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홍길씨, 후배시신 찾으러 14일 에베레스트로

  • 입력 2005년 3월 4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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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산악인들의 유족이 고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며 침통해 하는 엄홍길 씨. 안철민기자 acm08@donga.com
숨진 산악인들의 유족이 고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며 침통해 하는 엄홍길 씨. 안철민기자 acm08@donga.com
“장민 씨의 어머님이 차가운 곳에 누워 있는 외아들이 춥지 않게 해달라며 스웨터를 한 벌 떠주시더군요. 박무택 씨와 백준호 씨 부인은 하늘에 있는 남편에게 전해달라며 편지를 썼고요. 편지와 스웨터를 받아오며 가슴이 떨렸습니다.”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한 세계적 산악인 엄홍길(嚴弘吉·45) 씨가 지난해 5월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고 하산 길에 조난당해 숨진 계명대 산악회 박무택(朴武宅·당시 35세) 장민(당시 26세) 백준호(당시 37세) 씨 등 3명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한 ‘휴먼등반’에 나선다.

국내 산악인 20명과 현지인 등으로 50여 명의 원정대를 결성한 엄 씨는 14일 현지로 출발할 예정.

“헬기가 접근할 수 없는 가파른 고지대에서 시신을 수습해야 하는 일입니다. 한쪽 손은 항상 암벽을 붙잡고 버티고 있어야 합니다. 바위지대라 시신을 미끄러뜨릴 수도 없고 항상 들고 움직여야 합니다.”

박 씨가 누워있는 곳은 에베레스트 북동릉 지역 해발 8750m지점. 산악인들이 다니는 등산로 중간에 있다. ‘세컨드 스텝(가파른 암벽지대)’으로 불리는 이곳을 지나려면 수직에 가까운 70m의 암벽을 통과해야 한다.

박 씨의 시신은 육안으로 확인되지만 나머지 두 명의 시신은 정확한 위치를 몰라 현지에서 수색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 장 씨와 박 씨가 조난당하자 백 씨가 이들을 구하려다 잇따라 사고를 당했다. 이곳은 지난 한 해만도 7명이 숨진 장소.

엄 씨는 2000년 칸첸중가(8603m) 원정 때 해발 8500m 지점에서 숨진 박 씨와 함께 10시간 동안 절벽에 매달린 뒤 기어코 정상을 밟는 등 4번이나 8000m급 고산을 오르며 생사를 함께했다. 지난해 박 씨가 조난당할 당시 히말라야 얄룽캉(8505m)을 오르던 엄 씨는 마지막 순간까지 위성전화로 서로의 안부를 물었을 만큼 각별한 사이.

“지난해까지만 해도 박 씨의 시신은 로프에 걸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에베레스트를 등반한 외국 원정대 말로는 누군가 로프를 끊었다더군요. 현재는 등정로 근처 암벽지대에 시신이 누워 있습니다. 올봄만도 세계에서 25개 팀이 등반할 텐데…. 빨리 시신을 수습해야지요.”


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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