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착오적 남녀차별 끝내야"…'딸들의 반란' 첫 공개변론

  • 입력 2003년 12월 18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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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종중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전근대적 관습이다.”(원고)

“여성을 종중원으로 인정하는 것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안 돼 있다.”(피고)

이른바 ‘딸들의 반란’이라 불린 출가 여성들의 종중(宗中) 회원 확인청구 소송이 18일 대법원 공개재판의 심판대에 올랐다.

대법원은 이날 용인 이씨 사맹공파 33세손으로 출가한 여성 5명이 종중을 상대로 “출가여성은 종중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종중 재산을 차등분배한 것은 부당하다”며 낸 종중 회원 확인청구소송에 대해 사상 첫 공개변론을 열었다. 그동안 대법원은 상고 사건에 대해 서류심리만을 해왔다.

이날 공개재판은 원고측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됐다. 원고측 황덕남(黃德南) 변호사는 “성년 남자만 종중원으로 인정한 관습은 현 시대 상황에 뒤떨어진 발상”이라며 “이는 남녀 평등을 기반으로 하는 법 질서에도 위배되므로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18일 대법원의 첫 공개변론에 쏠린 관심은 뜨거웠다. 원고인 용인 이씨 사맹공파 33세손 출가 여성들(오른쪽)과 피고인 사맹공파 남성 종중원들(왼쪽)이 재판정에 앉아 있다. -원대연기자

황 변호사는 “피고는 출가한 딸들이 제사를 지내거나 분묘수호 의무를 하지 않으므로 종중원의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나 애초부터 종중원의 자격이 부여되지 않아 이들은 의무를 이행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피고측 변호인 민경식(閔京植) 변호사는 “출가한 딸에게까지 종중원의 지위를 부여하면 그 딸이 낳은 자식은 외가와 친가 모두의 종중원이 되는 모순이 발생한다”면서 “분묘수호와 봉제사가 종중의 가장 큰 목적인데 이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까지 종중원으로 인정하면 그것은 종중이 아니라 비법인단체”라고 반박했다.

변론을 경청한 유지담(柳志潭) 대법관이 “남성은 제사를 지내기 싫어도 종중원 자격이 부여되고 여성은 아무리 조상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도 자격이 박탈되는 것은 문제 아니냐”고 묻자 민 변호사는 “민법상 여성이 결혼하면 남편의 호적에 입적되지만 예외적으로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고 응답했다.

고현철(高鉉哲) 대법관은 원고측에 “원고 주장대로라면 외손자까지 종중원 자격을 부여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지 않느냐”고 물었고, 황 변호사는 “부계혈통을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이날 전문가의 의견을 듣기 위해 이덕승 안동대 교수, 이진기 숙명여대 교수, 이승관 성균관 전례연구위원장을 참고인으로 출석토록 했다. 이들은 양측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각각의 의견을 내놓았다.

이날 재판은 최종영(崔鍾泳) 대법원장을 포함한 13명의 대법관이 전원 참석하는 전원합의체로 진행됐으며 240여명의 일반인이 방청석을 메워 뜨거운 관심을 나타냈다.

이 사건은 용인 이씨 종중이 1999년 3월 종중 소유 임야를 350억원에 매각한 뒤 이 돈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미성년자와 출가 여성에게는 종중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등 지급하면서 불거졌다. 1, 2심 재판부는 기존 판례대로 “종중원 자격은 성년 남자에게만 인정된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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