. 70㏈이면 옆 사람과 평상적으로 대화를 나눌 수 없을 정도의 소음이다.

성균관대의대 정신과 이시형교수는 “소음이 전달되면 뇌파가 신경질적이 되고 무의식중에 공격적으로 변하며 실제로 경적을 많이 울리는 운전자일수록 사고를 많이 낸다”고 말했다.

▼대책▼

우리나라는 천연가스 버스 보급을 이제 막 시작했으나 일본의 주요 월드컵 개최도시들은 천연가스 버스의 보급률이 70∼80%이다. 천연가스 버스도 연료값 인상을 우려하는 버스 사업자의 비협조로 진척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서울 대전 제주 등 주요 도시에서는 국가환경기준보다 엄격한 지역환경기준을 적용하고 경유차 보급을 억제하기 위한 에너지와 세제의 개편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용관·김준석기자>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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